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반란 - 갈라 드레스/ 뉴잉글랜드 수녀/ 엇나간 선행 얼리퍼플오키드 3
메리 E. 윌킨스 프리먼 지음, 이리나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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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잉글랜드 수녀’ 한편만으로 홀딱 반했던 메리 E. 윌킨스 프리먼-드디어 그이만의 작품집이 출간됐다. 여기 실린 네 작품 모두 여성들은 꿋꿋하다. 시대 제약이 있음에도 자기에게 주어진 삶에 그대로 순응하지 않고 제 나름으로 자신을 위해 작은 투쟁을 벌이고 마침내 원하는 것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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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 (리커버 에디션) 옥타비아 버틀러 리커버 컬렉션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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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이라는 설정은 이제 더는 새롭지 않다. 영화나 문학에서 익숙하게 접해온 풍경이다. 시공간을 초월해 어디론가 뚝 떨어질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진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나 또한 이런 설정으로 만들어진 책이나 영화를 보면 한번쯤은 그런 상상을 해 보기도 한다. 어디로 갈까? 하지만 왠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굳이 과거로 가고 싶지는 않다. 게다가 그 과거가 우리나라의 조선시대나 그 이전 시대라면 생각만으로도 숨이 턱 막혀온다.

 

대부분의 나라는 과거에 신분제가 엄격히 존재했다. 조선시대 또한 엄연히 노비와 양반으로 나누어진다. 어느 날 갑자기 과거로 돌아가 내가 어느 양반집 종 신분이 된다면 어떨까?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게다가 돌아가 보니, 그 양반집에 내 조상이 있다. 남자 조상은 양반집 자제인데, 여자 조상은 그 집 노비이다. 이런 설정이라면 앞으로 벌어질 일이 눈앞에 훤히 그려진다. 양반집 자제가 강제로 그 여종을 취할 것이며 그렇게 내 조상의 핏줄은 이어져서 오늘날의 내가 되기에 이르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옳지 못한 일을 내가 현대에서 과거로 돌아갔기 때문에 이미 다 알고 있고, 그 과정을 묵묵히 지켜봐야 한다면 어떤 심정일까? 이런 이야기가 바로 옥타비아 버틀러의 <>에서 펼쳐진다.

 

