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옷 추적기 - 당신이 버린 옷의 최후
박준용.손고운.조윤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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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기도 하고 곧 새해가 되니까, 전부터 집에 가득 쌓인 옷들의 대부분을 잘 입지 않게 되어서, 미니멀라이프 비우는 삶을 실천하고 싶어서, 청소와 정리가 힘들어서 갖가지 이유를 대고 아무렇게나 사서 입고 넣어두기를 반복했던 옷장 정리를 하려고 마음 먹었던 참이다. 옷장을 정리하는 일은 마음만 비우면 간단하다. 이 옷을 언젠가 또 입을 일이 있을까 싶은 망설임이 가장 큰 어려움일뿐, 정리하겠다 마음 먹고 나면 복잡하게 분리하고 챙길 것 없이 꺼내들어 가까운 헌옷수거함에 넣어두면 끝이니까. 그 뒤의 일은 빈 옷장 구석의 묵은 먼지를 치우고 시간이 지나면 비우겠다던 다짐을 또 잊어버리고 입을 옷이 없다며 새 옷을 사서 채워넣는 일의 반복이다. 수거함으로 들어간 옷의 그 다음은 나의 관심사 밖이다. 

밖이었다. '헌 옷 추적기'는 나, 내 옷장, 나의 소비에서 사회, 지구, 환경으로 관심을 옮겨가도록 만든다. 수거함에 넣어버리는 것으로 내가 외면했던 것, 은연 중에 알고 있으면서 모른척 떠넘긴 가책과 부채를 눈 앞으로 펼쳐낸다. 이 추운 계절에 차가운 것을 정수리부터 쏟아맞은 참담함이 들도록, 매서운 것에 정신이 내려쳐진 깨우침을 준다. 어떨 때엔 그만 읽고 싶었다. 세상이 세상을 엉망으로 만드는 큰 흐름 안에서 내가 하는 얼마만큼의 노력같은건 그리 유의미한 저항이 되지 않을 거라는 핑계를 꺼내서 소중히 바라보았다. 쓰레기 더미 위에서 쓰레기를 뒤져 씹는 소들에 대한 기사를 보고, 낯선 나라의 해변을 가득히 채운 옷더미들 사진을 보고, 헌 옷이 도착하는 나라의 이름에서 엿보이는 빈곤을 떠올리고 내가 그런 옳지 않은 소비에 무심히 가담한 가해자라는 사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럴 수는 없었지만. 

세상의 발전은 과잉과 해이를 낳는 동시에 단서도 남겨놓았다. 기술낙관주의에 대해 시기상조(75)라고 했지만 헌 옷이 어디로 가는가를 추적하기 위해 갤럭시의 위치 추적이 가능한 스마트태그(18)를 활용한다는 생각은 획기적이었다. 이를 일일이 바느질로 부착해야 했던 것이 당황스러웠지만 "(양심이) '죽은 한국인의 옷'을 찾기 위한 추적기 설치와 의류 폐기 작업(26)"의 과정은 영화 속 장면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업사이클은 들어봤어도 *다운사이클링(94)은 처음 알게 된 스스로가 어이없게 여겨졌다. 헌 옷의 재가공을 위한 표백 작업(120)에서 노동자를 위한 보호 장구는 없다. 인도의 파니파트, 타이의 쓰레기 산을 보면 외국에서 난데없이 만나게 되는 한글이 적힌 옷이 주는 의외성이 더는 반가움이나 웃음으로 소비되지 않는다. 

'헌 옷 추적기'에서는 차라리 한국에서 태우는 게 친환경적일 것(168)이라며 폐기물 기반 에너지 회수방안이나 옷을 수출하는 행위로 인한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방안을 말하지만 그 과정에서 남는 이득은 아무것도 없게 된다. 우리가 편하게 이용하는 의류수거함의 정체는 개인사업자가 운영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예전에 한국의 추위를 대비하지 못했던 외국인 유학생이 특수절도 혐의로 입건된 사건**이 한동안 화제가 되며 알려졌다. 결국 태우거나 버려지는 이 옷들도 그 값을 받고 외국으로 떠넘겨 버려지기 위한 경제의 논리 안에 있는 셈이다. 이 수거함을 통해 실제로 필요한 사람이 재활용을 하려고 하는 시도는 손해를 끼치는 행위인 것이다. 

