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 박찬일 셰프 음식 에세이
박찬일 지음 / 푸른숲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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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있다. 직접 요리한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고, 박찬일 셰프의 추억이 담긴 음식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때때로 요리에 대한 팁이 있긴 하지만 음식을 만드는 법이나 자신이 만든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우리도 흔히 먹고, 접할 수 있는 음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짜장면이나 짬뽕, 만두같은 중식 트리오도 나오고, 꼬막, 바지락 칼국수, 해장국 얘기에, 햄버거, 쌀국수, 라멘 등 외국에서 만난 음식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끝에 가면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한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를 따로 정리해 둔 부분이 있다. 소설가 김중혁과 함께 한 일화가 있어서 부러웠다.

 

이 책을 처음 접하면서 일본의 본격 음식 만화 심야식당과 비슷한 느낌이 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다. 차분한 분위기는 비슷하나 어디까지나 박찬일 셰프의 경험과 맞물려진 에세이라서 음식과 함께 연관된 일기장을 한편씩 뒤적여보고 있는 기분이 든다. 표지 뒷 편에 있는 볶음밥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고 어려웠던 시절을 지나온 셰프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부분도 있어서 읽다보면 감동을 받거나, 그땐 그랬구나 하고 알게 되는 부분도 있다. 누나들 틈에 있는 유일한 아들이라 닭을 먹으면 다리는 꼭 자신의 차지였던 일이나, 어렸던 누나가 그보다 어린 동생을 챙기려고 짜장이나 짬뽕보다 비싼 볶음밥을 늘 셰프 몫으로 시켜줬다는 이야기는 소소한 감동을 준다.

 

여러 음식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특히 만두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만두당이 있다면 그 당에 가입하겠다고 하는 부분은 웃기면서도 공감됐다. 만두라고 하면 이름 난 곳을 듣고선 찾아가야 직성이 풀리는 열혈 당원이라. 어린 시절부터 이북식 만두를 매년 해먹었었는데, 만두는 어떻게 먹어도 맛있는 묘한 음식이다. 그런데다가 에피소드 말미에 인천 차이나타운에 있는 유명한 만두집 '원보' 이름이 언급됐을때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이번 주말에는 원보에 다녀와야겠구나 싶을 생각이 들었다. 다녀오는 길에 양꼬치도 먹고.

 

또 하나는 김승옥의 소설 '서울, 1964년 겨울'에 언급된 참새구이에 대한 것. 생각해보니 나도 어린 시절에 참새구이를 먹어본 적이 있던 것 같다. 그런 경험이 없이 그냥 참새구이라는 말을 들었다면 멘탈이 붕괴될 정도로 뜨악해했을 것인데, 경험자로서 그냥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갔었으나 아마, 지금 이 책을 읽을 젊은 사람들은 좀 뜨악해할지도 모르겠다. 근데 먹을 것도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참새를 바싹하게 구워서 마치 통닭구이같은 모습으로 내왔을 때 생각보다 거부감이 덜 들었었고, 그 가느다란 뼈 사이의 살을 골라내어 먹으면서 생각보다 고소한 맛이 났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그냥, 먹으라고 해도 그닥 먹고싶어지지 않은 음식이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나름 맛있게 먹었었다. 한 이십년은 된 추억인데 새삼 떠올랐다.

 

