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 레이디
윌라 캐더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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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화려하고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그래서 오래 갈 수 없었던 시절, 또는 그런 그 무엇에 관한 이야기. 책장을 덮고서도 한동안 아련하고 쓸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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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1-31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2월에 책 안살건데요..🥺🥺🥺🥺

잠자냥 2021-01-31 22:49   좋아요 0 | URL
3월에 사요~ ㅎㅎ
 
노멀 피플 아르테 오리지널 11
샐리 루니 지음, 김희용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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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수록 짜증나는 작품은 또 오랜만이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도 아니고 서로 마음 확인하는 데 그렇게 돌아가야 하는지. 사랑이 서로 좋은 영향을 끼친다면 코넬은 세상으로 훨훨 날아가는데 메리앤에게 남은 건? 그저 평범한 사람되기? 결말도 짜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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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1-01-31 0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같은 면에서 짜증났었어요 ㅠㅜㅜ

잠자냥 2021-01-31 09:59   좋아요 0 | URL
하 진짜 책 다 읽고 너무 울화통 ㅜㅜ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
한나 렌 지음, 이영미 옮김 / 엘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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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내 생각대로 다스릴 수 있다면 그리하여, 고통도 상처도 받지 않는다면, 이 세계에 모든 불화와 다툼, 전쟁이 사라진다면 그런 ‘매끄러운 세계’는 정말 행복하기만 할까? 한나 렌의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은 첫 문장부터 아리송하다. “찌는 듯한 더위에 잠이 깨, 커튼을 열고 창밖으로 눈 풍경을 바라보았다”라는 이상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여고생 ‘하즈키’는 등교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아버지와 함께 아침을 먹는다. 그런데 집을 나서는 하즈키에게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 아버지 기일이니까 일찍 들어와.” 그제야 하즈키는 아,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지 벌써 4년 지났지 한다. 대체 무슨 소리야? 이 아이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충격으로 정신이 이상해졌나? 현실과 꿈이 뒤섞인 세계인가? 알쏭달쏭하기만 한데, 하즈키가 학교로 가는 길은 더 가관이다. 30도 가까운 열기에 달궈진 아스팔트인데 벚꽃이 흐드러지고, 중간부터는 길가의 철 이른 낙엽이 바스락거리고, 얼어붙은 수면이 공존하는 세계. 수업 중 창 밖을 보니 더운데 눈이 내리고 있다. 기상이변인가?

아, 이곳은 무한한 평행 세계를 의식만으로 자유롭게 넘나드는 ‘승각’이라는 독자적인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무한대 현실’에서 마음에 드는 현실을 선택해 넘나들 수 있다. “할아버지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는데 묻고 싶은 얘기가 아직 남았어. 할아버지가 살아 계신 현실로 가자.” 라는 대화가 당연하다는 듯이 오가며, 회피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즉시 다른 시공간의 자신에게로 옮겨갈 수 있다. 팔다리를 다치든. 시각이나 청각, 혹여 가족을 잃어도, 이곳에선 사는 세계를 슬쩍 바꾸면 그만이다. 괴로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 언제든 돌아올 수 있고, 돌아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하즈키가 죽은 아버지와 아침상을 즐겁게 함께할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지 않은 세계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이 ‘매끄러운 세계’ 사람들은 모두 절대적인 이상향에서 살고 있다. 고통이나 슬픔을 느껴도 그것들이 없애버릴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고, 실제로도 언제든 그 가능성을 이룰 수 있다. 사랑받지 못하면 사랑받는 현실로 가면 되고, 영원한 생명을 원하면 그것을 이룬 현실로 옮겨가면 된다.

그렇다면 이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 ‘매끄러운 세계’에도 ‘적’은 있다. 하즈키의 학교로 전학 온 ‘마코토’는 매끄러운 세계에 사는 여느 사람들과 달리 반항적이면서도 부정적인 기운을 내뿜는다. 분명히 하즈키와 어린 시절 친구였는데 마코토는 싸늘하게 모르는 척, 냉정하기만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알고 보니 마코토는 사고를 당해 다른 ‘일반인’들과는 달리, 오직 하나의 현실만을 평생 살아가야만 하는 ‘승각장애’를 갖게 되었다. 이 장애가 있으면 모든 도망이 불가능하다. 승각장애자의 세계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확률이 낮은 어떤 가능성이 실현된 현실을 인식할 수 없기에 한 여름에 눈을 보기 어렵고 벽을 통과하는 일은 말도 안 된다. 지금까지 그런 능력이 있었던 인간에게는 괴로운 일일 것이다. 하즈키는 그제야 처음으로 깨닫게 된다. 이 평화로운 세계가 누군가에게는 잔인하기 짝이 없을 수 있음을.

