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알고 있던 내 모습이 모두 가짜라면 - 영원불변한 '나'는 없다
브루스 후드 지음, 장호연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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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꽤 소름끼치는 내용을 주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내 모습이 모두 가짜라면? 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지금까지의 자아- 나라고 알고 있던 내 모습은 모두 착각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나 자신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큰 애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물론 본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배신의 놀라움을 느끼게 할만한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내가 아니게 된다는 것일까? 나는 나를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일까?

어떤 실험에서, 사람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실제 모습보다 5%정도 더 멋있는 모습으로 본다는 결과가 나왔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모습 중 장점을 더 부각시키고 단점을 가려서 보는 것이다. 눈이 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정보를 뇌에서 마음대로 조절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우리가 본 것과 봤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정보를 가끔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런 현상이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객관성을 읽고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중간중간 관련된 내용과 연결되어 있는 실례를 들어가며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사람의 심리와 사회현상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다양하게 들어있어 읽으면서 내내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오줌을 참으면 얻어지는 것이나, 모방에 관한 이야기, 저렴한 가격의 제품에 혹하는 이유 등을 이야기하는 부분들이 특히 그랬다. 또 가끔씩 허를 찌르는 내용이 들어가 있어서 읽으면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든다. 중간에 기억력 테스트라고 해서 읽은 내용을 다시 떠올려보게 만드는 부분도 있었다.

주의력 결핍 장애 아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부분이 있었는데, 그 분야에 관심이 있어서 확 공감되는 부분이었다. 그 아이들이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점이나 주로 어떤 식으로 문제점이 드러나는지에 대한 설명에서는 꽤 경험과 들어맞는 부분이 있었다. 절반 정도는 고쳐지고 절반 정도는 성인이 되어서도 문제를 그대로 안고 지내야 한다니. 요새 주의력 결핍 장애를 갖고 있는 아동이 꽤 많은데 자못 문제가 심각하게 느껴졌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부분은 인터넷에 관련된 내용이었는데, 인터넷을 많이 이용하는 사람 중 하나로 인터넷 상에서와 실제 생활에서의 개인의 모습이 같을 수 없음에 많이 공감했다. 실생활에서의 모습과 인터넷에서의 모습은 노출 빈도나 수위도 다르고, 개인을 보여지는 것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매우 적으며 인위적인 조절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얼마든지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익명성의 공간이 아닌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면서 다양한 내용을 꽤 전문적인 내용을 겸해서 설명해 놓은 책이다. 우리가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들을, 한번 더 생각해보고 흥미를 느낄 수 있게끔 담아놓아서 즐거운 마음으로 완독할 수 있었다. 자기 자신과 사람의 심리, 그로인한 영향이 어떻게 끼치는지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책들은 언제나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공감대를 충족시켜 주는 것 같다. 매력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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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하루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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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라는 작가에 대한 경의는 표하지만, 작품은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 생생함에서 오는 깐깐한 느낌, 길게 늘어지는 수다스러운 이야기가 때로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좋고 나쁨을 가리는 의미가 아니라, 그저 나의 취향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만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매번 찾아읽고 기다리고 남은 장의 두께가 얇아질수록 아쉬워하게 되는 작가는 아니라는 것이다. 기회가 되면 읽고, 몇몇 책들은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이런 내용이구나 하고 감상하는 정도일 뿐. 그런데 이번 책은 나에게도 좀 의미있게 다가왔다. 그녀의 이야기에서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세련된 말솜씨로 자신을 드러내거나 마치 서울 깍쟁이같은 태도로 퉁박을 주던 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겪어온 삶의 발자취가 비슷하게 느껴졌다. 새삼.

 

이 책은 고인의 마지막 소설집이라는 말이 붙어있는데, 그래서 더욱 내가 그런 개인적인 감상을 덧붙여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총 여섯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처음 세 편의 글은 별다른 소개없이 담겨있고 나머지 세 편의 글은 김윤식, 신경숙, 김애란 작가들의 선정, 그리고 짧은 글이 덧붙여져 있는 식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첫번째 단편인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와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이 기억에 남는다.

