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공격 주의보 - 출세보다 상처받지 않는 것이 목표가 된 이유
남대희 지음 / 김영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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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나온지 10년이 되어가는 영화 검사외전(2016)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선배님, 저 휘문고 95기입니다."
"어 그래? 이거 직속이네? 담임 선생님이 누구?"
"독..사..?"
"아! 그 양반 아직?"
사기꾼인 강동원이 박성웅에게 접근하기 위해 학연을 이용하는 것이다. 독설로 유명한 한 방송인은 같은 지역 출신임을 밝히는 후배 연예인들에게는 유독 너그러운 반응을 해주기로 소문 나있다. '미세공격 주의보'는 그저 재미있는 일화에 지나지 않을 이 모습들이 사실은 다른 사람에 대한 낙인과 경계가 됨을 환기시키고 있다. 
" 오랫동안 단일민족의 신화와 민족주의 속에서 살아온 한국인에게 다양성이나 다문화주의에 대한 담론은 그동안 불필요했고 따라서 진지하게 논의된 적도 없었다. 한국인은 유독 같은 고향이나 학교 출신 간 유대감이 크다. 워낙 공동체 문화에 익숙하여 뭐 하나라도 공통점이 있으면 쉽게 동질감과 소속감을 느끼고 끼리끼리 뭉쳐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p51"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크게 공감했던 것은 "회사가 직원을 우습게 안다(191)"의 내용이었다. 일하던 직장에서 선임이, 또 내가 후임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굵직한 조언은 '너 아니어도 회사는 잘 돌아가'였었다. 업무 흐름에 익숙해지고 책임이 생길 때 쯤 이 일을 내가 꼭 처리해야할 것 같고, 나 아니면 수습할 사람이 없을 것 같단 생각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 일은 그 전에도 후에도 누군가가 어떻게든 진행되도록 굴려왔다. 나 아니면 안될 것 같아도 사실 다 되고 그런 의욕을 회사가 알아주지 않으니 적당히 하라는 조언이었다. 언뜻 노력하려는 다른 직원의 힘까지 빼버리는 방해같겠지만, 나중에 번아웃이 오고 상처받지 말라는 예방주사였다. " 회사가 직원 알기를 우습게 안다는 느낌이 드는 건 최악의 미세공격이다.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뭔가를 결정해 내놓을 때, 직원들이 당연히 알 권리가 있는 사안인데도 투명한 설명 없이 침묵할 때, 누가 봐도 경영 위기인데 경영진의 설명이나 비전 제시가 없을 때, 회사가 직원들에게 줬던 것을 뺏을 때, 조직이 직원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할 때, 직원들이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을 일언반구 없이 무시할 때, 회사가 수시로 주요 의사결정을 바꾸고 문제를 외면하며 고치려 들지 않을 때 직원들은 한없이 절망한다. p191"  

이직, 출산휴가 등으로 비워진 인력 공백을 충원없이 남은 인원들에게 떠넘기고, 직원 복지차원에서 배정되었던 비용을 삭감하고, 휴가 사용을 하지 못하도록 압박하고, 직원 면담을 핑계로 다른 직원에 대한 업무와 태도를 평가하도록 유도하는 일들을 겪으며 살아남은 직원들의 생존전략이나 다름 없었다. 이 과정을 못 버티고 조용히 사라진 동료들의 빈자리를 채운 신입에게 우리는 지치면 교체해버리고 마는 부품이나 다름 없으니 의욕과 노력을 보이는 대신 천천히 지치라는 냉담한 조언은 미세공격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동료 직원들끼리 미세공격의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되곤했다. 한참 의욕이 생기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입장에서 당신 아니어도 그 업무를 대체할 사람은 많다는 말은 상처나 다름없다. 이미 줄어든 혜택과 과중된 업무를 계약으로 들어온 사람에게 선임자들이 빼앗겨 싸운 복지는 사내 분위기만 흐리는 불만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직원들간에 보이지 않는 틈이 생기고 이는 더 많은 이탈자들을 만들었다. 공격을 받았다는 이유로 마땅히 남을 공격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은 것처럼 서로 공격을 주고받았다. 그리곤 사회 생활이 원래 이렇다는 말을 끌어다 핑계삼았다. 

