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
페터 한트케 지음, 윤시향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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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트케 작품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너무 난해해서인데, 이 책은 정말 압도적으로 난해하다. 읽는 내내 한트케 어뜨케 어뜨케 한트케를 중얼거렸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의 난해한 버전이라고나 할까. 가끔 유머러스하기도 한데, 한트케가 환각 버섯을 먹고 쓴 게 틀림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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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11-06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엄마가 그러는데요 환각 버섯을 먹으면 천국에 갔다온다고.... ( ˝)

잠자냥 2019-11-06 10:10   좋아요 0 | URL
와우 궁금해지네요. ㅋㅋㅋㅋ 이 작품 주인공이 버섯환자? 버섯성애자에요. ㅋㅋㅋㅋ 그래서 온갖 버섯으로 요리해 먹고 버섯 찾아 삼만리 ㅋㅋㅋㅋ 근데 작품 자체는 정말 한트케가 환각 버섯 먹고 쓴 거 같은 ㅋㅋㅋㅋㅋㅋ 아 증말... 그런데다가 저는 감기약에 취해서 이 작품 읽으니 정말 간만에 환장 독서 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9-11-06 10:58   좋아요 1 | URL
웬만큼 감사한 제안이면 읽어야하는데.... ‘감사한 제안이지만 안읽으래요’와 ‘알라딘 중고’의 향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19-11-06 10:59   좋아요 0 | URL
이 100자평을 문동이 싫어합니다. 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19-11-06 11:03   좋아요 0 | URL
심지어 제가 산 책은 이번에 한트케가 노벨상 받고 문학동네에서 급하게 2쇄 찍은 거더라고요. 이 책 1쇄가 2001년.... 2019년에 2쇄..... 음.

다락방 2019-11-06 11:09   좋아요 0 | URL
저 긴이별 짧은편지 그 책을 읽고 2011년에 쓴 페이퍼에 지루하고 재미도 없다고 썼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페이퍼 다시 읽어도 내용 기억 1도 안나요. 책 대체 왜 읽고 사는건지 원..

다락방 2019-11-06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장바구니에 이 책 있었는데 이 백자평 보고 장바구니 가서 이 책 빼버렸어요.. ㅋㅋㅋㅋㅋ

잠자냥 2019-11-06 10:23   좋아요 0 | URL
잘 하셨어요. ㅋㅋㅋㅋㅋㅋㅋ 전 도서관에 있는 거 확인하고서도 괜히 호기롭게 사서 읽었는데 ㅋㅋㅋ 좀 후회했습니다. ㅋㅋㅋㅋㅋ 그래도 읽고 싶으시다면 제가 읽은 책 보내드릴게요. 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19-11-06 10:24   좋아요 0 | URL
하긴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면 아마 중간에 그냥 반납했을 거 같은데, 사서 읽어서 끝까지 읽은 것 같기는 해요.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11-06 10:34   좋아요 0 | URL
우엇, 너무나 감사한 제안이지만 안읽을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19-11-06 10:36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게 나을 거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이 책을 살포시 알라딘 중고로....

단발머리 2019-11-06 11:07   좋아요 0 | URL
으앗! 저 댓글 밑에 달고 싶었는데 버섯 댓글 밑에 달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알라딘 중고의 ㅋㅋㅋㅋㅋㅋㅋㅋ 향연

다락방 2019-11-06 11:09   좋아요 0 | URL
단발님의 저 위의 댓글 읽으면서 ‘밑에 다실 걸 여기다 다셨구나..‘ 생각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19-11-06 11:13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랬습니다. 이해합니다.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9-11-06 11:15   좋아요 0 | URL
이 하혜와 같은 이해심이 왠지 ....
싫다... 이런 나를 이해해주는 이해심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1-12-15 09: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백자평 안 읽은 죄를 톡톡히 받고 있습니다. 흑흑흑....

