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책장에서 잠자고 있던 엔도 슈샤쿠의 <마리 앙투아네트>를 드디어 꺼내 읽게 된 것은 순전히 에리크 뷔야르의 <7월 14일>  때문이다. 두 책 모두 ‘프랑스혁명’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다루고 있지만 그 관점은 서로 다르다. <7월 14일>은 프랑스혁명을 이끈 주역들로 글을 모르는 사람, 땀과 먼지를 뒤집어쓰며 푼돈을 버는 노동자, 백수건달, 시골 사람 등 아주 평범한 민중을 내세운다. 그런데 엔도 슈사쿠는 그 혁명에서 타도의 대상이었던, 왕족 일가- 그중에서도 왕비였던 한 여성, ‘마리 앙투아네트’에 초점을 맞춰 그 시대를 돌아본다. 두 작품 모두 실재 역사를 다루고 있으나 역사서는 아니다. 문학, 즉 소설로 분류된다. 그러므로 완전한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츠바이크의 전기 <마리 앙투아네트>까지 곁들여 읽노라면 이 세상에 과연 ‘역사’일지라도 완벽한 사실, 그러니까 객관적으로 쓰인 역사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도 있듯이 결국 역사 자체도 하나의 소설, 보는 관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이야기는 아닐까.

에리크 뷔야르는 ‘7월 14일 그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른다. 우리가 아는 이야기들은 허술하거나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사태를 직면하려면 이름 없는 군중의 시각으로 봐야 한다. 글로 옮겨 지지 않은 것을 이야기해야만 한다.’(<7월 14일), 90쪽)면서 철저히 민중의 입장에서 프랑스혁명을 기술한다. ‘고관대작의 회계 장부는 항상 실제 수치보다 부풀려지고, 그들은 민중을 노예 삼아 빚을 떠넘’긴다고(36쪽), 그 무렵 프랑스는 ‘식민지와 산업과 광산 덕분에 부르주아지는 번성했으나 부자들은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나라는 파산 지경인데 지주들은 불평거리가 없었고, 푼돈 벌려고 고생하는 쪽은 봉급생활자, 장인, 소상인, 제조업자, 굶주리고 쓸모없는 국민인 실업자’였고 ‘수많은 파리 사람은 빵을 살 돈조차 궁했다’(50쪽)면서 지배층의 사치와 낭비, 정치적 파탄을 건조한 어조이지만 분명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과하지는 않으나 대부분 프랑스혁명을 말할 때 언급되는 비난-그때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를 향한 비난도 포함되어 있다. ‘그날 악마를 잡자고 모인 사람이 20만 명이라는 말이 있는데, 아기와 노인과 환자를 뺀다면 파리 시민의 절반인 셈’(78쪽)이라는 문장을 보면 지배층, 즉 프랑스 왕실을 ‘악마’라고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에리크 뷔야르의 관점도 프랑스혁명을 바라보는 기존의 평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민중의 고통과 분노를 표현하고, 그들의 처지에서 혁명을 기술하는 것은 역사에 이름이 남은 중요한 인물들 위주로 서술한 역사와는 다르다고 자부할 수는 있으나, 그조차도 어떤 면에서는 새롭지 않다는 것이다. ‘프랑스혁명=시민 혁명’이라는 평가가 이제는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슈테판 츠바이크와 엔도 슈사쿠의 <마리 앙투아네트>는 저마다 프랑스혁명을 이제까지 알려졌던 역사적인 평가와는 다른 눈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색다른 책이 아닐까 싶다. 엔도 슈사쿠의 <마리 앙투아네트>는 츠바이크의 앙투아네트 전기를 읽은 후 사두었다. 츠바이크의 전기를 읽고 나서야 나는 앙투아네트를 다시 보게 되었고, 여러 면에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으며, 역사라는 이름으로 한 인간을 왜곡하여 기록하는 일이 얼마나 쉬운지 진저리를 치기도 했다(역사를 기록하는 이들은 대부분 남성이--다). 그렇다면 엔도 슈사쿠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츠바이크는 자신의 전기에서 ‘마리 앙투아네트 이야기를 쓰는 것은 마치 원고와 피고가 서로 어긋나는 논쟁을 벌이며 100년이나 끌어온 재판을 다시 진행하는 일과 같다’고 운을 뗀다. 이윽고 이어지는 문장, ‘왕권을 무너뜨리려는 혁명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오로지 그녀의 여성성성을 격렬하게 공격해야만했다’는 츠바이크의 관점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그는 또 이어서 ‘선동을 목적으로 어떤 인물이 그려질 때, 여론의 친절한 앞잡이로부터 정의는 기대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마리 앙투아네트를 기요틴으로 보내려는 자들은 여러 신문, 팸플릿, 서적을 통해 모든 악덕, 온갖 도덕적 타락, 저열한 풍자를 이 ‘오스트리아 암컷’에게 덮어 씌워 밑바닥까지 끌어내렸다.”(슈테판 츠바이크, <마리 앙투아네트>, 23쪽)고 지적한다. 츠바이크는 마리 앙투아네트는 ‘왕권주의 성녀도 아니었고 혁명의 매춘부’도 아니었다고, 그저 ‘매우 평범한 성격에 뛰어나게 영리하지도 어리석지도 않으며, 불도 얼음도 아니고, 특별히 선을 베풀 힘도 없을뿐더러 악을 행할 작은 의지 또한 없는 어느 시대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여성’이었다고 말한다.

비극의 대상이 되기에는 적당치 않은 인물- 츠바이크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평범함을 거듭 이야기하면서 평범하고 나약한 인물이 엄청난 운명의 수렁에 빠져들었을 때, 비극이 발생할 수 있음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런 형태의 비극을 더 인간적이고 통절한 비극으로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영웅이 아닌, 보통 사람이 겪는 이런 수난이 영웅의 비장한 고뇌보다 하찮다고 여기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더 감동적일 수도 있다고도 말하는데 그에 따르면 “왜냐하면 평범한 사람은 그런 수난을 혼자 참고 버티어 이겨내야만 하며, 예술가들처럼 고통을 작품이나 다른 지속적인 어떤 형태로 바꿀 수 있는 축복받은 구원을 얻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혁명이 밀어닥치지만 않았더라면, 모든 시대 수많은 여인들처럼 그저 그렇게 무심히 살아갔을 마리 앙투아네트- “불행 속에서 비로소 사람은 자기가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라는 말을 남긴 마리 앙투아네트. 츠바이크는 프랑스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극히 평범했던 한 여인이 ‘성장’하고 비극 속에서 의연히 죽어가는 과정을 명징하게 그려나간다.

