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라도 동해 - 동해 예찬론자의 동해에 사는 기쁨 언제라도 여행 시리즈 2
채지형 지음 / 푸른향기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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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허는 있으나 운전은 하지 못하면서 이상하게도 국도라는 말은 마음을 설레이게 만든다. 마음속의 인상으로 고속도로는 연휴 때면 수많은 차들로 막히는 하지만 번듯한 휴게소가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길이고, 국도는 어느 길이고 들어서면 한적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은 낡고 오래된 휴게소마저 무대같은 길처럼 느껴진다. 물론 운전자에겐 안 막히는 길이 가장 가슴 설레는 길이겠지만. 그래서 작가가 동해를 처음 찾을 때 20분은 더 걸려도 국도를, 이름부터 멋진 38번 국도를 선택했다는 부분에서 반가웠다. 우리 뭔가 통하는 게 있을지도 모른단 기대감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선곡을 만났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손에 꼽게 좋아하는데, 삽입곡인 calling you 이야기에 반갑다 못해 설레었다. 
 
 " 오뚜기칼국수도 할머니가 운영하신다. 도와주는 분이 있지만, 할머니가 진두지휘하며 칼국수를 낸다. 한 그릇 비우고, 두 손으로 돈을 드리면 "고맙습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라고 덕담을 건네신다. 같은 말도 할머니의 목소리를 빌려 들으면 결이 다르다. 정겹고 친절하고 사랑스럽고. 두 식당에 사람들이 줄 서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느낌으로나마 어렴풋이 알 것 같다. 65" 

 '언제라도 동해'가 마음에 쏙 들었던 것은 먹는 이야기가 풍부하다는 이유도 있다. 사소한 한 마디이지만 덕담 한 마디를 건네주시는 마음에 묵호에 가게 되면 꼭 '오뚜기칼국수'에 가봐야지 마음 먹게 되었다. 요즘은 이런 사소함이 참 반가운데,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친 어느 층의 이웃이 고개를 까닥여 가벼운 인사만을 건네도 그게 참 고맙고 좋다. 그런 마음도 "설명하기 힘들지만 느낌으로나마 어렴풋이" 공감되는 것 같아 좋았다.
 책을 읽다보면, 동해가 작가를 끌어들여 집어삼킨 것 같단 느낌을 받았다. 마음속에 담겨져있던 동해에 대한 마음을 부르고 불러 동해로 향하게끔 만든 것 같은 수많은 부름이 곳곳에 있었다. 강연, 한달살기, 책방, 후배 오사, 동식 선배의 도움, 심지어 책방 개업에 맞춰 찾아온 손님들까지 전부 동해가 보내온 신호같았다. 이곳을 찾아오고, 머물고, 사랑하라고. 꽃을 건네며 축하를 나누었던 서호책방의 사장님 이야기를 보며 배우 박정민이 출판업계의 매력에 대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서로를 경쟁상대로 보고 이기려하지 않고 좋은 책을 독자에게 선보이는 것에 더 열심인 사람들이라 좋다고 했었는데, 그 꽃이 바로 그런 의미같아 보였다. 
 한동안 크게 난 불 때문에 모두의 마음도 함께 타들어갔던 날들이 있었다. 오래된 절이 불에 탔을 때 눈물을 참지 못하시던 스님의 모습, 피할 줄도 모르고 피해를 입은 동물들, 안타깝게 스러져 간 소중한 생명을 뉴스에서 볼 때면 답답하기도 하고 안타까웠는데 작가가 경험한 화재 현장의 모습(123)은 실제적인 공포도 함께 느껴졌다. 잎새바람을 찾아가다 벼랑 끝에 차가 걸린 일(66)이나 나도 겪어본 적 있는 이석증 증상(208)도 덩달아 심각하게 읽었다.
 반면 읽으면서 웃게 만든 부분도 있었는데 영화 [봄날은 간다]의 유명한 대사인 '라면 먹고 갈래요'를 '라면 먹을래요'로 바꿔버린 부분(147)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라면 먹고 갈래,하는 물음은 의미심장해 보이는데 라면 먹을래,하고 물으면 무슨 라면? 계란 몇개 넣을건데?하고 답해야할 것 같은 실전이다. 마음이 잘 가는 작가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공감도 잘되고 이입도 잘되어 '언제라도 동해'를 읽는 동안 표정이 수시로 바뀌고 있었다.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온 여행지는 홍천의 '행복공장(160)'이다. '내 안의 감옥'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1.5평 되는 공간에 혼자 들어가 오로지 독서를 위한 자발적 격리? 수감?을 체험할 수 있는 숙소였다. 밥도 방문에 달린 배식구를 통해 건네 받아 해결하는 것을 보니, 언젠가 친구와 절을 찾았다가 언뜻 들어온 무문관 수행과 비슷했다. 나는 깊이가 얕아 도전해보기도 망설여지지만 친구라면 가능할 것 같단 생각을 하며 읽었다. 