‘인생에 옆길도 샛길도 없다’는 승각장애를 지닌 마코토에게는 또 하나의 엄청난 공포가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버리고 다른 내가 있는 쪽으로 가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공포. 전에는 평범한 이 세계의 일원이었던 마코토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유한한 생명도 유한한 가능성도 아니다. 자신들을 계속 지켜봐주는 누군가가 이 세계에 존재할 수 없다는, 아마도 이 세계의 정상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 현실이다. “달리기도 인생도 이젠 나 혼자 해쳐나갈 생각이야. 나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니까.”(52쪽)이라는 마코토의 말은 그래서 애잔하다. 이 절대고독에 놓인 마코토를 위해 손을 내민 하즈키는 과연 마코토를 구원할 수 있을까?

<미아하에게 건네는 권총>과 <홀리 아이언 메이든>은 인간의 감정을 조작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세계를 그린다. <미아하에게 건네는 권총>의 세계에서는 뇌 조작을 통해 인간에게 불멸의 사랑을 선사한다. 이곳에서는 언젠가 서로 사랑이 식어갈 것을 두려워하는 커플이 영원한 사랑을 위해 임플랜트로 자신들의 감정을 조정할 수 있다. 특정 인간을 영원히 사랑하기 위한 장치인 총 ‘웨딩나이프’의 발명으로, 과학은 흔들림 없는 사랑, 불멸의 사랑을 인간에게 선사한다. 배우자에 대한 사랑, 자식, 이웃에 대한 사랑 등등 반응 회로는 다양하다. 이 기술의 응용으로 인류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사랑이 깃든 가슴으로 마주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결혼을 앞둔 사람들은 너도나도 이 웨딩나이프로 서로에게 총을 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영원한 사랑을 거부하는 이는 동반자로 선택할 수 없다’는 사상이 이 시대 사람들에게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다. 만일 이런 총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어떨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이 총을 쏠까? 나도 총에 맞기를 주저하지 않을까? 그렇게 뇌 조작을 통해 박제화한 사랑, 감정은 진짜 감정일까?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사랑의 화살을 쏘는 큐피드가 떠오르기도 한다. 큐피드의 화살을 맞으면 누구나 눈앞의 상대에게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 사랑은 진짜 감정일까? 조작된 감정은 아닐까? 사랑이라는 감정에는 질투나 의심, 권태 등등의 부정적인 감정도 따르기 마련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컨트롤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랑이 계속 유지되든지, 아니면 끝나든지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웨딩나이프’는 애정의 방향을 영원히 식지 않는 한 방향으로만 고정시킴으로써 다른 감정이 생겨날 가능성, 그런 인격들을 사전에 모두 차단한다. 이 사랑을 과연 진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홀리 아이언 메이든>의 세계에서는 한 번 포옹만으로 증오와 미움을 가진 사람들도 모두 올바른 심성을 갖게 된다. 그런데 이 포옹을 받고 올바른 심성을 가진 인간이 된다하더라도 그 올바름이 과연 나 자신의 것일까? 게다가 자기가 가진 힘으로 다른 이의 마음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면, 그래서 세계의 대부분을 나에게 찬동하는 올바른 마음을 지닌 사람들로 만들 수 있다면 과연 나는 그런 유혹을 이겨낼 수 있을까?