잠자냥 2021-12-15 11:14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 환각 버섯 먹은 기분입니까?ㅋㅋ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1-12-15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 포기리뷰에 그물우산버섯이 나와서 뭔가 했는데 주인공이 버섯성애자였군요. 버섯찾으러 다니는 얘긴가요? 세상에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12-15 21:43   좋아요 0 | URL
아오 근데 그 주인공이 독자한테 환각 버섯 먹이는 기분 같아요. ㅋㅋㅋ
 
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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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훌쩍 지난 것 같다. 한지혜의 글이 담긴 ‘책’을 읽는 것은. 소설집 <안녕, 레나> 이후 처음이다. 글을 많이 쓰지 않는 작가인가, 첫 소설집을 좋게 읽었던 터라 그 다음이 궁금했었는데, 그 다음은 쉽게 만날 수 없었다. 그러고는 내 기억에서 조금씩 희미해져 갔던 것 같다. 내가 한국 소설을 부지런히 찾아 읽는 편은 아니라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다가 몇 해 전이던가. 어느 신문 칼럼에서 꽤 괜찮은 글을 읽고 고개를 끄덕끄덕했던 기억이 난다. 글쓴이를 보니 한지혜였다. 어? 이 사람이 그 한지혜인가? 그랬다. 그녀였다. 어느 날 우연히 소식 끊어졌던 옛 친구, 굳이 연락을 주고받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끔 소식은 궁금했던 옛 친구의 안부를 듣게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후로 그이가 쓰는 칼럼을 이따금 찾아 읽었다.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그 느낌, 담백하고 따뜻하고 그러면서도 할 말은 다 품고 있는. 그렇지만 누군가를 상처 주는 말과 글은 아닌 그런 글.

이 칼럼들은 책으로 엮어져서 나오면 괜찮겠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참 괜찮은 눈이 온다>라는 제목으로 얼마 전 세상에 선보였다. 책을 받아들고 읽기 시작한다. 프롤로그, 그러니까 ‘개천에 살았던 적이 있다’로 시작하는 그 글은 내가 한지혜의 글을 다시 읽게 됐던 계기가 된 바로 그 글이었다. 이 책에서도 첫 번째 글로 실려 있어서 왠지 기분이 묘했다. 반갑다고 손짓해주는 것 같았다. 다시 읽어도 여전히 좋다. 비유도 상징도 아닌, 실제 ‘개천’에서 살았다는 고백. 이제 그녀는 개천에 살지 않는다. ‘용이 되어서 나오지는 못했지만 용이 되지 못한 것도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그 시절을 자라면서 그녀가 본 세상의 풍경이라고 말한다. 그이는 여전히 세상을 ‘그곳에서 배운 시선’으로 읽는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한계이기도 하겠지만 그것이 또한 자기만의 고유함일 것이라고.

<참 괜찮은 눈이 온다>는 개천, 서울 변두리, 단칸방, 철거촌 등 한지혜 그녀가 살아온 풍경, 그리고 그 풍경이 가르쳐준 세상을 보는 법에 대한 기록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몸소 살고, 겪고, 버티고 때로는 벗어나고 싶었던 삶과 공간에 대한 기록이라 진실이 문장에서 고스란히 묻어난다. 요즘 미디어에서는 가난을 낭만화하고 또 어떤 부자들은 가난조차 ‘체험’하고 ‘경험’해 보는 하나의 놀이처럼 소비한다는데, 한지혜에게 그것은 삶 그 자체였다.

여섯이나 되는 가족들과 발도 뻗기 힘든 단칸방에서 살았던 기억, 골목에서 뛰놀던 기억, 이층집에서 자기만의 방을 꿈꾸던 기억, 그리고 그 가난하고 힘든 생활 속에서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책 속으로 도피하고, 책 속에서 다른 세계를 만난 기억…. 너무나도 가난해 지금의 부모는 친부모가 아니라 어딘가 다른 곳에서 부자로 살고 있는 진짜 부모가 있을 것이며, 그들이 어느 날 나를 데리러 올 것이라고 꿈꾸던 기억까지. 한지혜의 유년 시절은 그와 비슷한 시기를 살았거나 그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로 다가온다. 그러나 작가는 그 가난하고 힘겨웠던 시절을 마냥 그리워하거나 낭만적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그런 시기를 거쳐 자신이 한 사람으로 어떻게 성장했는지, 어떤 시선을 가진 작가가 되었는지 담담히 기록할 뿐이다. 어린 시절의 그녀는 동네에서 하나둘 집이 철거되는 현장을 지켜본다. 포클레인이 지나갈 때마다 벽이 흔들린다. 그런데 그녀는 그 처참한 공간에서 남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흔들리는 벽에 기대어 책을 읽다가 먼지 많은 바람을 쐬러 나가면 부서진 담장 사이로 전에 본 적 없는 꽃무더기가 보였다. 나는 그게 참 신기했다. 저 벽들은 대체 언제부터, 어떻게 꽃을 품고 있던 걸까. 보고 있자면 기분이 묘했다. 그 꽃이 내게 가르쳐주는 것이 벽속에나 꽃을 가두고 있는 인생에 대한 비관적인 상징인지, 모든 벽도 사실은 꽃을 품고 있다는 낭만적인 상징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저 조금 서러운 기분이었다. (44쪽)


