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굴 독깨비 (책콩 어린이) 3
아이반 사우스올 지음, 손영욱 그림, 유슬기 옮김 / 책과콩나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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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를 사지 않으면서도 가끔 로또가 당첨된다면 어떻게 할까 생각해 볼 때가 있다. 몇 십 억 단위로 당첨된다면 몇 억은 누구 주고 또 몇 억은 누구 주고 등등 주로 가족이나, 애인, 친구에게 떼어 줄 생각을 한다. 물론 내 것도 챙기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로또를 사지 않으니 그럴 일은 내 평생 없을 것이다.

 

가끔 읽는 어린이 책에서 뜻밖의 보물(?)을 발견하기도 한다. 호주 작가 아이반 사우스올의 <여우굴>이라는 책도 그중 하나이다. 내용은 처음엔 좀 지루하다. 켄이라는 소년이 홀로 외삼촌 집을 찾아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엄마가 싸준 엄청나게 무거운 가방을 들고, 어른 틈바구니에서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안간힘을 써서 버스를 타고 가까스로 자리를 잡지만(어른들은 누구 하나 이 아이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지갑을 잃어버려서 찻삯도 치르지 못한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버스 운전사는 그냥 내리고 다음에 내라고 한다.

 

그렇게 도착한 외사촌 집은 켄의 집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켄은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전형적인 도시 아이로, 부모들 또한 도시의 삶에 적응해 부유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켄의 엄마의 오빠인 밥 외삼촌은 엄마가 보기에 말 그대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인생이다. 변변한 직업도 없고, 그런데다가 애들은 셋이나 낳아서 호주 어느 오지 같은 산골 마을의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에서 뭘 먹고 사는지 알 수 없는데도 그냥저냥 살아가고 있다. 규칙과 질서, 정돈, 정리, 성공 이런 것에 길들여진, 아니 그런 삶이 온전한 삶이라고 믿어온 켄이 보기에 외삼촌 집은 혼돈 그 자체다. 쉴 틈 없이 시끄럽게 놀아대는 외사촌 휴, 조앤, 프랜시 등도 켄의 정신을 쏙 빼놓는데, 외삼촌이나, 외숙모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집안에는 질서도 정리정돈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여기까지 읽었을 땐 아, 그래서 이 켄이라는 아이가 외삼촌 가족의 자유분방한 삶에 동화해서 서서히 변하는 이야긴가 싶었는데(그래서 좀 지루했는데), 곧 반전이 일어난다.

 

휴는 켄이 놀러왔다는 핑계로 집 가까이 있는 댐 근처 숲에서 하룻밤 야영을 허락받는다. 켄으로서는 이 또한 무시무시한 계획이다. 어른 없이 아이들만, 그것도 하필이면 댐 근처에서 야영을 한다니, 자기 집 분위기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외숙모와 외삼촌은 아무렇지 않은 듯 허락을 한다. 켄은 어쩔 수 없이 휴를 따라가서 불편하고 무섭고 끔찍한 텐트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그런데 사건은 그 다음 날, 날이 희부옇게 밝아올 무렵에 일어난다. 휴보다 먼저 일어난 켄은 텐트 밖으로 나와 주변을 살펴보던 중, 여우가 조앤이 기르는 당닭 한 마리를 물고 달아나는 광경을 보게 되고 정신없이 뒤쫓는다. 그러다가 결국 자기도 모르게 나무딸기 넝쿨이 우거진 곳에까지 들어가게 되고, 여우를 뒤쫓을 때와는 달리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곳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온몸은 이미 여기저기 긁혀서 피투성이다. 사실 이 근처는 동네 아이들이 여우굴이라고 부르면서 왠지 두려워하며 가까이 가기를 꺼리는 곳이다. 잠에서 깨어나 켄을 찾던 휴도 켄의 목소리를 듣고 이 근처까지 오지만, 더는 다가오지 못하고 망설이기만 한다. 이런 사정을 알지 못하는 켄은 왜 외사촌이 자신을 빨리 돕지 않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휴는 이때서야 어른의 도움을 받고자 전날 밤에 아버지가 다급한 일이 있으면 흔들라면서 줬던 종을 신나게 울린다.

 

잠옷 바람으로 나무딸기 수풀까지 달려온 외삼촌과 외숙모- 외삼촌 밥은 귀찮은 일이 생긴 것에 일단 짜증을 내고 켄이 말썽쟁이라면서 투덜대기에 급급하다. 이때부터 약간 이 인간 뭐지? 싶었는데 자, 이제 앞으로 더 기함을 토할 일이 벌어진다. 나무딸기 수풀이 너무 무성해 연장 없이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고, 다시 집에 가서 연장을 가져와 수풀을 잘라내는 일은 더디기만 하다. 그러는 사이 공포와 두려움에 질린 켄은 자신을 돕지 않는 것 같은 외가 식구들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그래서 자기 힘으로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땅이 무너져 내리고 오히려 더 깊은 구덩이 안으로 추락하게 된다. 그리고 켄은 정신을 잃는다.