배경은 물론 내 상상과는 다르다. 주인공 다나가 사는 세계는 노예제가 사라진 1976년의 미국이고, 그 다나가 어느 날 갑자기 시간여행을 하게 되는 곳은 노예제가 존재하는 1819년의 미국 남부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여행에서 팔 하나를 잃었다. 왼팔이었다. 그리고 일 년에 가까운 인생과 사라지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귀한 줄 몰랐던 편안함과 안전의 많은 부분을 잃었다.’ 이 작품은 이렇게 시작한다. 대체 어떤 여행을 떠났기에 왼팔을 잃은 처참한 모습으로 돌아와서, 다나의 남편인 케빈이 폭행을 가한 당사자가 아닐까 의심받게 되는 상황에 처한 것일까 궁금해진다. 그런데 알고 보니 참 느닷없게도 다나는 한 세기를 넘고 5천 킬로미터를 지나 죽은 조상들을 만나고 온 것이다. 1819년의 루퍼스앨리스가 다나의 조상이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이 여행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루퍼스, 그러니까 다나에게는 남자 조상에 속하는 그 아이에게 있다는 점이다. 처음 다나가 과거로 돌아갔을 때 소년 루퍼스는 죽음의 위기에 처해 있다. 강물에 빠져죽을 위기에서 다나가 갑자기 나타나 루퍼스를 살려주고 그 인연으로 루퍼스의 집에서 노예이지만 조금 색다른 존재로 머물게 되는 것이다. 흑인인 다나는 1976년에는 자유인이지만, 1819년에는 자유인이라는 신분증명서도, 누군가 자기 소유라고 말할 수 있는 백인이 함께 있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당연히 도망 노예 취급을 받고, 그렇기에 루퍼스의 집에 기거하게 된다. 그때 다나는 루퍼스의 집에서 소녀 앨리스를 보게 된다. 루퍼스는 백인 농장주의 하나뿐인 아들이고, 앨리스는 그들이 소유한 노예이다. 다나가 태어나려면 앨리스와 루퍼스 사이에 성적 결합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들은 주인과 노예 사이이자, 백인과 흑인이다. 이 둘 사이에 일어날 일은 독자는 물론 다나도 예상할 수 있다. 설마 루퍼스가 앨리스를 사랑할까, 설마 앨리스가 백인 주인인 루퍼스를 사랑할까. 그 시대는 이 작품에서도 언급하듯이 흑인 여자를 강간한다고 부끄러울 것은 없어도 흑인 여자를 사랑한다면 부끄러울 수 있는 시대’(236)이다. 그런데 둘 사이에서 다나의 조상들이 태어나고 그 핏줄이 1976년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다나는 한 번의 시간여행으로 내내 1819년의 세계에서 살아야 하나? 여자 흑인 노예로 목숨을 부지하기 쉬울까 무척 걱정스러운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주 위험에 처할 때면, 즉 다나의 목숨이 위험해지면 그 죽음의 공포는 다나를 1976년 그녀의 집으로 다시 데리고 온다. 그러니까 루퍼스가 느끼는 죽음의 공포가 다나를 과거로 불러가고, 반대로 다나가 느끼는 죽음의 공포는 1976년의 현재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 사이 시간은 점차 흐른다. 과거의 시간은 더 빨리 흐른다. 다나가 1819년에서 며칠, 몇 달을 머무르다 현재로 돌아와도 고작 몇 초, 또는 몇 시간, 하루 이틀이 지났을 뿐이다. 그러나 과거에 입은 육체적 상처는 현재로도 이어지기에 루퍼스 와일린, 즉 와일린 농장에서 다나가 채찍으로 맞거나 구타당하면 현재로 돌아와도 그 채찍자국이나 맞은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은 이런 설정을 통해 당연하게도 노예문제와 인종차별 문제를 지적한다. 노예가 아닌 현대 여성이 과거로 돌아가 노예인 조상과 그 노예의 주인인 또 다른 조상을 만나지만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노예 취급을 받는다는 설정은 깊이 고민하지 않아도 인종차별과 노예문제를 지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이 작품에서 더 관심이 가는 부분은 젠더문제이다. 다나가 처음 만났을 때 어린 소년이었던 루퍼스는 어쩌면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을, 단지 피부가 하얀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실제로 루퍼스가 성장하면서도 흑인 노예에게 무고한 존재로 자랄 수 있을까? 혹시 흑인 노예인 앨리스를 사랑하는 마음에 자애로운 농장주가 되어 노예들을 모두 풀어주고 더 나아가 노예 탈출을 돕는 백인이 되는 걸까 상상해 볼 수도 있지만 실제 루퍼스는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도리어 자기 아버지와 똑같은 평범한 그 시대 백인 농장주가 되어간다. 아버지가 여자 노예를 여럿 강간했듯이 앨리스를 강간하는 점까지 똑 닮아가면서 말이다.


자기 아버지처럼 변해가는 루퍼스. 나는 루퍼스에게 최악의 수호자였다. 흑인을 열등한 인간으로 보는 사회에서 흑인으로서 그를 지켜야 했고, 여자를 영원히 자라지 못하는 어린아이로 여기는 사회에서 여자로서 그를 지켜야 했다. 내 몸 하나 지키기도 벅찬 곳에서 말이다.(124)

 

