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卍).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 (무선)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김춘미.이호철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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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일본의 유미주의, 탐미주의 작가로 유명하다(또 다른 유미주의 작가인 미시마 유키오도 그에게 존경을 표할 정도). 여체에 대한 탐미, 사디즘, 마조히즘, 페티쉬 등 인간의 변태(?)성욕에 대한 집착 등으로 독특한 작품 세계를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만(卍)>과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 이 두 작품 또한 그런 작가의 문학적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먼저<만(卍)>을 살펴보자. 얽혀있는 저 한자 모양처럼 이 작품은 남녀 네 명의 얽히고설킨 관계가 주를 이룬다. 동성애, 마조히즘, 사디즘 등 에로티시즘의 결정체라는 평을 받은 작품이라는데, '에로티시즘의 결정체'라는 말에는 딱히 공감하기 어려웠지만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서로 속고 속이는 인간의 기만적인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어 사뭇 충격적이다. 뭐랄까, 인간은 어차피 이런 족속이지,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눈으로 또 확인하니 뼈저리게 씁쓸하다.


스포일러를 제외한 내용은 간단하다. 고지식하고 답답한 남편을 둔 유부녀 소노코는 취미 생활로 동양화를 배우러 다니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아름다운 육체와 미모를 가진 미쓰코를 만나 한눈에 호감을 느낀다.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면서도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던 소노코에게 기회는 우연히 주어진다. 단 한마디도 나누지 못했던 미쓰코와 소노코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이상한 소문이 퍼지고, 그 소문을 계기로 실제로 그 둘은 가까워지게 된 것이다. 소노코는 미쓰코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면서 점점 그녀에게 빠져들어 가고 남편을 속여 가며 대담한 이중생활을 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자기만을 사랑하다고 믿었던 미쓰코에게 또 다른 사람이 존재하는 게 아닌가! 그의 등장으로 이들의 관계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만(卍)>에서 미쓰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와 육체에 반해 노예처럼 그녀에게 복종한다. 미쓰코 역시 그런 이들의 숭배를 받으며 점점 이기적이고 포악해져간다. 전형적인 팜므파탈이다. 이들의 관계를 통해 타인에게 절대적인 숭배를 받고자하는 인간의 허영과 욕망은 물론 아름다운 대상을 숭배하며 굴종하는 인간의 노예근성 등을 폭로한다. 무엇보다도 미쓰코를 자기만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인간의 집착과 소유욕을 통해 사랑하는 대상을 사랑한다기보다 결국 사랑을 하고 있는 상태(열정)에 빠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인간의 어리석은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는 일본의 고전 문학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80에 가까운 노인이 20대의 아름다운 부인을 얻어 그녀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며 행복에 빠져 사는 이야기로 이 작품에도 역시나 아름다운 여자에 매혹당하고 그녀에게 집착하는 각양각색의 남자들이 등장한다. 또한 이토록 아름다운 미모의 소유자를 어머니로 둔 한 소년의 시선을 통해 인생의 무상함이나 세속적 욕망의 덧없음을 전달하기도 한다.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는 내용도 재미있지만 고전적이면서도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분위기나 문장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일본 에도시대부터 이어져온 ‘호색문학’의 전통을 근대문학에 자연스럽게 접목시키며 그만의 에로틱한 탐미주의 문학으로 피워낸 것으로 높이 평가받았다. 단순히 여체 숭배에 집착한 초기 작품에 비해 후기로 갈수록 일본의 고전적인 세계를 배경으로 에로티시즘과 전통미를 탁월하게 결합했다고 하는데,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가 바로 그런 작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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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페미니스트 - 불편하고 두려워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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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을 읽은 순간 이 책에 반했다. 그녀가 자신의 고통을 털어놓을 때는 존경심마저 든다. 페미니즘은 인간이 만든 운동이라 결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부족한 페미니스트로 당당히 살겠다는 그녀의 선언에 진심으로 공감,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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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세트 - 전3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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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 쓰기를 다 마쳤을 때 ‘드디어 이 여자(안나)에게서 벗어날 수 있어 기쁘다’라고 했단다. 나는 이 책 <안나 카레니나>를 손에서 놓게 되는 순간, 드디어 이 책에서 벗어날 수 있어 미치고 팔짝 뛸 정도로 기뻤다. 이 작품이 그토록 강렬하고 대단하여 그 마력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기쁘다는 이야기인가 하고 오해할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절대 그런 이유는 아니다.

고전 중의 고전이라는 <안나 카레니나>, 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손꼽힌다는 <안나 카레니나>- 그런데 난 왜 이 책이 그다지도 지겹고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울림도 없었을까? 장장 3권에 달하는 이 대하소설- 중간에 그만 읽을까 하는 생각이 여러 차례 들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읽은 게 아까워서라도 읽는다는 심정으로 3권까지 읽기를 드디어 마쳤다. 이제 다른 책을, 다른 재미난 책을 읽을 수 있어 정말! 정말 기쁘다!

