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의 밤 - 네덜란드 은손가락상 수상작
안나 볼츠 지음, 오승민 그림, 나현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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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이었지만 셋이 되었고, 우리가 넷이었다는 사실이 도움이 되었다는 도입부는 '터널의 밤'이 정해진 슬픔으로 갈 수 밖에 없음을 알려주었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독일의 공습을 받고 있던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기 때문에 죽음과 폐허가 된 일상이 담겨 있으리란 예감은 했지만 엘라와 로비, 제이, 크윈을 차례로 만나며 그 애들이 넷에서 셋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어리단 생각을 했다. 이 소년소녀들의 만나 함께 폭격을 버텨내는 상황은 만화 '세븐시즈'*를 떠올리게 했다. 

시대적 배경이 되고 있는 2차 세계대전 - 우리는 이 슬픔과 고통을 우리의 것에 비추어 함께 이해해주는데, 반대로 우리의 슬픔과 고통이 저들에게 얼마나 이해받고 있는가를 떠올리면 씁쓸하다. 하켄크로이츠가 왜 티셔츠의 무늬로 사용되거나 의도되지 않은 배경으로도 소모되어서는 안되는지, 욱일기 역시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인지하는 서양인들이 얼마나 될까. 얼마 전 읽은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서 우리 것을 훔쳐가 이렇게 잘 보존하고 전시해놓은 나라에서 자신들의 것은 얼마나 더 귀히 다루겠는가**했던 문장이 떠올랐다. 자신들이 겪은 고통과 상실의 역사를 끊임없이 재생산해 이를 마땅히 함께 존중하고 분담하도록 하면서 같은 시기의 일본이 행한 침략과 착취, 비인도적 행위를 연결해내지는 못하는 점이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우리가 과거를 두고 어떤 반성과 교훈을 얻었던간에 전세계적으로 극우정당이 다시금 힘을 얻고 있고, '지나간 역사'로 일컬어지던 파시즘이 불길한 역사의 반복을 향해 그림자를 뻗어나가는 흐름을 보인다. 이미 전쟁을 치르고 있는 나라들이 있고, 그 안에 우리와 같은 언어와 뿌리를 가진 사람들도 군인으로 생명을 빼앗으며 동시에 잃어가고 있다. 전쟁을 하고 있지 않은 나라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서로 이권을 놓고 다투며 갈등과 긴장의 양상이 흐르고 있다. 심지어 한 국가 안에서도 국민을 향해 총부리가 겨눠지고, 한 사람의 시민이 온몸으로 장갑차를 막아서는 밤이 지났다. 평화를 말하는 모든 의미있는 것들 문학, 음악, 미디어, 선행, 생명까지도 차갑고 무력하게 느껴질 때 그래도 평범한 우리들은 이렇게 책을 읽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터널의 밤'은 그런 의미를 전해준다. 

마구간 소년이 많이 등장하고 강조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크윈의 귀족적인 면모를 상쇄해줄 인물이 아니라 새장161를 한번 더 드러나게 해주는 인물로 작용하는 부분이 좋았다. 

얼마 전에 영화를 한 편 봤는데, 굉장히 아름답고 깊은 여운을 남기는 영화였다. '화이트 버드'***라는 제목의 영화인데 '터널의 밤'과 배경, 인물이 비슷했다. 전쟁 상황에서 유대인인 여자주인공 사라가 독일군에게 끌려갈 위험에 처했을 때 남자주인공 줄리안과 그의 가족이 그녀를 돕는다. 줄리안 역시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하다. 줄리안은 예쁜 소녀인 사라를 짝사랑하고 있었지만 절름발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당하고 사라에게 자신의 이름조차 알리지 못했다. 이 짧은 소개만으로도 소아마비로 특수신발을 신고 다니는 엘라와 지나치게 잘생겨 땀냄새까지도 달콤한 소년 제이가 떠오를 것이다. '터널의 밤'을 감명깊게 읽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아름다운 이야기에 매료되었다면, 전쟁과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스크린으로 옮겨 환상적인 동화처럼 -그러나 그 슬픔을 찬연하게 담아낸 이 영화를 함께 감상하길 추천한다. 