흔한 갈등이다. 개인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배울 때처럼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회 안에서 끊임없이 교류하며 역할을 갖는다. 개인은 학생이거나 직장인이면서 누군가의 가족이고, 취미 모임의 일원일 수도 있다. "차별과 미세공격은 입체적이고 다면적이기에(173)" 자신이 소속된 곳에서 부여되는 단체성이 수시로 우리를 피해자와 가해자 위치에 둔다. 누구도 무결할 수는 없다. 처음 책을 읽을 때는 내가 받은 미세공격을 떠올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남에게 어떤 시선과 잣대를 내밀어 공격을 했었는지 떠올리게 되었다. "편견을 눈치채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을 발견해야 한다...중략...일반 버스나 콜택시를 타면서 자신이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220)"는 내용은 확실한 의식의 전환이 된다. 책에서는 '4부 미세공격을 대하는 자세'를 통해 조직에서 어떤 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방향을 제시해주며 내용을 마무리 했는데, 책을 읽다보면 더 넓은 범위로 시선이 옮겨감을 느낀다. 

책을 다 읽은 날 곧 개봉을 앞둔 영화 '해피엔드(2024)'를 먼저 관람하게 되었다. AI 감시 카메라로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는 내용도 문제적이지만, 그보다 더 큰 파문을 불러일으킨 것은 선명하게 그어진 차별의 장면들었다. 경찰의 검문을 받을 때마다 재일한국인인 고등학생 코우는 4대를 거쳐 일본에서 살고 있지만 증명서를 소지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집까지 임의동행하여 신분을 증명해야만 한다. 코우 뿐 아니라 일본인으로 규정되지 않은 다문화 학생들은 학교에서 마련된 자위대 강연 시간에 국가 안보를 이유로 교실에서 쫓겨나게 된다. 영화가 시작될 때 '이것은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라는 자막이 나오는데 이런 일이 실제로 트럼프 정권 아래의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휴스턴대학 한국인 조교수의 비자와 컬럼비아대 유학생들의 비자가 명확한 이유없이 연달아 취소되는 일이 발생해 충격을 주었다. 더불어 지난 4월 10일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미국사회보장청이 불법 이민자 추방과 사회보장 혜택 박탈을 위해 6천명이 넘는 생존 이민자들의 이름과 사회보장번호를 연방정부의 사망자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하는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쯤되면 직장 내의 미세공격 주의보 넘어 국제 사회의 확연한 위협으로 파시즘이 끓어오르고 있는 현실이다. 

"나 자신은 정말 편견 없이 사는가?(221)" 질문해야 할 때다. "스스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하루를 마칠 때마다 다른 사람의 관점을 얼마나 존중하고 배려했는지를 돌아본다면 그만큼 편견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질 것이다." 처음엔 이런 자기 반성과 점검을 피곤하다고 생각했으나 결국엔 '피곤하다'는 핑계로 가진 것들을 휘두르려고 했던 이기심을 느꼈다. 우리는 이미 '구역'을 만들었다. 아이들이나 노인같은 특정 나이대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차별하는 구역을 만들어냈다. 거주지와 소득으로 타인을 멸칭하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피부색과 국적으로 선입견을 갖는 편견도 만들어냈다. 그것들은 학교, 상점, 회사, 동네, 지역 범위를 넓혀 국가간의 갈등으로 까지 뻗어나가고 있다. 뉴스를 볼 때면 그저 세상의 일부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했는데 '미세공격 주의보'를 읽으며 일부만의 문제로 비롯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미세공격 주의보' 덕분에 우리 안의 차별과 특권의식을 끊임없이 경계하고 타인을 배려하고 시민 의식과 문화를 구축해야 함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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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유 없이 불안할까 교양 100그램 5
하지현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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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도,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속으로 당당히도 난 별로 불안감을 느끼거나 그런 것 때문에 불편하지 않은데 공감을 할 수 있을까 염려했다. 일상은 대체로 무난하게 지나가는 것 같고 때때로 느끼는 압박은 약속시간에 늦을지도 모른다거나 요즘 살이 좀 찐 것 같다는 사소하고 고만고만한 것들이다. 그런데 책에서 '불안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위험한 사람(p17)'이라고 예를 들어 8차선 도로를 그냥 건너는 것과 같다고 하자마자 내가 그동안 가졌던 불안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불안이라고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뿐, 내게도 불안이 있었던 것이다. 