엔도 슈사쿠의 <마리 앙투아네트>도 츠바이크의 이런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또한 왕녀로서 자유가 없었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을 주목한다. ‘만약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집 마르그리트와 같은 서민이었다면, 마음에 들지 않는 청년의 손아귀에서 도망칠 수도 있었을’ 것이라면서 그녀의 삶이 결코 그녀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오스트리아 왕녀와 프랑스 왕세자의 결혼은 그냥 평범한 처녀 총각의 결혼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것은 국가와 국가 간의 약속이며, 정치가 결정하는 것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힘과 운명으로부터 왕녀는 도망칠 수 없다.”(엔도 슈사쿠, <마리 앙투아네트> 1권 30쪽)는 문장은 엔도가 마리 앙투아네트의 비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보여준다. “정치와 외교상의 실패, 재정 파탄은 그녀의 책임이 아니었다. 프랑스 국가재정이 적자에 허덕인 것도 왕비의 과실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삶의 고통이 전혀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증오의 대상을 색출해야만 했다. 그 대상이 마리 앙투아네트였던 것” (2권 24쪽)이라는 문장에서는 더더욱 또렷하게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엔도 슈사쿠의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츠바이크의 전기와 달리 작가가 창조해낸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시기하는 평범한 여인 ‘마르그리트’와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죽어가는 ‘아녜스 수녀’라는 인물이 그들이다. 특히 이 아녜스 수녀는 작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 그녀는 혁명을 지지하지만 그 방식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흥분한 채 살기를 띤 군중들을 보며 “하느님, 이게..... 이게 제가 바라던 그 혁명입니까.”(2권 64쪽) 절규하기도 하고, 국왕과 왕비에게 죄가 있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두 분 다 너무나 순진”했다는 평가와 함께 “태생, 자라난 과정, 그리고 환경 탓에” “백성들이 빈곤과 기아에 허덕이고 굶주림으로 인해 기쁨도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그런 프랑스의 실상을 알지” 못했다고, 그러나 그럼에도 “순진하다는 게 곧 무죄임을 뜻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국왕이고 왕비이므로 하나의 상징이며, 혁명이 타도해야 할 상징, 그런 상징인 이상 역시 죄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 죄를 죽음으로 보상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두 사람이 “자진해서 왕위를 버려야 한다”고 그러고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한 개인으로서” 살아가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 사람들을 죽이는 게 과연 이 혁명에 꼭 필요할까요? 상징은 근본적으로 제거해야 한다고 일부 과격파들은 말합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인간을 정치적인 면에서만 바라보고 하나의 인간으로서는 바라보지 않는 태도입니다. 인간을 단순히 정치의 도구로만 여기고 인격으로 간주하지 않는 혁명이란, 그리스도교 신자인 제겐 정말 끔찍한 것으로 여겨져요.” (엔도 슈사쿠, <마리 앙투아네트>, 2권 200~201쪽)


수녀 또한 혁명에는 무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혁명에는 윤리적인 이상과 더불어 위엄과 품위도 동반”되어야 하며 혁명이 “인간의 천박한 본능- 폭력과 복수심을 채우기 위한 혁명”이라면 그것은 이미 혁명의 정신에 어긋난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이 귀족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아이건 여자건 구분 없이 인간적인 모욕을 주는 것은 비록 혁명이라 하더라도 용서받을 수 없다”(2권 273쪽)는 것이 아녜스 수녀의 생각으로 그녀의 “혁명은 옳아. 하지만 그건 인간을 존중하기 위해서지 인간을 모욕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야.”(2권 292쪽)라는 말은 엔도 슈사쿠의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한 문장이 아닐까.


이런 문장에서는 프랑스혁명을 비판했던 에드먼드 버크의 몇몇 구절이 떠오르기도 한다. 버크는 <프랑스혁명 성찰>에서 “만약 프랑스의 왕과 왕비가 냉혹하고 잔인한 폭군이었고, 그들이 국민의회를 학살하기 위한 면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는 것이(몇몇 출판물에서 비슷하게 암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게 명확하게 제시될 수 있다면, 나는 그들을 감금한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보다 더한 일이 행해졌어야 했는데, 내 생각에는 다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진짜 폭군들의 처벌은 고상하고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인간 정신에 위안이 된다고도 정당하게 말해져 왔습니다. 그러나 만일 내가 사악한 왕을 처벌해야 한다면, 나는 죄에 대해 복수하면서 존엄이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에드먼드 버크, <프랑스혁명 성찰>, 125쪽)라고 말한 바 있다. 버크 또한 아녜스 수녀처럼 확신에 젖어 모든 것을 적폐로 몰고 청산하려는 태도를 비판하면서 “인간이 신을 가장한다면, 머지않아 악마처럼 행동한다.”고 우려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배신과 살인을 정당화한다면, 공공의 이익은 곧 핑계가 되고 배신과 살인이 목적이 될 것입니다. 약탈, 적의, 복수 그리고 복수보다 더 무서운 공포가 만족할 줄 모르는 그들의 욕망을 만족시킬 때까지 계속됩니다. 이러한 인권 개선 행진의 화려함 속에서 선과 악에 대한 모든 자연스런 감각을 잃어버린 결과는 분명 그와 같기 마련”이라면서 프랑스혁명의 이후 폭력과 파괴, 살육과 전쟁, 독재자의 출현이 이어질 것을 예측하기도 했다.

엔도 슈사쿠의 <마리 앙투아네트>에서도 제3신분 대표로 혁명을 옹호했던 미라보조차 어느 순간 ‘더 이상 민중들을 마음대로 봉기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미라보는 ‘더 이상 민중들에게 피 냄새를 맡게 하고 피에 굶주리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하나의 희생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희생자를 끊임없이 만들어갈 것이다. 국왕 가족들도 분명 그 피의 축제에 끌려 나가게 될 것이다.’ 생각하면서 그 자신이 격렬한 혁명 사상을 설파했으면서도 혁명이 자신들의 예상을 뛰어넘어 독주하는 데 혐오감을 느낀다.(2권 85쪽) 그 혁명에서 가장 큰 희생양은 결국 오스트리아 출신의 여성 마리 앙투아네트가 아니었을까. 루이 16세보다 철저하게 기만당하고 조롱당했으며 더 처참하게 살해당한 여자, 온갖 음란한 유언비어로도 부족해 끝끝내 근친상간의 죄까지 뒤집어썼던 여자 마리 앙투아네트. “그들에게 그 여자는 모든 악의 상징이다. 그들을 지금까지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여자, 그들의 고통에 냉담하기 짝이 없었던 여자, 불평등, 불합리, 그런 모든 것들의 원흉이었던 여자.”(2권 328쪽) 츠바이크와 엔도 슈사쿠의 <마리 앙투아네트>를 읽노라면 ‘여자’라는 이 단어에 유독 눈길이 간다. 아니, 갈 수밖에 없어진다.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괭 2022-12-02 14: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7월14일 책때문에 마리앙투아네트를 다시 읽으신 거였군요. 저는 학교에서 ˝사치스럽고 허영에 찬 대표적인 여성˝으로 마리 앙투아네트를 배운 후 그냥 그런 이미지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너무 흥미로워요. 츠바이크도 엔도 슈샤쿠도 읽고 싶네요 ㅠㅠ

