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조르주 페렉의 책을 읽기 시작했을 무렵, 그의 몇몇 작품을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사람, 혹시 천재는 아닐까. 그때 내가 읽었던 책들은 <사물들>, <W 또는 유년의 기억>, <임금 인상을 요청하기 위해 과장에게 접근하는 기술과 방법>처럼 주로 그의 소설들이었다. 그 후로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페렉 선집의 몇몇 작품을 읽으면서 그 확신을 굳혔다. 그래, 페렉은 천재가 맞다, 맞아. 그런데, 그냥 똑똑하기만 한 천재가 아니라 삶의 애수와 슬픔을 아는 그런 천재.

최근 출간된 <공간의 종류들>을 읽다가 나는 또 한 번 그런 생각 속에서 감탄했다. 이 사람은 어쩌면 이렇게도, 사라져가는 것들, 쉽게 잊힐 것들, 하지만 한 때 나를, 당신을, 아니 우리를 열광하게 했던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이토록 애수에 젖은 눈빛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지나치고 말았을 대상을 기발한 생각과 시선으로 바라보고 의심하고, 기록하고 그럼으로써 다시 그것들을 우리 주변에 새로이 불러오는 것일까. 페렉이 아니었다면 아마 이런 기억을 다시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으리라.

<공간의 종류들>에서 페렉은 우리 주변을 둘러싼 ‘공간’- 그 흔하고 사소한 것에 집착해 글쓰기를 시도한다. 페렉이 말하듯 그곳은, 어쨌든 처음에는 ‘별것도 아닌 곳’이다. ‘아무것도 아닌 곳, 만질 수 없는 곳, 실제로 비물질적인 곳, 넓이를 갖는 곳, 외부에 있는 곳, 우리 외부에 있는 곳, 우리가 이동해가는 도중에 있는 곳, 주위 환경, 주변 공간.’....... 문득 그런 생각도 든다. 공간에 대해 그렇게 쓸 이야기가 많은가? 대체 무엇에 대해 이야기할까? 그러나 페렉의 많은 작품이 그러하듯, 아무것도 아닌 듯한, 그 ‘공간’이라는 대상에 대해 페렉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의심하고, 분류하고, 기록하고, 상상하며 써 내려간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에 대해 써내려갔듯이 페렉은 ‘잃어버린 공간’ 아니, 너무나도 무심해서 잃어버렸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우리를 둘러싼 그 ‘공간’을 이야기한다. 페렉이 보기에 공간은 ‘시간보다 더 길들여진 듯, 혹은 덜 위험한 듯’하다. ‘우리는 도처에서 손목시계를 찬 사람들을 마주쳐도, 나침반을 지닌 사람들을 마주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우리는 언제나 시간을 알고자 하지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는 결코 궁금해 하지 않는다. 그것을 알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집에 있거나, 사무실에 있거나, 지하철 안에 있거나, 거리에 있다. 이것은 물론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분명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 페렉은 질문한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고.

어린 시절 나는 형제가 많은 탓에 온전한 나만의 방을 소유한 적이 없었다. 늘 언니와 함께 방을 썼는데, 그러다 보니 나만의 공간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 그래서 책을 좋아하는 대개의 아이들이 그러하듯이 나 또한 전집류 책을 잔뜩 꺼내서 집을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 있기를 좋아했다. 책으로 쌓기 힘들면 책상 아래로 들어간다. 책상 위에는 얇은 홑이불을 올려서 늘어뜨려 마치 텐트를 치듯이 해놓고, 책상 안, 정확히 말하자면 책상에 앉을 때 의자와 다리가 들어가는 그 옴폭한 부분에 쏘옥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 작은 공간은 오롯이 나만의 작은 세계가 된다. 그곳에서 나는 가만히 앉거나 누워서 공상에 잠긴다. 그러면 그 작은 공간은 어느덧 상상으로 지어올린 온 세계가 된다. 그런데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책으로 만든 집, 또는 책상으로 만든 집은 지금의 내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완전히 사라져버린 세계이다.

