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지막 장편소설 1 - 존 파울즈 일기 1949-1965
존 파울즈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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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파울즈의 작품은 <만티사>, <프랑스 중위의 여자>를 읽은 게 전부다. 그마저도 딱히 크게 기억에 남지 않았다. <만티사>는 지루했고 <프랑스 중위의 여자>는 지나치게 현학적인 부분이 엿보였다. 때문에 ‘존 파울즈’라는 이름이 내게 남다르게 기억될 소지는 없어 보였다. 그래도 한 두 작품쯤은 더 읽어 볼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만약 그렇다면 그의 첫 작품이자 출세작인 <컬렉터> 정도가 아닐까 싶었다. 내가 이 작가의 ‘일기’ 그것도 상, 하 각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분량의 일기를 읽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나의 마지막 장편소설>은 바로 존 파울즈의 ‘일기’다.

존 파울즈는 일기를 정말 꾸준하게 많이 썼다. <나의 마지막 장편 소설>은 1949년에서 1990년까지 42년간의 일기 중에서 옥스퍼드 재학 중인 1949년부터 <컬렉터>를 발표해 작가적 명성을 드러내기 시작한 1965년까지 16년간의 일기를 엮었다. 그의 일기는 자기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주변 사람에 대한 관찰, 여행지에서 느낀 감정, 자연에 대한 관찰, 영화나 문학 등 어떤 작품에 대한 비평 등이 주를 이룬다. 물론 이 모든 이야기는 곧 존 파울즈 그 자신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존 파울즈는 가족과 그리 사이가 좋지 못했고, 끊임없이 여자들을 향해 애정을 갈구했다 여자에 대한 호기심은 많았으나 쉽게 다가가지 못했던 이 수줍은 청년이 몇 번의 짧은 연애 끝에 드디어 ‘임자’를 만났는데 그녀 ‘엘리자베스’는 존 파울즈보다 연상에 이미 결혼한 여자였다. 그럼에도 그는 엘리자베스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못했고, 그녀의 남편과 동료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그의 눈을 피해 엘리자베스와 연인 관계를 지속한다. 엘리자베스와의 연애 이야기를 비롯해 파울즈의 연애관이랄까, 사랑관, 여자에 대한 생각 등을 읽어 나가는 게 흥미로웠다.

엘리자베스와 파울즈는 훗날 결국 결혼을 하고 파울즈가 작가로서 성공을 하는데 엘리자베스는 알게 모르게 큰 역할을 한다(파울즈는 엘리자베스가 죽은 이후로는 새로운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 파울즈는 작가로서 성공하기 전까지 언제나 가난했고, 일을 하고 싶어하지 않았으며(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했는데 그마저도 자신의 시간을 갉아먹는 일이라고 여겼다), 항상 글 쓸 시간과 공간을 찾아 헤맸다. 그러는 한편 자신의 글에 언제나 불만족스러워했다. 그럼에도 글을 계속 쓰려는 노력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일기 가운데 다음과 같은 구절은 왠지 모르게 격하게 공감이 가기도 했다. 내 이야기를 존 파울즈가 대신해서 말하고 있는 기분이랄까.

내게는 메뚜기 콤플렉스가 있다. 예술의 손 안에 들어간 게으르고, 아무것도 안 하고, 좋은 것만 바라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메뚜기. 게다가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잘 아는, 생각할 줄 아는 메뚜기다. (602쪽)


나 또한 파울즈처럼 가난한 주제에 일하기를 싫어하고 돈 버는 일에도 젬병이다. 그러는 한편 그처럼 사랑에 대해서는 정신 못 차리고 빠져들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랑으로 인해 정신적 혼란과 방황, 삶의 극심한 불안정 등등을 겪는다. 존이 엘리자베스를 사랑하게 되면서 괴로워하며 써댄 일기의 구절 중 ‘사랑은 아무런 도덕적 법률도 가지고 있지 않다.(500쪽), ‘사랑이 이처럼 인간을 불한당으로 만들 수 있는지 미처 몰랐다.(502쪽)' 등등의 구절도 무척 와닿았다. 단 하나, 그와 내가 다른 점은 나는 언제나 글을 쓸 시간과 공간을 찾아 헤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 점을 닮아야만 하는 게 아닐까? 파울즈는 글을 쓰지 못한 나날에는 심한 자책과 자학에 빠져들었는데, 나는 그런 자책과 자학만 할 뿐이다. 한심하다.

가난과 혼란, 불투명한 미래, 작가로서의 재능이 엿보이지 않는다고 여겼던 그가 마흔에 이르러 <컬렉터>라는 작품으로 드디어 빛을 발하게 되었을 때는 어쩐지 감동스럽기도 하다. <나의 마지막 장편 소설>에 실려 있는 몇 장의 사진을 보면, 그는 좀 곰을 닮았다. 그의 곰 같은 미련한 글쓰기가 드디어 빛을 본 게 아닐까. 그다지 좋아하거나 아끼는 작가가 아니었음에도 <나의 마지막 장편 소설>은 작가로서 꼭 해야 할 일, (아니 작가 지망생으로서 꼭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깨우쳐준 소중한 책이다.

