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면서 돈 때문에 걱정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크든 작든 다들 한번쯤은 돈 걱정, 돈 생각을 한다. 이렇게 일하며 사는 것도 모두가 그 ‘돈’ 때문이다. 돈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벌어서 안락한 삶을 누리기를 바란다. 아니 돈이 많은 사람, 부를 쌓은 사람을 부러워하며 자기도 그 무리에 속하기를 바라며, 언젠가는 그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도 정신없이 살아간다. 그러나 정말 돈이 많으면 그저 안락하고 편안하며 행복할까? 돈은 인간에게 과연 무엇일까? 발자크의 <곱세크>는 그 ‘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곱세크>에는 샤일록처럼 냉혈한 고리대금업자인 ‘장에스테르 반 곱세크’가 등장한다. 화자인 ‘데르빌’이 그를 처음 알고 지내게 된 무렵 그는 벌써 76세의 노인으로 고리로 돈 놀이를 하면서 많은 돈을 벌지만 지독한 구두쇠이다. 가족도 없이 혼자 살아가는 그는 친족은 물론 부모 대부터 손자 대까지 그 어느 누구도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신의 상속자들을 증오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자신이 죽은 후에라도 본인 이외의 사람이 자기 재산을 소유할 거라는 생각조차하지 않고 살아간다. 데르빌은 그런 곱세크를 보며 이렇게 생각한다. ‘도대체 이 인간은 무엇을 생각하는 걸까? 신이라든가 감정이라든가 여자라든가 행복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이 사람을 알기나 할까?’

데르빌은 잘못 짚었다. 곱세크에게는 신이라든가 감정이라든가 여자, 또는 행복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는 오직 황금만이 생의 즐거움이다. 스스로 자신의 삶만큼 빛나는 인생은 없다고 생각한다. 데르빌과 같은 젊은이들은 벽난로 불씨 속에서도 여자의 얼굴을 보지만 곱세크에게는 그저 재가 보일 뿐이다. 그 그것이 그저 환상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자기만큼 오래 살다 보면 인간이 관여할 만한 확실한 가치를 지닌 것은 오직 하나, 바로 ‘금’밖에 없음을 깨달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곱세크가 보기에 금은 모든 인간의 힘을 대행한다.

그렇다고 이 수전노 곱세크가 샤일록처럼 단순한 구두쇠에 냉혈한 고리대금업자인가하면 그렇다고는 볼 수 없다. 이 부분에서 발자크의 위대함이 드러난다. 곱세크의 외모를 묘사하는 부분을 읽노라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그의 누런색 이마의 주름살들은 무서운 시련, 무한한 기쁨, 견뎌야 했던 배고픔의 나날, 짓밟힌 사랑, 위험에 연루된 후 파산 그리고 도로 찾은 재산, 수없이 위험에 빠진 목숨과 위급한 순간에 불가피하다고 변명할 수 있는 무자비한 순간적인 행동으로써 위기’(22쪽)들이다. 주름살 하나를 묘사하면서도 이런 표현을 쓸 수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이 작품에는 이런 묘사가 종종 등장해서 전율을 일으키게 하는데, 곱세크가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해 찾아간 ‘드 레스토’ 백작 부인의 침실, 방탕한 향락의 밤이 지나간 뒤의 아침 침대를 묘사하는 장면에서도 그 기막힌 솜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이 ‘드 레스토’ 백작 부인은 우리가 익히 아는 ‘고리오 영감’의 큰딸이다. <고리오 영감>에서 아버지의 아낌없는 사랑과 후한 재산 분배 덕택으로 백작 부인이 된 큰딸. 그런데 이 딸은 애인과 함께 사치와 향락과 방탕에 젖어 돈을 물 쓰듯이 쓰면서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는 마침내 곱세크에게 손을 벌리게 되는 궁지에 몰린다. 데르빌은 젊은 시절, 자신의 이웃이자 어떤 면에서는 정신적 스승과도 같았던 곱세크와 이 백작 부인 사이에 있었던 일화를 현재, 그러니까 1829년에서 1830년으로 넘어가는, 새해를 앞둔 어느 겨울 밤 ‘드 그랑르외 자작’ 집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자작 부인의 딸이 고리오 영감 큰딸의 아들, 그러니까 고리오 영감에게는 외손자가 되는 ‘에르네스트 드 레스토’ 백작에게 호감이 있음을 알고 그들 집안 이야기를 들려준다. 때문에 이 작품은 ‘곱세크’의 이야기이면서도 고리오 영감의 큰딸, 그 집안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본 줄거리는 고리대금업자 곱세크의 기이한 물욕과 그가 어떻게 자본을 쌓아 가는지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그를 지켜보는 법률가 ‘데르빌’의 이야기이자, 또 다른 한편으로는 사치와 향락에 빠져 궁지에 몰린 고리오 영감의 큰딸 ‘아나스타지 드 레스토 백작 부인’의 이야기이다. 이렇게 발자크 <인간희극>의 한편을 <곱세크>가 담당하는 것이다.