다나의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그녀는 루퍼스를 교화할 수 없다. 앨리스를 향한 루퍼스의 집착-루퍼스는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을 과연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을 알면서도 묵인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차적으로 다나의 뿌리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루퍼스와 앨리스가 성적으로 접촉하지 않는다면 현재의 다나는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두 번째는 여러 번이나 죽음의 위기에 처하는 루퍼스를 다나가 돕지 않는다면, 와일린 농장의 수많은 노예들은(특히 가족을 이루고 살고 있는 노예들은) 농장주의 죽음으로 인해 가족 모두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다나는 자신의 뿌리는 물론, 이 농장의 노예 가족들이 흩어지는 것을 막고자 루퍼스의 목숨을 구하는 일에 계속 가담하거나 루퍼스가 앨리스를 강간하는 일도 묵인할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의 제목이 <kindred>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렇게 가족또는 친족이 이어지기 위해 한 남자의 파괴적인 행동을 묵인하거나 방조하는 일은 용인되어도 괜찮은가? 거기에 어떤 식으로든 동조하는, 아니 그럴 수밖에 없는 다나의 모습을 지켜보는 독자의 마음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다나가 루퍼스를 두 번째로 구하게 되는 순간은 앨리스에게 지옥이 열리는 순간이나 마찬가지이다. 루퍼스는 앨리스를 강간하려다 앨리스의 남편에게 심하게 구타당하고 죽음의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그때 다나가 나타나 이 청년의 목숨을 구하게 되고, 목숨을 건진 루퍼스는 앨리스의 남편은 다른 곳으로 팔아버린다. 루퍼스는 그 후 앨리스를 강제로 취하게 된다. 앨리스는 루퍼스가 끔찍하기만 하다. 그의 손이 닿을 때마다 차라리 죽고 싶다. 그러나 그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기고 아이들 때문에 앨리스는 달아나지도 죽지도 못한다. 그리고 그걸 알기 때문에 아이를 빌미로 루퍼스는 앨리스를 조종한다.

 

한편 루퍼스는 다나에게도 다른 방식으로 집착한다. 루퍼스에게 다나는 말이 통하고 정신적으로 기댈 수 있는 존재다. 다나를 강간하는 일만큼은 하지 못하는데, 그렇게 하면 자기 목숨이 위태로워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다나가 떠나지 못하도록 온갖 술수는 쓴다. 루퍼스는 자기 통제를 벗어나면 다나에게도 가차 없이 매질을 가한다. 그러고는 자신이 다나를 상처 입히거나 화나게 했다는 것을 알면 선물을 주곤 한다. 그러나 절대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루퍼스가 앨리스나 다나를 대하는 태도는 많이 보아온 익숙한 모습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는 소유하고 강간하고 아이를 빌미로 떠나지 못하게 종용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구타하고 그러면서 잘 대해주는 척하고……. 다나의 모범적인 남편 케빈도 한계를 보인다. 다나를 향한 루퍼스의 감정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고는 다나가 끔찍한 일을 당하고 현재로 돌아왔을 때 고작 의심하는 일이 루퍼스가 강간하지는 않았을까이다. 노예가 아닌 오늘날의 여성들 중에서도 남편이나 연인에게 이런 대우를 받는 일은 너무나 많지 않은가?

 

옥타비아 버틀러는 다른 시대를 살아가도 똑같이 흑인 여성인 다나와 앨리스 두 사람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흑인이어서, 여성이어서 노예와 같은 처지에 놓인 여성의 삶을 극명하게 고발한다. 그것이 작가의 의도였다면 이 작품은 아주 성공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루퍼스를 살리는 일에 계속 애를 쓰는 다나의 선택에 큰 아쉬움이 남는다. 자신의 뿌리가 끊이지 않기 위해, 다른 흑인 가족들이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한 여성, 앨리스의 고통은 눈감아도 되는 것일까? 어차피 개인의 역사가, 한 집안의 역사가 그렇게 이어졌기 때문에 거기에 동조하는 것밖에는 할 수 없는 것이었을까? 가족이 해체되더라도, 자신의 뿌리가 뒤흔들리더라도 루퍼스라는 악의 씨앗을 잘라버리는 일을 시도했더라면 어떠했을까? 그래서 앨리스에게 새로운 삶을 시작되는 일이 일어났더라면 어떠했을까. 아쉬움과 답답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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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 대한 연민 - 혐오의 시대를 우아하게 건너는 방법
마사 C. 누스바움 지음, 임현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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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원인을 두려움에서 찾는 시선이 신선하다. 두려움, 분노, 혐오로 발생하는 사회 문제와 그 해결법으로 제시하는 사랑까지, 혐오 문제를 감정에 초점을 맞춰 철학적으로 접근 설득력 있게 풀어나간다. 이해와 공감하기 쉬운 내용들. 마사 누스바움에 처음 다가가는 이들에게 알맞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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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 (리커버 에디션) 옥타비아 버틀러 리커버 컬렉션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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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SF스럽지 않은 SF. 노예제 시대로 돌아간 흑인 여성을 통해 인종, 젠더 문제를 질문한다. 젠더문제가 더 눈에 들어오는데, 자기 연민 쩌는 쓰레기 루퍼스 때문에 읽는 내내 암 생길 거 같았다. 아무리 애증이라지만 다나의 행동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고... 좀더 혁명적 스토리를 기대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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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10-17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있는 것 같은데... 찾아봐야겠어요. SF 는 저는 자꾸 뒤로 미루게 되더라고요.

