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 연습
레몽 크노 지음, 조재룡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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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책이다. 한 가지 사건을 99가지 문체로 변주한 그 아이디어와 재치, 기지에 책을 읽는 내내 감탄하느라 입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어떤 글에서는 박장대소, 어떤 글에서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고 또 글로 풀어냈을까 경탄했다. 전설이 되고도 남을 작품. 천재 레몽 크노. 내겐 올해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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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7 0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7 0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부만두 2020-12-07 06: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목차만으로도 흥미로워요. 역자의 공도 커 보이고요.

잠자냥 2020-12-07 09:13   좋아요 0 | URL
네 역자가 정말 애쓴 티가 납니다~

단발머리 2020-12-07 0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올해의 책이라니!!! 읽어야만 합니다! 너무 궁금해요~~~

잠자냥 2020-12-07 09:14   좋아요 0 | URL
문학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이 책 누구나 좋아하실 거예요.
 
레닌의 키스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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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아서 많이 읽지는 않았다. 국가 체제가 특수하다 보니 그런 상황 아래 탄생하는 문학작품도 왠지 어떤 종류일지 뻔해 보인달까. 체제를 찬양하거나(그런 작품은 사실 다른 나라에까지 소개될 리 만무하겠지만), 완전히 그 반대이거나. 아니면 아예 체제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거나. 옌롄커의 <레닌의 키스>는 어느 쪽일까. 이 작품을 쓰고 TV 책 소개 프로그램에서 옌롄커가 이 책을 언급했는데, 직업군인이었던 그가 군대에서 쫓겨났다고 하니, 어떤 작품일지 가히 짐작이 간다. 읽다 보면 체제 비판을 이렇게 해도 될까 싶을 만큼 독한 구석이 있다. 다른 설명 필요 없이, 중국 사회주의 체제의 ‘인민공사’를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어느 마을 이야기라고 하면 대충 감이 잡힐 것이다.

<레닌의 키스>라는 제목이 눈길을 끈다. 이 책의 원제는 ‘수활(受活)’이다. 이 제목 그대로, 한자를 병기해 우리말로 옮겨도 선뜻 그 의미가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니 원제 그대로 서구에 소개했다면 누가 알아들으랴. 물론 이 작품을 읽기 시작해 몇 장 넘기지 않고 ‘수활’의 의미가 나온다. ‘수활(受活)’ 즉, ‘서우훠’는 중국 북방 방언으로 허난성 서부 바러우산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이다. 즐거움, 향락 등의 의미로 쓰이지만 바러우산맥에서는 특히 ‘고통 속의 즐거움’ ‘고통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다’는 뜻으로 쓰인다. 인민공사를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서우훠’마을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책의 프랑스어판 번역자가 붙여, 유럽과 영미에도 소개된 <레닌의 키스>라는 제목도 꽤 그럴듯하다. 아니, 중국에서 왜 레닌인가? 싶을 수도 있는데 이 작품에서 레닌은 아주 큰 역할(?)을 한다. <레닌의 키스>는 이 두 가지 이야기, 즉 인민공사라는 거스를 수 없는 국가 체제를 벗어나려는 어느 마을과 ‘레닌’이라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아주 상징적인 인물을 중심으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서우훠마을은 좀 특이하다. 세 현이 교차하는 바러우산맥에 자리해 가장 가까운 마을과도 최소 십 여리가 떨어져 있는 이 마을은 명나라 때 조성, 맹인과 절름발이, 귀머거리들이 잔뜩 모여 살기 시작했다. 장애인이 아닌 장성한 사람들은 짝을 찾아 모두 외지로 나갔고, 여자들 또한 전부 외지로 시집을 갔다. 그러다 보니 바깥세상의 장애인들은 마을로 들어오고 마을의 ‘온전한 사람들’은 모조리 밖으로 나가, 현재는 장애인들만이 모여 사는 마을이 되었다. 수백 년 동안 이런 상황이 이어졌지만 마을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어느 군, 어느 현에서도 서우훠마을을 수용하려 들지 않았다. 한마디로 서우훠는 세상에서 잊힌, 세상 밖의 마을이었다.

