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옥 전집을 모두 읽고 나서 나홀로 인터뷰-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꾸며 보았다..... (하고나니 웃기다;)


궁금한 게 있다. 국문학을 전공했다며 김승옥 작품을 이제야 읽었나?

어떻게 보면 부끄러운 일인데, 김승옥 작품을 예전에 아예 읽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 같은데, 김승옥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때다. 어느 날 수업시간에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다뤘다. 생각나는 건 사실 별로 없다. 수업시간에 소설 전편을 다룬 것도 아니고, 좀 긴 지문으로 만났으니 뭐 기억에 남겠는가. 가르치던 교사가 '무진'이 갖는 의미, '안개'가 의미하는 것 등등을 연신 설명하던 기억이 남는다. 아, 그때 지문에서 여자(인숙)와 남자(나)가 하룻밤을 함께 보내는 장면이 묘사되었는데, 한 아이가 짓궂은 질문을 던져 그 무렵 총각이었던 국어 교사가 얼굴이 벌개졌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은 와-하고 웃었고. 궁금해서 나중에 이 작품을 찾아 읽었는데, 딱히 좋았다거나 그런 기억은 없다.


그럼 전집을 읽기 전까지 김승옥 작품은'무진기행'이 전부였나?
그렇지는 않다. 대학에 가서 '서울의 달빛0장', '서울 1964년 겨울'처럼 꽤 많이 알려진 작품은 찾아 읽었다. 그런데 지금 읽으니 이런 내용이었나 참 새롭더라. 기억력이 형편없어도 이리 없나 싶기도 하고. 김승옥이라는 이름은 대학에서도 참 많이 듣긴 들었다. 문학 한답시고 폼 잡고 다니는 사람들이 과에 꽤 많았는데, 그들의 입에 심심찮게 오르고 내리는 이가 바로 김승옥이었다. 자기들끼리는 김승옥 작품을 이것저것 찾아 읽고 토론도 하고 그러는 모양이던데, 나는 문학을 하겠다는 혹은 한다는 사람들의 그 객기어림이나 치기, 폼 이런 것들이 무척 싫었기 때문에 괜히 그들이 찬양해 마지않는 김승옥이라는 이름을 더 멀리 했던 것 같다. 왜 그런 것 있지 않은가 남들이 다 좋다고 우르르 몰리면 괜히 나는 한 발짝 물러나고 싶은 심리. 아무튼 그런 심리다. 책을 무슨 유행처럼 대하는 게 싫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다 읽은 소감은 어떤지 궁금하다.
놀랍고, 뒤늦게 지금이라도 김승옥의 전 작품을 대할 수 있었다는 게 천만 다행이랄까. 블로그 이웃 중 어느 한 분이 김승옥은 20대(심정적 20대 포함)에 읽어야 제격이라고 했는데, 전집을 읽을수록 그런 작품이 참 많다고 느꼈다. 그래서 아직은 심정적으로 20대라고 느끼는 나이에 읽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무척 재미있다. 문학적으로 뛰어난 이의 작품이라 재미없는 것은 아닐까 뭐 이런 생각을 하는 이도 있겠지만 한 번 잡으면 손에서 놓을 수 없을 정도로 흡인력이 대단하다. 김승옥은 이런 작품을 20대에 썼으니 지금 절필했어도 후회가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 이런 글쓰기 능력은 어디서 나는 걸까, 부럽고 그의 발뒤꿈치도 못 따라가는 글재주(?)(재주라고 하기도 뭐한…)에 절망하기도 했다.


어떤 작품이 가장 좋았는지 궁금하다.
<한밤중의 작은 풍경>에 실린 콩트들까지 합하면 작품이 꽤 많아서 가리기가 좀 힘들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는 것들을 꼽자면 '생명연습', '역사', '확인해본 열다섯 개의 고정관념', '차나 한잔', '서울의 달빛 0장', '서울 1964년 겨울', '환상수첩', '내가 훔친 여름' 등이 좋았다. '들놀이'를 읽으면서 어찌나 웃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꼽아보니 특별히 좋았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만큼 꼽은 작품이 많아 민망하다. '무진기행'은 이번에도 그렇게까지 아, 좋구나 싶지는 않았다. 역시 이것도 사람들이 모두 이 작품을 다 좋다, 좋다 하니까 한 발짝 물러나고 싶은 심리일까? '환상수첩'은 햇살 좋은 어느 아침에 읽었는데, 읽고 나서 그만 엉엉 울어버렸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예쁜 햇살에 비해 이렇게나 거친 세상을 살아가기가, 살아남기가 퍽이나 고달프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던 거 같다.