잠자냥 2022-12-02 14:20   좋아요 2 | URL
네, 책 읽은 순서대로 하자면 ㅎㅎ 츠바이크 <마리 앙투아네트> -<7월 14일>-엔도 슈사쿠 <마리 앙투아네트> 순이 되겠습니다요. 저도 츠바이크 전기 읽기 전에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그런 여자인줄로만 알고 있었어요. 사치스럽기는 합니다. 다만 그것이 프랑스 재정을 휘청거리게 만든 주요인이었다고는 보기 좀 무리가 있는 것 같고요. 몇몇 유명한 사건은 날조된 것이더군요. 특히 그 유명한 목걸이 사건..... ㅠㅠ 전기적인 면에서는 엔도 슈사쿠보다는 츠바이크의 전기를 좀 더 추천합니다.

다락방 2022-12-02 14: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저 <7월 14일>표지도 정말 읽기 싫게 생겼네요.
이 페이퍼 읽고 나니 잠자냥 님의 지성미가 철철 화면을 뚫고 나올 것 같습니다.

우 윳 빛 깔 잠 자 냥 !!

예나 지금이나 여자 욕하고 처형하기 너무 쉽네요. 미워할 이유도 금세 만들어지고요. 동조하기는 또 얼마나 쉬운지.

아이참 그런데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얼른 읽고 싶은데 마틴 에덴 2권과 빌레뜨와 실낙원과 기타 등등이 줄 서고 있어서 그것참..

잠자냥 2022-12-02 15:26   좋아요 0 | URL
<7월 14일> 표지는 참 그렇죠.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님에게는 <7월 14일>보다는 사두신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를 권합니다. 이 책 정말 재미있어요!
일단 마틴 에덴 2권 읽고..... 생각해봅시다. <7월 14일>은 패스하셔도 될 거 같............ㅋ

- 2022-12-02 15: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사랑해요! 역시 잠자냥이 아는 최고의 페미니스트가 잠자냥인 거 같아요!!!

저는 정말로 요즘의 정치 비판을 보면서 (굥보다 굥 부인을 더 혐오하고 조국도 조국의 부인이 문제가 되는… 사실 박근혜도 그렇고요) 내가 아는 어쩌면 근대 가 추앙하는 프랑스 시민혁명도 여성혐오가 동력 아니었나, 그게 근대의 한계인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하던 차였어요! 이 리뷰를 읽으니 확실히 의심이 ㅋㅋㅋ 굳어지고!! 그리고, 이런 시선들이 더 풍부해져야 하겠다… 라는 생각이 많이 아주 많이 들어요.

매즈 미켈슨이 주연한 <로얄 어페어>라는 영화가 있어요. 덴마크의 개혁적인 정치가가 왕비와 손잡고 정치하려다 스캔들에 휩싸이는 내용인데 당시의 여성혐오적인 상황이 (전 그 스캔들이 실화가 아닐거라고 생각함) 좀 마음 아팠거든요? 페이퍼랑 연관해서 영화를 보는 것도 좋을 것 같고요!! 아무튼 천재 잠자냥! 지성미 뿜뿜💕

잠자냥 2022-12-02 16:21   좋아요 1 | URL
프랑스혁명은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여성을 향한 혐오가 아주 큰 역할을 한 것 같기는 해요.
날조된 사건마저 마리 앙투아네트를 향한 국민의 증오를 가라앉히지는 못했고 오히려 그 사건 때문에 왕비는 더 나락으로...
엄밀히 말한다면 그 죄는 루이16세와 그 전의 루이15세, 루이14세...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역사도 국민도 루이 16세에게는 참 온정적입니다. 그저 검소하고 소박하고 왕에 어울리지 않았던 사람 운운............. -_-

루이16세가 성적불능이라는 소문조차도 마리 앙투아네트의 음란함을 부각하는 요소로 작동.........
아니 루이15세는 문란 그 자체였는데!

- 2022-12-02 16:05   좋아요 1 | URL
제가 언급한 영화에서도 왕비를 완존 ㅠㅠㅠㅠㅠ 진짜 왜 그렇게 해야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혁명의 유리바닥… 너무 싫어요. 사실 지금도 너무 그런 식으로 작동하고 ㅠㅠ 가야할 길이 멉니다… 인류의 역사여 ㅠㅠㅠㅠㅠㅠ

바람돌이 2022-12-02 16: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개인으로서의 마리 앙트와네뜨와 오스트리아의 공주이자 왕비로서의 마리 앙트와네뜨는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요. 혁명기 마리 앙뜨와네뜨에게 가해진 공격들은 정말 말도 안되는 치졸하고 어이없는 것들이죠. 하지만 그렇게 됐던데는 그녀가 여성이라는 것도 있지만 가장 중요하게는 프랑스 혁명을 분쇄하기 위해 결성되고 있던 유럽왕실들의 대프랑스 연합군의 상징적 빌미가 되었다는것도 크다고 생각해요.(그 연합군의 가장 중심국가가 오스트리아거든요.) 프랑스 민중들을 하나로 모이게 해서 프랑스혁명을 지키기 위한 전쟁터로 끌고 가야하는데 그에 대한 동력 이런걸 추동하기 위해서 마리 앙트와네트라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왕비가 철저하게 짓밟히고 이용당했던......
어쨌든 이런 혁명기를 보면 개인의 운명이 자신의 생각이나 뜻한바와는 전혀 다르게 휩쓸려 가는 것들이 항상 슬프더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도 읽고, 집에 사놓고 읽지 않은 츠바이크의 책도 읽고..... 어찌나 읽을 책이 많은지 행복합니다. ㅎㅎ

잠자냥 2022-12-02 20:32   좋아요 1 | URL
네 하필이면 또 그녀는 오스트리아 태생이라서 혐오가 더 깊어진 거 같습니다. 츠바이크는 진짜 전기 잘 쓰는 작가 같아요. 발자크 전기도 읽어보고 싶더라고요. 바람돌이 님 말씀처럼 읽을 책이 많아서 행복합니다. ㅎㅎ

단발머리 2022-12-02 17: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금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를 읽고 있는 저로서는, 잠자냥님의 이 페이퍼는 저를 위한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너무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은 제게 감사하세요. 저를 위한 페이퍼였습니다. 헤헤헤.