 

"세상도 나도 그때로부터 너무 멀리 와 있었다. 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를 다독이고 가난을 딛고 살림을 일으키기 위해 사람들은 과거를 잊고 현실에만 충실했다. 6.25 때 얘기만 나오면 아이들까지도 궁상떨지 말라고 핀잔을 줄 정도로 잊고 싶은 과거가 된 지 오래였다."

 

전쟁을 겪은 세대는 황폐함과 피폐함, 정신의 충격을 육체의 문제로 덮고 살아나가기를 목표로 삼았던 강함이 있어 정신력이나 의지의 근본부터 다르다'라는 말을 가끔 들었다. 아마 같이 살았던 조부와 조모의 모습에서 그런 말이 저절로 나왔지 싶다. 그들의 은혜를 입고 자라났던 만큼 세월의 나이테를 켜켜이 쌓아 뿌리부터 굳센 노목처럼 느껴지는 그들의 모습을 볼 때 저절로 이 근성의 차이는 바로 그 이겨냄에서 온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더불어 옛시절 이야기라도 나올라치면,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며 굳이 말을 자르려던 내 모습도 함께 떠오르고.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어떤 대목, 대목에 이르러서는 개인적인 생각들이 떠올라 예전의 어떤 지점으로 플래시백하게 되는 책이었다.

 

또하나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손숙 씨가 연극 무대에 올랐던 작품으로 연극의 제목으로 먼저 그 이름을 알았던 편이다. 소개를 보면서 박완서의 글을 무대에 올렸다는 것을 알았지만 읽기로는 지금이 처음이었다. 생각과는 다른 흐름으로 진행되는 내용이지만 내용만큼은, 괜찮게 다가왔다. 혼자서 쏘아내듯이 계속 이어지는 대사가 처음에는 다소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이어서 이게 연극 무대에서 어떻게 펼쳐졌을까 하는 궁금함도 생겼고, 기회가 있었을 때 봤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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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파라솔 아래에서
모리 에토 지음, 권남희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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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 에토 작가의 책은 아주 예전에, '컬러풀'을 읽은 적 있다. 그 때, 신간으로 나와서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서점의 신간 코너에 놓여져있던 기억이 난다. 언젠가 약속이 꼬여서 집으로 가는 길이 조금 헛헛하게 느껴지기에 서점에 들러서, 그 책을 서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제목 때문에 집어들어 읽기 시작했다가 나름 꽤 재미있게 흘러가는 내용 때문에 그 책을 그 자리에서 다 읽었었다. 비슷한 경험으로는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이란 책이 있다. 그 책도 제목 때문에 호기심에 들었다가 그 자리에 서서 선채로 다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 책은, 바로 그 '컬러풀'을 쓴 작가, 모리 에토의 신간이다. '언젠가 파라솔 아래에서'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태평한 분위기의 제목이지만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다. 완고하고 깐깐하고 엄격했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겨진 가족들에게 밝혀진 아버지의 비밀. 보수적이었던 아버지가, 자식들의 삶에서 반짝거리는 모든 것을 뺏고 억압해왔던 그 아버지가 사실은 대를 이어 흐르는 '나쁜 피'를 가지고 있어 평생을 자신을 제어하며 살아왔던 것, 그리고 결국 돌아가시기 전 그 '나쁜 피'로 인해 다른 여자와 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어머니는 전과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렸고, 집을 나갔던 첫째 아들과 둘째 딸은 방황하던 삶의 한 중간에서 다시 걸음하지 않았던 집을 다시 찾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총애를 받았던 막내 딸은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들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의 독특한 가치관, 갑갑했던 규칙들. 오로지 믿고 따르거나, 반항하거나, 참고 도망치거나, 그 안에서 순종하는 방법으로 아버지의 그늘에 머물렀던 가족들은 아버지의 비밀을 알고, 진실을 찾기 위해 걸음하게 되면서 비로소 자신의 발로 서게 된다.

