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찰관 을유세계문학전집 115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 지음, 이경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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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 출두요!” 소리와 함께 산해진미를 갖춰놓고 곤드레만드레 취해있던 탐관오리들이 허둥지둥 일어나 요리조리 숨느라 정신이 없다. <춘향전> 같은 우리의 옛 고전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풍경이라 꽤 익숙한 모습이다. 고골의 <감찰관>을 읽으니 이런 장면이 절로 떠오른다. <감찰관>은 딱,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는 데에만 혈안이 된 탐관오리 ‘안톤 안토노비치 스크보즈니크’ 시장(市長)은 어느 날 자신이 다스리는 소도시에 감찰관이 출두할 것이라는 통지를 받고 화들짝 놀라 만반의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자기의 부정부패는 감추고 자신이 얼마나 이 도시를 잘 운영하고 있는지 보여주고자 교육감, 병원장, 판사, 경찰서장, 우체국장 등 지역에서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작당모의를 한다. 그러니까, 감찰관이 오면 교육은 이렇게, 아픈 환자들은 이렇게, 범죄자들은 이렇게 관리를 잘~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도록 모두가 입을 맞추는 것이다. 이 마을의 관리들은 대개 시장만큼이나 부정부패로 얼룩져있기 때문에 그의 이런 제안이 불쾌할 까닭이 없다. 불쾌하기는커녕, 자신들의 게으름과 부패를 덮을 수 있는 묘안이라며 모두가 하나가 되어 감찰관의 매의 눈을 피하고자 머리를 맞댄다. 마치 장학사가 온다는 소리에 며칠 전부터 온 학교가 때 빼고 광내느라 부산하기 짝이 없던 어린 시절의 그 교실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온다던 감찰관은 보이지 않고 마을의 두 지주 봅친스키와 돕친스키가 헐레벌떡 나타나서는 한다는 소리가, 허우대 멀쩡한 한 젊은이가 저 여관에서 떠날 줄 모르고 기거한다는데, 하는 행동이 영락없이 페테르부르크에서 온 높으신 나리, 관리, 그러니까 감찰관 같다는 게 아닌가. 사라토프현으로 간다고는 하는데, 떠날 생각은 하지 않고 벌써 두 주일째 그 여관에 머물면서 무엇이든 다 외상으로 먹고, 한 푼도 계산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게 아닌가. 아, 이건 영락없이 감찰관이다! 돈도 내지 않고 먹고 마시면서 떠나지도 않다니! 감찰관이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이때부터 마을의 시장, 경찰서장, 판사, 의사 너 나 할 것 없이 난리가 난다. 누구보다 똥줄이 타는 사람은 시장이다. 어서 감찰관을 모셔서, 그를 극진히 대접해야 한다! 그리하여 만난 사람이 바로 문제의 인물 ‘홀레스타코프’로, 스물셋의 이 새파란 청년은 사실 감찰관은커녕 하급 관리로 무위도식하면서 돈을 날리고는 고향으로 갈 돈마저 떨어져 여관에서 무작정 기거하는 중이었다. 헌데 이 마을의 시장이며 유지들이 무슨 이유인지 자기를 융숭하게 대접하면서 떠받들어주고 그것도 모자라 이 사람 저 사람 돈까지 찔러주니, 이런 행운이 어디 있나! 그는 한바탕 이 소동을 철저히 즐기기로 한다.

《감찰관》에 실린 세 편의 희곡 <감찰관>, <결혼>, <도박꾼>을 아주 재미나게 읽었다. 어떤 장면에서는 낄낄 웃음이 터지기도 했는데 읽다가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예전에도 고골이 이렇게 재미있었나? 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가만히 책장을 보니 나, 원, 참, 이것 보게. 펭귄클래식에서 나온 《코/외투/광인일기/감찰관》이 보란 듯이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 나는 몇 년 전에 펭귄클래식 버전으로 <감찰관>을 읽었다. 고골의 <코>와 <외투>는 너무나 유명해서 아직까지도 그 내용이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는데 어찌하여 <감찰관>은 기억에서 깡그리 잊혔을꼬? 어처구니가 없다. 아마도 그 몇 년 전에는 내가 이 <감찰관>을 재미나게 읽지는 못했나 보다. 아니, 어쩌면 <코>와 <외투>가 너무 강렬해서 상대적으로 <감찰관>의 기억은 희미했던 게 아닐까......

아무튼 그때 그 시절 나는 고골을 단지 ‘풍자’ 작가로만 생각했다. 그러고는 풍자만 잘하는 작가의 작품은 그다지 재미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고골을 더 읽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귀가 얇은 나는, 이번에 나보코프가 <러시아 문학 강의>에서 고골을 극찬하는 것을 보고 고골을 다시 읽어보리라 마음먹고는, 가장 먼저 눈에 띈 이 책 《감찰관》을 읽었는데, 어라라라? 정말 재미있네? 단순히 풍자만 잘하는 작가가 아니었네? 물론 풍자는 기본이지만 거기에 뭔가가 더 있네 하는 생각이 들더라. 아마도 이것은 모두 귀 얇은 독자인 나에게 나보코프 선생이 속닥속닥 “이 고골 한번 잡숴봐~절대 후회 안 해.” 속삭인 탓이 컸던 게 아닐까 싶다.
 
<감찰관>의 가장 큰 매력은 ‘홀레스타프’라는 천진한(?) 인물의 말과 행동에 있다. 그는 놀고 마시고 농땡이 부리기 좋아하는 철부지이다. 탐관오리인 시장을 비롯해 마을의 유지들을 속이는 일에 악의나 고의성은 없다. 단지 그들이 그를 감찰관이라 오해하고, 모든 판을 벌여준 것이다. 그들 스스로 잔칫상을 거하게 차려줬는데 배불리 먹고 즐기면 그만이지 누가 마다할까. 홀레스타프는 이 눈먼 환대를 마음껏 누린 뒤 이제 그만 발을 빼야 할 때라는, 영특한 하인의 충고를 받아들여 이 난장판 무대에서 퇴장한다. 홀레스타프가 내뺀 뒤에야 그의 정체를 알게 된 그들은 그제야 한탄하면서 발을 구르지만 이미 늦었다. 설상가상, 가짜 감찰관은 떠나고 진짜 감찰관이 나타날 일만 남았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 진짜 감찰관은 진짜로 진짜 감찰관일까? 조금만 눈을 뜨고 이성적으로 판단했다면 홀레스타프가 한낱 무위도식하는 청년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채고도 남았을 텐데, 자기들이 욕망에 눈이 멀어 제 스스로 속고 만 그들 앞에 또 다른 ‘가짜’ 감찰관이 나타나지 않으리란 법이 있을까?