*'세븐시즈, 타무라 유미'가 뭐냐면, 이 설명이 필요한 분은 그냥 보세요. 물론 저는 요즘 행복한 사이다 형식이 아니면 못보는 병에 걸려 감상을 중단하긴 했지만 괜찮은 만화입니다. '터널의 밤'은 특히 '겨울 팀'을 떠오르게 한다.
** 뺏어 온 것도 잘 보관하고 또 그 역사를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니 자기들 것에 대한 애착은 말할 나위도 없겠구나. 이미 많이 빼앗긴 우리들은 그나마 남은 것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지 돌이켜보아야 하겠군'하고 말이에요. 17. 서장 빠리에 오세요 중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 창비
***화이트버드, 2025개봉 
동명 원작소설 '화이트 버드'와 같은 작가의 데뷔작 '아름다운 아이'가 각각 영화 '화이트 버드', '원더'로 만들어져 이어지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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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보와 볼보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90
김혜연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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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고 슬퍼라, 책장을 덮으려니 소리보다 눈물이 먼저 나왔다. 정해진 상처가 눈앞에 보이는데도 그저 조금 어떤 인물인지 더 알게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동수에게 너무했다 싶었다. 조금 덜 아픈 인물로 그려주었어도 좋았을텐데, 세상에 아픈 일들이 너무나 많은데 차마 건축가를 꿈 꿀 줄도 몰라 포클레인 기사가 되고싶었던(142) 소년에게, 오래도록 누군가를 기다리느라 불조차 들어오지 않는 방에서 온종일 굶어도 가만히 있는 것 밖에 할 줄 몰랐던 어린아이였던(135) 소년에게 참 너무했다. 처음엔 애꿎은 포클레인에 돌을 던지던 주현이가 안타까웠는데 나중엔 나도 어딘가를 향해 돌을 던지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졌다. 

 " 그날 주현은 어른이 되는 장거리 경주에서 동수가 막 자신을 추월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 3이 되자 동수는 운 좋게 일찌감치 지역의 작은 건설 회사에 현장 실습생으로 취업했다. 그런데 그게 운이 좋았던 걸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동수의 첫 근무지는 아파트 건설 현장이었다. 거기서 쥐꼬리만한 실습비를 받은 날 주현에게 치킨을 사 주었다. 53" 

 처음 일을 시작했을때, 정말 얼마 되지 않는 월급을 받는 날이면 가족들을 불러모아 먹고 싶은 것을 고르게 했었다. 월급이 적으니 큰마음을 먹었어도 사줄 수 있는 음식은 고작해야 치킨이며 피자나 중식 요리 정도였었다. 몇만원을 계산하면서도 가끔은 손을 떨어야했는데 그때 마음은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이상하게도 지금은 수입이 생겼다고 해서 누군가와 함께 먹을 음식을 사지 않게 되었다. 그때보다 훨씬 더 비싼 식당에 가서 밥을 사도 그만큼 뿌듯한 기분이 들진 않는다. 그래서 동수가 쥐꼬리만한 실습비를 받은 날 주현이에게 치킨을 사주었다고 했을 때,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오래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던 것처럼, 또 어떤 어리고 꿋꿋한 사회초년생들이 작고 소중한 월급을 받는 날이면 적금, 교통비, 식비, 학자금, 공과금, 월세 사이에서 몇만원을 살짝 빼들고 한턱 낼 것이다. 소중한 사람들이 둘러앉아 맛있게 먹는 모습에 어깨를 으쓱하며. 

 " 그날 밤 한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나 당신에게 진심으로 부탁하러 간 거야. 용기가 필요했어. 당신 말대로 일을 더 크게 벌이는 게 위험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해. 그래도 해 보고 싶어. 당신이 가까이에 있으면 덜 무서울 것 같아.
그는 메시지를 읽고는 휴대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만히 쓰다듬었다. 130" 