마지막 작품 <빛보다 빠르게, 느리게>는 우리나라 독자라면 쉽게 읽어 넘기기 어려울 작품인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즐겁게 읽어나가다가 마지막 작품에서는 예상치 못한 타격을 받았다. 한 고등학교 졸업식 장면이 그려진다. 그런데 그해 졸업생은 이상하게도 단 두 사람뿐이다. 기노카미 사립 고등학교 제47기 학생들은 3년 전 4학급 117명으로 입학했는데, 오늘 1학급 2명으로 졸업식을 치르는 것이다. 이때부터 가슴이 서늘해진다. 그러다가 “47기 졸업생 여러분을 엄습한 것은 역사상 초유의 재해였습니다. 거기에 휘말리지 않은 두 학생도, 학부모 여러분도 아직 받아들이기 힘드시리라 생각합니다. 하루하루 세월은 흐르고 있지만 여러분의 마음은 여전히 그날에 갇힌 채 시간이 멈춰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부디 우리 어른들이 결코 잊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라는 졸업식 축사에서는 그만 울컥해진다. 세월호를 떠올리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 졸업생석에 앉을 예정이었던 친구들 2학년 D반, 115명은 끝내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대체 이 고등학교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역사상 초유의 재해’란 무엇일까?

모든 학생들은 현재, 인솔 교사와 함께 수학여행을 갔던 도쿄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최근 600 여 일 동안’이라는 문장이 이어진다. 그들은 아직도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수학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신칸센이 갑자기 멈춰버렸다. 열차만 멈춘 것이 아니라 그 열차 안에 있는 사람들도, 열차가 멈춘 순간 하던 동작 그대로 모두가 멈췄다.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다가 멈춘 아이, 게임을 하다가 멈춘 아이, 웃다가 그대로 멈춘 아이 등등. 이 기묘한 사건을 조사하다가 사람들은 신칸센이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열차 안에서도 시간은 흐른다. 열차가 움직이기는 한다. 다만 열차 안의 시간이 1초 경과하는데, 밖의 시간으로 약 2600만초가 필요하다. 그 안의 시간은 밖의 시간의 약 2600만 분의 1로 열차 안의 인간은 그 속도로 생각하고, 숨 쉬고, 땀 흘리며 평상시처럼 살아간다. 열차의 현재 위치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결론적으로 이 열차는 다음 정차역인 나고야 역에 반드시 도착한다. 서기 4700년 무렵에.

그러니까 그날, 수학여행을 떠나지 못한 다른 두 명의 학생이 사건이 발생한지 600여 일이 지나, 졸업식을 하기에 이르렀을 때도 그 열차 속 아이들은 아주아주 느리게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나라에서는 신칸센을 움직여 보려고 온갖 수를 다 써보지만 열차는 꿈쩍도 하지 않고, 열차 유리창을 깨고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 그런 와중에도 시간은, 세월은 흘러 졸업식을 치른 두 학생은 어른으로 자라, 사회인이 되어간다. 언론과 사람들은 처음에는 이 사건에 충격을 받았다가, 제 나름대로 ‘소비’하고 그러다가 점점 잊어간다. 이제는 국가 공무원들이 이 열차가 그간 얼마나 움직였는지 그 너무도 미진한 속도를 형식적으로 기록할 뿐이다. 그럼에도 그 열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가족들, 나라에서 ‘유족’이라고 부르는 그들은 아이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아이들은 과연 돌아올 수 있을까. 돌아오더라도 가족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일 텐데. 이 기다림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빛보다 빠르게, 느리게>는 저속화된 신칸센을 가정하고 이를 둘러싼 두 가지 의문, 왜 두 학생은 저속화된 신칸센에 탑승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저속화된 신칸센에 갇힌 사람들을 어떻게 구해낼 것인지를 풀어나간다.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은 감정도, 현실도 마음대로 통제해서 평화롭고 행복하게만 살아갈 수 있는 너무나 매끄러운 세계가 펼쳐진다. 그러나 그곳에는 당연하게도 그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또는 스스로 거부하는 인간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싸우고, 자기가 처한 조건을 제 자신이 지배하려고 애쓴다. 설령 그로 인해 더 나쁜 소멸의 길을 거치게 된다 하더라도 그 또한 인간의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고 행동에 뛰어든다. 그리고 그 행동의 동기는 ‘나의 행복’이 아닌 ‘너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물론 그건 결국 나의 진정한 행복을 찾는 길이 된다. 사실《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은 여러 의미에서 내게는 가까이 하기 먼 당신이었다. 나는 SF라는 장르를 그리 즐기지도 않고, 이 책은 표지가 전하는 느낌도, 현대 일본 여성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도, 심지어 정세랑이나 천선란의 극찬에 가까운 추천사도 내게는 전혀 매력적인 요소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한번 읽어보고 싶었고, 읽기를 마친 지금은, 그 모든 ‘편견’에 가까운 꺼려지는 이유들을 제쳐두고 읽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SF는 현실 세계를 빗대어 인간이 살기 좋은 세상은 어떤 세계인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하곤 하는데, 이 책 또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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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
한나 렌 지음, 이영미 옮김 / 엘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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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더 읽어보고 싶어지는 작가. 모든 작품이 좋지만 ‘빛보다 빠르게, 느리게‘는 우리나라 독자라면 그저 SF로 쉽게 읽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읽다가 여러 부분에서 울컥했다. 빛보다 느리더라도 좋으니 돌아올 수 있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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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정기구독한 적이 있다. 몇 년 동안 꾸준히 읽었는데, 국내 신문에서는 볼 수 없는 깊이 있고 넓은 시각으로 다룬 양질의 기사에 크게 만족했다. 그러나 갈수록 국내 기사 비중이 커져서 조금 실망스러운 느낌이 들어 구독을 끊었다. 지금은 구독하지 않지만 언제라도 다시 정기구독할 의사가 있는, 그리고 주변에도 권하고 싶은 보기 드문 신문임은 틀림없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서 지난 가을 문화인문 계간지인 <마니에르 드 부아르>를 발간한다는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반가웠다. 독자 북펀드 형식으로 창간했는데,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북펀드에 참여했다. 그런데 내가 중간에 신청을 뭘 잘못한 것인지, 첫 호 북펀드에서는 결국 누락되고 말았다. 그래서 첫 호 <예술가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알라딘에서 구매해서 읽었고, 역시 기대 이상으로 좋았던 터라 2<문학, 역사를 넘보다>를 발간할 때 다시 북펀드에 참여했다. 이때는 1년 정기구독까지 신청했다.

