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나와 우는 우는 - 장애와 사랑, 실패와 후회에 관한 끝말잇기
하은빈 지음 / 동녘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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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때마다 눈물을 펑펑 흘리는 영화가 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그렇다. 이 영화를 볼 때면 언제는 내가 ‘츠네오’가 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조제’가 되기도 한다. 장애를 가진 조제와 그런 조제를 사랑하게 되지만 결국 그 장애가 버거워서 조제를 떠나버리고 마는, 그러고는 시도 때도 없이 조제를 생각나게 하는 물건만 보면 아이처럼 엉엉 울어버리는 츠네오. 어떤 이들은 츠네오가 비겁하다고 하지만 글쎄.......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사랑한다는 마음만으로 안 되는 일들이 있다. 이 세상에는.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을 이야기한 그 영화는 비단 장애/비장애뿐만 아니라 정상인과 이른바 비정상인(퀴어)의 사랑으로도 읽힌다. 그렇기에 더 슬프게 다가온다. 몇 번을 봐도.

<우는 나와 우는 우는>, 그래서 이 책이 내 눈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장애를 가진 연인을 오랜 시간 만난 후 결국 헤어지게 된 비장애인이 덤덤히 써 내려간 글. 근육병이라는 장애를 가진 연인의 이름은 ‘우’, 그러니까 조제에 견줄만한 그의 이름은 ‘우’이고, 츠네오에 견줄만한 이가 이 책을 쓴 작가 ‘은빈’이다. 말이 통하고, 한없이 웃게 만들어주는 사람, 그래서 사랑에 빠지고 연인이 되지만, 장애의 문턱은 아무리 그 사랑의 크기가 크다 해도 ‘빈’ 혼자 넘기에는 너무나 높다. 가족들의 비난과 반대, 앞으로 나아가는 친구들에 비해 어쩐지 계속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듯한 느낌. 아무리 간절하고 절실해도 쉽사리 주어지지 않는 둘만의 공간, 섣불리 계획할 수 없는 미래, 근육이 계속 소실되어 작아지고 작아지다가 어느 날 잠든 채 일어나지 못하는 건 아닐까 늘 불안과 걱정을 안고 살아가는 삶…. 그와 함께 하는 삶에서 문득 문득 느껴지는 버거움도,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그래서 고개를 쳐드는 죄스러움과 미안함도, 헤어지고 난 후의 자책감도, 내가, 그가, 우리의 사랑이 남들의 눈을 동그랗게 만들었다가 결국에는 가늘게 뜨고 쳐다보게 만드는 그런 사랑인가, 그렇게 이상한가? 늘 되묻게 하는 세상의 시선도 그 시선이 힘겨운 나날도, 모두 공감이 간다.


여전히 걷고 싶어?
응.
비장애인이 되는 걸 자주 상상해?
그렇지는 않아.
선택할 수 있으면 근육병이 없는 인생을 선택할 거야?
당연하지.
근육병을 없애면 나를 못 만날지도 몰라.
안 되는데.

근육병에 대한 우의 입장은 늘 복잡하고 알쏭달쏭해서 나를 헷갈리게 했다. (<우는 나와 우는 우는>, p.61)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 서로가 서로에게 반해 사랑에 빠질 확률은 지극히 낮다고 한다. 그 희박한 확률 속에서 만난 ‘은빈’과 ‘우’, ‘우’에게 장애가 있었기에 그들이 만났을까? 그에게 장애가 없었다면 그들은 만나지 못했을까? 확실한 것은 우는 근육병이 없다면 빈을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말에는 머뭇거린다는 점이다. “안 되는데.” 자기를 죽이는 근육병과 자기를 살게 하는 사랑…. 장애와 비장애를 선택할 수 있다면, 또는 사회에서 인정하는 정상적인 삶과 그렇지 못한 삶을 선택할 수 있다면 대개의 사람들은 장애 없는 삶을 당연히 선택할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런 특수한 환경 때문에 만날 수 있었고 사랑할 수 있었던 사람을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만날 수도 없고, 사랑하게 될 수도 없다고 가정한다면 선택의 문제는 쉽지 않을 것이다. 보통의 평범한 삶보다 한결 버거운 삶을 살더라도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람과 함께 하는 생을 선택할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삶은 언제까지 순탄하고 순조로울 수 있을까. 정상성만을 강요하는 이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이들은 쉽게 배제된다. 이른바 선남선녀라는 ‘정상/이성애 커플’의 사랑이 아니면 배제와 모욕과 혐오와 차별은 공기처럼 따라다닌다. 차별금지법조차 여전히 제정되지 못하고 있는 나라이다. 그런 세상에서 빈과 우처럼 이른바 정상성을 벗어난 커플은 빈이 말했듯이 “서로를 잃어버릴 예정”이 아니었을까. “아름다운 순간들은 우리를 떠날 것이었고 불화와 모욕이 곳곳에 널려 있었으며 기어코 사랑에 실패하게” 예정되어 있던 것은 아닐까.  