잠자냥 2020-10-17 17:39   좋아요 0 | URL
아마 구판으로 갖고 계실 거 같아요. 전 이 리커버판으로 이제야 읽었는데 휴... 넘 답답하더라고요. 암 유발 ㅜㅡㅜ
 

오래 전에 읽은 ‘아버지의 뒷모습’이라는 수필이 있다. 중국의 주자청(주쯔칭)의 글인데, 담백하고 소박한 문장으로 써 내려간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가 뜻밖의 감동을 준다. 멀리 공부하러 떠나는 자식이 걱정되어 역까지 배웅 나온 아버지가 이것저것 챙겨주다가 귤을 사주려고 비대한 몸으로 철길을 가로질러 가는 모습, 정확히는 그 뒷모습이 자식의 눈으로 그려진다. 다 큰 자식은 주자청 본인이었을 텐데, 이것저것 챙겨주는 아버지의 보살핌이 부담스럽고 못마땅하던 아들은 그 뒷모습을 보고는 그만 마음이 허물어지고 만다.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만큼 수필은 꽤 인상 깊었다. 다른 것이 아닌 다 늙은 부모의 ‘뒷모습’에 주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아버지의 뒷모습이 각인되어 있다. 아버지를 인간으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그 모습은 아직도 선명하다. 대학 1학년 때였나 연락도 하지 않은 채 외박을 하고 밤 새워 술을 마시고는 첫차를 타고 집으로 들어오던 길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아파트 입구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저 멀리서 아버지가 걸어오고 있었다. 아침 6시를 조금 넘었을까. 아버지 또한 나를 본 게 틀림없었다, 나는 무단 외박에, 술이 덜 깬 몰골에, 다른 사람들은 새 아침을 시작하는 시간에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집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게다가 하필이면 출근하는 아버지를 맞닥뜨렸다는 사실 때문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다 기어가는 목소리로 ‘다녀오세요....’ 말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일찍 오는구나.’ 한마디를 남기고는 그길로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바쁜 아침이라 꾸중할 시간도 없었겠지만, 뜻밖의 덤덤한 아버지의 태도에 얼떨떨하기만 했다. 혼이 나지 않아서 이상한 기분으로 뒤를 돌아보았는데, 사람들 틈바구니에 섞여서 밥벌이를 하러 나가는 한 중년 남자의 고된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이다.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그날 그 뒷모습만큼은 내 부모로서가 아닌, 고된 인생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모습으로 또렷하게 남은 것을 보면, 인간의 뒷모습은 참 많은 것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사진작가 사울 레이터는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에서 ‘나는 사람의 앞모습보다 뒷모습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92쪽)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사진 속 사람들은 정면을 바라보는 일이 드물다. 레이터 자체가 피사체를 향해 직접적인 시선을 던지지도 않는다. 그는 주로 거울과 유리창에 비친 형상을 담거나 인물의 뒷모습이나 옆모습을 담거나, 유리창이라는 매개를 사이에 두고 안과 밖에서 피사체를 바라본다. 그렇다고 그의 시선이 차갑거나 불안하지 않다. 길모퉁이의 세세한 풍경을, 삶을, 사람을 사울 레이터는 그만의 방식으로 느긋하게 읽어 나간다.