철거 현장. 부서진 담장 사이에서 꽃무더기를 볼 줄 아는 사람, 그리고 그 벽들을 바라보며 벽속에 꽃을 가두고 있는 인생에 대한 비관적인 상징일지, 아니면 모든 벽도 저마다 꽃을 품고 있다는 낭만적인 상징일지 그 둘 모두를 헤아릴 줄 아는 시선을 키워 온 사람. 그런 그가 작가로서 성장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기에 ‘빛과 어둠’이 모두 담긴 글을 쓸 수 있게 된 건 아닐까.

가난한 시절을 함께 겪은 가족 이야기도 자연스레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글을 읽다 보면 이이는 아버지를 참 좋아하는구나,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참 애틋하구나 싶어 부럽기도 했다.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이 많지 않은 나로서는 이렇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이 담긴 글을 보면 낯설면서도 신기하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엄마에 대한 글이 많지 않아 엄마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나 싶었는데, 읽다 보면 엄마와 아픈 기억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주 오래 전 인상 깊게 읽었던 작품 ‘자전거 타는 여자’가 결국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였겠구나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는 아버지를 버리고 엄마가 도망치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는 여자는 아마 한지혜 그 자신이었으리라. 이렇게 <참 괜찮은 눈이 온다>는 오래 전, 조금 알게 됐던 한 친구를 오랜만에 다시 만나 더 깊숙하게 그를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는 책이었다. 내게는.

그런데 내가 이 책을 읽다가 급기야 눈물을 훔치게 된 것은 뜻밖에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부분에서였다. 그이가 문학상 심사 위원 자격으로 수많은 작품을 읽었던 과정이 담긴 어느 구절을 읽을 때였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도 놀랍게도 한지혜는 자기에게 주어진 작품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읽었다고 한다. 아주 형편없는 작품이 있을 수 있고 눈에 띄는 작품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그녀는 모든 작품을 빠짐없이 읽는다.


사람도 그렇고 사물도 그렇고 작품도 그렇고 좋고 빼어난 것은 흔하지 않다. 신인의 것이든 기성의 것이든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원고지 백 장, 천 장을 채운다는 건 도깨비 방망이로 금 만들듯 맘만 먹으면 뚝딱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천장을 쓰고 버려야 백 장의 소설이 나오고, 만 장을 쓰고 버려야 천 장이 소설이 나오는 건,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은 누구나 아는 법칙이다. 그 시간과 노력에 헌신한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고 싶었다. 그 예의는 단 하나, 그들의 수고가 담긴 작품을 끝까지 읽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읽다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작품 같은데, 보석 같은 문장이 한두 문장쯤 툭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런 문장을 만나는 순간이 나는 너무 좋다. 그런 문장은 마치 처음부터 끝까지 형편없는 삶은 없다는 증명 같기도 하고, 누구에게나 빛나는 한 가지는 있다는 외침 같기도 하다. 겨우 하나의 문장으로 당선의 기쁨을 누릴 수는 없는 법이니 그 문장의 주인을 만나면 혼자 인사를 한다. 괜찮아, 네가 있으니 다음도 있을 거야. (....) 나 자신이 성공보다는 실패를 많이 겪은 삶이기 때문일까. 당선자보다는 낙선자에게 늘 마음이 쓰인다. (48~49쪽)


