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아무것도 아니길 바랐는데 어쩌다보니 성공해버린 헨리 치나스키. 늙어버린 헨리 치나스키, 세상에 조금 부드러워진 치나스키. 그래도 그는 여전히 치나스키이다. 여전히 술마시고 경마장에 가고 타자기 위를 내달린다. 조심하라! 이 책 읽다 보면 심하게 술이 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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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스쿨
토바이어스 울프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3월
평점 :
품절


<올드 스쿨>을 읽노라니 옛 기억이 떠오른다. 어쩌다 보니 국문학을 전공하게 되어 문학이 던지던 빛과 그림자를 모두 받아들이던 그 시절. 그때가 생각난다. 그 무렵 학교에서는 다양한 문학 관련 행사를 벌이곤 했는데, 그중 ‘작가와의 만남’ 같은 시간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과에서 진행한 소소한 자리였던 지라 좀 더 내밀했던 그 만남들…. 소설 쓰고 시 쓰는 이들은 어떤 생각에서 그런 글을 쓰고 또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던 것 같다. 그때 어느 작가가 했던 말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작가가 되고 나서 가장 불편한 일이 무엇이냐고 누군가가 물었을 때, 그이는 이렇게 말했다. 친구가 없어지더라는. 친구들은 그이가 작품 소재로 자신의 이야기를 쓸까봐 꺼려져서 점점 자기를 멀리하게 되었고, 또 어떤 이는 출간된 작품을 읽고는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고 화를 내며 멀어져갔다는 그런 이야기들. 얼마쯤 수긍이 가는 이야기라 여전히 기억에 남는 것일까. 문학 작품의 배경이 된 장소들을 찾아가서 토론을 벌이곤 했던 문학기행도 기억에 남는다. 전국 곳곳을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그 시절 나는 딱히 원해서 그 전공을 선택했던 것도 아니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글을 쓰며 산다던가, 또는 문학을 업으로 삼겠다던가 하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삶을 꺼려했다. 어디 그 뿐인가. 문학한답시고 젠체하는 그들의 허영, 위선, 가식 등이 소름끼쳐서 멀리했다. 그랬음에도 그 시간만큼은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문학하는 사람들, 문학을 꿈꾸는 사람들은 싫었어도 문학 그 자체는 사랑했던 것일까.

학교를 졸업하고 밥벌이를 시작했다. 그 밥벌이가 결국은 어떤 형태로든 글과 관련되어 있었고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소설이라는 것을 끼적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나를 괴롭히는 문제가 있었다. 내 이야기도 제대로 쓰지 못하겠고, 그렇다고 남의 이야기는 더더욱 쓰지 못하겠는 그런 문제. 내 이야기는 진실을 마주할 자신이 여전히 부족해서 쓸 수 없고, 남의 이야기는 윤리에 어긋난다는 생각 때문에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끼적거리다가 나오는 글은 성에 차지 않았다. 문학을 업으로 삼거나, 그 언저리에서 서성이는 삶조차 꺼렸으면서도, 결국 그 주변을 맴돌고, 이제는 그토록 혐오하던 세계였을지도 모르는, 소설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결국은 그 문학의 세계가 내게 빛과 음영을 모두 던져주었기 때문일까.