우리의 일상은 거시적이고 근본적인 층위에서부터 아주 미묘하고 애매한 층위까지 다른 이들의 일상과 어긋나 있었다. 다른 이들이 나날이 더 높은 곳을 향해, 말하자면 정상(頂上)을 향해 세상의 절벽을 오르고 또 오르는 동안, 우리는 그들에겐 지극히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그러니까 정상(正常)이라 불리는 영역에서 더 바깥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p.92)


‘빈’과 ‘우’는 지쳐간다. 우는 자신의 병에, 빈은 장애를 지닌 사람을 연인으로 두고 그를 사랑하고 돌보는 일에. 그리고 세상의 차별에. 그들은 “집에서, 학교에서, 거리에서, 공공장소에서 항상 같은 내용의 집요하고 지속적인 메시지를 받”는다. “세상에 너희를 허하는 자리 같은 것은 없으며 언제나 어디에서나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들은 “그 말에 단련되어 있었고 동시에 지쳐”있다. “그건 끝없이 받아치고 맞서야 하는 말, 이성을, 인내심을, 친밀함을 야금야금 쪼개고 파먹고 약탈해가는 말”이다. 이따금씩 그들은 “그 말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때로는 가만히 읽어보기도” 한다. “세상에 우리를 허하는 자리는 없으며 우리는 언제건 어디에서건 아무것도 아니구나.”(p.189)

인상 깊은 구절들이 여럿 있지만 “관계, 종속, 책임”이라는 단어들이 뇌리에 남는다. 나와 너 사이의 관계가 맺어지면 서로 간에 얼마쯤의 종속성이 생기고 책임도 따른다. 그런데 그 종속과 책임이 어느 한쪽에만 일방적으로 주어진 것 같다면 어떨까. 어떤 면에서 우를 돌보는 빈의 모습은 연인의 그것을 넘어서서 부모와 자식의 그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빈은 “연인들은 고통 속에서 서로를 낳기에 연인인 것이 아닌가?”(p.212) 되묻기도 하지만 나의 고통보다 타인의 고통을 늘 우선시할 수는 없다. 그것은 결국 나를 좀먹는 일이다. 그렇기에 빈의 친구들이, 가족들이, 지인들이 “일상은 물론 욕망과 상상력, 가능성까지도 근본적으로 제한”(p.158)하는 빈의 삶을 부당하다고 항변해 준 것은 아니었을까. 관계와 종속과 책임이 자신의 어깨에서 떨어져나간 때를 상상하면서 그런 삶이 얼마나 달콤할지, 사랑하는 것도 소중한 것도 가지지 않기에 더 이상 “궁색해질 일도, 옹졸해질 일도 없을” 그 삶을 상상하며 홀가분해하다가도 그런 자신이 죄를 짓는 듯해 우에게 한없이 미안해지는 빈.  