 

, 조앤, 프랜시 등 어린아이들은 이웃을 데리고 오거나 경찰을 부르자고 하는데 무능하면서도 주변 시선은 엄청 의식하는 밥은 절대로 안 된다고 한다(밥통 같은 인간아!). 처음에는 아내가 잠옷 바람이라고, 애들 또한 잠옷 바람이라서 싫다고 하더니(? 이 다급한 상황에 그게 이유가 될까), 경찰도 부르지 말라고 한다. 자신이 책임을 추궁 당할까봐 두려운 것이다. 게다가 평소에도 자신을 한심하게 여긴 여동생이 자기의 하나뿐인 아들을 죽였다고, 온갖 비난을 퍼부을까봐 그것도 걱정이다. 저기 저 아래 구덩이에서 조카가 떨어져 죽었을지도 모르는데, 이 한심한 인간은 주변 시선과 자기 연민에 빠져 가장 좋은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켄은 정신을 차린다. 온몸이 아프지만 살아 있다! 대체 왜 외삼촌은 날 구해주지 않는 걸까, 여기서 나가고 싶다, 제발 꺼내줘요. 가엾기 짝이 없다. 외삼촌은 어찌어찌해서 켄에게 손전등을 내려 보내준다. 켄은 두려움 속에서도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비춰보다가 놀라운 것을 발견한다. 아이답게 아무것도 헤아리지 않고 소리친다. “외삼촌! 외삼촌은 이제 부자에요!”- 이곳은 사실 오래 전에 중국인들이 금을 찾아 갱도를 여기저기 파놓았던 곳으로, 이 사실은 켄이 도착한 날 저녁에 외삼촌이 허무맹랑하지만 어쩐지 흥미로운 옛날이야기인 듯 들려주었다. 그런데 그게 사실로, 진짜로 있을 줄이야. 황금이 있다는 소리에 외삼촌의 눈빛은 달라지고 얼굴은 기묘하게 빛난다. 외숙모 또한 이상해진다. 아이들이 보기에 제 엄마와 아빠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갈비뼈를 다친 켄은 아픔이 더해 가는데 외삼촌은 자길 구해줄 생각은 하지 않고 이젠 황금에 대해서만 묻는다. 아이들은 켄이 죽을지도 모른다면서 계속 이웃이나 경찰에게 도움을 청하자고 하지만, 밥은 더 단호해진다. 심지어 의사도 부를 수 없다고 한다. 사람들이 여기 황금이 있는 것을 알면 다들 몰려올 것이라고. 게다가 이 땅은 현재 국가의 땅이므로 나라에서 알면 자기들은 황금은커녕 이 집터에서도 쫓겨날지 모른다고 무조건 입을 다물라고 한다. 켄은 그 사이 외삼촌과 외숙모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 “여기 있는 것은 내 탓이 아니에요. 외삼촌네가 나빴어요.”

 

그렇지 않은가. 부모 등에 떠밀리듯 혼자 이곳에 온 것도 억울한데, 원치 않는 장소에서 야영을 하다가 깊은 구덩이에 갇혀 버렸다. 도움을 요청한 어른은 황금에 눈이 멀어 아이를 구할 생각은 하지도 않고, 제 자신이 직접 그 구덩이까지 내려가서 황금을 볼 생각만 한다. 그런 주제에 네 어머니는 사실 그대로 말하면 좋아하지 않을 거다.”라며 켄을 은근히 협박하기도 한다. 켄은 이 구덩이에서 무사히 나갈 수 있을지, 저 밥통 같은 밥은 과연 정신을 차리고 애부터 구할 것인지 한숨과 답답함이 밀려온다. 그런데 이때 당연히 그런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나라면 어땠을까? 아마 나라면 나무떨기 숲을 헤치고 들어가는 게 무리라고 생각했기에 애초부터 잠옷 바람이든 뭐든 경찰이나 119를 불렀을 테지만 그렇게 하면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으니 일단 황금까지 발견했다고 치자. 황금을 무시할 수 있을까? 사지도 않은 로또에 당첨돼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 줄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지는데, 황금광을 발견하고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밥 외삼촌 또한 아이들에게 황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을 약속한다. 훌륭한 집, 자가용, 멋진 자전거, 보석 박힌 침대, 대학 공부 등등. 하지만 켄이 목숨을 읽고 나서도 황금으로 산 것들이 반짝반짝 빛날 수 있을까.

 

, 조앤, 프랜시도 솔깃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저 아래 켄이 더 걱정이다. 아빠가 제발 정신을 차리고 켄부터 구했으면, 그래서 의사를 불렀으면 싶다. 만일 이 책이 성인용이었다면 외삼촌 밥은 끔찍한 선택을 하고도 남았을 것 같은데, 어린이 책이라 그런 결말로는 가지 않는다. 황금을 자기 눈으로 확인하려고 무모하게 구덩이에 내려온 밥은 이제 켄과 함께 구덩이에 빠진 신세가 되고 만다. 올라갈 수 없고 올라가기도 힘겹다. 그리하여 마침내 조앤에게 말한다. 경찰을 부르라고(밥통도 자기 목숨은 소중한가 보다). 조앤은 머뭇거린다. “그럼 그걸 다른 사람한테 말해도 돼요?” 이때 밥은 조금 망설이다가 켄이 본 것은 황금이 아니었다고, 황철광(fool's gold)이었다고 말한다. 조앤은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향해 달려간다. 켄은 외삼촌에게 자신은 절대 비밀을 지킬 수 있다고, 외삼촌을 좋아하니까 비밀을 지킬 수 있다고 말하는데, 켄의 마음에는 상처가 하나도 남지 않을까? 그리고 이 남자, 밥은 정말 자기가 말한 것처럼 이 수많은 황금을 황철광이라고 여기면서 여우굴을 잊을 수 있을까. ‘fool's gold’라는 말이 여러 가지로 의미 깊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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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3-17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는 이 리뷰만 읽어도 힘들어요. 켄이 처한 위험과 두려움이 너무 힘들어요. 형편없는 어른을 만난 것도 너무 싫고요. 아 속상해요 ㅠㅠ

잠자냥 2021-03-17 19:26   좋아요 0 | URL
그 밥통을 제가 한대 때려주고 싶었습니다!!! 으휴 그것도 어른이라고...
 