이 작품이 별로였던 이유 첫 번째- 그토록 많은 등장인물 중 단 한 사람도 매력적인 인물이 없다. 드라마도 그렇고 소설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모든 ‘이야기’에는 읽는 사람, 혹은 보는 사람이 감정이입 할 대상이 필요하다. 등장인물 중 누군가를 응원하거나 혹은 그(또는 그녀)와 동일시하면서 ‘나라면 이럴 텐데, 저럴 텐데’하다 보면 이야기에 자연스레 빠지게 된다. 그런데 <안나 카레니나>에선 그럴만한 인물이 하나도 없다. 톨스토이가 인물 구현에 실패했나? 그렇지는 않다. 그는 엄청나게 공을 들여 각각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안나, 레빈, 브론스키, 키티, 오블론스키, 돌리 등등. 그런데 문제는 이 인물 중 그 누구에게도 애정이 생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작품의 제목이니 주인공이라고 오해받을 수 있는 ‘안나 카레니나’를 보자. 이 여자 상당히 매력적이고 아름답단다. 남녀를 불문하고 이 여자를 만나면 사랑에 빠지고 만단다. 그런데 정말 이건 톨스토이가 독자에게 ‘안나 이 여자가 주인공이니까 이렇게 봐주길 바란다.’고 쓴 걸로 밖엔 안 보인다. 드라마나 영화 속 여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매력적이라 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녀를 사랑한다. 정작 그 여주인공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시청자(관객) 뿐이다. 시청자(관객)는 ‘아오! 또 뻔한 여주인공이네’ 하며 왜 그녀 주변의 인물들이 그녀를 사랑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안나가 딱 그 짝이다. 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안나가 여주인공이니까 모두 닥치고 사랑하는 거야!’

그러다 보니 이 사랑스럽고 아름답다는(그러나 절대 공감 가지 않는) 안나가 뻔뻔하게도 브론스키와 불륜 관계에 빠질 때, 자신의 남편과 별 애정관계에 없다는 전제가 깔렸음에도 불구하고 브론스키와의 사랑을 응원하게 된다거나 그와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이디스 워튼의 <겨울>을 읽을 때 불륜 커플의 사랑이 이뤄지기를 그토록 간절하게 응원했던 것과 엄청난 대비!). 게다가 이 브론스키…. 잘생긴 꽃미남이래서 관심 있게 지켜봤더니…. 이내 반전이 나온다. 앞머리가 상당히 벗겨진 대머리였어. 이런 사람이 어떻게 꽃미남일 수가 있냐고! 전 세계의 대머리 미남들이여, 미안하다. 내 기준에서는 그렇다.

결정적으로 이 책의 진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레빈! 이 남자는 톨스토이의 분신, 혹은 톨스토이 그 자신이라고 볼 수 있다. ‘레빈’ 이라는 이름도 ‘레프’에서 따온 게 아닐까 의심해본다. 이 남자- 짜증 난다. 톨스토이는 이 인물에 굉장한 애정을 갖고 올바르고 정의롭고(하지만 인간적인 약점도 갖고 있는), 인간에 대한 애정, 땅에 대한 애정, 땀 흘리는 일에 대한 애정을 가진 ‘진짜 알찬 남자’로 그리고 있는데, 이런 도덕군자 같은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저 앞뒤 꽉 막힌 것 같아 답답하고 짜증만 난다. 게다가 사랑(자신의 가정)과 종교(신념)적인 면에서도 1-2-3부를 통해 일취월장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런 모습들이 많이 낯 간지러웠다.

두 번째. 나는 비도덕적인 인간인가?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으면 굉장히 그가 도덕군자이며 도덕적인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게 배알이 뒤틀린다. 차라리 주절주절 말이 많더라도 비비 꼬인 인물이 등장해서 비뚤어진 자의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도스토예프스키 쪽이 훨씬 낫다. 게다가 그런 이야기-입에 발린 소리-를 레빈을 통해 하니까 이 작품의 단점이 자꾸 보이는 거다. 나는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작가의 신념이나 가치관 등등)를 작중 인물을 통해 전달하는 방식을 가장 싫어하기 때문에 이 소설이 더욱 별로라고 여겨졌다. 레빈이 레프의 대변자냐고!!! 이럴 바엔 톨스토이가 쓴 에세이를 읽지!