 보통의 어른이 되는 일은 모두에게 숙제다. 주현이나 동수, 은수처럼 어른이 되어가는 길을 찾아가는 아이들에게도, 길 위에 서서 여전히 이 길이 맞는지 제각각의 방향을 찾아 헤매는 어른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볼보와 볼보'가 좋은점 중 하나는 어른이 된 인물들의 시간도 진솔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한나와 헤어지고 혼자가 된 종훈이 느끼는 외로움과 혼란도 다른 아이들의 사정과 다르지 않게 숨김없이 드러내어 종훈이 동수를 일방적으로 구원해주는 완벽한 인물로 그리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은수의 삼촌도, 느닷없이 아이를 집 밖으로 뛰쳐나가게 만들었던 괴물같던 은수의 아빠도, 홀로서기를 시작한 한나도 나이를 먹고 저절로 어른이 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들도 세상 앞에서 여전히 흔들리고, 다시 단단해지기 위한 시간과 의지처가 필요한 사람들임을 말한다.  

 친구를 두고 혼자만 어른이 될 수 없어 방황하던 주현이도, 세상과 부딪혀 영혼이 다치고 혼자가 된 종훈도, 친구에게도 제 속내를 털 어놓지 못하던 은수도, 한때는 누군가의 꿈을 위한 표가 되어줄 수 있었던 은수의 아빠도 모두가 삶을 살아내기 위한 통을 겪어낸다. 알고보면 나쁜 사람은 없다고,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결국은 모두를 이해할 수 있어서 하나같이 애틋해진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몫만큼만 해내고 싶었을 뿐인데 그 '보통의 어른'이 되는 일이 가끔은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동수가 닫았던 마음을 열고 다시 주변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처럼, 종지부를 찍었던 종훈과 한나가 다시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기로 마음 먹은 것처럼, 방황하는 주현이에게 기회와 지지를 보내주는 가족이 있어준 것처럼, 은수가 친구에게 솔직해질 수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길은 있음을 보여준다.  

  처음 어린시절 너무나 좋아했던 '클라우디아의 비밀'이 나왔을 때(15) 반갑고 슬펐다. 몇번이고 다시 읽었던 그 책을 언제부터 책장에 꽂아둔 채로 다시 열어보지 않았을까. 분수대에 들어가 몸을 닦으며 사람들이 던져둔 동전을 줍던 장면을 누군가는 여전히 사랑하고 아껴주겠지,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볼보와 볼보'도 성숙하고 치열한 인물들이 유리창이 깨진 볼보 포클레인과 털이 잔뜩 엉킨 강아지 볼보를 두고 조심스럽게 얽혀 결국 서로의 방향이 되어주고 더 아래로 주저앉지 않도록 안전망이 되어 주는 관계성에 위로받고 공감해줄 것이다. 모두가 애틋해서 한참동안 표지를 눈으로 덧그렸다. 어린아이가 색연필로 그린 것 같이 빼곡하고 순수한 표지의 그림이 볼수록 여러 감상을 불러일으켰다. 마음을 울리는 맑고 투명한 감성의 청소년도서를 만나보고 싶다면 '볼보와 볼보'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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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지의 힘 꿈꾸는돌 42
이선주 지음 / 돌베개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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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나 좋아하냐?" 
유익표는 상대를 모욕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p14" 

 가만히 읽으려고 했는데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졌다. 쉽게 마음을 열고 웃어주지 않으려 했는데 금방 웃어버려 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했다. 걱정했던 익표와 여준이는 학폭이 아니었고 3년 동안 삐지고 달래던 사이가 회복됐으니 안심이었는데, 어른의 색안경도 함께 빠지는 장면이었다. 애들은 잘못이 없다. 어른이 문제였다. 하지만 익표의 잘못은 분명했다. " 애들은 유익표가 하는 말은 다 거짓으로 들었기 때문에 유익표가 나와의 사이를 인정하자 우리 둘이 아무 사이 아니라고 확신하게 됐다. 뜻밖의 효과였다. p127" 익표야, 대체 어떤 삶을 사는거니? 

 매번 웃음이 터지는 것은 아니지만 '검지의 힘'은 정말 재밌다. 게다가 그 안에 감동도 가득하다. 이렇게 짧고 잘 읽히는 글 안에 재미와 감동, 게다가 현실적인 고민들까지 다 채워넣은 이 장르를 어떻게 안 좋아할 수가 있을까. 막상 청소년 시기에는 반드시 읽어야 할 현대문학과 고전 명작, 머리 터지는 SF, 자극적인 추리소설 같은 것을 읽느라 몰랐던 것이 아쉽다. 살짝 유치한 것 같으면서도 어설프게 요즘 유행하는 말 같은 걸 끼워넣지 않은 덤덤함도 매력이다. 정말 추천해주고 싶은데 주변 아는 청소년중에 책을 좋아하는 청소년이 드물다는 것이 안타깝다. 

