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장 소설을 정말 좋아한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몇 번이나 읽으면서 펑펑 울어댔는지. 그 뒤로도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나 <수레바퀴 아래서>, <크눌프> 등을 읽으면서 또 가슴 찡했고 로제 마르탱 뒤가르의 <티보가의 사람들> 중 <회색 노트>같은 것을 보면서도 무척 감동했다. 어른이 된 뒤로는 그렇게 인상 깊은 성장 소설을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도 읽을 때도 좋았고,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작품들이 있다.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설명이 필요없을 듯.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성장 소설’이라는 문구가 눈에 가득 들어왔다. ‘성장 소설’인 데다가 슬퍼서 눈물이 펑펑 난다니. 정말 딱이구나 싶었다. 서른 살이 넘어 이 책을 읽고 펑펑 울었다.

주인공 모모(모하메드)는 열네 살 소년이다. 엄마도 아빠도 누구인지 모르는 버려진 소년. 심지어 자기 나이도 그냥 짐작해서 알뿐이다. 자신이 열네 살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된다. 그가 자라는 곳은 모모처럼 버려진 창녀의 자식들이 모여 사는 프랑스 파리의 빈민가. 거기서 모모는 창녀 출신의 유대인 로자 아줌마의 손에 의해 길러지면서 자기처럼 최하층의 삶을 사는 사람들과 함께 자란다. 파란 눈에 금발 머리 하얀 피부를 가진 진짜 ‘프랑스인을 보고 싶다’는 것이 소원일 정도로 모모가 사는 지역에는 아랍인, 흑인, 유대인만이 존재할 뿐이다. 모모는 자신도 언젠가는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과 같은 책을 쓰리라고 늘 생각한다.

실제로 모모가 화자인 <자기 앞의 生>은 정말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무척 우울할 것 같지만 웃기기도 하고, 엄청 슬프기도 하고 그러다 어느 순간 가슴에 따뜻한 불이 확 켜진다.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고 늘 생각한 소년 모모가 로자 아줌마를 통해 사랑의 진짜 의미, 삶의 진짜 의미를 깨닫는 과정이 눈부시게 펼쳐진다.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또 자신이 사랑할 사람이 있다면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이 책이 전하는 가슴 찡한 메시지다.

폴 오스터 <공중 곡예사>

제목 그대로 이 책은 공중부양능력을 지닌 월트라는 소년의 일생을 그린 작품이다. ‘공중에 떠다니는 능력을 지닌!’ 이라는 대목에서처럼 만화 같기도 하고 동화 같기도 한 환상적인 이야기를 폴 오스터는 허무맹랑한 느낌이 들지 않도록 잘 써내려간다. 물위를 걸어 다닐 수 도 있고 공중에 떠서 걸어 다닐 수 있는 원더보이 월트- 이 소년이 그렇다고 태어날 때부터 이런 능력을 지닌 것은 아니다.

월트는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를 아무런 희망도 없는 가난하고 비참한 소년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어느 날 예후디라는 이상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 또 그를 사부로 모시면서 갖은 고생과 고된 훈련 끝에 공중부양능력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는 공중부양능력을 지닌 원더보이 월트로 서서히 이름을 날리면서 부와 명성을 거머쥐게 된다. 그래서 월트가 행복하게 살았냐고? 월트가 그 특이한 능력으로 부와 명성을 거머쥐고 계속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면, 아마 이 소설은 동화 혹은 만화 같은 소설로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인생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월트의 삶의 여정을 통해 담담히 보여준다.

대부분의 성장소설이 그렇듯이 이 책 또한 주인공이 살아가는 과정을 통해 내가 살아온 인생, 또 내가 앞으로 살아갈 인생들에 대해 다시금 되짚어 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별다른 기대 없이 책을 들었다가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의 알 듯 모를 듯한 감동. 그게 바로 <공중 곡예사>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인생은 뜻하지 않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고. 그렇지만 뜻한 방향으로 가도록 한번쯤은 노력해 볼 만 하다고 원더보이 월트는 말한다.