이 구조에 죄책감을 느끼면서 문득 솟구치는 의문이 있다. 이런 과잉을 야기하는 것은 결국 패션산업이다. 소비자에게 새로운 디자인, 새로운 색, 새로운 유행이라며 새 옷을 하고 금방 다시 버리도록 유도한다. 그들의 논리는 오직 돈이지 않은가. 그들이 우리만큼이나 이 과잉에 대해 책임이나 가책을 느끼고 있기는 할까. 그동안 환경에 대해 경고할 때마다 더 크고 근본적인 책임과 규제가 필요한 기업들보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흐름에 쓸려가는 사람들의 양심을 향한 성토와 호소가 주를 이루었던 행태가 이제는 지겨울 지경이다. 생산을 줄이고, 환경에 대한 세금을 물리고, 파괴에 대한 복구를 실천하도록 규제해야 이 흐름이 더뎌지지 않을까. 기업이 아무렇지도 않게 돈을 받고 팔아버리고 나면 결국 돈은 없이 뒷감당만이 남은 소비자가 성찰과 개선을 골몰하게 된다. 

이런 불만에 대한 대응으로 중고의류 수거 정책을 내세운 기업들이 있지만 3부에서 나오듯 그들의 수거함도 결국 외국으로 이동해 그 경로가 흐지부지해지고 만다. 그나마 눈치라도 봤다는 점에서 더 낫다고 쳐주는 것에서(193) 머리가 아파오지만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에 이내 수긍하고 만다. 삼성의 갤럭시의 위치추적 기능을 통해 헌 옷을 추적했지만 삼성물산의 '검은 그린워싱(215)'은 비난을 피해가기 어려웠다. 물론 삼성물산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는 이미 유수의 명품 브랜드들이 희소성같은 것을 이유로 잉여 제품을 폐기(234)해버리는 방법을 쓴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결국 어느 하나를 지적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의 관행인 셈이다. 

'헌 옷 추적기'를 읽는 것은 솔직히 즐겁지 않다. '당신이 버린 옷의 최후'라는 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에서 눈치를 보며 읽게 된다. 표지를 몇 번 다시 보다보니 책이 아니라 분리수거장에 서있던 의류 수거함으로 보인다. 책을 읽기 전에 마음먹었던 옷장정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해졌다. 분명 옷장 정리를 할 때 가장 어려운 것이 정리를 하기로 마음먹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생각이 달라졌다. 갖가지 이유를 들어 구매하고 버리려고 했던 옷들을 줄이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입을 옷이 없다는 말을 농담처럼 했던 스스로를 지우기로 해본다. 다운사이클링 되고 있는지도 몰랐던 양심을 업사이클링 할 때도 되었다.


* 사용하지 않는 물걸을 원재료보다 낮은 품질의 물건으로 바꾸는 것 
옷은 주로 매립되거나 소각된다. 
** 2016년 몽골인 유학생 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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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층 너머로 꿈꾸는돌 44
은이결 지음 / 돌베개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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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북은 따개비 한두 개가 붙었을 때는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점점 등이 무거워져서 그것들의 존재가 명확해졌을 때에도 평소처럼 사는 게 최선이라고 여겼으리라. 내 것이 아니지만 스스로 떨치지 못하는 것들. 한동안은 그것들이 왜 자신에게 붙었을까를 고심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빈틈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자책했을까? 나처럼. 97" 

 영원한 이별은 익숙해지지 않고 늘 무겁고 무섭다. 언제쯤이면 이별에도 익숙해지는 때가 오기는 올까, 어른이 된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알 수 없다. 정해진 이별을 받아들이면서도 밀려드는 그리움 같은 것을 어쩌지 못하는 날이 있는데 갑작스러운 이별 앞에서 어리고 예민한 시기의 아진은 더더욱 무력하고 막막했을 것이다. 그러니 아진이 제 몫의 이별들을 소화시키는 날들이 복잡하고 거칠고 힘든 것은 당연했다. 가끔 어떤 인물의 날카로움이나 감정이 분출되는 순간이 지나치다 싶을 때가 있는데 아진의 것은 오히려 너무 오래도록 참아왔다 싶었다. 얼마나 참아왔으면 '너'라는 존재가 필요했던 것일까 안쓰러웠다. 