먹을 수 있는 여자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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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름을 숨긴 채 읽어보라고 했다면 절대 애트우드를 떠올리지 못했을 듯. 작가의 초기작이라고는 하지만 참 진부하고 지루하다. 내가 애트우드 여사의 책을 읽고 이런 느낌을 받을 줄이야. 거장에게도 이런 암흑(?) 시절이 있었구나, 그는 참 일취월장했구나 하는 감상을 얻은 게 소득이라면 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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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3-16 0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감상이 넘 재미나요!
근데 이런 사람들이 더 애착이 가지 않나요? 애초부터 잘 쓰는 재주를 타고난 것들은 재섭어요! ㅋㅋㅋㅋ

잠자냥 2021-03-16 09:40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그러게요. 정감 가는 마 여사님 ㅎㅎㅎ <먹을 수 있는 여자>는 애트우드가 이십대에 썼던 작품이던데 이십대에 쓴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그럭저럭 잘 썼네 싶은데, ㅎㅎㅎㅎ 그후 워낙 대단한 작품이 많아서 이건 정말 마 여사님 작품 아닌 줄 알았어요. 암튼 폴스타프 님은 이건 안 읽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잠자냥 2021-03-16 09:41   좋아요 2 | URL
이 책 읽고 또 느낀 점은 글은 역시 쓰면 쓸수록 느는구나! (음악은 사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잖아요. ㅎㅎㅎ)
 

이십대 후반의 내게 수전 손택은 하나의 본보기였다. 그이처럼 많이 읽고 보고 느끼며 쓰고 싶었다. 심지어 그 말년의 새하얀 머리칼조차 닮고 싶을 정도였다. 요즘 거울 앞에서 검은 머리칼 속에서 가끔 흰머리를 찾으면 그걸 골라내며 생각하곤 한다. ‘하이고, 손택 닮고 싶다 하더니 다른 것도 아니고 흰머리가 나나!’ 예전처럼 100% 그이를 닮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흰머리조차도 달갑지 않다). 그럼에도 죽을 때까지 아직 할 일이 남았다며 죽기를 거부한 그 열정 넘친 삶의 자세, 문학의 뜨거운 추종자이자, 대중문화를 열렬히 사랑하고 옹호함으로써 대중문화와 고급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린 손택의 찬란히 빛나는 글솜씨는 여전히 본받고 싶다. 평생 지성의 세계에 머물기를 바랐고, 그 세계에서 자기만의 성(城)을 쌓는 데 성공한 그의 삶도 닮고 싶다.

손택의 일기인 <다시 태어나다>와 <의식은 육체의 굴레에 묶여>를 이미 읽은 터라 손택의 전기 <수전 손택 - 영혼과 매혹>이 출간되었을 때, 살짝 고민했다. 읽을까 말까. 손택의 일기를 읽은 마당에 전기를 읽는 게 어떤 소용이 있을까? 과연 손택 그 자신이 원하는 전기일까? 그럼에도 결국 이 책을 선택한 까닭은 결국 그 누구도 아닌 ‘수전 손택’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내가 본 ‘나’와 타인이 바라본 ‘나’는 미세하게라도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니엘 슈라이버의 <수전 손택 - 영혼과 매혹>은 손택의 일대기를 중요 분기점에 따라 연대순으로 그리면서 손택이 되고자 했던 문학가이자 지식인으로서의 삶을 하나의 ‘프로젝트’로서 조명한다. 손택은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는 탐독을 통해 자기 것으로 만든 판타지로 구성된 새로운 정체성을 얻고, 평생 신조로 삼은 자기창조를 시작, 온갖 이상과 관심사, 품행과 야망을 아우르는 ‘수전 손택 프로젝트’에 자기의 열정을 쏟아 부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 글에서 내가 손택의 삶을 일일이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손택의 저작에 관해서는 언급할 필요를 느끼는데, 이 저작들은 그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손택이 죽기 전까지 남기고 간 작품은 널리 알려진 에세이집 아홉 권, 논쟁을 불러일으킨 소설 네 편,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영화 시나리오 두 편,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채 남아있던 희곡 한편으로 그의 작품들은 당시 32개 언어로 번역된 상태였다. 대부분의 유럽인은 손택을 에세이 작가이자, 미국인 비평가로 기억할 텐데,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재미있는 점은 손택 그 스스로는 에세이스트나 비평가이기보다는 작가, 그러니까 소설가이기를 갈망했다는 점이다. 아마도 어린 시절 탐닉했던 <마의 산>의 토마스 만 같은 작가가 되기를 꿈꿨던 게 아닐까.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논쟁을 불러일으킨 소설’이라는 표현이 의미심장하다. 에세이스트로서의 명성에 비해 손택의 소설가로서의 자질은 그의 팬임을 자처하는 내가 보기에도 좀 부족해보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 <타인의 고통>, <사진에 관하여>와 같은 에세이들은 얼마나 찬란히 빛나는가. 이 책은 이렇게 지성의 세계에 평생 머물기를 바랐던 어린 소녀 손택이 세계 최고의 에세이스트이자 비평가, 문화예술계 시대의 아이콘이자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우뚝 서기까지의 모습을 다각도로 보여준다.

