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뉴스로 출근하는 여자 - 빨래골 여자아이가 동대문 옷가게 알바에서 뉴스룸 앵커가 되기까지
한민용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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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호기심이었다. 책이 가지고 있는 이름들이 눈길을 끌었다. '최연소 여성 메인앵커', '최초의 여성 메인앵커' 같은 수식도 멋있지만 '빨래골 여자아이가 동대문 옷가게 알바에서 뉴스룸 앵커가 되기까지'라는 문구도 궁금했다. '빨래골'이 어디야? 

이런 호기심은 금새 실망을 불러왔다.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궁금했던 것이 이런 장치들이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로 소모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배경이 나의 것과 비슷해서 더욱 그랬다. 유년시절을 모두 한 곳에서 보냈다(13)는 이유로 자신의 내면이 빨래골에서 물든 것들로 채워졌다는 문장을 읽으며 어색했다. 같은 산자락의 다른 골을 끼고 있는 동네에서 30년쯤 살아왔던 나에게선 어떤 냄새가 날까. 고향을 떠올려보니 우습게도 그의 말에 틀린 것이 없었다. 내가 어디에 있건 나의 뿌리는 바로 그 동네였다.
다소 차가운 시선으로 책을 읽어나가다 맥주 판촉 아르바이트를 하고, 동대문에서 옷을 팔았던 이야기에서 어떤 깨달음이 번뜩였다. 이런 순간들을 불편과 극복으로 여겼기 때문에 더 나아가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사람이었구나, 그 순간을 그냥 다들 그러는 것으로 흘려보낸 사람과는 당연히 다르구나. 우린 서로 다른 사람들이니 타인의 경험을 나와 비교하려 들지 말고 그의 것으로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다시 새겼다. 한 번 생각이 바뀌니 작고 단단하게 뭉쳐졌던 마음이 풀어졌다. 
선배의 조언(68)을 보며 정말 괜찮은 사람들을 만나왔구나 싶었다. 그 뒤로 이어지는 만남들을 지켜보면서 저자가 주변 사람들을 좋게 보는 마음을 가졌구나 하고 생각을 고쳤다. 풀어진 마음은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말랑해졌다. 처음 비뚤었던 시선은 홀랑 사라지고 읽을수록 점점 저자가 마음에 들어왔다. 게다가 2부에 들어서면서 경찰서에서 버티기를 하며 지내는 '하리꼬미' 시절이 재밌었다. 기자들은 이런 생활도 하는구나, 몰랐던 뒷이야기를 알게 되는 호기심도 채워지고 JTBC로 옮기면서 달라지는 환경에 대한 이야기들도 특유의 불퉁한 속마음을 볼 때마다 공감되고 웃겼다. 
전체적인 톤을 무겁지 않게 썼기 때문에 재밌는 부분도 있고 읽기도 편하다. 하지만 매일 보는 기사 내용들을 떠올려보면 알다시피, 그가 초년생에서 직업인으로 성장해나가는 동안 겪었던 사건들이 우리 사회에도 큰 상처를 남긴 일들이라 다시 보기 괴로운 부분들도 있었다. 게다가 책을 쓰는 과정에서 123이 벌어졌으니, 광화문 촛불 시위를 이야기하며 지난 안부를 묻다가 난데없이 마침표를 지워야하는 사족이 붙기도 한다.(176) 책을 내는데도 중간에 속보를 띄워야하는 일이 생기는 기자/앵커 답다고 할까. 

