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진, 역사의 힘 -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
하워드 진 지음, 이재원 옮김 / 예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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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그가 세상을 떠난지 벌써 몇 해가 흘렀다. 데이비드 보위를 비롯해 미셸 투르니에, 그리고 신영복 선생까지... 올해도 나라 안팎으로 더없이 아까운 죽음 소식이 들려온다. 죽음에 경중이 있겠냐만은, 몇 해 전 하워드 진 그가 죽었을 때처럼 가슴 한 구석이 뻥 뚤린듯한 기분을 느낀 적도 없는 듯하다. 그런데 그게 어느덧 몇 해 전이라니, 이제는 그 사실이 더 놀랍다.  1월 27일 오늘, 바로 그가 죽은지 어느덧 여섯 해가 지났다. 그를 기리며 그의 책을 한 번 더 훑어본다.

언제부터인지 하워드 진의 글을 읽는 일은 비관주의, 냉소, 허무, 무기력증에서 벗어나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가 되었다. 요즘 한국의 전반적인 상황을 보면 희망이라는 게 존재할까 싶다. 그저 이런저런 생각으로 참 허무하다. 이 땅에서 과연 ‘진보’한다는 의미가 무얼까 그 어느 때보다 회의감이 밀려온다. 이 땅에 사는 인간들은 저마다 제 살기 바쁠 뿐인데, 이른바 ‘먹고사니즘’ 때문에 사회가 정말 ‘진보’하는 일에 관심조차 없을 텐데…. 이 나라가 과연 바뀌는 날이 있을까? 더 나빠지면 나빠지지 좋아질 리는 없을 텐데 등등.

이 런 생각에 빠져 있는 요즈음 하워드 진의 <역사의 힘>이라는 책을 다시 읽는다. 어떻게 그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그 어두운 시대를 살아오고, 지켜보면서 단 한 번도 지치지 않았으며 냉소에 빠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비관주의에 자신을 내몰지도 않았을까? 과연 어떤 확신이 있었기에 그토록 사람을, ‘민중의 힘’을 믿을 수 있었을까? 이 책을 읽는 내내 하워드 진의 확신, 믿음, 희망 근거를 좇느라 내 눈과 마음은 무척이나 분주했다.
 
역사학자인 하워드 진은 바로 ‘역사’ 속에서 희망의 근거를 찾았다. 그는 ‘나는 비관주의를 이해하지만 믿지는 않는다. 이것은 단순히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증거로 따져 봐야 할 문제다. 강력한 증거일 필요는 없다. 희망을 주기에 충분하면 그만이다. 희망을 위해 필요한 것은 확실성이 아니라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역사는 우리에게 이런 가능성을 제공해 준다(비록 모든 경우마다 “역사는… 보여 준다”, “역사는 … 증명한다” 같이 확고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31쪽, ‘비관주의에 반대한다’ 중)’라며 인종차별, 성차별, 노동자 탄압, 소수자들에 대한 탄압, 자본에 의한 억압, 끊임없는 전쟁 등등 이 세계의 어두운 그늘은 항상 어느 순간 억압받았던 민중들의 폭발, 즉 혁명을 통해 변화해왔으며 그것이 곧 ‘진보의 길’로 나아갔음을 이야기한다.

그는 또한 비관주의에 빠질만한 이들에게 역사 속의 변화를 희망의 근거로 들며 권력에 지배당하지 않고 늘 깨어있으라고 촉구한다. 그 어떤 권력도 민중들의 복종이 없으면 유지될 수 없기에 ‘파업, 보이콧, 복종하지 않기, 복잡한 사회구조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능력 등 이 모든 행동은 여전히 국가나 기업의 무시무시한 권력에 맞서는 강력한 무기’임을 강조하며 권력에 길들여지지 않기를, 필요할 때는 비폭력 직접행동에 나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함을 주장한다. ‘정의를 위한 투쟁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며….