수전 손택의 십대 시절부터 30세까지의 일기를 다룬 <다시 태어나다>에서 손택은 일찍이 ‘난 글을 쓰고 싶다. 나는 지적인 환경에서 살고 싶다. 음악을 많이 들을 수 있는 문화의 중심에서 살고 싶다. 이 모든 것과 그 이상을 원한다.’ 말한 바 있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언제나 진지하고 열정적이며 사색하기를 좋아했던 아이 수전은 여덟아홉 살 무렵부터 글을  엄청나게 써댔다. 1985년 인터뷰에선 심지어 처음 글쓰기를 시도한 때가 일고여덟 살이라고도 했다. 1987년에는 예닐곱 살이라고 말하며 “희극, 시, 소설”을 썼다고 덧붙였다. 종종 자신을 극적으로 포장하려는 유혹에 사로잡힌 손택이라 어떤 말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찍부터 읽고 쓰는 삶에 빠진 것만은 틀림없다. 어린 시절 손택은 어머니와 불화했고(일기 <다시 태어나다>에서도 이 사실은 또렷하게 드러난다), 가족 안에서 “체류하는 이방인”이라 생각했으며 유년기라는 “장기 복역”에서 석방되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손택에게 ‘손택’이라는 멋진 성(姓)을 남겨준 양아버지는 수전에게 “그렇게 책만 읽다가 남편감 찾기는 그를 거다”라고 훈계했지만 수전은 십대의 치기로 응수한다. ‘이 얼간이는 바깥세상에 지적인 남성들이 있다는 걸 모르는군. 다른 남자들이 다 자기 같은 줄 아나 봐.’

열여섯 살에 대학에 입학, 드디어 새로운 지성의 세계에 진입한 손택은 열일곱 살에 결혼, 열아홉에는 엄마가 된다. <수전 손택 - 영혼과 매혹>의 저자 다니엘 슈라이버는 이를 ‘너무나 맹렬하게 스스로를 밀어 붙여가며 성년기에 진입한 나머지 마치 청소년기에서 되도록 빨리 벗어나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긴 것처럼 보일 정도’라고 했는데, 어느 정도 동의한다. ‘삶이라는 프로젝트를 위한 기준이 확고했기에 여느 10대 청소년처럼 질문과 체험, 시행착오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70쪽)는 평가 또한 그렇다. 나이 많은 남자 필립 리프와의 이른 결혼에는 할 말이 많다. 손택은 어린 나이에 자기의 학문적 우상과 결혼했지만 그 시절 보수적인 남자답게 필립 리프는 수전에게 그리 좋은 짝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일단 그는 젊은 아내가 스스로 정체성을 찾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자기의 연구 활동을 위해 손택이 삶과 자아실현을 희생하기를 바랐다. 프로이트에 관한 중요 논문을 쓰면서 손택과 나눈 수없는 대화와 심지어 손택이 조사하고 작성한 내용을 가져다 썼다. 실제로 당시 비평가와 학계 동료들은 <프로이트: 도덕주의자의 정신>은 두 사람의 공동저작이라고 했을 정도였으나 리프는 학계의 인정을 손택과 나누려 하지 않았다. 이혼 합의서에는 손택이 리프와 함께 심혈을 기울여 작업한 책 <프로이트: 도덕주의자의 정신>을 리프의 단독 저작물로 한다는 조항까지 덧붙였다. 이런 두 사람의 차이는 ‘리프의 머릿속엔 대가족이, 손택의 머릿속엔 대도서관이 있었다’(88쪽)는 구절로도 명확히 드러난다.

손택은 훗날 리프와의 관계를 미화하는 말을 종종했지만 그것은 어쩌면 동성애자로서의 자기정체성을 숨기기 위한 일종의 트릭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이 책에서 그려진 두 사람의 불화는 그다지 심각해 보이지는 않는데, 이와 달리 손택의 일기인 <다시 태어나다>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들을 통해 결혼에 관한 신랄한 그이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결혼을 발명한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그 사람은 천재적인 고문 기술자였다. 결혼은 감정을 무디게 만들려고 작정한 관습이다. 결혼의 핵심은 반복이다. 그 최상의 목적은 강한 상호 의존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결혼에 관하여: 그게 전부다. 더 이상은 아무것도 없다. 끝없이 다시 복제되는 말다툼과 부드러운 애정. 그저 말다툼의 농도가 점점 더 짙어져 애정을 줄 능력을 묽게 할 뿐이다.’ ‘결혼 생활을 하며 내 개성은 일정 부분 사라졌다. 처음에는 그 상실이 유쾌하고 쉬웠다. 이제는 그 상실이 아프고, 쉽게 불만을 느끼는 내 기질을 새로 맹렬하게 자극한다.’ 1975년 왜 리프와 이혼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손택은 여러 삶을 살고 싶었는데 남편과의 공생관계에서는 그게 불가능해 보였다고 말했다. 손택의 삶 중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 리프와의 이혼이 아니었을까.
 
