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옥 전집을 모두 읽고 나서 나홀로 인터뷰-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꾸며 보았다..... (하고나니 웃기다;)
궁금한 게 있다. 국문학을 전공했다며 김승옥 작품을 이제야 읽었나?어떻게 보면 부끄러운 일인데, 김승옥 작품을 예전에 아예 읽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 같은데, 김승옥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때다. 어느 날 수업시간에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다뤘다.
생각나는 건 사실 별로 없다. 수업시간에 소설 전편을 다룬 것도 아니고, 좀 긴 지문으로 만났으니 뭐 기억에 남겠는가. 가르치던
교사가 '무진'이 갖는 의미, '안개'가 의미하는 것 등등을 연신 설명하던 기억이 남는다. 아, 그때 지문에서 여자(인숙)와
남자(나)가 하룻밤을 함께 보내는 장면이 묘사되었는데, 한 아이가 짓궂은 질문을 던져 그 무렵 총각이었던 국어 교사가 얼굴이 벌개졌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은 와-하고 웃었고. 궁금해서 나중에 이 작품을 찾아 읽었는데, 딱히 좋았다거나 그런 기억은 없다.
그럼 전집을 읽기 전까지 김승옥 작품은'무진기행'이 전부였나?
그렇지는 않다. 대학에
가서 '서울의 달빛0장', '서울 1964년 겨울'처럼 꽤 많이 알려진 작품은 찾아 읽었다. 그런데 지금 읽으니 이런 내용이었나 참
새롭더라. 기억력이 형편없어도 이리 없나 싶기도 하고. 김승옥이라는 이름은 대학에서도 참 많이 듣긴 들었다. 문학 한답시고 폼
잡고 다니는 사람들이 과에 꽤 많았는데, 그들의 입에 심심찮게 오르고 내리는 이가 바로 김승옥이었다. 자기들끼리는 김승옥 작품을
이것저것 찾아 읽고 토론도 하고 그러는 모양이던데, 나는 문학을 하겠다는 혹은 한다는 사람들의 그 객기어림이나 치기, 폼 이런
것들이 무척 싫었기 때문에 괜히 그들이 찬양해 마지않는 김승옥이라는 이름을 더 멀리 했던 것 같다. 왜 그런 것 있지 않은가
남들이 다 좋다고 우르르 몰리면 괜히 나는 한 발짝 물러나고 싶은 심리. 아무튼 그런 심리다. 책을 무슨 유행처럼 대하는 게 싫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다 읽은 소감은 어떤지 궁금하다.
놀랍고, 뒤늦게 지금이라도 김승옥의 전 작품을
대할 수 있었다는 게 천만 다행이랄까. 블로그 이웃 중 어느 한 분이 김승옥은 20대(심정적 20대 포함)에 읽어야
제격이라고 했는데, 전집을 읽을수록 그런 작품이 참 많다고 느꼈다. 그래서 아직은 심정적으로 20대라고 느끼는 나이에 읽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무척 재미있다. 문학적으로 뛰어난 이의 작품이라 재미없는 것은 아닐까 뭐 이런 생각을 하는 이도
있겠지만 한 번 잡으면 손에서 놓을 수 없을 정도로 흡인력이 대단하다. 김승옥은 이런 작품을 20대에 썼으니 지금 절필했어도
후회가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 이런 글쓰기 능력은 어디서 나는 걸까, 부럽고 그의 발뒤꿈치도 못 따라가는 글재주(?)(재주라고
하기도 뭐한…)에 절망하기도 했다.
어떤 작품이 가장 좋았는지 궁금하다.
<한밤중의 작은 풍경>에 실린 콩트들까지 합하면
작품이 꽤 많아서 가리기가 좀 힘들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는 것들을 꼽자면 '생명연습', '역사', '확인해본 열다섯 개의
고정관념', '차나 한잔', '서울의 달빛 0장', '서울 1964년 겨울', '환상수첩', '내가 훔친 여름' 등이 좋았다.
'들놀이'를 읽으면서 어찌나 웃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꼽아보니 특별히 좋았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만큼 꼽은 작품이 많아 민망하다.
'무진기행'은 이번에도 그렇게까지 아, 좋구나 싶지는 않았다. 역시 이것도 사람들이 모두 이 작품을 다 좋다, 좋다 하니까 한
발짝 물러나고 싶은 심리일까? '환상수첩'은 햇살 좋은 어느 아침에 읽었는데, 읽고 나서 그만 엉엉 울어버렸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예쁜 햇살에 비해 이렇게나 거친 세상을 살아가기가, 살아남기가 퍽이나 고달프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던 거 같다.
그 작품들이 좋았던 이유는 따로 있는지?