페렉은 그런 공간을 불러온다. “나는 나를 돌아다니기 위해 글을 쓴다.”는 앙리 미쇼의 말을 인용하면서 페렉의 공간은 뜻밖에도 ‘페이지’부터 시작한다. ‘행 하나가 꽤 정확하게 수평적으로 흰 종이에 놓이고, 순결한 공간을 검게 물들이며, 그곳에 하나의 의미를 부여하고 그곳을 매개 공간으로 만든다.’ 그러고 나서 그 공간은 침대, 방, 아파트, 문, 계단, 건물, 거리, 구역, 도시, 시골, 나라, 국경, 유럽, 세계로 뻗어나간다. 페렉이 파리에서 살았거나 혹은 그의 특별한 기억들이 얽혀 있는 장소들이 그려지기도 하는데, 그는 이런 일을 함으로써 ‘삼중의 낡음에 대한 흔적’을 기대한다. ‘장소 그 자체의 낡음, 내 기억들의 낡음. 나의 글쓰기의 낡음.’ (90~91쪽) 페렉의 사유의 흔적은 파편적이지만 놀라울 정도로 날카로우면서도 읽는 이의 공감과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내 침대를 좋아한다. 이 년 조금 넘게 써온 침대다. 나는 내 침대가 좋다. 침대에 누워 쉬면서 평온한 시선으로 천장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천장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사람들은 천장을 절망적인 직선으로 만들거나, 혹은 더 나쁘게는 소위 노출형 들보들로 우스꽝스럽게 꾸민다. (35쪽)

방에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느 장소에 산다는 것이, 그 장소를 제 것으로 삼는다는 말일까? 장소를 제 것으로 삼는다는 건 무슨 말인가? 언제부터 장소는 진정으로 당신 것이 되는가? 분홍색 대야에 양말 세 켤레를 넣어 물에 담갔을 때일까? 휴대용 가스버너로 스파게티를 다시 데우게 되었을 때일까? 그곳에서 기다림의 고통, 열정의 흥분상태, 혹은 극심한 치통이 주는 고문을 경험했을 때일까? 취향에 따라 창문에 커튼을 달고 벽지를 바르고 마루에 광을 냈을 때일까? (46쪽)

문- 사람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스스로 벽을 쌓는다. 문은 가로막고 갈라놓는다. 문은 공간을 깨뜨리고, 나누며 상호침투를 막고, 분할을 강요한다. 한편에는 나와 나의 집. 사생활, 가정(내 침대, 내 양탄자, 내 탁자, 내 타자기, 내 책들.... 같은 나의 소유물들로 꽉 채워진 공간)이 있고, 다른 편에는 타인들, 세상, 일반인들, 정치가가 있다.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스며들듯 건너갈 수 없으며, 이 방향이든, 저 방향이든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그냥 통과할 수 없다. 비밀번호가 필요하며, 문턱을 넘어야 하고, 식별표지를 보여줘야만 하며, 죄수가 외부와 소통하듯 소통해야만 한다. (63쪽)

나는 시골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다. 시골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환영일 뿐이다. (113쪽)

여행에 대한 놀라움과 실망. 거리를 정복했다는, 시간을 지웠다는 환상. 멀리 떨어져 있기. (129쪽)


페렉은 왜 이토록 ‘공간’에 집착했을까? 그의 글을 통해 그 이유를 짐작하는 순간, 마음 한편에서는 쿵 하고 작은 파도가 인다. 페렉은 ‘안정되고, 고정되고 범할 수 없고, 손대지 않았고 또 거의 손댈 수 없고, 변함없고, 뿌리깊은 장소’들이 존재하기를 바랐다. ‘나의 고향, 내 가족의 요람, 내가 태어났을지도 모르는 집, 내가 자라나는 것을 보았을지도 모르는(내가 태어난 날 아버지가 심었을지도 모르는) 나무, 온전한 추억들로 채워져 있는 내 어린 시절의 다락방’과도 같은 그런 공간들. 그러나 ‘이런 장소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곳들이 존재하지 않기에 공간은 질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그런 곳들 기록해야 하는 의무를 느낀다. 공간은 부서지기 쉽고, 시간이 그것들을 닳게 하고 파괴할 것이다. ‘공간은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듯 사라진다. 시간은 공간을 데려가 형태를 알 수 없는 조각들’만 남겨놓는다. 그래서 그는 글로 기록해둠으로써 그의 기억들이 그를 배반하는 일을 막고자 안간힘을 쓴다.