그 작품들이 좋았던 이유는 따로 있는지?
보통 내가 그의 작품 중 좋았다고 생각한 것들을 돌아보면 제도화된 사회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고 있는 청춘의 모습을 다룬 작품이 많다. 주인공들의 자의식도 좀 남다르고, 주인공들은 자기만의 꿈이나 낭만 이런 것을 찾아서 살고 싶은데 사회가 용인을 해주지 않는다. 그런 그들은 거기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일탈하거나 도망치거나 혹은 그런 사회에 대해 나름대로 방구석에 틀어박혀 앉아 웅얼웅얼 혼자 불만을 토로하거나 등등 이런 세심한 감수성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오히려 '재룡이'나 미완작품이지만 '먼지의 방'처럼 작가의 어떤 정치적 의식을 나타낸 작품은 좀 싱겁게 느껴졌다. 상투적인 느낌도 조금 들고, 전쟁의 폐해를 다룬 작품인 '재룡이'는 약간 억지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는 느낌도 들었다.


반면 그냥 그랬다, 뭐 그런 작품도 있는지?
김승옥 전집을 <한밤중의 작은 풍경>부터 읽기 시작해서 <무진기행>, <환상수첩>, <내가 훔친 여름>, <강변부인> 이런 순으로 읽었다. 그래서 그런지 김승옥은 역시 중, 장편보다는 단편, 단편도 어떤 단편보다는 콩트가 더 맛깔스럽게 잘 썼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제 5권인 <강변부인>에는 '보통여자', '강변부인' 두 작품이 실려 있는데, 이 두 작품 모두 '통속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자극적이다. 이 작품들이 당시로서는 저급한 주간지에 속했던 일요신문, 주간여성 같은 매체에 연재되었으니 작품의 성격이 어떨지 짐작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극적인 재미는 있으나 두 작품 모두 결말이 좀 허무하다. 이야기를 어떻게 끌어가야 할지 몰라 성급하게 결론을 맺은 느낌도 들고, 다른 작품들보다 질적으로 많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기는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작품에서도 인물 묘사나 심리 묘사는 탁월하다.


인물 묘사나 심리 묘사가 탁월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김승옥 소설이 주는 큰 재미는 인물 묘사나 심리 묘사가 남다르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이런 묘사를 할까 싶을 정도로 기가 막힌 표현들이 마구 튀어나온다. 그런 표현마다 만약 밑줄을 그은다면 책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다. 그렇다고 묘사를 사실 그대로 눈이 어떻고, 입이 어떻고 이렇게 상투적으로 하는 게 아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두꺼비가 안경을 쓴 꼴을 상상하면 틀림없이 그 녀석의 얼굴이었다(…) 여드름도 가실나이가 됐는데, 그의 턱과 이마와 볼에는, 그러니까 온 얼굴에는 조개껍질로 박박 긁어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굵은 여드름이 번성하고 있었다. 그가 펑퍼짐한 코에 걸고 있는 안경이란 것도 가만히 살펴보니 도수 없는, 다시 말하면 의젓하게 보이기 위한 장식품인 것 같았다('내가 훔친 여름' 중).'


 '산악반 놈들의 대부분은 멋을 부리고 싶어서 회원이 된 놈들이다. 파카를 입고 헌 신문지를 쑤셔 넣어서라도 될수록 무겁게 해 보인 륙색을 짊어지고 흰색의 스타킹을 신고 그 위에 미 해군용 작업복 쓰봉을 입고 트랜지스터와 카메라를 어깨에 드리우고 선글라스를 쓰고…. 동대문시장의 헌옷점에서 사더라도 푸르뎅뎅한 미 해군용 작업복 쓰봉 한 벌에 육, 칠백 원은 주어야 한다. 놈들, 저렇게 비싼 걸로 차려입고 아무도 보아주는 사람이 없는 깊은 산속에서는 좀 부끄러울걸. 산에서 돌아올 때, 시외버스 속에서나 기차 속에서 시골 사람들의 감탄하는 듯한 시선을 받으면 녀석들은 보람을 느끼겠지('싸게 사들이기' 중).'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지만 이런 식의 묘사가 대부분이다.