잠자냥 2022-12-02 20:34   좋아요 1 | URL
옴머나! 벌써 읽으세요! 짝짝짝 단발머리 님의 리뷰도 기대하겠습니다. 네 단발머리 님을 위한 페이퍼였습니다! 헤헤헤.

책읽는나무 2022-12-02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역사서로만 접했었던 마리 앙투아네트 였었는데 뮤지컬로 접하고 정말 충격이었어요. 정치적으로, 국가적으로 이용당한 한 여성으로 비춰져 너무 마음이 아팠었던...ㅜㅜ
친구들이랑 나오면서 역사는 어쩌면 저랬을 수도 있었겠다고 곁에 친구랑 둘이서 침울하게 극장을 나왔었네요. 저는 좀 울기도ㅋㅋㅋ
책 읽으면 또 흥분될 것 같아 안 읽으려고 했었는데 아....잠자냥님은 못 말려!!!!
읽어야겠군요!!!
츠바이크 편의 마리 앙투아네트가 재밌다구요?? 다미여 끝나면 읽어보려구요^^

잠자냥 2022-12-03 10:12   좋아요 1 | URL
네 역사책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도 참 회의가 들더라고요. 나무님 츠바이크 마리 앙트와네트는 진짜 재미 있습니다. 강추! ㅎ
 
[100자평] [VCD] 몽상가들

다락방님이 최근 영화 <몽상가들>을 보신 후 별점 한 개를 주며, 어쩐지 이 영화는 잠자냥과 Vita님이 좋아할 거 같은데 진짜 그런지 궁금하다고 댓글을 남겼더라. 그런데 요즘 바빠서 글을 촘촘히 읽지 못했던 나는 그 글과 댓글을 놓쳤다. 그랬더니 리틀 다부장 리틀 다락방 공쟝쟝이 ‘잠자냥야, 잠자냥아 어디 갔느냐 어서 너의 의견을 밝혀라! 궁금하다, 궁금하다’ 다들 외치고 있다면서 애타는 현장을 알려주었다. 거기 남겨진 댓글들을 읽다 보니 아니 내가 이런 이미지였나? 책에서만큼은 서구문학 사대주의자임을 인정하는 잠자냥은 영화에서조차 유럽과 프랑스 영화를 좋아할 것 같은 그런 이미지였던 것이다. ‘cj감송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에서 쉬리’를 외치는 공쟝쟝은 프랑스 영화를 줄줄이 꿰고 있는 잠자냥에게 다시 한번 반하면서 미래의 다부장이 될 것이냐, 잠자냥이 될 것이냐 갈팡질팡....... 잠자냥은 단호히 이렇게 말합니다. 쟝쟝아, 다부장이 되거라. 잠자냥처럼 영화관에 돈 쏟아부어봤자...... 다부장님처럼 중년에 1식 2메뉴를 실천할 경제력이 되지 못해!  

<몽상가들>은 예전에 개봉했을 때 극장에 가서 봤다. 그런데 딱히 크게 감명을 받거나 인상 깊지는 못했다. 왓챠에 뭐라고 기록을 남긴 게 있나 싶어서 찾아봤지만 별점만 매겨놓고 한줄 평 같은 건 남기지 않았더라. 그러다 보니 왓챠에서 내 영화 감상 시간을 보게 되었고, 그중 프랑스 영화가 차지하는 비중도 보게 되었고...... 영화만 3천 시간 이상을 본 상위 0.03%매니아라고..... 쿨럭쿨럭. 드라마나 시리즈물은 체크하지 않은 것이라서 순수하게 영화만 3천 시간 이상 보았다는.... 책도 보고 영화도 보고 잠자냥, 너는 일생을 보다 죽는 인간인 것인가. 아무튼 나는 프랑스를 영화 매우 좋아한다. 대개의 사람들은 프랑스 영화를 말만 많고 지루하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 말 많음과 지루함(?)이 오히려 좋다. 마블시리즈처럼 허황된 영화에 더 몰입하지 못하는 편이다(책에서도 SF 장르를 잘 못 읽는 것과 비슷한 심리). 왓챠의 기록을 봐도 미국, 한국 영화 다음으로 프랑스 영화를 많이 보았다. 고전주의자이자 문화 사대주의자인 나의 성향을 영화에서도 여실히 볼 수 있다고나 할까. 소싯적엔 이제는 사라진 극장인 동숭시네마, 하이퍼텍나다에서 ‘시네프랑스’ 같은 영화제를 하면 꼬박꼬박 챙겨서 보고는 했다.





잠자냥의 왓챠에서 이렇다고 합니다........



‘동숭시네마와 프랑스 영화’하면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하나 있는데, 대학 3학년 때였나, 무슨 바람인지 학교 엠티를 가서 술이 떡이 되도록 먹은 그다음 날 아침, 나는 꾀죄죄한 몰골로 대학로를 가게 되었다. 그때 엠티를 같이 갔던 이들 중 한 사람이 집이 그 방향이 아닌데 왜 대학로를 가느냐고 물어왔다. 영화 보러 간다고 했더니 그런 상태로 영화를 보러 가느냐며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아, 제가 무척 보고 싶던 영화인데 오늘만 특별 상영하는 영화라...... 속으로는 니깟 게 알게 뭐냐 싶어 말끝을 흐렸더니 그 사람은 관심도 많지. 무슨 영화냐고 물어온다. 어차피 말해줘도 모를 거 같은데 생각하면서 무슨 무슨 영화라고 대답했더니 아니 이 사람이, 멈칫멈칫 조심스레 묻는다. 자기도 보러 가면 안 되겠느냐고. 그 사람도 밤새 술을 잔뜩 마셨기는 마찬가지라, 어차피 따라와봤자 잠만 잘 거 같은데... 하면서도 그러시라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본 영화는 바로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쥴 앤 짐>- 옆에 앉았던 그 사람이 졸았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영화에 빠져들었기에. 영화가 끝난 후 우리는 대학로 어느 밥집에서 해장을 했고, <쥴 앤 짐>에 빗대어 각자의 사랑에 관한 생각을 이야기했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귀게 되었다는 뭐 그렇고 그런 이야기. 나중에 그 사람이 말하기로, 그렇게 밤새 술을 마시고 그런 컨디션으로 혼자 극장을 가서 흑백의 프랑스 영화에 몰입한 모습이 멋있었다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미쳐. 쟝쟝아, CJ감송 영화로선 이런 분위기를 얻을 수 없는 거야! 아무튼 <쥴 얜 짐>하면 여전히 그날이 떠오른다. 그런데 그 사람과 한 3년인가 연애하고 마침내 완전히 헤어지기로 마음먹었던 그날도, 나는 동숭시네마에서 혼자 영화를 보고 나왔는데, 그 사람이 준 반지를 손가락에서 빼내어, 영화관 화장실 변기에 버리고 물을 쏴아 내렸다는 것을 그 사람은 영원히 모를 것이다......