아멜리 노통브 <사랑의 파괴>

주인공은 일곱 살 난 꼬마다. 베이징의 외인지구에서 살기 시작한 꼬마는 그곳의 각국에서 날아온 아이들과 공동의 적을 만들고 전쟁놀이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데 어느 날 이탈리아에서 날아온 눈부시게 아름다운 소녀를 만나고 미친 듯이 사랑에 빠진다는 줄거리를 가진 성장소설이라 말할 수 있다. 처음엔 정찰병으로 전쟁놀이를 가장 즐기고, 말을 타며 이탈리아에서 날아온 소녀에게 한눈에 반하는 장면을 보고 이 꼬마가 분명 남자 아이려니 했는데, 그 꼬마 또한 여자 아이이다. 즉 이 소설은 아멜리 노통브의 자전적 이야기다. 노통브가 저자 후기에서도 밝혔지만 자신이 베이징에서 겪은 일을 한 치의 거짓 없이 쓴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성인이 된 소설 속 이탈리아 소녀는 노통브에게 ‘몇 가지 사실을 바로 잡아야겠다’고 항의했다는 후문도 적혀있다.

어린 시절에는 보통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주위 친구들을 동경한 경험이 한두번쯤은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 꼬마 역시 이탈리아 소녀 엘레나의 황홀한 외모, 도도한 태도에 열을 올렸으리라. 이 일곱 살, 여섯 살 소녀들의 사랑의 역학관계를 살펴보면 어떻게 하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지, 또 그와 반대로 잃을 수 있는지 등등 사랑에 관해 알고 싶고 정의내리고 싶던 모든 것이 들어있다.

사랑뿐만 아니라 전쟁에 대해서도 이 책은 상당부분을 할애하고 있는데, 연합군을 만들고 동독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 다시 동독 아이들과 연합하고 또 다른 적을 찾아 나서는 과정 등등이 어른들이 벌이는 진짜 전쟁의 모습 그대로를 축소하여 보여준다. 전쟁과 사랑에 관한 일곱 살 꼬마의 시선이 놀랍도록 통찰력 있고 영악해서 조금 거부감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노통브의 소설은 읽고 나면 뭔가 가슴이 쿵하는 강렬함이 있다


위기철 <아홉살 인생>

별 생각없이 읽었다가 좋은 기억으로 남은 책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막 웃었고, 또 한편으로는 주인공 여민이의 허풍쟁이 친구인 신기종의 뼈있는 거짓말에 공감하면서 이 소설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한 번쯤은 읽었을 법한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떠올리게 한다. 여민이는 제제처럼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제대로 성장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아이고, 또 제제의 라임오렌지 나무 같은 숲을 갖고 있다. 물론 제제의 현실이 더욱 비참하지만.....

이 작품에서 무척 마음에 드는 녀석이 있다면 주인공 여민이보다 그의 친구로 나온 허풍쟁이 신기종이다. 이 녀석이 하는 말은 거짓말 같고 유치해 보이지만, 사실 삶의 진실(사람들이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괴로운 진실)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선생님을 월급기계라고 부르거나, 이 월급기계가 하는 일은 부잣집 아이와 가난한 집 아이를 구분하는 일이라거나, 싸움은 늘 힘을 더 많이 가진 자가 이긴다거나 등등. 이 꼬마 허풍쟁이의 말에는 너무 뼈아픈 삶의 진실이 숨어있어 읽는 내내 가슴 한구석이 저려온다.

한편으로는 ‘얘야, 너도 어른이 되어 보면 세상에 화가 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이해하게 될 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한테 화를 내게 되는 일이 있어도 그건 결국 자신한테 화를 내는 거란다. 자신이 밉기 때문이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자신이 미워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라는 골방철학자의 말이 왜 그렇게도 가슴에 와 닿던지!