 

2호를 꼼꼼히 읽고 나니, <마니에르 드 부아르>는 정기구독이 끝나도 계속 구독해서 읽을 것 같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엄청난 양의 기사를 한 달에 한 번 빠짐없이 읽어내기가 버거웠는데(그래서 나중에는 다 못 읽고 쌓이기도 했다), <마니에르 드 부아르>는 계간지 형식이라 기사를 다 읽지 못하고 잡지가 쌓이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1호 예술, 2호 문학 등등 너무나 흥미로운 주제가 깊이 있게 펼쳐지니 읽는 맛이 짜릿하다. <문학, 역사를 넘보다>는 프롤로그인 소설과 역사의 불가분성에서 소설의 거장들은 다른 해석 체계나 표현 체계를 벗어나, 역사와 역사의 공식적인 거대 담론이 놓치는 부분에 대해 진실을 밝히는 성과를 거뒀다말하면서 소설과 역사의 미묘한 관계를 밝힌다. 작가들은 다른 해석 체계나 표현 체계를 벗어나 역사와 역사의 공식적인 거대 담론이 놓치는 부분에 대해 진실을 밝히는 성과를 거둔다. 소설의 목적은 인간의 경험에 대해 허구를 통해서만 접근이 가능한 지점을 탐사하는 것이다. 스페인 내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싶다면 관련 역사책을 참고하면 되지만, 현지의 스페인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전쟁을 겪었는지 내부 상황을 파악하고 싶다면,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도움이 된다고 이 글은 말한다. 카를로스 푸엔테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등 많은 중남미 소설가들은 가상의 역사를 풀어내거나 허구적 관점으로 역사를 재구성했다. 플로베르는 <감정교육>에서 18482월 혁명을,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등 몇몇 소설에서 프라하의 봄이라는 역사적 상황을 통해 인간의 자아에 깃든 모순과 모호함을 파헤쳤다. 필립 로스도 <휴먼 스테인>에서 베트남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다룬다. 이렇듯 <문학, 역사를 넘보다>에서는 역사 앞에 문학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아래 1부 침묵을 깬 작가정신, 2부 아름다운 불복종, 3부 본질을 기록한 활자들, 4부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로 구분해, 사회적 굴레와 불합리에 저항하면서 불멸의 문학을 일궈낸 작가들과 그 작품을 집중 조명한다. 사르트르, 입센, 브레히트, 쿤데라, 카뮈, 루이 아라공, 레닌, 르 귄, 셰익스피어, 위고, 발자크, 괴테, 버나드 쇼, 보들레르, 조지 오웰, 마르케스 등 다루고 있는 작가의 면면도 참 화려하다.