<올드 스쿨>은 나의 이십대의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그 시절 과방에는 문학과지성사 시인선이 1번부터 몇 백 번 대까지 빼곡하게 꽂혀 있었고, 그 시들을 읽고 술자리에서 읊어대는, 지금 생각하면 오그라들기 짝이 없는 그런 짓들을 그때 그들은 천연덕스럽게도 해대곤 했다. 작품을 써 와서 누군가가 읽어주기를 바라고, 소설가이자 시인인 교수들에게 보여주면서 좋은 평가를 받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때로는 그렇게 초빙한 작가들에게 자기의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기를 간절히 바라던 20대의 그들. 누군가가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문학 경연대회에서 상이라도 받으면 부러움과 시기와 질투로 가득해서 그 입상한 사람의 작품을 몰래 뒤에서 헐뜯곤 하던 못난 그들의 치졸함. 그 모든, 문학으로 이루어진 순간들이 떠오른다. 문학을 좋아하면서도 내가 거기 속한 사람들을 싫어했던 것은 그들의 속성을 잘 알아서였을까. 어쩌면 나 또한 그런 속성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로버트 프로스트와 헤밍웨이라니! 진짜 대박이다! <올드 스쿨>을 읽다가 이런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이 작품은 그 어떤 재능보다 문학적 재능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미국의 어느 명문 사립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이 학교는 학기에 한 번씩 유명 작가를 초청하는 전통이 있다. 문학 경연대회를 열어 우승자는 초청 작가와 개인 면담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프로스트와 아인 랜드가 다녀갔고, 다음 대회에서는 무려 초청 작가가 헤밍웨이란다. 이게 정말 현실이라면 엄청난 일이 아닐까? 내가 대학생이던 그 시절, 학과에서 문학 경연대회를 열고, 우승자에게 헤밍웨이와 개인 면담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아마 그때 나는 문학을 꿈꾸지 않았어도, 한번쯤은 불나방처럼 몸을 던졌을 것이다. 프로스트와 헤밍웨이가 내 작품을 읽고 코멘트까지 해준다는데, 뭘 더 바라겠는가. 문학에 경도된 이들은 ‘살아 있는 소설과 시를 써낸 손, 다른 작가들의 손을 만져보았던 손이 내 어깨를 짚어주는 일’ 그런 ‘누군가 내게 향유를 부어주기’를 바라고 또 바랄 것이다.

주인공을 비롯한 학생들은 모두 그때부터 소설쓰기에 매진한다. 꿈은 오로지 하나, 헤밍웨이로부터 평가받고 그를 개인적으로 만날 기회를 얻는 것이다. 헤밍웨이는 이 학교에서 거의 우상과도 같은 존재이다. 인기가 사그라지기는커녕 시간이 흐를수록 그 명성이 날로 커져만 가는 그런 존재. 헤밍웨이 자체가 이 학교에서는 문학의 상징 그 자체이다. 주인공 ‘나’는 헤밍웨이를 신처럼 받든다. 그는 과연 경연대회에서 우승하고 헤밍웨이를 만나게 될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이 작품에는 주인공뿐만 아니라 헤밍웨이와 연관된 또 한 사람이 등장한다. 그와 얽힌 문제가 작품 후반부에 드러나면서 헤밍웨이로 상징될 수 있는 ‘문학’이 과연 인간에게, 아니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과연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헤밍웨이와 얽힌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올드 스쿨>의 흥미로운 요소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때문에 이 글에서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문학에서 높이 사는 진정성이나 진실함이 작품을 쓴 작가의 허위나 기만, 이중성과 연결될 때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 이 작품은 고스란히 보여준다.

한편, <올드 스쿨>은 작품 자체로 하나의 문학 강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품 곳곳에서는 문학, 그러니까 시나 소설을 어떤 자세로 써야하는지가 종종 나타나는데, 그러한 구절을 읽노라면 오래된 문학 교실, 즉 ‘올드 스쿨’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문학 강의를 듣고 있는 듯하다. 예컨대 ‘아주 춥고 청명한 날 눈을 밟으면 어떻게 끽끽 소리가 나는지, 한데 얽힌 검은 가지들 너머로 보이는 낮게 뜬 백색 태양은 어떤 모습인지, 방금 기름칠 해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소총 개머리판의 느낌과 어느 여자가 따분해하며 난로 앞에서 긴 머리를 빗을 때 나는 쥐어뜯기는 듯한 소리는 어떤지. 빌의 작품에서는 등장인물을 제외한 모든 요소가 구체적이고 사실적이었다.’(31쪽) 같은 구절이나 ‘모든 사람에겐 문제가 있었다.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런 인간의 현실의 포착해내지 못한 것이야말로 아인 랜드의 실패라는 생각이 들었다.’(170쪽) 같은 구절에서는 좋은 소설이 갖추어야 할 요소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올드 스쿨>이 인상적인 이유는, 허위와 가식의 세계에 머물러 있던 ‘나’가 문학을 통해 진실로 이어지는 길을 발견한다는 점에 있다. 물론 그는 어쩌면 문학 때문에 더 허위와 위선의 세계에 머물러 있었는지도 모른다. 명문 사립학교의 부유하고,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동급생들 속에서 자신만이 뒤떨어진다고 느꼈기에 자신이 속했던 세계를 똑바로 볼 수 없었던 그. 때문에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직시하고 ‘난장판, 소음, 냄새, 그 모든 게 토요일 아침의 우리 집과 똑같’은 시를 쓰기 보다는 전혀 동떨어진, 때문에 엉뚱하기 짝이없는 작품인 엘크 사냥꾼이 등장하는 시 ‘붉은 눈(雪)’을 쓸 수밖에 없던 그. 아인 랜드의 비현실적인 작품에 열광하던 그가 그녀의 말이 틀렸음을 서서히 깨달아, 그리하여 자신의 평범한 삶, ‘부모님을 무뇌아, 더러운 여자, 절망감에 빠진 천치들’이라고 보는 아인 랜드의 만화적 관점이 역겹다고 말하기까지 되고, 마침내 ‘인간이 궁지에 몰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런 처지의 사람들이 맺고 있는 관계가 얼마나 복잡하고 극적인지, 그 모든 실망과 아픔, 탈출에 대한 희망을 이겨내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려면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한지’(168쪽) 깨달음을 얻는 과정은 문학을 통해 한 인간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듯해 벅찬 감동이 일기도 한다.