읽다보면 내가 그 음식을 먹었던 기억이나 얽혀있는 추억도 떠오르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보면 오랜 시간을 들여서 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짧은 글 사이사이로 생각이 켜켜이 들어차며 읽게 되는 에세이였다. 마치 저자와 독자가 함께 씨실과 날실을 엵어가며 읽어야만 한 권으로 완성하는 책처럼. 읽으면 배고파지고, 어디로든지 맛있는 음식점을 향해 금방이라도 나갈 채비를 서두르고 싶어지는 책이다. 그래서 밤에 읽으면 안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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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황금광 시대
표명희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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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다보니, 자음과 모음에서 나온 신작들 세 편을 나란히 읽게 됐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네 가지 비밀과 한 가지 거짓말, 그리고 황금광 시대. 자음과 모음에서 나오는 책들은 뭔가 그 자신만의 색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그 색을 어떻게 이름붙이기에는 좀 확실치 않은, 확 눈에 띄는 원색이나 단일한 색이 아니라 여러 빛깔이 물들듯이 섞여있는 묘한 느낌이 든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은 푸른색과 붉은색이 조화를 이룬 느낌이었다면, 그렇다고 해서 보라색도 아닌, 그런. 네 가지 비밀과 한 가지 거짓말은 어두운 하얀색같은 느낌이었다. 이 황금광 시대는 반짝이는 금빛과 짙은 초록의 느낌이 든다. 음울한 느낌이 바탕에 깔려있고 그 위에 다른 빛을 덧씌운 느낌이 든다고 해야할 것 같다.

 

"VIP룸을 나오면서 현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깨달았다. 그토록 벗어나려 발버둥 쳤건만, 다시 카지노였던 것이다. '자넨 한동안 나를 따라다니게 될 걸세.' 미스터 손, 그를 따라다닌다는 건 카지노의 유령들 사이를 맴돌아야 한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망망대해를 네 시간이나 날아오고도 결국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황금광 시대는 카지노를 둘러싸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신체포기각서를 쓰고 외국으로 쫓겨나듯이 오게 된 제프-현, 카지노에서 시작된 인연을 끊지 못하고 결국 그 끝까지 보게된 제니, 알 수 없는 인물인 미스터 손, 그리고 그의 주위 사람들이 주요 인물들이다. 모두다 카지노라는 거대한 괴물 혹은 늪에 반쯤은 몸과 정신이 빨려들어간 채 어찌보면 먹히는 것 같으면서도 그와 공생하고 있는 것 같은 관계로 살아간다. 도박이라는 말로 카지노라는 거대한 공간을 함축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마약에 빠진 사람들이 벗어나려고 해도 결국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가서 살 수 밖에 없는 듯한 굴레를 보여준다.

 

"젊고 늘씬한 백인 미녀들이 오픈카를 타고 거리를 누비고 있었다. 주변 남자들에게 손 키스와 웃음을 날리는 여자들은 호객 행위 중인 것 같았다. 거리는 유혹의 손길로 넘쳤다. 뷔페식당과 공연장과 가라오케, 일일 관광 등을 알선하는 문구가 적힌 광고 종이판을 몸에 걸치고 있는 피에로도 있고, 한켠에서는 미성년자에게 가짜 신분증을 만들어 파는 불법 브로커도 있었다. 거리는 황금을 갈구하는 사람들로 넘쳤다."

 

카지노에게 가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라스베가스나 마카오가 아니더라도 정선에 있는 카지노만 해도 그 근처로 가면 외관이 얼마나 화려하고 커다란지 마치, 그 장소가 실제와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지는 것을. 커다란 분수와 화려한 조명이 쉴새없이 돌아가고 고급 자동차, 높은 호텔건물,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사람들의 말소리가 멍멍하게 가득찬 공간에서 처음엔 그냥 얼떨떨하게 있었던 기억이 난다. 비교적 끼어들기 쉬워보이는 판에 자리를 잡고 배팅을 시작하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훌쩍 지나버리기 일쑤다.

 

이 책을 읽다보면 마치 그런 소리가 옆에서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카지노라는 공간이 주는, 배덕함을 느끼게 하면서 큰 판을 벌이고 있는 미스터 손의 옆에 긴장된 공기를 함께 느끼고 있는 것처럼. 제목 또한 새로운 금맥을 찾아 카지노로 나서는 사람들의 행렬을 떠올리게 한다. 마치 정선의 폐광에 세운 카지노-새로운 황금광을 떠올리게 한다. 누가 따고 누가 잃을 것인가, 삶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게 느껴진다. 책을 읽다보면 카지노를 연상하면 떠오를 화려함이나 흥미진진함이 점점 누그러지면서, 도박이라는 끈끈이에 붙은 사람들은 결국 다 같은 모습으로 사그라들 것 같다는 다소 씁쓸하고 적막한 결말을 예상하게 만든다.

