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자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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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시작은 언제부터일까?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가 아닐까? 공항에는 설렘이 있다. 만남이 있고 이별도 있다. 그러나 어디론가 떠나는 이들의 얼굴에는 그 무엇보다 설렘이 가득하다. 비행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바삐 움직이는 걸음에도, 검색대 통과를 기다리느라 길게 늘어선 줄에도, 특별히 살 게 없어도 괜히 둘러보는 면세점에서도 많은 이들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다. 어딘가로 향하는 것일까? 가까운 곳이든 아주 먼 곳이든 그들은 곧 낯선 세계에 도착하리라.

많은 이들이 여행을, 그러니까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행위를 그토록 좋아하는 이유로는 낯섦과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가장 클 것이다. 한곳에 오래 머무는 행위는 권태를 불러일으킨다. 고인 물은 썩는다고, 어딘가 늘 한곳에만 머무르면 일상이 지리멸렬해진다. 그럴 때 인간은 떠난다. 물론, 인파가 몰리는 장소로 이동하는 것을 극히 꺼려해 여행을 싫어하는 이도 분명 있다. 그러나 그들조차도 자신의 하루를 돌아보면 어디론가 이동했다가 돌아왔음을 알 수 있다. 일터로 출퇴근 했거나 학교에 가거나 산책을 다녀오거나 등등. 몇날 며칠 방안에만 콕 박힌 채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창문을 열어 환기라도 한다. 공기의 순환, 그 이동을 통해 신선한 기운을 만난다. 이 또한 하나의 이동이고 움직임이다.

인간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흔히 ‘머무르는 상태’를 뜻하는 ‘안주한다’라는 말을 좋은 의미로는 쓰지 않는다. 현실에 안주하고, 현재에 안주하는 삶은 정체되었고, 더는 발전하거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상태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움직여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만나고, 받아들여서 변화를 꾀하고자 한다. <방랑자들>에는 그런 수많은 이들의 삶이 그려진다. 떠나고 돌아오고 여행지에서 길을 잃기도 하는 그런 사람들. 이 책은 여행자들을 위한 성경과도 같다. 아니 21세기의 베데커 여행서라고나 할까?

올가 토카르추크는 이 작품을 통해 모든 움직이는 것들, 어딘가로 향하고, 무엇인가를 향하고 때로는 자기 자신을 향해서라도 이동하는 존재들, ‘방랑자들’의 삶을 찬양한다. ‘몸을 흔들어, 움직여, 움직이라고, 그래야만 그에게서 도망칠 수 있어. 이 세상을 다스리는 존재에겐 움직임을 지배할 능력이 없어. 우리의 몸은 움직일 때 비로소 신성하다’고 말한다. ‘멈추는 자는 화석이 될 거야. 정지하는 자는 곤충처럼 박제될 거야. 심장은 나무 바늘에 찔리고, 손과 발은 핀으로 뚫려서 문지방과 천장에 고정될 거야.’(391쪽)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는 왜 ‘방랑’을 ‘떠남’을 ‘이동’을 ‘여행’을 찬양할까? <방랑자들>에서는 죽어서 더는 움직이지 못하는 것, 유리병 속에 방부처리된 육체도 등장한다. 육체가 죽으면 우리는 종종 ‘영혼’은 어딘가에서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 그러나 실체가 모호한 이 대상은 당혹스럽다. 이 작품에서 말하듯이 ‘인간의 진정한 권력은 인간의 육신에만 작용하고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육체를 다스리는 것은 삶과 죽음의 왕’(397쪽)이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닐까? 인간은 움직여야만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 여기서 ‘그’는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는 모든 것, 심지어 죽음까지도 포함한다. ‘그는 정지 상태에 놓여 있는 것, 꼼짝도 하지 않는 것,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모든 것을 지배’(389쪽)한다. 그러므로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움직여야 한다. ‘떠나는 자에게 축복이 있으리니’(392쪽).