데르빌은 곱세크의 몸 안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구두쇠와 철학자, 왜소한 인간과 위대한 인간’이 그것이다. 데르빌의 말처럼 곱세크를 수전노 고리대금업자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가 하는 말, 주로 돈과 관련한 인간의 속성을 꼬집는 말들은 통찰력이 매우 깊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곱세크는 스스로 자신의 눈이 하느님의 눈과 같아서 사람들 마음속을 읽을 수 있다고 장담한다. 그의 앞에서는 ‘사소한 말투 때문에 당장 화를 내거나 어떤 사소한 한마디 때문에 결투를 요구할 것 같은, 애인에게 미친 혈기 왕성한 남자가 두 손을 모은 채 간청’한다. 그의 앞에서는 ‘가장 오만한 상인, 자신의 아름다움에 가장 우쭐해 있는 여자’도 ‘가장 의기양양한 군인’도 모두 극도의 증오 또는 비관의 눈물을 흘리면서 간청한다. 그의 앞에서는 ‘가장 유명한 예술가와 자기 이름을 대대로 남길 작가’도 간청한다. 모두가 곱세크에게 돈을 빌리기 위해 무릎 꿇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곱세크의 ‘책상 앞까지 내딛는 그 첫발자국은 일종의 절망과 곧 닥칠 파산 그리고 특히 모든 은행에서 당한 대부금 거절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곱세크를 찾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그들을 곱세크, 아니 그가 가진 돈 앞으로 이끄는 것은 대부분 그들의 허영이다. 허영심은 오직 금으로만 채울 수 있다.


‘저 사람들을 내 집으로 오게 하는 것이 바로 이거였군. 저 사람들에게 수백만의 돈을 모른 척 도적질하고, 자기 조국을 배신하게 부추기는 것이 바로 이거였어. 대귀족이니 혹은 그 흉내를 내는 자들은, 제 발로 걷다가 흙투성이가 되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오히려 진흙탕 물을 온몸에 뒤집어쓰게 되는 거야.’ (<곱세크>, 41쪽)


내 눈 앞에서는 아무것도 숨겨지지 않지. 사람들은 돈 가방의 끈을 묶었다 풀었다 하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거절할 수 없다네. 나는 많은 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관청 사환을 비롯해서 애인에 이르기까지 대신들을 좌지우지하게 하는 사람들의 양심을 매수할 수 있네. 이것이 ‘권력’이 아니란 말인가? 나는 가장 아름다운 여자도 소유할 수 있고 그녀들의 가장 달콤한 애무를 손에 넣는 것이 가능하지. 이게 ‘쾌락’이 아니란 말인가? 자네들의 사회질서 전체도 단적으로 말하면 ‘권력’과 ‘쾌락’으로 환원 가능한 것이 아니겠나? 그러니까 우리는 파리에 열 명쯤 되네. 모두 조용하고 알려지지 않는 왕들로 자네들 운명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자들이지. 인생이란 돈이 움직이게 하는 하나의 기계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46쪽)