이렇게 속고 속이는 기만의 세계, 자기 욕망에 눈이 멀어 자기 스스로 제풀에 걸려 넘어지는 이야기는 <결혼>과 <도박꾼>에서도 이어진다. <결혼>도 재미가 대단한데, 이 극 안에서 펼쳐지는 결혼 또는 중매 대소동은 어찌 보면 오늘날의 결혼정보회사 듀오 매칭 시스템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요즘 흔히들 집도 마차도 약속하지만, 결혼하고 나면 깃털 이불과 요만 주니까.”(183쪽)과 같은 대사를 읽노라면  예나 지금이나 결혼이란 참, 사랑의 결실은커녕 사랑을 빙자한 자본과 자본의 교환 관계가 아닌가 씁쓸한 웃음이 절로 난다. 이 작품에서는 한 여성을 두고 다섯 명의 구애자들이 저마다 달려들어 그 여성으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조건을 찾고자 안달복달하는데 그 남자들 대부분은 여성이 젊은 데다가 지참금으로 많은 재산을 갖고 오리라는 말에 혹해 불나방처럼 달려든다. 그런 중에도 자기가 꼭 바라는 조건만큼은 다들 가지각색이다. 신붓감은 꼭 프랑스어를 해야 한다느니, 교양이 넘쳐야 한다느니, 지참금이 무조건 많아야 한다느니, 외모가 어때야 한다느니…. 그런 조건에만 눈이 멀어서 마침내는 눈앞의 여성이 자기의 이상형인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고 만다. 모두가 스스로 기만당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또 재미난 인물은 ‘코치카료프’인데 그는 어떤 면에서는 <감찰관>의 ‘홀레스타코프’와 비슷하다. 기만당하기 쉬운 인물들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갖고 놀면서 낄낄 대는 유형으로, 이미 결혼한 몸인데도 친구 ‘포드콜료신’을 결혼시키려고 안달이 나서 누구보다 이 중매에 열심이다. 7등 문관인 포드콜료신은 ‘이제껏 가만있다가 결혼한다는 게 어색’하다며 몸을 사릴 정도로 어딘가 아이 같고 우유부단하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잘 알지 못해 주변 사람 말에 쉽게 휘둘리는 인물인데 그러다 보니 코치카료프가 부추기는 말에 넘어가 사랑하지도 않는 여성에게 반했다고 착각하고, 그 여자가 자기에게 딱 알맞은 상대라고 확신하고 결혼하기에 이른다. 포드콜료신을 지켜보노라면 정말 그렇게 결혼해도 되는 거야? 싶을 정도로 걱정스러운데, 고골의 희곡이 조금 과장되었을 뿐, 이런 식으로 주변의 부추김에 넘어가서 남들이 다 하니까, 휩쓸리듯이 결혼이라는 중대한 일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이 지금도 얼마나 많은가. <결혼>에서 벌어지는 소동이 저 먼 나라 먼 시대에서만 일어났던 일은 아닌 것 같다. 헌데 문득 이런 의문이 고개를 든다. 이, 코치카료프는 자기 결혼 생활이 불만스러운 것 같은데 친구를 왜 그 구렁텅이로 밀어 넣지 못해 안달일까? 과연 그의 속셈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는 자기 혼자서만 지옥에 빠져 사는 게 억울해서 남들도 그 구렁텅이로 밀어 넣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소시민의 전형은 아닌가 싶어진다. 이런 모습도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과 닮지 않았는가. 자기 결혼 생활도 그닥 행복하지 않으면서 “결혼해라, 결혼해라.”를 입에 달고 사는 그런 이들 말이다.



정말, 생각해 보니, 몇 분 후면 결혼한 몸이 되는 거야. 정말 동화에나 나오고 말로 표현할 수도, 표현할 말을 찾을 수도 없는 그런 행복을 갑자기 맛보게 되겠지. (약간 침묵한 후) 그런데 이것에 대해 잘 생각해 보니, 왠지 무서워지는군. 평생을, 영원토록 어떻게든 자신을 얽어매고, 그다음엔 물릴 수도, 후회할 수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면, 모든 게 결정되고, 모든 게 끝나는 거야. (237쪽)


포드콜료신은 그렇게 이끌려 결혼식을 바로 코앞에 둔다. 그는 이대로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와 결혼하고 말 것인가? 바로 이때 문득 위와 같은 의혹이 떠오른다. 동화에나 나올법한 그런 행복을 갑자기 맛 볼 (수도 있겠지만.... 아니야 아니야), ‘평생을, 영원토록 어떻게든 자신을 얽어매고, 그다음엔 물릴 수도, 후회할 수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구렁텅이가 결혼이 아닐까? 아, 이거 큰일났다!  남들의 욕망을 자기의 욕망이라고 착각하고, 남들도 다 그러니까 나도 그래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고 제 스스로 올가미에 걸려들려는 그 순간에 그래도 잠깐 눈이 떠지는 순간이 찾아오긴 한 것이다.  포드콜료신의 최후의 선택은 어처구니없고 엉뚱하기 짝이 없지만 고골은 그래도 이렇게라도 사람들이 눈을 떠주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속고 속이는 기만의 세상에서 자기 자신의 욕망에 눈이 멀어 사기꾼에게 낚이지 말고 부디 눈을 뜨라는, 고골의 당부가 어쩐지 희미한 웃음과 함께 들려오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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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6-29 15: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거 정말이지 너무나 재미있겠는데요. 2022년 남은 날들은 책을 안살거지만 일단 장바구니엔 담아둡니다.