<올드 스쿨>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는 작가와 작품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배운다. 그러나 나는 헤밍웨이의 이미지와 닉의 이미지를 분리할 수 없었다. 나아가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는 느낌, 작가가 자신과 등장인물의 혼동을 의도했다는 느낌도 받았다. (...) 헤밍웨이 단편소설들 속 인물은 모든 면에서 특별할 게 없는 사람이었다. 실수를 저지르고 자신의 정신 활동으로 인한 두려움을 포함해 온갖 두려움과 초조함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 가끔은 도저히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조차 알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 (175~176쪽) 주인공 ‘나’는 토바이어스 울프의 어느 한 모습, 아니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울프 자신이 작품 속 인물과 혼동하도록 의도했다는 느낌도 든다. 문학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때문에 거기에 열중했지만 오히려 그게 독이 되었던, 그래서 때로는 그 안에서 길을 잃어버렸던 사람, 그렇지만 결국 그 문학 때문에 다시 진실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된 사람. 그게 바로 주인공 ‘나’이자 토바이어스 울프 그 자신이 아닐까.



이 소설은 양심으로 쓴 이야기예요. 정직하게 쓴 이야기는 언제나 또 다른 사람의 양심에도, 나처럼 늙어빠진 노인네한테도 무언가 배울 만한 것을 제공해줍니다. 여기 나오는 인물들은 진짜로 살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제 말은, 지면상에서 진실하게 보인다는 거죠. 아마 다른 방식으로도 진실할 거라고 믿습니다. (<올드 스쿨>, 238쪽)


양심으로 쓴 이야기, 정직하게 쓴 이야기. 진짜로 살아 있는 사람들이 나오는 이야기. 지면상에서도 진실하게 보이고, 아마 다른 방식으로도 진실한 사람들이 나오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다. 쓸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나 또한 <올드 스쿨>의 ‘나’처럼 진실을 마주할 각오를 먼저 해야 하겠지. <올드 스쿨>은 학생들의 문학잡지가 돌풍을 일으킬 일은 없지만, 그럼에도 매번 그럴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가지고 행동하는 이들의 신념을 믿거나 지지하는 사람들, 램지 선생의 말처럼 ‘소설이 없는 세상에서는 살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 ‘글을 쓰면 세상과 분리되고, 이기적으로 변하고 정말이지 좋을 게 하나도 없다’(288쪽)고 생각하더라도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틀림없이 깊은 울림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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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5-13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이런 내용의 책이군요. 잠자냥 님 리뷰 읽을 때마다 장바구니에 책 담아서 큰일이에요.
그나저나 역시나! 글 관련 전공이셨군요. 아아 눈 밝은 나여...(자기가 자기한테 감탄함)

잠자냥 2019-05-13 14:23   좋아요 1 | URL
이 작품에는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남성중심 문학판에 대한 비판 및 일종의 조롱도 담겨 있는데요.그래서 아마 다락방 님은 그 부분에서 좀 더 흥미진진하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그나저나 글 관련 전공자라는 사실을 밝히기에는 이곳(알라딘 서재)에는 글 잘 쓰시는 분들이 참으로 많아 참 그렇더라고요. 하하하.

2019-05-13 1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3 16: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oolcat329 2019-05-15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작가가 스스로 양심으로 쓴 이야기라고 한 작품은 어떤건지 안 읽을수가 없네요. 휴..언제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기억해둬야지요.글 잘 읽었습니다.