 책은 4장에 가서야 동해를 방문하고 싶다면 이렇게 해보라며 열가지 제안을 건넨다. 그제서야 아, 이 책 여행책이었지! 되새긴다. 그러니 지금껏 보여주었던 동해와 동해살이의 매력은 뭐 별 것 아니었다는 듯이, 더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여행지로서 즐길 수 있는 동해의 매력은 줄이고 줄여 이 정도 있으니 골라보세요,하고 자랑하는 듯 했다. 특히 해파랑길은 몇 해 전부터 걸어보고 싶어 사진첩에 저장해두었던 곳이라 눈에 밟혔고, 무릉별유천지의 라벤더 밭이 뽐내는 그림같은 풍경도 마음에 들어 눈여겨보게 되었다. 
책문화축제, 북크닉, 강연, 낭독회에 근처 사장님들과의 소소한 차모임까지 작가는 바쁘고도 활력이 넘치는 성향을 맘껏 뽐내며 현지인의 삶을 즐긴다. 길을 가다가도 가자미를 건네받는 묵호의 슈퍼스타(144)가 아닐까 싶은데 덕분에 직접 100퍼센트로 즐길 동해의 삶을, 오히려 120퍼센트로 나눠받는 기분을 느끼며 책을 읽었다. 현지인이 추천하는 여행지, 맛집을 키워드 삼아 여행 떠나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목적지를 정착지로 만들어버린 작가의 '언제라도 동해'를 꼭 만나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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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로 마음먹은 당신에게 - 나를 활자에 옮기는 가장 사적인 글방
양다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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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방에서의 시간은 작가가 되기 위한 연습, 책을 쓰는 과정이라기보다 한주간 맹렬히 삶과 싸운 누군가가 보고 들은 것들을 목격하는 일에 가까웠다. 글자들이 살아 있다 못해 그 자리에서 내가 그 사람의 삶을 겪는 것만 같았다. 누군가의 얼굴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5" 

 글쓰는 삶을 살아가고 꿈꾸는 사람들은 많다. 챗GPT가 사진만 쥐여주면 무슨무슨애니메이션 풍 그림을 재현해내는 것이 유행했을때 멀거니 세상 참 좋아졌구나, 했는데 문체를 몇 개 학습시키고 이러저러한 내용을 넣은 글을 써달라고 하니 금새 제법 읽을만한 글을 뽑아냈다는 말은 어라, 싶었다. 그렇다면 쓰는 사람들은 무엇에 마음을 두고 계속해서 써나가야 할까. 쓴다기 보다는 읽기에 더 가까운 편이지만 문득 덜컥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쓰기'에 대한 의미를 찾아보고 싶어 책을 펼쳤다. 
 이 정중하고도 가혹한 관리자는 챗GPT에게 글 하나 써와보라고 명령하는 사람보다 더하다. 힘드신가요? 쓰세요. 떨리나요? 쓰세요. 어렵나요? 쓰세요. 뭐하세요? 쓰세요. 응원합니다, 쓰세요. 기다립니다, 쓰세요. 그냥, 쓰세요. 모든 말이 '쓰세요'로 귀결된다. 게다가 얼마나 냉혹한지 "내 글을 읽는데 차마 너무 흉측해서 도저히 읽을 수 없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글이 늘었다는 증거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보이는 것마다 다 뜯어 고치세요.(181)한다. T인가 싶다. 

 "같은 시공간 안에 있어도 같은 이야기를 공유하지는 않습니다. 57"는 문구는 무려 올해 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일과 일치했다. 친구와 전처럼 자주 만나게 되지 않으니 만나게 된 날에 있었던 일과 생각을 친구가 기록하는 것처럼, 나는 나대로 적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었다. 그리고 연초에 그 말을 친구에게도 직접 해놨는데 아직 지켜지지 않았다. 생각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고, 벌써 반환점을 돌아 7월. 2025년 이대로 괜찮은가 잠시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넘어져서 무릎을 다쳤을 때, 다쳤다는 슬픔과 고통보다 무릎에 대한 자각을 앞세우는(114) 사람이어서 새로웠다. 압구정 로데오 한복판에서 넘어져 무릎을 다쳤을 때, 나는 창피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은 자세로 넘어져 기어이 바지에 구멍을 낸 채로 피를 흘리고 있으면서 고통과 함께 쪽팔림이 밀려오던 그날을 떠올렸다.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생각을 하는구나, 하면서. 