 한 장소에 오래 머물면 그곳은 일상이 되어 매력은 점차 빛이 바랜다. 모든 ‘집과 대로, 공원, 정원 그리고 도로에는 누군가의 죽음이 스며’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동함으로써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사람들은 ‘모든 것이 새롭고 깨끗하고 순수하다고, 어떤 면에서는 불멸이라고까지 느끼게 된다’(460쪽) 이런 이동을 끊임없이 하다보면 언젠가는 여행의 가장 최상의 단계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경지에 이르게 된다. “내가 어디에 있든 중요치 않다.”(590쪽)고 말하게 되는 그런 단계. 그래서 다시 사람들은 방랑길에 오를 것이다. 죽음을 벗어나 새로 태어나기를 꿈꾸며. 그렇게 영원한 삶을 꿈꾸며……. <방랑자>들은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떠남과 돌아옴을 반복, 변화를 꿈꾸는 인간의 삶을 예찬한다. 떠났다 돌아올 때 그는 조금은 새로 태어나 있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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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11-27 0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여행자들을 위한 성경과도 같다니, 안읽어볼 수가 없겠네요.
주말에도 김포공항 갔다가 ‘아, 나는 공항이 진짜 너무 좋아 ㅠㅠ‘ 했는데, 저는 공항이 좋아서 여행이 좋은건지 여행이 좋아서 공항이 좋은건지 모르겠어요. 공항이 ‘왜‘좋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답할지 모르겠는데, 저는 공항에 취직하고 싶어요 ㅠㅠ 그러나 일터가 되면 싫어질까요?

잠자냥 2019-11-27 09:37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작가 자전적 이야기도 섞여 있는데, 작가가 여행을 꽤 좋아하는 사람 같아요. 공항 같은 곳에서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어도 좋을 것 같은 그런 책입니다. ㅎㅎ 물론 어떤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는 내용이기도 해서 앞에서부터 읽으면 좋겠지만.... 음 아무 쪽이나 읽다 보면, 왠지 여행지에서 지도 보며 목적지 찾아가는 그런 느낌이 들 것 같기도 해요. ㅎㅎ

공항 좋죠? 저도 공항 좋아해요. ㅋㅋㅋㅋ 인천 공항 가면 이미 거기 진입한 순간부터 여행지 온 것처럼 막 설레고 ㅋㅋㅋㅋㅋ 김포 공항도 요즘 리뉴얼 많이 해서 더 설레고 ㅋㅋㅋㅋㅋ 근데 전 공항에 취직하고 싶진 않아요. 일터 노노 ㅋㅋㅋㅋㅋㅋㅋㅋ 내 소중한 공항은 남겨둘래요.
 
[eBook] 속물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6
M. C. 비턴 지음, 전행선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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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권은 범인이 뜻밖의 인물이라 어거지로 끼워넣은 감이 조금 있다. 살짝 김빠지는 느낌.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해미시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는가?! 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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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be00 2019-12-12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미시 맥베스 시리즈 너무 좋아요~~~ 완성도는 좀 들쑥날쑥해도 캐릭터에 대한 애정으로 끝까지 보게 될 것 같은 시리즈..과연 해미시는 언제쯤 반려를 맞이할런지 궁금하네요 ㅎㅎ 치과의사의 죽음까지는 여전히 외로운 우리 해미시..그건 그 나름대로 행복해 보이지만요^^;

잠자냥 2019-12-13 09:21   좋아요 0 | URL
네, 편안하게 읽기 좋은 추리소설 같습니다. 해미시와 프리실라 관계도 계속 궁금하고, 해미시가 과연 야망을 품을 것인지 아닌지도 그렇고요. ㅎㅎ
 
방랑자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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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읽는 올가 토카르추크의 작품. 이제 조금 그녀의 스타일을 알 것 같다.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파편적인 이야기들이 모여서 어느 순간 하나로 응집, 확 폭발한다. 어딘가를 향해 이동하고자 꿈꾸는 한, 인간은 살아 있다고 말하는 아주 지적이고 사색적인 독특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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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9-11-25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분의 책 2권을 사놓고는 엄두가 안나 모셔만 두고 있네요. ㅋㅋㅋ
언제가는 읽을거라 다짐하며 먼저 읽은 잠자냥님 그저 부러울따름이에요 ^^