이 구절을 읽을 때, 나도 모르게 조금 눈물이 나더니 ‘괜찮다’는 문장을 읽을 때쯤엔 펑펑 울고 있었다. 슬럼프라고 해야 하나. 올봄, 어딘가에 장편 소설 원고 하나를 보내놓고 여름쯤 결과를 알고는 기운이 많이 빠져 있었다. 회사 다니면서 몇 년 틈틈이 쓴, 첫 장편이라 내게는 의미가 큰 그런 원고였다. 끝까지 읽기는 했을까? 제목이 별로였나? 첫 문장 첫 문장 하는데, 내 첫 문장은 그렇게 강렬하지 않지.... 그리고 또 뭐가 문제일까? 끝까지 읽긴 읽었을까? 아마 대충 보고 안 읽었을 거야. 뭐 이런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다. 그 뒤로 그 작품은 이제 잊고 새로운 걸 쓰자고 몇 번이고 마음을 먹었지만 책상 앞에 다시 앉기가 쉬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슬럼프에 빠져 있던 나에게 저 문장은 폭풍처럼 다가왔다. 내가 쓴 원고지 800여 매. 아마 그중에는 보석 같은 문장 한두 개쯤은 있을 거라고, 그런 문장이 ‘마치 처음부터 끝까지 형편없는 삶은 없다는 증명’과 같을 거라고. 그러니까 괜찮다고. ‘누구에게나 빛나는 한 가지는 있다’고 외치고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괜찮다고, 그렇게 내게 속삭이는 위로 같았다. 이렇게 마음 깊숙이 다가오는 위로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내가 고민했던 첫 문장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그이 또한 소설을 공부할 때 첫 문장의 중요성에 대해 여러 차례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다. 그러나 한지혜는 말한다. ‘첫 문장과 소설의 완성도는 무관’하다고. ‘시작은 창대하나 나중은 미약한 소설도 있고, 시작은 초라한데 결말에 울림이 있는 소설도 있고, 시작도 결말도 딱히 특색은 없으나 보석 같은 몇 개의 문장을 품고 있는 소설도 있다.’고…. 그래 내가 쓴 그 소설도 누군가의 마음을 완벽하게 훔칠 정도는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보석 같은 몇 개의 문장이나 그런 장면 한 두 개쯤은 있을 거야. 그러니까 그것 때문에 ‘다음’이 있을 거라고.

벽이 품고 있는 꽃 무더기, 괜찮은 문장 한 두 개쯤은 있을 것 같아서, 아니 원고지 백 장, 천 장을 채운 어떤 이들의 노력을 헤아리기 때문에 공모전에 투고한 모든 원고를 빠짐없이 읽고, 당선자보다는 낙선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 한지혜. 그이는 어쩌면 개천에서 자랐기에, 1등이 아닌 2등이라 신춘문예에 당선될 수 있었던 전력이 있었기에, 선택받은 존재보다 그렇지 못한 존재에 한 번 더 따스한 눈길을 보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분꽃을 보며 ‘꽃이 핀다고 모두 열매를 맺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겸허함을 느끼기도 한다. 영 활짝 피지 않아 모자란 꽃 취급을 했던 분꽃은 알고 보니 밤에 피는 꽃이었다. ‘누가 뭐라 하든 제가 피어야 할 시간에 맞춰 부지런히 피고 지는’ 분꽃- 요즘 통 글을 쓰지 못하고 있던 내게 이 말은 위로이자 따끔한 충고로 다가온다. 누가 뭐라 하든 피어야 할 시간에 부지런히 피어야지! 하는 그런 생각…. 이처럼 주변에서 선택받고 화려한 조명을 받는 존재들보다는 꽃을 피우고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분꽃 같은 존재에 더 애정을 지닌 작가의 이 다정한 위로는 요즘의 나처럼 삶이 버겁고 좀 낙담한 이들의 마음에 분명 포근한 함박눈처럼 스며들 것이다. 함박함박 떨어지던 눈이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말하는 듯했다던 작가의 이야기처럼 이 책은 실패로 침울했던 내게 ‘괜찮다고’ 속삭이며 마음에 내려준 함박눈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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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2019-11-05 1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 읽고 저도 괜히 마음이 찡하네요. 제가 이래라 저래라 할 입장은 아니지만 좌절치 말고 꾸준히 쓰면 뭐라도 되지 않을까요. 비록 출판되지 않는 글이라 해도 저 같은 독자에게는 큰 울림이 될 때도 많으니까요. 잠자냥님 언제나 응원합니다.
P.S 분꽃은 맨드라미, 채송화와 더불어 제 어린 시절 추억 때문에 제일 좋아하는 꽃 중 하나예요. 너무 신통방통하게 해 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예쁘게 피는 꽃.

