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나쓰메 소세키의 서간집이다. 그가 부인은 물론 어린 자식들, 장인 등 가족에게 보낸 편지와 친구 및 문하생들에게 보낸
편지, 애독자들에게 보낸 답장, 일과 관련한 공적인 편지 등 140통 조금 넘게 실려 있다. 소세키는 편지 쓰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지인에게 보낸 약 2천여 통의 편지 중 추린 것이라는데 이 책을 읽다 보면 2천여 통의 편지를 한 번 모두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은 소세키가 그의 부인에게 보낸 편지다. 소세키는 런던 유학 당시
부인에게 편지를 종종 보냈던 것으로 보인다. 몇 주에 한 통씩 보낸 듯한데 부인은 생활하느라 바빴는지 이에 답장을 바로바로 하지는
않았다. 때문에 나쓰메 소세키는 답장 없는 부인에게 버럭 성질을 내며 짜증을 내기도 한다. 답장을 바로 하지 않는다고 짜증은
냈지만 소세키는 딱히 아내를 크게 사랑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쓰메 소세키 작품에서 정이 깊은 부부가 있었던가? 별로 그렇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그의 사생활의 반영일까?
그간 읽었던 작품을 통해 나쓰메 소세키 성격을 유추해 보자면,
아내를 사랑한다 해도 다정다감하거나 깨알 같은 애정 표현 등 닭살 돋는 편지를 보낼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멀리 떨어져서 지내는데 편지는 정말 무덤덤하다. 애정 표현보다는 잔소리가 많다. 어쩐지 아내가 좀 더 예뻤으면 하는 생각도 늘
하고 살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내에게 계속 틀니를 하라고 요구하고 머리 모양은 어떻게 하라고 잔소리를 한다. 게다가 늦게
일어난다고 그 먼 영국에서 일본에 있는 아내에게 잔소리를 한다. 이 사람, 참 ㅋㅋㅋㅋ 인간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같이 살기 쉽지
않은 남자였겠다 싶다.
틀니는 하는 게 옳을 것 같소. 머리는 둥글게 묶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소. 자주 감으시오. (85쪽, 아내에게 보낸 편지 중)
출산 후 경과가 좋아 건강해지면 틀니를 하시구려. 돈이 없으면 장인께 빌려서라도 하시오. 돌아가서 갚아 드리겠소. 머리는 묶지 않는
편이 머리카락을 위해서도 뇌를 위해서도 좋소. 오드키닌이라는 물이 있소. 비듬이 생기지 않는 약이오. 써 보시구려. 탈모가
멈출지 모르오. (95쪽, 아내에게 보낸 편지 중)
무엇보다 무정하기 그지없는 내가 아내에게만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편지를 보내니 기특하지 않나. 그런 다각형 얼굴이라도 돌아가면 좀 잘해 줄 생각일세. (96쪽, 친구에게 보낸 편지 중)
편지의 분위기를 보아 밤에는 12시를 넘기고 아침에는 9시, 10시경까지 자는 듯하구려. 밤은 그렇다 치고 아침엔 좀 일찍
일어나도록 하시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병이 없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니 그건 잘 알고 있을 것이오. 9시나 10시까지 자는
여자는 첩이나 창부, 하급 사회의 여자들뿐이라 생각하오. 적어도 좋은 집안에 태어나 상응하는 교육을 받은 사람 중에 그렇게 단정치
못한 사람은 별로 눈에 띄지 않을 것 같소. 야라이초 3번지를 한번 살펴보오. 당신을 제외하고 그런 부인들은 하나도 없소. 이건
유학 전에도 항상 하던 말 같은데 당신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구려. 나쓰메의 부인은 아침 9시, 10시까지 잔다고
수군거리면 좀 창피하지 않겠소. 당신은 어찌 생각하오. 당연히 신병은 특별한 일이지만 요전의 편지에 의하면 아주 건강해졌다고
하니, 몸에 이상 없는 한 일찍 일어나도록 신경 써야 할 것이오. 게다가 아이들 교육상 좋지 않을 것 같소. 후데가 성인이 되어
시집을 가서 당신처럼 9시나 10시까지 잔다면 나는 미래의 사위에게 아주 미안한 마음일 게요. 당신 부모님들은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나는 다르오. 노력해서 자신의 결점을 없애는 것이 인간 제일의 의무일 게요. (124쪽, 아내에게 보낸
편지 중)
이밖에도 아내에게 보낸 편지로 나쓰메 소세키가 치질을 앓고 있었다는 점! 복장에도 꽤 신경 썼다는 점(어쩐지 그럴 거
같았다), 키가 작은 자신에 약간의 열등감이 있었다는 점(특히 영국 유학 당시) 등을 알게 되었다. 친구나 문하생들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는 가르치는 일을 무척이나 괴로워했다는 점(특히 대학에서 교수직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몹시 싫어함), 박사병에 걸린
인간들을 혐오했으며, 때문에 박사를 수여하겠다는 것을 여러 차례 까칠하게 거절하는 모습 등을 엿볼 수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기 보다는 친구들이나 문하생들과 맛있는 것을 먹으며 풍류를 논하며 놀고 싶어했다는 점에서는 격하게 공감하며 슬며시 웃음이
나기도 했다. 물론 나쓰메 소세키는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는 한가로이 방에서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쓰고 싶은 것을 쓰는 삶을 가장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 있을 때는 이렇게까지 피부가 노랗다고는 생각지 않았는데 이곳에
와서 보니 스스로 내 피부가 노랗다는 것에 정나미가 떨어지오. 게다가 나보다 키가 큰 사람 앞에서는 아주 어깨가 움쓰러드오.