여기서 말하는 ‘모두 조용하고 알려지지 않는 왕들, 자네들의 운명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자들’이란 곱세크와 같은 고리대금업자들을 의미한다. 그들은 곱세크처럼 인생의 모든 향락을 싫증이 날 만큼 누린 끝에 이제는 오직 권력과 돈을 그 자체를 위해서만 사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발자크는 <인간희극>에서 이렇게 사회 안에서 새로운 사회를 형성한 고리대금업자들을 다루면서 금융가나 자본가가 쥐락펴락하는 사회를 폭로한다. 거기에 덧붙여 돈이 인간의 성격과 삶에 미치는 영향을 집요하게 추적했는데, 그런 작품들 가운데 <외제니 그랑데>나 <고리오 영감>, <사촌 퐁스> 그리고 이 <곱세크>가 있다. 발자크의 <인간희극>에서 곱세크는 14편에 등장하면서 악인으로 분류된다고 하는데, 이 책을 읽다 보면 곱세크가 과연 악인일까 하는 질문이 남는다.

사치와 향락에 젖어 방탕을 일삼다 끝내 파산 지경에 몰리고, 그런 자기 때문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가는 남편을 보면서도 어떻게 하면 유산을 받을까만 궁리하는 드 레스토 백작 부인의 모습을 보면 인간의 마음에 깃든 허영, 그리고 그 허영을 채우기 위한 끊임없는 욕망이 결국 악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레스토 백작 부인의 행실을 문제 삼았던 자작 부인 집에서도 이제 레스토 백작 부인의 아들이 큰 재산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알자 자신의 가문에 어울릴 만한 자격을 갖췄다고 생각하고 그 모든 도덕적 해이를 묵인하지 않는가. 그들 또한 돈의 위력에 굴복하고 마는 것이 아닌가. 곱세크는 결국 그런 인간의 폭주하는 욕망을 이용해 엄청난 부를 쌓는 자본가의 표상이다. “금은 자네들이 사는 현 사회의 정신이라네.” 곱세크의 이 말은 100여 년 전이 아닌 오늘날, 그래서 더 날카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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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20-08-23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자크의 작품들에 대한 유익한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고리오 영감>을 두 번씩이나 읽고 난 뒤에 재미있는 추억들을 많이 떠올렸더랬습니다.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시골에서 상경한 뒤 ‘서울 생활‘에서 겪었던 에피소드들이
소설 속 주인공인 라스티냐크의 몇몇 경험들과 겹쳐 떠오르기도 했고요.
영화로 만들어진 『고리오 영감』을 바탕으로 유튜브 동영상도 만들어 봤답니다.^^
시간 나시면 한번 구경해 보세요~
https://youtu.be/N3yl7lCoqDY

잠자냥 2020-08-23 09:19   좋아요 1 | URL
와 oren 님 유튜브 동영상 지난번에 보고 그 정성에 깜짝 놀랐습니다. 고리오영감 편도 잘 보겠습니다.
 
[eBook] 예술하는 습관 - 위대한 창조의 순간을 만든 구체적 하루의 기록
메이슨 커리 지음, 이미정 옮김 / 걷는나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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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하는 ‘습관‘이다. 때로는 드물게 몰아쳐서 글을 쓰는 작가도 있지만, 대부분은 ‘습관‘처럼 ‘부지런히‘ ‘쉼없이‘ 쓴다. 아이가 있거나 남편이 억압하거나 집안일에 치이거나 생활이 불안정해도 그 꾸준한 습관이 거장들을 만들었다. 좀 더 심도 있게 한 인물, 인물을 다뤘으면 어떨까 싶은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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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세크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김인경 옮김 / 꿈꾼문고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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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쥐락펴락하는 고리대금업자 ‘곱세크’. 그의 앞에서 인간의 욕망, 숨겨진 비밀, 추악한 갈등 등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읽다 보면 문득, 곱세크가 악인인가? 그를 찾아가게 만드는 인간의 헛된 욕망과 허영심이 악인가, 아니면 돈 자체가 악인가 하는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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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 - 조성진이 연주하는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 / 베르크,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하드커버 디럭스 버전] - 마티아스 괴르네와 함께한 '방랑자 가곡' 보너스 트랙
베르크 (Alban Berg) 외 작곡, 조성진 (Seong-Jin Cho) 연주 / 유니버설(Universal)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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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연주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냥 가만히 귀 기울이게 한다. 이 앨범이 바로 그렇다. 조성진만의 낭만 어린 슈베르트. 특히 이 앨범 버전에만 담긴 마티아스 괴르네와 함께한 방랑자 가곡 보너스 트랙, 정말 좋다....앨범 출시까지 몇 달이나 기다린 보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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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13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 조성진은 쇼팽만 안다... (여기까지만 댓글 달고....) 술마시는 잠자냥이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놀라기를 기다리자.

