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페미니즘 선언
낸시 프레이저.친지아 아루짜.티티 바타차리야 지음, 박지니 옮김 / 움직씨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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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앵겔스 ‘공산당 선언’의 오마주인 페미니즘 선언문. 왜 마르크스인가? 자본주의 철폐없이는 진정한 여성해방은 있을 수 없음을 조목조목 설명한다. 그리고 그 대안까지. 짧지만 깊고 날카로우며 뜨거운 선언문. 그리고 바로 지금 여기에 필요한 선언문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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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혹 창비세계문학 75
헤르만 브로흐 지음, 이노은 옮김 / 창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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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차례 선거가 끝났다. 자신의 이념에 근거한 정당이 승리했거나 패배했거나 그에 따라서 자기 나름의 분석을 하기에 바쁘다. 이런 선거가 끝나고 나면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아닌, 자기 이념과 어긋나는 정당을 지지하는 이들이 어쩌면 그렇게나 많은지 의아해하며 그들, 그러니까 자기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을 궁금해 한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인터넷을 통해서 퍼지는 가짜 뉴스에 ‘현혹’되었다던가, 신문이나 언론에서 줄기차게 해온 주장에 ‘세뇌’되었다던가 등등.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아무런 의심 없이 맹목적으로 믿었기에 그런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이라고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을 비난한다. 정치뿐만이 아니라 종교와 관련한 신념으로 들어가게 되면 이런 논쟁은 더 첨예해진다. 만일 그 종교가 사회에서 용인받기 어려운 주장을 펼치는, 그래서 이단이라고 취급받는 종교라면 사람들의 비난은 더 심해진다. 어떻게 ‘그런’ 종교를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지, 의심하지 않는 믿음, 광신도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놀라워하면서 개탄한다. 이성을 지닌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허무맹랑한 주의주장에 쉽게 ‘현혹’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혀를 내두른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돌아봐도 인간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선동가들의 말과 행동에 ‘현혹’되어 인간으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자행하고, 시간이 흐르면 그 선동에서 깨어나 지나간 시간의 만행들을 반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형태를 달리해 또다시 나타나는 온간 선전선동에 인간은 현혹되어 인류를 저버리는 일들까지 기어코 저지르고 만다. 저 먼 중세의 마녀사냥이 그러했고, 히틀러가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가 그러했으며, 종교 원리에 바탕을 두고 일어난 수많은 자살폭탄테러도 그러했다. 이성과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새로 등장한 바이러스와 관련한 온갖 괴소문들이 번져가고 거기에 인간은 ‘현혹’당해 도저히 이성을 갖춘 인간이라면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도 저지르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와이파이를 통해 번진다는 이야기에 인터넷 망을 끊고 다니는 저 유럽인의 광기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으며, 바이러스를 빌미로 일상처럼 번져가는 인종혐오와 차별은 또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인간은 다양성을 소유하고 있지만, 한번 어떤 노선에 접어들어 그곳에 고정되고 나면 자신의 다양성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그 안에 머물러 있게 되고 더 이상은 어떤 것으로도 그를 빠져나오게 할 수 없다. (<현혹>, 9쪽)


<현혹>의 이 한 구절은 광기와도 같은 집단 최면 상태에 종종 빠지는 인간 이성(理性)의 그 참을 수 없는 나약함, 그런 인간의 나약함을 노려 대중의 광기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선동가와 그 추종자들의 심리를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다양성’을 소유하고는 있지만 ‘한번 어떤 노선에 접어들어 그곳에 고정되고 나면 자신의 다양성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는 인간이라는 허점 많은 존재. 그런 존재들은 쉽사리 선동가에게 현혹되기 쉽고 그 안에 머물러 쉽사리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그런 까닭에 헤르만 브로흐의 <현혹>은 히틀러라는  희대의 선동가에게 현혹당해 집단 광기의 상태에 빠졌던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1차 대전이 끝나고 10여년이 흐른 뒤, 도시를 등지고 알프스 산간마을에서 은둔하다시피 의사로 살아가고 있는 ‘나’는 어느 날 우연히 ‘마리우스 라티’라는 방랑자와 마주친다. 왜소한 체격에 갈리아풍 콧수염, 서른 혹은 서른을 조금 넘긴 나이. 꿈꾸는 듯 멍하면서도 대담해 보이는 눈길. 갈리아 지방 출신 소시민으로 보이는 마리우스는 첫인상부터 왠지 불쾌하다. 이 마리우스는 아랫마을 농부 ‘밀란트’의 집에 임시 일꾼으로 기거하며, 독특한 말과 행동으로 주민들을 점차 현혹시킨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기계 타작 금지를 역설하는 한편, 거대한 증기 제분소 때문에 인간이 병들게 되었다며 기계문물과 대량생산을 거부하라고 부추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라디오를 비롯해 기성복 구입도 해서는 안 된다. “죄 안에서 만들어진 것은 절대로 몸에 좋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질병은 방탕함에서 오는 것”이라면서 정결한 삶을 주장하며 미혼모를 마녀라고 낙인찍어 따돌리고, 직접 생산에 참여하지 않는 도시인의 생활을 비난하면서 서비스 직종을 직업으로 인정하지 않고 경멸하기도 한다. 때문에 마을에 라디오를 팔면서 생계를 유지해가는 서비스업 종사자 ‘베취’는 마리우스가 괴롭히기 아주 좋은 대상이다.