손택은 자존심과 초기 페미니스트적 의식 때문에 남편으로부터 위자로 받기를 거부한다. 게다가 무직 상태였음에도 아들을 위해 양육비를 청구하자는 변호사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한다. 그리고 이 스물여섯 살 싱글맘은 뉴욕이라는 거대 도시로 이주해 작가, 영화감독 지식인으로 살고자 한다. 그리고 혼자 힘으로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마침내 꿈을 이룬다. 1959년 말, 손택은 자신이 남성뿐만이 아니라 여성도 욕망한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데 동성 연인 포네스와 함께 하는 동안 손택은 전에 몰랐던 성적 만족을 경험하고 이것을 글쓰기와 연관시키며 말한다. “나는 글쓰기를 욕망한다.” 글쓰기와 성적 욕구와 밀접히 연관된다는 사실은 점점 뚜렷해졌고 손택은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필요한 이유를 일기에 쓴다. “글을 쓰고자 하는 나의 욕망은 내 동성애와 연관이 있다. 내게는 무기가 될 만한 정체성이 필요하다. 사회가 나를 향해 겨누고 있는 무기에 대항하기 위한 정체성. 이것으로 내 동성애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다만-내 느낌이지만-일종의 면허를 발급받는 거다.”(123쪽). 이 구절은 <다시 태어나다>에서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그럼에도 손택은 평생 자신의 성정체성을 명확히 밝히는 일을 꺼렸는데, 이는 “레즈비언 작가” “페미니스트 작가” 등 꼬리표를 피했던 것처럼 자기 작품이 정체성 정치라는 프리즘을 통해 읽히기를 원치 않았고 커밍아웃을 했다면 의심의 여지도 없이 그렇게 될 게 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1958년, 필립 리프와의 결혼 생활 청산은 곧 아카데미에 갇힌 삶과의 결별을 뜻하기도 했다. 손택은 문학과 영화학, 문화사 같은 분야의 논문에 정통했지만, 그의 에세이적인 글쓰기는 학술적 글쓰기와 상반되었고 손택은 작가의 삶과 학자의 삶이 서로 배타적이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학문적 삶이 우리 세대 최고의 작가들을 파괴하는 것”을 목격했으며 결국 엄청나게 가부장적인 대학 세계에 속한 여성이기를 스스로 거부한다. 이후 손택은 1962년 <파르티잔 리뷰>에 에세이를 발표하고 이듬해 첫 소설 <은인>을 출간하면서 본격적인 ‘수전 손택 프로젝트’에 들어간다. 이 시기는 1964년부터 1980년까지, 손택의 30~40대, 정확히는 31세부터 47세까지의 일기와 메모를 담고 있는 <의식은 육체의 굴레에 묶여>에서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이 무렵의 손택은 작가로서나 한 인간으로서 절정기를 누렸다. <해석에 반대한다>, <은유로서의 질병>을 비롯한 평생의 걸작들이 이때 탄생했다. <의식은 육체의 굴레에 묶여>는 그 무렵 손택의 기록으로 ‘새로운 감수성의 사제’ ‘뉴욕 지성계의 여왕’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 등등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수전 손택과 가장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로서의 위대한 성공 과정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 시절 어울렸던 각계각층의 작가, 예술가, 지식인과의 만남을 보여준다. 또한 어린 시절 꿈꾼 그대로, 마음만 먹으면 어디로든 여행할 수 있는 여력, 이 모든 걸 얻었음에도 ‘여전히 열렬히 배우는 학도’로서의 모습을 담담하지만 열정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손택의 일기 3권은 아직 출간이 되지 않아 그 말년의 기록을 읽을 수는 없었는데 <수전 손택 - 영혼과 매혹>에서 그 갈증을 조금 채울 수 있었다.


내 독서는 탐욕스러운 사재기. 축적. 미래를 위한 비축. 현재의 빈 구멍을 채우려는 노력이다. -<다시 태어나다>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내 옷장에 걸려 있는 옷가지처럼 바로 곁에서 낡은 감수성이 기다리고 있다 해도, 새로운 감수성을 포기하지 않기. -<의식은 육체의 굴레에 묶여>

“하루는 24시간이지만 저는 하루가 48시간인 것처럼 살려고 노력합니다.” -<수전 손택-영혼과 매혹>


어린 시절에는 탐욕스러운 독서로 자기만의 지성의 세계를 쌓아가고, 작가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에도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 하던 수전 손택. 손택은 암과 투병하고 백혈병으로 싸우면서도 하루가 48시간인 것처럼 살고자 노력했고 실제로 또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그 열정은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영향력을 발휘해, 삶을 긍정하는 충동으로 작용했다. 무엇보다도 손택은 ‘세계문학에 새 생명을 불어놓고 문학의 우수성을 열정적으로 옹호’함으로써 손택이 아니었다면 파묻히고 말았을 작가들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손택이 읽은 다음, 그 특유의 ‘주제가 되는 작가와 작품의 특징을 적절히 물 흐르듯 전기를 그려’냄으로써 세계에 그 이름을 알린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가. 다니엘 슈라이버는 손택의 그러한 행위가 그 자신이 꿈꾼 “위대한 도서관을 위한 프로젝트”를 실질적으로 확장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말하면서 손택이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더라면 후안 룰포와 같은 작가의 책이 영어로 번역되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하는데 그러한 평에 나 또한 크게 공감한다. 어디 후안 룰포만 그러할까. 제발트를 비롯해 로베르트 발저, 레오니드 치프킨 등등 위대한 작가를 나 또한 손택을 통해 알게 되지 않았던가.

“아무리 미세한 것이라도, 난 ‘모든 걸’ 바꿔 놓을 사람이나 예술 작품과 조우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던 수전 손택. 손택은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여러 책을 남겼다. 그는 “책을 많이 쓰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지금으로부터 100년 뒤에도 읽을 탁월한 책을 몇 권 쓰고 싶어요.”라고 말했는데, 그의 빛나는 에세이 <은유로서의 질병>, <타인의 고통>, <사진에 관하여>, <해석에 반대한다> 등은 틀림없이 100년 뒤에도 읽히며 여전히 사람들에게 놀라운 영감을 줄 것이다. 손택과 가까이 지낸 출판 에이전트 앤드루 와일리는 일흔을 앞두고도 손택은 나이든 여성처럼 행동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만년에도 손택은 여전히 스물한 살 같았습니다. 언제나 모르는 것에 관심이 있었죠. 많은 사람이 만년에 이르면 자기가 아는 것에 의존하죠. 하지만 수전은 어제 태어나서 여전히 온 세상이 신세계인 것처럼 살았습니다.”(399쪽) 언제나 온 세상이 신세계인 것처럼 뜨겁게 살았던 수전 손택. 손택은 여전히 나에게 자신처럼 갈망하고 읽고 보고 생각하고 쓰고, 또 쓰라고, 그렇게 뜨겁게 살라고 외친다.


