아, <쥴 앤 짐>이여, 트뤼포여.... 정신 차리자. 흠흠. 내가 최근 본 프랑스 영화 중 가장 좋았던 것은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이다. 셀린 시아마 감독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과 <톰보이>도 정말 좋았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내가 프랑스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장점이 다 들어있다(야한 거 말고....!!)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는(야한 거 아님!) 글쓰기와 책읽기를 좋아하는 아델이 학교에서 문학 수업을 받고 학교 친구들과 그 작품에 대해서 이런저런 토론을 하는 장면이다. 그때 언급되는 작품이 <클레브 공작 부인>인데, 그 장면들을 보면서 프랑스에서는 역시 저 나이 아이들이 문학 작품 하나로도 저렇게 심도 깊게 토론하는구나, 부럽다! <클레브 공작 부인>이 프랑스에서는 저런 위치구나?! 한번 읽어봐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아델은 친구들이나 새로 사귄 남자친구와 아무리 이런 이야기를 해도 무언가 부족한 느낌, 허전한 느낌을 떨치지 못한다. 그러던 중 파란 머리의 엠마를 만나 예술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찌릿찌릿 전기가 통하고.... 그것은 당연하게도 사랑으로 발전한다. 나는 아델과 엠마가 이야기하는 장면들도 말할 수 없이 좋았다. 거기에 비해 이 영화의 섹스신은 진짜 너무 지나치게 과한데, 감독을 비롯한 전 세계 이성애 남자들의 (레즈비언) 더블섹시 판타지를 채우려는 욕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옥의 티........ 썩을.... 그에 비하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얼마나 그런 관음증적 카메라 없이 두 여성의 사랑을 절절하게 표현했던가. 셀린 시아마 감독의 <톰보이> 또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한 소녀의 성장통을 아주 섬세하게 잘 그려냈다. 암튼 요즘엔 프랑스 영화 중 셀린 시아마 감독 영화가 짱이다. 다르덴 형제 영화는 완벽하게 프랑스 영화라고 하기엔 두 감독 국적이 벨기에라 좀 뭐하지만 그들의 영화들 <로제타>, <아들>, <로나의 침묵>, <자전거 탄 소년>, <내일을 위한 시간>, <언노운 걸> 등등도 다 추천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프랑스의 옛 영화들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흑백 영화의 투박하면서도 낭만적인 분위기는 아아..... 이런 영화들은 몇 번이고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다. 마르셀 카르네  <천국의 아이들>, <북호텔>, 장비고 <라탈랑트>, 고다르 <비브르 사비>, <미치광이 피에로>, 트뤼포 <400번의 구타>, <미시시피의 인어>, 루이 말 <굿바이 칠드런>,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도깨비불>, 루이스 부뉴엘 <어느 하녀의 일기>, <세브린느>,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 <욕망의 모호한 대상, 로베르 브레송 <무쉐뜨>, 끌로드 샤브롤 <여자 이야기>, <사촌들>, 아녜스 바르다 <방랑자>, 장 피에르 멜빌, <한밤의 암살자>, 줄리엥 뒤비뷔에르 <망향>, 르네 클레망 <태양은 가득히>…. 오늘은 영화 한 편 꼭 봐야겠다....




루이 말, <도깨비불>의 한 장면.....



이것은 장 피에르 멜빌, <한밤의 암살자> 중의 한 장면... 캬 잘생겼어...ㅠㅠ



트뤼포 <미시시피의 인어>, 그런데 나는 알랭 들롱보다는 장 폴 벨몽도 팬.























댓글(59) 먼댓글(0) 좋아요(4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잠자냥 2022-11-30 21:40   좋아요 1 | URL
다부장 님 뭘 당황해요. 잘만 킹 좋아하는 사람이 ㅋㅋㅋㅋㅋㅋㅋ

- 2022-12-01 00: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좋아해요. 정말로 같은 포인트에서 저는 감동적였어요. 그리고 같은 이유로 싫어하고요.<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정말 좋아요. 셀린 시아마 감독 계속 눈에 킵해두고 있는 감독 맞고 (와~) 저는 cj 감송이지만 ㅋㅋㅋㅋ 몇편 안봤지만 프랑스 영화 좀 좋아하는 편인 것 같습니다. ㅋㅋㅋ 담백해서 좋아요. 미국 영화 중에서도 담백한 영화는 좋죠. 지금은 걸출한 감독이 되어버린 그레타 거윅 이지만 프란시스 하 정말 좋아했고 ㅋㅋㅋ 레이디 버드나 메기스 플랜 정말 재밌게 봤어요. 그러다가 에단호크 - 링클레이터 타고 시모어 까지 넘어감 ㅋㅋㅋ 우리가 여기서 만났어요, 세대는 다르지만 나랑 좋아하는 거 비슷한 잠자냥님!! ㅋㅋㅋ