페렉이 생각하기에 ‘우리는 보는 법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특이한 것, 특별한 것, 비참할 정도로 예외적인 것만을 기록하려고 한다. 하지만 페렉은 거의 어리석을 정도로 더 천천히 접근해서 ‘흥미롭지 않은 것, 가장 분명한 것, 가장 평범한 것,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것’을 적기 위해 노력한다. ‘더 평범하게 보도록 다짐’한다.(84쪽)- 왜냐하면 그런 것들일수록 더욱 사라지기 쉽기 때문이다. 때문에 공간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이 글쓰기는 ‘무언가를 붙잡기 위해, 무언가를 살아남게 하기 위해 세심하게 노력’하는 행위이자, ‘점점 깊어지는 공허로부터 몇몇 분명한 조각들을 끄집어’내는 행위인 것이다.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태어난 페렉은 제2차 세계 대전 때 부모를 잃었다. 유대인으로서 겪은 어두운 유년의 경험은 페렉의 몇몇 작품, 특히 자전적 작품인 <W 또는 유년의 기억>에서 잘 드러난다. 외롭고 쓸쓸했을 유년 시절, 그가 자신을 둘러싼 공간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상상의 날개를 펼쳤을지 낱낱이 알 수는 없지만 조금은 그 마음을 헤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 <공간의 종류들>에 인용된 한 구절인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시체소각로를 초록 띠로 장식하기 위한 식물 채집’은 그저 무심히 넘길 수만은 없다. 아니,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이 책의 큰 비밀이 풀리는 듯해 가슴이 먹먹해져 오기까지 한다. 흰 종이 위에 검은 글자를 채워가면서 공간을 채우고 있었을 어린 페렉, 침대 위에 누워 천장을 보며 공상을 즐겼을 어린 페렉, 온전한 추억들로 가득한 다락방 속의 어린 페렉...... ‘안정되고, 고정되고 범할 수 없고, 손대지 않았고, 변함없고, 뿌리깊은 장소’들이 존재하기를 바랐지만 결코 그럴 수 없었던 유년을 살았던 페렉. 그런 한 인간의 글쓰기를 통한 영원한 기억과 복원- 그것이 바로 <공간의 종류들>이 아닐까.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공간’을 집요하게 기록한 에세이로만 읽히지 않는다. 잃어버린 유년 또는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그 불안정한 삶의 형태를 기록해두고자 하는 인간의 절박한 몸짓으로 읽혀 가슴 깊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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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19-09-24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필 처음 읽은 페렉이 <인생 사용법>이었는데요, 이 인간은 장편소설을 써도 열댓 권을 쓸 수 있는 소재를 가지고 왜 한 권의 작품만을 만들었을까가 굉장히 궁금했었습니다.
잠자냥 님 쓰신 글을 읽어보니, 잃어버린 공간.... 흠... 깊이 공감이 되는군요. ^^

잠자냥 2019-09-25 00:31   좋아요 0 | URL
<인생 사용법>은 전 아껴두느라 아직(아니 실은 그 방대한 분량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아서 ㅎㅎ) 못 읽었는데요, 이제는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간의 종류들> 이 책은 에세이에 속하는 터라 폴스타프 님께 꼭 읽어보시라고 권하기는 뭣하지만.... 폴스타프 님의 잃어버린 공간에 대한 에세이는 왠지 기대가 되네요. ㅎㅎㅎ 페렉과 달리 어쩐지 장르는 생활 개그일 것 같습니다만 ㅋㅋㅋ