 이렇게 괴로운 시작이 있어도 괜찮은지 염려되었다. 세나가 어디에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보희처럼 끝까지 모르고 싶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알게 된다면 마지막이 다 되어서야 알았더라면 싶기도 했다. 찾은 것과 발견된 것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이별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어린 독자에게 깊고 무거울 것 같았다. 여름 방학의 끝무렵 전해진 소식이 극복보다 고통만을 더하는 것은 아닐까, 어쨌든 세상은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악의마저 품고 있으니 선의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마지막 계단에 다다르기조차 힘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더 이해해 줄 걸, 더 잘해줄 걸, 더 살펴볼 걸 하는 후회가 문장 사이사이에 조금씩 쌓여 어느새 눈에 보일만큼 전해져왔다. 곁에 있는 누군가를 잃는 동안 더 해주지 못했다는 부채감이 아진을 괴롭혀왔구나. 어떤 날엔 자기도 모르게 진심으로 웃었던 때도 있지만 밤새 잠을 이루기 어려울 정도로 상실을 앓던 모습을 생각하면 마음이 좋지 않다. 더 못해주었다는 괴로움을 해미 언니를 도우면서 누군가를 구하는데에는 주변의 세심한 관찰과 그보다 더 주의깊은 배려가 깃들어야 함을 알게 되면서 풀어가는 동안 마음에 쌓였던 것들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었다. 누군가를 잃어서 괴로운 마음을 구하기 위한 원동력으로 삼아 극복해나갈 수 있는 희망이 있어 좋았다. 

 " 그제야 알았다. 오늘 교실에서 빈 책상을 보지 못했다는 걸. 세나가 빠진 자리는 이미 채워져서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세나는 내가 잃어버린 친구다. 잃은 후에야 친구가 된. 그게 1년 전 일이다. 29" 

 그때는 꼭 점심을 같이 먹고, 무리를 이루고, 나란히 하교를 하는 친구만을 가깝게 여겼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문득 아주 잠깐의 시간을 나눈 누군가가 더 빈번히 떠오르곤 한다. 우연히 한 계절 앞뒤로 앉아 심심하다며 읽고 있던 책을 빌려보았던 친구나 같은 청소구역을 담당해 청소시간에만 달라붙어 청소를 땡땡이 치자며 작당을 하곤 했던 친구처럼, 늘상 어울려 시시콜콜한 모든 것을 다 나눈 적도 없고 반이 달라지고 나서는 마주치던 복도나 운동장에서 가벼운 인사만 나누던 것이 전부였는데 함께 했던 짧은 순간들이 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다. 세나와 아진이의 순간들을 보며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알 길이 없는 얼굴들을 떠올렸다. 이렇게 시간이 지난 뒤에야 친구가 되고 이별도 하는 관계도 있다. 

 무신경해 보이는 은제나 자꾸만 신경을 건드리는 동우, 얄미워보이는 현주 씨, 무책임해보이는 아빠가 어느 순간 달라보이는 때에 다른 사람을 더 알고 이해하게 되면서 아진도 조금씩 성장해가는 것이 느껴져서 좋았다. 나와 가까운 사람이어도 같은 생각일 수 없다는 것, 솔직한 표현을 하는 것도 큰 용기라는 것, 외면하지 않아야 할 순간에 용기를 내는 성숙한 모습같은 것들이 복잡한 면면을 가진 사람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진규를 의심하면서도 진규에 대한 아진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은 의외였고, 그래서 웃음이 나기도 했다. 심각한 얼굴로 읽어가는 동안에도 진짜가 섞여있는 웃음(134)이 있었다. 