사실 나는 중요한 일정이 있다고 생각되는 날 전날에는 잠을 못잔다. 잘자고 좋은 상태로 다음날 일정을 소화해야 된다는 생각에 자야한다는 압박감이 들고, 그럼 잠이 잘 오지 않고, 잠이 안온다는 압박감에 다음날 내 상태에 영향이 미칠 것을 걱정하고, 결국 초조해져서 더 잠이 안오는 것이다. 장시간 산에 오르거나, 고속버스 같은 대중 교통을 이용해야 하거나, 기대되는 영화를 보러갈 때도 화장실이 가고 싶어지면 어쩌지? 걱정하는 것도 일상의 사소한 불안들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사실 저자가 가장 기본으로 생각하는 '잘 먹고 잘 자는 생활리듬(p77)'이 깨지는 불안상태였던 것이다. 왜 나는 불안의 이름조차 몰랐던 것일까. 

책을 읽으면서 소름끼치게 내 이야기야! 라고 공감한 것이 '집에 손님이 오신다(p30)'였다. "예를 들어 집에 손님이 오신다 그러면 불고기 굽고 있는 반찬 차려서 대접하자 이럴 수도 있는데, 손님이 뭘 좋아할지 몰라서 고기도 차리고 회도 차리고 반찬도 열개쯤 새로 해서 놓는 거예요. 그러면 준비하다 지쳐버리고 다시는 손님 부르지 말아야지 싶어지죠." 이걸 과잉 반응으로 인한 불안이라고 하는데 정말 집에 누가 오는게 싫은 이유가 청소하다 지쳐서인 나로써는 내 몸이 100의 스트레스를 겪는다는 이 상황에 진심으로 공감했다. 책에서도 MBTI에 대한 얘기(p38)가 나오긴 하지만 그동안 내향적인 면이 있어서 그런가 생각했던 손님싫어 현상에 다른 이유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동안 타인과 어울림에 있어 두드러지는 내향적인 면이나 짜증을 느낄 때면 죄의식이 생기곤 했는데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는 말을 마음속에 새기고 태도를 바꾸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이런 반응이 단순히 내가 덜 된 사람이라서만이 아니라 " 내 몸이 '너 오늘 여기까지야' 하고 나에게 보내는 위험 신호 p43"였다고 생각하니 불편한 마음이 좀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보면 예민하고 짜증 많은 사람인 것 같은데 어느 정도는 맞지만 그런 면을 남에게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기도 하다는 걸 함께 밝혀둔다. 책에서도 " 성격 문제와 같이 고치기 어려운 것으로 생긴 불안이라고 보지 말자는 것입니다. 불안은 지금 내 상태에 대해서 내 몸과 마음이 신호를 보내는 것일 뿐입니다. p74" 라니 성격보단 체력 문제인 것으로. 

나이에 따라 불안의 양상이 달라진다는 것도 인상적인데 중년기에 겪을 불안에 대한 영화배우 안성기 씨의 이야기(p60)가 공감됐다. 늘 주연만 맡아서 들어오던 배역이 어느 순간 조역으로 달라지면서 처음엔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비슷하게도 최근 영화 '서브스턴스'를 보고 그동안 나이듦에 대해 느꼈던 압박과 불안이 떠올랐었다. 여성은 젊고 날씬하고 예뻐야만 한다는 강박을 꿰뚫는 영화인데, 거울 앞에 서서 화장을 덧칠하다 지우는 데미 무어의 모습에서 강렬한 공포와 슬픔을 느꼈다. 인생의 주연에서 조연으로 젊음에서 나이듦으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자신을 받아들이기 시작해야 하는 요즘이라 이 불안을 '올 게 왔다(p64)'고 인정하고 성숙해질 수 있을지 책을 붙잡고도 한동안 심란했다.   

