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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보와 볼보 ㅣ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90
김혜연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5년 5월
평점 :
아이고 슬퍼라, 책장을 덮으려니 소리보다 눈물이 먼저 나왔다. 정해진 상처가 눈앞에 보이는데도 그저 조금 어떤 인물인지 더 알게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동수에게 너무했다 싶었다. 조금 덜 아픈 인물로 그려주었어도 좋았을텐데, 세상에 아픈 일들이 너무나 많은데 차마 건축가를 꿈 꿀 줄도 몰라 포클레인 기사가 되고싶었던(142) 소년에게, 오래도록 누군가를 기다리느라 불조차 들어오지 않는 방에서 온종일 굶어도 가만히 있는 것 밖에 할 줄 몰랐던 어린아이였던(135) 소년에게 참 너무했다. 처음엔 애꿎은 포클레인에 돌을 던지던 주현이가 안타까웠는데 나중엔 나도 어딘가를 향해 돌을 던지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졌다.
" 그날 주현은 어른이 되는 장거리 경주에서 동수가 막 자신을 추월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 3이 되자 동수는 운 좋게 일찌감치 지역의 작은 건설 회사에 현장 실습생으로 취업했다. 그런데 그게 운이 좋았던 걸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동수의 첫 근무지는 아파트 건설 현장이었다. 거기서 쥐꼬리만한 실습비를 받은 날 주현에게 치킨을 사 주었다. 53"
처음 일을 시작했을때, 정말 얼마 되지 않는 월급을 받는 날이면 가족들을 불러모아 먹고 싶은 것을 고르게 했었다. 월급이 적으니 큰마음을 먹었어도 사줄 수 있는 음식은 고작해야 치킨이며 피자나 중식 요리 정도였었다. 몇만원을 계산하면서도 가끔은 손을 떨어야했는데 그때 마음은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이상하게도 지금은 수입이 생겼다고 해서 누군가와 함께 먹을 음식을 사지 않게 되었다. 그때보다 훨씬 더 비싼 식당에 가서 밥을 사도 그만큼 뿌듯한 기분이 들진 않는다. 그래서 동수가 쥐꼬리만한 실습비를 받은 날 주현이에게 치킨을 사주었다고 했을 때,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오래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던 것처럼, 또 어떤 어리고 꿋꿋한 사회초년생들이 작고 소중한 월급을 받는 날이면 적금, 교통비, 식비, 학자금, 공과금, 월세 사이에서 몇만원을 살짝 빼들고 한턱 낼 것이다. 소중한 사람들이 둘러앉아 맛있게 먹는 모습에 어깨를 으쓱하며.
" 그날 밤 한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나 당신에게 진심으로 부탁하러 간 거야. 용기가 필요했어. 당신 말대로 일을 더 크게 벌이는 게 위험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해. 그래도 해 보고 싶어. 당신이 가까이에 있으면 덜 무서울 것 같아.
그는 메시지를 읽고는 휴대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만히 쓰다듬었다. 130"
보통의 어른이 되는 일은 모두에게 숙제다. 주현이나 동수, 은수처럼 어른이 되어가는 길을 찾아가는 아이들에게도, 길 위에 서서 여전히 이 길이 맞는지 제각각의 방향을 찾아 헤매는 어른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볼보와 볼보'가 좋은점 중 하나는 어른이 된 인물들의 시간도 진솔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한나와 헤어지고 혼자가 된 종훈이 느끼는 외로움과 혼란도 다른 아이들의 사정과 다르지 않게 숨김없이 드러내어 종훈이 동수를 일방적으로 구원해주는 완벽한 인물로 그리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은수의 삼촌도, 느닷없이 아이를 집 밖으로 뛰쳐나가게 만들었던 괴물같던 은수의 아빠도, 홀로서기를 시작한 한나도 나이를 먹고 저절로 어른이 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들도 세상 앞에서 여전히 흔들리고, 다시 단단해지기 위한 시간과 의지처가 필요한 사람들임을 말한다.
친구를 두고 혼자만 어른이 될 수 없어 방황하던 주현이도, 세상과 부딪혀 영혼이 다치고 혼자가 된 종훈도, 친구에게도 제 속내를 털 어놓지 못하던 은수도, 한때는 누군가의 꿈을 위한 표가 되어줄 수 있었던 은수의 아빠도 모두가 삶을 살아내기 위한 통을 겪어낸다. 알고보면 나쁜 사람은 없다고,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결국은 모두를 이해할 수 있어서 하나같이 애틋해진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몫만큼만 해내고 싶었을 뿐인데 그 '보통의 어른'이 되는 일이 가끔은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동수가 닫았던 마음을 열고 다시 주변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처럼, 종지부를 찍었던 종훈과 한나가 다시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기로 마음 먹은 것처럼, 방황하는 주현이에게 기회와 지지를 보내주는 가족이 있어준 것처럼, 은수가 친구에게 솔직해질 수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길은 있음을 보여준다.
처음 어린시절 너무나 좋아했던 '클라우디아의 비밀'이 나왔을 때(15) 반갑고 슬펐다. 몇번이고 다시 읽었던 그 책을 언제부터 책장에 꽂아둔 채로 다시 열어보지 않았을까. 분수대에 들어가 몸을 닦으며 사람들이 던져둔 동전을 줍던 장면을 누군가는 여전히 사랑하고 아껴주겠지,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볼보와 볼보'도 성숙하고 치열한 인물들이 유리창이 깨진 볼보 포클레인과 털이 잔뜩 엉킨 강아지 볼보를 두고 조심스럽게 얽혀 결국 서로의 방향이 되어주고 더 아래로 주저앉지 않도록 안전망이 되어 주는 관계성에 위로받고 공감해줄 것이다. 모두가 애틋해서 한참동안 표지를 눈으로 덧그렸다. 어린아이가 색연필로 그린 것 같이 빼곡하고 순수한 표지의 그림이 볼수록 여러 감상을 불러일으켰다. 마음을 울리는 맑고 투명한 감성의 청소년도서를 만나보고 싶다면 '볼보와 볼보'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