성장 소설들이 큰 감동을 주는 까닭은 어린 아이들의 눈에 비친 고달픈 삶의 현실이, 인생은 정말 살기 만만하지 않구나 하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이 세상은 한 번쯤 뜨겁게 살아볼 만하다는 희망을 던져주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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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두 가지 길을 다 갈 수만 있다면
마일리 멜로이 지음, 강정우 옮김 / 책세상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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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하던 일상에 찾아오는 작은 균열의 순간을 잘 포착한 단편들. 그리고 그 균열에는 늘 어떤 선택을 하느냐의 갈등이 따른다. 주인공들은 잠시 극렬하게 갈등하지만 그 선택은 늘 안정적이다. 그렇기에 더 현실적이다. ‘삶의 어느 한 순간을 스케치하듯 그려낸다‘는 단편 미학을 잘 살린 수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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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골트 이야기
윌리엄 트레버, 정영목 / 한겨레출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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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의 일이다. 그 기억은 유년 시절 내내 또렷하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말 리어카’라는 것이 있었다. 아저씨가 말이 매달린 리어카를 끌고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면서 코흘리개들한테 100원씩 받고 10분 정도 말을 태워주는 그런 거였다. 요즘 이 말 리어카는 좀처럼 볼 수 없고 가끔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옛 시절을 그리는 장면 속에 추억처럼 등장하고는 한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말 리어카를 보면 나는 어김없이 어린 날의 공포가 떠오른다. 나는 이 말 타기를 좋아해서 동네에 말 리어카가 오면 신나게 달려가곤 했다. 그런데 초등학생 정도만 되도 덩치가 커져서 이 말은 작게 느껴진다. 때문에 초등학생이 이 말을 타는 것은 어쩐지 좀 우스워진다. 나 또한 초등학교 입학 전에만 말을 탔던 것 같다. 그 뒤로는 동생들이 말을 탈 때면 조금 부러운 눈으로 그 주위를 맴돌곤 했다.

그런 오후 중 하나였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이 말 리어카를 봤다. 아홉 살 즈음이었다. 그 말 리어카에는 풍선, 정확히 말하자면 비치볼 비슷한 것이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아이들은 말을 타다가 손으로 그 풍선을 툭툭 치고는 한다. 그런데 그날 나는 말을 타지도 않으면서 그 풍선을 툭 쳤다. 리어카 앞을 지나가다가 위에 매달린 풍선들을 하나씩 툭툭툭 친 것이다. 말을 타지 못해서 심술이 났던 것일까 아니면 단지 그저 장난이었을까.

그런데 이윽고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말 리어카 아저씨가 자기 머리통만 한 돌을  들더니 나에게 던지려고 달려오는 게 아닌가. 나는 너무 놀랍고 무서워서 순간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런 가운데도 어쩐지 도망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기를 못하던 나였지만 정말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얼마쯤 위협하다 말겠지 했던 아저씨는 계속 돌을 들고 쫓아왔다. 나도 내리 달렸다. 어떻게 어른이 아이한테 풍선 좀 쳤다고 저 큰 돌을 던지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풍선을 친 게 그렇게 나쁜 일일까? 죽기 살기로 달렸더니 어느 순간 아저씨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워낙 말이 없던 아이였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있어도 집에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다만  그날 뒤로 더 이상 그 리어카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집 근처에 말 리어카가 보이면 멀찍이 돌아오곤 했다. 그 아저씨는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중학생이 될 때까지도 그 리어카를 끌고 다녔다. 그즈음에야 그 아저씨가 그토록 난폭하게 굴었던 이유를 어렴풋이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는 정신지체자였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난 뒤 그가 보통 어른들과는 달리 판단력이 떨어질 수 있음을 이해하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날의 공포는 또 더 끔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정말로 그 돌덩어리를 내게 던졌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윌리엄 트레버의 <루시 골트 이야기>를 읽다 보니 묘하게도 어린 시절 말 리어카 아저씨와의 작은 소동(?)이 떠올랐다. 어린 아이가 장난삼아 툭툭 쳐댔던 풍선. 순간 몹시 화가 난, 판단력이 떨어지는 정신지체자의 난폭한 행동. 이런 작은 우연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를 불러와 그 순간 정말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면 내 인생은 지금쯤 어떤 방향으로 달라졌을까? 그리고 또한 그 아저씨의 인생은? 조금 극단적으로 말해서 나는 어쩌면 이 글을 쓰고 있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 돌덩어리는 무시무시하게 컸다.