기사로 자신을 말한다는 그의 답이 '아이들'이었을 때 마침내 대단한 사람에서 좋은 사람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도토리와 감자를 소중히 품은 첫 여자 앵커라는 사실은 대단한 사람의 도전만이 아니라, 그의 삶에서 존중받아야할 당연한 흐름으로 여겨졌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그를 만나볼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검프처럼이 아니라 그 자신대로, 그만의 길을 걸으며 지금처럼 꿈꾸는 또 다른 이들에게 길이 되어준다면 반갑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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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 범죄 너머에서 발견한 인간에 대한 낙관
정명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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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소장의 세계에서 범죄사실의 다정한 도입부가 끝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없다. 관계에서 비롯되는 범죄들의 끝은 주로 관계의 파멸로 마무리된다. 그래서 첫 문장의 관계가 돈독할수록, 범죄는 잔혹하고 애잔하다. 17"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 범죄수사와 관련된 내용을 담은 것들은 항상 인기가 많다. 어떤 사건에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경각심도 가지게 하며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며 사회 안전망에 대한 신뢰를 쌓고 죄를 지은 사람은 댓가를 치른다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무엇보다 매체에서 접하는 사건들은 자극적이다.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에도 그런 요소들이 담겨있다. 거기에 인간미와 삶에 대한 사유를 한꼬집 더 첨가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알고싶다] [용감한 형사들] [궁금한 이야기] [사건반장] 같은 프로그램을 자주 챙겨보는 사람이라면 텔레비전을 왜 보나,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읽으면 되는데. 

저자의 의도가 어느 부분에 더 중심이 맞춰져 있든, 읽으면서 솔직히 좀 웃겼다. [싸움의 기술 54] 같은 편에서 왜 남자들은 싸울 때 웃통을 벗는가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이 이루어지거나, 주민등록이 3으로 시작하는 피고인의 사건에 운을 떼면서 뒷자리 아니고 앞자리다. 42"하고 강조하는 부분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진짜 이상하고 상식에 맞지 않아 웃기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이런 사람들을 실제로 마주하면 웃기는 것을 넘어 공포스럽겠지만. 웃음이 지나는 길에는 눈물도 같이 흐른다. 얼마의 돈을 횡령했는가는 답하지 않아도 두부 만드는 과정은 설명하는 피의자(76)를 만나고, 우연히 이끌린 한 사건을 외면하거나 덮지 않고 10년을 고스란히 쏟아부어 마주한 선배 검사의 '쌩고생담'(129)을 소개한다. 웃다가 놀라다 바쁘게 읽다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따뜻해진다. 

" 공판검사는 세상의 끝으로 밀려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맞은편에 서 있다. 거기에서 항변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본다. 세상의 질서에 어긋나는 행위를 했다고 기소된 사람들의 자백하거나 후회하거나 항변하거나 회피하는 얼굴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인식한다. 층층의 지층 속에서 지구의 역사를 읽는 지질학자처럼 인간의 사랑과 욕망과 감정의 역사들을 읽는다. 120" 

1부의 내용이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2부는 좀 더 감성적인 터치가 들어간다. 1부에서 느꼈던 자극이 줄어들어 좀 심심해지나 싶을 때 '덜 녹아든 소금 입자가 팍 터지는 슈팅스타 볶음밥(179)'처럼 진솔한 삶의 매력이 마음에 울림을 준다. 3부는 저자의 삶에서 주변으로 시선이 이동한다. 읽다보면 상주에는 다 이렇게 사람 마음을 들었다놓는 '심쿵요정(233)'들만 있나 싶어 상주에 가보고 싶어진다. 10월 말이면 요양원에 누워있던 노인마저 동원되어 곶감 만드는 일에 진심(242)이 되고, 사건 이름 마저도 어떻게 '노루궁뎅이버섯 사기 사건(253)'인, 상주 홍보나 다름없는 내용을 읽다보면 언젠가 중앙시장에 가서 남천식당 우거지국밥을 먹으리라, 후식으로는 징검다리를 건너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겠노라고 특별히 밑줄을 그어두게 된다. 해외여행 너무 먼데 상주엘 가야지, 가서 긴 천을 따라 걸으며 곶감 맛을 봐야지 다짐해본다. 

