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의 마지막 날인 어제 정리했어야 하는데, 어제까지 꽉꽉 채워서 읽고 정리하려다 보니 오늘 이렇게 끼적이게 되었다. 휴일에는 노트북 켜는 일이 거의 없는 나. 그래도 내일은 새해 첫 근무일인데 첫날부터 출근해서 페이퍼 먼저 쓰고 있기는 나도 양심에 걸리니까. 귀차니즘과 숙취와 게으름을 무릅쓰고 적어보는 2023년 하반기에 좋았던 책들....(되도록 2023년에 출간된 책에서 골라보려고 애썼다) 상반기 리스트를 보고 싶은 분은 클릭.
2023년 하반기는 리스트 정리하려고 쭉 돌아보니 뜻밖에도 소설을 많이 안 읽었더라. 오잉. 이런 놀라운 일이....한때 소설을 잘 못 읽던 시절이 있었으니. 올해도 좀 그랬던 듯.
소설
상반기의 원픽 소설은 <타인들의 나라>였다면 하반기는 바로 이 책 <소네치카>- 짧지만 강력했다. 어떤 부분에서는 거슬릴 수도 있는데(예술에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뮤즈로서의 여성의 대상화나 소네치카와 남편과의 관계 등등), 살아갈수록 하나의 잣대로만 무언가를 판단한다는 게 어리석은 느낌이 든다. 특히 문학작품에서는 더더욱. 이 작품은 책이 한 사람의 인생에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아는 이들이라면, 그리고 책에서 위로받아본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더더욱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 실린 작품 두 개가 모두 훌륭했다. 단편(또는 중편)을 쓴다면 ‘숄’ 정도의 작품은 써야지 ‘나도 단편은 좀 쓴다’고 명함을 내밀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이 책도 짧다. 그러나 강력하다. 홀로코스트를 겪은 여성이 경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 담긴 작품.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폭격을 퍼붓고 있는 중, 이스라엘을 향한 분노에 휩싸인 채 이 책을 읽었음에도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대인에게는 진심으로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그런 작품.
다 죽어가던 알랭 로브그리예 영감탱이를 향한 애정을 다시 살려준 책. 그런데 이 작품은 호불호가 있을 수 있어서 누구에게나 별 다섯을 장담하긴 어렵다. 그러나, 문학을 읽고 다층적이 해석의 기쁨을 누려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만큼 재미난 작품이 또 있을까(자매품-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창백한 불꽃>)- 열 번은 더 읽겠다고 허언을 하기도 했는데(허언이라고 은바오가 지적 ㅋㅋㅋㅋㅋㅋ) 일단 지금까지 두 번은 읽었다. 내가 한 해에 같은 책을 두 번 읽는 것은 굉장한 일이라는.
윌리엄 트레버와 함께 계속 챙겨 읽어야 할(그러고 싶은) 아일랜드 작가의 탄생, 발견. 클레어 키건은 짧은 작품을 단 한 권으로 계속 출간하고 있는데, 읽고 나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집으로 두껍게 만들면 개별 작품의 감동이 오히려 더 줄어들지 않을까 싶은. 상반기에 읽은 <맡겨진 소녀>도 좋았지만 나는 하반기에 읽은 이 작품이 좀 더 좋았다. 인간은 결국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본 경험이 또 다른 인간에게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원천이 되지 않은가 싶기도 하고. 실화를 이렇게 문학적으로 탁월하게 승화할 수 있구나 감탄했던 작품.
소문으로만 듣던 <빌러비드>를 드디어 읽었다. 마술적 리얼리즘을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도 토니 모리슨 작품은 읽다 보면 쭉쭉 빨려 들어간다. 소재와 주제, 소재를 표현하는 독창적인 방식, 문장, 거기에 담긴 생각 등등 문학이 독자를 향해 전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담은 작품(토니 모리슨의 작품이 대개 그렇듯이). 토니 모리슨은 책을 덮을 때는 늘 이런 생각이 든다. 존경받아 마땅한 여성.
사강의 재발견. 사강의 작품 중에서는 아마도 계속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을 것 같다. 문학의 단골 소재인 ‘사랑’ 그리고 사랑에 빠지는 연인들. 흔한 소재라 잘 다루지 않으면 진부해진다. 공감도 얻기 어렵다. 그런데 사강은 사랑에 빠지는 순간 연인들의 심리를 정말 잘 묘사하는 것 같다. 비슷한 결핍이 있거나 닮은 점을 발견하고 사랑에 빠지지만, 시간이 흐르면 바로 그런 점들 때문에 멀어지는 연인 관계의 속성을 이 작품은 탁월하게 그리고 있다. 사강을 더 인정하게 된 계기는 최근 읽은 프랑스 작품 <불Feu> 때문이다. 이 작품도 격정적으로 사랑에 빠지는 남녀를 그리고 있는데 난 이 둘의 사랑에는 도무지 감응이 일지 않더라는. 아니 대체 왜? 이런 생각만이 들면서 사강이 참 잘 쓰기는 하는구나, <불>을 읽으며 사강을 떠올렸다는.