그런데 이 마을에 ‘마오즈’라는 전설적인 인물이 나타나면서 상황이 급변한다. 현재 할머니가 된 마오즈는 서우훠마을의 지도자이자, 정신적인 지주나 다름없다. 그런데 이런 그녀에게도 아픈 기억은 여럿 있다. 마오즈는 열한 살에 홍군이 되었고, 홍군 제4방면군의 전사가 되어 산길을 가다 계곡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왼쪽 다리가 부러져 지팡이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바러우산맥을 지나다 한 석공에게 구조되어 그가 살던 서우훠마을로 함께 오게 된 것이다. 그 석공과 결혼해 이 마을에 정착하지만 혁명에 참여했던 그녀는 이 궁핍한 마을에서 숨죽이며 사는 세월이 도무지 성에 차지 않는다. 세상과 단절된 채 농사만 짓던 마오즈는 어느 날 다시 혁명의 바람이 불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자신이 마을을 이끌어 혁명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앞장서서 인민공사에 가입한다. 그런데 그렇게 젊은 시절을 보내고 이제 칠순 노인이 된 그녀는 왜 이제는 인민공사를 퇴사하겠다고 애를 쓰는 것일까. 게다가 거의 반평생을 그 일에만 매달린 것 같다. 이 책의 한 가지 재미는 이렇게 서우훠마을과 마오즈 할머니에 얽힌 사연을 따라가면서 중국의 체제가 지닌 모순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보는 점에 있다.

마오즈 할머니와 대척점에 있는 인물로 ‘류잉췌’, 즉 류 현장이 있다. 그는 중국에 대기근이 닥쳤던 1960년에 태어났으나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고아이다. 오갈 데 없는 그를 사회주의교육학교 선생이 양자로 입양하면서, 그는 철저히‘사교의 아이’가 되어 어릴 적부터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경제, 정치, 철학 등의 교육을 받으며 자란다. 양아버지가 알려준 출세의 비밀을 깨우친 그는 온갖 수단을 써서 관료의 길에 접어들어 빠르게 현장이 된다. 이제 그는 더 큰 꿈을 꾼다. 여전히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솽화이현. 그곳에는 공장도 광산도 없다. 그런데 산이 좋고 물이 맑으니 관광산업을 발전시키자는 것이 류 현장의 생각이다. 베이징에는 마오주석 기념관을 구경하러 가는 사람이 많지 않은가. 그러니 우리도 자금을 마련해 러시아에 가서 레닌의 유해를 사오는 것이다. 레닌의 유해를 솽화이현 훈포산에 안치하면 현의 관광산업은 폭발적으로 발전할 테고 현도 순식간에 부유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는 더 이상 일개 현장이 아닐 것이고 부위원장이나 부서기 정도도 아닌 대단한 인물이 될 것이다. 세계적인 풍운아가 되어 있으리라!!! 이것이 류 현장의 포부이자 참으로 원대한 계획이었다.

레닌의 유해를 사오는 이 엄청난 기금은 어떻게 마련할까? 뜻밖에도 류 현장은 서우훠마을 사람들의 특기랄까 신묘한 재주를 알게 된다. 그래서 그는 서우훠마을 묘기공연단을 조직해 세계 방방곡곡에 돌아다니며 공연을 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공연 입장 수입으로 레닌 유해 구매에 쓸 거액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겠다는 계산인 것이다. 아니, 그런데 서우훠마을은 장애인만 모여 산다는데 무슨 묘기인가 싶다. 이 마을에는 현재 주민 ‘백구십일 명 가운데 어른 아이 합쳐서 맹인 서른다섯, 귀머거리 벙어리 마흔일곱, 절름발이 서른셋. 한쪽 팔이 업거나 손가락 하나가 떨어져 나간 사람, 손가락 하나가 더 있는 사람, 키가 자라지 못한 사람 등 여기저기 불편하거나 모자라거나 불편한 사람들도 수십 명’이다. 그런 그들이 보여주는 묘기란 외다리로 빨리 달리기, 귀머거리 마 씨 귀에 대고 폭죽 터뜨리기, 외눈박이 외눈으로 바늘 꿰기, 앉은뱅이 아줌마 나뭇잎에 수놓기, 맹인이 예민한 귀로 소리 알아맞히기 등이다. 과연 이걸로 공연이 될까, 사람들이 몰려올까 싶은 걱정스러운 것 투성이다. 자, 이 묘기단이 그래서 흥행에 성공하는지 어떤지는 직접 보시라. 레닌의 유해를 사오게 되는지도.