보통
내가 그의 작품 중 좋았다고 생각한 것들을 돌아보면 제도화된 사회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고 있는 청춘의 모습을 다룬 작품이
많다. 주인공들의 자의식도 좀 남다르고, 주인공들은 자기만의 꿈이나 낭만 이런 것을 찾아서 살고 싶은데 사회가 용인을 해주지
않는다. 그런 그들은 거기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일탈하거나 도망치거나 혹은 그런 사회에 대해 나름대로 방구석에 틀어박혀 앉아
웅얼웅얼 혼자 불만을 토로하거나 등등 이런 세심한 감수성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오히려 '재룡이'나 미완작품이지만 '먼지의 방'처럼
작가의 어떤 정치적 의식을 나타낸 작품은 좀 싱겁게 느껴졌다. 상투적인 느낌도 조금 들고, 전쟁의 폐해를 다룬 작품인 '재룡이'는
약간 억지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는 느낌도 들었다.
반면 그냥 그랬다, 뭐 그런 작품도 있는지?
김승옥
전집을 <한밤중의 작은 풍경>부터 읽기 시작해서 <무진기행>, <환상수첩>, <내가 훔친 여름>, <강변부인> 이런 순으로
읽었다. 그래서 그런지 김승옥은 역시 중, 장편보다는 단편, 단편도 어떤 단편보다는 콩트가 더 맛깔스럽게 잘 썼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제 5권인 <강변부인>에는 '보통여자', '강변부인' 두 작품이 실려 있는데, 이 두 작품 모두 '통속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자극적이다. 이 작품들이 당시로서는 저급한 주간지에 속했던 일요신문, 주간여성 같은 매체에 연재되었으니 작품의 성격이
어떨지 짐작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극적인 재미는 있으나 두 작품 모두 결말이 좀 허무하다. 이야기를 어떻게 끌어가야 할지
몰라 성급하게 결론을 맺은 느낌도 들고, 다른 작품들보다 질적으로 많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기는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작품에서도 인물 묘사나 심리 묘사는 탁월하다.
인물 묘사나 심리 묘사가 탁월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김승옥
소설이 주는 큰 재미는 인물 묘사나 심리 묘사가 남다르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이런 묘사를 할까 싶을 정도로 기가 막힌
표현들이 마구 튀어나온다. 그런 표현마다 만약 밑줄을 그은다면 책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다. 그렇다고 묘사를 사실 그대로 눈이
어떻고, 입이 어떻고 이렇게 상투적으로 하는 게 아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두꺼비가
안경을 쓴 꼴을 상상하면 틀림없이 그 녀석의 얼굴이었다(…) 여드름도 가실나이가 됐는데, 그의 턱과 이마와 볼에는, 그러니까 온
얼굴에는 조개껍질로 박박 긁어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굵은 여드름이 번성하고 있었다. 그가 펑퍼짐한 코에 걸고 있는
안경이란 것도 가만히 살펴보니 도수 없는, 다시 말하면 의젓하게 보이기 위한 장식품인 것 같았다('내가 훔친 여름' 중).'
'산악반
놈들의 대부분은 멋을 부리고 싶어서 회원이 된 놈들이다. 파카를 입고 헌 신문지를 쑤셔 넣어서라도 될수록 무겁게 해 보인 륙색을
짊어지고 흰색의 스타킹을 신고 그 위에 미 해군용 작업복 쓰봉을 입고 트랜지스터와 카메라를 어깨에 드리우고 선글라스를 쓰고….
동대문시장의 헌옷점에서 사더라도 푸르뎅뎅한 미 해군용 작업복 쓰봉 한 벌에 육, 칠백 원은 주어야 한다. 놈들, 저렇게 비싼 걸로
차려입고 아무도 보아주는 사람이 없는 깊은 산속에서는 좀 부끄러울걸. 산에서 돌아올 때, 시외버스 속에서나 기차 속에서 시골
사람들의 감탄하는 듯한 시선을 받으면 녀석들은 보람을 느끼겠지('싸게 사들이기' 중).'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지만 이런 식의 묘사가 대부분이다.
시간이 없어서 이야기 끝을 맺어야 하는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김승옥이
하나님을 만나 절필하게 된 이야기를 처음에 듣고는 의아했는데, 그럴 수도 있을 거 같다. 문학이, 글 쓰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구원받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면 김승옥은 하나님을 만나 구원받았다는데, 글 쓸 여력이 남아 있겠는가. 게다가 글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조금은 고통스럽고 우울할 때 더 잘 써지는 면이 있는데, 하나님을 만나 행복하고 편안해진 사람이 계속해서
'무진기행'같은 약간은 허무한 글을 쓴다고 생각하면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절필이 아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이
들어 예전의 작품에 반하는 작품을 써놓으며 독자를 실망시키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물론 꼭 그러리라는 법은 없지만)
다행스럽기도 하고 그렇다. 어쨌든 문학적으로도 그렇고, 일단은 재미가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읽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