뒷모습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듣는 사진작가는 여기 또 한 사람 있다. 에두아르 부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순간’을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을 받는 그의 사진도 사람들의 뒷모습을 많이 포착하고 있다. <뒷모습>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그런 사진들만 추려낸 것이라 더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50장이 넘는 이 빼어난 사진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에두아르 부바가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인간의 뒷모습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그런 순간이나 피사체를 담고자 애써왔음을 절로 알 수 있다. 이 아름다운 사진에 시(時)와 같은 글귀를 덧붙인 미셸 투르니에는 ‘뒤쪽이 진실이다’라는 선언을 통해 뒷모습을 예찬한다. 투르니에는 이렇게 말한다.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너그럽고, 솔직하고 용기 있는 한 사람이 내게로 오는 것을 보고 난 뒤에 그가 돌아서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것이 겉모습에 불과했음을 얼마나 여러 번 깨달았던가. 돌아선 그의 등이 그의 인색함, 이중성, 비열함을 역력히 말해주고 있다. (....) 뒤쪽은 진실이다.’(<뒷모습>, 5쪽) 이 책은 50 여개의 에두아르 부바의 사진을 통해 바로 그 등 뒤의 진실을 탐색한다.

흑백으로 이루어진 부바의 사진들은 하나 같이 아름답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다정하게 속삭이고 또 때로는 웃음을 주며, 어느 땐 숭고한 감정에 휩싸이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사진 하나하나에 덧붙인 미셸 투르니에의 글귀들은 더욱 감칠맛이 난다. 기도하느라 수그린 등을 보며 투르니에는 ‘신이 인간에게 기대하는 것은 사랑보다 두려움이다. 신 앞에서 인간은 둥글게 등을 구부리고, 그 왜소함 속으로 빠져든다.’ 말하고, 패션쇼 의상 모델인 여자의 뒷모습을 포착한 사진에서는 옷 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숨어 자기를 희생하고 완전한 헌신을 약속했기에 모질게 혹사당한 몸이 되었던 여자의 고통을 엿본다. 그리고 그 몸이 문득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제 존재와 매력을 회복하는 것을 여자의 뒷모습에서 포착한다.

바다에 텀벙 뛰어들지 못하고 주저하는 커플의 뒷모습을 보며 가난한 이들의 사랑을 떠올리기도 한다. 투르니에가 생각하기에 부자들은 그럴 때 망설임 없이 수영을 한다. ‘수영복 표면적은 그걸 가진 사람의 재산에 반비례’한다. 그래서 ‘아주 큰 부자들은 완전히 벌거벗고 헤엄친다. 부자들은 수영도 할 줄 아니까.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은 부끄럼을 타고, 추위를 타고, 겁이 많다. 그래서 세상의 첫날처럼 그래서 세상의 마지막 날처럼 머뭇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본다. 남자는 양말을 신은 채 여자는 스커트를 걷어 올린 채.’ 에두아르 부바가 어떤 시선과 느낌으로 바다 앞에서 서성이는 남녀를 카메라에 담았을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미셸 투르니에의 이 해석에 왠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부바와 투르니에의 시선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허리를 구부리고 가는 노파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에서 투르니에는 ‘할머니 그렇게 허리를 구부리고 가는 것은 땅바닥에 떨어뜨린 청춘을 찾으려는 건가요, 아니면 등을 짓누르는 세월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인가요?’ 묻고, 친구와 다정히 어깨동무한 아이들의 뒷모습에서 우정의 속성을 이야기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우정에는 사랑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정의와 지적 노력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적 분위기에서 우정이 피어난다. 우정에는 비밀과 배타적 결속이 있어서 타인들에게 등을 돌리는 방식을 통해서 그 구체적 본질’을 드러낸다. 한편, 바다에서 발가벗고 물장구치는 아이들의 뒷모습 사진에서 투르니에는 그의 소설 <마왕>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죽은 고기 뭉치요 지방질 창고인 어른들의 엉덩이와 반대로 아이들의 활기찬 엉덩이는 언제나 깨어나 팔딱거리고 때로는 야위고 빈약해 보이지만 어느새 쾌활해져서 천진하게 낙천적, 얼굴처럼 표현적.(미셸 투르니에, <마왕>)