잠자냥 2019-11-25 15:40   좋아요 1 | URL
이분 책이 참 어마어마한(?!) 부피를 자랑하죠. ㅎㅎ
그런데 읽기 시작하면 책장은 술술 넘어갑니다. 조만간 읽어보세요. ㅎㅎ

coolcat329 2019-11-26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분의 작품은 왠지 부담이 가서 안 읽으려고 다짐을 했는데, 여기저기 자꾸 눈에 띄니 마음을 살짝 열어봅니다.

잠자냥 2019-11-26 11:15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그랬는데요, 노벨문학상 덕분에(?) 새로운 작가 알게 된 기분이에요. ㅎㅎ
 
왼손잡이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
니콜라이 레스코프 지음, 이상훈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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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러시아적인 작가‘라는 말은 레스코프가 러시아를 매우 사랑하기 때문에 붙게 된 수식어가 아닐까. 이 책에 실린 작품 모두 민족적 색채가 강하다. 민중에 대한 연민 어린 시선, 그에 반해 지배층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등. 러시아 민중에겐 많은 사랑을 받았을 것 같다만 세련된 맛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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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어려운 시기가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게도 그런 때가 여러 번 있었다.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이 그런 것이니까. 몇 해 전, 백수로 지내던 시절이 있다. 다니던 회사가 망해서 문을 닫고, 퇴직금은커녕 몇 달 동안 밀린 임금도 받지 못한 채 그렇게 나는 실업자가 되었다. 그때 밥 벌고 먹고 살던 그 직업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서 대체 무얼 해야 할까, 손 놓고 거의 일 년이 넘는 세월을 지냈다. 돈을 벌려면 경력이 있는 그 직종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그것만큼은 하기 싫어서 그냥 시간을 보냈다. 그때는 조금 절망적이었다. 회사가 그 지경이 되도록 그곳을 벗어나지 않은 나의 안일함, 곧 해결될 것이라는 대표의 말을 믿었던 나의 순진함, 게으름 등을 탓하고 또 탓했다. 그 시절도 다 지나가 오늘 이렇게 덤덤히 이야기하지만 그때 나는 너무 막막한 미래 때문에, 어느 밤에는 어떻게 이 삶을 견뎌야 할지 몰라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 무렵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아니 견디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아침부터 테니스코트에서 서너 시간 동안 온 몸이 검게 타도록 테니스를 치거나 그러고 나서도 또 자전거를 타러 나가거나, 오후 2시쯤에는 라디오로 ‘KBS 명연주 명음반’을 듣거나 등등. 그중 하나로 레이먼드 카버의 영문 원서를 사서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심심풀이로 하기도 했다. 누구를 보여주려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해보고 싶었다. 그전까지 나는 카버의 작품을 번역본으로만 읽었다. 영문으로 만난 카버의 작품은 깔끔함 그 자체였다. 문장이 짧고 어휘도 어렵지 않고, 문장 구조도 복잡하지 않아서 영어 실력이 뛰어나지 않은 나 같은 사람도 그럭저럭 우리말로 옮겨나갈 수 있었다. 연필로 꼭꼭 그의 작품을 내 멋대로 옮기고 있으려니 아주 예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작품 속 고통들이 고스란히 새겨지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때 내가 막막하고, 불안하고 삶의 무게에 짓눌린, 마치 카버의 작품 속 인물들과 비슷한 처지에 놓였기 때문에 더 진솔하게 와 닿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카버의 작품을 처음 읽기 시작한 20대, 그 시절보다 더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 어려운 시기에 나는 카버를 제대로 다시 보게 되었다.