잠자냥 2021-11-13 01:39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새벽 한 시에 놀라는 잠자냥 ㅋㅋ

- 2021-11-13 09:53   좋아요 1 | URL
잠자냥님 서재에서 음반들은 뒤 메뉴를 찾아와 굳이 읽었어요😏 오메 진짜 어마무시한 문화생활 부자 잠자냥

잠자냥 2021-11-13 11:35   좋아요 0 | URL
그래서 실생활은…. 노부자 ㅋㅋㅋㅋ
 
출신
사샤 스타니시치 지음, 권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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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테니스 선수 가운데 ‘노박 조코비치’가 있다. 워낙 뛰어난 선수라 테니스를 잘 모르는 사람도 그의 이름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에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동네에서 허물어진 담벼락에 공을 튀기며 테니스 연습을 한 기억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가 한 수많은 인터뷰 중에서 왜 유독 이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지 모르겠다. 무너진 담벼락에 테니스공을 튕기는 어린 소년의 모습……. 그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나라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는 있었을까? 세계 랭킹 1위를 밥 먹듯이 하는 선수임에도 그는 이상하게 ‘페더러’나 ‘나달’에 비해서는 스폰서가 많이 붇지 않는다. 그 두 선수에 비해 인기도 떨어지는 편이다. 그 이유를 조코비치가 태어난 나라, ‘출신’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는 이제는 사라진 나라, 유고슬라비아 ‘출신’이고 현재는 ‘세르비아 ’ 선수로 분류된다. 세르비아는 유고슬라비아 내전과 코소보 전쟁 당시 세르비아의 독재자이자 발칸의 도살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로 말미암아 일어난 각종 전쟁범죄로 국제사회, 특히 유럽에서 치명적으로 이미지에 손상을 입었고, 아직도 그 이미지는 회복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1987년에 태어난 조코비치가 성장기 내내 내전을  감당해야만 했던 일도, 세르비아 ‘출신’이라는 사실도 결코 그의 뜻은 아닐 것이다. 그저 ‘우연’일 뿐이다.



우리 모두의 고향은 우연에 의해 탄생한다. 이런 우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은 운이 좋다. 자기 집을 떠날 수 없어서 머물러 있는 사람은 운이 없다. 그러나 떠나고 싶지 않아서 머물러 있는 사람은 운이 좋다. 본인이 살고 싶은 곳에 살 수 있는 소원을 이루는 사람은 운이 좋다. (<출신>, 165쪽)


여기 또 한 사람이 있다. ‘사샤 스타니시치’ 그 또한 유고슬라비아 ‘출신’으로 현재 그가 태어난 나라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그 나라가 존재할 때만 해도 스스로 유고슬라비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세르비아 출신이 아버지와 보스니아-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난 어머니처럼. 하지만 그는 지금도 자신을 소개할 때 유고슬라비아 사람이라고 이야기할까? 사라진 조국, 이제 더는 존재하지 않는 그 어디쯤……. 태어나 나고 자란 자신의 나라가 사라졌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로서는 좀처럼 가늠하기 어렵다. 분명 그 땅은 그대로 있는데, 그 땅을, 공간을 포함한 ‘국가’라는 실체는 사라진 현실. 해마다 11월 29일,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이 수립된 그날이면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유고슬라비아인들이 유고슬라비아풍 분위기가 가득한 여러 상징적인 장소에 모여든다. 그러나 그렇다하더라도 이제는 모두 먼 전설 속 이야기, 전설 속의 용과 같은 이야기처럼 느껴질 뿐이다.

