2024년 7월이다. 상반기가 다 지나갔다니. 정말 놀라울 뿐이다. 올해는 5~6월에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2024년 상반기에 좋았던 책’ 페이퍼를 쓰지 않고 넘어가려고 했다. 읽은 책도 별로 없는 주제에 뭘 고르고 앉았담? 이런 생각이랄까. 그런데 이 페이퍼를 기다리고 있다고 7월 2일이니까 꼭 올려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아, 아, 아 그래? 그래, 그렇다면 하고 끼적여 본다. 도대체 몇 권이나 읽었는지 헤아려보니 2024년 상반기에만 90권을 조금 넘게 읽은 것 같다.....(뭐야 작년 상반기보다 많이 읽었잖아?;;;) 아무튼 그 아흔 몇 권 중에서 인상 깊었던, 한 번 읽어보시쥬, 권하는 책.
문학
앤드루 포터, <사라진 것들>
올해 상반기에 읽은 인상 깊었던 소설 중 원픽이 아닐까 싶다. 한때 찬란하게 빛났지만 서서히 부서지고 사라지고 소멸해가는 것들의 기록. <빛과 물질의 기억> 때부터 눈여겨보던 작가 앤드루 포터, 사실 나는 이 두 번째 소설 모음집이 더 좋았다. 앤드루 포터처럼 젊은 시기를 다 지나고 이제는 서서히 늙어가는 단계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그의 이 단편집에 실린 문장과 감성 분위기에 더 공감하고 푹 젖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윌라 캐더, <루시 게이하트>
윌라 캐더의 작품을 좋아하면서도 이 작품이 흄세시리즈에서 나왔을 때는 약간 반신반의했다. 흄세시리즈에서 출간한 작품들 읽고나면 약간 뭔가 부족하다 생각한 적이 많아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작품은 시작 부분 문장이나 묘사부터 마음을 잡아끌더니 단숨에 빠져들어 읽었다. ‘루시 게이하트’라는 캐릭터를 비롯해 주변의 다른 인물들의 면면까지 그려내는 방식, 이야기, 구조,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바 등등 모든 면에서 좋은 소설, 좋은 작품이다. 루시를 둘러싼 인물들, 그 어느 한 사람도 소홀히 다루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책장을 덮고 며칠이 지난 후로도 역시 좋은 작품이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유진 오닐, <이상한 막간극>
6월 말에 읽기 시작했는데 희곡 작품을 이렇게 오래 읽기도 처음이다. 498쪽. 정가 29,800원- 온라인 서점에서조차 햘인하지 않음! 우리나라에서는 압도적인 분량과 압도적인 공연 시간(5시간을 넘긴다고.....) 때문에 읽힌 적도 공연된 적도 없는 유진 오닐의 작품. 이토록 두껍고, 이토록 비싼 희곡집을 내 돈 주고 읽을 가치가 있을까요? 누가 묻는다면 네,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할 것 같다. 무려 네 번이나 퓰리처상을 받은 유진오닐에게 세 번째 수상의 영광을 안긴 작품-<지평선 너머>(1920), <애나 크리스티>(1922), <이상한 막간극>(1928), <밤으로의 긴 여로>(1957, 사후 수상)-으로 장장 9막에 이르는 동안 ‘니나 리즈’라는 팜파탈과 그녀를 둘러싼 여러 남자들의 욕망 사랑 배신 증오 콤플렉스 등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한야 야나기하라, <리틀 라이프>
역주행으로 인기 타고 있는 작품. 역주행 시작 전에 읽기는 했는데, 읽고 나서 이 작품이 역주행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거 보니 좀 신기하기는 했다. 사람들이 이 두꺼운 책 2권을 다 읽는다고? 싶기도 한데, 책을 손에 들면 빨려 들어가서 금세 읽기는 한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평생 고통 속에 놓여 사는 ‘주드’라는 인물과 그의 친구들을 중심으로 몇 십 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고통포르노’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1권을 읽을 때는 이렇게까지 고통을 생생&길게 표현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싶은데 2권에 들어서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이 작품 편집자가 작가에게 처음부터 절반으로 줄이자고 했다던데, 나도 그 의견에는 좀 공감......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별의 시간>
사두고 늘 도전했다가 읽다가 중간에 덮어두기가 일쑤인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이 책은 손에 들자마자 바로 다 읽었다. 리스펙토르의 작품들 중 난해함 정도에서는 가장 순한맛이 아닐까 싶다. 리스펙토르의 마지막 작품이라는데, 아마 이 언니도 다 늙어서는 자신의 독자들에게 내 작품 읽느라 그동안 고생했다 좀 쉬운 거 남겨줄게 아량을 베푼 게 아닐지. 작가 본인과 닮은 듯 다른 인물 마카베아의 비극적이면서도 강렬한 삶이 또렷하게 기억에 남게 되는 작품.