세 번째. 상류층의 이야기이다 보니 19세기 러시아 귀족들의 신선놀음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그걸 보고 있자니 또 온몸이 근질거리고 배알이 뒤틀린다. 21세기를 사는 내가 2세기 전의 귀족놀음을 보며 이런 반응을 하는 것을 보면 톨스토이가 당시의 시대 상황을 굉장히 선명하게 재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장점이다. 귀족들의 모습만이 아니라 당시 시대상황이 정말 세밀하게 그려진다. 리얼리즘의 극치다. 그런데 난 또 이 리얼리즘의 극치를 싫어하는지라 ‘좀 덜 자세하게 묘사해도 좋을 텐데…. 쓸데없이 엄청 길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계몽소설 을 읽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우리나라 근대 소설 중 심훈의 <상록수>나 이광수의 <흙>을 읽는 기분이 들기도 했던 이 소설…. 당분간 톨스토이는 안녕!!! 그런데 정말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리뷰를 찾아보면 하나같이 칭찬 일색- 이런 대작은 없다고 다들 입을 모아 칭찬…. 이 작품이 별로였던 사람은 정녕 없단 말인가. 제아무리 훌륭한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나와 맞지 않는다면 아닌 건 아닌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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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6 1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06 1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28 2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16-04-29 09:10   좋아요 0 | URL
하하하. 진따. ㅋㅋ 네 정말 그렇죠; 등장인물도 누구 하나 좋아할 만한 사람도 없고...
그래도 3권까지 읽으셨으니;; 끝까지 읽으세요. 완독해냈다는 뿌듯함이라도 건질 수 있게;; ㅠㅠ
저도 읽은 게 아까워서 계속 꾸역꾸역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icesti 2016-07-12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잘 읽었습니다. 리뷰맘에 듭니다. 사실 하도 안나 카레니나 하길래 책 사러 들어온 1인!! 하지만 이 리뷰를 보길 잘했네요.. 안사야겠어요..고맙습니다. ^^*

잠자냥 2016-07-13 09:45   좋아요 0 | URL
ㅎㅎ 혹시라도 궁금하시다면 도서관을 이용해서 빌려 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전 이 민음사 버전 사서 읽고는 알라딘 중고 책방에 팔아버렸습니다...; 책 사서 보면 잘 안 파는데, 이 책은 미련 없이 팔게 되더군요. ㅎㅎ

cjddnjsrh0517 2022-04-22 1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저도 안나 카레니나를 다 읽자마자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드디어 이 책에서 탈출이야!ㅠㅠ’ 였습니다. ㅋㅋㅋ.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유리 동물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8
테네시 윌리암스 지음, 김소임 옮김 / 민음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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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한 작품을 읽었는데도 강렬한 인상이 남는 작가와 작품이 있다. 테네시 윌리엄스가 그렇다. 예전에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읽고 난 후, 테네시 윌리엄스와 그의 저 기묘하고도 멋진 제목의 희곡은 늘 기억에 남았다. 굉장히 좋았던 작품, 언젠가 한 번은 꼭 원서로 읽어야겠다고 다짐한 작품. 그리고 더 나아가 언젠가 한 번은 꼭 저런 작품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그의 데뷔작인 <유리 동물원>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보다가 또 이런 저런 장면에서 울컥했다. 삶의 비애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쓸쓸하고, 황량한 가족의 이야기. 그러면서도 애잔하고 슬프다. 왠지 모를 아름다움도 느껴진다.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또한 그렇다. 흥미진진하면서도 역시 쓸쓸하고 슬프다.

테네시 윌리엄스의 작품을 읽다 보면 그에 대한 애정이 솟아난다. 왠지 작가 자체의 삶이 황량하고 쓸쓸하지 않았을까 싶어진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의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황량한 인생 속에서도 마음속으로는 낭만을 잃지 않았던, 섬세하고 여린 사람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그리고 그의 인생 여정을 살펴보면 조금은 그러했으리라 생각된다.

테네시 윌리엄스는 가족 안에서 행복했던 적은 그다지 없던 듯하다. 아버지는 떠돌이 외판원이었으며 어머니는 아름답지만 히스테릭한 사람이었다. 모계로부터 정신 병력이 이어져내려 왔고 그의 하나 뿐인 누나에게서 정신 분열이 발명한다(물론 테네시 윌리엄스에게도 이런 정신 병력은 나타났다고 한다). 그런 누나였지만 윌리엄스는 누나를 죽기까지 다정하게 돌보며 평생 변치 않는 우애를 나눴다고 한다.

윌리엄스에게는 이런 ‘가족’외에 또 하나의 아킬레스건이 있었다. 바로 그의 성적 취향이었다. 윌리엄스는 대학 졸업 후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깨닫고 평생 동성애자로 살았다고 한다. 그의 오랜 연인이었던 프랭크 멀로가 사망한 뒤에는 알코올과 마약에 탐닉하며 고독한 삶을 살았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나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로 한때 크게 성공한 적도 있었으나 그의 말년은 쓸쓸했던 듯하다. 호텔방에서 병마개가 목에 걸려 홀로 죽어간 죽음을 보면......