이제 해방이 되어 공산당과 마오주석이 가장이 되었다고요, 집집마다 하나로 합쳐서 농사짓는 걸 호조조라고 불러요. 여러 호조조를 한데 합친 것은 합작사라고 한대요. 저는 우리 서우훠마을을 합작사에 가입시켜 각 가구를 하나로 조직한 후 함께 농사를 짓고 수확하며 양곡을 분배하게 할 생각이에요. 저는 서우훠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합작사에 가입해서 서우훠 사람들이 천당의 세월을 보낼 수 있게 할 거예요. (<레닌의 키스>, 227쪽)


한때 혁명을 꿈꾸고 현 정부의 여주석이나 현장이 됐을 거라 당차게 말하던 젊은 날의 ‘마오즈’- 그녀는 인민공사에 마을을 가입시킬 때 마을 주민들에게 천당의 세월을 약속했다. 그런데 할머니가 되어서는 반혁명주의자가 되어 인민공사 퇴사만을 자신의 남은 생의 가장 큰 과업으로 삼고 있다. 그 어느 현에도 속하지 않고, 정부와 국가에서 나 몰라라 하던 시절의 서우훠마을은 몸이 불편한 이들만 모여 살았어도 말 그대로 기쁨이 넘쳤다. 고통 속의 기쁨, 즐거움이랄까. 그런데 혁명을 거쳐 인민공사에 가입한 후 강철재앙, 대흉년, 문화대혁명 등의 풍랑에 휩쓸리며 서우훠마을 사람들의 삶은 이전보다 훨씬 고단해지기만 한다. 아니 처절하다시피 할 정도로 망가진다. 장애가 없는 ‘온전한 사람들’이 마을을 찾아와 수탈하고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는 그 잔혹한 모습에는 아연해질 뿐이다. 그들을 과연 정말 온전한 이들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마오즈 할머니가 꿈꾸던 혁명의 이상은 그렇게 산산조각이 났다. 한때 사회주의 사상의 아버지라 떠받들어졌어도 죽은 레닌의 유해는 러시아에서도 처치곤란, 골칫거리이다. 그러니 중국의 일개 현장이 마을 관광산업을 위해 그의 유해를 유치하려는 야심까지 품지 않는가. 신해혁명, 5·4운동, 문화대혁명 등등 혁명으로 이어진 중국 근현대사. 그런데 혁명은 정말 중국 인민에게 천당 같은 세월을 살게 해주었는가? 서우훠사람들은 묻는다. “제가 평생 할머니 말씀 잘 들었잖아요. 하지만 좋은 세월이 한 번도 없었어요.”(203쪽), “그 천당의 세월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설명 좀 해줘요.”(424쪽). 이 절규는 아마도 옌롄커가 중국에 묻고 싶은 말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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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12-04 17: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치인들은 어디에서나 천당 같은
시절을 약속하지만 지상에 그런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덤으로 알려 주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레닌의 키스> 제목만 보고 대뜸
샀는데 이거이 분량이 제법인지라
어딘가에 내팽겨쳐 두었네요 이론.

발저의 <산책자>처럼 당장 찾아내서
주말 내내 읽고 싶다는 고런 생각이
잠시 동안 들었습니다.

역시 책은 사거나 빌려서 읽는 게
아니라 집에 있는 책을 읽는 거군요.

잠자냥 2020-12-04 17:31   좋아요 2 | URL
ㅎㅎㅎ 맞습니다. 이 지상에 어디 천당 같은 세월이 존재하겠습니까. ㅎㅎ

책 잘 찾아서 주말에 읽으실 수 있게 되길 바라겠습니다. ㅎㅎ
 
탄제린
크리스틴 맹건 지음, 이진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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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앗! 정말 재미나다. 처음엔 좀 심드렁했는데 읽을 수록 정말 쫄깃쫄깃. 한문장도 허투루 읽지 말 것! 가스라이팅과 리플리 증후군을 이렇게도 절묘하게 쓸 수 있구나 진짜 감탄이 나온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와 대프니 듀 모리에를 적절히 섞은 듯한 고품격 스릴러. 영화 나오면 꼭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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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0-12-04 0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 책 도서관에 주문한 책이에요. 너무 기대되네요. 근데 제 생각엔 탄제린보다 탠저린이 더 제목으로 나을것 같은데...