검사라는 직업이라고 하면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천하무적으로 사건을 해결하거나 악의 세력과 결탁하여 타락하는 뭔가 보통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장화를 새로 사면 전문가인 엄마의 평을 기다리기는 애송이 구매자(278)이기도 하고, '암흑 같은 상사(163)' 때문에 할말은 많지만 하지 않기도 하는, 후배 앞에서 '비주류(168)'라서 쪽팔리기도 한, 춤에 너무 진심(197)이라 읽는 사람이 어쩐지 민망해지는, 회식 자리에서 술 따르느냐 마느냐로 무려 2부에 걸친 고민(그 시절, 우리가 술잔에 담았던 것들1,2)을 하는 어디서 본 것 같은 비슷한 시간을 보내는구나 싶기도 했다. 다만 하나 궁금한 것은 저자에게 고등어란 무엇인가. 고등어 삼촌(61)부터 진술을 고등어 뒤집듯(102)할 때, 고등어 대신 문어가 등장했어야 더 맞지 않겠는가. 그랬더라면 문어론이 존재론적 반론에 부딪쳤던 과거(151)도 위로가 되었을텐데 싶었다! 

" 인간의 법정이 내어줄 수 있는 답은 유죄 아니면 무죄이지만, 그것으로는 다 담지 못하는 거대한 생이 있다는 사실 앞에 우리는 자주 좌절한다. 122" 

날이 더워 차가운 물을 틀어두고 얼굴을 닦다 잠시 멈췄다. 수도의 방향을 가장 차가운 방향으로 돌려둔 것이 무색하게 물은 차갑다기 보다 시원했다. 겨울에 틀어두었던 차가운 물을 떠올려보면 너무도 다르다. 같은 물을 계절에 따라 다르게 느끼는 것인지, 어떤 차가움은 주체에 따라 다르게 여겨지는 것인지. 마침 읽고 있던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을 생각했다. 어떤 사건도 이 물처럼 상황이나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도 있을 것이고, 차가우리라 예상했던 물이 그렇지 못했던 것처럼 생각과는 다를 수도 있을테다. 이 차가움을 내 예상보다 더하거나 덜하다고 속단하거나 불평하지 않는 사람으로 계절을 보내야겠단 생각을 했다. 내 나름의 사랑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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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 따라 열두 달 여행 - 사진작가 위드선샤인이 추천하는 국내 여행지 90
박선영(위드선샤인) 지음, 박선영(위드선샤인) 글.사진 / 푸른향기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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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를 먹을수록 꽃과 자연이 좋아진다. 왜 이런 변화가 생기는지 모르겠지만 사진첩에 하나둘 늘어가는 꽃사진을 보며 실감한다. 또 하나 주말이면 가까운 어디론가 나들이를 다녀오고 싶어진다. 번화가로 나가 늦은 밤까지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주변이 트인 강이나 바다를 찾거나 산에도 가본다. 봄에는 꽃이 폈다고, 여름엔 날이 더워서, 가을엔 단풍이 들고 겨울엔 눈이 내려서 자연을 찾게 된다. 이럴 때 마침 '꽃길 따라 열두 달 여행'이 반갑게 나타났다. 아직 우리나라 구석구석 어디를 언제가면 좋을지 잘 모르는 초보 여행자에게 희소식이었다. 

 책에서는 열두 달 동안 계절의 변화와 함께 국내에서 찾아가 볼 만한 아름답고 특별한 여행지 90곳을 소개하고 있다. 여행을 기념할 수 있는 사진은 필수인데 '꽃길 따라 열두 달 여행'을 따라찍기만 해봐도 제법 멋진 추억을 남길 수 있을 것 같다. 소개된 곳들 중 내가 가본 곳이 있을까 헤아려보는데 생각보다 많지 않다. 가본 적이 있는 곳들도 다른 계절 다른 풍경을 보게 되니 낯설었다. 한번 다녀왔다고 해서 그 장소를 알게 된 것은 아니구나 싶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예쁘고 좋은 곳이 많구나 또 깨닫는다. 