 

책을 읽다보면 마치 모든 것이 엉망으로 흐트러져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 줄기차게 여자가 바뀌는 아들, 불감증으로 남자들과 이별을 반복하는 딸, 그런 오빠와 언니를 경멸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지금까지의 자기 자신에 대해 확신도 자신도 없는 막내가 결국은 가족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해체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다 그들이 일견 무의미해보이는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사람을 떠올리고, 이해해보려고 버틸 때마다 망가져있던 큐브가 다시 맞춰지는 움직임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가족의 재발견. 해체되고 망가진, 그러나 서로라는 구속력 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가족이 결국 다시 그 안에서 자신을 찾고 자유로워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가장 큰 영향을 주는 타인이자 자신의 일부인 가족이 겪는 갈등과 그 화해를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그 안에서 개인의 성장까지도 함께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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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노래 - 2013년 제4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이승우 지음 / 민음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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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인 색채를 띄고 있는 책은, 혹은 그 무엇은 나에게 그리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텍스트를 텍스트 자체의 것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다른 해석의 여지를 먼저 내어주는 통에 순수하게 감상하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이 책도 그런 우려가 있었다. 책의 소개를 읽으면서, 분명히 이 책이 주는 미스터리어스함이나 환상적인 느낌과 흥미진진함을 느꼈지만 그 감각적인 매력을 충분히 느끼기 전에 분명 종교적 색채에 대한 이해의 부족과 소양의 얕음에 대한 우려가 먼저 작용될 것이라는 염려가 들었다.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도 있는 법. 책을 읽기 전에 염려가 먼저 되었다면 책을 읽으면서는 그 염려에 보상하는 의외의 면도 발견하기 더 쉬워지나 보다. 책의 내용에 푹 빠져들어가기 앞서 이승우라는 작가에 대해 다소 생소하게 생각했었는데, 걱정했던 것보다 괜찮은 느낌으로 내용을 구성해놓아서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올해 초에 낯선 작가의 책을 함부로 읽었다가 읽기에도 그렇고, 안 읽기에도 그런 상황에서 억지 독서를 했던 기억이 있고나서 증명되지 않은 작가의 책을 읽기가 꺼려졌었는데, 이 책은 그런 마음을 싹 사라지게 만들어주었다. 사실, 그 책과 이 책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미안하게 여겨질만큼.

 

물론 생소한 내용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모든 이야기가 모이게 되는 천산 수도원에 대한 이야기가 오래된 수도원의 한 벽서에서부터 시작되어 역사적인 내용과 연결되어 결국 인간의 죄의식과 개인의 삶의 파괴라는 사건이 어우러져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나열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후가 라면에 대해 언급하며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과거의 상처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었다. 라면과 사촌누나와의 사건에는 기실 큰 관련이 없으나 어째서인지 그 사건의 상징처럼 떠오르는 매개체가 되어 후의 이야기도 바로 그 라면에 대해 풀어내면서 시작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후는 그 라면으로 시작된 비극적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천산 수도원에 얽히게 되고 수도원 깊숙히 숨겨져있던 비밀은, 모든 비밀들이 그러하듯이 천천히 그 실체를 드러냄으로서 사람들의 가슴속에 또 다른 비밀과 고뇌를 남기게 된다. 차동연이라는 인물과 후의 모습이 시간을 뛰어넘어 매우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데 그 두 인물이 서로 교차하는 그 부분이 이 소설에서 무릎을 치게 만드는 백미이지 않을까 싶다. 재미있으면서도 독자로 하여금 자신만의 감상을 만들어내도록 자극하는 소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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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공중전화 문학과지성 시인선 201
채호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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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공중전화"를 알고 있는가? 로부터 시작된 일이다. 채호기의 시집을 손에 넣어 펼쳐보게 되는 것은. 지나가버린 세기말의 추억 1997년의 응답을 기다리는 시대가 된 2010년대 초반인 지금, 공중전화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한참 열병을 앓던 십대 시절에만 해도 공중전화는 꽤 빈번하게 이용되었다. 그 전에는 말할 것도 없이, 집을 떠나 어디라도 갈라치면 집에 도착을 알리는 전화를 하기 위해 늘어선 공중전화박스 앞에 늘어선 아이들의 행렬이 있었고, 역 앞 광장에 놓인 공중전화앞에는 늘 고달픈 군복차림의 군인들이 구부정한 자세로 서있었다. 그리고 차마 다 할 수 없던 이야기를 온 밤새 끊어져가는 삐-삐- 수신음을 황급히 이어가며 토해내었던 밤의 공중전화가 내게도 있었다.