시간이 없어서 이야기 끝을 맺어야 하는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김승옥이 하나님을 만나 절필하게 된 이야기를 처음에 듣고는 의아했는데, 그럴 수도 있을 거 같다. 문학이, 글 쓰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구원받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면 김승옥은 하나님을 만나 구원받았다는데, 글 쓸 여력이 남아 있겠는가. 게다가 글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조금은 고통스럽고 우울할 때 더 잘 써지는 면이 있는데, 하나님을 만나 행복하고 편안해진 사람이 계속해서 '무진기행'같은 약간은 허무한 글을 쓴다고 생각하면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절필이 아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이 들어 예전의 작품에 반하는 작품을 써놓으며 독자를 실망시키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물론 꼭 그러리라는 법은 없지만) 다행스럽기도 하고 그렇다. 어쨌든 문학적으로도 그렇고, 일단은 재미가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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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1 1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17-01-11 13:24   좋아요 0 | URL
ㅎㅎ. 감사합니다 ^^
 
파도 소리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2
미시마 유키오 지음, 이진명 옮김 / 책세상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조금 다른 소리이지만 언제부터인지 여러 출판사에서 갖가지 버전으로 세계문학을 소개하고 있다. 민음사,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펭귄클래식, 문예출판사, 열린책들, 을유문화사 등등 그중 책세상문고의 세계 문학은 가격도 저렴하고 가볍게 들고 다니기에 좋다. 게다가 다른 출판사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작품이 곧잘 눈에 띄는데 그런 작품 중 괜찮은 작품도 많다. 미시마 유키오의 <파도소리>도 그랬다.

미시마 유키오하면 떠오른 단어라고는 ‘할복자살’ ‘극우주의자’ ‘유미주의’ 그리고 ‘안티 다자이 오사무’ 이런 것들이다. <파도소리>를 읽다 보니 이 사람은 뭐랄까, 순수한 것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듯하다. 그 순수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낭만적인 순수’는 아닌 듯하다. 육체든 정신이든 어떤 다른 것에 감염되지 않은 상태, 그런 상태의 순수라고나 할까? 그러다 보니 ‘극우’로 치닫고 결국 ‘할복자살’이라는 상당히 극단적인 방법으로 죽음을 맞이한 건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든다.

<파도소리>는 미시마 유키오가 추구하는 ‘순수’한 세계가 젊은 남녀의 육체를 통해 표현된다. 이 작품은 특별하게 ‘야하다’고 할 만한 노골적인 성애 장면이 없는데도 읽는 내내 은근히 에로틱한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어떻게 보면 황순원의 <소나기>를 에로틱하게 각색한다면 이런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 남녀 주인공이 비를 맞고 낡은 집에서 불을 피우며 서로 옷을 말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 분위기가 얼마나 에로틱한지 괜히 침이 꼴깍- 넘어간다. 단지 옷만 말리는데도!

황순원의 <소나기>에 비유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이 작품은 섬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하는 주인공 신지와 그가 사랑에 빠지는 소녀 ‘하쓰메’와의 러브스토리가 기본 골격이다. 물론 모든 러브스토리에 등장하는 방해세력이 이들에게도 존재한다. 미시마 유키오는 청년 신지를 통해 그가 생각하는 ‘순수함’ ‘아름다움’을 마음껏 표현한다. 작품 내내 신지의 육체는 상당히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는데(‘하쓰메’ 역시 마찬가지), 그 묘사는 거의 그리스 조각상을 연상케 한다. 건전한 정신에 건전한 마인드, 건전한 육체랄까? 어떻게 보면 ‘신지’는 미시마 유키오가 동경하는 이상적인 남성상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젊고 아름다운 육체를 지닌 신지와 하쓰메의 사랑은 옷을 벗고 함께 있으면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에서 볼 수 있듯, 무척 플라토닉하다. 신지는 건강한 육체 못지않게 정신도 대단히 순수한 인물로 그려지는데 이런 면에서 미시마 유키오의 극단성이랄까, 오염되지 않은 것에 대한 열망을 엿볼 수 있다. <파도소리>에서 미시마 유키오는 ‘욕망’이란 더럽고 추잡한 것으로 간주한다. 때문에 이 작품에서 그런 욕망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인물은 매우 추하게 그려진다. 