내 책꽂이에는 카버와 치버가 나란히 꽂혀 있다. 그들 가까이에는 체호프도 있다. 이 세 사람의 작품을 나란히 놓으면 좋겠지만 체호프 작품집은 모양도 형태도 중구난방이라 아무래도 나란히 놓지는 못하고, 가까이에만 꽂아두었다. 레이먼드 카버와 존 치버는 둘 다 현대 미국의 단편 거장으로 꼽히고 있으며, 치버는 ‘교외의 체호프’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정도로 체호프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이다. 카버 또한 그렇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생전에 체호프를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이야기하곤 했다. 이 지구상 어딘가에 카버와 치버의 작품을 좋아하는, 그들이 지닌 인간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애정을 갖고 있는 한 독자가 체호프의 작품과 자신들을 가까이 배치해놓고 있다는 걸 그들이 알면 조금 기뻐할까? 카버와 치버가 저 세상에서 함께 술잔을 기울이면서 ‘체호프와 우리를 나란히 놓았다는군!’하며 껄껄 웃을지도 모르겠다.   



내 책꽂이 카버와 치버 코너. 마음에 드십니까? 카버와 치버 씨?



<레이먼드 카버 : 어느 작가의 생>은 몇 해 전에 사두고는 아직 완독하지 못한 책이다. 책장 맨 앞을 펼치면 내가 적어둔 메모가 보인다. ‘글 써서 번 돈으로 마련한 책’이라고 쓰여 있다. 뭘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글을 써서 받은 돈으로 의미 있는 책을 사고 싶었고, 그래서 마련한 책이 레이먼드 카버의 전기였다. 이 책은 900쪽이 넘는 엄청난 부피를 자랑한다. 호기롭게 사놓기는 했지만 그래서 여태 다 읽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에 <레이먼드 카버 - 삶의 세밀화를 그린 아메리칸 체호프> 이 책이 발간되었다. 이 책의 지은이는 ‘고영범’ <레이먼드 카버 : 어느 작가의 생>의 역자이기도 하다. 레이먼드 카버의 전기를 우리말로 옮긴이가 이번에는 저자가 되어 카버의 삶의 궤적을 추적한 것이다. 아마도 그는 나처럼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을 좋아하고, 또 그에 대한 애정을 지니고 있으리라. 실제로 이 책은 카버와 그의 작품을 아끼는 독자의 진지하고도 정성어린 헌사로 읽힌다. 지은이는 카버가 태어나고 자라고 사랑하고 문학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미국 곳곳을 돌아보면서 그의 좌절과 고통, 사랑과 이별, 성공과 실패, 삶과 문학을 더듬어 간다.

카버는 잘 알려졌다시피 인생의 대부분을 가난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면서 작품을 썼다. 제재소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야키마라는 서부의 소도시에서 화장실조차 갖추어지지 않은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보냈다. 스무 살도 되기 전에 결혼 해 두 아이를 가진 가장이 된 뒤로는 40대에 접어들기 전까지 얼마간의 예외적인 기간을 빼고는 한 주 벌어서 그다음 주를 근근이 버티는 생활을 견뎌야만 했다. 역설적이지만 그가 단편 소설가로 명성을 날리게 되기까지는 이런 가난하고 힘겨운 삶이 큰 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아이들이 빽빽 울어대고, 어느 잡지사든 빨리 원고를 보내 그걸 돈으로 바꿔야만 하는 삶이었기에 장편을 쓸 시간도 여유도 없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은 <작가란 무엇인가>의 레이먼드 카버 인터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도 저에게 작가가 되라고 요구한 적은 없어요. 그러나 살아남고, 공과금을 내고, 식구들을 먹이고, 동시에 자신이 작가로 생각하고 글쓰기를 배우는 일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여러 해 동안 쓰레기 같은 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글을 쓰려고 애쓰면서 제가 빨리 끝낼 수 있는 걸 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답니다. 한 권에 2~3년이 걸리는 소설을 쓸 방법이 없었어요. 다음 해나 3년 후가 아니라 당장 보수를 지급받을 수 있는 것을 써야 했습니다. 그래서 단편이나 시를 썼지요. 삶이 제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지요. 언제나 엄청나게 많은 좌절감에 직면해야 했어요. 예를 들면 글을 쓰고 싶은데 글을 쓸 시간도 장소도 없다는 것 등이지요. (<작가란 무엇인가>, ‘지속적으로 타오르는 강렬한 즐거움_레이먼드 카버’)