 '타인이라는 바다로 입수하기(152)'에 이르러서야 글감을 발견한 듯 했다. 몇해 전 친구와 서로의 얼굴을 그려주었던 일이 떠올랐다. 우리는 서로 자신의 미술적 재능이 좀 더 낫다고 주장했는데, 시간이 지나고보니 역시 내가 좀 더 나았던 걸로 확신하게 되었다,고 다시 주장해본다. 어찌되었든 그때 유심히 바라보고, 뚫어지게 관찰되던 시간이 익숙했던 누군가를 새롭게 바라보는 경험이 되어 기억에 남아있다. 인터뷰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한 번 글감을 발견하고 나니, 어떤 주제들 앞에서는 오랫동안 멈춰있게 되었다. 거짓말과 어린시절에 대한 주제가 연달아 나왔을 때(234,240)나 '행복한 가정은 서로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자 자기 방식으로 불행하다.'는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문장을 떠올리게 한 불행에 대한 주제(270)들이 그랬다. 신화와 꿈이라는 주제, '당신이라는 신화(287)'에서는 태몽이 글감이 되면 어떨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책을 읽기만 해볼거야, 난 뭔가를 쓰는 성향은 아니야'하고 생각하다가도 이렇게 갑자기 쓸만한 주제를 만난 것처럼 책을 읽다 문득 눈길이 가고 머리속에서 떠오르는 뭔가가 생긴다면 놓치지 않고 쓰기에 도전해보면 좋겠다.  

 읽으면서 아쉬웠던 것이 수신자들의 답장이 어땠을까,하는 궁금증이 점점 커지는데 채워지지 않은 채 끝맺었다는 점이다. '사랑을 사랑 없이 말해볼게요'라는 주제(124)를 마주했을때, 인터넷에서 본 '양말에 구멍이 났다.를 구멍이란 단어없이 다시 써보기 도전'을 떠올렸다. '어쩜 가난이란 것은 발끝까지 옮는지'라고 적은 문장이 인상적이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사랑을 사랑없이 말해보는 주제는 어떤 답들이 나왔을까 궁금했다. 
 서간문으로 되어 있는 책은 오랜만에 만나본 것 같은데, 이 다정한 권유이자 능글맞은 압박을 받은 '쓰기로 마음먹은 당신'들이 어떤 글을 썼을까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 어떤 답장을 보냈는지, 혹은 참여자들이 작성했던 글이 아니더라도 인터뷰 형식으로 편지를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함께 볼 수 있었다면 더 재밌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 여러분은 이제 '쓰는 것의 필연성' 앞에 섰습니다. 쓸 것이냐 말 것이냐는 이 책을 펼치기 전까지의 질문입니다. 여러분 앞에는 이제 그저 '무엇을 쓸 것인가'만 남아 있습니다. 질문이 한 걸음 앞으로 이동한 것입니다. 쓸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던 힘이 무엇을 쓸까로 옮겨왔을 때 어떤 힘을 발휘할지, 저는 기대됩니다. 91" 

 '쓰기'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책이 전해주는 다양한 글감과 약간의 압박감이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쓰기로 마음먹은 당신에게'는 읽어보라 추천하지 않고 이 책을 써보라(이용해보라)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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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워서 생각하기로 했다 - 현명하고 지적인 인생을 위한 20가지 조언
도야마 시게히코 지음, 장은주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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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소 엉뚱한 제목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책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인간은 모름지기 누워야만 한다. (126)"는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누워있을 수 있는데 왜 누워있지 않죠? 누워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누워서 하면 이득이 아닌가. 누워서 할 수 없어서 굳이 몸을 일으키게 만드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범상치 않은 사람인가 싶어 흥미를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읽기 시작하기 무섭게 멈추게 되는 문장을 발견했다. "전쟁이 시작되자 군대에 들어갔고, 전쟁에 패한 후 어영부영 대학을 나와 17" 하는 부분이었다. 이 전쟁이 그 전쟁이 맞나? 저자가 23년 생으로 나와 있어 그 전쟁이 맞구나 헤아려보니 갑자기 눕거나 말거나 싶어졌다. 