이런 주장들을 다른 사람이 했다면 설득력이 매우 약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하워드 진은 그 자신이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일찌감치 노동 현장의 쓰라림을 맛보았고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겪었으며 그런 가운데서도 공부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배운 지식으로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의 편에서 아픔을 함께하며 평생 정의를 위한 투쟁을 멈춘 적이 없었다. 때문에 그의 가슴으로 써내려간 글들은 그 어떤 이의 말보다 더욱 뜨겁게 다가온다.

이 책은 다양한 시대, 다양한 주제로 하워드 진이 써내려간 에세이 묶음이다. 비록 오래 전 글일지라도 현재에도 여전히 그의 주장은 유효하다. 무엇보다, 그의 글은 쉽고 소박하지만 그 어떤 글보다 뜨겁고 열정적이다. 때문에 지치지 않는 희망의 열정가이자 혁명가인 하워드 진의 글을 읽는 일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그는 어떻게 그토록 긍정적인 시선으로 다른 세상, 더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있었을까. 그 변함없는 열정과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자 끊임없이 노력한 ‘실천가’의 모습에 울컥울컥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하워드 진은 여러 의미로 존경스럽다. 그처럼 살다가야 인생을 참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텐데…. 오늘은 어쩐지 그가 문득 더욱 그리워진다.


    나는 수업 중에 정치적 관점을 결코 감추지 않았다. 전쟁과 군사주의를 혐오하고, 근본적인 불평등에 분노하고, 민주적인 사회주의와 전 세계 부의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분배를 믿는 내 관점을 말이다.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은데 ‘객관적’인 척하는 것은 정직하지 않은 태도라고 생각했다. (153쪽 ‘교육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중)

    우리는 정치적으로 되느냐, 아니면 비정치적으로 되느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사회의 지배 세력들이 규정한 우선순위와 목적의 틀 내에서만 업무를 수행하면서 기존 질서의 정치를 좇을 것인지, 아니면 현재 우리 사회가 부정하는 평화, 평등, 정의라는 인간적 가치를 활성화시킬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213쪽, ‘비밀주의, 역사 기록, 그리고 공익’ 중)

    대학은 다음과 같이 당당하게 선언해야 한다. 대학의 이해관계는 전쟁, 빈곤, 인종과 민족 차별, 개인의 자유에 대한 국가 통제를 철폐하는 것이고, 협력 정신과 다음 세대에 대한 관심을 강화하는 것이다. 대학이 특정 민족, 정당, 종교, 정치적 교의를 대변하는 이해관계에 봉사해서는 안 된다. 대학은 중립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역설적이게도 정부, 군대, 기업의 협소한 이익을 위해 자주 봉사해 왔고, 더 크고 우월한 가치들에 대한 지지는 아직 보류하고 있다. (230쪽, ‘학문의 효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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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03-12 2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이제 1부 읽었는데
벌써 별 5개 누르고 싶어집니다
첫 페이지 ˝사람들의 힘을 북돋아 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은데, 결국 내가 선택된 것이다.˝부터 행동하는 멋진 지성이란게 느껴져서 그 멋짐에 감동해 버렸어요
끝까지 꼭꼭 씹어 잘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잠자냥 2023-03-12 23:01   좋아요 1 | URL
아아, 이 책 하워드 진….. ㅎㅎ심장 뛰게 만드는 사람이죠. 즐겁게 읽으세요!
 
이탈리아 기행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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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괴테를 좋아하지 않았는지(아니 그의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지), 이 <이탈리아 기행>을 읽으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문인이라고 하기엔 살아 생전 너무 많은 권력과 명성을 갖추고 있던 것이다! 살아있을 때 이미 많은 인정을 받고 너무나도 유명했기 때문에-심지어 오늘날로 치면 정치에도 몸을 담았기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이미 가진 자의 눈으로 본 것이다. 그런 그의 세계관에 그다지 공감이 느껴지지 않았던 듯하다.