잠자냥 2022-12-01 09:22   좋아요 2 | URL
쟝 언니~ 푸꼬도 좋아하는데 프랑스 영화 더 즐겨봐요~ ㅋㅋ

책읽는나무 2022-12-01 06: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요 페이퍼도 좋아요 백 번 누르려니 암만 찾아봐도 없어!!!^^
제가 찾던 0.3% 매니아 분도 아닌 0.03% 매니아!!!! 그저 놀라움이네요. 전 왓챠 영화 보기 전이나 보고 난 후, 꼭 평을 보거든요. 한 번씩 0.5% 또는 0.3% 매니아들이 봤다 그럴 때 이 사람들은 과연 누굴까? 특히 0.03% 이동진보다 더 영화를 많이 본 자 같다?? 생각했었고, 그리고 이동진 평만 보다가 일반인들 평을 읽을 때, 뭔가 알라디너 냄새가 난다? 익숙한 이 느낌은 뭘까? 했더니...와!!! 잠자냥!!! 0.03%가 나의 북플 친구였어!!
와. 영광이에요. 다시 봤어요. 잠냥님! 꾸벅!!🙇‍♀️🙇‍♀️
cc가 이루어진 장면도 영화같지만, 헤어진 장면도 영화네요. 반지를 변기에 버렸!!! 와~ 멋있어!! 그러면서 반지가 잘 내려가나? 의문도 들었구요ㅋㅋ 전 그런 걸크러시 면이 없어서 cc 남친이 남편이 되어버렸어!!!ㅜㅜ 슬프네요ㅜㅜ 전 헤어진 장면 그게 좀 부럽네요^^;;;
따뜻한 색 블루에서 잠냥님이 찾아내시는 예술적인 부분이 다락방님이 말한 그런 거였구나! 뒤늦게 깨달았어요. 전 오로지 섹스씬에 꽂혀서 다른 내용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는...ㅋㅋㅋ
아마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본 직후 봐서 그랬던 건가? 싶기도 하구요.
다시 영화를 꼼꼼하게? 봐야겠어요.ㅋㅋ
언급하신 영화들도 다 찾아보고 잠자냥님의 영화 감성을 따라가고 싶네요. 그러려면 잠자냥 님처럼 책도 많이 읽어야겠죠?^^
만수무강하옵소서!!!!ㅋㅋㅋ

잠자냥 2022-12-01 09:25   좋아요 3 | URL
푸하하 만수무강에서 빵터졌어요. ㅋㅋㅋ
반지는 잘 내려가더라고요? 14K였고 순금이 아니어서 그랬나? ㅋㅋㅋㅋㅋㅋㅋ
블루는 그 섹스신만 아니었으면 정말 완벽한 영화인데, 왜 그랬나 몰라요. 어휴.. 그래서 저는 그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는데도 별 다섯은 못 주겠더라고요... 왓챠에 별 네개 반 줌 ㅋㅋㅋ 그래도 오랜만에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
네, 만수무강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케이 2022-12-03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문제의 섹스신보며 머릿속에 물음표 백만개 되었던 기억이 나요. 왜? 저렇게까지? 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후일 레아 세이두가 인터뷰에서 그 영화에서 섹스신을 너무 오랜시간 격렬하게 찍어서 성기에서 피까지 났다고 울더라고요. 그 정도면 성학대 아닌지...
전 그 영화에서 엠마가 다른 여자랑 에곤 쉴레 얘기하는 걸 쳐다보던 아델의 표정이 잊혀지질 않아요. 내가 같이 하지 못했던 대화를 다른 사람과 하는 걸 보며 느끼는 질투와 열등감이 뭔지 알 것 같았거든요.
근데 전 프랑스는 소설 영화 다 나와는 맞지 않는단 생각을 자주 합니다. 대체 왜 저러지? 란 생각에 공감하기 어려울 때가 많더라고요. 그냥 저와는 정서가 안맞나봐요.
베르나르도 베르툴루치 감독은 마지막 황제 때문에 저에겐 영원히 아웃이예요.ㅋㅋ 중국 황제가 왜 영어를 해요.너무 괴상했어요. (하지만 ost는 사랑함)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언제나 건강하세요!
P.S. 전 자타공인 CC 한번 해봤는데 헤어진 후 너무나 별로였던. 이후 CC 사내연애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지요. 아니 못한건가?ㅋ

잠자냥 2022-12-03 08:39   좋아요 1 | URL
네 말씀하신 그 섹스신은 나중에 성학대라고 거의 기정사실화 되었던 거 같아요. 레아 세이두의 인터뷰 등으로 감독하고 아주 등돌린 것으로 알고 있고요. 암튼 그 신은 진짜 별로였습니다. 베르톨루치 감독은 사실 전 왜 거장으로 추앙받는지 의아한 사람 ㅋㅋㅋㅋㅋ 보는 영화마다 족족 너무 과대평가된 거 같더라고요. 씨씨나 사내연애나 헤어지고 나면 문제가 참 많죠…. 저도 비추합니다. ㅋㅋㅋㅋ

오늘 서울엔 눈 왔어요. 썽둥이들은 첫눈 구경일까요?

은오 2023-07-05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새벽에 잠자냥님 옛날글을 뒤적여서........
아 근데 그런 컨디션으로 혼자 극장가서 흑백의 프랑스영화에 몰입한 모습 반할 만하닼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7-05 09:03   좋아요 1 | URL
새벽에 나 보구싶었구나?! ㅋㅋㅋㅋㅋ
근데 하필 이 글을 ㅋㅋㅋㅋㅋ 이 글은 다부장님하고 댓글이 더 재미남. 다부장님 노인대학 CC 되는 그날까지!

은오 2023-07-05 10:00   좋아요 1 | URL
노인 남자는 싫기 때문입니다 (단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cc도 하고 사내연애도 하고 사무실에서 뽀뽀도 하셨다고요? 잠자냥님의 과거...... 이제 더이상 알고싶지않아................................... 다 하셨는데 나랑 결혼만 안해주네...........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대면 비대면 외면 - 뉴노멀 시대, 우리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김찬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키워드는 이게 아닐까. ‘제대로 알기 위해서 제대로 보기’, 경청, 거리를 둘 줄 아는 공감 능력…. 팬데믹 시대를 건너가는 사회적 면역력은 바로 여기에서. 김찬호식 마음 사회학은 이 암담한 시기에도 여전히 이렇게 조금은 희망을 제안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뉴잉글랜드 수녀 미네르바 1
메리 E. 윌킨스 프리먼 지음, 최순영 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윌킨스 프리먼의 단편집 《뉴잉글랜드 수녀》에서는 표제작인 ‘뉴잉글랜드 수녀’ 못지않게 좋은 작품을 여럿 읽을 수 있었다. ‘뉴잉글랜드 수녀’는 다시 읽어도 그 혼자만의 고즈넉한 삶, 정갈한 삶을 선택한 루이자의 선택에 흐뭇해진다. 루이자처럼 혼자 있기를 선택하거나 또는 연인이 있든, 결혼을 했든 나이가 많든 어리든 중년이든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이 단편집에서 이번에 읽으면서 완전히 반한 작품은 ‘노파 마군(Old Woman Magoun)’이다. 이 작품은 처음 읽었을 때는 그 끝을 알지 못해서 아, 성질 괴팍한 할머니랑 착한 손녀가 외진 산골에서 서로 의지해 살아가는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책장을 넘길수록 뭔가 서늘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아아아........ 나는 이 작품 마지막에 약간 눈물을 찔끔 흘렸다. 지금도 마음이 너무 서늘하다....... 그러고 나서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은 더 읽었다. 읽을수록 마음이 너무 아프다.