 " 슬정아가 웃었다. 슬정아처럼 잘 안 웃는 애들의 장점은 한번 웃을 때마다 상대방에게 뿌듯함을 안겨 준다는 데 있다. 내가 웃겼어, 하는 뿌듯함. 성적이 오를 때보다 남을 웃길 때 더 큰 희열을 느낀다. p43" 책 읽다가 깜짝 놀랐다. 광대 역할을 하느라 전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깨닫고 보니 남들 얘기에 웃어주는 역할이 추구미였다. 이루질 못해서 그렇지. 웃기는 애는 우스운 애 되기도 쉽다는 씁쓸한 현실과 웃기는 애보다 웃어주는 애가 더 매력있게 보인다는 사실을 다 웃기고 나서 알았다. 잠깐의 뿌듯함 때문에 지은 수치의 산이 백두산은 아니어도 동네 뒷산 만큼은 된다. 남은 생은 평탄화 작업 하는데 써야지. 

 '검지의 힘'에서도 이별이 나오는데, 하지와 영인의 이야기를 읽다가 며칠 전 사거리 횡단보도 한 가운데서 우연히 친구를 만났다고 반가워 펄쩍 뛰어오르며 소리를 지르던 여고생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람은 언제 늙고 어른이 되는가 했더니 그 모습이 풋풋하고 예뻐보이면 그때 되는가보다 싶기도 했다. 요즘은 길다가 학생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면 그게 그렇게 예뻐보인다. 어두운 골목길에서는 좀 무섭고. 나에게도 그런 친구들이 있던 때가 있었다. 하교할 때 헤어져놓고 동네 길목 어딘가에서 마주치기만 해도 반가웠던 얼굴들, '야'하고 뛰어가 온몸을 내던져 서로를 안으며 반겼던 투명함. 

  그렇게 세상 영원할 줄 알았던 친구들과 어느새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지금이 책을 읽으며 차례대로 '강물처럼 흘렀다'(3. 우정은 강물처럼 흐른다). " 초등학교 3학년에 만나 고등학교 1학년까지 나의 부모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했던 친구가 떠나간다. 나비와 함께 나의 일부도 떠나보낸 듯 공허했다. 그러나 따라갈 수는 없다. 친구는 그곳에서, 나는 여기에 남아 각자의 인생을 꾸려 갈 것이다. p123" 하지와 영인의 이별을 아름답고 성숙하게 보여주었지만, 현실에서는 아무런 준비도 예감도 없이 지나고보니 평범했던 그 날이 마지막 만남이 된 인연들이 많다. 자연스럽게 정리된 인연들이었지만 맛있는 것 사주고 좋은 말 해주고 꼭 한 번 안아줄 걸 아쉬웠다. 그저 가끔 마음으로나마 '친구의 미래에 영광이 함께 하기를, 나는 하늘의 구름처럼 온몸으로 친구를 축복(124)' 할 수 밖에. 

 청소년도서를 좋아하는데 가끔은 읽다가 지칠 때도 있다. 아주 작은 부분이 계기가 되어 잊고 있었던 과거가 떠오를 때다.  조금 기분 나쁘고 말았던 혹은 그때는 별 생각 없던 사소한 일들이 기억도 나지 않고 있다가 단 한 장면을 통해 떠오른다. 다른 책들을 읽을 때 개인적인 경험이나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청소년도서를 읽을 때 되살아나는 것들은 어쩐지 그중 가장 예리하고 연약한 부분을 찔러온다. 그때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다른 소설들이 그냥 검지라면, 청소년도서는 특별히 힘이 센 검지라서 가끔 부주의하게 '검지의 힘'을 써버렸는지도 모르고. 하지만 찔릴 것이 두려워 읽지 않기엔 너무 재밌고 매력있는 책이다. 검지의 힘을 옮길 때처럼 간절하게, 이 매력을 전달하고 싶다. "(읽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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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이세요? 창비청소년문학 133
표명희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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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핸드폰에도 당근 어플이 깔려있다. 당근을 그럭저럭 잘 사용하고 있는데 워낙 이름난 악명에, '그것 조금 아끼자고 중고로 산다고?' 하는 표정을 짓는 사람을 가끔 만나기 때문에 당근 어플을 종종 이용한다는 것을 굳이 드러내지 않고 쓴다. '당근이세요?'의 제목을 보고 내용이 정말 궁금했다. 소설집이니까 당근거래를 매개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들어있을까 기대했는데, 그럼 틀림없이 재밌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의외로 깊은 '문제'를 담고 있는 내용들이 이어졌다.  