잠자냥 2022-06-29 15:43   좋아요 1 | URL
*동공지진* 진짜요? 앞으로 점심에 한 가지 메뉴만 먹겠다는 말보다 안 믿겨짐....!

독서괭 2022-06-29 16:18   좋아요 1 | URL
아무도 안 믿을 선언을 왜 자꾸.. ㅋㅋ

바람돌이 2022-06-29 1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재밌을듯요. 세상에 읽고싶은 작가들이 너무 많아서 고민입니다. 지금 다 읽으려고 하는 작가들은 뜌 언제 끝낼지..... 감찰관 쏙 넣어놓고 고골 시작 작품으로 기억하겠습니다

잠자냥 2022-06-29 15:43   좋아요 0 | URL
자매품 <외투/코>도 꼭 읽어보세요~ 전 조만간 <죽은 혼>을 만나보겠습니다.

유부만두 2022-06-29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로씨아 문학에 빠지시는 겁니까??!!

잠자냥 2022-06-29 16:12   좋아요 0 | URL
원래도 좋아했지만 더 빠져보렵니다요!

유부만두 2022-06-29 17:34   좋아요 1 | URL
우라!!!

독서괭 2022-06-29 16: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봅친스키 돕친스키 왜 이렇게 웃기죠 ㅋㅋㅋㅋㅋㅋ
전 <외투>를 쏜살문고인가.. 읽었는데 외투, 코,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 여기 실린 감찰관, 결혼도 넘 재밌겠네요!

잠자냥 2022-06-29 16:46   좋아요 2 | URL
봅친스키 돕친스키 하는 짓도 웃깁니다. 연극으로 봐도 왠지 재미날 거 같아요.
<감찰관>도 감찰관이지만 전 이번에 <결혼>이라는 희곡의 발견. 이거 부제가 ‘전혀 있을 법하지 않은 사건에 대한 2막극‘인데 이 말도 뭔가 웃겨요. ㅋㅋㅋㅋㅋ

mini74 2022-07-08 18: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자냥님 이 더위에 고양님들 잘 계신지 ㅎㅎ 축하드려요 *^^*

그레이스 2022-07-08 18: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축하드려요~

새파랑 2022-07-08 19: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시 문학은 잠자냥님이죠. 축하드립니다~!! 전 감찰관만 읽어봤는데 살까말까 고민중입니다~!!
 

알라딘 서재 이달의 북튜브 챌린지가 '#나의상반기pick'이라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버,버,벌써 상반기를 정리할 때가 된 거야? 믿어지지 않아! 그런 심정. 해마다 상반기. 하반기로 나눠서 정리하고는 있는데, 올해는 상반기에 아주 강렬한 책은 없었기도 해서 그냥 넘어갈까 하다가 그래도 그냥 넘어가면 아쉬운 것 같아 상반기에 읽은 책들 가운데 좋았던 책을 정리해 보았다.....

소설



1. 디노 부차티, <타타르인의 사막>
웬만하면 2022년에 나온 신간 중에 상반기에 가장 좋았던 작품을 골라보고 싶었으나, 올해는 어쩐지 작년의 <나는 고백한다>처럼 강렬한 작품이 없다. 그런 가운데 <타타르인의 사막>이 묘하게도 계속 생각이 난다. 책, 특히 문학 작품은 어떤 시기에 읽느냐에 따라서도 영향을 크게 주는 것 같다. 이 책은 지난 2월 건강 상의 이유로 병원을 들락거리던 때 읽었는데 그래서 더 인상 깊었던 게 아닐까 싶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의 ‘요새’ 안에서 ‘사막’을 품고 오지 않을 그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희망하면서 그렇게 늙어가고 죽어가는 게 아닐지. 삶에 관한 거대한 은유를 한참동안 생각하게 하는 작품.



2. 압둘라자크 구르나, <낙원>
이 책을 읽고 생각했다. 달리 노벨문학상을 받는 게 아니구나! 이 작품은 일단 재미있다. 한 소년이 떠돌면서 성장하는 이야기인데, 재미있지 않을 수가 있을까? 게다가 문장도 아름답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프리카 대륙의 이야기를 아프리카 사람이 한다. 거기서 태어나고 자란 백인, 또는 그 땅에 몇 년쯤 머물면서 그곳을 관찰한 백인의 시선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낙원>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설 것이다.



3. 안나 제거스, <약자들의 힘>
지만지 책은 비싸서 독자들이 쉽게 선택하지 않는 것 같은데, 이 책은 그렇게 묻히기에 좀 많이 아깝다. 스페인 해방 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아들의 뒤를 이어 종군하는 어머니, 에티오피아를 침공한 이탈리아 정복자들을 산으로 유인해 함정에 빠뜨리는 소년, 프랑스 병사를 사랑하게 된 독일 아가씨 등등 역사의 소용돌이를 직접 온 몸으로 겪은, 그리고 아주 미미한 역할로 한 역할을 한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9편이 옴니버스처럼 펼쳐진다.




4. 모리츠 지그몬드, <모리츠 단편집>
힘없고 가난한 이들의 삶을 참으로 진솔하게 그리고 있다. 문장이 화려한 것도, 이야기가 말할 수 없이 흥미진진한 것도, 또 그렇다고 상상력이 놀라울 정도라거나 상징이 오묘하고 헤아릴 수 없이 깊어서 무릎을 칠 만큼 기막힌 것도 아닌, 그저 소박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인데도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들- 헝가리 사회의 병폐와 모순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들과 주변 환경으로 인해 고통받는 가난한 이들의 모습을 담은 자연주의 작품들을 여럿 남겼다.