 읽다보면 짧게 곁들여진 글을 읽는데 집중하기보다는 계절과 자신을 눈여겨보면서 어디를 가보면 좋을까 세세히 살펴보는데에 눈이 더  바쁘다. 의외의 장소들도 만난다. '충남 당진 합도초등학교 127'에 가득히 늘어진 등나무꽃의 청량한 빛은 어쩐지 동심과 어울렸다. 다음 봄에 가보고싶었지만 꽃을 보고 사진을 찍고 싶다고 초등학교에 함부러 들어가도 되나 싶기도 했다. '경기 시흥 관곡지 211'의 연꽃은 때마침 7월에 가까운 거리이기도 하니 주말에 나들이 다녀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사진작가인 저자가 책 안에 담아낸 사진들을 보다보면 국내 여행이나 집밖으로 나가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던 사람이어도 분명 눈길이 가는 장소가 생길 것이다. 장소와 계절에 따라 어찌나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옷차림까지 갖추고 예쁘게 사진을 찍었는지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특히 가을에 친구들과 함께 "경북 경주 대릉원 312"에서 찍은 사진들은 가을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낸 듯해 인상적이었다. 커다란 은행잎 사진(경기 여주 강천섬 300)도 보는 재미가 있었다. 

 특별한 순간이나 일상에서도 사진을 종종 찍지만 가끔은 사진으로 남기는 것에 너무 매몰된 것은 아닐까 싶어질 때도 있다. 오늘은 옷을 대충 입어서, 얼굴이 피곤해보여서 같은 이유로 사진을 안찍을 때도 있고. 그런데 '꽃길 따라 열두 달 여행'을 살펴보다보니 순간을 더욱 특별한 기억으로 남겨둘 수 있는 가깝고 쉬운 수단 중 하나가 사진 아닐까 싶다. 우리가 늘 가지고 다니는 핸드폰에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능이 충분히 있으니 조금만 더 신경 쓴다면 이렇게 멋진 추억으로 남길 수 있겠구나 싶어졌다. 

 표지의 수선화(충남 예산 추사고택 100)를 바라보다 문득 서산(충남 서산 유기방가옥 104)에 갔던 날이 떠올랐다. 서산은 그리 멀지 않아 사람들이 많이 간다던 소문을 듣고 찾아갔었는데 주차장부터 어쩐지 한적해 뭔가 이상하더라니 이미 끝물이라 방문객이 줄어든 시기였다. 그리하여 꽃도 사람도 적은 한적한 수선화 군락지였던 산책로를 돌아보니 조금은 섭섭했지만 그 자체가 추억이 된 여행이었다. 

 저자처럼 예쁘게 차려입고 꽃이 만발한 멋진 장소에서 사진을 남겼어도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했어도 떠남은 어떤 형태로든 남아 간직된다. 그 점을 다시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이제 '꽃길 따라 열두 달 여행'을 손에 들고 다시 멋진 여행을 도전해볼 수 있어서 더 좋을 것이다. 책 말미에 더 많은 장소들을 함께 소개하고 있으니 가까운 곳, 더 궁금한 곳들을 잘 살펴보고 모든 계절을 꽃으로 채워보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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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이름으로 (라울 뒤피 에디션) - 꽃과 함께 떠나는 지적이고 황홀한 여행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라울 뒤피 그림, 위효정 옮김, 이소영 해설 / 문예출판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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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을 가려둔 블라인드를 걷어 바깥의 푸르름을 바라보며 '봄의 이름으로'를 읽었다. 한참을 책만 바라보다 고개를 들었을 때 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함께 공유하지 못해 안타까울 정도로 계절은 푸르르다. 빗방울이 떨어져 한층 짙어진 녹음 사이로 바쁘게 오가는 작은 새들의 움직임을 좇다보면 페이지가 멈춰진 채로 시간이 오래도 지났다. 라울 뒤피의 그림과 함께하는 '봄의 이름으로'의 아름다운 표지 그 자체가 서재 책장에 놓여져 시들지 않는 꽃이 되어줄 것을 기대했었는데, 그보다 더 자연으로 몸과 마음이 향하도록 만들어주는 책이었다. 