도둑도 없고, 범죄도 없는 파라다이스 같은 섬- 그 섬에서 순수한 사랑을 나누고 있는 젊은 남녀-그런 그들을 남몰래 훔쳐보고 있는 또 다른 남녀의 끈적끈적한 시선과 불순한 욕망-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파도소리>는 낭만적이면서도 꽤 에로틱한 분위기를 뿜는 묘한 느낌의 작품이었다. 그래서 여운이 오래 남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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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10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한 소설로 알려진 문학 작품은 에로틱한 분위기에 중점을 맞춘 거라서 포르노를 기대했던 독자들은 실망할 겁니다. ^^;;

잠자냥 2017-01-10 15:19   좋아요 0 | URL
ㅎㅎ 독자들의 실망을 줄이기 위해 에로틱이란 단어를 빼야하겠군요. ㅋㅋㅋㅋ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가 가장 최근에 나온 마르케스 <썩은 잎>을 포함해 이미 300번을 돌파한지 오래다. 평소 우리나라에서는 접할 수 없던 작품이 나오면 특히 반갑다. 전집을 다 갖고 싶다거나 그런 마음은 없고 그때그때 읽고 싶은 작품을 하나씩 사서 모으고 싶다. 빌려 읽은 것도 종종 있고. 기록해두면 그나마 그 작품이 어떤 작품이었는지 기억에 남는데, 책을 읽고 기록조차 하지 않으면 몇 해, 아니 몇 달이 지나고 나면 이게 무슨 작품이었는지 가물가물해지기까지 한다. 심지어 아주 예전에 읽었던 작품을 다른 세계문학 시리즈에서 다시 사서 보거나; 빌려 읽기까지 한다. 아, 나의 기억력이란! 아무튼 그래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는 웬만하면 읽은 것들 중심으로 짧게라도 기록해두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예전에 읽었는데 길게 리뷰 남기지 않았던 민음사 시리즈를 짧게라도 정리했다.





체호프 <체호프 단편선>

나는 체호프 단편선을 여러 출판사 버전으로 갖고 있다. 열린책들에서 나온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과 겹치는 단편이 적어서 좋았다. ‘공포’, ‘베짱이’ ‘베로치카’ ‘내기’ ‘티푸스’ ‘거울’ 등등 수록된 단편 하나하나가 좋았다. 역시 체호프- 많은 작가들이 체호프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기를 서슴지 않는 이유, 그처럼 쓰고 싶어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하지만 그처럼 쓰기는 무척 어려울 것이다. 짧은 단편,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들, 그리고 사실 읽다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은 이야기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 속에서 인생을 통찰하는 체호프의 시선은 빛난다. 내가 작가라도 그처럼 쓰고 싶을 것이다. 단편 '공포'에 나왔던 '이해할 수 없으니까 무서운 거지'라는 말- 이렇게 짧은 문장 안에 삶의 모든 진실을 담을 수가 있다니- 그저 존경스러울 뿐이다.






솔 벨로우 <오늘을 잡아라>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 조금 떠올랐던 작품. 주인공은 중년 남자인데 딱히 별로 하는 일이 없다. 실업자 신세. 이혼했지, 모아놓은 돈도 없고 앞으로 뭘 해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부유한 아버지를 두었는데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그저 한심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서 금전적으로 도와 줄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 남자는 할 일 없이 뉴욕의 한 호텔에서 장기투숙하며 그저 거리를 왔다 갔다 한다. 딱 그 하루를 소설로 만들었다. 고독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쓸쓸해 보이기도 하고 그런 사람의 하루 일상을 훔쳐보는 느낌이다. 딱히 커다란 감흥은 없었다. 어쩌면 살아간다는 게 별다른 큰 사건도 없고 하루하루 불안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지금 오늘, 이 순간을 마음껏 즐기라는 소리려니 싶었다.