잠자냥 2020-12-04 10:15   좋아요 1 | URL
앗 그러셨어요? ㅎㅎ 잘 하셨어요! ㅎㅎ 저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정말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제목은 아마 탠저린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책들이 이미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하고 짐작해 봅니다. ㅎㅎ 저도 이 책 검색할 때 늘 탠저린으로 한다는;;;
 
레닌의 키스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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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과 자본을 동시에 비판한 한편의 희비극적 우화. 독특한 형식도 흥미롭고, 의외로(?) 700쪽이 넘은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그러면서도 읽다 보면 아주 날카로운 비판에 통쾌함도 느껴진다. 옌롄커, 이런 작품을 쓰다니, 군대에서 쫓겨나는 게 아니라 중국에서 추방해 버리고 싶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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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12-02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렇습니까? <풍아송>하고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읽고 에잇, 너하곤 끝이다, 선언했는데, 이거 또 솔깃해지네요. ㅋㅋㅋㅋ

잠자냥 2020-12-02 10:23   좋아요 0 | URL
전 중국소설을 딱히 안 좋아해서 여태 연롄커 작품을 안 읽다가 이건 좀 혹해서 읽었는데요. 이 작품 때문에 다른 작품도 더 읽어볼 생각입니다. ㅎㅎㅎ 일단 좀 소재가 재미나요. 레닌의 유해를 사오겠다고 ㅋㅋㅋㅋㅋ

파이버 2020-12-02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에서 추방해 버리고 싶을 듯˝하다니 급 궁금해집니다ㅎㅎ

잠자냥 2020-12-02 13:04   좋아요 1 | URL
ㅎㅎㅎ 이 책만 봤을 때는 정말 그럴 거 같아요!

Falstaff 2020-12-02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바구니에 넣으려는 순간! 잠자냥님 영업실패!!
크.... 정가 2만5천원, 판매가 2만2천5백원. 게다가 어쨌든, 이젠 끝이다, 한 번 선언했던 이. 살포시 포기 했습니다. ㅋㅋㅋㅋ

잠자냥 2020-12-02 14:49   좋아요 0 | URL
네 좀 비싸죠? ㅎㅎㅎ 저도 알라딘이 아니라 예스24에서 쿠폰 모아 샀습니다. ㅎㅎㅎㅎ

레삭매냐 2020-12-02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거의 나오자 마자 사긴 샀는데
두터운 두께 때문에, 못 읽고 있네요.

재밌을 것 같긴 한데 말이죠 :>

내년에나 한 번 읽어 볼까 합니다.

잠자냥 2020-12-03 09:31   좋아요 0 | URL
두꺼운 데 잘 읽혀서 금방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내년에 꼭 읽어 보세요-
 

두 권의 반가운 편지글이 나왔다. 다자이 오사무와 나쓰메 소세키 서한집이 바로 그것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편지글은 예전에 <시키와 소세키 왕복 서한집>이나 <소가 되어 인간을 밀어라>에서 접한 적이 있어서 이번에 새로 나온 서한집이 크게 놀랍지는 않았으나, 다자이 오사무의 서한집은 꽤 눈길이 갔다.

다자이 오사무는 내게 적어도 청춘의 작가이다. 이십대 후반에 <인간 실격>을 읽고 얼마나 빠졌던지, 그 무렵에는 그의 작품을 구하는 대로 다 읽었던 것 같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뒤에 다시 읽은 <인간 실격>은 예전처럼 강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언제는 그 특유의 멜랑콜리한 감성이 못 견딜 것 같기도 하더라. 내가 나이 들어 다시 보니 이 사람은 왜 늘 이렇게 징징대나 싶기도 했다. 그런 생각이 들 즈음부터 다자이 오사무 책을 더는 읽지 않은 것 같다.  