물론 괴테 자신도 그런 유명세에 지쳐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고자 이탈리아 행을 결심하고 실행으로 옮겼다. 그렇게 나온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독일적인 것과는 정 반대되는 이탈리아에서 그는 제2의 탄생,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며 <이피게니에>를 고쳐 쓰거나 <에그몬트>를 탈고하고 <파우스트>를 다시 쓰게 된다. 괴테의 눈으로 본 그즈음 이탈리아 풍경과 유명한 예술가, 화가들의 작품을 보는 일, 괴테가 그린 스케치 등을 보는 일은 흥미로웠다. 이탈리아에 그처럼 오래 머물면서 생활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괴테에 대한 호감이나 그의 작품을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이상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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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영구 옮김 / 푸른숲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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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자체가 굉장히 엉망이다. 중간중간에 빼먹은 부분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절판된 게 다행스러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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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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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같은 것을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사치가 아닐까. (74쪽)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은 픽션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니 에르노, 그녀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사실이 아니면 글을 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소설 <단순한 열정>은 ‘아니 에르노’ 그녀 자신의 경험담이다. 이 작품은 불륜의 사랑 이야기이며, 한 남자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한 여자의 ‘열정’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위의 저 구절은 <단순한 열정>의 마지막 문장으로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사치’라고 말하는 아니 에르노의 정의에 나는 깊이 공감했다. 어떻게 보면 열정을 퍼부을 수 있는 대상이 주어지는 것도 사치이며 그런 대상이 주어졌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단순히’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마음도 사치가 아닐까? 자기 자신은 사라지고 오로지 사랑하는 대상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듯한 그런 상태. 그럴 정도로 정신 못 차리고 상대에게 빠져들어 뜨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사치’이고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토록 ‘사랑하기’를 열망하는 것은 아닐까.

‘연하의 유부남을 사랑한 불륜 이야기’임에도 이 작품은 묘하게 공감 가는 구절이 많다. 사랑하는 동안은 사랑하는 대상 밖에 보이지 않는 열정적인 상태와 그녀의 그 뜨거움도 어떤 면에서는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이 작품이 사랑을 해 본 이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치열하고 진실된 사랑의 기록이기 때문은 아닐까? 사랑하는 대상이 어떤 사람인지도 그녀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아니 에르노는 ‘그 사람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내 온 몸으로 남들과는 다르게 시간을 헤아리며 살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그와 헤어진 후 그가 존재하지 않는 부재의 시간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와의 일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기록한다. 그의 부재를 잊기 위해서? 고통을 견디기 위해서? 아니다. 그녀는 그를 사랑했던 그때에 머물고 싶기 때문에 글을 쓴다. 끝내고 싶지 않았던 ‘삶이 가장 아름다웠던 그 시절‘의 영원한 반복을 나타내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다. 사랑은 끝났지만 그녀의 열정은 어떤 의미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뜨겁게 사랑했고 사랑한 만큼 상처입고 고통 받은 그녀는 ‘언젠가 그 사람도 다른 사람들처럼 내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겠지’라며 이별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 뜨거웠던 사랑을 통해 ‘그 사람 덕분에 나는 남들과 나를 구분시켜주는 어떤 한계 가까이에, 어쩌면 그 한계를 뛰어넘는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한 인간에게 선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아니 에르노’는 경험했던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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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니
버지니아 울프 지음, 태혜숙 옮김 / 이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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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1월 25일. 그러니까, 오늘은 버지니아 울프가 태어난 날이다. 이런 날에 그녀의 책 한 권을 돌아보는 것도 의미 있으리라. 버지니아 울프는 우리에게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종종 버지니아 울프를 소재로 만들었거나, 그녀의 작품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통해서 보이는 이미지도 ‘고뇌하는 천재 여성 작가’의 이미지였다. <3기니>는 울프에 대한 이러한 기존의 이미지에 몇 가지를 추가한다.


평화주의자, 페미니스트, 그리고 사회주의자인 버지니아 울프- 이런 그녀의 모습을 <3기니>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서간체 형식을 띄고 있다. 소설인가 싶으면서도 소설이 아니고 단순히 울프가 자신의 생각을 쭉 주장한 에세이인가 싶으면서도 그렇지 않고, 편지 형식인데 울프가 꼼꼼하게 단 주석이 달려 있는 형식부터가 독특하다. 


