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버트 키스 체스터턴의 <목요일이었던 남자 The Man Who Was Thursday : A Nightmare>, 나는 이 책이 제목과 표지 등을 보고 매력적이라 느껴져서 읽게 되었는데,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다른 책을 읽다 말고 이 책을 집어 들었는데 결국 끝까지 읽고 말았다.
이 책의 표지 뒷면에는
체스터턴을 에드거 앨런 포나 아서 코난 도일과 함께 가장 재미있는 추리소설의 작가라고 언급하고 있다. 보르헤스는 체스터턴을
일컬어 ‘에드커 앨런 포보다 더 훌륭한 추리 소설 작가’라고 말하기도 했단다. <목요일이었던 남자>를 손에서 놓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이 작품이 추리 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저 단순한 추리 소설일까?
그렇지만은 않다. <목요일이었던 남자>는 정치적이고 철학적이고 종교적이다. 정치적, 철학적, 종교적이라는 언급 때문에
머리가 아플 거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술술 읽힌다. 그런데 그 술술 읽히는 문장들을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상당히 골치가
아파진다. 체스터턴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가 어떤 생각을 지녔던 인물인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다분히 종교적인
사람이었다는 생각은 든다. 사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도 <브라운 신부> 시리즈라고 한다.
추리 소설의
내용을 밝히는 것은 스포일러가 되니 자세히 언급하지는 못하지만 주인공은 우연히 무정부주의자 조직의 음모를 파헤치는 역할을 맡게
되고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각종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주인공이 대항해서 싸우는 조직이 '무정부주의자 조직‘이라는 점에서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갈등하게 된다. 과연 이 책에서 다루는 것처럼 무정부의자가 악(惡)인가, 끊임없이 반문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나키즘으로 번역되는 무정부주의를 굳이 아나키즘과 똑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는 없지만 모든 정치적 조직, 규율, 권위를 거부하고
국가권력기관의 강제적인 수단을 해체함으로써 인간의 진정한 자유와 평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무정부주의와 아나키즘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나는 비폭력 아나키즘을 신봉한다. 국가나 정부, 제도가 오히려 사람의 삶을 속박하고 인간은
어쩌면 그런 제도들이 없을 때 더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 사회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무정부주의자들을
적으로 간주하는 것에 대해 쉽게 동의할 수가 없었다.
"위험한 범죄자들은
교육받은 자들이죠. 우리는 오늘날 가장 위험한 범죄자는 철저히 무법적인 현대 철학자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도둑이나 중혼자들이
근본적으로는 도덕적이에요. 그들은 동정의 여지가 있죠. 인간의 근본적인 이상은 수용하는데, 단지 잘못 추구할 뿐이니까요. 도둑들은
재산을 존중합니다. 그걸 너무 존중한 나머지 자기 손안에 넣고 싶어 할 뿐이죠. 하지만 철학자들은 재산을 증오해서 개인의
소유라는 생각 자체를 파괴하려고 해요. 중혼자들은 결혼을 존중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의식적이고 격식을 차리는 중혼의
형식을 따르지 않겠죠. 하지만 철학자들은 결혼 자체를 경멸합니다. 또, 살인자들은 인간의 생명을 존중합니다. 단지 자신들보다 덜
중요해 보이는 생명을 희생시킴으로써 생명의 더 큰 충만함을 맛보려는 것뿐이죠. 그런데 철학자들은 생명 그 자체를 증오해서,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자기 생명까지도 증오합니다." (54~55쪽)
이 작품에서 무정부주의자들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이다. 국가를 지속하는 법이나 제도 등을 해체하고 개인의 자유를 최상의 가치로 내세우는 이들이 잘못된 것일까? 물론
체스터턴은 앞서 언급했듯 종교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종교마저 거부하려는 그들이 썩 달갑게 보이지는 않았으리란 추측도 든다. 나 또한
무정부주의자들이 폭력적으로 사회 전복을 꿈꾸는 것은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사유재산이나 국가, 종교, 법 등 권위주의적인
관습, 제도, 권력이 인간을 오히려 타락하게 하고,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정부주의자’들에게 심정적으로
동조하게 된다.
오히려 무정부주의자 조직을 해체하려는 주인공의 생각과 노력이 좀 순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체스터턴이나 이 책의 주인공이 보자면 나 역시도 그들이 주적으로 삼고 없애야 할,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썩은 사상을 지닌
사람일 텐데…. 글쎄 무엇이 선(善)이고 악(惡)인지 쉽게 판가름하기 어렵다. 책을 읽다 보면 결국 체스터턴이 생각했던
무정부주의자와 내가 생각하는 아나키스트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존재한다는 느낌도 든다. 체스터턴은 ‘무정부주의=무질서 혹은
혼란상태’로 보았고 그는 기존의 사회 질서와 전통적인 가치가 무너지고 있던 당시 사회에서 인간의 오만함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우주적인 질서의 회복을 꿈꾸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책의 중반쯤 넘어가면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이라면 대충
‘어떤’ 짐작들을 할 수 있으리라. 이 작품의 결말은 전반부에 비해 좀 싱거운 느낌도 들고, ‘흠, 뭐야 결국 이렇게 끝나는
거야?’ 싶기도 한데. 그럼에도 흥미진진하다. 끝으로 이 책 서두에는 <목요일이었던 남자에 관하여>라는 1935년
<런던 뉴스>에서 이 작품에 대해 다룬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책을 재미있게 읽으려는 분은 이 서문은 읽지 않고
시작하는 편이 좋을 듯하다. 스포일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