비소설
하반기 비문학 부분 중 딱 한 권만 추천하라고 한다면 이 책을 권할 것 같다.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인간의 성폭력의 역사. 인간은 이토록 악하고 추한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덮으려만 한다면 인류에게 대체 구원이 가능한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이런 기록은 더 널리 읽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도 흥미롭게 재미있게 읽었다. 1950년대 이후 미국 여성학의 역사를 갈음하기에 좋은 책이랄까. 이 책과 더불어 2023년에 <백래시>, <성의 변증법> 읽은 나를 칭찬합니다.
LGBTQ까지는 잘(?) 안다고 생각하고 살았던 나에게 A의 존재까지 깨우쳐준 책. 이성애 중심 로맨스와 이분법적 젠더 세계에 관한 고정관념(나는 별로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조금 있었을지도 모를 그것)을 또 한 번 와장창 깨뜨려준 책.
이 책을 읽고 나서 브라이언 딜런이라는 이름을 적어두었다. 에세이에 관한 에세이인데, 에세이라는 장르를 다시 발견하게 해주고, 저자의 문장이 일단 뻐근하게 좋았던 기억.
2023년의 발견. 여러분, 이 책 좀 읽어보지 않겠습니까? 2023년에 읽은 에세이 중 넘버원입니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좋아할 것 같은 이 책. 그런데 나는 데이비드보다는 이쪽이 좀 더 좋다.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서 읽었는데 사서 다시 읽으려고 계획 중.
로베르트 발저의 진가가 서서히 국내에도 알려지는 것 같아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나만 알고 싶던 이 작고 소박한 작가가 이렇게 알려지는구나 섭섭하기도 한 마음이 든다. 물론 이 책은 난해하다. 그러나 그런 중에 드문드문 보이는 빛나는 문장들과 시들을 읽노라면 그 아름다움에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 책은 발저가 쓴 원문들(포장지에 연필로 쓴)과 함께 책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발저는 이 인간 세계에 언제나 묻는다. “발전하고 성장하면 그래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나는 이 눈 내리는 풍경이 아름답기를 소망한다. 원컨대 눈이 사라질 때도 그랬으면 좋겠다. 눈 내리는 풍경은 처음에는 신선했고, 자체의 부드러움 속에서도 여전히 만족할 만한 단단함을 지닌다. 내게 눈은 성실해 보인다. 나는 사람들에게 다정하게 대하려 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것에 있어서는 그들 모두가 없어도 무방하다는 전제에서다. 나는 다정하려 하지만 너무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이 눈 내리는 풍경이 아름답기를 소망한다’ 중, (<연필로 쓴 작은 글씨>, 220쪽)
장 아메리는 <자유죽음>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그 후 <늙어감에 대하여>, <죄와 속죄의 저편>까지 장 아메리 3종 세트를 다 읽은 지금 이렇게 외친다. “장 아메리는 진짜다.” 이 꼬장꼬장함. 이 타협을 모르는 태도. 그렇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겠지. 온몸으로 겪은 파국의 체험이 타협할 줄 모르는 문장으로 뜨겁게 전해진다.
문장만 아름다운 글들이 있다(나는 이런 글은 싫어한다), 그런데 문장도 아름답고 거기 담긴 생각까지 아름다운 글을 볼 때는 현기증이 일어날 것 같다. 내게는 보뱅이 그렇다. 국내에 소개된 그의 모든 책들이 그러했다. 그의 책을 거의 다 읽은 이제야 생각해 보니 그의 모든 글은 지슬렌이라는 절대적으로 사랑하는 이를 향한 사랑의 글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토록 지극하게 한 사람을 마음에 두고 살아간 이 사람 대체 뭘까? 다른 글들도 계속 궁금하다.
어떤 경험의 글은 한낱 일기에 그치고 어떤 경험의 글은 사회 고발서, 사회학책이 되기도 한다. 레이첼 모랜의 글은 후자이다. 읽기 전에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성매매 경험을 자극적으로 풀어낸 일기에 가까운 글이 아닐까 의심했었다. 반성합니다. 거의 매 장마다 밑줄을 그을 수밖에 없어서 결국에는 밑줄 긋기를 포기하게 되는 책. 이 책을 읽고 나서 생각했다 자신의 성욕조차 이성으로 다스릴 수 없다면 스스로 인간이라 말하지 말라. 성을 돈을 주고 사는 것은 인간이길 포기한 행위이다. 포르노도 성매매(모든 종류의)도 104% 반대하는 내 생각이 옳았음을 한 번 더 입증해준 책.