앞서 이야기했듯, 늙은 마군은 손녀딸 릴리와 함께 아주 작은 마을인 배리스 포드에서 살고 있다. 배리스 포드는 산 사이의 깊은 골짜기에 위치하는데, 이 마을 초입에는 물살이 거칠어도 건널 수 있는 얕은 강이 흐르고 있다. 그런데 볼품없기는 하지만 이 강을 건널 다리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이가 바로 이 늙은 여인 마군이다. 노파는 위스키나 담배 등을 파는 작은 식료품 잡화점에 자주 드나들었는데, 거기서 그녀는 게으르기 짝이 없는 사내들 사이에 비집고 들어앉아 잔소리를 늘어놓곤 한다. “저 다리는 올여름에는 꼭 놓아야 해.”

그러면서 그녀는 “내가 남자였다면 말이야. 지금 바로 나가서 가장 먼저 통나무를 놓겠어. 내가 아무리 빈둥빈둥 게으름 피는 남자들 무리에 있더라도 난 평생 한번은 뭐라도 시작해 봤을 거야“ ”저놈들은 꼭 그래야만 기운을 차릴 수 있는지, 술을 마시고 담배를 씹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한단 말이야” 잔소리를 해댄다. 노파의 지적대로 이 마을 남자들은 대체로 게으르고 형편없다. 그래서 대부분은 마군의 이런 잔소리를 들으면 다들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고는 하는데 단 한 사람 ‘넬슨 배리’만은 예외이다. 그는 노파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는 유일한 남자로, 마을 사람들은 그 앞에서는 왠지 주눅이 든다. 이 마을 사람들은 그 오만한 남자를 마치 ‘사악한 신神’이라도 되는 듯이 우러러본다. 그런데 노파 마군은 넬슨 배리에게조차 굴하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마군이 어떻게 그에게도 그처럼 당당히 굴 수 있는지 의아해 한다.

노파가 끔찍하게 사랑하는 손녀 릴리. 릴리는 이제 열네 살이다. 그런데 할머니는 릴리를 마을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지 못하게 한다. 그런 틈틈이 마군은 아이에게 자신이 아는 모든 것, 주로 영적인 성장을 돕는 것들을 가르쳤다. 거짓말을 해서도 훔쳐서도, 할머니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도 결코 해서는 안 된다. 게으름은 금물이다. 그런 릴리는 열네 살인데도 늘 낡은 헝겊 인형을 꼭 끌어안고 다닌다. 작은 체구도 체구이지만 이렇게 인형을 안고 다니기 때문에 더 어린 아이로 보인다. 이웃 여자는 마군의 교육 방침에 문제가 있다는 듯 혀를 찬다. 아직도 애를 인형을 들고 다니게 하느냐, 저 또래 여자애들은  헝겊 인형 대신 남자친구를 생각한다 등등. 거기에 마군은 화가 나서 항변한다. “릴리는 또래에 비해 크지도 않고 나이가 어려서 그래. 나는 릴리를 서둘러 결혼시킬 생각이 전혀 없어. 튼튼하지도 않은 애를.” 이웃은 다시 말한다. 언제쯤이면 저 애를 자라게 할 것이냐고. 마치 늙은 할머니가 아이를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그러나 마군은 그저 “주님의 뜻에 따라 다 때가 되면 자랄 거”라고 답할 뿐이다. 그런데 그 목소리에는 어쩐지 슬픔이 깃들어 있다.

왜 노파 마군은 손녀 릴리가 아이일 뿐이라고, 아직 자라지 않았다고, 때가 되면 다 자랄 것이라면서 손녀가 자라지 않기를 바라는 듯한 태도일까? 그리고 왜 마을 사람 모두가 경원해하는 넬슨 배리에게 혼자만이 당당하게 굴 수 있는 것일까? 사실 여기엔 슬픈 사연이 담겨 있다. 마군의 딸, 그러니까 릴리의 엄마는 열여섯 살에 결혼했다. 그런데 딸이 결혼한 상대는 다름 아닌 그 문제의 ‘넬슨 배리’였던 것이다. 그리고 마군의 말에 따르면 그와 결혼했지만 그가 딸을 버렸고, 그 때문에 딸은 어머니의 집, 즉 마군의 집에서 살았으며 릴리도 거기서 태어났다. 헌데 릴리가 태어나고 얼마 뒤에 딸은 세상을 뜬 것이다. 이로써 마군과 릴리, 넬슨 배리의 관계가 설명이 된다. 마군이 손녀딸 릴리가 자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짐작이 간다.

이 작품은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느 날 마군은 릴리를 심부름 보내는데, 하필이면 심부름을 보낸 곳에서 릴리는 넬슨 배리, 그리고 또 다른 남자(릴리가 보기에는 젊고 잘생긴)를 마주치게 된다. 그때까지는 딸을 나 몰라라 했던 이 무심한 아비란 작자는 딸과 마주치고, 딸이 제법 성장한 것을 보고 놀라워한다. “내가 이렇게 작고 예쁜 딸이 있는 축복을 받았는지 그동안 몰랐었구나.” 씨부렁거리면서 모자 아래로 드러난 릴리의 분홍빛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그 손 치워!!!!) 나이를 물어보고는 열네 살이란 말에 놀라면서도 감탄한다. 그는 자기가 릴리의 엄마와 결혼했던 나이를 잊지 않고 있다! 넬슨 배리와 같이 있던 남자의 눈길도 예사롭지 않다. 그 나이에 인형을 안고 다니느냐면서 인형을 버리라면서 ‘사탕’을 사준다. 영문을 모르는 순진한 릴리는 집으로 돌아와서는 가게에서 있었던 일을 털어놓고, 이 이야기를 들은 노파 마군은 ‘오랫동안 예상해 온 어떤 재난이 마침내 닥쳐온 것에 타격을 입은 사람’ 같은 표정을 짓는다.