한술 더 떠 마리우스는 오래전부터 이 마을에 전설처럼 전해오던 ‘황금 채굴’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면서 마을 사람들을 강력하게 쥐고 흔들기 시작한다. 마리우스 가까이에는 그의 손발 같은 역할을 하는 ‘벤첼’이라는 자도 있다. 마리우스는 뒤에서 말을 할뿐 직접 행동에 나서지 않는데, 벤첼은 선동꾼 역할을 자처한다. 마리우스와 벤첼, 두 이방인이 벌이는  선동으로 말미암아 윗마을과 아랫마을 사이의 반목은 심해지고, 마리우스를 믿는 자들과 그를 의심하는 이들 사이의 갈등도 깊어지면서 이 조용하던 산간마을에서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까지 벌어지고 만다. ‘나’는 이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면서 서술하는 기록자 역할을 하지만 그 선동가를 막는 일에는 앞장서지 못한다. 마리우스에 반감을 가지는 한편으로는 마을에서 벌어지는 집단 광기와도 같은 축제에 참여해 그 공기에 취해버리는, 이 마을에서 가장 이성을 갖춘 존재이면서도 그 자신마저 때로는 이성의 끈을 놓고 마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는 사람이 오면 의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네.” 말하면서 무기력한 지식인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런 상황 아래 이 마을은 마리우스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콧수염을 기른 이 선동꾼 마리우스는 당연하게도 히틀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산간마을 사람들, 그들의 암흑 같은 삶은 종교도 구원해주지 못한다. 마을의 무기력한 가톨릭 신부는 어떤 영적 도움을 주지 못한지 오래이다. 그런 상태에서 외부에서 들어온 이 신비한 카리스마의 소유자는 물질문명과 기계문명을 반대하고 엄격한 규율을 내세우면서 의지할 것 없이 정신적으로 방황하던 마을 사람들의 내면에 차츰 스며들어 그들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른다. 그는 심지어 황금까지 약속한다.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마리우스의 행동대장이 벤첼의 모습에서는 괴벨스가 떠오른다. 그 두 사람은 내부결속을 다지기 위해 누군가를 배제해야한다. 볼품없는 외모에 마을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지 못했던 사나이, 그런데다가 서비스업 종사자인 ‘베취’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다. 벤첼은 베취에 대한 혐오를 감추지 않는다. “그런 존재가 계속 번식을 하려고 하다니.......” “그런 것이 세상에 아예 나탄지 않는다면 더 좋겠죠.” 등등. 마을사람들은 그의 말에 현혹되어 베취를 따돌리고 괴롭힌다. 여기에 죄의식은 없다. 심지어는 한 여성을 제물로 바치는 일에까지 동조하게 된다. 히틀러와 괴벨스, 그 추종자들이 자행했던 유대인 탄압과 학살이 떠오르는 섬뜩한 장면이다.

마리우스는 벤첼을 단지 익살꾼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아는 익살꾼. 그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 의사에게 마리우스는 벤첼이 하는 일은 곧 “사람들이 원하는 일”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니까 베취를 따돌리고 괴롭히고, 공격하는 일들이 결국 사실은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원했던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베취를 괴롭히도록 선동하는 일도 정의에 속하는 것”이며 “그저 민중의 목소리일 뿐”이다. 마리우스가 보기에 “모두가 고통당하는 것보다는 한 사람이 고통당하는 것”이 낫다(206쪽). 홀로코스트가 정당화되고 그것에 동조했던 수많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들이 떠오른다.