2023년 잠자냥의 원픽
2023년 상반기/하반기 중 좋았던 책 단 한 권을 고르라면 바로 이 책 <갈대 속의 영원>을 꼽겠다. 책 덕후가 쓴 책에 관한 책- 책을 사랑하는 이들, 당신이 책덕후라면 이 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문장, 이야기를 풀어가고 전달하는 방식, 소소한 소재들을 엮어나가는 방식 모든 면에서 탁월하다. 이 책을 읽은 2023년, 역대 최악의 반문화정권은 공공도서관은 물론 도서 관련 거의 모든 예산을 삭감했다. 그런 중에 종잇값은 계속 오르고(지난 한 해만 다섯 번인가 올랐고 12월에도 또 올랐다), 환율도 고공비행이라 언제나 건국 이래 최대 불황인 출판계는 거의 죽을 지경. 대다수 사람들은 유튜브에만 빠져 있는 이런 세상에서 책을 읽고 만든다는 것에 회의와 현타가 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중에 읽은 <갈대 속의 영원>은 이 세상에 태어나 이토록 많은 책을 읽었고, 읽을 것이고 책을 만드는 데 기여한 자로서 살다갈 내 인생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구나 생각하게 해준 그런 책이었다.
올해의 변태(變態)상
한때(?) 변자냥이라 불렸던 잠자냥은 올해의 변태상으로 이 세 권을 기꺼이 변태가 되고픈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변태(變態)라는 단어는 사전적 정의에서 그 첫 번째 뜻인 “본래의 형태가 변하여 달라짐. 또는 그런 상태”라는 문장에서 본다면 꽤 좋은 의미이다. 정희진 쌤도 일찍이 말씀하신 적이 있지만 사람을 탈바꿈시킨다는 뜻에서도 좋은 의미가 아닐까. 이 책들은 그런 변태를 가능하게 해준다. 완벽한 변태는 불가능하지만, 그 변태에 1%라도 영향을 주는 책. 아울러 돌아보니 <일탈>을 제외하고는 <성스러운 동물성애자>와 <에이스>는 은오의 영향으로 읽게 되었더라, 나를 변태의 길로 이끌어준 은바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앞으로도 계속 변태의 길로 이끌어주기를 당부해봅니다.
올해의 난해함
자냥 5별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잠자냥 5별을 맹신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얘들아, 잠자냥은 알다시피 호불호도 강하고 취향도 편협해서 지 맘에 들면 그냥 무조건 5별 갈겨 줄 때도 많단다.....(게다가 돌아보니 내가 좀 별점에 후한 것 같기도...?) 그래서 자냥 5별이라고 믿고 샀다가 후회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는 아니고) 간혹 들리는 것 같아 일단 귀띔해준다. 이 책들은 자냥 5별이지만 난해하단다. 자냥이는 5별 줬지만 지 취향 따라서 갈긴 거라 너희들에게도 5별일지는 장담 못해.......
올해의 고구마
이 책 생각하면 몇 달 전에 먹은 고구마가 올라올 거 같,,,,,,,, 아! 생각한 순간 바로 고구마 튀어나옴.
올해의 저리가상
여기 주인공들 말이죠. 휴.. 연민은 가는데 친구는 절대 하고 싶지 않아.... 아니 주변에 두고 싶지 않은 인물들이랄까 주디스 헌. 캐럴라인, 빅토르 바통. 인상 깊은 인물들이긴 했다.....
2023년 서재 생활이 어느덧 8년째였다. 알라딘 서재에 처음 리뷰를 남겼던 글은 아마도 수잔 손택의 희곡 <앨리스 깨어나지 않는 영혼>이었던 것 같은데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글을 남겼고, 그 이후로는 거의 안 올리다가(내 리뷰를 불특정 다수가 본다는 게 좀 쑥쓰러웠다) 아니 이런 책들도 좀 읽어 보지 하면서 내 블로그에 썼던 글들을 몇 개씩 옮기기 시작했는데 그게 이달의 당선작으로 꼽히면서 적립금을 주더라? 그때부터 적립금에 눈이 멀어 ㅋㅋㅋㅋ 글을 열심히 옮기던 나. 그러다 보니 이웃도 늘고 내 글이라면 무조건(?) 믿고 읽어주는 분들도 생겨나고 그렇게 되었다. 8년째였던 2023년은 그런 중 서재에서 가장 많이 웃고 즐겁게 보낸 한해였던 것 같다. 나에게 큰 웃음을 주고 지적 자극까지 주는 다락방&은오의 힘이 컸던 것 같다. 그대들이 있어 서재가 더 즐거웠다는 말을 한 번 더 남기면서..... 2024년도, 2025년도..... 계속 열심히 읽고 끼적이고 웃고 떠드는 날들이 되길 바라본다, 그리고 늘 조용히 묵묵히 읽어주시면서 응원해주시는 케이 님에게도 다시 한번 감사를.
2024년 올해는 일단 이런 책들을 꼭 읽을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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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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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배고프다......... 이제 2024년의 첫 끼를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