<출신>이라는 어찌 보면 조금 촌스러운 제목의 이 책은 이제 사라진 나라 유고슬라비아 출신인 ‘사샤 스타니시치’ 그가 자신의 기원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듯이 그는 자신이 태어난 나라, 한때 성장하고 꿈을 꾸었을 그 나라를 이야기한다. 그는 그 존재하지 않는 나라를 떠나온 지 오래이며, 가족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치매를 앓으며 기억을 잃어가는 할머니, 죽음을 앞둔 할머니를 마주하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기원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혈통과 출생지가 분류 기준의 특징으로 이용’되고 ‘국경선이 새로 정해지고 여러 개의 소국으로 분립된 나라의 메마른 늪에서 국익이 등장하는 시대’, 그리고 ‘타민족 배척이 정책 프로그램으로 다시 채택될 가능성이 높은 시대’에 그 자신과 그의 가족의 ‘출신’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진부하고 참으로 파괴적인 것처럼 생각’ 되더라도 그는 그 이야기를 지금 할 수밖에 없다. 할머니의 흐려지는 기억과 마주한 지금이 바로 그 적기이다. 그가 출신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질적’인 것과 관련이 있다. 현재 그가 살고 있는 장소를 결정하는 데에도, 가족이 있는 곳에 결코 함께 살지 못하는 데에도 이 ‘이질성’이 오랜 세월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는 전쟁도 하나의 출신이다. 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어머니와 함께 세르비아, 헝가리, 크로아티아를 넘어 독일로 도망쳐서 1992년에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한다. 아버지는 세르비아 국경 너머로 그들을 데려다주고 비셰그라드로 돌아가 할머니 곁을 지킨다. 그렇게 반년이 지나고 아버지도 독일로 뒤따라왔다. 발칸에서 도망쳐 온 그의 아버지는 독일어를 하지 못한다. 유고슬라비아에서 정치학자였던 어머니는 큰 세탁 공장에 떨어져 5년 반 동안 뜨거운 수건에 파묻혀 살았고, 경영학자였던 아버지는 공사판에서 일한다. 그렇지만 이 삶마저도 불안정해서 1998년, 어머니와 아버지는 인종 청소를 자행하는 비셰그라드로 추방되기 전에 미국 플로리다로 이주한다. 그리고 현재 부모님은 미국 연금생활자 신분으로 연금을 받으며 크로아티아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곳에선 늘 1년씩밖에 체류할 수 없다. 조국은 사라지고 가족은 흩어지고 계속해서 어딘가를 떠돌 수밖에 없는 불안정한 삶. 이것이 모두 그들이 바란 삶일까? 아니다, 그저 ‘우연’일 뿐이다.

서른다섯 살 때 그의 어머니는 비셰그라드에서의 삶을 포기해야만 했다. 아름다운 추억, 성공, 개인적인 행운으로 넘쳐났던 장소를 떠나 그곳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다. 지금의 어머니는 사샤 스타니시치, 그처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꾸며낸 이야기’로 채우지는 않는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어머니에게 출신은 ‘고향 땅에서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움찔하는 몸짓’과 같다(162쪽). 그런데 정말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일 뿐일까? 추억과 성공, 행운으로 넘쳐났던 장소를 떠나, 그것을 완전히 잃어버린 일이 그저 지나간 일일뿐일까. 아마도 머리로 기억하고 몸에 각인된 그 기억을 떠올리게 될 때면 늘 움찔하게 되지 않을까.