 

책을 받고 처음 읽은 글은 페미니즘과 SF를 융합한 휴머니스트, 어슐러 르 귄이다. 이 글은 ‘2부 아름다운 불복종카테고리에 속한다. 이 장에서는 질서와 도덕을 독점하고 자신들의 정책, 법률, 정당성을 사회구성원 대다수에게 주입해 자신들에 대한 복종을 이끌어내는 권력과 자본에 끊임없이 반기를 들며 저항하는 작가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글쓴이인 카트린 뒤푸르는 르 귄에게는 페미니즘이 유일한 축이 아니라고 본다. 매우 전복적이지만 페미니즘만을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으며 르 귄의 글쓰기는 무엇보다 무정부주의자의 심장과 도교적 영혼, 민족학자의 교육정신을 지녔으며, 정치적으로는 미국의 신 급진좌파에 가깝다고 본다. 르 귄의 작품들은 인간의 조건과 인간의 방황에 집중함으로써 사회과학을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며, 때문에 그녀의 작품은 보다 내밀한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문학이라고 정의한다. 르 귄 자신도 <밤의 언어>에서 신화와 전설의 고대 원형, 혹은 과학과 기술의 고대 원형을 통해 인간의 삶이 있는 대로, 그리고 살아 있을 수 있는 대로, 또한 살아 있어야만 하는 대로 인간의 삶에 대해 사회학자와 마찬가지로 적절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이런 글을 읽노라면 올해는 르 귄의 장편을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괴테와 톨스토이에게 혁명을 배운 레닌도 흥미롭다. 이 글에 따르면 레닌은 이반 곤차로프의 <오블로모프>를 사랑했다고 하는데, 이 작품은 오블로모프라는 지주 귀족의 권태와 나태를 그리고 있다. 이 작품 주인공 이름을 딴 오블로모프주의는 러시아 독재를 오랫동안 유지하게 해 온 지주계급에 대한 욕설로 쓰였다. 레닌은 오블로모프주의라는 질병이 상류 계층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차르 정부의 관료제와 그 하부 계층까지 전염시켰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볼셰비키당원들까지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고 봤다. 레닌은 톨스토이의 러시아 절대주의에 대한 공격을 흡족해 했으나 톨스토이의 기독교 신앙과 평화주의에 대해서는 냉담했다. 특히 레닌은 어떻게 그렇게 천부적인 작가가 혁명적인 동시에 정치적 진보에 반동적일 수 있는지 반문했다. 톨스토이는 소설 속에서 경제 착취와 소작농들의 집단 분노는 뚜렷하게 인지하고 명백한 진단을 내렸지만,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했다고 레닌은 생각했다. 레닌은 톨스토이를 러시아 혁명의 거울이라고 추모하면서 톨스토이의 관점과 신조 사이의 모순은 결코 실수가 아니다. 이는 19세기 후반 러시아 사회의 모순을 표현한 것일 뿐이다라고 썼다. 톨스토이의 모순이 레닌의 정치 분석에 유용한 안내서 역할을 한 것이다. 한편 레닌은 도스토옙스키의 필력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문학을 지배하는 고통 숭배에는 반감을 느꼈다고 한다. 무엇보다 레닌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준 작가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니콜라이 체르니솁스키로, 이 책은 레닌을 급진주의자로 변화시켰다. 그러나 투르게네프와 나보코프 등은 쳬르니솁스키를 증오했다. 나보코프는 평민인 체르니솁스키를 향한 동시대 귀족 소설가들의 태도에는 계급적 우월감의 기미가 분명 있었다.” 인정하면서 사석에서 톨스토이와 투르게네프는 그를 빈대냄새 나는 신사라고 부르며 온갖 방법을 동원해 야유했다.”고 말했다. <무엇을 할 것인가>를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그 시대에만 유효했을 듯한, 이를테면 오스트롭스키의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와 비슷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런 러시아 작가들의 뒷이야기들이 너무나 흥미진진했다.