2019-10-04 1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04 14: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간의 종류들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호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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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간은 궁금해하지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시계는 차도 나침반은 지니지 않듯이. 그러나 페렉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간은 하나의 의심이라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기록한다. 공간에 대한 독창적 사유, 쓸쓸하고 애잔한 페렉 특유의 빛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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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1 1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22 1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콜롬비아 산타 로사 - 1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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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진한 맛. 끝맛은 고소하다. 신맛이 거의 없어서 따뜻하게 내려마시기 좋은 원두. 가을에 어울리는 맛이라고나 할까. 쟈스민 향은 거의 나지 않던데...? 다음번에 내릴 때는 좀 더 주의를 기울여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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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핑 뉴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9
애니 프루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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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실, 끈 따위를 잡아매어 마디를 이룬 것, ‘매듭’- 매듭은 어떻게 묶느냐에 따라 한 목숨을 구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람을 옭아매기도 한다. 관계도 그렇다. 그래서 매듭은 종종 인간관계에 비유되고는 한다. 애니 프루의 <시핑 뉴스>는 매 장마다 ‘애슐리 매듭서’라는 책에서 선별한 온갖 매듭짓기가 소개된다. 그리고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 매듭들은 각 장에서 펼쳐지는 인간관계 또는 사건과 관련을 이루거나 무언가를 상징한다.

추석이 끝난 뒤 출근하는 아침, 문득 그 온갖 매듭이 떠올랐다. <시핑 뉴스>에 소개된, ‘애슐리 매듭서’의 밧줄 묶는 방식은 대부분이 처음 보는 것들로, 그 종류도 어마어마해서 무척 신기했다. 매듭 묶는 방식이 이토록 많다니, 놀라움 그 자체였다. 이 책 시작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보통 크기의 매듭인 교차점 여덟 개짜리 매듭의 경우 밧줄을 256가지 방식으로 ‘위와 아래’로 배치할 수 있으며 이 ‘위와 아래’ 배치 방식 중 하나만 달라져도 전혀 다른 매듭이 되거나 아예 매듭이 만들어지지 않을 수 있다.”

밧줄을 묶는 방식만 256가지이다. 하물며 밧줄도 이럴진대. 인간의 삶의 방식은 얼마나 다양하겠는가. 그런데도 이 땅의 많은 이들은 하나의 삶의 방식을 고집하고 강요한다. ‘위와 아래’ 배치 방식 중 하나만 달라져도 전혀 다른 매듭이 되거나 아예 매듭이 만들어지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하지 못한다. 남과 똑같은 방식의 매듭을 짓지 않으면 실패한 인생, 루저, 머저리가 되고 만다. 추석이나 설과 같은 명절은 다른 사람도 아닌 ‘가족끼리’ 그런 상처를 주고받으라고 만들어진 악몽 같은 날은 아닐까.

연휴 기간에 이틀 동안 집에 다녀왔다. 우리 집은 내 인생에 이래라 저래라 하는 분위기가 아니라서 가족끼리 내기 모노폴리 게임을 하면서 신나게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다 왔다. 게임에 이겨서 돈도 땄다. 그런데 애인은 그런 모양이 아닌지, 가족, 그것도 한 단계 건넌 친척들이 던진 무례한 말들에 잔뜩 상처받고 돌아와 며칠을 앓는다. 작년처럼 훌쩍 떠나버릴걸, 괜히 가족 생각해서 집에 갔다가 병만 얻어온 셈이다. 그런데 그런 말들을 쏟아낸 장본인들은 도무지 뭐가 잘못인지도 모르겠지. 모노폴리로 딴 돈이라고 몇 만원 주면서 애교 아닌 애교를 부려도 웃던 얼굴이 금방 어두워진다. 어차피 한 다리 건넌 친척이 한 말이니까 잊어버리라고 하지만, 그런 말을 전해들은 나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본인은 오죽할까. 남과 다른 매듭을 짓고 있다고 해서 인생 실패자 취급을 하는 그 어른이란 이들에게 욕을 퍼부어주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어쨌든 애인의 가족이지 않은가.