 

꽤 독특한 분위기의 소설이었다고 생각한다. 생각과는 다른, 느낌으로 전개되는 흐름이 의외로 읽으면서 더 호기심을 자극했던 요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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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셀러 - 소설 쓰는 여자와 소설 읽는 남자의 반짝이는 사랑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3
아리카와 히로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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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로맨스 소설의 여왕이라 불리는 작가의 책이라고 해서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다. 로맨스 소설을 전혀 안 읽어본 것은 아닌데, 그런 달달하고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 내용의 책이 갑자기 땡기는 시기에 확 몰아읽거나 할 때 외에는 잘 선택을 안하기 때문에, 그동안 로맨스 소설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라왔는지 확인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책은 A면과 B면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마치 테이프로 음악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권의 책이라 비슷한 흐름을 띄고 있지만 A와 B로 나뉘어서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이 카세트 테이프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A와 B의 내용이 비슷한데 다르게 이어지고 있어서 또 묘하게 현실과 맞닿아있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어주는 부분이 있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 "다음은 어떡하지......." ...중략... 장난스레 양팔을 벌린 그를 보고 무심코 웃고 말았다. ...... 솔직히 양심에 찔렸다. 분명 그 이야기를 쓰면 재미있을 것 같다. "그래, 재미있을지도. 한번 해볼까." "

"편집자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이윽고 조심스레 말을 고르듯이 물었다.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 사실인가요?" "어디까지라고 생각하세요?" 그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팔아서 역몽을 일으켜야 하니까."

꼽아놓은 부분들이 바로 이 소설과 현실의 구분을 모호하게 해주는 부분들인데 등장인물인 것 같으면서도 등장인물이 아닌 사람들이 말을 걸어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혹시, 하고 생각하게끔 만든다. 아마 이런 점이 작가를 로맨스 소설의 여왕으로 만드는 요소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일본 서점 대상 10위 권 안에 든 소설이니 꽤 많은 사랑을 받았을 것 같다. 고전적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도 보는 이를 울게 만들만한 요소가 이처럼 충분히 담겨 있다면야.

이 책이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글을 쓰는 사람과 글을 읽는 사람에 관한 사랑 이야기라는 점이다. 책에서도 나오는 표현인데, 글은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이 있다. 나는 읽는 사람 쪽인데, 읽는 사람은 쓰는 사람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다.는 점을 너무도 확실히 표현해놓은 대목이 많아서 그런 부분들은 매우 공감되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는 것도 그렇고.

지하철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읽기 시작했는데, 문체가 너무나 일본적인 느낌이 나고, 약간 과잉된 의식의 흐름이 그대로 드러나는 듯한 ... 특유의 느낌이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손끝까지 저며오는 부끄러움과 민망함을 그대로 견뎌내야 했다. 어떤 느낌의 문체냐면, '어이, 이봐. 그 문체를 제대로 설명해 낼 수 있겠어? 무리아냐? 정말 할 수 있다고 믿는거냐?' 이런 느낌이다. '뭔가 설명해야겠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랄까, 이거 보기보다 쉽지 않다구?' 이런 느낌...? 일본어 번역물을 좀 봤다면 익숙한 문체일텐데, 설명은 어렵다. 생각보다. 어쨌든, 이런 문체가 주는 왠지 모를 부끄러움을 견뎌낸다면, 혹은 그 민망함까지도 달달하게 받아들인다면 이 책이 매우 재미있을 것이다. 내용적으로는 연애물에 가슴 아픈 요소까지 더해져서 한 편 가볍게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는 좋은 로맨스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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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부식 열도 1 금융 부식 열도 시리즈 1
다카스기 료 지음, 이윤정 옮김 / 펄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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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다섯시가 넘은 시간이다. 지금 이 시간까지 깨어있는 것은, 아마 이 소설의 영향이 열에 여덟, 아홉은 된다. 책의 첫 인상은 어둡다! 와 실용성! 이 가장 컸다. 어둡다는 표지의 전체적인 색과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제목의 글자체 때문인데, 재미는 있으나 가볍지 않은 내용인터라 충분히 강렬한 효과로 느껴진다. 또 하나 가장 굵직한 특징은 실용성에 있다. 크기는 성인의 손보다 조금더 큰 편이고, 두께는 약 3센치 정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인데 무게는 일반 양장본과 비슷하거나 그것보다 조금은 더 가볍지 않나 여겨질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책의 표지를 매우 간소화했다. 하드 커버도 아니고 책 내지보다 약간만 더 두께감이 있고 광택이 도는 종이 한 장이 앞뒤표지의 전부이다. 내지는 재생지로 생각되는데 확실히는 모르겠다. 덕분에 이만한 책 한권의 가격이 다른 것들에 비해 많이 저렴하다 싶이 여겨질 정도로 합리적이다. 전에도 이런 책을 본 적이 있는데, 실용성과 합리성을 강조한 출판이 슬슬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려고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아 기대가 크다.