루브르 박물관의 조각상 뒷모습 사진에서 투르니에는 엉덩이를 찬미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찬미해도 모자랄 것이 엉덩이다. 인간이 지닌 것 중에서도 가장 부드럽고 수동적이고 맹목적인 믿음 가득한, 발에 걷어차이고, 매를 맞아도 보잘것없는 몸 바침이 운명인, 그 모든 것이 찾아와 은신하는 이 두 쪽의 둥그런 물건을 만약 조물주께서 깜빡 잊고 남자 여자에게 달아주지 않았다고 상상해보라. 그 얼마나 소름끼치는 일이겠는가’ 그러고 보니, 인간에게 엉덩이가 없다면 정말 이상할 것 같기는 하다. 부바와 투르니에는 이렇게 독자가 생각지도 못한 발견을 하게 해주면서 인간의 뒷모습을 비롯해 조각상, 샹송과 에펠탑으로 상징되는 파리의 뒷모습, 창턱에 한가로이 앉아 있는 덩치 큰 고양이의 뒷모습 등등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아름다움과 때로는 그 빛과 그늘을 재발견하게 해준다.

부바가 투르니에의 글귀를 읽었다면 아마도, 오, 그게 바로 내 시선이었어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정말 그렇군요, 하고 동의와 찬탄을 보냈으리라. 그럴 만큼 사진가와 작가의 궁합은 찰떡같은데,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의 인연은 꽤 오래되었다. 미셸 투르니에의 에세이 모음인 <예찬>에도 부바가 등장한다. 두 사람은 1974년 4월에 일본으로 함께 떠났는데, ‘일본 기행 수첩’이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그들이 함께 보고 느낀 일본 풍경을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 그 글에서도 투르니에는 부바를 예찬하는 일을 잊지 않고 이렇게 쓰고 있다. ‘부바가 손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서 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기차의 흐린 불빛과 진동 속에서도 훌륭한 사진을 찍어낼 수 있을 만큼 실력자다.’(미셸 투르니에, <예찬>, 234쪽)

<뒷모습>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진과 글은 ‘잊혀진 천사’이다. 무언가에 정신이 팔린 어른들. 그 덩치 큰 어른들 틈에서 천사 날개를 단 아이가 자기도 보려고 애를 쓴다. 회색 빛 어른들 사이에서 흰 날개를 지닌 이 아이의 뒷모습은 너무나 이질적이고 그래서 정말 천사가 내려온 느낌을 자아낸다. 투르니에는 그 사진에 이렇게 덧붙인다. ‘저들 어른들은 대체 무얼 보고 있기에 저토록 심각한 것일까? 그 무슨 속된 구경거리에 저토록 절박하게 팔려 있기에 저들은 단 하나, 중요한 것을, 잊힌 채 무시당하고 뒷전이 된 이 어린 천사를 보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는 얼마나 여러 번 어리석은 즐거움을 좇아 무작정 달리곤 하는가, 우리를 기다리는 천사가 등 뒤에 와 있는데.’





<뒷모습>이 담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해주는 사진과 글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대부분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앞만 보며 달리느라 뒤에 무언가 중요한 것을 남겨두고도 잊고 만다. 마치 등 뒤에 천사가 있는데 알아차리지 못하듯이...... ‘사진을 보는 사람에게 사진가가 주는 선물은 일상의 간과된 아름다움일 경우가 종종 있다.’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104쪽)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뒷모습>은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또는 그냥 지나친 뒷모습의 아름다움과 그것이 주는 깨달음을 전하면서 바쁜 일상에 작은 쉼표를 찍어준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잊혀진 천사’ 같은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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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10-16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도 너무 좋고요 잠자냥님, 올려주신 잊혀진 천사의 사진도 정말 좋네요.

잠자냥 2020-10-16 10:56   좋아요 1 | URL
언젠가 다락방 님의 뒷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라며 ㅎㅎㅎㅎ (근데 안젤리나 졸리 뒷모습이였고.... 두둥!)