잠자냥 2019-11-05 17:50   좋아요 0 | URL
넵! 이렇게 케이 님처럼 제 글 읽어주시고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그래도 씁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전 분꽃이 해질 무렵에 피는 줄 이제야 알았어요. ^^;;

다락방 2019-11-05 1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의 글쓰기를 가만가만 응원합니다.

잠자냥 2019-11-05 18:00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2019-11-12 1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12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jijinbb 2019-11-15 08: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치 한지혜 작가의 책을 읽은 듯한 기분입니다.
읽어 본적 없지만...

내 맘에도 괜찮다고 함박눈이 내린 거 같아요.

잠자냥 2019-11-15 09:38   좋아요 0 | URL
과찬 감사합니다. 이 책 한번쯤 읽어보세요.
더 많은 위로와 공감을 얻으실 수 있을 거예요.
 
[eBook]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휴버트 셀비 주니어 지음, 황소연 옮김 / 자음과모음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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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중지


지옥이 따로 없다. 출근길에 조금씩 읽었는데, 아침부터 읽기 매우 부적절한 책. 웬만한 책으로 내공을 단련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 앞에서는 무릎 꿇었다(사드 ‘소돔120일‘ 이후 처음임). 특히 윤간 장면 너무 읽기 힘들었다......절레절레. ‘잘 쓴‘ 작품이지만 ‘좋은‘ 작품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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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9-10-29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이렇게 친절하신대...
스티븐 킹도 못 읽는 1인은 엄청 궁금궁금합니다.

잠자냥 2019-10-29 15:18   좋아요 0 | URL
스티븐 킹 작품하고는 많이 다른 작품이고요.... 브루클린의 하층민 삶을 적나라하게 그렸는데, 강간이나 윤간 등 폭력적인 장면이 너무 많이 나오고 묘사도 지나칩니다(마약, 동성애, 퀴어 이런 부분은 그냥 넘어간다 치더라도요). 출간 즉시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던 작품이라고 하는데, 영국 출간 당시(1967) 선정성으로 기소되었고, 이탈리아에서는 출간 금지 당했다고 하네요. 심정적으로 좀 읽기 힘든 작품이었어요. 동명의 영화로도 유명합니다. 영화가 오히려 수위가 낮은 거 같아요. ㅎㅎㅎ

단발머리 2019-10-29 15:18   좋아요 0 | URL
저는 잠자냥님 서재에서 첨 보는 책인데요. 제목만 봐서는 그냥 평범한 느낌인데, 원래 좀 쎈 작품들이 제목이 노멀한 걸까요? ㅎㅎㅎㅎㅎㅎㅎㅎ

잠자냥 2019-10-29 15:25   좋아요 0 | URL
전 오래전에 영화로만 보고 이번에 원작을 읽었는데요, 왜 많은 추종자들이 있는지 알겠더라고요(작가인 휴버트 셀비 주니어는 미국에서 가장 칭송받는 전후(戰後)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힙니다)...... 그러나 제가 좋아하는 작품류는 아니었어요. 하하하하. ^^;;; (전자책으로 대여해서 읽을 수도 있으니 한번 도전해 보세요, 저도 대여해서 읽었는데요, 한 달 뒤에는 이 책이 제 책장에서 사라질 거라 왠지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하하하하하)

Falstaff 2019-10-29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휴.... 전 이런 책, 영화, 못 읽고 못 봅니다. 포기!
이런 정보 매우 좋아요. ^^