지넷 윈터슨,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
지넷 윈터슨의 발견. (작품으로만 판단하자면) 이 사람은 똑똑하고 당차고 위트 넘친다. 그리고 용감하다. 자전 소설이자 성장 소설이자, 페미니즘 문학이자 LGBT문학이자 그 모든 것이기도 한 작품. 가부장제, 종교, 정상성, 이성애 중심 세계에 던지는 신랄하고 통쾌한 질문. 아니 근데 이 작품을 스물세 살에 써서 스물다섯에 출간했다고요...? 헐 천재는 역시 다르구나.
나쓰메 소세키, <행인>
오랜만에 재독했다. 명작은 다시 읽으면 더 좋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 작품.
비문학
샹탈 자케, <계급횡단자들 혹은 비-재생산>
읽는 동안 뇌가 찌릿찌릿 쫙쫙 펼쳐지는 기분이 들었다. 개천에서 용 나기가 더는 가능하지 않은 시대- 비록 한때였지만 개천을 떠나 용이 되었던, 그것이 가능했던 시대를 살아낸 자들의 존재의 불안이나 고독 소외 등을 생각해볼 수 있는 책. 단순히 계급 문제에만 국한하지 않고 자기가 속한 세계에서 늘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또는 그런 소외된 자로서의 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들의 처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전향자(transfuge)라는 단어에 관해서도.
매기 팩슨, <비바레리뇽 고원>
이 책도 올해의 발견 중 하나. 선함의 뿌리? 친절함의 뿌리를 찾아서 떠난다고? 인간이 그토록 선한 존재인가? 인간은 아름답기보다 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인간의 어떤 면에 관해서는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 책. 문장과 사유, 전달 방식, 말하고자 하는 바 모든 면에서 아름다운 책이다.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했던 책인데 이런 책은 소장각이다(하지만 도서관에 신청한 나도 참 잘했어요... 누군가 이 책을 우연히 발견하고 제 나름의 무언가를 얻어간다면야....).
프레데리크 그로, <수치심은 혁명적 감정이다>
부끄러움, 창피함, 염치, 수치…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대개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정말 그럴까? 이 책은 수치심의 긍정적인 면을 살피면서 인간이라면 마땅히 지녀야 할 윤리, 수치심의 사회적 필요성을 제안한다.
피터 싱어,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피터 싱어 책은 가끔 읽어줘야 한다. 몇 년 주기로? 내가 좀 인간답지 못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할 때마다 펼쳐 읽으면 반성 모드였다가 막판에는 가슴이 웅장해지면서 그래, 인간이라면 이렇게 살아야지, 아니면 이렇게 사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다짐하게 된다. 이 첵의 부제는 “이기적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희망의 실천윤리”- 이 말이 이 책에 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고 생각한다.
매슈 루버리, <읽지 못하는 사람들>
최근에 리뷰 남겼다. 읽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례를 훑어보면서 읽기와 문해력에 대해 탐구해 보는 책.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읽는다.” 정상적인 읽기가 과연 무엇일까, 대체 정상적인 상태란 무엇일까 생각할 계기도 마련해준다. 그러나 내가 이 책에서 가장 크게 얻은 깨달음은 역시 인간으로 태어나(아니 인간으로 어쩔 수 없이 태어난 김에)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구나 하는 것.