5. 하인리히 뵐, <아담, 너는 어디에 가 있었느냐>
전쟁의 참상을 꼭 처절하게 보여줘야지만 전쟁이 끔찍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뵐의 문장은 늘 그렇듯이 이 작품에서도 담백하기 짝이 없다. 묘사 또한 과하지 않다. 거리를 두고 아주 객관적으로 서늘하게 바라보는 시선. 그런데 그렇기에 작품 속에서 그리고 있는 사람들, 전쟁으로 인해 삶이 파괴되는 사람들이 삶이 더 안타깝게 다가온다. 특히 파인할스와 그가 사랑했던 여인 일로너의 부서진 삶을 그 누가 보상할 수 있을까. 전쟁 중에도 당연히 아름다움이 존재할 수 있지만 전쟁 중이기에 그 아름다움이 끝끝내 무참히 짓밟히고 마는 장면들이 강렬하게 남는다.




6. 이렌 네미롭스키, <무도회>
책 부피는 얇고, 짧은 이야기들이 고작 몇 편 실려 있을 뿐인데 아주 강렬하다. 특히 표제작 <무도회>는 속물 부르주아 부모를 바라보는 10대 소녀의 신랄한 시선과 그 나이 때의 욕망 등이 아주 적나라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 밖에도 대부분의 작품들이 자기 욕망에 충실한 사람들을 그리고 있는데, 그 안에서 인간을 가엾은 존재로 보는 작가의 연민어린 시선이 와 닿는다. 이렌 네미롭스키 선집 모두를 기꺼이 기대하게 하는 작품집.




7. 엔도 슈사쿠, <침묵>
나는 종교인도 아니고 종교의 어떤 면을(특히 한국형 기독교) 아주 싫어한다. 그런 내가 우연히 <깊은 강>으로 처음 만난 작가가 엔도 슈사쿠- 그날 이후 해마다, 아니 몇 년에 한 권씩은 꼭 읽는 작가가 된 엔도. 그의 작품 중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 이 <침묵>을 아껴두었다가 드디어 읽었다. 종교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닌 작가. 인간에게 신념이란 무엇인가. 사랑과 믿음, 순교와 배교, 나약한 인간과 강한 인간, 그리고 신의 침묵…  엔도 슈사쿠는 언제나 나를 뒤흔든다. 나도 약간 종교적인 면이 있는 걸까 고민하게 될 정도로.




8. 토머스 새비지, <파워 오브 도그>
우리는 어쩌면 이 잊혔던 작품을 다시 되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애니 프루’에게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애니 프루는 이 작품을 일컬어 이렇게 말했다. “한 편의 심리 연구이자, 혐오라는 형태로 분출되는 억압된 동성애를 다룬 비범한 작품이다. 새비지는 거장의 솜씨로 미국 문학사에서 가장 강렬하고 사악한 인물을 창조했다.” 그이의 평가에 진심으로 동의한다. ‘필’- 이 남자의 뒤틀린 심리 묘사는 진짜 압권이다.




9. 찬 쉐, <마지막 연인>
중국의 카프카라고 불리고 있는 ‘찬쉐’-한 번만 읽어서는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 아닐까. 표면적으로는 권태기를 겪고 있는 세 커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 전달 방식이 굉장히 색다르다. 꿈결을 거닐 듯, 독특하고 몽환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독히 현실적인 작품. 이제까지 읽은 중국 작가들의 작품과 완전히 결이 다르다. 최근 <오향거리>가 또 출간되었다. 이 작품도 얼른 읽어봐야지.



10. 보리스 사빈코프, <창백한 말>
처음에는 테러리스트인 주인공이 중2병을 못 벗어난 허세남 같아서 약간 거슬렸는데 참 신기하게도 읽은 지 좀 지나면 다시 읽고 싶어지는 작품. 아마도 작품의 서정적인 면이 크게 한몫하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을 위해 죽는다는 거, 사람들에게 자기 죽음을 바친다는 건 쉬워. 삶을 바치는 쪽이 더 어렵지.”(45쪽) 이런 문장들이 문득문득 심금을 울린다. 사빈코프의 작품도 속속 번역되길 바라본다.



비소설




1.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
사실 이 책이 나의 상반기 ‘원 픽!’ 이다. 읽는 내내 찬탄&감탄했고 너무 재미있어서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이 책을 피할 수 없지 않을까. 체호프,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고골 등 우리가 너무나도 사랑한 러시아 문학을 더 깊고 그윽하게 읽는 법이 이 책 안에 담겨 있다. 물론 나보코프의 견해에 모두 동의하지 않고, 또 그럴 수도 없(겠)지만 적어도 이 책을 보면 문학 작품을 읽을 때 훌륭한 독자로 재탄생하는 법을 조금 배울 수는 있을 것이다. 이 책으로 인해 나는 요즘 고골을 다시 읽어보고 있다.




2. 크리스티앙 보뱅, <환희의 인간>
나는 에세이를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감성 돋는 에세이일수록 오그라들어서 피하는 편인데, 와 이 책은 인정. 읽으면서 어쩜 이렇게 아름답지? 어쩌면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지 감탄했다. 크리스티앙 보뱅의 모든 책을 읽어보고 싶게 만든 문제작(?). 책 전체를 연필로 꾹꾹 필사해 보고 싶어지는 책으로 오랜만에 정말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산문을 만났다. 비 내리는 날, 읽고 또 읽으려고 간직하고 있는 책....




3. 김승섭,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트라우마 생존자의 이야기를 담은 책. 세월호 생존학생 연구와 천안함 생존장병 연구를 진행했던 김승섭 교수가 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정치적으로 가장 예민한 사건인 두 사건의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있노라면 나 또한 진영 논리에 빠져 그들의 목소리를(나의 경우에는 천안함 생존자의 목소리를....) 외면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김승섭 교수의 책을 읽으면 타인의 고통에 둔감한 이 사회가 나아갈 길은 무엇인지 곰곰 생각하게 된다.