변호사인 ‘남성’이 ‘나’(‘나’는 꼭 버지니아 울프라고 볼 수만은 없다)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의 형식을 띄고 있다. 첫 번째 기니, 두 번째 기니, 세 번째 기니로 나뉘어져 각각 독립적인 주제를 갖고 가상의 ‘남성’에게 ‘나’는 답장을 보내고 있다. 변호사인 ‘남성’은 전쟁을 막기 위한 활동에 기부금을 내 달라고 ‘나’에게 주문을 했고, ‘나’는 답장을 통해 어떤 이유로 기부를 할 수 있는지, 혹은 없는지를 조목조목 밝히며 남성 중심 사회에 쓰디쓴 비판을 가한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각 장과 이 책의 제목을 이루는 ‘기니(guinea)’의 의미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살던 1930년대 영국에서 기니(guinea)는 의료비나 비싼 사치품을 살 때, 공수표에 쓰는 액면가로 사용되었다. 기니는 곧 사용자의 계급과 구매품의 고가를 의미한다. 울프가 3기니를 쓰고 있을 때 부자들은 자선 단체에 기니를 기부하거나 그림이나 그 밖의 사치품을 살 때 기니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영국의 약탈, 제국주의를 상징하기도 한다. 영국은 아프리카 기니만 연안의 노예무역을 통해 부를 획득했고, 아프리카 노예무역으로 얻은 수익금을 기념하려고 주조된 상징적인 동전이 바로 ‘기니’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니’는 영국의 제국주의, 침략주의, 인종차별을 의미하는 동시에, 영국에서 여성의 상태가 노예와 다를 바 없음을 폭로하는 상징적인 제목이다.


첫 번째 기니에서 울프는 전쟁에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명확히 밝히며, 전쟁을 만들어 온 역사는 바로 남성임을 조롱한다. 전쟁은 곧 남성다움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이며, 군복과 훈장 등을 명예롭게 생각하는 것 등이 모두 남자들의 문화임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 모든 선택권에서 여성은 교묘하게 배제되어 있음을 꼬집는다. 때문에 기부금을 내기보다, 국가에 충성하고 전쟁에 동참하는 인간을 양성하는 기존의 대학과는 다른 여성대학을 만드는 데 1기니를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이 새로운 대학, 가난한 대학에서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기술, 군림하고 살상하며 땅이나 자본을 획득하는 기술을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그런 기술을 가르치려면 월급, 제복, 의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비용이 너무 많이 듭니다. 가난한 대학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값싸게 배우고 실행할 수 있는 기술만 가르쳐야 합니다. 이를테면 약학, 수학, 음악, 미술, 문학이 좋겠습니다. 새로운 대학은 인간의 상호교류 방법, 즉 다른 사람의 삶과 마음을 이해하는 기술, 대화하는 기술, 이것과 관련되는 의복과 요리에 관한 기술을 가르쳐야 합니다. 새롭고 청빈한 대학의 교육 목표는 분리와 전문화가 아니라 결합이어야 합니다.” 라며….


이런 식으로 울프는 두 번째 기니에서 여성의 전문직 진입을 돕는데 1기니를 기부하겠다고 밝히고, 세 번째 장에 와서야 그 ‘남성’에게 3기니 가운데 1기니를 보내겠다고 답한다. 그러나 역시 ‘정의와 평등과 자유의 위대한 원칙을 몸으로 존중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내놓겠다는 조건을 달면서. 결국 울프는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가 사라져야 하며, 애국심을 최선의 가치로 여기는 국가 종속형 인간, 훈장, 메달, 작위 등을 따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기존의 대학 이런 것들이 사라져야만 가능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울프가 살던 시대에서 1세기가 지났다. 버지니아 울프는 폭격이 계속되는 런던에서 그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을 했다. 울프가 만약 1세기가 지난 지금 살아 있었다면 그녀는 세상이 달라졌다며 기꺼워했을까? 울프가 그렇게도 바라던 여성만을 위한 대학도 생겼건만, 그 여성 대학은 여전히 기존의 대학들과 다를 바 없이 '남성들과 똑같은 경쟁 틀'에서 싸워서 이겨 성공하는 법을 가르친다. 이런 현실을 보며 그녀는 여전히 강물에 뛰어들고 싶어하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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