세스 노터봄 <필립과 다른 사람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작가, 기록 문학의 거장이라는 이야기에 솔깃해서 읽어보았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필립’이라는 주인공이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과 여행지에 있던 일들을 위주로 한 이야기라 더 끌렸고. 뭐 일종의 성장소설이려니 하고. 그렇기는 한데. 기대에는 못 미쳤다. 세스 노터봄은 이 작품으로 22살의 나이에 일약 문단의 스타로 떠올랐다고 하는데, 읽을수록 솔직히 좀 뻔한 스토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시절의 방랑, 우연히 만난 소녀에게 마음을 빼앗겨 그 아이를 찾아 헤매는 설정하며, 뭐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과 주고받는 이야기, 그러고 나서 필립은 한층 성장한다 이런 거 좀 뻔하다.







장 폴 사르트르 <말>

사르트르의 어린 시절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롭던 작품. 사르트르의 유년 시절을 기록한 자서전이라고 하면 맞을 듯. 1부는 ‘읽기’, 2부는 ‘쓰기’로 구성되어 있다. 거의 모든 유년 시절 사르트르는 읽기와 쓰기 이 두 가지 행위의 반복이었던 듯하다. 상상력도 무척 뛰어났던 것 같고 고집불통 외골수의 모습도 어렸을 때부터 상당했던 듯. 키도 작고 덩치도 작고 약간 사시였던 터라 아이들과 어울리는 게 불편했던 사르트르는 어릴 때부터 혼자 지내는 법에 익숙해진 것 같다. 외할아버지의 서재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사르트트르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 내성적인 어린이, 사람과 어울리는 게 힘든 아이들에게 있어 서재, 혹은 책은 정말 가장 좋은 벗이 되는 듯하다.





아베 코보 <모래의 여자>

내가 이걸 왜 읽고 있지? 하면서도 계속 읽게 되었던 작품. 읽고 나서는 또 한동안 엄청 허무했다. 그런데 그 허무함이 오래갔다. 이 소설 속 인물처럼 산다면 사는 게 너무 괴로울 거 같아! 몸부림쳤는데, 사실 삶이란 알고 보면 다들 <모래의 여자> 등장인물들처럼 사는 거 아닌가 싶어졌다. 계속 바위를 들고 산으로 올라가야 하는 시지프스도 떠올랐고, 단지 ‘모래’라는 눈에 뚜렷한 방해물(?)이 없을 뿐이지 벗어날 수도 없고, 그 짐을 계속 끌어안고 가야하는 게 인생이구나 싶어진다. 예전에 읽었을 때는 ‘읽고 나니 우리 사는 삶 자체가 파내도 끝없는 모래 파내기와 같은 게 아닐까,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그런 게 아닐까 싶다.’라고 짧게 메모해 두었더라.





라우카 에스키벨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우연히 읽었는데(아마도 동명의 영화 때문에 관심이 생겨서 읽었던 듯) 무척 좋았던 작품이다. 재미도 있고  메시지도 그렇고 꽤 괜찮았다. 예전의 짧은 메모는 이렇게 남겼더라. '우리에겐 동명의 영화로 더욱 유명한 작품- 흔히 식욕과 성욕은 비례해서 이야기되곤 한다. 이 작품은 바로 '요리'라는 매개체를 통해 한 여인의 성장, 사랑, 그리고 자아의 발견을 그려나가고 있다. 멕시코 음식과 함께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낙천적이고 생명력 강한 사랑과 삶의 현장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모든 물질이 왜 불에 닿으면 변하는지, 평범한 반죽이 왜 토르티야가 되는지, 불같은 사랑을 겪어보지 못한 가슴은 왜 아무런 쓸모도 없는 반죽 덩어리에 불과한 것인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위와 같은 구절은 요리와 사랑, 삶을 적절히 비유한 예라고나 할까.' 음... 지금 읽어보니 참 상투적이다.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를 알게 해줬던 작품이다. 그것만으로도 <인간실격>의 가치는 충분하다! 읽은 지 거의 10년도 넘었는데, 예전에 읽었을 때는 정말 여기저기서 눈물 펑펑. 주인공 ‘요조’에 심각하게 감정이입. 동지를 만난 기분이었다. 어디선가 밑줄 그을 부분이 많은 소설은 소설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작품은 결코 그렇지 않다. 나는 읽는 구절마다 공감이 되어 밑줄을 팍팍 긋고 싶었는데, 소설 그 자체로도 대단하다. 인간으로서는 실격당한 ‘요조’- 요조 같은 인간이 이 세상을 산다는 건 무리일 테다. 그처럼 나약하고 섬세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살기 힘든 세상, 그런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게 무척 버겁게 느껴졌다. 지금도 여전히 이 책을 읽으면 그런 기분에 휩싸일까?







