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도 화창하고(아닌가? 올해 5월에는 우중충하게 비가 많이 내리는 거 같기도), 연휴도 많아서 즐거운 5월인데, 나는 이래저래 좀 힘든 일이 많아서 그 5월을 제대로 누리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책도 읽지 못한 지 어언....2주가 다 되어가는 것 같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책 한 자 읽지 못하고 흘러가는 시간이 있을 줄이야. 그나마 회사에 나오면 글을 읽을 수 있어서(머릿속에 잘 들어오지는 않지만 일이니까 읽어야 하므로 읽는다) 좀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중에 비비언 고닉 신간 <끝나지 않은 일>을 살펴보다가 “그 무엇도 책에는 비길 수 없다. 문학작품에는 일관성을 갈구하는 열망과 어설프고 미숙한 것들에 형태를 부여하려는 비상한 시도가 각인되어 있어, 우리는 거기서 평화와 흥분, 안온과 위로를 얻는다. 무엇보다 독서는 머릿속 가득한 혼돈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며 순수하고 온전한 안식을 허한다. 이따금, 책 읽기만이 내게 살아갈 용기를 준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pp.10~11) 이 구절을 읽고는 한참 거기에서 눈길을 멈추고 생각에 잠긴다. 그러니까 정말로 그렇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만이 내게 살아갈 용기를 준다고, 책 읽기만이 어쩌면 이 힘겨운 세상에서 나를 버티게 해준다고. 그런데 요즘 이 힘든 시기에 그걸 못하고 있으니 더 인생이 버거운 느낌이다.
그렇게 읽지 못해도, 읽지 못하니까 왠지 더 사게 되는 책들, 그래서 산 책들-
강남순, <철학자 예수- 종교로부터 예수 구하기>
5월에 출간된 책 중에는 가장 눈길이 간다. 나는 종교인도 아니고 신을 믿지도 않고 기독교도 좋아하지 않지만 인간으로서의 ‘예수’에는 관심이 많다. 사상가로서의 예수, 철학자로서의 예수, 사회주의자로서의 예수 등등 예수라는 인간을 다양한 각도로 살펴본 책에는 눈길이 간다. 데리다의 환대의 개념을 이해하기 쉽게 국내에 알리고 있는 강남순이 철학자로서 예수의 면모를 살펴보는 책이니 사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부제가 “종교로부터 예수 구하기”가 아닌가. 그래, 맞아. 예수는 종교, 그러니까 기독교 때문에 오독된 인물일지도.
비비언 고닉, <끝나지 않은 일>
당연히 사야할 책이었다. <사나운 애착>을 읽었을 때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그러면서도 고닉 책은 읽는 족족 다 팔아버린 나..... 이따금 약간 후회가 들기도 하지만....). 그 이후로 글항아리에서 출간되던 비비언 고닉 선집은 이로써 완간. 북플이나 서재에서 이 책 상찬이 대단한 것 같다. 오롯이 내 감상으로만 느끼고 싶어서 이웃들 리뷰는 실눈 뜨고도 읽지 않았다.....
메리 루플, <가장 별난 것>
잘 쓴 에세이를 읽으면 황홀하다. 고닉의 에세이를 처음 읽었을 때 그랬는데, 메리 루플은 어떨까. 시인 메리 루플의 산문집 <나의 사유 재산>과 <가장 별난 것> 이 두 권이 나에게 전율을 일으킬 또 다른 에세이스트가 될 수 있을까........
레이먼드 월리엄스, <키워드>
문화비평가 레이먼드 윌리엄스가 30년 동안 집필에 힘썼던 책. ‘가족’, ‘사회’, ‘대중’, ‘변증법’ 등 사회 문화적으로 중요한 총 131개의 키워드를 통해 삶과 사회를 살펴보고 있다. R 항목을 훑어보자..... “Racial 인종적/ Radical 급진적, 근본적/ Rational 합리적/ Reactionary 반동적/ Realism 리얼리즘, 실재론, 사실주의, 현실주의/ Reform 개혁, 개혁하다/ Regional 지역적/ Representative 대의제, 대표, 표상적/ Revolution 혁명/ Romantic 로맨틱, 낭만주의적, 가공의, 낭만주의자” 완전 재미있을 거 같은데 언제 읽지...;
프랑수아 줄리앙, <고요한 변화>
동서양 철학의 간극을 비교, 통찰한 저서들로 유명한 프랑수아 줄리앙의 대표 저서. 그에 따르면 ‘변화’는 눈에 띄지 않지만 결국 모든 것을 전혀 다른 국면으로 이끄는 지속적인 움직임이다. 서양 철학은 ‘변화’나 ‘이행과정’ 자체를 사유하지 못하는데 동양 철학의 사유를 끌어와 그 빈틈을 메꾸어 본다.