두 책을 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나란히 받아 읽었다. 무엇부터 볼까 싶은데 아무래도 좀 더 새로운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부터 읽는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겨울 밤 읽는 편지글은 이상하게도 가슴을 울린다. 편지라는 글이 그렇다. 주고받는 두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내밀한 속삭임, 고백, 다정한 말투……. 나는 언제 이런 편지를 썼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전자우편과 메신저, 핸드폰 문자 등이 등장하고는 편지 쓸 일이 없다. 그러나 그 전에는 나도 편지를 종종 썼던 사람인데……. 아날로그적 감성에 젖어 남의 편지를 읽는 밤이 하릴없이 깊어만 간다.


요즘 자주 눈물이 난다.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니야. 수다를 떠는 거지. 입가에 하얀 거품을 물고 혼자서 주절주절 지껄이고 있는 거야. 천마디 말 중에 한마디 진실을 찾아준다면 죽도록 기쁘겠네. 나는 자네를 사랑하고 있어. 자네도 내게 지지 말고 날 사랑해줘. 필요한 것은 지혜가 아니었어. 사색도 아니었다. 학문도 아니었고. 포즈도 아니었다. 애정이다. 푸른 하늘보다 깊은 애정이다.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 84쪽)


편지글에서도 다자이 오사무는 곧잘 징징거린다. 자주 눈물이 난다고, 슬퍼서 울었다고, 분해서 울었다고 거리낌 없이 잘도 말한다. 그는 외롭고 고독하고, 애정을 갈구한다.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도 상당하다. 부잣집 도련님으로 편히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그의 삶은 왜 이다지도 곤궁하고 고달프기만 한지, 친구를 비롯해 지인들에게 돈 빌려달라는 말을 수도 없이 한다. 20엔만 빌려주십시오, 몇 월 며칠까지는 꼭 갚겠습니다. 지금 쓰는 작품 원고료가 언제 들어옵니다, 지금 쓰는 작품이 잘 되면 꼭 갚겠습니다 등등. 다자이 오사무의 편지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내용이 돈 빌려달라는 소리인 것 같다. 그만큼 삶이 곤궁하고 고달픈 그.
 

저도 조금씩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좋은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타인이 쓴 훌륭한 소설도 많이 읽고 싶습니다. 좋은 작품을 쓰고 읽는 데 전념할 생각입니다.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 49쪽)

불멸의 예술가라는 자부심을, 언제나 잊어선 안 돼. 그저 거만해지라는 뜻이 아니야. 죽을 만큼 공부하라는 뜻이지.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 75쪽)


물론 온통 돈 빌려 달라는 말만 있다면 이 서한집이 세상에 굳이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편지 속에서 그는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 몇 번이고 새롭게 다짐하고 또 자신을 다그친다. 어떤 날은 작품이 잘 쓰여서 기분이 좋고, 또 그렇지 않은 날은 그래서 우울하다. 잘하면 아쿠타가와 상을 받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깊은 실망에 잠기기도 한다. ‘나는 이미 유명해서 아쿠타가와 상은 앞으로도 안 될 거다. 어설픈 이류 삼류 후보자들과 같이 이름이 올랐다는 게 불쾌할 뿐’(78쪽)이라고 볼멘소리를 늘어놓기도 하고, 참다못해 상을 달라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직접 편지를 쓰기도 한다.


물질을 고통이 쌓이고 또 쌓여 죽을 일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10년만 더 살고 싶어 죽을 지경입니다. 저는 괜찮은 인간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살고 있습니다만, 지금까지 운이 나빠 죽기일보 직전까지 와버렸습니다. 아쿠타가와 상을 받는다면 저는 인간의 따뜻한 정에 울음을 터트릴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 닥칠 그 어떤 괴로움과도 싸워 이기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 사토 하루오에게 쓴 편지, 110쪽)

<만년> 한 권 제1회 아쿠타가와 상을 타게 될까요. 태어나 처음으로 받아보는 상금, 제 반 년치 여비입니다. 늙은 어머니와 가여운 아내를 단 한 번만이라도 기쁘게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저에게 명예를 주십시오. <만년> 한 권만은 부끄럽지 않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쓴 편지, 152쪽)