나쓰메 소세키 <그 후>

아주 예전, 나쓰메 소세키 작품 중에 처음으로 읽어봤던 책이다. 이 책을 읽었을 때만 하더라도 나쓰메 소세키 작품에 어떤 특별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조금은 지루하고 참 심심하다 그런 느낌? 지금 돌아보니 나쓰메 소세키는 거의 이런 구도- 남자 둘에 여자 하나, 삼각관계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욕망, 그에 따른 윤리, 도덕, 양심에 크게 집착한 듯하다. 이 작품에서 부러웠던 것 다이스케의 생활이다. 유유자적 일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 몰두하면서 살 수 있는 삶. 지금 봐도 부럽다. 자신이 직업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은 충실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고귀한 부류의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다이스케- 고귀한 부류의 인간이라는 말에는 피식 웃음이 났지만 생각해 보면, 일을 하기 위해서 만난 사람들의 모임인 ‘사회’가 사람을 참 퍽퍽하게 만들기는 한다. 현암사에서 나온 나쓰메 소세키 전집으로 <그 후>를 또 사두었는데, 올해 한 번 다시 읽어봐야겠다.





르 클레지오 <조서>

‘정신병원 또는 군대에서 탈출했을지도 모르는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책. 읽는 내내 서걱서걱 모래알이 씹히는 기분이 든다. 뜨거운 사막 위를 걷고 또 걷는 기분도 들고. 스토리가 재미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쉽게 읽히지도 않는다. 다만 그 공허하고, 메마른 분위기가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다. 주인공 아담 폴로는 사회에 적응에 실패한 사람으로 빈집에 홀로 떨어져 살고 있다. 만나는 사람도 거의 없고, 하루하루 홀로 고독함 속에 파묻혀 산다. 읽다 보면 뭔가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까 했는데 별로 그런 것도 끝끝내 없고. 허무하게 책장을 덮었다. 르 클레지오 작품을 이것저것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집어든 책이었는데, 첫인상이 이런지라 그 다음부터는 이 사람 작품에 손이 잘 안가더라. 그래도 나중에 읽은 문학동네 세계문학 시리즈의 <황금 물고기>는 매우 좋았다.







도리스 레싱 <다섯째 아이>

이 작품은 공포물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읽는 내내 무서웠다. 사랑하는 남녀가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알콩달콩 잘 살아가는데 어느 날 그 행복이 깨져버린다. 그들의 다섯 번째 아이 때문이다. ‘벤’이라고 불리는 이 아이는 뱃속에 있을 때부터 그 ‘비정상적인’ 기운이 심상치 않았던 아이. 태어나서는 역시나 ‘비정상적인’ 행동과 모습으로 가정의 행복을 서서히 파괴해 나가기 시작한다. 벤은 부모에게도 형제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 벤의 엄마인 해리엇은 그래도 노력을 하지만 그것은 진실로 가슴에서 우러난 사랑이라기보다는 사회에서 강요한 ‘모성애’ 역할의 한 방편으로 보일 뿐이다. 다르기 때문에 이해받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불쾌하고 무서운 존재가 되어버린 ‘벤’- 다섯째 아이는 사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이른바 ‘정상’의 범주를 벗어난 그 모든 것들을 의미하지 않을까.
 






마누엘 푸익 <거미여인의 키스>

꽤 오래 전에 읽었는데 요즘 다시 읽어볼까 싶다. 동명의 영화로도 유명하다. 영화는 좀 지루했던 기억이 난다. 동성애자인 몰리나는 반도덕 범죄자로 기소되어 복역을 하고 있고, 그곳에서 감방 동료로 발렌틴을 만난다. 발렌틴은 혁명을 꿈꾸는, 진보적 정치범이다. ‘진보적’이라는 발렌틴이 처음 몰리나를 만나 그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상당히 반(反)진보적이다.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혐오하고, 그의 여성적 취향을 비웃기도 한다. 이들은 계속되는 대화 속에서 서로 이해하게 되고, 결국 이성애자였던 발렌틴이 게이인 몰리나를 사랑하게 된다. 물론 몰리나 역시 그렇고. 몰리나가 발렌틴에게 해주던 비극적인 영화 이야기처럼 이 둘의 관계 또한 어쩐지 그러리라 예상할 수 있게 된다. 책을 덮고 나서 한동안 좀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