내 책꽂이의 손택 코너- 저 빛나는 에세이들! 정녕 지성의 전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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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3-15 10: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모으는 중인데 부럽게도 한 장을 꽉 채우셨네요! 처음 <타인의고통>읽고 몰랐던 세계가 열리는 느낌이었어요. 암과 백혈병까지 겪었군요. 덕분에 어서 읽어야지하고 자극이 팍팍됩니다👍

잠자냥 2021-03-15 10:48   좋아요 2 | URL
암은 이겨냈으나, 결국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손택의 책 꼭 다 읽어보세요.....(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희곡 <앨리스, 깨어나지 않는 영혼>도 저는 좋았어요. 요즘 읽으면 또 더 할 말이 많은 작품 같기도 합니다.)

다락방 2021-03-15 10: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책장 너무 근사하네요, 잠자냥 님! 저는 한나 아렌트로 이렇게 채우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라고 수전 손택에 관한 글을 읽고 씁니다

그나저나 잠자냥 님 이십대에 수전 손택이라니, 너무 멋져요! >.<

잠자냥 2021-03-15 10:54   좋아요 2 | URL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하나로 모아두는 것 정말 뿌듯하죠.
제게 없는 손택의 책은 소설 <화산의 여인>하고 희곡 <앨리스, 깨어나지 않는 영혼>인데.... 이것이 참 소설과 희곡이라 선뜻 손이 안 가기는 하네요. 하하하하
한나 아렌트로 채우는 것도 정말 멋질 거 같아요!

그 옛날(?)에 손택 책 꾸준히 내놓던 ‘이후 출판사‘가 워낙 찾는 사람이 없어서 망하는 거 아닌가 조마조마했는데, 최근 손택 붐(?)이 일어 책이 잘 팔리는 거 같아 안심했어요. ㅎㅎㅎ 손택 일기 3권도 곧 이 출판사에서 나올 테고요.

새파랑 2021-03-15 11: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작가에 대한 애정이 책장에서 느껴지네요. 부럽습니다~ 한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잠자냥 2021-03-15 11:06   좋아요 5 | URL
ㅎㅎ 손택 님은 저를 전혀 모르겠지만 저는 손택 님을 사...사...사모합니다. ㅋㅋㅋㅋ
손택 저서를 읽으신다면 일기나 전기부터 시작하기보다는 <사진에 관하여>, <타인의 고통>, <은유로서의 질병> 같은 그의 저작부터 읽으시는 걸 추천합니다.

syo 2021-03-15 1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의 옷을 입은 <손택 약전>같은 느낌이어요!
손택 코너 정도는 갖춰줘야 손택 약전을 쓸 수 있는 거군요...

잠자냥 2021-03-15 12:40   좋아요 1 | URL
하하하, 그렇기도 하네요. ㅎㅎ
이 약전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손택 코너 플러스 ‘애정‘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syo 2021-03-15 12:42   좋아요 2 | URL
그러네요. 애정이 없다면 코너를 만들 정도로 책을 모으기도 어려웠을 것 같아요. 이게 다 근본적으로는 ‘사...사...사모‘의 위력이었군요 ㅎㅎ

행복한책읽기 2021-03-15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 손택 코너, 진정 지성의 전당입니다. 저는 딱 한 권 읽고 이 언니에게 반했지만 약간 범접 불가 연예인 언니여서 몇 권 모셔만 놓고 연예인 사진 보듯 헤벌쭉 보곤 합니다. 잠자냥님은 친언니처럼 끼고 사는군요.^^

잠자냥 2021-03-15 17:08   좋아요 0 | URL
하하하, ˝친언니˝ 재미난 표현입니다. 범접 불가 연예인이라는 말씀에도 공감이 가고요. ㅎㅎ

난티나무 2021-03-15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먼저 읽으라고 추천해주신 세 권 저도 먼저 사야지 생각하던 책이라 반갑습니다.^^ 또 사야 합니다.^^;;;;;;

잠자냥 2021-03-15 23:08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 세 권은 사놓으면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수전 손택 - 영혼과 매혹
다니엘 슈라이버 지음, 한재호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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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문학과 예술, 지성을 좇는 데 바친 열정적인 한 여성의 삶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손택의 일기와 비교해 읽으니 이 책의 미덕은 손택의 장점도 단점도 독자가 다 아울러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이 아닐지. 손택 본인은 소설가이길 그토록 바랐는데 내겐 역시 영원 불멸의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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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 못하는 여자 - 린다 B를 위한 진혼곡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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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생활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역적으로 몰려 유배당하는 상황은 드라마나 영화, 책에서나 만날 법하고 그렇기에 그런 생활도 언뜻 그다지 나쁠 것 같지는 않다. 옛 선비들은 유배지에서 안빈낙도하면서 그럭저럭 지내는 것처럼 보이기에 더 그런 것 같다. 그런데 그 유배 생활이 현대에, 그것도 한참 꿈꾸고, 한참 자유롭게 돌아다닐 나이의 젊은 여성에게 형벌처럼 주어진다면 어떨까? 고작 몇 평의 공간으로 한정된 감옥살이가 아니니 덜 끔찍하지 않겠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단지 저 머나먼 외딴 도시에서 살아가는 것이니 완전히 자유롭지 않은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이스마일 카다레의 <떠나지 못하는 여자 - 린다 B를 위한 진혼곡 >을 읽기 시작한 초반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작품은 남녀의 말다툼 장면으로 시작한다. 여자는 눈물을 흘리고, 남자는 그런 여자가 짜증스러워 온갖 비난을 퍼붓다가 결코 해서는 안 될 말까지 한다. 다른 나라라면 그런 비난을 할 리가 없는데, 이곳은 공산독재가 한창인 1980년대 후반의 알바니아. 그렇기에 “당신 정체가 뭐야, 스파이야?”라는 남자의 말은 여자에게도, 또 그 자신에게도 치명적이다. 남자의 이름은 ‘루디안 스테파’. 극작가인 그는 공산독재 치하에서도 그럭저럭 검열을 피해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있었고, 작가로서의 명성도 인기도 얻고 있다. 말다툼을 벌인 여자 친구 ‘미제나’도 작가로서의 명성과 인기를 통해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출판 사인회에서 만났으니까.