그 깨우침이란 결국 어떤 상황에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다. 그는 글을 쓰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그 순간에도 이 일기를 썼고, 그 일기가 결국 <마지막 장편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에 선보이지 않았는가. <나의 마지막 장편 소설>속 존 파울즈의 일기를 보면 끊임없이 주변과 주변 인물을 관찰하는 것도 훗날 어떤 작품을 쓰는 데 굉장히 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존 파울즈의 <컬렉터>는 조만간 꼭 읽어봐야겠다.

모든 것이 순전히 상대적이고 그 어떤 아름다움도 영원불멸하지는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것이 내가 자기 성취에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그럴듯한 방법이다. 나는 영원불멸의 명성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름다움의 창조를 통하여 선행(善行)을 할 수 있다는 인간의 모순을 믿는다. 비록 그 아름다움이 일시적으로 존재한다 하더라도(일단 존재했던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시공간 이론을 유념하면서), 살아서 영광을 누리도록 <힘써야겠다>. 너무 영광에 집착하는 것은 부자연스럽지만, 그래도 필요하다. (37쪽)

 
아이들이 <개성화>에 실패하고 부모로부터 <격리>되지 못하여 가정의 <영혼> 속으로 함몰되고, 그리하여 개성을 실현시키지 못하는 가정, 그런 가정이 오히려 행복한 가정이라는 역설이었다. (37쪽)
 
감수성은 인간성의 특질을 진단하는 가장 간편한 수단 중 하나다. 정말로 감수성이 예민한 자는 다른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지 않는다. (46쪽)
 
나는 5월의 청명한 날씨를 싫어한다. 그건 너무 완벽하다. 절대적인 아름다움이다. 행복은 언제나 불완전한 것이다. 정상(頂上) 가까이. 하지만 정상은 아니게 (76쪽)
 
<창작을 하기 위해서는 인생이 비어 있어야 한다.> (85쪽)
 
내 인생은 낭비, 낭비, 낭비 되고 있다. 여기서는 절망에 빠지는 것도 평범하고 용기 없는 일일 뿐이다. 내 생활의 용기 없음. (96쪽)
 
인생은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화려한 그림을 갖춘, 잘 제본된 책은 더더욱 아니다. (126쪽)
 
때때로 사람은 혼자 있지 않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욕보이기도 한다. (139쪽)
 
사랑은 아무런 도덕적 법률도 가지고 있지 않다. (500쪽)
 
사랑이 인간을 이처럼 불한당으로 만들 수 있는지 미처 몰랐다. (502쪽)


사랑은 자기 분석을 크게 도와준다. 그것은 사람을 생각하게 만든다. 사랑은 영혼의 옷 벗기기다. 자기 자신을 설명해야 하고 사랑 받는 사람을 설명해야 한다. (513쪽)

사람들은 자녀가 결혼의 축이라고 말한다. 그런 축이 필요한 결혼이라면 이미 그 자체로 불완전한 결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515쪽)


돈은 모든 악의 뿌리다. 동시에 모든 선의 뿌리다. (534쪽)


글쓰기라는 자아 사랑의 과정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고독과 독신 상태가 필요하다. (579쪽)


사람들이 사랑 없이 함께 살고 있으면, 내 생각에 그들은 항상 죄인인 것이다. (650쪽)


사랑의 분명한 징후는 전반적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이 없어지는 것이다.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재인용 (7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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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0-11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은 애증의 대상입니다. 좋은 것, 나쁜 것 다 가지고 있으니까요. 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처럼 돈이 궁해서 급하게 쓴 글이 훗날 걸작으로 인정받는 사례가 있잖아요. 제가 만약 작가였으면 복권을 긁는 심정으로 글을 썼을 겁니다.

잠자냥 2016-10-12 09:57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게요. 돈 걱정 없이 글을 쓰면 잘 써질까요. 아닐까요. 궁금하긴 합니다.ㅎㅎ

Falstaff 2016-10-31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년 초엔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그의 <마법사>를 정말 재밌게 봤거든요. @@

잠자냥 2016-10-31 17:10   좋아요 0 | URL
아 저는 <마법사>를 내년 초엔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ㅎㅎ
 