<시핑 뉴스>의 주인공 ‘코일’도 가만 보면 온갖 상처는 가족으로부터 받는다. 어릴 때부터 자라는 동안 내내 가족에게 멸시와 조롱, 놀림을 받고 세상 둘도 없는 한심한 인간 취급을 당한다. 물을 무서워하는데도 코일의 아버지는 죽을힘을 다해 매달리는 그를 수영장으로, 개울로, 호수로, 바다로 던져 넣었다. 그래야만 다른 사람과 똑같은 삶을 살 수 있기라도 하듯이. 그런데, 개헤엄조차 배우는 데 실패한 아들의 모습에서 아버지는 마치 악성 세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듯 다른 실패들이 증식하는 것을 보게 된다. 코일은 말을 똑똑히 하는 것도 실패, 바른 자세로 앉는 것도 실패,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실패, 태도도 실패, 야망도 능력도 실패, 사실상 모든 것에서 실패했고, 그것은 아버지 자신의 실패로 받아들여진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이 남과 조금 다른 삶을 살면 그것을 자기 자신의 실패로 받아들이듯 말이다. 커서는 또 어떤가. 사랑에 빠져 결혼한 아내는 늘 외도를 일삼으며 이 세상 온갖 고통은 있는 대로 코일에게 던져주고는 그를 떠난다. 심지어 이 여자는 데리고 간 어린 딸들까지 누군가에게 팔아넘겨 버린다. 설상가상. 병든 부모, 코일에게 자존감이라고는 심어줄 생각조차 못했던 그 부모는 동반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부모가 그토록 아끼던 형은 장례식에 참석도 하지 않는다. 끝까지 참 가혹하다. 다행스럽게도 코일은 딸들을 되찾지만 이 실패한 무능력자 코일이 어린 딸들과 함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기만 하다. 이때 한 사람이 등장한다. 부모의 장례식 때문에 멀리서 나타난 코일의 고모 ‘애그니스’- 애그니스는 코일에게 제안한다. 이 상처뿐인 도시를 떠나 코일 집안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뉴펀들랜드로 돌아가지 않겠느냐고. 가족 때문에 만신창이가 된 그에게 또 다른 가족이 나타나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코일은 이 손길로 구원받을 수 있을까?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이 책의 시작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 뒤로는 뉴펀들랜드에서의 새로운(?) 삶이 펼쳐진다. 물을 극도로 싫어하는 그에게 바다와 배, 거친 날씨뿐인 이 지역은 그리 살기 좋은 곳이 되지 못할 게 뻔하다. 그런데도 그는 이전까지의 삶과 다른 방식에 적응하면서 서서히 변화해간다. 자존감이라고는 눈 씻고도 찾을 수 없어던 그, 가족으로부터 ‘뚱땡이, 코찔찔이, 못난 돼지 새끼, 흑멧돼지, 바보 멍청이, 악취 폭탄, 방귀 뚱보, 기름덩어리’와 같은 모욕적인 말을 줄곧 듣고 살던 그에게도 새 인연이 찾아오고 서른여섯 해 사는 동안 처음으로 칭찬받는 일도 일어난다. 어떻게 이 모든 일이 가능하냐고? 뉴펀들랜드의 척박한 자연환경과 싸우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곳 주민들에게는 타인의 삶을 쉽사리 재단하는 일이 드물다.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내기도 벅차 보이기 때문이다. 심지가 단단한 ‘애그니스’도 한몫 거든다. 코일은 그곳에서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서서히 상처를 회복하고 자존감까지 느끼면서 새로운 기쁨을 알게 된다. 그에 비하면 뉴펀들랜드에서 마주하게 된 가족, 아니 코일 집안의 오랜 비밀은 또 한 번 코일을 몸서리치게 만든다. 애그니스와 그의 어린 딸들을 제외하면 가족은 코일의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그래서 잘라버려 마땅한 ‘매듭’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코일이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어떤 의미로는 과거의 썩은 밧줄들, 그러니까 부모나 아내, 형과의 인연이 코일 그 자신은 의도하지 않았다하더라도 끊어졌기 때문은 아닐까?