그런데 루디안은 어느 날 문득, 아무런 설명 없이 당 위원회의 소환을 받고 불안감을 느낀다. 예술 심의회에서 검열중인 새 작품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미제나가 고발한 것일까? 말다툼 중 “당에서 붙인 스파이가 아니냐”며 몰아붙인 것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게다가 그때 싸움 중 책꽂이에서 떨어진 책들 중 몇몇은 공산독재에 비판적인 책들이 아니었던가. 이래저래 불안한 마음으로 당 위원회 소환에 응한 그는 그곳에서 뜻밖의 사실을 맞닥뜨린다. 한 여성이 자살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언젠가 루디안이 ‘린다 B에게. 저자의 추억을 담아.’라고 친필 사인을 해준 사람이다. 그렇게 사인을 해준 사람이 한둘도 아닌데 그걸 어떻게 일일이 기억하며, 심지어 그 여자의 죽음에 자신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루디안은 답답할 뿐이다.

알고 보니 이것 참, 문제이긴 하다. 죽은 여자, ‘린다 B’는 이 나라 유서 깊은 가문 출신으로, 그 집안은 군주제 시절 옛 왕실의 측근이었다. 그리고 현재 유배상태이다. 그런 상태였던 린다의 일기장에 루디안의 이름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린다는 루디안을 향해 꽤 달콤한 감정을 키우고 있었고 당위원회가 보기에 그 감정은 단순한 팬 수준을 넘어섰다. 그렇기에 ‘린다 B에게. 저자의 추억을 담아.’라는 루디안의 사인은 심상치 않은 것이다. 게다가 당국은 유배당한, 옛 왕실 측근 여성의 자살에는 무언가 메시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해석해 촉각을 곤두세운다. 알바니아 역사를 통틀어 가장 대규모로 진행된 음모소탕의 계기였던 총리자살사건 이후 당국은 아무리 평범해 보일지라도 모든 자살 뒤에 감춰져 있을지 모르는 것을 추적해왔다는 것이다. “자살을 통해 종종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는 것이 당국의 생각이다.

루디안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이 린다 B라는 여성에게 직접 사인해준 기억이 없다. 게다가 자기를 향해 그토록 달콤한 감정을 키운 여성이라는데,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기억을 더듬던 그는 마침내 린다와 자기 사이에 미제나가 있음을 깨닫는다. 그랬다. 미제나는 친구에게 주겠다면서 루디안에게 사인을 받아갔던 것이다. “제 친구가 아주 기뻐할 거예요. 선생님을 정말 좋아하거든요,”라는 말을 남겼던 그녀. 눈부시게 아름다웠기에 그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던 루디안은 그때를 계기로 미제나와 연인 사이가 된다. 그렇다면 미제나는 정말 당국이 심은 스파이일까? 죽은 린다와는 또 무슨 관계일까? 단순히 친구일까? 이 작품의 재미는 무엇보다 이 세 사람의 관계를 밝혀나가는 데 있고, 두 번째로는 린다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었는지,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좇아가는 과정에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독자는 린다의 베일이 벗겨질수록 그 젊은 여성의 안타까운 삶에 연민하게 되고 그런 삶을 살게 한 공산독재 알바니아 현실에 분노하게 될 것이다.

스탈린이라는 인물과 종교 금지, 또는 정치국에 대해 조금이라도 지적을 하면 군 장교나 충성스러운 공산주의자는 감옥에 갔고 심지어 처형부대를 마주하게 되는 알바니아. 모든 전화는 도청되고 있으며, 넷 중 한 사람은 국가를 위해 감시를 한다는 소문이 진실처럼 여겨지는 알바니아. 이런 나라에서 옛 왕실의 측근 집안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유배생활을 하는 린다 B. 그런 그녀에게 저 멀리 떨어진는 수도 티라나는 그녀가 꿈꿀 수 있는 이상향과도 같다. 한 번도 발을 들여놓지 않은 도시를 린다처럼 그렇게 사랑한 사람은 없었다. 미제나는 갈 수 없는 도시이기에 그런 거라고 말하고 싶지만 유배 법규를 알고 나자 그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린다는 매일 오후 정해진 시각에 경찰서에 출두해야 하며, 허락받지 않고 지정된 구역을 벗어날 경우 당연히 처벌을 받는다. 인근 도시마다 정해진 형벌이 있었는데, 더 먼 도시로 가는 경우엔 형벌이 가중된다. 수도 티라나는 최고형이었다. 무기징역 또는 사형. 그런 린다에게 미제나는 세상 소식을 전해주는 유일한 통로이다. 심지어 린다가 꿈꾼 루디안과의 사랑까지도 어쩌면 대신 이뤄줄 수 있는 존재.