그의 인생을 구구절절 나열하는 이유는 데뷔작인 <유리 동물원>과 그에게 퓰리처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준 작품인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가 모두 어느 정도는 자전적 이야기로 읽히기 때문이다. 특히 <유리 동물원>은 윌리엄스가 벗어나고자 했던, 그러나 쉽게 벗어날 수 없었던 가족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토대로 한다. 정신병을 가진 누나는 <유리 동물원>에서 절름발이 누나로 등장하며, 히스테릭한 어머니는 화려했던 과거를 잊지 못하는 다분히 허영기 가득한 어머니로 표현된다. 그리고 외판원이었던 아버지는 <유리 동물원>에서 아예 집을 나가버린, 부재중인 아버지로 그려진다. <유리 동물원>의 화자이자 극 전개자인 ‘톰’은 다분히 윌리엄스 자신으로 보인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자 공장에서 일을 하며 틈틈이 글을 쓰고 밤마다 극장으로 도피하는 것이 유일한 낙인 남자, 가족을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결코 쉽게 벗어날 수 없었던 남자.

<유리 동물원>은 어떤 면에서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를 떠올리게 한다. 두 작품 모두 가족에게 상처받고, 가족 때문에 외롭고 힘든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런 가족을 버리고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벗어날 수 없고 쉽게 버릴 수도 없다. 그렇게 평생 서로를 끌어안고 상처 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밤으로의 긴 여로>가 한없이 황량하고 슬픈 분위기라면 <유리 동물원>은 그런 분위기에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깃들여져 있다. 그래서 왠지 슬픔은 배가 된다.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역시 가족 간의 이야기다. 암으로 죽어가는 아버지(그러나 그 사실을 아버지와 어머니만 모른다,. 아버지가 암으로 죽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아버지의 거대한 유산을 노리는 탐욕스러운 큰 아들 내외와 그들의 다섯 아이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무척 사랑하는 둘째 아들 ‘브릭’과 그의 부인 ‘마거리트’- 이들이 만들어내는 욕망과 좌절, 위선, 소통의 단절, 불협화음이 극의 주된 내용이다.

이 작품에서 둘째 아들 ‘브릭’은 아마도 윌리엄스의 분신으로 보인다. 그는 하루 종일 술에 취해 사는 알코올 중독자다. 탐욕스러운 큰 아들 구퍼에 비해 욕심도 없고(실은 그는 삶에 의지가 아예 없어 보인다) 호남형의 아버지를 쏙 빼닮아 잘생긴 얼굴로 여자들에게 인기가 좋았으며(그리하여 꽤 매력적인 아내 ‘마거리트’를 얻을 수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도 독차지한다. 그런데 그는 늘 술에 절어 있고 슬프다. 왜 술을 마시느냐는 아버지의 질문에 브릭은 ‘역겨움’ 때문에 술을 마신다고 대답한다.

그 ‘역겨움’을 집요하게 파고들던 아버지는 그의 슬픔의 근원이 브릭과 절친한 사이였던 스키퍼의 죽음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브릭은 스키퍼와의 관계가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순결하고 고고한 ‘우정’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상은 스키퍼와 자신의 관계를 동성애적 관계로 보았고 때문에 자신은 그들의 허위의식과 그로 인한 역겨움 때문에 술을 마실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더 집요하다. 브릭에게 반문한다. 사실은 스키퍼와의 관계를 동성애 관계로 인정하지 못하는 너 자신의 허위의식에 대한 역겨움이 아니냐며.

사람들은 글을 왜 쓸까? 잘은 모르지만 자신의 고독, 외로움, 상처를 글로 표현하면서 위로받는 이들이 많으리라. 그런 이들에게 글은 하나의 도피처이다. 테네시 윌리엄스 또한 그러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삶을 좌지우지했던 가족 간의 쓰라린 추억을 곱씹으며 글로 써내려간 그- 그런 글을 쓰고 있노라면 상처 위에 소금을 뿌리듯 더욱 아팠겠지만 ‘남에게 들은 이야기’도 아니었고 ‘타인을 관찰해서 얻은 이야기’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의 이야기였기에 그 어떤 글 보다 ‘진실’하게 다가온다. 책 표지 뒤에 새겨진 그의 얼굴을 보고 또 본다. 작품의 여운과 그의 삶이 겹쳐져 왠지 한없이 슬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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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랭 레몽 지음, 김화영 옮김 / 비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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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남자의 지나간 일대기, 회고담이군 하면서 덤덤히 읽다가 어느 순간 눈물이 콱 터진다. 우리 모두는 날마다 사람을, 시간을, 삶을 떠나보내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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