4. 사울 레이터, <영원히 사울레이터>
레이터가 사진을 찍기 시작하던 1940년대 초기작부터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10여 년간의 미발표작까지, 레이터의 작품세계가 만들어지고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엄선한 사진들을 소개하고 있다. 세상을 단순하게 바라보고, 그 단순한 것이 지닌 아름다움을 믿은 사람. 세상은 무한한 기쁨의 근원이라 생각한 사람. 그래서 그의 이 일상을 담은 소소한 사진들을 바라보노라면 문득 내가 사는 세계에, 사람에 애정이 생긴다.




5. 모드릭스 엑스타인, <봄의 제전>
전쟁사를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감탄했던 책.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에서 1, 2차 세계대전의 폭발 징조를 읽어낸 이 탁월한 책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처럼, ‘봄’을 그저 새로운 시작, 탄생으로만 보지 않는다. 모든 탄생에는 소멸이, 죽음이, 새로운 시작을 위한 희생이 있음을, 그리고 그 희생에는 분명 폭력이 따를 수밖에 없음을 주목한다. 현대의 탄생을 알린 발레 작품과 세계대전을 하나의 주제로 엮어서 풀어낸다는 것이 조금은 의아하기도 했지만 <봄의 제전>은 이런 의구심을 말끔하게 해소해준다.




6. 토니 모리슨, <타인의 기원>
얇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묵직한 책. 인종차별과 젠더 갈등 등 인간은 왜 나와 타인, 즉 타자를 만들고 혐오 또는 차별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일까? 이에 관한 토니 모리슨의 날카로운 분석이 담겨 있다. 그렇게 나와 다른 집단을 만들고 그들을 비인간화하면서 나의 권력이 강화된다고 착각하는 오류- 이런 착각에 빠진 사람들이 이 땅에도 너무나 많기에 토니 모리슨의 이 예리한 사유는 이곳에서도 유효하다.




7. 도나 해러웨이, <한 장의 잎사귀처럼>
<사이보그 선언문>을 읽기 전에 해러웨이에 관한 책을 찾아 읽던 중 발견한 책. 해러웨이의 성장 배경이나 개인사 등 그의 학문적 바탕이 된 환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도나 해러웨이에 관한 지형도(밑그림)를 그리기에 알맞은 책이랄까. 대담집이라 인터뷰하는 사람도 중요한데, 해러웨이의 제자인 사이어자 니콜스 구디브가 대화를 이끌어가고 있어 그의 사상을 잘 이해하고 질문한다는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 좀 놀라웠던 점은 종교적 환경이 오늘날의 도나 해러웨이를 있게 한 데 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랄까.




8. 양경인, <선창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제9회 제주4·3평화문학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으로 저자는 제주4·3 사건을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였던 1987년부터 5년 동안 끈질긴 채록과 집요한 취재를 거쳐 제주 여성운동가 ‘김진언’의 삶을 복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내내 도대체 사람에게 신념이란 무엇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 등장하는 모든 여성운동가들의 삶과 증언에 그저 먹먹해진다.



9. 추적단 불꽃,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책은 사놓은 지 한참 되었는데, 심적으로 힘들 거 같아서 계속 미루다가 올해 박지현 위원장이 민주당에(정확히는 이재명 대선 캠프에) 합류하게 된 것을 계기로 읽었다. 읽는 동안 내내 이 두 젊은 여성에게 대단하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간절함과 집요함, 고통받는 타인에 대한 연대의식이 N번방 사건 및 디지털 성폭력을 수면 위로 올리게 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세상은 여전히 바위처럼 단단하지만 불과 단 같은 여성들이 있기에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10.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책에는 굉장히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양가감정이 든다. 2022년 출판계 상반기를 거의 휩쓴 책이기도 하고 잘 쓴 책이기도 한데, 그리고 놀라운 책이기도 한데 나는 이상해... 이상해.... 이 책이 마음으로부터 좋아지지는 않는다. 뭐랄까, 공부 엄청 잘하는 전교 1등 학생을 바라보는, 그런데 그 학생을 마음으로 예뻐할 수는 없는 선생님의 눈이랄까.......... 대체 왜 그런 거쥬? 그래서 맨끝에 살포시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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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2-06-28 14:12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벌써 상반기 결산 페이퍼가 올라오는군요. 이 곳은 믿고 찾는 잠자냥님 서재입니다^^
잠자냥님이 심사 숙고 고르고 고르신 책들인데 전 표지도 제목도 처음인 책이 많아서 마음껏 주워담아 갑니다.
맨 마지막에 간신히 올려두신 룰루 밀러 책을 읽고 있어서 휴, 다행이다, 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 전교 1등 바라보는 선생님의 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살포시라도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2-06-28 14:21   좋아요 7 | URL
전교 1등 예뻐하는 선생님들도 많지 않습니까? 근데 전 왜 공부 잘 못해도 예쁜 아이가 있을 것 같아서리.... ㅠㅠ 룰루 밀러... 너는 전교 1등이란다....

다락방 2022-06-29 12:36   좋아요 2 | URL
저는 전교1등이 아닙니다. 해본 적도 없습니다.

그럼 이만. =3=3=3=3=3

새파랑 2022-06-28 14:12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의 전반기 마무리군요. 저도 써보고 싶습니다~!! 소설 10편중 제가 읽은게 3편 (모두 좋았음)인게 뿌듯하군요~!! 타타르 vs 침묵 우열을 가리기 힘든거 같아요 ^^

잠자냥 2022-06-28 14:24   좋아요 8 | URL
새파랑님은 다달이 이 작업을 하지 않으십니까?! 북플 걷기 앱(독보적)하고 같이! 볼 때마다 대단하심.
타타르, 침묵 둘 다 정말 좋은 작품들입니다.

mini74 2022-06-28 14:1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6권 겹쳐서 기쁜 *^^* 벌써 6월도 끝나가네요. ㅠㅠ

잠자냥 2022-06-28 14:24   좋아요 6 | URL
와, 정말 시간 왜 이렇게 빨리 가죠? ㅠㅠ

그레이스 2022-06-28 14: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7권이요
김승섭 교수 책 담아갑니다~!