잠자냥 2019-05-16 09:38   좋아요 1 | URL
ㅎㅎ 출간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책이니 챙겨두셨다가 나중에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보세요~
 
Vampire Weekend - 정규 4집 Father of the Bride
뱀파이어 위켄드 (Vampire Weekend) 노래 / 소니뮤직(SonyMusic)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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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의 새 앨범! 들어보지도 않고 믿고 무조건 샀다. 6년 동안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멜로디 뽑아내는 능력은 여전히 탁월하다. 그런데 너무 달다. 너무 달콤한 사탕이라 손이 자주 가지 않을 것 같은 느낌. 1~3집에 비해서 조금 아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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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9-05-13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홀~~ 처음들어보는 가수인데 잠자냥님 이런 리뷰보았으니 저는 오늘 퇴근길 지니에게 부탁해서 들어보렵니다~ ^^

잠자냥 2019-05-13 10:03   좋아요 0 | URL
ㅎㅎ 이 앨범은 뱀파이어 위켄드 음악을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는 꽤 좋게 들릴 거예요.
 
올드 스쿨
토바이어스 울프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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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헤밍웨이는 큰 역할을 한다. 주인공을 비롯해 또 한 사람에게. 아니 그 밖의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이 작품에서 헤밍웨이는 문학의 상징이다. 문학은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단 한번이라도 문학에 경도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 곳곳에서 자신의 초상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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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보다 긴 하루 열린책들 세계문학 44
친기즈 아이트마토프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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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휴일 아침에 이 책을 읽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때마침 창문으로 눈부신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 순간 누군가가 나를 봤다면 그 빛에 눈이 부셔서 눈물을 흘리는 줄 알았을 것이다. 내 마음은 흔들리고 있었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 그 아름다움 때문에 마음에 파문이 일고, 그러다가 끝내 눈물이 나듯이 <백년보다 긴 하루>를 읽는 그 아침이 그랬다. 오랜만에 문학이 참 아름답다고 느꼈다.

이 책은 오래 전에 출간되었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에서도 44번이므로 꽤 앞에 속한다. 초판은 1990년 출간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여러 번 이 책을 마주했다. 책표지와 제목이 이제는 아주 낯익은 정도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선뜻 손이 가지 않아서 여태 읽기를 미루던 책. 그런데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만일 20대 또는 30대 초반에 이 작품을 읽었다면 지금처럼 크게 와 닿았을까? 물론 그때도 그 나름대로 느낀 바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확신하건대 지금처럼 이 작품을 온 마음으로 느끼지는 못했을 것 같다.