사실 처음에는 루디안을 향한 린다의 맹목적인 애정이 생뚱맞게 느껴지기도 했다. 작가에게 아름다운 여성들이 불나방처럼 달려든다는 설정은 남성 작가들의 판타지가 아닐까 생각하는 내게 이 또한 조금은 그런 판타지로 보여서 우스꽝스러웠던 것 같다. 그러나 린다에게 루디안은 단순한 애정의 대상이 아니었다. 적어도 이 년 전부터 신문의 연극 관련 비평이나 라디오 뉴스나 텔레비전 출연을 지켜봐온 남자.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토록 오래전부터 만나길 꿈꿔온 남자, 루디안은 린다에게는 갈 수 없는 도시 ‘티라나’와 같은 대상이다. 그 사랑마저도 결코 이룰 수 없는. 단 몇 시간의 정상적인 삶을 살고자 차라리 암에 걸리기를 바랐던 린다. 그런 린다에게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강력할수록 자유는 크리라’는 말은 얼마나 공허한가.

미제나는 티라나만 가면 자유가 있으리라는 린다에게 그 생각이 얼마나 헛된지, ‘알바니아는 감옥과 유배지에만 자유가 없는 게 아니라 다른 곳도 마찬가지라고. 티라나에도 자유는 전혀 없으며 다른 곳도, 그 어디에도 자유는 없다’는 말을 들려주지만 이토록 충격적인 말에도 린다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린다는 ‘모든 건 관점의 문제’라고 말한다. 거주지를 지정당한 채 평생 살아야 하는 린다에게 티라나는 그녀가 꿈꿀 수 있는 최대한의 자유였다. 그런 린다를 지켜보노라면 단 하루도 자유를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 어디에도 그 어떤 희망도 걸지 못한다는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절망스럽고 끔찍한 현실인지 깨닫게 된다.


고마워, 프롤레타리아독재. 난 네가 얼마나 선하고 올바르고 완벽한지 알아. 학교에서 우리 머리에 그렇게 주입했으니까. 그렇지만 난 너무 지쳤어. 이런 삶을 더는 못 살겠어. (183쪽)


린다의 이 처연한 삶을 마주하게 된 루디안은 죽어서도 좀처럼 자유를 얻을 수 없는 저 지옥에 갇힌 린다를 상상 속으로 불러낸다. 지옥에 갇힌 에우리디케를 구해내고자 한 오르페우스처럼. 오르페우스와 달리 루디안은 린다, 그녀를 구해낼 수 있을까. 스스로 목숨을 끊은 린다는 죽은 뒤에야 마침내 티라나에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정녕 자유일까. 그녀의 죽음에 관한 진실은 묻어버리고 자기들 입맛에 맞게 해석하고 날조하는 당 관계자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린다는 그 알바니아에서는 끝끝내 자유로울 수 없음을, ‘떠나지 못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린다가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은 오직 극작가인 루디안의 상상 속에서, 그러니까 예술의 품안에서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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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3-10 1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바니아 출신 독재자 엔베르 호자가 스탈린
빠였다고 하더라구요 :>

린다의 루디안에 대한 끌림은 카다레 작가가
꼰대라는 사실의 방증이 아닐까 뭐 그런 생
각이 초큼 들었습니다.

잠자냥 2021-03-10 13:17   좋아요 1 | URL
저도 이 책 읽고 알바니아는 물론 엔베르 호자에 대해 많이 찾아봤어요. 요즘 알바니아에서는 호자를 그리워하기도 한다는군요.

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진짜 린다나 미제나나 그 이름다운 여성들이 루디안한테 끌히는 거 너무 ㅋㅋㅋㅋㅋ 아 진짜 그 설정이 못마땅해서 별 하나 뺐습니다. ㅋㅋㅋㅋㅋ (암만 생각해도 작가 판타지)

다락방 2021-03-11 0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다레 꼰대 입니까? ㅋㅋㅋ 저는 오래전에 <부서진 사월> 하고 그 뭐더라 .. <사고> 읽었는데 하도 오래전이라서 카다레 존재를 잊고 있었네요. 그런데 잠자냥 님의 이 리뷰를 보니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카다레 꼰대..라는 여러분의 댓글을 읽고 나니, 문득 이게 남자 작가들의 고질적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글은 쓰는 자의 몫이고 쓰는 자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든 자유지만, 남자 작가들은 남자 주인공에 자신을 반영해서 로망 실현 하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그걸 제일 심하게 느꼈던 게 박범신이었거든요. <은교> 에서 근육질 할아버지 만들어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교복 입은 소녀도 멋지게 생각하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진짜 다시 생각해도 어처구니. 하하하하하.

오늘 올리신 책 리뷰 읽는데 ‘밀란 쿤데라‘의 <농담>도 겹쳐 생각나요. 농담 한 번 잘못했다가 끌려가는 등장인물이 나오는...

아무튼 저는 이것도 장바구니에. 통 읽을 시간은 없지만 말입니다.

잠자냥 2021-03-11 09:42   좋아요 1 | URL
ㅎㅎ 저는 꼰대까지는 생각못했는데, 너무 아름다운 젊은 여성들이 별로 매력적이지도 않은 남자 작가를 작가라는 이유만으로 동경하고 사랑하게 되는 내용은 좀 싫더라고요. 남자 작가들 판타지 같아서 보고 있으면 좀 웃기기도... 근데 또 찰스 부코스키의 화려한 여성 편력 경우를 보면 그게 완전 허황된 이야기 같지는 않고... 그래도 실제로 그런 것과 작품 안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그런 설정을 하는 것은 좀 별개라고 생각돼요. 어우 박범신 은교 줄거리만 봐도 짜증나서 영화도 책도 다 패스한 그 작품.... 휴... ㅋㅋㅋㅋㅋ

<농담> 정말 재미있고 좋은 작품이죠. 공산독재 치하라는 설정이 공통점이네요.

모쪼록 바쁘신 시기 얼른 지나고 마음껏 읽고 쓰는 시간이 어서 돌아오길 바랍니다.

다락방 2021-03-11 0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좋아요 ☺️ (뜬금)

잠자냥 2021-03-11 09:59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요즘 힘드시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