조국에서는 엘리트였던 어머니와 아버지가 낯선 나라를 떠돌며 노동 계층 사다리에서 가장 아래 단계에 놓인 삶을 살아갔던 것만큼 ‘나’의 삶 또한 쉽지만은 않다. 작가로서 독일에서 살아갈 수 있음을 끊임없이 ‘증명’해야만 하고 발칸반도 출신임에도 사회에 잘 적응해서 아무런 문제없이 살아갈 일원임을 또 ‘증명’해야 한다. 예의 바른 사람이며 ‘체코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누군가의 마음이 불편해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공공장소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세르보크로아트어로 이야기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독일어로 얘기하라는 강요를 받는 등 사람들은 그들에게 끊임없이 ‘모든 규칙’을 상기시킨다. 그것으로도 부족해 그들에게 늘 ‘이곳에서 너희는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화약고 같은 발칸반도 출신이기에, 사라진 나라 유고슬라비아 출신이기에 그의 가족들은 편견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공격적이고 야만스럽고 불법적이지 않은 태도로 사람들을 대하는 법을 배운다. ‘알뿌리와 싹. 다른 식물에 붙어사는 식물’이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쉽사리 떠나지 않는다. 유고 사람 중 한 명이었지만, 유고 사람이 아닌 친구들에게 그가 유고에서 어떤 종족에 속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유고 사람들 대부분은 ‘출신’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감당할 수 없는 차별들…….

그러나 <출신〉은 나라 잃은 민족, 나라 잃은 사람에 대한 차별과 그들 삶의 어려움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사샤 스타니시치의 할머니 이야기이다. 할머니는 여든일곱 살이지만 때로는 열한 살이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일곱 살 소녀이다. 할머니의 서서히 사라져 가는 기억 속에서는 비셰그라드에서의 행복했던 삶,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이어서 그래서 행복했다고 기억할 순간순간들이 펼쳐진다. 할머니로 인해 ‘나’ 또한 멀리 떨어져 기억에서 사라져가던 추억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 기억 속에는 할아버지도 있다. 할아버지는 용을 퇴치한 전설 속 용사 게오르기우스를 숭배하는 마을 출신이다. 잊고 지낸 용 모양 펜던트나 용 모티브 자수, 용을 닮은 양초 등등을 보며 그는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할머니와 손을 잡고 유년 시절, 이제 사라진, 다시 붙잡을 수 없는 그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파편화되어 드문드문 떠오르는 기억들, 어쩌면 이제는 기억조차 사라져서 기록으로 남길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할머니는 마음에 품고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그런 수많은 기억과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이제는 사라진 유고슬라비아, 그 땅 곳곳에서 흩어져 존재할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전설에서나 만날 수 있는 한 마리의 용처럼 또 다른 전설이 되어갈 것이다. ‘옛날 옛적에 유고슬라비아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로 시작될 전설. 그 이야기들이 완전히 잊혀 쓸 이야기가 하나도 없어지기 전에, 조금씩 복원해 기록되어 추억할 수 있는 하나의 전설이 되기를, 그리하여 ‘유고슬라비아에서 도망쳐 나온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이루어진 이 세상에, 고향을 떠나온 난민의 자녀들이 이제 어른이 되어 다시 자녀를 두고 그 아이들이 세계 곳곳 국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지금, 이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를, 그래서 조금이나마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기를, 무언가를 잃어버린 그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 이야기들을 기록한 것이 아닐지. ‘옛날 옛적에 유고슬라비아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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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5-07 14: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잠자냥님. 제가 지금 이 책을 읽고 있고 읽기를 포기할까 수차례 생각하는데, 끝까지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리뷰네요. 역시 리뷰는 잠자냥 님 표가 최고인 것 같아요. 리뷰를 보니 너무 근사한 책인데 제가 못읽고 있어서 답답할 따름입니다. 이 리뷰를 읽고나니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보자 생각하게 됩니다. 힘낼게요!!

잠자냥 2020-05-07 15:13   좋아요 0 | URL
우와 끝까지 읽고 싶은 마음을 만들었다니 그것만으로도 뿌듯합니다.
힘내요! ㅎㅎ

단발머리 2020-05-20 19: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오늘 리뷰대회 발표 보고 왔어요. 헤헤헤~~ 1등 진심 축하드립니다!! 제가 축하인사 1등 같아요. 그것도 축하해주세요!

잠자냥 2020-05-20 22:10   좋아요 0 | URL
푸하하하 완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