이 작품의 어떤 부분이 그토록 아름다웠을까? 누군가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선뜻 대답하기는 어렵다. 작품의 문체가 아주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책의 줄거리가 매우 특별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척박한 스텝 지대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의 고달픈 삶이 그려질 뿐이다. 가슴 절절한 사랑이야기가 있느냐 하면 딱히 그렇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읽다보면 절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백년보다 긴 하루>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주인공인 ‘예지게이’와 그가 사랑해마지 않았던 ‘까잔갑’- 이 두 사람은 내 기준엔 아름다운 인간의 전형이다. 근래 읽은 어느 문학 작품 속 인물들보다 나는 이 두 사람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예지게이와 까잔갑뿐만이 아니다. 예지게이의 아내인 ‘우꾸발라’, 그리고 이들과 스텝 지대에서 함께 지내게 되는 ‘아부딸리쁘’와 ‘자리빠’ 부부도 보기 드문 인간 유형임은 틀림없다. 이런 이들이 내 주변에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 세상을 살다가는 게 그리 헛된 일만은 아니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이 인물들이 한없이 선량하기만하다면 소설을 읽는 재미는 떨어질 것이다. 비현실적이라고 느낄 테니까. 그러나 이들은 비록 드물지라도 이 세상 어딘가에는 존재할 것만 같다. 예지게이는 성격이 완고하고 격렬하기 때문에 ‘눈보라’라는 의미의 ‘부란니’라는 별명이 붙어있을 정도이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것을 잃어버린 뒤에는 존경해마지 않았던 까잔갑에게 비열하고 쪼잔하기 짝이 없는 소리를 퍼붓는 치졸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자신의 그 간절한 바람 때문에 아내 우꾸발라에게 더할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 이 작품을 읽는 이들이라면 모두, 우꾸발라가 예지게이의 마음 속 폭풍을 알고 있었으리라고, 그럼에도 그녀는 끝내 모른 체했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녀의 성품이라면 그러고도 남으리라. 하지만 얼마나 속앓이를 했을까. 눈보라 같은 격정적인 성격의 남편 곁에서 묵묵히 ‘할망구’가 될 때까지 그 곁을 지킨 우꾸발라, 척박한 스텝 지역에서 때로는 헤매고 길을 잃더라도 인간다운 위엄과 예의, 정의로움, 이웃에 대한 따스함을 잃지 않고자 애썼던 예지게이. 그들이 삶이 나를 숙연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예지게이를 있게 한 존재인 ‘까잔갑’. 그에게는 나도 모르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재산이 조금 불어나자 초심을 잃어버리는 듯한 예지게이에게 까잔갑은 말한다. “강도를 만나 털린대도 모든 걸 다 잃지는 않아. 그건 복구할 수가 있어. 하지만 영혼이 짓밟혔다면 그걸 다시는 원래대로 되돌릴 수는 없어.”(113쪽). 그의 이 말에 나는 내 삶을 되돌아본다. 혹시라도 돈 몇 푼에, 눈앞에 보이는 알량한 이익 때문에 스스로 영혼을 짓밟는 일을 한 적은 없는가, 그 아침에 내 인생 전반을 돌아보았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산 적이 있었나보다. 까잔갑의 꾸짖음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한편, 자신의 아이들에게 자기가 보고 듣고 겪은 역사를 들려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날마다 글을 쓰는 ‘아부딸리쁘’도 인상 깊다. 섬세하고 예민하기에 한때는 삶을 다 놓아버릴 지경에 놓였던 그였지만 예지게이의 도움으로 또 다른 삶을 살게 되고 그 뒤로 자신의 아이들과 아내에게 전폭적인 애정을 쏟으며 헌신적인 삶을 사는 그. 그들의 평범하지만 서로에 대한 애정과 신뢰로 가득한 삶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산다는 게 무엇인지, 인간은 어떤 조건에서 살더라도 ‘그 어떤 것’을 잃지 않는 한 행복할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백년보다 긴 하루>는 척박한 스텝 지역에서 서로 의지하며 사는 평범한 이들의 삶을 그린 소설인가? 쉽게 단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 평범한 이야기 사이에 SF 같은 이야기가 삽입되어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다. 묘지 ‘아나-베이뜨’의 전설이 된 ‘나이만-아나’와 노예가 된 그의 아들 ‘졸라만’의 이야기, 음유시인 ‘라이말리-아가’와 ‘베기마이’의 슬픈 사랑 이야기, 예지게이의 숫낙타 ‘까라나르’와 얽힌 사연 등 다채로운 이야기가 얽혀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특히 예지게이가 까잔갑을 위해 ‘보란니-부란니’ 간이역에서 ‘사로제끄’로 가는 동안 벌어지는 ‘패리티 우주 정거장’의 우주 비행사 1-2와 우주비행사 2-1의 이야기는 대체 이 예지게이의 삶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그러는 가운데 마지막에 가서 아, 하고 큰 깨달음을 준다. 이 작품은 이렇게 리얼리티 넘치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 위에 전설과 역사, 현실과 공상을 적절히 뒤섞으면서 전혀 상관없을 듯하지만 그 모든 이야기들이 예지게이 삶과 하나로 이어지면서 좀처럼 잊기 힘든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



사로제끄의 간이역들에서 살아가려면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파멸한다. 스텝은 광대하고 인간은 비소(卑小)하다. 스텝은 어느 누구의 편도 들지 않으며 누군가가 곤란에 처해 있건 사정이 두루 다 좋건 그런 데는 상관하지 않는다. 스텝이란 결국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에 어디까지고 무심할 수가 없다. 그는 자기가 어딘가 다른 곳에서라면 더 행복할 터인데도 다만 운명의 장난으로 거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생각에 불안하고 괴로워한다. (<백년보다 긴 하루>, 21쪽)