잠자냥 2022-06-28 14:28   좋아요 4 | URL
네, 그레이스 님이 제가 읽은 책과 같은 책 리뷰 올리시면 잘 챙겨 읽었습니다.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추천합니다~

그레이스 2022-06-28 14:29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저도!

거리의화가 2022-06-28 15: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한 권 빼고 읽어보지 못한 책들이네요~ 몇몇 책들은 보관함에 담겨 있거나 조만간 읽을 책들로 구매해놓았습니다.
<약자들의 힘>하고 <선창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은 관심이 가서 담아놓습니다. 감사합니다^^

잠자냥 2022-06-28 15:55   좋아요 2 | URL
네, 저에게 그랬듯이 그 두 권의 책이 거리의화가님의 마음에 들기를 바라겠습니다~

등대지기 2022-06-28 15: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소개글 보면 항상 책 읽어보고 싶어져요:) 감사해요 잘 읽겠습니다!

잠자냥 2022-06-28 15:56   좋아요 3 | URL
아이코, 이런 댓글이 무엇보다 큰힘이 되는 거 아시죠? 감사합니다.

독서괭 2022-06-28 15: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우 벌써 상반기 결산이군요!! 2022 상반기 결산에서는 문학보다 비문학 쪽이 좀더 끌리네요^^ <나는 고백한다>만한 작품이 없었다는 말씀 때문인가 ㅋㅋㅋ 잠자냥님 원픽은 사둬서 손해볼 것 없는데. 그럼 이번에는 나교수님 강의를 들어봐야 하려나요? 전 마지막 두권만 읽었네요. <물고기는~> 이거 저도 잘 읽었지만 애정이 딱히 가지는 않아요. 왤까요..?

잠자냥 2022-06-28 15:58   좋아요 4 | URL
ㅎㅎ 아무래도 올해 상반기에는 <나는 고백한다>처럼 강력하게 열광하게 된 문학을 만나지 못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만.... 생각해 보니 그런 책 만나기 쉽지 않기는 하죠. ㅎㅎㅎ 나교수님 강의 책은 문학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맞아, 맞아 하면서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 2022-06-29 08: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를 한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대체로 ˝싫어하고 안좋아하지만 이건 인정ㅋㅋㅋ˝
무한한 애정이 아니라 조건부 애정, 그것을 차별화하는 것에 대한 타당한 이유까지 있는 애정 ㅋㅋㅋ 잠자냥의 키워드에 ‘편애‘를 넣었던 어제의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페이퍼입니다. 제 생각에 잠자냥에게 편애는 본질에 가깝다 ㅋㅋㅋ

잠자냥 2022-06-29 10:15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 나의 편애 본질을 꿰뚫어 보다니!

다락방 2022-06-29 12: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음.. 전 이 페이퍼를 읽고 ‘나 나뭇잎 샀던가?‘ 하고 갸웃했어요. 사진 찍어놓은거 찾아봐야지. 샀나 안샀나.
그나마 이 페이퍼에 올라온 책들 중에서 읽은 것도 있지만 갖춘 것도 있어서 좋습니다. 으하하하하.

잠자냥 님 페이퍼나 리뷰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건데 정말 글이 고급스러워요. 이 페이퍼 역시 고급진(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진 않습니다만) 페이퍼네요. 양질의 페이퍼입니다.

잠자냥 2022-06-29 13:20   좋아요 1 | URL
고급진 자냥이가 인정하는 더 고급진 다부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2-06-30 1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편집장의 선택이 아닌 알라디너 잠자냥의 선택!! 코너로군요^^
잠자냥님에게 간택되어진 책들은, 잠자냥님의 소개글만 읽어도, 그야말로 귀는 팔랑팔랑 가슴은 벌렁벌렁....문학 좋아하는 사람들은 잠자냥님의 리뷰나 페이퍼는 필수로 읽어야 할 것 같아요.
전 부끄럽게도...올리신 책 중 겹치는 책이 있는 영광을 누려보려고 열심히 찾아 보아도 한 권도 없네요. 다만, 이번엔 읽다 한참 쉬고 있는 책들이 네 권이나 됩니다ㅋㅋㅋㅋ 이마저도 제겐 영광스럽네요^^
내일부터 올 하반기 동안엔 잠자냥님의 픽한 상반기 책들 중 눈에 들어온 몇 권의 책을 꼭 읽어보기! 목표를 실행해 보겠습니다.
다가올 12 월, ‘잠자냥의 선택‘ 좋은 책들 또 기대하겠습니다^^


잠자냥 2022-07-01 11:13   좋아요 1 | URL
아니 이 댓글을 오늘에야 봤네요. 저랑 겹치지 않는다고 부끄럽기는요~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이 얼매나 많은데요~
하반기에 제가 소개한 책들 중 몇 권 읽어보시고 마음에 들기를 바라겠습니다!

moonnight 2022-06-30 11: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안녕하세요 벌써 상반기 결산이라니@_@ 시간 가는 거 생각 안 하고 있다가 깜짝 놀랍니다@_@;;; 잠자냥님과 겹치는 건 마지막 단 한 권이라 부끄럽네요^^;
룰루 밀러의 책을 읽고 다들 좋다고 난린데 나는 왜 이런고-_-a 하고 어리둥절하던 와중에 잠자냥님 글을 읽고 뭔가 안심합니다.ㅎㅎ;;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잠자냥 2022-06-30 13:02   좋아요 2 | URL
맞아요! 정말 저도 상반기 결산하라는 거 보고 깜짝 놀랐어요. 내일부터 하반기 시작.... 털썩.....ㅠㅠ
어이쿠, 저랑 안 겹친다고 부끄러워하실 일이 있나요. 책은 다 취향따라 읽는 것이죠.
룰루 밀러 책 마음으로 좋아지지 않아서 저도 고민이긴 합니다만 ㅎㅎㅎ 그런 분들도 많은 것 같아서 안심입니다. ㅎㅎㅎ

coolcat329 2022-07-04 08: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벌써 상반기 이렇게 좋고 많은 책을 읽으셨네요.
저는 이 중 네 권 읽었는데 정말 다 🌟 🖐 입니다.
이 페이퍼에 있는 책들 다 끌리네요.