“현혹되지 말도록 해. 그러면 자네가 도울 수 있을 거야.”
“우리를 현혹시키는 일이 언제 일어날지 알 수나 있을까요? 우리는 그걸 막아낼 수 없을 텐데요.”
“그렇게 되면 자네도 그 일을 겪어내야 하는 거지.” (<현혹>, 374쪽)


의사인 나는 끊임없이 마리우스와 벤첼을 의심하고 불쾌해하며, 그들에게 반감을 갖고 그들의 영향력을 마을에서 거두고 싶어 하지만 딱히 행동은 하지 못한다. 그런 그에게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는 ‘어머니 기손’의 존재는 이 마을에 드리운 암흑과도 같은 집단 광기를 거둬낼 수 있는 유일한 빛과도 같다. 그녀는 애초부터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마리우스의 약점과 그 약점에서 비롯된 일그러진 생각과 욕망, 그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을 꿰뚫어보고 그에 대한 경고를 하는 한편으로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마리우스의 ‘현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증오가 두려움과 함께 와야만 해. 그다음에 사랑이 오는 거야..... 중요한 건 잘 죽는 거라네....”라고 말하며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도 한다. 인간과 달리 산, 그러니까 자연은 절대 마리우스 같은 자의 현혹에 속지 않는다. 어머니 기손의 이런 주장은 기술 발전과 문명 진보에만 치중해온 서구 문명에 대한 일침이 아닐까.


자연으로 돌아가려다가 이렇게나 잘못된 길로 들어서다니! 대단한 현혹이다! 이제 자연은 그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복수하게 될까! 자연은 폭력에 희생된 정신에 대해 복수하기 때문이다. 정신과 자연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자연과 그 무한으로 가는 길은 딱 하나뿐이다. 그것은 정신, 인간의 자비, 그리고 인간의 신적 탁월함이다. (<현혹>, 556쪽)


자연으로 돌아가려다 잘못된 길에 들어서고 말았다는 깨달음은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마을은 씻을 수 없는 상흔을 지니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자연은 계속 흘러간다. 누군가는 죽고 또 누군가는 새로운생명을 잉태하고 아이가 태어난다. 그럼에도 마리우스라는 그림자는 쉽사리 걷히지 않는다. 아니, 마리우스와 벤첼이 마을에서 자취를 감추더라도 언젠가 또 다른 마리우스가 등장할지 모른다. 인간의 마음속에 누군가를 따돌리고 괴롭히고자 하는 ‘마음’이 도사리고 있다면 누구나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올 것이다. ‘인간들이 어떤 하나의 생각에 사로잡혀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로 인해 서로 갈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 결국엔 무능과 절망에 빠져, 잠에 취한 상태에서 서로에게 해를 가하게 될 거라는 사실’(346쪽). 이런 사실을 늘 상기하지 않는다면 틈을 노리는 자가, 그리하여 자기 이득을 꾀하는 자가 언제고 나타날 것이다. 이 어둠의 속삭임에 현혹되지 않는다면 누군가를 도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자기마저도 현혹당해 그 일을 겪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머니 기손의 이 경고는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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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실한 마음 델핀 드 비강의 마음시리즈 1
델핀 드 비강 지음, 윤석헌 옮김 / 레모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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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 상처는 한 가지일 수도 있고 여러 개일 수도 있고, 아주 깊을 수도 있고 얕을 수도 있다. 어떤 식으로든 관계에서 생긴 그 상처들은 사실 누군가에게 도와달라고 알아봐달라고 손짓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상처가 치유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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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혹 창비세계문학 75
헤르만 브로흐 지음, 이노은 옮김 / 창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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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을 상실한 대중광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인간에게 믿음이란 무엇인지 질문하는 철학적 깊이가 넘치는 작품. 일주일 넘게 이 책과 씨름하듯이 읽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차고도 남는다. 이제 헤르만 브로흐의 <몽유병자들>에 도전해 봐야지. 그의 작품을 읽은 일은 말 그대로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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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04-15 1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몽유병자들>..... 이 책이야말로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면 그때나 읽을까, 아이고 전 두 손, 두 발 다 든 책입니다. 잠자냥님, 통촉하시와요. 흑흑흑....

잠자냥 2020-04-15 14:23   좋아요 1 | URL
늘 마음만 먹고 여태 못 읽은 책인데 코로나로 사람들 잘 안 만날 때 읽는 것도 방법인 것 같아요. ㅎㅎㅎ
 
[eBook] Y 교수와의 대담 읻다 프로젝트 괄호시리즈 3
루이-페르디낭 셀린 지음, 이주환 옮김 / 읻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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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 교수라는 인물을 내세워 자기 자신을 인터뷰한 셀린. 그 인터뷰를 통해 프랑스 출판계의 행태와 어리석은 독자, 문학 작품 본질을 왜곡하는 데 열중하는 비평가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한바탕 우스꽝스러운 소동이 끝나고 나면 지독한 나르시시스트 셀린의 초상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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