 책의 구성이 단호한 제목을 붙이고 그에 따른 완곡한 설명으로 되어 있는데, 제목이 단호하고 다소 극단적으로 지어진 탓에 '왜? 꼭 그래야 하나?' 약간의 반발심이 섞인 의문을 갖게 되는 면이 있다. 어떤 내용인지 받아들이기 전에 벽을 먼저 쌓으며 공격적으로 책을 읽는 것은 아닌가 싶었는데 " 생각에도 다양한 방식이 있지만, 생활 습관으로 본다면 그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 이해가 가지 않고 의문이 든다면 허심탄회하게 "왜?", "어째서?"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99"는 내용을 책에서 보고 계속해서 의문을 가지며 읽어나가기로 했다. 

 " 아침에는 활력이 가득해서 의욕이 지나치기 쉽다. 무모한 일정을 짜기 십상이다. 36" 는 부분이 있는데 나와 정반대의 성향이었다. 보통 잠들기 전에 내일 뭐할지 생각하곤 하는데, 난 꼭 그때 의욕이 충만해져서 오늘 못했던 일들을 내일 일어나면 꼭 해야지 다짐하곤 한다. 내일은 꼭 운동을 하고, 냉장고 정리하고, 집청소도 해야지 완벽한 하루를 계획했다 일어나면 피곤해서 다시 드러눕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보통 아침에 계획한 일은 그날 반드시 하고 전날 밤에 잠들기 전 계획한 일은 아침에 일어나서 취소하곤 한다. 어떤 성향의 사람이 더 많을까? 

 책의 내용을 전부 거리두며 읽은 것만은 아니다. 누워서 생각하면 힘을 아낄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읽으며 공감하게 된 부분은 "다른 분야 사람하고 놀아라 (104)"였다. 확실히 분야가 다른 사람들과 모이게 되면 전혀 생각지 못했던 지점을 찔러 들어오기도 하고, 몰랐던 분야에서 닮은 점을 찾게 되는 등 새롭고 신선한 활력이 도는 때가 있다. 다만 이런 경우는 정말 성공적인 날이고 대부분은 서로 각자 하고 싶은 말을 하다 끝나거나, 배려하느라 대화의 흐름이 겉돌다가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아래의 문장만 봐도 저자는 전자의 경우를 주로 경험했음이 분명한 듯 하다. 

 " 듣기로는, 요즘 젊은 연구자들은 사람 만나길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예전 같으면 학회가 끝나고 함께 한 잔 마시곤 했는데, 지금은 각자 재빨리 돌아가 버린다. 모임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늘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은 담론풍발을 경험하지 못하고 일생을 마치게 되지 않을까. 쓸쓸하기 그지없다. 111" 

 많은 부분에서 저자가 나이 많은 구세대의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지긴 하는데 이 부분에서 특히 강렬하게 다가온다. 특유의 꼬장꼬장함과 자기자랑이 곳곳에서 보이는 데다가,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다른 모임 자리가 이루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꿈에도 해보지 못한 듯한 태도가 조금 웃기기도 하다. 이 뒤로도 '가로쓰기'에 대한 폭발적인 거부반응(누워서는 안 되는 문자117)이 나오는데 일본어 가로쓰기를 "자연의 섭리에 반하는 행위(120)"로 규정하는 이 내용도 극단적인 반대표현이라 웃음이 나온다. 또, 하이쿠 모임에 여성회원이 증가하면서 명사 중심에서 동사 중심의 변화가 생기자 즐기던 하이쿠에서 멀어지게 되었다(202)고 말하는 내용에서도 특유의 경직된 사고가 느껴지는데 이를 비판적 의식이나 개선의 여지 없이 드러내곤 한다. 