 아진의 사춘기를 보는 동안 묻어두었던 타임캡슐을 꺼내보듯 지나보냈던 사춘기가 다시 생각났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늘 같은 펜으로 적어내렸던 일기를 어느날 아무 흔적도 남기고 싶지 않아 찢어 소각장에 버려버리기도 했다. 저녁이면 조용히 집밖으로 나와 인적이 끊긴 골목에서 가만히 아무나 기다리듯 서성이는 날도 있었다. 그때의 이유들을 지금은 다 잊어버렸지만 <2.5층 너머로>를 읽는 동안 터널같은 시간들을 통과하는 중이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지금 마음이 복잡하고 그런데도 어디에 어떤 말을 해야할지 알 수 없다면 아진이네 집 2.5층 계단 한 칸을 빌려보아도 좋겠다. 거기서 양파를 까는 너의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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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지 않는 뇌 - 최신 신경과학이 밝힌 평생 또렷한 정신으로 사는 방법
데일 브레드슨 지음, 제효영 옮김 / 심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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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의 책을 읽고 시작하는 말로는 민망하지만, 귓불에 주름이 있고 없는 것에 따라 치매 발병 확률이 다르다는 소문을 들은 뒤로 부모님의 귀 모양을 때때로 훔쳐보곤 했다. 전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최근에 보니 주름이 있었다. 핸드폰에 새로운 어플을 깔거나, 안내 문자가 오면 '잘 모르겠다'며 핸드폰을 건네주시는 일이 점차 당연하고 자연스러워 지면서, 같이 외출했을때 키오스크로 주문해야 하는 가게에서 슬쩍 뒤로 물러서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변화를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겼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 나는 "나이가 들면 원래 기억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라는 불평을 정말 자주 듣는데, 이는 시대에 뒤떨어질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진단과 치료의 적기를 놓치게 한다는 점에서 위험한 생각이다. 25" 

그렇다면 뇌의 문제에 대해 장년층의 문제라며 거리를 두고 있을 수 있을까. '늙지 않는 뇌'를 읽는 것이 반드시 나중을 대비하기 위해서일까. 안타깝게도 아니었다. 우리가 잘 아는 그 유명한 영화 <내 머리속의 지우개>를 떠올리면 조기발병치매라는 병명이 나온다. 전에는 멀거니 주연 배우들의 외모를 바라보다가 스크린에서나 접할 낯선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책에서 조기발명치매가 급증하고 있다는 통계(39)를 보게되니 당황스러웠다. 

얼마나 뚱책인지 읽으려면 뇌가 늙을래야 늙을 새가 없을 것 같은 책 안에는 " 뇌가 평생 젊고, 건강하고, 제대로 기능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7"에 대한 조언이 가득하다. 정말 진심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수만 있다면 옥상에서 소리라도 지를 수 있다는 말처럼 저자는 자신이 알아낸 것을 나누기 위해 열정적이다. 때로는 그건이 몇 쪽이나 계속되는 복잡하고 지루한 처방전(456~476)의 형태를 띄더라도.  

음식점 마다 재료의 효능, 효과를 붙여놓길 좋아하는 한국인답게 먹는 것에 대한 내용이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기도 하지만 저자의 강조대로 읽으면서 난감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를 예상했던 바 작가는 식생활 개선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기 앞서 '이번 장은 부디 마음을 열고 읽기를 바란다. 203'고 강조한다. 음식에 대한 욕망과 나태한 관용이 얼마나 크고 쉬운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특히 당에 대한 강조를 보자면 코카인, 애더럴과 나란히 설탕을 꼽기(24)까지 한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고, 방만하게도 당을 좀 더 먹고 과학 기술이 더 빨리 발전하길 바라는 건 어떨까 싶어진다. 

더불어 초가공식품이 뇌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경고(229)했는데, 과자를 끊는 것에 실패한 중년인은 더러 초조해지는 대목이었다. 당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반복적으로 주의를 주면서 채식에 대해서는 권장하지만 확언은 하지 않는 면이 있다. 어떤 식품을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조언하지만 먹지 않는 것으로 체내 케톤을 형성하는 방법도 제시(235)한다. 아직도 유행하고 있는 간헐적 단식이 그것인데 모든 것이 과잉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위협이 되고 있구나 싶었다. 