이렇게 구걸(?)할 정도로 상에 집착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서한집을 읽노라면 그가 인정욕구에 꽤 시달렸으며, 그것은 또 애정, 순수한 애정에 굶주린 외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돈에 쪼들렸기에 상금을 받아 편안하게 창작 활동에 몰두하고 싶어 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 모든 것은 결국 그토록 고통스러운 생이라도 끝까지 붙들고 싸워서, 살아 이겨 내고 싶어 한 그의 간절한 소망이자 바람이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어떤 편지에서 그는 몸을 해쳐 누워 있으면서도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죽고 싶지 않다고, ‘아직까지 조금도 일다운 일을 남기지 못했고, 마흔이 되어서야 어떻게든 겨우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남겨보자는 마음으로 절실하게 마흔까지는 살아 있을 생각’이라고 말한다.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세상을 떠난 다자이 오사무였기에 이 살고자 하는 그의 몸부림은 참으로 안타깝게 다가온다. 더불어 ‘상냥한 사람의 표정은 언제나 부끄러움을 품고’ 있다는 그의 또 다른 편지글에서 다자이 오사무 문학의 원천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부끄러움의 미학을 오랜만에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기도 한다.


인간을 걱정하고 인간의 쓸쓸함과 외로움과 괴로움에 민감한 일, 이것이 샹냥함이며, 또한 인간으로서 가장 뛰어난 일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상냥한 사람의 표정은 언제나 부끄러움을 품고 있습니다. 저는 저의 부끄러움으로 저와 제 몸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 363쪽)


나쓰메 소세키 편지글은 다자이 오사무의 편지와는 그 어조부터 사뭇 다르다. 나쓰메 소세키는 교사도, 교수도, 박사도 되고 싶지 않고, 그렇게 사는 인생에 투덜거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글만 써서 먹고 살아야 했던 다자이 오사무보다는 조금 속이 편했던 것 같기는 하다. 절친한 벗이었던 마사오카 시키를 비롯해 문하생 및 제자 등 주변에 사람도 늘 많은 편이라서 그런지 인정욕구 같은 것에 시달리는 모습 같은 것은 찾을 수 없다. <나쓰메 소세키 서한집>은 ‘청년 시절-영국 유학 시절-도쿄대 교수 시절-아사히 신문사 시절-만년’으로 세분화 된다. 청년 시절에는 그의 가장 가까운 벗이었던 하이쿠 시인 마사오카 시키에게 보낸 편지가 주를 이루고, 영국 유학 시절에는 아내나 장인 등 가족에게 보낸 편지가 자주 보인다. 그중에서도 영국 유학을 떠나 있어, 시키의 부고를 듣고도 장례식에 참여하지 못한 채 그 애달픈 마음을 하이쿠로 써서 담아낸 편지가 인상 깊다. 무척 담담해서 오히려 마음이 저린 글이다.


런던에서 시키의 부고를 듣고

양복 차림에 가을 장례 행렬도 따르지 못해
올려 마땅한 향 하나 없는 채로 저무는 가을
노오란 안개 자욱한 도시에서 춤추는 음영
함께 시 읊던 오래전 나날들을 그리워하며
불러주는 이 없는 참억새밭에 돌아가려네.


친구나 문하생 및 제자들에게는 한없이 다정하고 좋은 스승이었지만 편지를 통해 본 나쓰메 소세키는 그다지 좋은 남편이나 아버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다정다감한 모습은커녕 멀리 있는 아내에게도 편지로 잔소리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것도 계속 ‘틀니는 넣도록 하시오, 머리는 둥글게 틀어 올려 묶지 않는 게 좋겠소. 자주 감으시오.’ 등등 애정 표현은커녕 잔소리꾼도 이런 잔소리꾼이 없다. 그러는 와중에도 영문학자가 되는 일에 회의를 느끼고, ‘박사도 교수도 되고 싶지 않아요. 인간은 먹고살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대단한 저술도 결국 시간과 돈 문제이니, 안되면 안 되는 대로 딱히 상관없습니다.’ 토로하기도 한다. 돈을 주워 글만 쓰고 살고 싶다는 너무나 솔직한 표현에는 슬며시 웃음도 나온다.