 

프랑스에서는 사르트르와 브레히트, 빅토르 위고 등이 인기가 없다는, 더 이상 잘 읽히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놀라웠다. 우리에게 사르트르는 침묵하지 않은 작가, 권력과 자본에 길들여지지 않는 반 순응주의의 작가로 비춰진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사르트르를 향한 비난과 혐오의 시선이 분명 존재하며, 그에 대한 비난은 주로 (<>을 제외하고는) “문학에는 도통 재주가 없는 철학자라는 것이다. 이런 농담이 대학가에서 널리 유행, 급기야는 대학교수들까지 전염돼 일종의 학설로 둔갑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글쓴이는 문학 자체만 보면 사르트르에 대한 연구는 아직 부족하다고 그를 변론한다. 또한 <구토>, <>, <자유의 길> 등은 모두 다채로운 문체와 서술 방식을 자랑하는 훌륭한 작품들이라고 말한다. <닫힌 방>, <더러운 손> 등 사르트르의 희곡 세계 또한 다채롭고, 창의적이며, 시의성 있는 작품들로 가득하며 여전히 사회에 큰 울림을 주주는 문제작들이라고 말한다. 글쓴이의 이런 평가에 나도 동의하는 편이다. <구토>는 모르겠지만 <>이나 <닫힌 방> 등은 빼어난 작품에 틀림없다.

 

빅토르 위고, 사형 제도를 비판한 검정색 화가에서는 화가로서 빅토르 위고를 조명한다. 나는 위고의 그림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는데, 이 책에 실린 그의 그림을 보노라면 위고가 그림에도 남다른 재능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이 글에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칭송과 경멸의 대상이던 위고가 오랜 세월 동안 읽히지 않으며 한물간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지만 1950년대 그의 데생화가 세상에 소개되며 그가 다시 부각됐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데생 열풍이 그에 대한 독서 열풍으로 이어지진 않았다고 글쓴이는 안타까워하며 데생이 위고의 사랑, 광란의 에로티시즘, 욕설, 창작 활동 등 독자들이 매서운 눈으로 위고의 시 속에 담긴 내용을 모든 차원에서 읽어내도록 도와줄 수도 있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무척 흥미로운 기사들이 많아서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은 이런 과정을 거쳐 결국 문학의 본질을 묻는 것으로 나아간다. 작가의 글은 인간의 사상과 감정에 답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것이고, 우리는 문학을 읽으며 활자의 행간을 탐험하면서 작가의 내적 세계를 해석하고 추론하며 상상해낸다. 셰익스피어가 없었다면 어떻게 <햄릿>의 비장미를 느꼈을 것이며, 위고가 <레미제라블>을 쓰지 않았다면 어떻게 가난과 혁명의 관계를 고민했을 것이며, 나딘 고디머의 고뇌를 몰랐다면 요하네스버그를 한낱 잘 꾸며진 도시로만 기억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끝으로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를 탐구한다. 특히 마지막에 실린 마르케스의 인터뷰를 읽다 보면 그의 호탕한 성격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면서 올해는 꼭 마르케스의 작품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그의 미출간 유작인 <월식의 밤>이 실려 있는 것도 매력적이다. 아무튼, <마니에르 드 부아르> 두 번째 호인 <문학, 역사를 넘보다>는 실린 글도 하나같이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문학 작품을 더 열심히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앞으로 나올 3, 4호 제호는 <당신을 뒤흔들 음모론의 숨은 실체>, <그 많던 지식인들은 어디로 갔는가?>이다. 벌써부터 기대되지 않는가?

















소장 가치 1000%



2호 북펀드에 참여한 독자 이름 실어줬다.  장국영 위에 내 이름(?) 있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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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1-25 12:2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기요, 진지한 질문이 있는데요.....
혹시 ‘잠자냥‘이 본명이세요? 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01-25 12:36   좋아요 5 | URL
아, 그럼요, 제 본명이에요. ㅋㅋㅋㅋ
저 그래서 이번에 <마니에르 드 부아르> 여기랑 인터뷰도 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이름에 얽힌 이야기요. 기사화되면 알려드릴게요. ㅋㅋㅋㅋ

라파엘 2021-01-25 1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니에르 드 부아르는 정기구독을 권할 수 있을만큼 정말 좋은 매거진이죠!! 국내에는 예전에 단행본으로만 세권 나왔었는데, 이제 계간지로 꾸준히 읽을 수 있게 되어서 독자로서 기쁜 마음입니다 :)

잠자냥 2021-01-25 13:22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정말 정기구독 권해도 한점의 부끄러움이 없는 잡지입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처럼 오래도록 사랑받는 잡지가 되면 좋겠어요. ㅎㅎ

다락방 2021-01-25 13: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살래요. 뭔가 이 계간지 읽고나면 문학적으로 더 유식해져 있을 것 같아요.꼼꼼히 다 읽는가는 다른문제겠지만요.