" 소란스러운 현대 사회는 코르티솔의 활성이 잦아진 여러 이유 중 하나다.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소음이 심하다는 의미다. 인류가 발생시키는 소음이 전부 사라지면 자연에서 나는 소리는 아무리 커도 40데시벨을 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심지어 일부 지역은 자연에서 나는 가장 큰 소리가 고작 20데시벨에 그친다. 인간 세상은 일반적인 음식점 내부의 소음도 80데시벨 정도이고, 록 콘서트장은 90~120데시벨이다. 식당에서 '딱 한 번' 식사하는 것만으로 인류의 조상이 평생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고, 따라서 대처 방안이 진화할 필요도 없었던 수준의 소음에 노출되는 셈이다. 게다가 음식점은 현대인의 생활 환경에서 가장 시끄러운 축에 들지도 않는다. 스포츠 경기장, 공사장, 공항, 콘서트홀에서 발생하는 소음에 노출되면 코르티솔 농도는 인류의 진화 역사를 통틀어 거의 전례가 없는 수준까지 치솟는다. 83" 

스트레스에 대한 내용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것인데 갑자기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던 생활 소음들을 의식하게 되었다. 층간소음으로 인해 사회적 문제가 생기는 것도 코르티솔 농도와 연관이 있을 것일까, 만약 과거의 인물이 시간여행을 통해 현대로 오게 된다면 새로운 감염병 같은 것들보다 가장 먼저 청각으로 인해 고통받게 될까 궁금해졌다. 한편으로는 스포츠 경기장, 콘서트홀같은 곳에서 큰 소리로 나오는 함성과 응원, 음악을 듣고나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기분이 드는 게 우리의 착각이었고 사실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환경에 놓여진 것이었을까 의문이 생겼다. 

운동을 할 것, 유산소와 근력을 모두 할 수 있는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 7시간 이상 9시간 미만의 충분한 수면을 취할 것, 명상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교류할 것, 곰팡이, 중금속, 미세플라스틱 같은 독소에 주의할 것 등 뇌의 노화를 늦추고 위험 요인을 직접적으로 없애는 방법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저자는 이미 뇌의 인지 기능이 저하되었더라도 노력을 통해 충분히 회복된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우리의 몸은 놀라운 회복력을 가지고 있으니 좌절하지 않을 것을 강조한다. 개인의 노력 뿐 아니라 과학 기술의 발전도 우리를 더 오래도록 건강한 정신과 신체로 인도할 것이라 예고하는데, 한국인임을 예상할 수 있는 양재현이라는 이름을 소개하면서 몸 전체의 생물학적 노화 증상을 되돌릴 수 있(445)는 미래가 분명히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책을 읽다 그 이름에 한번, 논문의 내용에 또 한번 반가웠다. 

책의 두께에 다소 놀랄 수 있겠지만 유행하는 음식이나, 텔레비전에서 하는 건강 관련 프로그램 같은 것에서 자주 접했던 내용-저당식, 케톤식, 간헐적 단식, 인터벌 운동 등-과 만날 수 있어서 그리 생소하지 않고 생각보다 익숙한 내용을 뇌 건강의 관점으로 알아갈 수 있어서 흥미롭다. 30대 중반부터 '몬트리올 인지 평가'같은 전문적인 인지 검사를 5년 주기로 받을 것을 권하고 있으니 더이상 젊지만은 않은 청장년층의 뇌 건강도 건강검진처럼 함께 챙기게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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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 - 경성에서 서울까지, 시간을 건너는 미술 여행
우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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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인들 속사정이야 어떻든 친구와 나는 명동 신세계 백화점 건물을 둘러싼 전광판을 보며 '감다뒤'라고 수근거리며 혀를 차기 바쁘다. 특히 시즌을 맞은 이런 추운 계절이 오면 더욱 그렇다. 한때는 전광판이 설치되면 그 앞을 인산인해로 모여든 사람들 속에 끼어 반복되는 화려한 영상을 굳이 감상하러 찾아가곤 했는데 그 뒤로 가려진 본점의 고풍스런 외관을 다시 드러내지 않고 계속 광고판을 올려둔다는 결정을 접한 이후로는 굳이 찾지 않게 되었다. 가을의 돌담길을 보란듯이 한번 더 걸으며 낭만이 뭔지 모른다며 실망했다. 어떤 풍경은 그 자체의 의미로 존재하곤 한다. 서울의 낮과 밤을 이야기하며 시작한 도시 이야기는 독자를 그림과 풍경 사이로 인도한다. 마치 과거와 현재의 파리를 오가는 어떤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처럼 자연스러우면서 낯선 감각이다.  
 예술과 관련된 키워드가 눈에 들어오면 내가 소화해 낼 바탕이 있는지 없는지 셈하기도 전에 일단 들이받듯 읽어보고 싶어진다. 쩔쩔매며 읽다가 여기저기서 주워모은 것들을 끌어왔다가 애를 먹고 스스로가 부끄러워져도 자꾸만 손에 들고만다.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는 두 작가가 이어지는 지점을 이해하고 싶어서 보이지 않는 선을 찾아 헤매는 시간이 많았다. 어떤 부분들은 분절된 채로, 어떤 부분들은 내 방식대로 이어가며 읽었다.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독특한 관람 경험이 된 듯 해 큰 숨이 들어찼다 빠져나가는 뻐근함이 남았다. 