딸꾹질은 묘했다. 아홉살의 지완은 아무리 '엄마 뱃속에서의 태교부터 시작해 몬테소리, 프뢰벨을 거치며 샛별유치원과 지금의 성실초등학교 입학까지 훌륭한 교육 프로그램(10)'을 거쳐왔다 해도 너무 성숙해보였다. 이것도 아이가 아이다워야 한다는 편견일까. 하지만 자꾸만 어색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지완이 충동적으로 캔을 따는 상황도 묘했다. 축구도 지완에게도 이변이 일어나는 순간이어서 그랬나? 사실 트럭을 탄 지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가 더 궁금했는데 갑자기 끊겨 아쉬웠다. 이 이변은 지완이를 더 성숙하게 만들어줄까, 아이처럼 보이게할까. 

" 보라가 먼저 노래책을 집어 들고 선곡을 한다.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다. "전국노래자랑 분위기로 가는 거야?" 눈을 동그랗게 뜬 나영이의 반문에 보라가 대꾸한다. "우리 엄마 십팔번이야." p77" 갑자기 튀어나온 제목에 놀랐는데 이어서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 클론의 '쿵따리 샤바라' 제목이 이어진다. 부모님의 십팔번을 부른단다. 아, 슬프다. 이거 다 아는 곡들이구만. 보라의 아픈 마음처럼 내 마음도 아프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누구보다 자식 교육에 관심이 큰 보라의 엄마가 베트남에서 스물다섯살이나 많은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서 한국에 왔다는 것, 알콜중독이던 아빠는 결국 간암으로 시집온지 10년도 안돼 죽고 혼자 보라를 키워왔다는 것이 한동안 마음에 걸려 남는다. 

" '그러니까 어머니께서 아주버님 생일날 면회 다녀오시고 며칠 뒤에 있었던 일이었나 봐요. 광주에 투입된 게......' 엄마도 한 번씩 나름의 짐작으로 옛이야기에 끼어들었다. 가족들 사이에 오가는 큰아빠 군 생활 관련 얘기는 짐작과 추측에 지나지 않았다. 당사자인 큰아빠가 그 일에 관해 얘기한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가족 모두, 아니 이제는 온 국민이 다 아는 일이건만 정작 큰아빠는 지금껏 자신이 겪은 일을 털어놓은 적이 없다. p102" 지완이의 이야기에 등장한 근대사의 각종 날짜들을 보며 어느 정도 짐작했는데, '오월의 생일 케이크'에서는 더 깊은 상흔을 드러낸다. 군대에 다녀온 이후로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고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가는 큰아빠가 등장한다. 지완은 심부름으로 할머니댁에 가는 길에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는데, 그런 지완의 혼란스러움과 큰아빠의 이야기가 세대를 잇는 이해를 그려낸다. 

