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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라도 동해 - 동해 예찬론자의 동해에 사는 기쁨 ㅣ 언제라도 여행 시리즈 2
채지형 지음 / 푸른향기 / 2025년 6월
평점 :
면허는 있으나 운전은 하지 못하면서 이상하게도 국도라는 말은 마음을 설레이게 만든다. 마음속의 인상으로 고속도로는 연휴 때면 수많은 차들로 막히는 하지만 번듯한 휴게소가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길이고, 국도는 어느 길이고 들어서면 한적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은 낡고 오래된 휴게소마저 무대같은 길처럼 느껴진다. 물론 운전자에겐 안 막히는 길이 가장 가슴 설레는 길이겠지만. 그래서 작가가 동해를 처음 찾을 때 20분은 더 걸려도 국도를, 이름부터 멋진 38번 국도를 선택했다는 부분에서 반가웠다. 우리 뭔가 통하는 게 있을지도 모른단 기대감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선곡을 만났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손에 꼽게 좋아하는데, 삽입곡인 calling you 이야기에 반갑다 못해 설레었다.
" 오뚜기칼국수도 할머니가 운영하신다. 도와주는 분이 있지만, 할머니가 진두지휘하며 칼국수를 낸다. 한 그릇 비우고, 두 손으로 돈을 드리면 "고맙습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라고 덕담을 건네신다. 같은 말도 할머니의 목소리를 빌려 들으면 결이 다르다. 정겹고 친절하고 사랑스럽고. 두 식당에 사람들이 줄 서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느낌으로나마 어렴풋이 알 것 같다. 65"
'언제라도 동해'가 마음에 쏙 들었던 것은 먹는 이야기가 풍부하다는 이유도 있다. 사소한 한 마디이지만 덕담 한 마디를 건네주시는 마음에 묵호에 가게 되면 꼭 '오뚜기칼국수'에 가봐야지 마음 먹게 되었다. 요즘은 이런 사소함이 참 반가운데,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친 어느 층의 이웃이 고개를 까닥여 가벼운 인사만을 건네도 그게 참 고맙고 좋다. 그런 마음도 "설명하기 힘들지만 느낌으로나마 어렴풋이" 공감되는 것 같아 좋았다.
책을 읽다보면, 동해가 작가를 끌어들여 집어삼킨 것 같단 느낌을 받았다. 마음속에 담겨져있던 동해에 대한 마음을 부르고 불러 동해로 향하게끔 만든 것 같은 수많은 부름이 곳곳에 있었다. 강연, 한달살기, 책방, 후배 오사, 동식 선배의 도움, 심지어 책방 개업에 맞춰 찾아온 손님들까지 전부 동해가 보내온 신호같았다. 이곳을 찾아오고, 머물고, 사랑하라고. 꽃을 건네며 축하를 나누었던 서호책방의 사장님 이야기를 보며 배우 박정민이 출판업계의 매력에 대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서로를 경쟁상대로 보고 이기려하지 않고 좋은 책을 독자에게 선보이는 것에 더 열심인 사람들이라 좋다고 했었는데, 그 꽃이 바로 그런 의미같아 보였다.
한동안 크게 난 불 때문에 모두의 마음도 함께 타들어갔던 날들이 있었다. 오래된 절이 불에 탔을 때 눈물을 참지 못하시던 스님의 모습, 피할 줄도 모르고 피해를 입은 동물들, 안타깝게 스러져 간 소중한 생명을 뉴스에서 볼 때면 답답하기도 하고 안타까웠는데 작가가 경험한 화재 현장의 모습(123)은 실제적인 공포도 함께 느껴졌다. 잎새바람을 찾아가다 벼랑 끝에 차가 걸린 일(66)이나 나도 겪어본 적 있는 이석증 증상(208)도 덩달아 심각하게 읽었다.
반면 읽으면서 웃게 만든 부분도 있었는데 영화 [봄날은 간다]의 유명한 대사인 '라면 먹고 갈래요'를 '라면 먹을래요'로 바꿔버린 부분(147)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라면 먹고 갈래,하는 물음은 의미심장해 보이는데 라면 먹을래,하고 물으면 무슨 라면? 계란 몇개 넣을건데?하고 답해야할 것 같은 실전이다. 마음이 잘 가는 작가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공감도 잘되고 이입도 잘되어 '언제라도 동해'를 읽는 동안 표정이 수시로 바뀌고 있었다.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온 여행지는 홍천의 '행복공장(160)'이다. '내 안의 감옥'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1.5평 되는 공간에 혼자 들어가 오로지 독서를 위한 자발적 격리? 수감?을 체험할 수 있는 숙소였다. 밥도 방문에 달린 배식구를 통해 건네 받아 해결하는 것을 보니, 언젠가 친구와 절을 찾았다가 언뜻 들어온 무문관 수행과 비슷했다. 나는 깊이가 얕아 도전해보기도 망설여지지만 친구라면 가능할 것 같단 생각을 하며 읽었다.
책은 4장에 가서야 동해를 방문하고 싶다면 이렇게 해보라며 열가지 제안을 건넨다. 그제서야 아, 이 책 여행책이었지! 되새긴다. 그러니 지금껏 보여주었던 동해와 동해살이의 매력은 뭐 별 것 아니었다는 듯이, 더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여행지로서 즐길 수 있는 동해의 매력은 줄이고 줄여 이 정도 있으니 골라보세요,하고 자랑하는 듯 했다. 특히 해파랑길은 몇 해 전부터 걸어보고 싶어 사진첩에 저장해두었던 곳이라 눈에 밟혔고, 무릉별유천지의 라벤더 밭이 뽐내는 그림같은 풍경도 마음에 들어 눈여겨보게 되었다.
책문화축제, 북크닉, 강연, 낭독회에 근처 사장님들과의 소소한 차모임까지 작가는 바쁘고도 활력이 넘치는 성향을 맘껏 뽐내며 현지인의 삶을 즐긴다. 길을 가다가도 가자미를 건네받는 묵호의 슈퍼스타(144)가 아닐까 싶은데 덕분에 직접 100퍼센트로 즐길 동해의 삶을, 오히려 120퍼센트로 나눠받는 기분을 느끼며 책을 읽었다. 현지인이 추천하는 여행지, 맛집을 키워드 삼아 여행 떠나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목적지를 정착지로 만들어버린 작가의 '언제라도 동해'를 꼭 만나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