위고의 그림을 제가 봤는데 어디서 봤는지 모르겠네요. 집에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이란 책도 있고 제목은 기억 안나는 하늘색 표지의 그림책도 있는데, 그중 하나에서 본 것 같거든요. 이 계간지에는 어떤 그림이 실려있는지 궁금하네요.

아무튼 이거 땡스투 들어오면 접니다, 잠자냥 님. 으하하핫

잠자냥 2021-01-25 13:24   좋아요 0 | URL
2호는 정말 다락방 님 재미나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문학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잡지 정말 즐겁게 읽을 수 있습니다. 유식해지는 기분도 뿜뿜. ㅎㅎㅎ 계간지라서 다음 호 나오기 전에 모든 기사, 다 읽을 수 있을 거예요.

미리 땡스투 감사합니다.

단발머리 2021-01-25 1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전 알찬 잡지군요. 잠자냥님 덕분에 신세계 발견합니다! @@
전 잡지는 구독만 하고 읽지는 않아서요. 정기구독이라 그런가 싶어 따로 샀는데도 잡지는 손이 안 가더라구요. 치사한 변명입니다 ㅎㅎㅎㅎㅎㅎ
근데 위의 페이퍼만 봐도 소설 읽기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마침 저희집에는 어슐러 르 귄을 읽고 있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요.

잠자냥 2021-01-25 14:23   좋아요 0 | URL
오오, 신세계 발견이라니 그것만으로도 뿌듯합니다.
이 잡지는 정기구독하기 전에 이번 호만 한 번 사서 읽어보세요. 그러고나서 마음에 들면 구독해도 괜찮을 거 같아요.
르 귄 읽고 있는 단발머리 님 댁 그분에게도 분명 도움될 글입니다.

맥거핀 2021-01-25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세세한 소개 감사합니다. 덕분에 몰랐던 잡지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왠지 목차만 봐도 유식해지는 느낌이랄까요...

잠자냥 2021-01-25 14:24   좋아요 0 | URL
목차만 봐도 그렇죠? ㅎㅎ 책도 한번 읽어보세요. 정말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왠지 오늘 잡지 외판원된 기분입니다만 ㅎㅎㅎ)

mini74 2021-01-25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잡지가 정말 고급집니다 ㅎㅎ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멋질 것 같아요. 좀만 젊으면 저 책 옆구리에 끼고 시내라도 한 바퀴 돌고 싶은 ㅎㅎ 저도 신세곕니다. 좋은 잡지 추천 고맙습니다 ~~

잠자냥 2021-01-25 22:01   좋아요 1 | URL
네, 받아보시면 그 고급진 모양새에 더 반하실 거예요. 이 잡지에는 그리고 심지어 광고 지면 하나 없습니다!!

다락방 2021-01-26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 저 이거 오늘 사려고 땡투 누르는데 잡지는 땡투 적용이 안된다는 안내가 떴어요. 대충격... 실망......
Orz

잠자냥 2021-01-26 14:2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음만으로 만 칠천원 받겠습니다. 재미나게 읽으세욧!
그나저나 2월 전에 다 사두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1-26 14:21   좋아요 0 | URL
네 부랴부랴 5만원 이상을 또 막 질렀습니다. 아직 1월이니깐요! 😌

수이 2021-02-01 1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저 이거 샀어요 페이퍼 읽고 ㅋㅋㅋㅋ

잠자냥 2021-02-01 13:59   좋아요 0 | URL
넵! 재미나게 읽으세욧~~~

울라쑝 2021-03-12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매 전에 잠자냥님께서 올리신 글 보고 참고했는데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
혹시 정기구독 하셨나요? 현재 3호를 텀블벅 진행중인데 6만원 이상 후원시 1년 구독권을 준다네요 !
관심있으시면 보시길 권합니다.

그나저나 필력이 좋으시네요..!

잠자냥 2021-03-12 23:23   좋아요 0 | URL
네 저는 2호 텀블벅 할 때 아예 1년 정기구독으로 신청했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은오 2023-02-17 2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잡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