카버는 또한 지독한 알코올중독자였다. 유년 시절에 술 담배를 시작해 평생을 골초로 살았고, 20대 중반부터 심각한 알코올의존증을 보이다가 30대 후반에는 그로 인해 사경을 헤맬 지경이 되었다. 존 치버와 가까워진 계기도 바로 술 때문이었다. 카버는 거듭된 실패 끝에 목숨을 잃을 위기를 넘기고 나서야 겨우 술을 끊을 수 있었고, 이후 자신의 삶을 줄곧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덤으로 산 기간은 고작 10년을 넘지 못했다. 폐암이 뇌까지 전이되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는 이 ‘덤으로 산’ 10년을 고기에 얹어 먹는 그레이비소스에 비유하기도 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쓴 시 <그레이비>에서 그 자신이 자기의 삶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엿볼 수 있다.



다른 말로는 안 돼. 왜냐면 딱 그거였거든. 그레이비.
그레이비, 지난 10년.
살아 있었고, 취하지 않았고, 일을 했고, 사랑했고, 또
훌륭한 여자에게 사랑받은. 11년
전에 사내는 이런 식으로 가다간 여섯 달 정도
더 살 거라는 소리를 들었지. 그때 사내는
내리막길로만 가고 있었어. 그래서 사내는 어찌어찌
사는 방법을 바꿨지. 사내는 술을 끊었어! 그리고 나머지는?
그 뒤로는 죄다 그레이비였어. 매 순간이, 사내가, 그러니까,
어떤 게 쪼개져서 다시 사내의 뇌 속에 자라나고 있다는
그 말을 듣던 순간까지 포함해서, “날 위해 울지 마”.
사내가 친구들한테 말했어. “난 운이 좋은 사람이야.
나나 다른 사람들 누구나 예상한 것보다
10년을 더 살았어. 진짜 그레이비지. 그걸 잊지마.”
-<그레이비>


이 책 <레이먼드 카버>에는 이렇게 카버가 쓴 시 여러 편이 소개되고 있다. 번역된 카버의 책은 거의 다 읽었는데, 그의 시는 처음이다. 카버는 스스로 시인이라고 말하기를 좋아했던 것으로 보아 시인으로서의 자긍심도 남달랐던 것 같은데, 그래서 그런지 그의 시 또한 꽤 훌륭하다. 단편 소설보다 더 압축된, 그런데도 울림이 깊은 그런 시들. 이 책을 읽고 나니 카버의 단편 소설만이 아니라 시도 우리나라에 소개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긴다.

위대한 단편 작가 레이먼드 카버를 만든 중요한 인물 몇 사람에 대해서도 다시 보게 되었다. 첫째는 그의 아버지이다. 카버의 아버지는 좋은 부모는 되지 못했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그 가난한 형편에도 카버가 글쓰기를 공부하러 다닐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어린 카버에게 아버지가 열어준 이 길은 그가 작가로 성장하는 데 가장 큰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잘 알려졌듯이 카버에게 소설 창작을 강의하고, 그가 글을 쓸 수 있도록 자신의 공간까지 선뜻 내준 ‘존 가드너’가 있다. 존 가드너는 강의를 통해 윤리적 소설을 강조했는데 그가 말하는 윤리적 소설이란 “인간의 가치를 시험하려 시도하되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선전하거나 가르치려는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과연 인간을 가장 충만하게 만드는지를 찾으려는, 진정으로 정직하고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려는 노력”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또 ‘대지’ 같은 유사 문학적 언어 대신 ‘땅’ 같은 일상적이고 단순한 언어를 쓰도록 강조했는데 그의 이런 가르침은 카버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편집자 ‘고든 리시’ 그를 빼놓고 카버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리시는 카버의 작품을 거의 자기가 썼다고 말하고 다닐 만큼 엄청난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과감한 수정으로 카버에게 ‘미니멀리스트’라는 별칭을 안겨주고 그에게 상업적 성공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러나 카버의 두 번째 부인 테스 갤러거는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의 오리지널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즉 편집자인 고든 리시의 손을 거치지 않은 상태의 작품집 <풋내기들>을 카버 사후에 펴냈다. 이 두 개의 작품집 중 어떤 게 더 좋은지는 독자 저마다가 판단할 일이지만, 어쨌든 카버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두 가지 책을 다 읽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쁨이 아닐까.