이 한 권의 책으로 모든 불안에서 완벽하게 벗어났다!고 할 수는 없다. 저자도 불안은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정상범위 안에서 잘 관리하는 것(p8)'이라 표현한다. '난 왜 이유 없이 불안할까'를 통해 내 안의 불안을 인지하고, 조금 낮은 기준으로 불안의 원인을 바라보는 계기를 만들었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불안이 다른 것처럼 책을 통해 다른 것들을 얻어가게 될 것이다. 교양 100시리즈는 처음 접하는데 말미에 필사를 할 수 있는 부분도 있어 더 마음에 들었다. 짧지만 알찬 도움을 챙기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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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의 국정 노트 - DJ 친필 메모로 읽는 '성공하는 대통령'의 조건
박찬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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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소적인 척 정치인들 다 똑같다, 좋은 정치인을 뽑는게 아니라 덜 나쁜놈을 뽑는 것이 선거라고 말했지만 요 몇년간을 보내면서 그것도 어느 정도가 있구나 체감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부작용인가 싶게 선택의 형벌은 모두에게 공평히 찾아왔다. 누군가는 엉망이 된 지난 몇년간을 형벌로써 깨닫지도 못하겠지만 겨울이 길었던만큼 세상이 차고, 앞으로 놓여질 청산의 과제가 여름의 뙤약볕만큼이나 고될 것이다. 뉴스에 곧잘 나오는 국회의 모습, 공약만 번드르하고 버스값조차 모르는 꼴을 보며 정치한다고 나서는 건 자기들 밥그릇이나 챙겨먹는 노릇이라 생각했는데 국정 노트를 읽으면서 이게 바로 정치를 한다는 것이구나 비교하며 감각적으로 깨달았다. 

넷플릭스 순위나, 음악 차트 같은 것을 보면 우리나라 컨텐츠들이 세계 순위권에 올라있다. 부끄러운 한국밈 중 하나인 '두유노김치'나 우리가 보기에도 식욕이 떨어지는데 외국인은 오죽할까 싶은 대형비빔밥 만들기 행사 같이 그토록 열심히 했던 헛발질이 어느새 땅에 닿아가고 있음을 체감한다. 문화를 알렸더니 자연스럽게 '두유노'하지 않아도 우리를 알아준다. 그 바탕에는 " '노동력보다 사고와 지식의 힘이 시장을 지배하는 뉴 이코노미 시대가 도래했다'는 앨빈 토플러의 언급을 인용했다. 이어 영화, 애니메이션, 비디오, 게임, 음반, 출판 등 분야별로 한국과 세계 시장 규모를 비교하면서, 우리 문화 산업을 확장할 여지가 매우 크다는 점을 강조한다. p48" 문화의 힘을 강조한 정책이 있었다. 우리나라가 좋은 컨텐츠만 만들어내면 일본에서 항상 한국은 국가에서 보조해주니까,하며 별 것 아니라는 식으로 깎아내리는 말을 하던데 아마 이 시기를 말하는 듯 하다. 

더불어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대해서는 요즘 여러 생각이 든다. 확실히 우려했던 만화, 음악 같은 것들엔 오히려 영향이 덜하지만 술, 여행, 알 수 없는 일본풍 식당이나 술집 같은 것들의 수요가 늘어났다. " 김 대통령이 "최 교수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어떻게 생각하시오?"라고 물었다. 최 교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우리나라 청년들이 이미 많이 돌려보고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대통령께서도 금서 읽어 보셨죠? 저도 많이 읽었습니다. 금서의 정의는 '금지된 책'이 아니라 '인기 있는 책'입니다. 금서를 없애려면 단속할 게 아니라 그냥 풀어 줘야 합니다. 금서는 풀리는 그 순간부터 인기가 없어져서 사람들이 읽지 않습니다. 일본 대중문화도 똑같다고 봅니다." p53" 금서에 관한 생각은 확실히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가치보다 더욱 욕망하게 된다는 시각이 맞지만, 청산되지 않은 문제들이 남아있는 와중에 일본문화에 무비판적으로 노출되는 세대들이 많아 개인적으로는 안타깝다. 