건너편에서 이상한 놈이 왔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큰 거울에 비춰진 내 그림자였던 일이 몇 번인지 모르오. 얼굴이야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해도 키는 커지고 싶구려. 아이들에게는 되도록 의자에 앉을 때 등받이에 기대지 않게 하는 게 좋겠소. 하긴
이곳에 있는 사람은 대개 키가 작다고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지만, 키는 마음먹는다고 클 수 있는 게 아니니 어쩌겠소. 그래도 아가나
나보다 키가 작은 서양인을 만날 때는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소. 하지만 대개는 여자들도 나보다 크오. 무서울 따름이오.
(94쪽, ‘런던의 생활’ – 아내에게 보낸 편지 중)
매월 오륙십의 수입만 있으면 지금이라도 도쿄로 돌아가 멋대로
풍류를 즐길 각오지만 놀고 있으면 돈이 주머니 속으로 그냥 들어오는 것도 아니기에 먹고 입는 것을 조금 줄이더라도 뭔가 일거리를
찾아(다만 교사를 제외하고), 여가를 이용해 자유로이 읽고 자유로이 말하고 자유로이 쓰기를 희망하네. (72쪽, ‘교사를 그만두고
싶어’)
한가로이 마음에 드는 책을 읽으며 도처의 산수를 방랑하면 인생이 가장 즐겁지 않겠나.
나는 학교에 교육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월급을 받으러 가네. 다른 모든 선생들도 틀림없이 그럴 걸세. 이상. (150쪽, 친구에게 보낸 편지 중)
대학의 교사니 강사니 하며 평가를 해주지만 조금도 고맙지 않네. 내 이상을 말하자면 학교에는 나가지 않고 매주 한 번 평소에
출입하는 학생 제군을 집에 불러 식사를 하면서 농담을 하고 노는 것일세. 나카가와 군 등이 와서 나보고 곧 박사가 될 거라는 말을
하는데, 지겹고 불쾌하네. 나는 일전에 박사는 되지 않겠다고,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미리 나카가와군에게 거절해 두었네.
그렇지 않나, 박사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도 아니고. (153쪽, 친구에게 보낸 편지 중)
나는 그간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통해 그가 인간을 혐오했고 삐딱한 염세주의자일 거라고 추측했는데 이 서간집을 통해
어느 정도는 그런 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끼는 문하생들 및 절친한 친구와 주고받은 편지, 자신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보낸 답장 등을 보면 역시 이 사람도 인간에 대한 애정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구나 싶어진다. 때로는 다정다감하기도 하고
농담도 할 줄 알고 진심으로 타인을 걱정도 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 <마음>이라는 소설 속에 있는
선생님이라는 사람은 벌써 돌아가셨어요. 이름은 있지만 알아봐야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인데 그런 것도 다
읽는군요. 그건 아이들이 읽어 봐야 도움이 되는 책이 아니니 그만 읽으세요. 내 주소를 어디에서 알았죠? (318쪽, 독자에게
보낸 편지 중)
무엇보다도 나는 나쓰메 소세키가 모리타 소헤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등 특히 아끼던 문하생들에게 글쓰기를 독려하며
썼던 편지가 인상에 남는다. 그런 편지들은 마치 나에게 보낸 편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마도 나뿐만이 아니라 글을 쓰며 살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는 이런 편지들이 유독 강렬하게, 오래 기억에 남으리라. 인간 나쓰메 소세키를 좀 더 알 수 있으며 이 자체로도
하나의 문학 작품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인 <소가 되어 인간을 밀어라>는 나쓰메 소세키 작품이나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은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