일본에 돌아가 어학 교사 일에 쫓기다 보면 사색하거나 독서할 여유가 없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돈 10만 엔을 주워 도서관을 세운 다음 거기서 책을 쓰는 상상까지 하곤 하니 참 한심하지요. (<나쓰메 소세키 서한집>, 장인에게 쓴 편지, 157쪽)


문하생이나 제자들에게는 더없이 훌륭한 스승이었고, 여러 제자들로부터 존경과 아낌없는 흠모를 받았던 소세키. 그 자신도 제자들의 그런 애정을 기꺼워한다. 특히 다음과 같은 편지는 절로 웃음이 나온다. 소세키 스스로 ‘ 나는 이래봬도 자부심 넘치는 사내라 내가 일부 사람에게 호감을 살 만한 성격을 가졌다고 자신’한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인상 깊다.


나 같은 인간이 한 학생의 머릿속을 이렇게까지 점령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네. 그 편지를 보면 미에키치 군은 매일같이 내 생각을 하다가 신경 쇠약에 걸린 사람 같더군. 내가 열일고여덟 먹은 아가씨라면 미에키치 군 생각에 드러누워 끙끙 앓았겠지만, 다행히 나는 요시하라에서 온 머릿기름 종지나 애지중지하는 긴양(소세키 본명인 ‘긴노스케’에서 따온 별명)이라 내 입장에선 약값을 아껴 무척 다행이다 싶네. 하지만 제아무리 소세키라도, 긴양이라도, 강사라도, 수염이 났다 해도 미에키치 군에게 이렇게까지 흠모를 받고 감사히 생각지 않는 건 아니라네. 감사함을 넘어 무서울 정도야. 미에키치 군은 내 아내보다 내 생각을 더 많이 하는 듯 하더군. (...) 나는 이래봬도 자부심 넘치는 사내라 내가 일부 사람에게 호감을 살 만한 성격을 가졌다고 자신하네만 이 정도까지 흠모 받을 줄은 몰랐다네. 자만하던 것 이상일세. 예상을 오십오륙 배 초과했어. 본디 사람은 흠모나 친애의 대상이 되면 갑자기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지기 마련일세. 그 흠모와 친애에 부합하는 자격을 하룻밤 사이에 뚝딱 만들어내고 싶은 기분이 드는군. (<나쓰메 소세키 서한집>, 186~187쪽)


그가 아끼던 제자 구메 마사오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에게 쓴 편지는 예전에 읽었을 때도 그렇지만 지금 다시 읽어도 여전히 마음을 울린다. 소세키는 그들에게 ‘공부는 하나요? 글은 쓰고 있습니까? 두 사람은 새 시대의 작가가 될 생각이겠지요. 나도 같은 생각으로 두 사람의 앞날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부디 훌륭한 사람이 되어주십시오. 그러나 너무 초초해하면 안됩니다. 그저 소처럼 넉살좋게 나아가는 자세가 중요합니다.’(416쪽) 말한다. 소처럼 넉살좋게 꾸준히 나아가라는 말은 꼭 소세키의 제자가 아니더라도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마음속에 새겨두기에 좋은 글이 아닌가 싶다. 까닭 없이 긴 편지를 썼다는 나쓰메 소세키. ‘한없이 이어져 저물 줄 모르는 긴긴 하루의 증거로서’(417쪽) 편지를 썼다는 소세키. 을씨년스러운 추위가 온몸을 파고드는 이 쓸쓸한 계절, 다정한 이에게 까닭 없이 긴 편지를 쓰며 하루를 보내는 것도 꽤 의미 있지 않을까 싶다.


소가 되는 건 꼭 필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늘 어떻게든 말이 되고자 하지만, 좀처럼 완전히 소가 되지는 못합니다. 나처럼 노회한 사람도 이제 막 소와 말이 교미하여 잉태한 잡종 수준에 지나지 않아요. 서두르면 안 됩니다. 머리를 너무 괴롭혀서도 안 됩니다. 끈기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끈기 앞에서는 머리를 숙이지만 불꽃 앞에서는 짤막한 기억밖에 허락하지 않습니다. 끙끙대면서 죽을 때까지 밀어야 합니다. 그뿐입니다. 절대 상대를 만들어서 밀면 안 됩니다. 상대는 끝도 없이 나타나 우리를 괴롭히는 법입니다. 소는 초연히 밀고 나갑니다. 무엇을 미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답해 드리지요. 인간을 미는 것입니다. 문사(文士)를 미는 것이 아닙니다. (<나쓰메 소세키 서한집>, 421~4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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