책에 어쩔 수 없이 탄핵 당한 전 대통령의 행태에 대해서도 나오는데, 김대중 대통령의 노트 내용을 보다가 윤석열이 제1야당 대표와 회담하지 않는 이유를 밝힌 내용(p123)을 보면 무슨 말을 하는가 싶어진다. 공교롭게도 또 12.3인 비상계엄과 국제 사회의 위태로운 행보로 박살이 난 경제는 10조원 규모의 추경 필요성을 화두로 올려놓았다. 요즘 쓰레기 파파라치 때문에 시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데 언론사 세무 조사를 강행(p193)했던 것처럼 장기고액체납자들부터 과거 친일파 부당이득, 재산 환수 등 세수 확보를 위한 현명한 방안을 21대 당선자는 밀고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언론사 세무 조사에 있어 추징만 좀 많이 당할 것이란 당초 예상과는 다르게 3개 언론사 사주 구속(p210)까지 굴러간 스노우볼이었단 소회에 웃음이 나왔다. 

전임자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만 특히 다음 대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대통령과의 이야기(p215)가 최근 탄핵된 대통령의 행보와 비교되어 읽혔다. 국민들은 달라고 한 적도 없는 청와대를 돌려주겠다며 아까운 청와대 자리만 날리느라 전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찾아볼 수도 없는 행태에, 공부하고 시험봐서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자리에 서는 것보다 격부터 갖추고 인성을 다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보게 된다. 더불어 현재의 교육방식도 뿌리부터 개선되어야 하지 않나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꽤 유명하게 퍼져있는 대통령의 '문패p100' 일화는 이희호 여사와의 로맨스도 일부 함께 알려져 있는데 몇 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감탄이 나올만큼 진보된 사고다. 이런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보육을 강조한 모성 보호법과 여성의 경제활동 필요성 역설p106'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 뒤로 페미니즘의 움이 트려는 시도 끝에 이에 반발하는 역풍이 불어 갈등이 깊어지고 사회의 분위기는 더욱 경직되어 있으니 앞으로의 인식 개선 또한 멀다. 

각 장의 내용마다 대통령이 직접 작성했던 국정 노트의 복사본이 그대로 실려있는데 보고 놀랐다. 대부분이 한자로 적혀 있어 곁들인 조사나 어미, 간단한 한자와 간간히 적힌 영어 단어 말고는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나같은 사람은 이 중요한 노트를 대통령이 직접 미리 보여주었대도 아무 소용없었겠구나 싶어졌다. 다행이도 책에는 저자가 독자를 위해 직접 한자 내용을 하고 싶다. 솔직히 책 제목이나 표지를 보면 지루할 것 같은 인상을 주는데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과 이를 어떻게 타개해나가려 했는지 함께 설명이 되어 있어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었다. 왜 여기에 이 돌을 두었는지, 몇 수 앞을 염두에 두고 움직였는지 시류를 읽어나가는 힘이 마치 바둑 풀이를 보는 느낌이다. 6월을 앞두고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생각을 가다듬으며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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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의 꽃 - 내 마음을 환히 밝히는 명화 속 꽃 이야기
앵거스 하일랜드.켄드라 윌슨 지음, 안진이 옮김 / 푸른숲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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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읽은 책을 모아서 분류한다. 다른 사람에게 줄 것과 간직할 것. 대부분은 욕심껏 간직하는데 읽으면서 누군가가 떠오르면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보라고 주거나 혹은 새로 한 권을 사서 선물하기도 한다. 요즘은 책장 빈자리가 위태로워 욕심을 버리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런 말을 왜 하냐면, '화가들의 꽃'은 책장이 무너져도 간직하고 싶은 책이다. 

 처음 책을 펼쳐보고 책인지 꽃다발인지 모를 화사하고 아름답고 섬세하고 매혹적이고 다채롭고 관능적이고 강렬하고 감각적이며 암튼 좋은 수식어가 와르르 쏟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를테면 그림도 좋은데 그것도 명화들 중에 더욱이 꽃이라는 주제로 책을 내었다니! 좋은것에 좋은것을 더하면 더더욱 좋기밖에 더하나? 게다가 이 색감을 고스란히 살려내려 작정한 듯한 재질이라니. 푸른숲 정말 무서운 곳이다. 