 인상적인 작품을 꼽자면, 가장 먼저 나혜석의 <자화상>이 떠오른다. 그림 속 모던걸의 어두움이 저자의 편견을 뒤집었다(106)는 말에, 다시 바라본 그림 속 여성의 얼굴에서 웃지 않아도 괜찮은 여성을 발견했다. 여성의 웃지 않음, 돌려말하지 않음, 친절하지 않음이 그 안에 있었다. 여성이며 사람인 존재의 초상과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그림의 강렬한 인상이 만족스러운 한편, 대부분 근대의 작품들에 더 흥미를 느끼긴 했지만 이 작품과 함께 묶인 작가와의 연결점은 특히 더 그 고리가 약하게 느껴져서 아쉬웠다. <아이돌>연작에 대한 이재헌 작가의 인터뷰를 읽어보아도 어딘지 모호했다. 아이돌이 되고자하는 연습생들의 열망과 절제된 생활과 그들을 대상으로 삼는 홈마의 존재 같은 것에 대한 이해가 잘 전달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자화상>이 주는 의미가 크게 다가온만큼 아쉬운 지점이었다. 
 반대로 현대의 미술에 더 시선을 빼앗긴 것은 이어진 서민정 작가의 <너와 나 01>의 소개(126)였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함께 소개하며 오래도록 들여다 본 뒷모습은 과연, 땀에 절은 채 사막에 남겨진 야스민을 떠올리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자기 자신의 성질을 감당해내야 하는 지옥이라고 말하는 작가 내면을 짐작해보게 만든다. 견뎌내야 하는 사막이 그 안에 있는 듯도 하고, 그 기질적인 예민과 불안을 눌러담은 뒷모습이 익숙한 듯 초연해보이기도 하다.  
 폭설주의보가 늦은 밤까지 이어진 탓일까, 가장 오래도록 바라본 그림은 이성자의 <눈 덮인 보지라르 거리>(202)였다. 작품에 대한 소개 역시 2024년 11월의 눈 내린 날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기 때문에 더더욱 2025년의 12월 눈 내린 날에 잘 어울렸다. 창밖으로 언뜻 보이는 하얀 풍경은 그전까지 가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던 프랑스 몽파르나스 보지라르가 98번지의 풍경과 점점 더 비슷해졌다. 눈이 온다는 설렘이 점차 쓸쓸히 덧대여지는 흰 풍경과 함께 흐려지던 긴 저녁이었다. 올해의 겨울을 떠올린다면 이 그림이 함께 생각나게 되지 않을까 싶은 시간을 보냈다.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의 특별함은 작가와의 인터뷰에 있다. 보통은 작가보다 작품에 더 오래 시선을 두고, 또 자주 창작물에는 창작자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인터뷰 내용을 훑어보다 보면 때로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보다 작가의 인터뷰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소신껏 '핑계 대지 말자.(289)'는 답변을 내놓는 강단이나 규칙적인 일과(59)를 강조하는 답변처럼 그 자신이 드러나는 순간이 인상적이라 잠시나마 시선을 돌려 세계를 확장시켜 주는 인터뷰의 존재가 매력적이다.
 결국 예술도 사람의 일이라 한동안 병증으로 어깨를 쓰기 어려웠다는 한 작가의 이야기(183)에 투병을 거듭하느라 활동을 중단한지 오래된 좋아하는 작가와, 마찬가지로 병마와 공존하는 삶을 통해 생의 순간들을 환기 시켜주곤 하는 그믐의 대표분이 떠올랐다. 덩달아 모든 이들의 무사안녕을 조용히 바라게 되는 연말이다.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를 통해 시간을 뛰어넘는 독특한 이인삼각에 함께 발 맞춰 보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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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삶의 전부는 아닙니다만 - 이것은 음악평론이 아니다
배순탁 지음 / 김영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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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의 개념이 잡혀있지 않던 시절을 가끔 추억하는 말이 있다. 이맘때면 여전히 종종 들리는 말인데, 거리에 가득 흐르던 크리스마스 캐롤이 사라진 뒤로 전보다 연말 분위기가 덜 난다는 것이다. 우리의 기분 같은 것보다야 지켜야 할 권리가 중요하긴 하지만, 그 음악, 거리의 상점마다 멋대로 흘러나오던 그 음악이 사라졌을 뿐인데 사람들이 느끼게 된 그 공통적인 상실감을 떠올리면, '음악이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는 문장은 전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한 곡 당 주어진 시간이 보통 3분에서 5분 정도의 시간일까, 마찬가지로 한 곡에 주어진 셋에서 다섯 정도의 페이지가 아쉽게 느껴지는 흐름이었다. 가장 적당한 분량일수도 있겠지만 은근슬쩍 풀어내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벌써 다음 곡으로 넘어간다고 싶게 짧다고 느껴진다. 음악을 듣고 그저 좋다, 그리 취향에 맞지 않는다 정도의 감상만을 남기는 사람에게 음악을 두고 이렇게 수많은 면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은 자극적이다. 잘 세공한 보석에 빛이 들어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반짝임을 붙잡지 못하고 그저 눈으로 더듬어 내려가는 기분이 드는 책이다. 