 

오로지 그 제목만으로 이 시집을 펼쳐들었으나, 기실 이 시집 속의 내용은 내것과 같은 움을 틔우진 않는다. 마치 그래서얀 시집이 아니지. 하는 듯이 날것의 느낌을 담아낸 육체적이면서도 해체된 감각적인 느낌을 동시에 주는 - 단순한 사실적 상황을 시적 언어로 표현하는데서 그치는 조악한 것이 아니라 - 시였다. 그래서 낯설고 너무나 생생하여 한켠으로 저어되는 그런 시어들과 마주하게 된 나머지 생각 의외의 것을 두고 이 것을 어찌해야 하나 하는 막막함이 느껴지는 시집이었다. 말미에 이르러서야 그것이 어떤 느낌이 되어 가슴을 쳐왔지만, 글쎄 이 농염하면서 감각적인 시집을 다 끌어안을지는 미지수이다.

 

" 내가 나를 모른다는 것은 희망적이다 中

 

 

끔찍하다.

내 살 속에 사람이 들어있다. "

 

이 강렬한 표현으로부터 시작하여 너의 발, 등, 젖가슴, 품, 손, 꽃, 입, 입술, 허리, 바다에 이르기까지 시들은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감각들을 일깨우며 다가온다. 다음은 밤의 공중전화와 함께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의 전문이다.

 

" 너의 발

 

난초의 발은 화분 안에 감추어져 있다. (모든 식물의 발은 흙 속에? 혹은 물 속에?) 발은 뿌리일까? 너의 발은 구두 속에...... 너는 구두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간다. 구두의 맨살이 너의 발에 입맞추고, 핥고, 쓰다듬고, 주무르고, 누르고, 찌르고, 비비고, 달라붙는다. 흥분한 너의 발에서 어느덧 체액이 흘러나오고 구두는 자신의 신체 깊숙이 그것을 빨아들이며 너의 것이 되어간다. (네 몸의 일부가 그의 것이 되어간다.)

 

구두는 들판을 뛰어다니며 꼬부라진 발톱과 뾰족한 송곳니의 야수성을 거침없이 드러내던, 짐승의 내장과 근육을 담고 있던 피부였다. 구두는 이빨과 근육에 늘 쫓기면서도, 잎과 물을 뜯어먹고 둥치를 방패 삼으며 꽃을 짓밟고 그것들에 늘 군림하던 짐승의, 민감한 귀와 예미민한 코를 이루고 있던, 껍질이었다.

이제 구두는 네 발의 것이다. 네 발은 구두에 감금되었다. 구두는 짐승의 본래 기억을 되살며 네 발을 강간한다, 두려움 없이 펼쳐진 하늘 아래서. 나는 구름 뒤에 내 눈을 숨긴다. 나는 들판 구렁에 내 눈을 숨긴다. 흘러가는 바람,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끼우고.

 

구두를 떼어내고 너의 발가벗은 발을 따뜻한 손으로 감싸 뺨에 댄다. 너의 발에 입술을 대고 너의 발을 입 안에 담는다. 놀란 너의 눈이 잘 맞지 않는, 불편한 새 구두를 쳐다본다. 동시에 화분처럼 너의 뿌리를 감싸며 꽃핀 너의 눈을 본다. 햇빛이 연방 플래시를 터뜨리며 그 순간을 채집한다. 시간이 점점 속도를 줄이고 끝의 입구가 아련히 꽃과 구두에 반사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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