 요즘 책을 읽을 때 뜻대로 진도가 안나가면 어디든지 들고 다니면서 한줄 읽고 다시 다른 일을 하고 늘 같이 다니려고 해보는데, '화가들의 꽃'은 그냥 좋아서 안고다녔다. 어딜 펼쳐봐도 빤히 들여다보게 되고, 예뻐서 홀리듯이 보고 또 보게 된다. 이런 제가 이상해보이겠지만 정말 책을 한 번이라도 보게 된다면 이해가 갈 것이다. 게다가 더 마음에 드는 점은 입은 닫고 직접 보여주는 편이 더 강렬하다는 것을 실행하듯 설명은 간결하고 작품은 풍부하다는 것이다. 

 페이지 전체가 작품으로 가득한 곳을 펼쳐놓고 있자면 시각부터 시작된 강렬함이 마음까지 스트로크로 전달된다. 책멍도 가능하다. 레이철 레비 '장미(p96/97)'들을 보고 있자면 향이 진해지다 못해 살짝 단내가 섞인 장미의 향이 느껴지는 것도 같다. 꽃은 그 자체로 균형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어 섬세히 그려낸 작품들이 자연스럽게 눈길을 끌지만 스탠리 비엘렌의 '라눙쿨루스(p84/85)'들이나 이본 히친스의 '짙은 색 양귀비(p80/81)'같은 작품을 보면 단순함이 주는 매력도 느껴진다. 

 얼마 전 다녀온 불교박람회에서는 주로 연꽃이나 모란이 그림 속에 등장했는데 마찬가지로 책에서 만나는 연꽃, 모란, 국화등 익숙한 꽃들은 일본 작가들의 작품이었다. 서양 쪽에서는 수선화나 팬지, 백일홍 등의 낯익은 꽃들도 등장하지만 특히 장미와 양귀비가 많은 사랑을 받았구나 싶었다. 생각해보니 화가들의 꽃 동양편도 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개나 자수로 표현된 꽃들도 함께 볼 수 있다면 정말 화려하고 예쁠텐데. 

 영화 '콘클라베'를 보며 사람은 오래된 것, 거대한 것, 아름다운 것 앞에서 압도당함을 느꼈는데, '화가들의 꽃'은 아름다움에 푹 빠져들 수 있는 책이다. 어느 새 만개한 봄꽃들을 보며 봄에 참 잘 어울리는 책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했지만, 어느 계절인들 또 안 어울릴까 싶다. 봄을 맞아 책장에 시들지 않는 꽃을 간직하고 싶다면 '화가들의 꽃'을 선택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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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 - 식민지 조선을 위로한 8가지 디저트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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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식민지 시대와 디저트라는 조합이 어색할지도 모른p5'다며 걱정했지만, 고종 황제가 즐겨 먹은 간식이라는 컨셉으로 카페들이 종종 있을만큼 생각보다 그 시대에 우리나라에 서양문물이 넘어와 향유되었음은 잘 알려져 어색하지 않다. 책에서 다루는 디저트들은 지금도 즐겨먹는 것들이라 각 장에 맞는 간식을 준비해두고 책을 함께 읽어나가도 재미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 두 소설을 고려하면 커피를 마실 때 설탕을 넣는 것이 일반적이었음도 알 수 있다. 지금 커피에 설탕을 타서 마시면 커피 맛을 모른다고 눈치를 주겠지만 당시에는 오히려 세련된 입맛을 자랑하는 것이었다. 정제당이 생산되기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유입, 확산되었을때, 하얀 빛깔의 설탕은 문명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p19"  아메리카노에 시럽 넣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아니다. 아메리카노는 소화제이자 뒷맛없는 간식이고 다음날 쓸 체력을 미리 끌어다 쓸 수 있는 현대인의 필수품인데, 거기에 단맛을 넣으면 먹은 것을 싸악 내려주지도 못하고 들쩍지근한 뒷맛이 남으며 쌉싸름히 퍼지는 각성효과가 반감되는 느낌적인 느낌이다. 하지만 라떼는 달아도 된다. 재밌는 점은 앵무새설탕이니 머스코바도니 하는 설탕들이 요즘도 세련된 취향을 보여주는 기호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 유진오도 1938년 6월 잡지 <조광>에 발표한 "현대적 다방이란?"이라는 글에서 다방을 둘로 나누어 설명한다. 하나는 '커피를 파는 끽다점'이고, 다른 하나는 '커피를 마시는 기분을 파는 끽다점'이라는 것이다. p54" 의도와는 다르겠지만 바로 저 '커피를 마시는 기분을 판다'는 것이 한동안 커피업계의 핵심으로 작용했다. 커피 맛이 일정 수준 이상 보편화되고 사람들이 카페를 찾는 기준은 가게의 분위기와 편의성에 더 중점이 되어 있었다. 요즘은 '맛있는 커피를 파는'에도 관심이 나뉘어졌는데, 에스프레소 바는 커피 자체의 맛을 즐기기 위한 공간으로 등장했다가 유행을 타면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기분을 파는' 곳으로 변화하는 듯하다. 