어떤 곡들은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찾아 들어보고, 어떤 곡은 전혀 모르기 때문에, 또 어떤 곡은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찾아보는데 정말 아쉽게도 저자가 '유일하게 히트시킨 음악'이라는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의 <Days Are Numbers>(59)를 들었을 때 전혀 떠오르는 것이 없었던 것이 읽으며 가장 당황스러웠던 순간이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내가 모르는 곡들이나 아주 유명한 곡들에 대해 안경을 척 올려 쓰고 적어낸 글들이 많겠지 싶었는데, 몰랐다기 보다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곡들이나 듣기만 했던 곡들을 보고 내 안경이나 고쳐써가며 읽었다. 

모든 부분을 다 배우듯이, 낯선 곳의 지도를 살펴보듯이 읽어나갔는데 한가지 걸리는 부분은 아이돌 앨범에 대한 언급(84)이었다. (아이)돌 잡이를 sm으로 한 탓에 그쪽 아이돌 앨범 특유의 발라드에 아직도 심장이 반응하는 사람은 아이돌 앨범에 꼭 끼워넣는 발라드는 코스의 디저트와 같다고 본다. 없으면 섭섭하다는 말이다. 솔직히 컨셉으로 각이 잡힌 곡들을 들을 때보다 마음이 더 편하기도 하고. 가장 최근에 반응한 곡은 라이즈의 <모든 하루의 끝>입니다. 

음악을 정말 좋아하는 구나 싶은 생각을 자주 했다. 그는 '진짜 죽인다(169)'는 감상을 고등학교 시절에 끝냈던 것 같지만, 여전히 헐 대박을 고쳐내지 못한 사람이 보기에 하루종일 음악과 관련된 생각과 얘기를 하며 보내야 이런 글들을 쓸 것만 같이 여겨졌다. 다시 표지로 돌아가 책을 두른 띠지를 보며 '첫' 음악 산문집이라는 말에 '다음'을 떠올리며 안심했다. 처음부터 믿지 않았던 '음악이 삶의 전부는 아닙니다만'하는 제목은 100이 아니면 전부는 아닌게 맞으니까 99는 전부가 아니라는 뻔뻔한 밑장 빼기 같았다. 그러니 책을 덮는 마지막 곡으로는 아리아나 그란데의 'almost is never enough'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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