네 이야기 모두가 하나씩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개를 보내다'는 읽으면서 특히 피로감을 느꼈다. 가장 일반적이고, 문제의식조차 희미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이다. 진서의 생일날 아버지에게 선물로 받은 강아지 진주는 유기견 출신이다. 가족의 동의 없이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채 진서의 생일 선물이 된 진주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답답하다. 다른 이야기들은 중간에 갑자기 끊긴듯한 마무리로 궁금함을 자아냈는데 진서의 이야기만은 마지막까지 마무리 지어진 채로 끝나 그 점만은 개운했다. 그 안에서 진서가 많이 성장했음도 느껴졌다. 기대와는 다른 색의 내용을 만나게 됐지만, 아이들이 읽기에 참 좋은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떤 부분들은 더 핍진성있게 설정되었다면 좋았으리란 아쉬움도 주지만, 모든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에 대해 생각해보고 이어지는 독후 활동으로 넘어갈 수 있는 주제를 던진다는 점이 큰 장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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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공부 - 최재천과 함께하는 어린이 성장 동화
함주해 그림, 박현숙 글, 최재천.안희경 원작 / 김영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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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휴, 저 나쁜 놈."p4" 서문의 시작부터 엄청 웃었다. '열심히 키워놨더니 저 혼자 알아서 큰 줄 안다'고 종종 말하는 엄마가 떠올랐다. 아마 때때로 이제 좀 컸다고 잔소리에 "한마디도 지지 않고 사사건건 논리 싸움을" 걸어대는 나에게도 부모님은 욱하셨겠지 짐작한다. 얼핏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자는 아이들에게 부모님 말씀에 복종하지 말고 힘을 내서 부모님을 설득하라고 북돋는다. 하고 싶은 공부에는 무조건적인 반항이 아니라 스스로의 심지를 굳히고 나아가라는 나침반이 들어가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성장 동화여서 깨끗하고 순수한 인물들이 등장해 읽는 내내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정우와 건이, 소리가 세트처럼 붙어다니게 된 계기와 미묘한 친구사이를 드러내는 부분에선 저절로 잇몸이 드러난다. "'소리는 나와 건이 중에 누구를 더 좋아할까?' 요즘 나는 그게 제일 궁금하다. p16" 소리가 누굴 더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아줌마는 이런거 좋아해... 이 삼각관계는 두 친구의 경쟁심이 이리저리 튀어나오며 서로가 성장하도록 돕는다. 그 안에서 세 친구 사이의 균형을 위해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비밀로 놓아두는 소리의 성숙함도 좋았다. 

동화나 청소년 도서를 읽을 때면 항상 느끼지만 매번 배울점이 있고 감명을 받는 점도 있다. 대상이 어린아이여서 쉽게 말할 뿐 그 안에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겪어보고 비로소 깨달은 것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해의 순간은 전혀 상관없어 보이던 것들이 모이고 쌓여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 실패나 실수가 모든 것을 망칠 것 같은 걱정에서 가장 나쁜 것은 실수나 실패보다 걱정하느라 괴로워하는 마음인 것, 도전하면 성공하거나 실패해도 모두 경험이라는 바탕이 되니 두려워하지 않고 일단 도전할 것. 아이들이 봤을때는 깊이 있게 다가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책을 읽고 조금이라도 마음이 넓어지고 편안해지는데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 아, 저번부터 말하려고 했는데 이건 아주 중요한 말이거든. 기분 나쁘게 듣지 마라. 너, 조금 비만이지? 나는 소장님 말에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쉬며 아랫배를 집어넣었다. 공부를 하려면 몸이 건강해야 해. 건강하려면 운동을 해야지? 그래야 오늘처럼 여기저기 공부하러 다닐 수 있으니까.p107" 읽다가 깜짝 놀랐다. 건강, 자기관리 역시 중요한 문제이지. 어른도 하고 싶은 공부, 가고 싶은 장소, 살고 싶은 삶을 살려면 건강해야 한다. 심지어 먹고 싶은 음식을 먹기 위해서도. 생각지도 못했던 조언이 등장하며 이렇게 또 배운다. 

읽던 책을 끝내고 다른 책들을 읽기 전에 비교적 가볍게 읽어보려 했는데 생각보다 깊이 있게 읽었다. 끝에 가서는 마음이 미묘해졌는데, 방황하는 수우도 자신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 저자는 중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할 때 학부모를 함께 초청하곤 한다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로 아이와 부모가 함께 읽으면 더 좋겠다. 어쩌면 아이들보다 어른이 깨닫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열매를 깰 용기를, 어른에게는 마땅히 아이들이 깼어야 할 열매를 귀애한다는 마음에 대신 깨려고 했던 게 아닐지, 자기 몫의 열매가 무엇일지 헤아려보는 시간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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