 이상과 메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나온 센비키야라는 가게가 지금도 도쿄 긴자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고 소개(116)된 것을 보니 가보고 싶어졌다. 마지막 순간에도 센비키야의 메론이 먹고싶다 할 정도의 상징성이 느껴질까. 메론의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참외로까지 이어지는데, 한국산 참외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80퍼센트 이상이 일본에서 수입한 개량종 긴센 마쿠와우리를 은천참외라는 이름으로 생산, 개량해나간 것이었다는 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127) 긴센 마쿠와우리가 은천참외가 되었다가 차매라는 이름으로, 코리안멜론으로 다시 외국에 알려지게 되는 과정을 보면 싫든좋든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고 있음이 느껴진다. 요즘 이 메론과 비슷한 위치의 과일이라면 망고 정도가 아닐까 싶다. 

 간식으로 소개된 만주와 호떡은 묘한 대비를 보인다. 둘다 당시 5전하는 값싼 간식거리인데 이미지는 서로 다르다. 만주는 고학생들이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파는 것, 호떡은 중국인들이 비위생적으로 만들어 좋지 않은 간식거리란 인식이다. 위생이야 지금까지도 유명한 이문설렁탕에 대한 설명만 보아도 서민들 간식거리가 다 비슷했을 텐데, 호떡의 이미지가 유달리 안좋은 것은 일본이 중국에 대한 인상을 부정적으로 만들려는 시도에서 영향은 받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호떡이 더 잘 팔렸다고 하니, 개인적으로도 호떡이 더 친숙하고 좋은 것으로 보아 한국인의 입맛에 더 잘 맞나보다.  

 라무네는 병이 특이해 처음 마셔보기 전까지는 꽤 궁금해했던 것 같은데 막상 마셨을 때는 개봉하기 묘하게 불편했다는 것 외에 다른 인상이 남지 았았었다. 사이다에게 자연스럽게 자리를 내어주게 된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초콜릿에 대해서는 연인들의 디저트라는 이미지에 대해 재밌게 읽었지만, 하필이면 일본과 이야기가 얽혀 있어 모 기업이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제품을 판매하면서 우리나라의 제품만 적은 양, 저품질의 성분을 사용하고 그 이유로 '한국인의 입맛엔 저렴한 식물성 유지가 더 잘 어울린다'는 답을 내놓았던 사건만 떠올라 씁쓸하기만 했다. 이어지는 계절 디저트들 고구마와 빙수의 소개는 무난히 읽었다. 일본식 빙수에 대한 인상은 사이다에게 자리를 빼앗긴 라무네와 비슷한데 간 얼음에 시럽을 뿌려 색은 예쁘지만 다양한 토핑의 빙수들에 익숙해진 입맛에는 실망스러운 맛이었던 기억이 있다. 

 모든 디저트들이 아직까지 흔히 접할 수 있는 것들로 친숙하면서도 새롭게 읽는 재미가 있었다. 처음엔 공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점점 옛 한글 표기법들도 눈에 익숙해지고 요즘의 디저트 문화와 비교하면서 다양한 생각을 하며 읽을 수 있었다. 여러 자료를 찾아 가능한 많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애를 썼음이 느껴진다. 일부 사진 자료들이 컬러로 실렸다면 더 좋았을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데, 역사박물관이나 군산, 인천 등의 관광지 방문을 즐겨하는 취향의 독자라면 책을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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