 '나는 누워서 생각하기로 했다'는 솔직하다. 이 솔직함은 때로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236)를 들었을 때의 어색함 같기도 하고, 타인의 렌즈에 찍힌 자신의 모습(237)을 낯설게 보는 것과도 비슷하다. 저자가 오랫만에 만난 아침 운동 지인이 인사차 건넨 말을 들으며 한동안 만나지 못해 고령인 당신이 " "죽은 줄 알았다"라고 말하려는 듯한 표정이어서 조금 우스웠다.(155)"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어서, 감기약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공복인 식전에 먹어야 된다는 이론(162)을 만들고 실천하는 사람이어서, 그걸 솔직히 글로 적어내는 사람이라서 불쑥 들이치는 거리감에도 불구하고 재밌게 읽었다. 생각보다 가볍게 빠르게 읽히는 책이니 부담없이 읽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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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는 어떻게 현실을 바꾸는가
브라이언 애터버리 지음, 신솔잎 옮김 / 푸른숲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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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가 원한다면 유토피아는 SF, 판타지 심지어 디스토피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명시적으로는 유토피아가 아니지만 기존의 사회와는 다르고 교훈이 되는 모델이자 상호 작용의 도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유토피아를 이루는 진정한 조건은 독서라는 행위와 그에 따른 독자의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가 찾고 있는 유토피아는 바로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 283"


 판타지 작품에 흥미를 가지고 있고 더불어 장르에 대한 조예를 겸하고 있는 독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 될 책이다. 물론 그렇기에는 조금 부족한 바탕을 가지고 있는 독자에게는 아예 낯선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판타지 작품보다 어렵게 다가올 것이다. '판타지는 어떻게 현실을 바꾸는가'는 판타지라는 장르를 다각도로 분석하는 책이다. 서문을 제외한 총 아홉가지 주제로 판타지 안에서 기능하는 메타포와 구조, 또 외부로 작용하는 영향력을 분석한다. 

 이런 류의 책을 읽을 때면 그 분석이 자세하고 다채로울수록 아쉬워질 때가 있는데, 책에서 예를 들며 설명하는 작품들의 태반을 모르고 있을 때이다. 책에 나오는 짧은 설명으로는 감을 잡기 어렵기도 하고, 어떤 내용인지 재밌을 것 같아 궁금해져 읽다가 아쉬워지는 지점들이 많았다. 이 책이 출판사에서 출간한 판타지 문고 기획물의 특별판이나 끝맺음으로 등장했어야 더 좋았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판타지 기획으로 쭉 낯선 작품들을 따라 읽어왔는데 사실 이 책의 이해와 재미를 위한 발판이었다,는 것이었다면 더욱 흥미로웠겠다. 

 초반보다 후반으로 갈 수록 더 익숙한 작품들을 마주칠 수 있는데 '환상 동화'가 판타지 작품의 계보 앞에 서면서 '잭과 콩나무', '백조 왕자', '푸른 수염', '용감한 꼬마 재봉사' 나 많은 공주들이 등장한다. 내용은 살짝 아동문학에 담긴 시대적 배경 같은 흐름으로 이어지지만 확실히 이해가 쉽다. 읽으면서 한국형 판타지로는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홍길동전'이나 '심청전'같은 작품도 판타지가 아닐까 싶다. 주인공의 고난과 모험이나 현실과 닿은 다른 "더 나은 세계가 있다는 생각(241 유토피아 문학)"도 그 안에 존재하고 있고. 이들보다 좀 더 세련된 작품으로는 '연이와 버들 도령'이 떠오르는데, 이 작품 기억하는 사람 있으려나 모르겠다. 

 인상적인 정의 중 하나였던 '두려움은 스토리의 원동력이다(376)' 부분은 여러 작품들 안에 존재하는 갈등과 충돌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이야기에는 항상 갈등이 존재한다. 내부 세계와 외부 세계의 충돌이 있고 주인공이 현실에서 성장해나가며 겪는 충돌이 있다. 주인공은 마치 알을 깨고 나오려는 것처럼 세상 밖으로 나가려 한다. 이 투쟁(데미안), 성벽 너머 세상에서 자신만의 황금별을 찾기 위한 여정을 꿈꾸는 자들(뮤지컬 모차르트), 위험한 섬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는 사람들과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려는 첫 도전(영화 모아나)에서 모든 모험이 시작됨을 떠올리게한다. 