잠자냥 2019-10-29 20:39   좋아요 0 | URL
앨런 긴스버그가 호평을 하고 윌리엄 버로우즈 책을 출판한 출판사에서 이 책을 내줬다고 하니.... 아마 대충 감이 오실 것 같습니다!

camiue76 2020-09-10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권찾아보다 또 잠자냥님 서재까지 왔네요! 이 소설은 깔끔하게 포기합니다 ㅎㅎㅎ

잠자냥 2020-09-10 01:20   좋아요 0 | URL
휴... 잘 쓴 작품입니다만 좋은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지금 판권 얻어서 내신다면, 시대 분위기상(페미니즘 관련) 좀 안 맞는 부분도 있을 것 같고요. 여성 캐릭터 윤간하는 장면 정말 읽기 힘들고 끔찍합니다. 여성 독자들에게 뭇매 맞기 쉬운.... 게다가 퀴어나 드랙퀸 묘사도 좀 그렇고요. 읽고 나면 정신 너덜너덜해지는 기분이에요...

2020-09-10 0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별의 푸가 - 철학자 김진영의 이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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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에 대해서 이토록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토록 깊이 있는 사유를 할 수 있다니. 이별을 노래하고 있는데 그 절절한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사랑이 하고 싶어지는 묘한 책. 이제는 세상에 없는 그가 헤어지기 싫어했던 대상은 어떤 연인이 아니라 어쩌면 이 생(生) 그 자체는 아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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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8
페터 한트케 지음, 안장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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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여행을 즐겨 떠나는 이유는 일상을 벗어난 낯선 환경에서 예상치 못한 일과 부딪히면서 새로운 나를 또는 그런 세계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주말, 나는 서울을 잠시 벗어나 가까운 소도시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벌써 3번째 가는 곳으로 그리 낯설지 않은, 어쩌면 더는 새로울 것이 없는 그런 도시이다. 그럼에도 그 익숙한 환경 속에서 몇 년 전과는 다른 작은 차이를 발견했다. 몇 해 전에 비해 인구도 더 줄어들고 노령 인구가 급속하게 늘어난 그 소도시는 이국의 노동자들로 넘쳐났다. 중국인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식료품점도 여럿 문을 열어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음식점에서는 주문을 받는 이들이 거의 다른 나라 출신이라 말이 잘 통하지 않기도 했다. 한국도 이제는 이민자나 외국인 노동자를 흔히 볼 수 있음을, 그 작은 도시에서 여실히 느꼈다고나 할까.

페터 한트케의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의 ‘나’ 또한 여행을 떠난다. 그는 작은 소도시로 짧은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오스트리아에서 저 먼 미국으로 떠나 곳곳을 여행한다. 그런데 이 여행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행을 떠날 때 느끼는 설렘이나 흥분, 즐거움, 일상을 벗어나는 데서 오는 해방감 등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나’는 불만과 짜증 또는 분노에 차서 욕지거리를 내뱉거나 때로는 이유 없이 불안에 시달리며 두려움에 떨기도 한다. 돈과 시간에 그다지 얽매이지 않고, 심지어 아주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 일상에서 그를 옭아매던 시선으로부터도 자유로울 것만 같은데 그는 왜 이토록 불만에 차 있을까?

‘나는 지금 뉴욕에 있어요. 더이상 나를 찾지 마요. 만나봐야 그다지 좋은 일이 있을 성싶지 않으니까.’ 그의 아내 유디트는 이 짧은 편지를 남겨둔 채 미국으로 홀연 떠났고, 그는 아내의 뒤를 쫓는 중이다. 딱히 아내를 사랑하는 것 같지도 않는데도 그렇다. 아내를 찾아 재결합을 시도한다던가, 망가진 관계를 되돌린다든가 하는 긍정적인 의도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그는 여행 중간에 아내를 향해 저주와  욕을 퍼붓기도 한다. “너라는 계집!” “죽도록 패주고 말 거야, 죽도록 패주고 말 거야. 죽도록 패주고 말 거야. 제발 내 눈에 띄지 마라. 너 이 망할 년, 나한테 걸리면 정말 좋지 않을 테니.” 등등.