다락방 2020-10-16 11:05   좋아요 2 | URL
제가 이 글 진지해서 태클 걸려다 참았었는데요 사실 엉덩이 말입니다... 엉덩이요. 제 뒷모습은 엉덩이만 보일거에요. 아주 큽니다. 유전이에요.... 하아-

잠자냥 2020-10-16 11:4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셸 투르니에가 예찬할지도! 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0-10-16 11:49   좋아요 0 | URL
앗 어떡해요, 조 아래 쿨캣 님이 사람의 외양을 엉덩이로 평가한다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10-16 11:52   좋아요 0 | URL
아 이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0-10-16 1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버지와의 에피소드 ...제 얘기인줄 알았습니다. ㅠ
뒷모습은 정직하다는 투르니에의 말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네요.
저는 남녀 불문하고 사람의 외양을 뒷태 그 중에서도 엉덩이로 평가합니다. 얼굴 가슴 이런거 안보고 엉덩이가 멋지면 속으로 열광하는데요.투르니에가 엉덩이 찬미자라니! 좋아집니다.
아침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잠자냥 2020-10-16 11:50   좋아요 1 | URL
하하하, 알고 보니 아버지와의 그런 에피소드 다들 하나쯤 있는 거 아니에요? ㅋㅋㅋㅋ 그 아침에 정말 자기 자신이 쓰레기처럼 느껴지지 않던가요? ㅎㅎㅎㅎㅎ
쿨캣 님도 엉덩이 찬미자이군요! 투르니에와 쿨캣님이 열띠게 엉덩이 이야기하는 모습 상상해 보니 재미납니다. ㅎㅎㅎ

Falstaff 2020-10-16 11:58   좋아요 0 | URL
마누라가 제 엉덩이 탁 올라붙은 거 하나 보고 결혼했다더니, 그게 진심이었는지 모르겠다고.... 문득 생각이 듭니다. ㅋㅋㅋㅋ

잠자냥 2020-10-16 12:26   좋아요 0 | URL
오 폴스타프 님 소싯적 엉덩이가 그랬다는 거군요! ㅋㅋㅋㅋㅋ 투르니에에게 묘사해 보라고 하고 싶다...... ㅋㅋㅋㅋㅋ

Falstaff 2020-10-16 1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서 진짜로 궁금한 건, 김화영이 어떻게 후기를 썼을까, 하는 겁니다. ㅋㅋㅋㅋㅋ
이 양반이 저한테 찍혀도 좀 많이 찍힌 거 같네요. 유명한 불문학자니까 번역수준이야 뭐 최상이겠지만, 아 글쎄, 사람이 성의가 너무 없는 거 같아서리.... ㅋㅋㅋㅋㅋ 하긴 뭐 번역만 잘 하면 됐지 성의까지야....
그래서 트루니에를 좋아하지만 여태 이 책 사기를 주저했습지요.

잠자냥 2020-10-16 12:27   좋아요 0 | URL
크하하, 김화영 후기는 예전에 폴스타프 님이 예상하신 딱 그대로입니다. 정말 어쩜 그렇게 예상을 한치도 안 벗어나던지. 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역자 후기는 걍 대충 읽고 넘겼어요. 뭔가 오글거림;;

coolcat329 2020-10-16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레기‘ 맞습니다! 정말 부끄러웠죠. 그 시절 생각하면 책 한 권도 안 읽고 돈쓰고 술먹고 토하고 ㅠㅜ 에휴 정말 지워버리고 싶은 그런 시절입니다 ㅋㅋㅋ

잠자냥 2020-10-16 12:28   좋아요 0 | URL
ㅎㅎㅎ 한때 다 그런 시절이 있는 거죠. 제가 그 시절 술 먹고 토한 양만 따져도.... 음음. ㅋㅋㅋㅋㅋㅋ

hnine 2020-10-16 1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뒷모습을 보고 있는사람,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글이 좋아 아까 읽고 지금 다시 한번 읽고 갑니다.
아버님과의 일화는 제 마음도 흔들어놓아요.

잠자냥 2020-10-16 21:32   좋아요 0 | URL
와 두 번이나 읽어주시다니, 더없는 기쁨입니다. 감사합니다.

noomy 2020-10-27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넘 좋아요~ 좋아요 두 번 안되나요? ^^;;

잠자냥 2020-10-27 10:26   좋아요 0 | URL
과찬 감사합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