어린 시절, 그리고 20대만 하더라도 내 인생은 꿈꾸는 대로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만하게 세상에 맞서기도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바란 대로 이룬 것이 그리 많지 않음을 깨닫는다. 예지게이 또한 그렇다. 그는 때로 자기 삶을 후회한다. ‘어째서 이제껏 그런 삶을 영위해 왔을까? 어째서 손 털고 사로제끄를 떠나지 못했을까? 어째서 이 몹쓸 운명으로 괴롭힘 당하는 불행하고 불운한 가족을 자기 삶에 끌어들였을까. 그들만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심한 고통을 당하지 않고서 조용하고 안락한 삶을 꾸려갔을 것’이라고 후회한다. 한때는 무척 탐을 냈던 숫낙타 까라나르도 이제는 그가 짊어져야 할 부담이었으며 신이 내린 형벌이었고 그에게 어떤 행운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그의 삶에 행운이라고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세상에 신 같은 건 없어! 삶에 대해서 뭣 한 가지도 이해하려 들지 않는 신이 어디 있어? 신 같은 건 있지도 않아!’ 소리치기도 한다. ‘삶이란 믿을 수 없는 농담’처럼 그의 뜻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는 것만 같다.

나 또한 예지게이처럼 때때로 세상을 향해 불만을 터뜨리고, 나 자신을 책망하고 한심한 사람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대체 그런 일은 왜 일어났을까, 왜 그때 그런 선택을 했을까 후회하고 절망하기도 한다. 이 세상이 다 엉망진창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지게이 만큼만 살다간다면 ‘인간’으로서 이 세상 한평생 잘 살다가는 게 아닐까. 예지게이와 까잔갑을 보며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앞으로는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곰곰 생각해 본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어느 것에나 이유가 있기 마련.”이라는 그의 말처럼 살면서 일어나는 일에는 모든 것이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일일지라도. 그 삶의 비밀을 <백년보다 긴 하루>는 수수께끼처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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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5-09 16: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아침부터 기다렸어요. 오늘은 잠자냥 님 글 안올라오나... 그런데 오후에 이렇게 소원대로 똭!

감사합니다. 헤헷.

잠자냥 2019-05-09 16:51   좋아요 0 | URL
앗, 정말요? 요즘 연휴라 (실은 이 책 읽는 데 시간이 좀 오래 걸려서 ㅎ) 글이 좀 뜸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락방 2019-05-09 16:52   좋아요 0 | URL
저 잠자냥 님 좋아하나봐요.. (수줍)

잠자냥 2019-05-09 16:5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회사에서 지금 육성으로 실소가 터져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사합니다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05-09 16:56   좋아요 0 | URL
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syo 2019-05-10 01:30   좋아요 0 | URL
얼레리꼴레리~~ 다락방님은~~~ 얼레리꼴레리~~ 잠자냥님을~~~ 좋아한대요~~ 좋아한대요~~~
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9-05-10 06:51   좋아요 0 | URL
☺️

케이 2019-05-10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이켜보면, 저는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마다 가장 적당하고 안전한 길을 선택해 왔던 것 같아요. 저 역시 나중에 시간이 지나 그 선택이 잘못됐음을 깨달아 가슴이 아플 때도 있지만, 결국 그 시절 나에게는 이외 선택안이 없었던 적이 대부분이더라고요. 그래서 전 스스로 인생을 망치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면 실패한 선택이란 없다고 생각해요. 타인이 보기에 명백히 잘못된 선택이었다 할지라도 그로 인해 내가 조금은 겸손해졌으리라... 조금 더 나은 늙은이가 되기 위한 과정이리라.. 스스로 위로하고 달래며 살곤 합니다. (실패자의 정신승리라고 하면 할 말 없지만요 ㅋ) 잠자냥님을 종종 절망하게 만드는 과거의 어떤 선택도 분명 당시 잠자냥님께는 최선이었을 거예요. 수준 높고 재밌기까지 한 리뷰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

잠자냥 2019-05-10 14:07   좋아요 1 | URL
저도 돌이켜보면 가장 적당하고 안전한 길을 선택해 온 것 같아요. 그런데도 결국 그랬기 때문에 후회하는 일이 가끔 있고요. 그런데 케이 님 말씀처럼 결국 그런 선택을 한 것도 나 자신이고, 그때는 아마 그 선택 말고는 다른 길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살아갈 나날 중에서도 또 그런 일은 있겠지요. 그래도 정신승리하면서 살아가는 게 최선의 인생이 아닐까요. ㅎㅎ 늘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케이 님의 댓글 오늘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