잠자냥 2022-07-04 11:56   좋아요 0 | URL
우웅... 그런데 제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 책은 드물어요. 흐흐흑. ㅎㅎㅎ
 
감찰관 을유세계문학전집 115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 지음, 이경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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큭큭 터지는 웃음 속에 엿보이는 날카로운 풍자,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삶의 비극. 세 편의 희곡 모두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좋다. 나보코프 때문에 다시 또는 제대로 고골 읽기에 도전했는데 예전엔 몰랐다, 이렇게 괜찮은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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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2-06-28 00: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보코프 먼저 읽고 올게요. 그 담이 고골이에요^^

잠자냥 2022-06-28 00:16   좋아요 1 | URL
작품 읽으면서 같이 봐도 좋을 것 같더라고요!
 
낙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1
압둘라자크 구르나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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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은 신기한 소설이다. 흑인 소년이 수풀 뒤에 숨은 듯 살짝 얼굴을 내민 표지 이미지와 ‘압둘라자크 구르나’라는 작가의 이름과  얼굴만 보면 굉장히 익숙한 내용이 펼쳐질 것만 같다. 아프리카 대륙을 배경으로 한, 억압받는 흑인 노예의 삶이 펼쳐지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백인들에게 수탈당하고 고통받는 흑인들의 삶, 인종 차별에 시달리는 흑인들의 삶이 그려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그래서 사실 나는 이 책을 선뜻 읽게 되지 않았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이 책은 아프리카 대륙을 배경으로 하지만, 이전까지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그 어떤 작품과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분명 흑인도 나오고 백인도 나오는데, 그들만이 아니다 좀 더 많은 인종이 등장한다. 아랍인, 인도인, 남아시아인 등등 아, 아프리카, 동아프리카에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구나, 내가 너무 아프리카를 몰랐구나 몇 페이지만 넘기고도 깨닫게 된다. 그런 데다가 백인이 화자가 아니다. 백인의 눈으로 이 땅을 묘사하지 않는다. 도리어 아프리카 대륙 출신인 소년 ‘유수프’의 눈으로 그 땅에 발을 디딘 백인의 모습이 그려지는데, 소년의 눈에는 낯설기만 한 그들의 모습은 ‘대상화’되어 스치듯 묘사되기에 이 시선은 때로 무척 전복적으로 느껴진다.


그렇다고 유수프가 겪는, 바라보는 아프리카 땅이 지상 낙원이기만한 것도 아니다. 거기에도 분명 착취와 피착취가 있고 부자가 있으면 가난한 사람도 있고, 민족 간의 다툼과 분쟁도 있으며, 백인의 노예가 아니더라도 다른 민족이나 돈이 많은 자에게 노예처럼 팔려가 하인 노릇을 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유수프도 그런 이들 중 하나이다. 소년에게는 부유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먹고살만한 집과 자신을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다. 게다가 그가 ‘아저씨’라고 부르며 따르는 부유한 상인 ‘아지즈’도 있다. 풍요롭지는 않지만 소년에게 이 집이라는 공간은 그가 태어나 별다른 결핍을 느끼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었던 첫 번째 낙원이다.

그런데 낙원은 영원하지 않다. 어쩌면 그래서, 부서지고 깨지기 쉽기 때문에 낙원을 낙원이라 부를 수 있던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소년의 행복한 삶은 곧 깨지고 만다. 여느 때처럼 아지즈 아저씨가 그의 집을 방문한 어느 날, 소년은 아저씨가 떠날 때면 으레 주곤 하는 동전을 받을 생각에 들떠 있는데, 그날따라 어머니는 자신을 품에 꼭 껴안고 슬픈 표정을 짓는다. 알고 보니 아버지는 대상(隊商) 즉, 잘나가는 카라반인 아지즈에게 큰 빚을 졌고, 그 빚을 갚을 수 없자 아들인 유수프를 노예로 보내게 된 것이다. 사실 아버지는 애초부터 아들을 담보로 아지즈에게 돈을 빌리고, 또 빌렸다. 갚을 수도 없을 만큼의 돈을…. 그렇게 낙원과도 같았던 집을 떠나게 되는 소년 유수프-

이 작품은 유수프가 집을 떠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소년은 카라반인 아지즈를 따라 아프리카 내륙을 여행하면서 집 가까이에서만 보아오던 것과는 다른 풍경을 마주하고, 온갖 사람들(다양한 인종)을 만나고, 이런저런 사건에 휘말리면서 세상에 눈을 떠간다. <낙원>은 이렇게 여기저기 떠도는 소년의 눈을 통해 그간 우리가 알던 아프리카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낯선 세계로 독자를 이끌어간다. 예컨대 그 땅은 단지 흑백 대결만이 존재하는 공간이 아닌, 이슬람교도들과 인도 상인, 유럽인 농부, 원주민 부족들 간의 적대감으로 늘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곳이며 서양의 백인들(영국국과 독일군이)이 호시탐탐 이 땅을 노리고 있어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긴박한 곳이다.