 



사무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이 작품 정말 좋아한다. 흔히 말하는 ‘고전’ 중에서도 진짜 고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무엘 베케트의 이 작품이 딱 그런 작품이 아닐까 싶다. 연극으로 보면 글쎄, 매우 지루한! 연극일 거 같아 딱히 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지만. 문학작품 <고도를 기다리며>는 정말 대단하다. 특별한 사건도 없고, 심오한 철학적 내용을 담은 대사가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읽고 나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이 두 사람은 뜬금없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래서 결국 고도를 만나게 될 것인가? 결국 고도는 나타나지 않는다. 고도는 뭘까? 사무엘 베케트 그 자신도 모른다고 하는 고도- ‘고도’는 사람들 마음 속 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이 작품을 읽을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존재는 아닐지.




알랭 로브그리예 <질투>

어마어마하게 읽기 괴로웠던 작품. 문학적 실험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하는데, 아이구! 난 실험적인 작품 읽는 건 정말 안 맞는 듯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 보니 아내의 부정을 의심하는 남자가 자기 멋대로 생각하고, 아내를 관찰하고 기록해 나가는 데에는 이런 문학적 방법도 꽤 효과적이지 않나 싶다. 아내가 이웃 남자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고 의심하는 한 남자의 기록이 이 작품의 전부이다. 그런데 정말 이 남자의 기록을 보고 있노라면 병적인 집착이, 사람을 미치게 하는 건 한 순간이지 않나 싶어진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줄리언 반스의 <나를 만나기 전 그녀는>과 비교해서 읽어봐도 좋을 듯싶다. 알랭 로브그리예의 작품을 또 읽어볼까? 싶기도 한데…. 글쎄….






아이리스 머독 <그물을 헤치고>

웬만하면 책을 끝까지 읽는데, 이 작품은 중간에 포기했다. 딱 절반 정도 읽고 그냥 접자-하는 심정으로 덮음. 다시 읽게 되는 날이 있을지 모르겠다. 번역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작가 지망생 제이크는 잘생긴 외모를 앞세워 이 여자 저 여자 집을 전전하며 얹혀산다. 이 룸펜이 만나는 사람들과 그들의 일상을 그린 작품으로 책 소개만 보면 재미있을 거 같은데 이상하게도 몰입이 안 된다. 특히 이 룸펜 제이크 하는 짓이 영 마뜩치 않다. 책 후반에는 이 룸펜이 한 인간으로 성장한다고 하는데, 내가 읽는 부분에서까지는 영 성장의 기미가 안 보여서 그냥 접어버렸다. 아이리스 머독이 철학자라 그런지 문학을 통해 어떤 철학적 생각을 전하려고 하는 게 좀 별로였던 듯.



일단 여기까지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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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5 0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07 0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09 0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20-12-16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지금 아이리스 머독 <그물을 헤치고> 시작했는데... 못 견디겠어요. 잠자냥님 포기해도 될까요? 반가워서 글 남기고 갑니다...

잠자냥 2020-12-16 10:22   좋아요 0 | URL
전 과감히 포기했어요! 후회는 없습니다! ㅎㅎㅎ
 
여름의 끝
윌리엄 트레버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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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그저 흔한 사랑이야기려니 했다. 천천히 문장을 음미하고 문장이 만들어낸 분위기에 젖어들다보니 어느 순간 먹먹해져왔다. 그러다 ‘아, 아름답다!‘하게 된다. 우리 모두에겐 여름이 있었고 그 여름엔 끝이 있기 마련이다. 여름의 뜨거움과 여름이 사라진 뒤의 서늘함을 섬세하게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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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얼마나 천국 같은가
존 치버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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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불가해성과 우연성. 그리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찬란한 아름다움. 인생은 종잡을 수도, 알 수도 없는 것. 그러나 한 번쯤 살아볼만한 것이라고 그는 속삭인다. 마지막 문장은 존 치버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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