그러나 그 누구도 카버의 첫 번째 아내 ‘메리엔 버크’만큼 그를 지지해주지는 못했을 것 같다. 카버는 평생 그녀를 일컬어 “자신의 목숨보다 사랑”하기도 하고 증오하기도 하고 연민하기도 했다는데, 메리엔은 누구보다도 그가 작가가 될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뒤받침 해준 사람이었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카버의 두 번째 부인 테스 갤러거가 카버를 위해서는 더 좋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막연히 생각했는데, 메리앤의 이 엄청난 희생 앞에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가난 속에 불행한 삶을 살았지만 카버가 그래도 인복이 없는 편은 아니었구나. 그런데 이 젊은 여성 메리앤의 삶도 참 안타깝구나. 카버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뭐라도 됐을 것 같은데……. 메리앤은 여자아이들의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사립여자고등학교의 전도유망한 장학생이었지만 1960년대 초반부터 졸지에 육아와 남편 뒷바라지를 위해 웨이트리스, 칵테일 걸, 전화교환원, 서적 외판원 등의 직업을 전전하면서 자신의 꿈이었던 변호사는커녕 대학 입학 8년째가 되도록 학부도 마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게 된다. 매력도 상당했는지 카버는 늘 아내의 불륜을 의심했는데, 이 문제는 카버의 작품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카버 문학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주제 중 하나이다.

‘그레이비소스’와도 같은 10년의 시기 동안 쓰인 <대성당>과 같은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카버의 작품은 대부분 불안하고 우울하며 희망 없는 일상의 나열이다. 알코올 중독자, 붕괴하는 가정, 왜 함께 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부부, 서로 각자의 이야기만 하는 가족, 언제 내 일이 될지 모르는 실업, 갑자기 다가온 사고나 병으로 그나마 지탱되던 일상이 붕괴하는 등 삶의 고단함을 줄기차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런 작품들은 카버의 삶과 무척 닮았다. 아니 그 자체다. 알코올중독자, 해체 직전의 가족, 경제적 고통, 가난했던 삶… 그리고 말년에 잠깐 찾아온 행복 등등. 자신의 불안한 삶을 고스란히 작품에 투영했다. 카버는 자신이 잘 모르는 사실에 대해서는 쓰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겪은 것, 그가 본 것, 관찰한 것으로 엮어낸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속의 ‘특별한 이야기’인 카버의 작품은 그래서 위대하다. ‘아무리 희미할지라도 계속해서 불타오르는’ 소설이라는 불꽃을 그 힘겨운 삶속에서도 계속 쏘아 올렸던 레이먼드 카버. 그의 삶이 이 책에서 온전히 되살아나고 있다.


아이작 디네센은 매일매일 희망도 절망도 없이 조금씩 쓴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이 마음에 듭니다. 소설이나 희곡, 시집 한 권이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대한 생각이나 자신에 관한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시대는-그런 시대가 설혹 있었다 해도-이미 지나가 버렸어요. 특정한 삶을 사는 특정한 사람들에 대한 소설을 쓰면 어떤 분야의 삶을 전보다 약간 더 이해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저 자신에 관한 한 예술의 역할은 딱 그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 좋은 소설은 부분적으로는 한 세상의 소식을 다른 세상으로 전달해주는 것입니다. (...) 소설은 뭔가를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소설은 단지 그것에서 얻는 강렬한 즐거움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뭔가 지속적이고 오래가고 그 자체로 아름다운 어떤 것을 읽는 데서 오는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지요. 아무리 희미할지라도 계속해서 불타오르는 이런 불꽃을 쏘아 올리는 어떤 것이랍니다. (<작가란 무엇인가>, ‘지속적으로 타오르는 강렬한 즐거움_레이먼드 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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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9-11-20 18: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카버와 치버는 나란히 두었네요. 체호프는 쬐끔 떨어져있지만요. ^^
이런 계절엔 카버 소설들이 절로 생각이 나요.