아내를 향한 이런 욕설에서도 짐작할 수 있지만 그는 꽤 성마른 사람이다. 여행길에서 만난 어느 군인이 자신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자 ‘그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사실에 모욕감’을 느끼기도 한다. 도대체 자신이 ‘왜 누군가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주어야 하는’지 의아해한다. 여행 중 매력적인 여자를 만나도 여자에게 상냥함을 보인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단지 손만 뻗어보다는 생각으로도 그 순간 모든 의욕은 사라지면서 극심한 피로감’만 몰려온다. 짧은 편지 한 장을 남겨둔 채 집을 떠나버린 아내하고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그가 떠나온 오스트리아에서 과연 제대로 된 인관 관계가 있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자기 안으로만 침잠하고, 계속 고독 속에 머물기를 그 스스로 선택한다. 그런데 그의 그런 상태는 딱히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는 종종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며 몸서리친다.

만일 이 작품에서 ‘나’가 여행을 하면서도 계속 이렇게 혼자인 상태로 불만과 권태 고독에 젖어 삶의 아무런 가치도 발견하지 못한다면 읽는 사람조차 만족스럽지 못한 기분에 휩싸여 책을 놓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행’ 상태이고 이 낯설기 만한 땅에서 서서히 자기도 모르게 변화해 간다. 그러나 이 변화는 아주 극적이지는 않다. 그는 오래 전에 함께 밤을 보낸 적이 있는 ‘클레어’를 찾아가는데, 그녀와 그녀의 딸 ‘베네딕틴’과 함께 여행을 하면서 조금씩 변화해간다. 특히 ‘아이와 함께 있으면서 사물들의 이름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나는 이제껏 내가 얼마나 나 자신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져왔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때까지 그는 자기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눈곱만치도 알지 못했다. 그제야 비로소 자기 주변의 일상적인 움직임에 대해 알고 있는 어휘가 너무나도 빈약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그렇게 차츰 사물을 단지 바라보기만 하면서 “아하!”하고 경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변화 과정을 끝까지 관찰하는 법을 터득하기 시작한다.


장소 하나 바꾸는 것이 우리가 사실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들을 마치 꿈을 잊는 것처럼 깨끗이 잊어버리게 만드는 데 그렇게 많은 기여를 한다면, 그거야말로 놀라운 일이 아니겠는가? (칼 필립 모리츠, <안톤 라이저>)


이 작품에는 두 가지 중요한 책이 등장한다. 하나는 고트프리트 켈러의 <녹색의 하인리히>이고 또 다른 하나가 칼 필립 모리츠의 <안톤 라이저>이다. ‘나’는 여행 내내 <녹색의 하인리히>를 읽으며, 종종 클레어와 그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녹색 옷만 고집하는 하인리히처럼 ‘나’는 언제부터인가 옷 한 벌로 버티는 일이 일상화되어 있다. 게다가 클레어의 지적처럼 그는 “다른 시대의 인물을 통해 현재를 반복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는 “하인리히처럼 차분하게 하나하나를 경험해가면서 경험이 쌓일 때마다 점점 현명한 판단을 하고, 그런 와중에 결국 자기의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때문에 녹색의 하인리히는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속의 ‘나’를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한편 <안톤 라이저>의 구절들은 1부 ‘짧은 편지’와 2부 ‘긴 이별’ 앞에 삽입되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앞서 인용한 구절은 2부 ‘긴 이별’ 앞에 삽입된 구절이다. ‘그거야말로 놀라운 일’이라는 말처럼 ‘나’는 도저히 변화할 수 없었을 것만 같았던 방향으로 서서히 변해간다. 사실 <녹색의 하인리히>도 <안톤 라이저>도 성장소설임을 감안한다면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도 일종의 성장소설, 그것도 오직 ‘나’, 자기 자신으로만 침잠하는 데 익숙했던 한 성인이 낯선 세계에서 이제까지의 익숙했던 자신과 결별하고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그가 이른바 ‘구대륙’이라고 할 수 있는 오스트리아에서 ‘신대륙’이라고 부르는 미국으로 여행을 떠나온 것도, 그가 이 여행 중에 이십대를 지나 서른 살 생일을 맞이하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나는 나의 두 팔을 가급적이면 나한테서 멀리 떨어뜨려놓았다. 안락의자에 앉을 때 나의 체온이 느껴지면 그 순간 다른 안락의자로 옮겨가곤 했다. 그러다보면 모든 의자에서 내 몸의 온기가 느껴졌고 그러면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나는 보폭을 크게 하고는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바짓가랑이가 서로 맞닿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였다.(<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165쪽)