삶에는 이렇듯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자기 뜻과는 달리 불행한 결과를 불러오는 순간이 있다. <루시 골트 이야기>의 루시 또한 어린 시절 한 순간의 그릇된 판단, 아니 조금 맹랑한  실수로 말미암아 상상하지도 못한 일을 불러오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정말로 그녀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삶의 방향 자체가 바뀌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루시가 어찌 알았으랴. 아이로서 자기 의사를 확고하게 밝히고 싶었던, 마음대로 뭐든 결정해 버리는 부모님에게 작은 복수 또는 반기를 들고 싶었던 그 생각이 그토록 끔찍한 결과를 불러오게 될 줄이야. 더욱이 자기 삶만 바뀐 게 아니다. 부모님은 물론 그 주변인들의 삶까지 완전히 달라진다.

처음에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무척 궁금해서 책장을 숨 가쁘게 넘긴다. 그러다가 그 일이 일어난 뒤로는 루시의 삶과 그 부모의 삶이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인생이 어쩌면 이럴까 싶어서 먹먹해진다. 삶이 다 이런 것은 아닐까?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지구 곳곳에서 단 한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생이 꼬이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을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도 인간은 몹시 어리석어서 같은 실수는 아닐지언정 비슷한 실수를 또 저지른다. 루시만 하더라도 그렇게 자기 자신을 괴롭히며 유형지에서의 삶과 비슷하게 살아가지 않아도 됐을 텐데, 끝없이 자신에게 형벌을 가한다. 삶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가 길을 잃지 않았다면 그들은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윌리엄 트레버, <루시 골트 이야기>, 187쪽)


삶의 길을 잃어버린, 방향을 상실한 루시 앞에 우연히도 ‘길을 잃어버린’ 한 사람이 등장한다. 그리고 바로 그 사실, 길을 잃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는 루시를 만나게 된다. <루시 골트 이야기>는 인생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의미를 생각해보게끔 한다. 레이프는 길을 잃었기 때문에 루시를 만난다. 루시는 레이프처럼 진짜로 길을 잃은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의미로든 어린 시절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생의 길을 잃고 스스로를 유폐하는 형벌을 내린다. 어디 루시만 그러할까. 그녀의 부모도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삶에 이런 영향을 끼치게 한 ‘그 사람’도 길을 잃어버린 것과 다름없다. 그 어둡고 쓸쓸한 길에도 과연 빛은 있을까?