에바 일루즈, <사랑은 왜 끝나나- 사랑의 부재와 종말의 사회학>
<사랑은 왜 아픈가> 읽던 중 급박하게 읽고 싶어져서 구매. 에바 일루즈가 20여 년간 연구해온 감정사회학의 대미를 장식하는 저작으로 꼽힌다. “어떻게 자본주의가 성적 자유를 점령해, 성적 관계와 낭만적 관계를 유동적이고 혼란스럽게 만들었는가”(48쪽)를 해명한다고.
케네스 골드스미스, <문예 비창작- 디지털 환경에서 언어 다루기>
언젠가 서점에서 서서 읽다가 아, 이거 사야겠다 싶어서 보관함에 담아두고는 오래 묵혀두었던 책. 글쓰기와 관련해 이 시대의 무수한 글과 엄청난 정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살펴보는데, 디지털 시대에 “비독창적 천재(Unoriginal Genius)”로서 “비창조적 글쓰기(Uncreative Writing)”를 구현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하고 증명한다.
김인정, <고통 구경하는 사회- 우리는 왜 불행과 재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
얼마 전 유튜버들끼리 살인 현장을 생중계했다는 끔찍한 뉴스를 접했다. 자극적인 영상이 이토록 아무렇지 않게 날마다 재현되는 시대가 또 있을까? 사람들은 이런 영상에 익숙해지면서 타인의 고통을 아무렇지 않게 소비하고 만다. 이 책은 고통을 눈요깃거리로 소비하는 세태를 진단하고 대상화되는 고통의 맥락을 복원하는 한편으로 공적 애도의 자세까지 제안한다.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미셸 시망, <다르덴 형제 - 인간을 존중하는 리얼리즘>
다르덴 형제의 인터뷰집이 출간되었는데 어떻게 안 사? 2005년부터 2014년까지 프랑스 퀼튀르 라디오방송을 통해 진행된 네 번의 인터뷰와 2015년 로렌대학교에서 열린 영화 수업이 담겨 있다고 한다. <더 차일드> <로나의 침묵> <자전거 탄 소년> <내일을 위한 시간>등의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간다고 하니 더 기대된다.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뭉크를 읽는다>
뭉크를 좋아한다. 이 책은 <나의 투쟁>을 쓴 노르웨이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가 뭉크에 관해 쓴 에세이로 뭉크의 작품과 그가 살았던 시대, 그리고 그의 예술이 오늘날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탐구한다. 전통적인 내러티브의 형식을 따르기보다는 그림과 전기적 요소를 오가며, 뭉크에 관한 다양한 저술, 문학 작품, 동시대 예술가와의 인터뷰, 현대 철학 사이를 넘나들며 뭉크의 작품 세계를 파고든다고.
워커 퍼시, <영화광>
이 출판사(섬과달)는 출간 목록이 흥미롭다. 편집자 출신이 차린 1인출판사인 것 같은데 본인이 좋아하는 작가를 계속 소개하는 패기가 남다른 듯. ‘팀 오브라이언’을 뚝심 있게 소개하더니 ‘워커 퍼시’의 이 작품도 소개. 이렇게 색깔 있고 개성 있고 (시장 논리에) 굴하지 않으면서 자기만의 목록을 만들어가는 출판사, 진심으로 응원한다. <영화광>은 작가가 마흔네 살이던 1961년에 쓴 데뷔작으로 이듬해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1923년부터 2005년 발표된 최고의 영어 소설 100권 중 하나로 꼽히기도(<타임> 선정).
마르그리트 뒤라스, <부영사>
뒤라스 책이니까 그냥 산다.
크리스티앙 보뱅, <마지막 욕망>
보뱅 책이니까 그냥 산다22222222. “좋아했던 오래된 책들의 페이지를 열 때 당신이 준 철필을 사용했다. 지금 그 철필로 천천히 내 정맥을 연다.”로 시작하는 첫 문장. 지금까지의 보뱅과는 어쩐지 좀 다를 듯한 이야기.
앙드레 지드, <새로운 양식>
<지상의 양식> 아닌 <새로운 양식>- 김화영 번역으로 읽어보고 싶어서 구매.
북펀딩
C. 더글러스 러미스, <래디컬 데모크라시>
일찌감치 펀딩한 책이 곧 올 예정이다! 다음주 출간 예정.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의 더글러스 러미스 “사유의 저수지 같은 텍스트”라는데 펀딩에 참여하지 않을 수가 없지. 원저가 출판된 지 28년 만에 드디어 한국어판 출간!!
정신없어서 책 안 산 것 같더니 많이도 샀구나...;; 이 재미난 책들을 이제 읽을 수 있게 되길....
마무리는 역시 우리 막내~!! 이런 중에도 이 녀석 보면 순도 100%의 미소를 지을 수 있다.
간식 기대....
필살의 애교. 발라당~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