잠자냥 2019-11-20 18:41   좋아요 1 | URL
와 치버와 카버가 한 번 더 좋아하겠어요! ㅎㅎ (아닌가 ㅋㅋㅋ)

카알벨루치 2019-11-20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덕에 도끼도 읽고 그 전엔 카버와 치버를 알게되었지요 감사! 근데 테니스를 좋아하시는군요 욜~저도 한때 미친 기억이 ㅋㅋㅋㅋ

잠자냥 2019-11-20 23:01   좋아요 0 | URL
카버와 치버를 전도할 수 있었다니 기쁩니다! ㅎㅎ 네, 테니스는 보는 것도 하는 것도 아주 좋아하는 스포츠입니다! 주위 친구들한테 열렬히 전도했지만 이건 쉽지 않더라고요. 일단 살 타는 걸 다들 싫어하고, 이게 레슨 오래 받아야지만 어느 정도 랠리가 가능하니까 다들 설레설레... ㅎㅎ 카알벨루치 님도 테니스 좋아하신다니 더 반갑네요!

단발머리 2019-11-20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버의 첫번째 아내 메리엔 버크의 삶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어요. 고단했을 삶이 막 그려지네요. ㅠㅠ

잠자냥 2019-11-20 23:04   좋아요 0 | URL
네 남편이 벌이가 일정하지 않고 둘 다 십대에 결혼한 거나 마찬가지라, 아이들이 아이들을 키우니 더 고단한 삶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이번에 첫째 아내에 대해 좀 더 잘 알게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coolcat329 2019-11-20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카버의 책은 대성당 딱 한 권 만 읽어봤지만 작가란 무엇인가에서 본 카버의 인터뷰가 너무 리얼해서 작품보다 더 깊게 각인이 되어있습니다. 당장 돈이 필요했기에 단편 밖에 쓸 수 없던 사연 등이요...
카버 & 치버 형제 이름 같네요^^ 책장이 부럽습니다. 🤗

잠자냥 2019-11-20 23:06   좋아요 0 | URL
<대성당>은 정말 좋은 작품이죠. 전 이 작품 읽고 카버가 드디어 행복한 시절에 따뜻하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쓸 수 있었구나 싶어서 그것 자체로도 감동적이더라고요. 왠지 울컥했던 기억이 납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카버의 다른 작품, 그리고 치버의 작품도 읽어보세요~ ㅎㅎ

염소 2019-11-21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만든 사람으로서 애정 어린 리뷰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잠자냥 2019-11-21 11:52   좋아요 0 | URL
이 시리즈는 사실 카버 이전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카버를 계기로 다른 작가들도 몇몇 찾아 읽어볼 것 같아요. 앞으로 나올 작가 중에도 관심 가는 작가와 저자 조합이 조금 있더군요. 이 시리즈가 꾸준히 독자들에게 사랑받기를 기원할게요~

120퍼센트 2019-11-21 23: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카버를 알게되었어요, 대성당부터 읽어봐야겠습니다

잠자냥 2019-11-22 00:35   좋아요 1 | URL
네 좋은 작품, 작가를 소개한 것 같아 기쁩니다~

slobe00 2019-12-12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버 치버 트레버가 3버라던데..흠흠 ^^;;;
도리스 레싱 아래 책은 어슐러 르귄인 듯 한데 그도 또한 절묘한 조합 같아요~~~~

잠자냥 2019-12-13 09:23   좋아요 0 | URL
트레버까지 포함해서 3버라고 하는 줄은 몰랐네요. ㅎㅎ 맞는 말 같아요.
네, 레싱 책 아래는 르귄 책 맞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