윌리엄 트레버의 많은 작품들이 그렇듯이 <루시 골트 이야기> 또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쓸쓸한 삶이 조용히 그려진다. 그렇게 잘못된 방향으로 한 번 꺾여버린 인생은 쉽사리 행복한 삶으로, 극적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들의 삶이 완전히 불행하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길을 잃어버렸을지언정, 그리고 그 길에서 또 다시 자기 삶을 더 어두운 곳으로 이끄는 어리석음을 보일지언정, 결국에는 그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가는 법을, 빛을 찾는 법을 인간은 스스로 알아낼 수 있는 존재임을 <루시 골트 이야기>는 조용하지만 묵직하게 전하기 때문이다. 그 감동은 책을 덮고도 오래도록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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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골트 이야기
윌리엄 트레버, 정영목 / 한겨레출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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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순간 그릇된 판단으로 자기 삶을 유형지로 몰아가는 한 여인의 이야기. 인생이 어쩌면 이럴까 싶은데 생각해 보면 많은 이들의 삶이 그렇지 않을까? 길을 잃고 헤매는 인생, 그런데 그 길에도 어느 순간 빛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스스로를 구원하는 방법은 자기 자신 안에 있음을 일깨워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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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사람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3
제임스 조이스 지음, 진선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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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 : Dubliners>은 그의 난해한(?) 문학세계에 처음 도전하는 이들에게 적당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읽기 시작했을 때 좀 당혹스러웠다. 불친절하다는 느낌이 컸다. 15개의 단편이 모두 갑자기 시작해서 느닷없이 끝나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과연 어떤 사람인지, 주인공과 각 인물들의 관계는 무엇인지 도통 감 잡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15편의 단편은 말 그대로 ‘더블린’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이 서로 연관이 있는 걸까? 궁금했는데, 더블린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걸 제외하고는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앞의 세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화자도 모두 다르다. 화자에 따라 이야기의 느낌도 달라진다. 때문에 초반에는 ‘역시 난해한 것인가?!’하는 느낌도 있고 조금 지루하고 따분하기도 했다. ‘재미있자고 보는 책, 왠지 읽어야 할 작가니까, 의무감에 읽을 필요가 있을까? 이런 태도는 내 가치관(?)과도 맞지 않잖아?’하며 꾸역꾸역 책장을 넘겼다. 그러나 미련 없이 확 내려놓지는 못하고….


그러다 몇 편의 단편을 넘기니 서서히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몇몇 단편은 꽤 마음에 들었고, 책을 덮을 때쯤엔 ‘와, 잘 썼다’하는 탄성이 나왔다. ‘더블린’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 종교적으로는 부패했고, 경제는 궁핍하고, 가정은 화목하지 않다. 꿈은 좌절되기 쉽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지만 떠나지 못하고 현실에 매여 있거나 탈출할 기회가 주어져도 용기가 없어 무기력하게 주저앉는다. 종교 못지않게 정치도 부패했고, 대다수 사람들은 알코올에 취해있다. <더블린 사람들> 15편의 삶은 모두 그렇다. 무기력감이 팽배하다. 언젠가 보았던 로버트 알트만의 영화 <숏컷>이 떠오르기도 한다.

<더블린 사람들>처럼 한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삶을 그린 작품들은 꽤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이 독특한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조금은(?) 불친절한 구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이렇고 저렇고 어떤 사연이 있는데, 그 사연 때문에 이러저러하다고 ‘작가’가 개입하여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는 철저히 뒤로 숨어 있다. 카메라가 이 집을 비추다가 갑자기 다른 집을 비추듯이 그저 한 단면을 보여줄 뿐이다. 카메라가 비춘 그 시점부터 카메라가 또 다른 집을 비추기 전까지의 상황만으로 독자는 그 앞뒤전후를 파악해야 한다. 때문에 전통적인 서사구조에 익숙한 독자들은 처음에는 당혹감을 느끼지만 조금 익숙해지면 그 나름의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마치 퍼즐을 푸는 기분이랄까.

단편을 읽어감으로써 당시의 아일랜드와 더블린의 상황에 대해 점점 더 알아가게 되기 때문에 읽는 게 더 수월해지기도 한다. 작가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점차적으로 그 무렵 시대 상황이나 종교, 정치의 부패, 사회의 타락 등을 유추해갈 수 있도록 짜놓은 구조와 사실적이면서도 담백한 묘사가 돋보인다. 게다가 독자의 상상력을 한없이 자극한다. “아이고 망측해라, 저 추잡한 짓을 하는 노인 좀 봐”라는 구절은 나오지만 ‘추잡한 짓’이 끝내 뭐였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텍스트는 한 없이 열려있고, 작가의 존재는 보이지도 않고, 독자는 읽고 생각하기 나름이다.