“이별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아니, 사실은 한 가지 뿐이다. 내가 도망친 것이다.” 조제와 헤어진 후 츠네오는 이렇게 말한다. 조제를 진심으로 사랑했으나 자꾸만 버거워지는 현실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던 츠네오처럼. 어떤 사랑에선 내가 조제이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랑에선 내가 츠네오이기도 하다. 언젠가 내게 네가 가버리면 나는 조제처럼 동굴 안에 깊숙이 갇혀버릴 거라고 말하던 사람이 있다. 정말로 그럴 것만 같아서 츠네오처럼 엉엉 울었던 적이 있다. 그렇지만 그때 그 사람이 시간이 흐르면 결국 조제처럼 혼자 1인분의 생선을 굽고, 혼자 거리로 나서는 그런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다른 츠네오를 만날 것이라고…. 그럴 것이다. 동굴 안에 조개처럼 갇혀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관계에서 남겨진 조제의 외로움도, 떠난 츠네오의 죄책감과 미안함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희미해지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이 사랑했던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희미해지기는 하겠지만…. 사랑한다는 마음만으로 안 되는 일들이 있다. 이 세상에는. 그럴 때 사랑을 끝내 지키지 못한 마음이 문제가 아니라, “세상의 여느 것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랑인데도, 어디에나 굴러다니고 노상 발에 체이곤 하는 그토록 흔해빠진 사랑인데도 왜 이렇게 힘이 들고 무거운 것인지 알 수 없"(p.39)게, 그 사랑을 버겁게 만드는 세상이 문제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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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25 1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3-25 1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3-25 14: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괴물들 - 숭배와 혐오, 우리 모두의 딜레마
클레어 데더러 지음, 노지양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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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예술과 그렇지 못한 창작자- 거리 두기가 가능할까. 모든 인간은 얼룩을 남긴다는 말이 와닿는다. 내 안의 괴물성도 마주하게 되고 결국에는 사랑의 속성까지 생각하게 되는 책. “우리가 던지는 쓰레기, 나쁜 행동, 실망, 발작, 배신도 견디는 사랑의 끈질긴 속성이 문제이자 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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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나와 우는 우는 - 장애와 사랑, 실패와 후회에 관한 끝말잇기
하은빈 지음 / 동녘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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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은 정상인과 이른바 비정상인의 사랑으로도 읽힌다. 세상이 인정하는 정상성의 사랑이 아니기에 온전히 사랑만 하다 온전히 그 사랑이 식어 헤어지는 것만은 아닌 그들. 관계에서 떠난 빈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고통이 먼저라고. 자책하지 않기를, 자유롭게 빛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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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03-25 0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이 100자평에 “선생님! 장애인은 ‘비정상인‘이 아닙니다. 저희 모두가 그러하듯이요.”라고 댓글을 다셨다가 지우신 분에게 부연 설명해 드립니다. 지우신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제가 쓴 100자평의 맥락을 뒤늦게 아셨기를 바랍니다만 아무튼 오해의 소지가 있는 듯해 부연 설명해 드립니다). 당연히 저는 장애인이 비정상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댱연한 거 아닌가요? 장애 유무, 성적 취향으로 인간을 정상/비정상으로 구분하는 이 세상의 이분법에 반대합니다. 그래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은 이른바 정상인/비정상인의 사랑으로도 읽힌다.’라고 비유한 것입니다. 이 문장에서 “이른바”라는 단어가 중요한데요, “이른바/소위”라는 단어 의미를 아시겠지만 “세상에서 말하는 바”라는 뜻입니다. 즉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바를 인용할 때 ‘이른바/소위‘라는 단어를 쓰지요. 제가 쓴 문장을 길게 풀어 쓰자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은 정상인과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비정상인(LGBTQA..... 등 성소수자)의 사랑으로도 읽힌다. 세상이 인정하는 정상성의 사랑(장애가 없는 이성애 커플)이 아니기에 온전히 사랑만 하다 온전히 그 사랑이 식어 헤어지는 것만은 아닌 그들. 관계에서 떠난 빈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고통이 먼저라고. 자책하지 않기를, 자유롭게 빛나기를.”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레이스 2025-03-25 10:53   좋아요 0 | URL
백자평의 부연 설명으로 읽혀요

다락방 2025-03-25 12:31   좋아요 1 | URL
음 이미 백자평에 ‘장애인‘과 ‘비장애인‘ 이라고 썼기 때문에 장애가 비정상이라고 말하는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만, 오해를 하시는 분도 계신가 보군요.
 
밑바닥에서 전합니다! - 빈민가에서 바라본 혼탁해지는 정치와 사회
브래디 미카코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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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으로 영국에 이주, 외부자의 눈으로 바라본 영국 사회의 면면들- 기대와 달리 깊이 있는 분석보다는 파편적 묘사가 많다. 게다가 철 지난 느낌의 글들(스톤 로지스 재결합했던 게 언젠데!!) 책 전반에 브릿팝 이야기가 양념처럼 깔려 있는데 영국 록 좋아하는 나조차도 그다지 재미없는 신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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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5-03-21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톤로지스~!! 좋아하던 밴드인데 ㅋ 갑자기 생각나네요. 들어봐야겠습니다~!!

잠자냥 2025-03-21 11:09   좋아요 0 | URL
ㅋㅋㅋ 네 이 책 읽으니까 듣고 싶어지더라고요. 근데 그 할배들 재결합하더니 또 해체한 모양이더군요. 근데 이 책은 재결합 소식에서 멈춤 ㅋㅋㅋㅋㅋㅋㅋㅋ 재결합해서 한국까지 왔다 간 게 언제인데.... -_-

새파랑 2025-03-21 11:11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전 재결합 후에 내는 앨범은 안땡기더라구요 그냥 옛날게 좋은 ㅋ전 love spreads!!!

케이 2025-03-27 1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egging you 노래 진짜 좋아했는데 ㅋㅋㅋ 예전에 아주 잠시 얽혔던 남자가 스톤로지스 한국 팬클럽 회장이었답니다 ㅋㅋㅋㅋ 추억 돋네요. 오늘 퇴근 길에 들어야겠어요.

잠자냥 2025-03-27 11:34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이 책 100자평에서 떠오른 스타는 뜬금 없는 스톤 로지스 ㅋㅋㅋㅋㅋㅋ
 
음악은 왜 중요할까? - 자유, 연대, 사랑… 사람과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음악의 힘
데이비드 헤즈먼드핼시 지음, 최유준 옮김 / 오월의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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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음악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뿐만 아니라 음악의 미적, 공적 가치 및 사회적 영향까지 미디어와 문화, 인류학, 미학, 철학, 사회학, 심리학 등등 방대한 관점에서 분석한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더 흥미롭게 읽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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