 콜레르의 문장 안에서 꽃은 그가 그리는 관념으로 피어난다. 어떨 때는 이름만 같은 다른 꽃을 말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독특하다. "라일락이 우리 침실에 너무 가까이 있으면 무례하게 청산가리 냄새를 풍기는 연인이 된다? (66)" 특히 향과 라일락에 대한 표현은 보는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길을 가다가도 멈추게 만드는 라일락 향에 대한 평이 너무 잔인하다. '자투리(104)'의 내용에선 한국인의 나물 사랑에 대해 알았더라면 얼마나 놀랐을까, 어떤 글을 썼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맛있는 쓰레기통'의 "무청을 무와 함께 생으로 씹어 먹기(105)"는 좀 잘못된 시도였던게 맞긴하다. 

 그동안 팬지를 너무나 과소평가 했던 것은 아니었나, '파우스트(54)' 검은 팬지의 장을 읽으며 생각했다. 비교적 흔한 꽃인 팬지는 작고 노란꽃의 모양이나 색감이 나비같기도 하고, 안에서 밖으로 퍼지는 무늬가 야생동물의 얼굴을 닮은 듯한 귀여운 꽃이지만 그리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부드러운 질감이 느껴질 듯한 꽃잎의 아름다움도 인정하지만 왠지 모를 거부감이 있었는데, 팬지에 대해 찾아보다 식용꽃으로 자주 사용되는 종이라 그 이미지 때문이었던 듯 하다. 책에 나오는 검은 팬지는 처음 들어보기에 찾아봤더니 색이 다양하고 화려한 팬지들과는 결이 다르지만 굉장히 인상적인 화려함으로 돋보이는 꽃이었다. "오! 이 벨벳!" 

 책을 읽는 동안 낯선 꽃들의 이름을 찾아보느라 읽는 동안 바빴다. 몇 해 전부터 자꾸만 식물과 새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누구는 이런 변화가 나이듦이라고 하는데 세상은 볼수록 아름답고 경이로워 그 전에는 왜 자연에 무심했을까 싶게 좋고 귀해진다. 그러니 그동안 몰랐던 식물과 자연에 대한 책이 보이면 항상 반갑고, 궁금해진다. '봄의 이름으로'를 읽으며 정원과 들판으로 늘 자연과 가까이하며 지냈던 콜레트의 환경이 이런 독특한 에세이를 탄생시킨 거름이 되었으리라 생각하면 부러워다. 그는 이 모든 식물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고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고, 언젠가 박완서 작가가 이름 모를 꽃이란 것은 없다며 '작가는 사물의 이름을 아는 자'라고 했던 말이 아직도 깊게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식물을 좋아하지만 키워낼만큼의 책임이 없기에 사랑까지는 아닌 것 같아, 사랑한다는 것에 필요한 건 뭐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꽃에 대한 에세이를 앞에 두고 사랑이란 무엇일까 곱씹다니. 마침 유투브에서 찾아낸 '아침 봄 재즈' 플레이 리스트도 마음에 들던 비오는 날에, 무용하지만 아름다운 것들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 라울 뒤피의 흐드러지는 꽃들을 함께 감상하며 콜레트가 전하는 꽃다발을 가슴으로 안아보자.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여름의 푸르름 속에 향기보다 오래도록 남는 감성을 선사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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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없는 마음 - 양장
김지우 지음 / 푸른숲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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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애가 있는 나도 성공하는 것을 보여 주겠다, 그런 마음은 없었다. 한 푼만 줍쇼. 준다면 떠나겠습니다. 이 마음에 더 가까웠다. 7" 

 그녀가 극복 서사를 풀어나가거나 여행 바이블의 더미에 책 한 권-그러나 조금은 새로울-을 더하려는 것은 아닐까 예상했던 마음이 나에게 있었다. 첫 시작에 자각조차 하지 못했던 그런 시선들을 향해 '아니'라고 분명한 선을 긋고 나섰다. 선이 그어지고 나서야 그 선이 나에게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로는 조심스럽게 선 안으로 발을 들여 새로운 세계에 빠져들어가는 일만이 남아있었다. "아주 커다란 돌이 천천히 굴러가기 시작했(15)"던 그 순간, 이 사소한 이야기들에 정말로 빠져들었음을 느꼈다. 마음에서부터 올라온 신호가 목과 코끝을 타고 찡하며 울렸다. 