이런 매력 때문일까,<더블린 사람들>은 왠지 한 번은 더, 다시 읽고 싶어진다. 이 책은 도서관에서 문학동네 번역본으로 빌려 읽었는데, 각주가 불필요할 정도로 많아서 흐름이 많이 끊겼다. 다시 읽어볼 때는 다른 버전으로 읽어봐야지. 제임스 조이스 한 단계를 넘었으니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율리시스’까지는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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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1-08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이스의 소설은 재미없어요. 그런데 얼마나 재미없는지 궁금해서 계속 읽게 돼요.. 《율리시스》가 그래요.. ㅎㅎㅎ

잠자냥 2017-11-08 17:15   좋아요 0 | URL
ㅎㅎ 얼마나 재미없는지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이런 심리일까요. ㅎㅎㅎ

Falstaff 2017-11-08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알라딘 서재에 서재 동무님 글을 볼 수 있는 기능이 있구먼요. 완전 형광등입니다. 한땐 얼리 어답터를 자부했는데 시간이란 놈이 거 참 힘이 세요.
전 이 책을 예전에 영문과 아가씨들이 가슴에 많이 끼고 다녀서 궁금해 읽었고, 이후에 돈 벌어서는 창작과비평사가 전두환 정권 시절에 문 닫고 창작사던가로 이름 바꿨을 때 한 권 사 보고, 이후에 언젠가 한 번 더 사보고, 마지막으로 요즘에 펭귄으로 다시 읽었군요. 왜 그랬는지 ㅎㅎㅎ 재밌어요. 인생이죠 뭐.
잠자냥님의 필력도 대단한데, 으쌰으쌰, 좀만 더 힘을 내보셔요!!! 응원하겠습니다.

잠자냥 2017-11-09 09:24   좋아요 0 | URL
하하, 아직 그 기능을 모르셨었군요! 전 그 기능으로 폴스타프 님 글 올라오면 바로 읽고는 한건데. ㅎㅎㅎㅎ 네 이 책은 문학동네 버전으로 빌려 읽고 펭귄버전으로는 사두었습니다. ㅎㅎ 조이스의 다른 작품도 곧 읽어봐야지요- ㅎㅎ

케이 2017-11-09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좋아서 이것 저것 검색해 보다가, 제임스 조이스가 무기력한 조국 아일랜드 더블린 사람들을 비판하기 위해 썼다는 견해(?)를 읽었는데, 저는 전혀 그렇게 느끼진 않았어요. 그들을 비판하고 그들에게 각성할 것을 촉구하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는데... 사람마다 느끼는 바는 참 다른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책 읽을 당시 우울감을 어떻게든 극복하려고 몸부림치던 때였는데, 뭘해도 안되던 중병이 이 책 읽고 한번에 치유됐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에겐 정말 은혜로운 책이예요. 하지만 제임스 조이스의 다른 책은 엄두가 안나고, 독서내공이 좀 더 쌓이면 도전해보려고요. 10년쯤 뒤?ㅋ

잠자냥 2017-11-09 10:51   좋아요 0 | URL
하하하. 저도 그렇게는 도저히 느껴지지 않는걸요? ㅎㅎ 비판과 각성이라. ㅋㅋㅋㅋ 오히려 무기력한 그 사람들에 대해 연민이 있다면 모를까요. ㅎㅎ 같은 책을 읽어도 느끼는 건 그렇게 다르기도 하군요. ㅎㅎ 전 <율리시스>까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읽을 것 같아요. ㅎㅎ

카알벨루치 2018-08-06 0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때 조이스의 더블리너는 “ paralysis”로 범벅되어있다고 배웠어요 <율리시스>한국판은 저희집에 백과사전보다 더 큰 책이 먼지만 가득...읽고싶네요 햐 언제쯤ㅋㅋㅋ

잠자냥 2018-08-06 09:30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저도 <율리시스>는 죽기 전에 읽기는 읽어봐야 할 텐데.... 언제쯤?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