이렇게 그녀를 잃었다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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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고 하기엔 진실성 부족, 연애라고 하기엔 관계성 부족. 못되고 이기적인 도미니카 찌질이 남자들의 발정담. 그 안에 미국 이민온 유색인들의 초라하고 희망없는 삶이 그려진다. 주노 디아스 작품은 이 책이 처음인데, 첫 책으로는 부적절한 것 같다. <드라운>까지는 읽어볼까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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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진 열린책들 세계문학 175
이반 세르게예비치 뚜르게녜프 지음, 이항재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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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진을 보면 오블로모프가 떠오른다. 침대에서 누워있기를 가장 사랑했던 오블로모프. 물론 루진이 오블로모프보다 사람들에게 더 많은 호감을 얻기는 한다. 그러나 그 둘 모두 행동할 줄 모르는 몽상가. 사랑조차 놓치고 마는 무기력한 잉여자들이다. 헌데 왠지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애정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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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팔기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3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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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읽으면 슬퍼진다. 우울해진다. 인간이란 결국 이런 존재인가? 삶이란 결국 이런 것인가 싶어 쓸쓸해진다. 나쓰메 소세키가 죽기 직전 쓴 최초이자 최후의 자전적 소설인 <한눈팔기 : 道草>을 읽고 있자면 더욱 그런 고독감과 우울함에 휩싸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집 막내로 태어나 양자로 보내졌던 나쓰메 소세키는 스무 살이 넘어 다시 본가로 돌아오기는 하지만 친부모에게서도 양부모에게서도 사랑보다는 환멸을 먼저 느꼈다. 그리고 그런 환멸과 생에 대한 쓰라린 시선이 <한눈팔기>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친부모에게서 환영받지 못했던 어린 겐조(나쓰메 소세키의 분신)는 양부모의 세속적인 모습을 보며 비틀어진 욕망에 끌려 다니는 인간의 추악한 모습을 먼저 배운다. 성인이 되고 나서 친가에 복적이 되기는 하지만, 어느 날 그에게 양부와 양모가 번갈아 나타난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요구하는 것이 없는 듯 다가오지만, 겐조와 그의 부인은 그들의 저의가 의심스럽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서서히 경제적 궁핍함을 호소하며 '옛정'을 생각하라며 손을 내밀기 시작한다. 돈의 액수도 점점 불어난다.

겐조는 누군가에게 돈을 줄 정도로 경제적으로 풍족한가? 그렇지도 않다. 나쓰메 소세키가 영국 유학 이후 일본으로 돌아와 근근이 가정을 이끌 정도의 수입만을 올릴 때가 배경이기 때문에, 주인공 겐조의 궁핍함도 말할 수 없을 지경이다. 그러나 사방에서 그에게 손을 내민다. 그의 누이도, 그의 형도, 그의 부인과 처가도. 단지 그가 많이 배우고 유학을 다녀온 식자층이고 어딘가에 글을 쓰며 강의를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입이 많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고 '가족'이라는 굴레로 당연한 듯 그에게 손을 내민다.

그렇다고 겐조가 그의 가족을 사랑하는가? 이 작품에서는 도무지 그런 시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의 형과 누이는 물론 매형에 대한 겐조의 시선은 연민을 떠나 경멸감에 가깝다. 부인에 대해서도 말할 것이 없다. 한 번도 따뜻한 말이나, 따뜻한 시선을 건네지 않는다. 그저 불만투성이다. 자기 아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갓난아이에게도 '저렇게 못생겼을 수가'하면서 한탄을 한다. 어릴 때 잠시 키워주었다는 이유만으로 느닷없이 나타나 당당하게 돈을 요구하는 양부모에 대한 시선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부인 또한 겐조를 답답하고 고집불통인, 무능력한 남자의 전형으로 바라볼 뿐이다. 걸핏하면 서로 생각이 옳다고 말싸움을 벌인다. 그러다 부인은 히스테리성 발작을 일으키며 돌아눕기 일쑤다. 도저히 사랑이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부부의 풍경이다. 커다란 싸움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지만 화해불가의 평행선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서로 갉아먹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함께 살아간다.

그냥 외면해 버리면 될 텐데, 겐조는 그렇게 하지도 못한다. 따뜻한 사람이 아닌데도 그들에게 끌려 다닌다.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벗어날 수도 없다. 그것이 바로 겐조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탐욕스럽게 늙어버린 양부 시마다를 바라보며 자신의 인생도 '이 욕심투성이 노인의 인생과 별로 다를 게 없을 거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기도 한다.

'나 자신은 결국 어떻게 되는 걸까.'하며 부르짖기도 한다. 그는 또 늙어가기는 해도 의외로 변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보며 좌절한다. 양부에게 나름대로 큰돈을 쥐여주고 이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는 부인에게 "세상에 매듭지어지는 일은 거의 없어. 한번 일어난 일은 언제까지고 계속되지. 다만 여러 가지 형태로 변하니까 남들도 자신도 알 수 없을 뿐이야."라고 그가 마지막으로 읊는 말은 인생의 모든 것을 압축한 듯하다.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굴레 같은 가족 관계, 무능력하고 불만족스러운 자기 처지,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인간에 대한 경멸감, 그런 인간들이 아옹다옹 살아가는 사회에서 자기도 그렇게 닮아가는 것에 대한 모멸감, 미래와 현실에 대한 불안감 등등 <한눈팔기>는 인생의 쓰디쓴 모든 면이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삶'이라는 길 위에 뿌려진 한 포기 풀이라면 다시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렇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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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지 동서문화사 월드북 39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지음, 신상웅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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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책도 이토록 아름다울 수가! 수많은 길을 굽이굽이 돌아 마지막 장에 이르러 드디어 황금가지의 비밀이 벗겨지는 순간, 탄성과 함께 가슴이 벅차오른다. 인류는 주술->종교->과학으로 발전해왔다. <황금가지>는 그 과정을 온 세계 신화, 전설, 관습에서 찾아내 한 편의 추리소설처럼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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