 더불어 이 모험을 통해 " 우리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통해 죽음과 그에 대한 공포에 압도되거나 지배당하지 않는 법을, 다만 두려움에 이름과 얼굴을 부여하고 우리 삶의 한 공간을 내어주는 법을 배운다. 411"고 판타지가 우리 삶에 어떻게 그 영향을 미치는지 말해주며 끝을 맺는다. 처음엔 다소 부담스럽게 다가온 책이지만 읽다보면 나름 재미를 찾을 수 있다. 재미를 추구하던 '문학의 미토콘드리아(230)'가 정치, 성, 사회, 역사를 두루 거쳐 판타지를 바라보도록 해준다. 흥미로운 책이었다. 판타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내공을 걸고 도전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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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덕목 - 존경받는 리더는 무엇이 다른가, 2018 노틸러스도서상 은메달 리더 시리즈
에드거 샤인.피터 샤인 지음, 노승영 옮김 / 심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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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요즘 두드러지는 현상으로 조직은 구성원을 기능에서 인간으로 보기 위해 노력하는 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오히려 구성원은 조직 안에서 인간보다 기능으로 머물기를 바란다. 말하자면 조직은 2단계, 전인적 관계(61)를 지향하지만 구성원은 1단계인 업무적 관계(55)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조직 시스템의 변화가 구성원의 태도보다 더 낫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나긴 소통의 단절과 인력을 소모품으로 착취하는 노동문화가 고착화 된 탓에 퇴근 시간이 되면 일이 진행 중이어도 자리를 정리하고 퇴근하는 '돈 받은 만큼만 한다' 직장 사람들과 대화는 커녕 인사도 나누지 않는 '일하러 왔으면 일만 한다' 는 태도가 합리적이고 편하다는 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과거 직장에 뼈를 묻으면 정년과 노후가 보장되었던 세대는 지나갔다. 조직은 오히려 직원이 뼈라도 묻을까봐 조직 안에서 안정을 찾은 인원들에게 희망퇴직 같은 이름을 붙여 내보내기 급급했다. 직원들은 더 많은 권한과 급여를 받기 위해 승진을 하려고 노력하기 보다 승진에 따르는 업무적 부담을 먼저 고려한다. 차라리 주어진 일만 처리하고 정해진 급여를 받는 것에 만족한다. 문제를 제기하면 해결 방안을 요구하고, 기획을 제안하면 업무를 떠넘기며, 조직 내에서 관계를 원만히 유지하려 하면 호의를 이용하려 하는 기존의 틀을 거부하는 것이다.

 조직이 유지되는데에는 제 몫을 수행하는 구성원들이 필요하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비전과 열정을 가지고 조직과 함께 발전해나가려는 의지를 가진 구성원들 또한 필요하다. 하지만 반감과 불신으로 굳어진 조직문화에선 성장의 원동력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를 바꾸고 조직원들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리더의 덕목'을 조직심리학의 거장이자 50년 경력의 MIT 슬론 경영대학원 석좌교수인 에드거 샤인이 피터 샤인과 함께 남긴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다. '리더의 덕목'은 '존경받는 리더는 무엇이 다른가'는 질문을 통해 리더십을 관계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해준다.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할 무렵은 -1단계(53)나 다름 없는 조건이었다. 어리숙한 초년생에게 업무에 대한 책임을 빌미로 6개월에 한번 정해진 시점에만 퇴사가 가능하다는 계약서를 내밀었을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고 다른 직장들을 거쳐 마침내 수평적 기업 문화를 추구하는 조직에 이직했을때 자율과 복지를 보장하는 시스템을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제도를 이용하는 조직원들이 생겨날 것임을 확신하고 기업은 이 손실을 지탱해낼 수 없을 것이라 여겼다. 자발적으로 간수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위치에 서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리프레시 공간을 두고, 조직원 개인의 문제를 상담, 지원해주는 제도를 마련해두고, 업무 일정을 승인받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유연성은 높은 자유도와 함께 책임과 몰입을 가져왔다. 프로젝트의 리더에게 업무 지시를 받는 것이 아니라 목표점을 찾고 진행 상황을 논의하며 협력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 새로운 조직 문화와 이를 이끌어나가는 리더 역할의 중요성을 체감하고나니 조직원의 위치에서도 '리더의 덕목'이 흥미롭고 궁금했다. 조직이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을 더 깊게 이해하고 싶어진 것이다.  

 대부분의 내용을 흥미롭게 읽었는데, 레몬 연습(228)같은 부분은 본질적인 의도를 놓고 보아도 다소 난감했다. 레몬 연습을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가 어려울 것이라 생각되는데 문화적 차이 때문인지, 좀 더 적극적으로 열린 마음을 갖지 못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봐야 할 책이지만 조직원의 입장에서 자신에게 '리더의 덕목'을 읽어볼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몸담고 있는 조직을 혹은 추구해야 할 조직의 기업문화란 어떤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서, 다양한 사례와 우화를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내용으로 되어 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본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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