그리하여 그는 급기야 “며칠 전부터 이 세상이 정말 나를 향해 가슴을 활짝 열어젖히고 있으며 매 순간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것을 진지한 자세로 받아들이면서 신중하게 생각해보고 싶다고 말하게 된다. 이제 그는 자기의 에고(ego) 안에만 갇혀있기를 바라지 않는다. ‘내가 나 자신한테서 떠밀려난 채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듯’하며 ‘이제부터 나 자신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고민한다. 어느덧 ‘나라는 존재는 잉여 인간과 같은 처지가 되어’(169쪽) 있는 것이다. 심지어 ‘나는 나 자신과 관련된 것이라면 더이상 아무것도 떠올리고 싶지’(185쪽) 않은 지경에까지 이른다. 이런 변화 속에 지난날 자신이 ‘소외감이라고 하는 자의적이고 편의적인 포즈에 묻혀서 너무 오랫동안 자족감에 젖어 살아왔다.’(191쪽)고 깨닫게 되기도 한다.

그의 이런 변화를 지켜보는 일은 묘하게 감동적이다. 고독에 잠겨 “제대로 전화하는 법을 배우는 날이 오기는 올까.” 혼잣말을 하고 까닭 없이 분노를 표출하고 누군가와 쉽사리 가까워졌다하더라도 다음 날이면 관계를 새로 시작해야만 했던 그. 무에서 유를 만든다든가 어떤 것을 다른 것으로 변화시키기를 원했다기보다는 마법으로 자기 스스로를 변신시키기를 바랐던 그. 그러나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클레어의 말처럼 ‘사건이 일어나는 대로 그냥 내버려두었다가 무엇인가 그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면 그제야 놀라서 해결하려고’ 나섰던 그. ‘무엇하나도 끝까지 경험하는 법이 없고 그것이 그냥 그 곁을 스쳐 지나가도록 내버려’두고 ‘그런 거지 뭐’하고 생각하고는 다음에 일어날 일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고 있기만 했던 그. 그는 이제 그런 지나간 시절의 자신과 작별한다. 아마 이 작별은 아주 긴 이별이 되리라.

그래서 이 작품 끝 부분에 그와 유디트가 존 포드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그의 이 여행이 궁극적으로 에고 안으로만 숨어 있기를 바랐던, 어른 아닌 어른이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는 이야기임을 보여준다. 유디트는 존 포드에게 왜 항상 ‘나’라는 말 대신에 ‘우리’라는 말을 쓰느냐고 묻는다. 존 포드는 말한다. “아무도 자기만의 세계로 침잠해 들어가려 하지 않기 때문이죠. 말하자면 우리는 외로워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혼자 있으면 무시당하고 자기 자신만 염탐하게 되죠.” 존 포드와 대화를 나누고, 한때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했던 유디트와 함께 있는 그의 모습은 작품 초반에 볼 수 있었던 불만과 분노, 공포와 두려움에 시달리던 모습에서 완연히 벗어나 있다.

녹색의 하인리히는 클레어의 말처럼 “비겁하거나 소심해서 경험을 회피한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자신에게 별 가치가 없거나 그가 관여했을 때 행여 거절당할까봐 두려웠을 뿐”이다. 칼 필립 모리츠의 안톤 라이저는 자폐와 분열, 감정의 과잉 상태 등 세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해 고통받았던 한 소년의 성장을 그린다. 때로는 녹색의 하인리히 같기도 하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안톤 라이저를 떠올리게 하는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의 ‘나’- 그는 결국 이 긴 여행을 통해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법을 배운다. 이제 그는 유디트와의 진정한 이별은 물론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또 새로이 받아들이는 일에도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 또한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이 여행에 동참했던 일은 감동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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