케이트 맨, <비정상체중>
뚱뚱한 몸에 대해서는 모두가 참견할 권리가 있다는 듯이 한마디씩 던지는 사회. 인종차별/성차별/소수자차별 등 모든 차별과 혐오에 PC함을 드러내는 이들조차도 비만혐오에는 공기처럼 젖어있다. 케이트 맨은 자신의 경험과 사례를 들면서 그런 비만혐오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조목조목 따진다. 단지 타인의 뚱뚱할 권리뿐만이 아니라, 이 책을 읽고 나면 나 아닌 타인의 그 무엇에라도 간섭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까 남한테 관심 좀 끄고 살자 한국인들아........
마리 루티, <가치 있는 삶>
2022년 출간 때 사두고 이제야 읽었다. 마리 루티 책은 일명 바나나 책인 <남근선망과 내 안에 나쁜 감정들>, <가치 있는 삶>, <하버드 사랑학 수업>까지 읽었는데 <가치 있는 삶>이 가장 좋았다. 평온한 삶이 가장 좋은 삶인가? 고통과 불안에 몸을 맡기는 삶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다고 그것에서도 나름의 얻는 게 있다고 말하는 마리 루티, 신간 나오면 또 읽을게요.... 그나저나 <잔인한 낙관>은 <가치 있는 삶>하고 좀 겹치는 부분이 있을 거 같은데.....곧 읽어보자!
상반기에 딱 한 권만 권하라면
이 책입니다. 여러 의미로 너무나 아름다운 책. 현재까지는 2024년의 원픽... 이 책을 깨뜨려 줄 책을 하반기에 만났으면 좋겠다........
하반기에는 먼저 이런 책들을 읽을 예정.
눈치챈 분들이 있을까 모르겠는데 지난 6월에는 6월 산책을 올리지 않았다. 산책, 그러니까 구매한 책탑 페이퍼를 올리지 않으면 책을 덜 살까 싶었는데..... 덜 사기는 개뿔 계속 사긴 사더라.... 심지어 밀리의 서재도 공짜로 한 달만 보고 끊는다더니 구독하기 시작.............. -_-;;; 아무튼 그렇게 산 책 중 7월에 읽으려고 찜해둔 거 두 권 소개하면서 이 페이퍼는 마무리......
리 배짓, <차별비용-LGBT 경제학>
이 책 제목만 보고는 좀 어이없어서 웃었다. 아니 뭐야, 차별은 당연히 하지 말아야지 이젠 무슨 경제비용까지 따져가면서 차별하지 말자고 해야 하는 거야??? 개어이없네 싶었으나.... 30년 이상 LGBT와 경제학을 엮어 탐구한 저자가 ‘성소수자를 포용하면 실질적인 이득이 뒤따른다’고 주장하는데(근데 '포용'이 뭐니 '포용'이... 니미럴....) 방대한 양의 통계와 당사자들이 직접 겪은 경험으로 전달한다고 하니 어디 한번 들어보기로.... 근데 아무튼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좀 어처구니...없긴하다.....?
잉그리트 리델, <변화하는 천사-파울 클레의 천사 그림>
가장 최근에 산 책이다. 파울 클레 그림을 좋아한다. 이 책은 클레의 작품 중에서도 천사 그림만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한다. 저자가 융의 분석심리학에서 영향을 받았다나 뭐라나... 책 받아서 펼쳐봤는데 역시 아름다운 그림과 글.
이렇게 읽고 사고 사고 사고 했더니 알라딘이 25주년 기념이라고 영수증 청구.... 우리 엄마가 보면 큰일 날 영수증. 재벌 다락방에겐 비할 바 못 되지만.... 내가 현재 거지인 이유를 명확하게 알려주는 영수증.......-_-;;
우리 동네 인간들 책 많이 사네... 내 앞으로 67명이나 있다니....?
그나저나 마무리짤로는 역시 빵이죠. 밤식빵 굼터.. 무슨 빵으로 드시렵니까?
전 역시 이 우유밤식빵이 젤 맛나 보이는데요!? >_<
헐.... 이 녀석(3호)도 요즘 여기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무+벽의 조합이 시원한가 봄. 이눔아 넌 그 집 식구들 아니잖아!!! 내려와 ㅋㅋㅋㅋㅋㅋㅋㅋ 생김새 비슷해서 헷갈리는 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보.
아무튼 계속 7월에도 읽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