그 옛날 상사병에 걸린 뱃사람은 낚싯줄로 느슨하게 ‘진정한 연인 매듭’을 만들어 사랑하는 이에게 보냈다. 매듭이 느슨한 상태로 되돌아오면 그 관계는 제자리걸음. 단단하게 묶여서 돌아오면 사랑이 맺어지는 것, 매듭이 뒤집혀서 돌아오면 배를 타고 떠나라는 무언의 충고였다고 한다. (<시핑 뉴스>, 28쪽)


코일에게는 그 자신도 몰랐겠지만 매듭이 뒤집혀서 돌아왔던 것이고, 자기 스스로 떠날 정도의 과감성도, 용기도 없었던 그였지만, 그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걱정해준 다른 사람(애그니스)의 손에 이끌려 배를 타고 떠난 것이다. 살다 보면 많은 이들에게 이런 순간이 다가온다. 그런데 또 많은 이들이 매듭이 뒤집혀서 돌아왔는데도 그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무시한 채 계속 그 매듭, 그 관계에 매달렸다가 불행을 자초하기도 한다. 추석 때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잘못된 매듭으로 인해 상처받았을까. 가족이라는 매듭은 쉽게 끊을 수도 없다. 끊을 수 없다면 배를 타고 조금 멀리 떠나는 것도 한 방편이다. 그럼에도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얽혀 있는 한, 가끔 상처받는 일을 피할 수는 없으리라. 그러나 계속 서로 꽁꽁 묶여 피를 흘리는 지경이 되는 것보다야 낫지 않을까. 피 흘리고 돌아온 사람에게는 애그니스처럼, 묵묵히 그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것도 하나의 단단한 매듭이 되어주는 일일 것이다. 지금 내가 할 일이 바로 그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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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19-09-16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려 사놓은 책입니다.
ㅎㅎㅎ 제가 스포일러를 지독하게 안 좋아해서 애써 쓰신 패스하는 가슴이 찢어지는 마음도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

잠자냥 2019-09-16 22:36   좋아요 0 | URL
암요 그럼요- 저도 읽으려는 책은 대부분 거의 책 다 읽고 나서 리뷰 읽는답니다. 재미나게 읽으세요!

유부만두 2019-09-16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죠~?!!

잠자냥 2019-09-16 22:37   좋아요 1 | URL
네~ 소소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펼쳐지더라고요. 특히 앞부분의 코일에 대한 묘사는 정말 ㅎㅎㅎ

다락방 2019-09-17 0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참... 어제 책 주문했는데 또 사야겠네요... 하아-

잠자냥 2019-09-17 08:40   좋아요 0 | URL
다음에 장바구니에 담으세요! ㅎㅎ

다락방 2019-09-17 08:44   좋아요 0 | URL
저 잠자냥 님 서재에서 보고 장바구니에 담아 산 뒤에 안읽고 쌓아두는 책이 자꾸 늘어난단 말입니다.. ㅠㅠ
잠자냥 님 서재 오지 말까봐요.. ㅠㅠ

잠자냥 2019-09-17 09:51   좋아요 0 | URL
에이 제 서재 오지 않으셔도 사놓고 안 읽는 책 많이 쌓이는 거 다 알고 있는데요 *먼산*

coolcat329 2019-09-17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코일에 대한 묘사 읽다가 놀라고 고모랑 뉴펀들랜드로 떠나는 자동차여행부터 지겨워지기 시작하더니 , 기한이 다되서 도서관에 반납했네요. ㅠㅠ

잠자냥 2019-09-17 14:16   좋아요 1 | URL
앞부분에 워낙 스펙타클한 사건이 거의 다 일어나서 뒤로 갈수록 조금 지루해지기는 하죠(앞에 비하면 잔잔한 일상이 펼쳐지니까요). 그런데 뉴펀들랜드에서 만나는 새로운 인물들과 지루해질 때쯤 일어나는 새 사건들이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이 있더라고요. ㅎㅎ
 
건강의 배신 - 무병장수의 꿈은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조영 옮김 / 부키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건강 지침서가 아니다. 건강하고 날씬해야 하며, 자신의 몸을 통제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춰야한다는 사회 통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럼으로써 ‘죽은 세상에서 죽어갈 것인지 살아 있는 세상에서 건강하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스스로 철학적으로 질문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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