어디를 가나 그들은 유럽인들이 자신들보다 먼저 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장사꾼들은 유럽인들에 대해 얘기하며 놀라워했다. 그들의 잔인함과 무자비함에 기가 질려 있었다. 그들은 한 푼도 내지 않고 최고의 땅을 가져가고 이런저런 술수를 부려 사람들이 자신들을 위해 일하게 만들죠. 그 사람들은 아무리 질기고 냄새가 나도 그냥 아무것이나 먹어요. 그 사람들 식욕은 메뚜기떼처럼 끝도 없고 품위도 없죠. 여기도 세금, 저기도 세금을 매기고 어기는 자는 감옥에 처넣거나 매질을 하고 심지어 목매달아 죽여요. 그 사람들이 세우는 첫 번째 것은 감옥이고, 다음은 교회고, 다음은 모든 거래를 지켜보고 세금을 매기기 위한 시장 건물이죠. 살 집을 짓기도 전에 그런 것부터 만드는 거죠. (100쪽)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이 말하는 유럽인이란 위 구절과 같다. 이제까지 주로 백인의 눈으로 그려졌던 아프리카인의 묘사 방식과 아주 다르다. 게다가 그들은 백인의 속셈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들이 보기에 유럽인들은 “땅을 번창시키는 문제로 싸우다가 결국에는 우리 모두를 짓뭉갤” 것이며 “그들이 노리는 건 장사가 아니라 땅 자체” “그 안에 있는 모든 것, 그리고 우리”이다. “그들에게 가치 있는 것은 금과 다이아몬드뿐”으로 그들은 “논쟁하고 말다툼하고 이런저런 것들을 훔치고 소규모 전쟁을 몇 번 하고 나서 지치면 집으로 갈 것”(119쪽)이다. 이 얼마나 날카로운 묘사인가. 그러나 아프리카의 문제가 꼭 백인들의 알력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 그들은 부족끼리도 칼을 겨누고, 계급 차별도 존재하며, “노예들조차 노예제를 옹호”(121쪽)하는 모순도 갖고 있다.

그런 세상에서 어쩌면 가장 약자는 이 가진 것 없는 소년, 아버지의 빚으로 인해 자유를 잃어버린 소년이 아닐까. 유수프처럼 부모가 빚을 지는 바람에 담보처럼 ‘아지즈’에게 팔려온 아이들은 또 있다. 유수프와 비슷한 처지인 칼릴은 아지즈를 아저씨라 부르며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는 유수프에게 끊임없이 경고한다. 너는 그의 실체를 모른다고.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그런데 정말 아지즈의 실체는 어떤 모습일까? 유수프의 눈에는 부와 성공을 거머쥔,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이 ‘사이드 아지즈’의 비밀을 추적하는 데에도 이 책의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사이드의 집, 정확히 말하면 그의 정원에서 두 번째 낙원을 발견한 유수프는 어느덧 자신이 떠나온 집, 고향을 잊어가면서 새로운 세계에 적응해 나간다. 그리고 그 정원에서 어쩌면 진짜 낙원이라고 여길만한 존재도 발견한다. 그러나 첫 번째 낙원이 소년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서져버렸듯이 이 두 번째 낙원도 영원히 소년의 것일 수 없다.  소년이 살아가는 세계는 ‘음모와 증오와 보복적인 탐욕이 단순한 미덕들조차 교환과 교역의 상징’이 되어버린 곳이기 때문이다. 탄탄한 삼나무들과 끊임없는 수풀, 과일나무들과 화사한 꽃들이 있는 담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정원- 오렌지나무 수액의 쌉싸름한 향과 재스민향, 한낮의 더위를 식혀주는 대추나무 숲 등 유수프에게는 천국과도 같았던 그 정원은 억압과 착취, 탐욕을 배제할 수 없는 이 세상에서는 영원히 낙원일 수 없는 그런 공간이다. 그렇기에 소년은 더 나은 곳을 찾아 또다시 떠날 수밖에 없다. 모든 억압적인 것들을 피해서….

소년의 이 또 다른 떠남은 성공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으리라는 것을, 다시 발견하는 낙원 또한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 책을 읽는 모든 이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소년은 또 다시 거기에서 길을 떠날 것이다. ‘스스로를 위한 삶을 살고자’ 또 떠날 것이다. 유수프의 이 끝없는 떠남의 반복은 더 나은 삶, 더 안락한 삶, 자기만의 낙원을 꿈꾸며 나날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그 삶과 닮았기에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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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6-25 2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이 책 읽으려고 내놔서 흐린 눈으로 리뷰 읽고 갑니다. 다보고 와서 다시 볼래요. ^^

잠자냥 2022-06-27 16:04   좋아요 0 | URL
네~ 흐린 눈~ 잘하셨어요. 다 읽으신 후 리뷰도 올려주세요!

케이 2022-06-27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계사를 접할 때마다 유럽놈들은 전쟁에 미쳐버린 놈들 아닐까? 하는 생각 자주 했어요. 잘 살고 있는 나라 쳐들어가서 약탈 강간 전쟁만 일삼은 주제에 세상 고상한 척 다 하며 시혜를 베푸는 듯 구는 모습을 보면 울화가 치밉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그들이 쓴 책이 압도적으로 많이 번역되어 있다보니...그들 시선으로만 세상을 읽게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인사가 늦었어요. 잠자냥님 저는 여전히 육아에 찌들어 살고 있고 여전히 잠선생님 글 잘 읽고 있어요. 눅눅한 계절 상쾌하게 지내시길.

잠자냥 2022-06-27 16:05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 말입니다. 요즘도 아주 그냥 시혜를 베푸느라 바쁘신 그들. 나참....
그래서 비백인 남성들이 쓴 책 읽다 보면 가끔 깜짝 놀랍니다. ㅎㅎㅎ
더운데 육아하느라 힘들죠? 아기들이 건강하게 빨리 크길 바랄게요! ㅎㅎㅎㅎ
 
비평가 / 눈송이의 유언
후안 마요르가 지음, 김재선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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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사이의 권력 관계를 들여다 본 수작 <비평가>와 동물을 통해 인간의 죽음을 성찰한 <눈송이의 유언> 두 작품이 담겼다. 후안 마요르가 희곡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글들도 실려 있어 그의 작품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보너스 같은 책이랄까. 그나저나 눈송이가 고릴라일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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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6-21 18: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기억나요 알비노 고릴라 ㅠㅠ 그 고릴라 이야기군요. DNA보관하고 있다고 하던데. 언젠가 복제될려나요 헉. 이 책 평가가 다들 좋네요 ~

잠자냥 2022-06-21 20:59   좋아요 1 | URL
네, 스페인에 그런 고릴라가 있는 줄 전 이 책 보고 처음 알았어요!

바람돌이 2022-06-22 2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모르는 책이긴 한데 눈송이가 고릴라라는건 강력한 스포 아닌가요? ㅎㅎ

잠자냥 2022-06-22 22:31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렇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