아니나 다를까, 일은 마군의 예상대로 흘러간다. 마군이 보기에는 ‘술에 취한 돼지 떼’와 같은 놈들, 그놈들이 릴리를 탐하기 시작한다. 이제껏 나 몰라라 하던 애비란 놈이 느닷없이 마군을 찾아와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자신의 딸이라고 윽박지른다. 그는 왜 난데없이 딸을 데려가겠다는 것일까? 없던 부성애가 인형을 끌어안은 릴리를 보더니 갑자기 퐁퐁퐁 솟아난 것일까? 그는 노파를 협박한다. 릴리를 자신이 데려가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당신이 아기처럼 만들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아이는 미인인 데다 아가씨가 다 됐다”고 협박한다. 노파여, 당신은 “영원히 사실 수도 없다”고. 그러면서 아이를 데리러 올 날짜까지 통보한다. 옷가지나 잘 싸두라는 싸가지 없는 소리와 함께. 마군은 이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열여섯 살에 결혼한 딸을 잃은 노파 마군, 열네 살 손녀가 자라고 있다. 그 나이에 이르려고 한다. 그러기도 전에 이놈 저놈이 아이를 탐한다. 늙은 마군은 영원히 살 수도 없고, 아이가 자라는 것을 막을 수도 없다. 그런 세계에 손녀를 홀로 내버려 둘 수 없던 마군은 이리저리 해결 방안을 찾아 뛰어다닌다. 그리고 릴리에게 약속한다. 릴리가 이제 가게 될 곳은 “아름다운 곳, 꽃들이 높게 자라는 곳.”이며 릴리가 가장 좋아하는 파란색 꽃들이 피는 곳이라고. 그리고 그곳에서는 그 푸른 꽃들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고. 꽃이 지는 일도 결코 없다고. “꺾지만 않는다면 절대 시들지도” 않는다고. “꺾지만 않는”다면…. 늙은 할머니의 이 약속은 끝끝내 마음을 울린다. 너무나도 서늘하게. ‘노파 마군’은 읽을수록 안타깝다. 지금도 어린 소녀들이 차라리 자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얼마나 많을까. 《뉴잉글랜드 수녀》에는 괴팍한 ‘노파 마군’ 말고도 ‘크리스마스 제니’나 ‘고귀한 존재’의 주인공들처럼 보통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기묘한 인물이지만, 결국에는 손가락질하는 그 보통 사람들보다 숭고한 마음을 지닌 다양한 여성들이 등장한다. 그 여성들의 이야기에 울었다, 웃었다, 한없이 따뜻해졌다가 한다.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2-11-25 1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25 1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25 1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25 1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25 1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25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Falstaff 2022-11-25 19: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흠. 이달의 리뷰 작품이라는데 마넌 겁니다. ㅋㅋ 정말 할 말이 없게 잘 쓰셔요.

잠자냥 2022-11-25 21:47   좋아요 2 | URL
오호 만 원! 입금 준비하세요!

- 2022-11-26 11:49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 두분이 서로 칭찬하는 모습을 보면 좀 뭐랄까 웃깁니다. 웃음이 지어져 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2-12-08 07:4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 아, 나도 잘난 척 좀 해도 되는 거 같아요!

잠자냥 2022-12-08 08:33   좋아요 1 | URL
앗 아니 만 원 제가 입금해야 합니까! 앗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2-11-25 2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저도 마넌 ^^ 생전 처음 보는 작가인데 읽고 싶게 만드는 리뷰입니다. ^^

잠자냥 2022-11-26 11:31   좋아요 1 | URL
<뉴잉글랜드 수녀>라는 단편은 꼭 읽어보세요~ ㅎㅎ

책읽는나무 2022-11-25 23: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늘 잠냥님 리뷰를 읽고 느끼는 거지만, 책을 잠자냥화 시켜 리뷰를 쓰시는 것 같아요.
잘 읽고 갑니다. 안녕~👋

잠자냥 2022-11-26 11:31   좋아요 1 | URL
잠자냥화! ㅋ 고마워요. 안녕? ㅋㅋㅋ

여름아 2022-11-27 0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만 읽는데 눈물이 찔끔납니다!ㅠ

잠자냥 2022-11-27 09:49   좋아요 0 | URL
아아, 본 작품도 꼭 한번 읽어보세요… ㅠㅠ

독서괭 2022-11-29 17: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글 폰으로 읽고 댓글을 못 달았네요. 잠자냥님 리뷰 읽으면 해당 책이 너무 매력적으로 보여서 문제예요, 문제. 마군과 릴리 이야기, 넘 마음 아파요. 전 역시 단편보다는 장편을 좋아하지만, 읽어보고 싶어져서 찜합니다!~

잠자냥 2022-11-29 20:36   좋아요 1 | URL
잠자냥 이웃 주머니 생각해 리뷰 절필 선언! …….. ㅋㅋㅋㅋㅋ
 
마리 앙투아네트 2
엔도 슈사쿠 지음, 김미형 옮김 / 티타임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리 앙투아네트, 여러 가지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녀가 여성이 아니었다면? 프랑스 태생이었다면? 루이 16세에 비해 너무나 비참하고 처참하게 모욕당한 그녀의 죽음. 엔도 슈사쿠는 수녀 아녜스의 입을 빌려 말한다. ‘혁명은 인간을 모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존중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읽는나무 2022-11-25 0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마리 앙투아네트 몇 년 전 뮤지컬로 봤었는데요(또 자랑ㅋㅋㅋ)
보면서도 울고, 보고 나서도 며칠을 마음이 아파서...힘들었어요.ㅜㅜ
지금도 마리 앙투아네트는 마음 아픈 여인이네요.
마지막 문장 명문장입니다.

잠자냥 2022-11-25 08:28   좋아요 2 | URL
ㅎㅎ 그 문장은 작품 속 엔도 슈사쿠의 문장이랍니다~~

레삭매냐 2022-11-25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사이가 좋지
않은 부르봉 가로 합스부르크
출신 공주가 시집을 가서리...

체제 순응적인 니뽕 사람들의
사고의 발로가 아닐가 싶네요.

혁명에 반대하는 수백년 묵은
기득권 세력을 일소하고 새로
운 질서 수립과 전대미문의 새
로운 공화정으로 나아가기 위
한 국왕 부부의 처형은 불가피
한 국민 공회의 선택이 아니었
을까 싶습니다.

잠자냥 2022-11-25 16:46   좋아요 1 | URL
네, 이 책에서도 구체제를 ‘상징‘하는 인물들이었기에 왕과 왕비가 (사실은 사형당할 죄는 없었는데) 처형당했다고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