 '현장에 가서 잘 안 풀리면 박박 우(23)'기겠단 전략으로 날아간 타지에서 유쾌한 면모를 보여주는 소소한 사건들을 보며 즐거웠다. 특히 니야와의 트램 여행 무임승차 사건의 '겁나 많은 벌금...' '젠장...'(127)같은 소소한 대화나 독일 욕탕에서 노인들의 체조(101)를 보며 느낀 익숙함 같은 것들이 재밌었다. 바덴바덴이란 지명도 덕분에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았다. 그러나 가장 웃겼던 것은 여의도 불꽃 축제에서 인파에 갇혀 화장실도 못하고 널브러졌을 때 옆자리 아주머니가 강아지 소변 패드를 건네 주는 친절(144)을 보여줬던 사건(쓰진 않았다고 주장한다)이었다. 역시 한국인의 정이 제일이다. " '엄마 나 횡단보도에서 어떤 아저씨가'까지만 보낸 메시지에 현미가 '망할 놈이'라고 답장한 일은 두고두고 나의 웃음 포인트다. 96"라고 한 부분에서도 많이 웃었다. 

 "우리로 묶일 수 없는(51)" 자유롭고 개개인이 그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 분위기의, 하지만 그 자유로움이 불규칙함으로 이어지는 제멋대로의 도시인 파리. "아니, 이런 일은 생겨선 안 돼(107)" 하고 작은 어긋남 조차 용납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독일. -괜찮다고 말하는 저자에게 건네진 역무원의 단호한 말에 이 문장을 듣기 위해 여태 여행한 것 같았다는 저자의 말도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하고 싶어?(132)" 할 수 없을 것이라 자신조차 접었던 도전을 할 수 있다로 바꾸어 주고 의심하지 않는 마음을 알려준 호주.
나라마다 저마다의 특징과 매력을 잘 살려 보여준 내용들에 함께 빠져들어 읽었다. 

 읽으며 가장 좋았던 부분은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54)'의 내용이었다. 잔잔한 일상이 그려지면서 낯섦과 다름도 없이 평범하고 평온한 풍경이 이어질 것만 같은 느낌이 잘 전달되어 읽는 동안 편안했다. 어떤 난감하고 말도 안되는 일이 생기거나, 어려운 순간 예상치 못한 선의에 감동을 받는 내용들보다 더 인상적인 것이, 그녀가 온전히 자신으로서 존재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장소처럼 느껴졌다. 파리에서 시작된 책은 미국에서 마무리된다. 글로벌하다. 그리고 '굴러라구르'라는 이름처럼 그녀가 멈추지 않고 나아가고 있다는 신호가 되어준다. 

 "한국으로 돌아갈 때이다. 앞으로 만날 시간에서 어떤 나는 작아지고 어떤 나는 커질까. 지금은 내 몸 전체를 차지하는 어떤 내가 어느 순간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하겠지. 내가 사랑하는 나의 부분이 희미해지기도, 외면하고픈 어떤 부분이 거대해지기도 하면서. 그 새로운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또 어떤 관계를 맺을까. 새롭게 더 자랄 내가 기대되었다. 동시에, 다시는 만나지 못할 이 순간의 내가 그리웠다. 196" 

 책을 통해 저자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세바시 강연이나 다양한 활동을 활발히 하는 열정적인 활동가였다. 인터넷 검색 창에 저자를 검색해보면 열심히 바퀴를 굴려 앞으로 나아가려 노력한 활동들을 만나볼 수 있다. 앞으로의 자신을 기대하는 모습이 풋풋하고 예쁜만큼 기대되기도 했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확신하지 못하고 방황하게 되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 '굴러라 구르'가 보여주는 선명하고도 확실한 세계, '의심없는 마음'을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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