 

리뷰는 1권으로 집중하여 적을 예정인데, 이 책은 확실히 분량이 적지 않은 책이다. 1, 2권으로 나뉘어져 있고, 각 권마다 400쪽은 훌쩍 넘기는 분량을 자랑한다. 게다가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금융권과 관련된 내용이 전반을 이루기 때문에 그쪽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사실 감히 넘봐도 될만한 이야기인가 하는 생각도 조금은 들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기에 앞서 다른 펄프 시리즈 들 중 가장 기대작이라는 평가를 본 기억이 있어 기대를 하면서 봤었는데, 과연 읽는 이를 끌어들이는 당김이 예사롭지 않았다. 2권의 마지막 장에 가까워오면서 왜 이만큼 밖에 남지 않았지?'하는 의문을 품다가 결국 끝에는 3권은 어디없나?'하고 찾게 되는 변화를 맞게 된다. 거진 1000쪽 가까이 읽어놓고도.

 

염려되는 점은 일반 독자가 이 책을 서점에서 가벼이 집어들기에 '금융 부식 열도'라는 이 상징적인 제목, 까만 표지와 불붙은 돈은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사실상, 상당히 전문적인 내용이 많이 나오는 편이고,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다케나카가 몸담고 있는 은행권만이 아니라 일본의 경제 전반을 아우르는 배경 지식이 있었다면..하고 아쉬워 할 만큼 경제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지식이 있다면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첨가가 될 뿐이지 나처럼 관련 지식이 전무하다고 해서 전혀 모를 내용이거나 재미가 반감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주요 인물들 사이에 얽혀있는 갈등의 흐름에 더욱 집중하게 되어 스토리만으로도 충분하 재미를 느낄 수 있기도 하다.

 

책의 백미는 하루 아침에 교리쓰 은행 권력 다툼의 중심으로 끌려들게 된 다케나카가 과연 어떤 길을 걷게 되는가에 있었다. 마치 좌천으로 여겨지는 갑작스런 인사이동과 함께 은행내 제일의 야심가로 불리는 사토와 그의 꼭두각시로 전락하게 되는 회장 스즈키, 연줄 대기에 바쁜 거만한 동기 스기모토 들의 비밀 프로젝트에 끼게 된다. 원리와 원칙을 중요시 여기는 다케나카에게 불편한 자리가 계속 되지만 은행에 대한 충성심으로 자신의 몫을 해나가는 다케나가. 비밀 프로젝트로 시작된 문제는 점점 다른 문제들과 함께 몸집을 키우고, 다케나가는 최선을 다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더불어 은행장 사이토, 부장 나가이 등이 점점 세력을 얻으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다케나가가 어떻게 자신의 중심을 지키면서 회사에 충성하고 꼬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안 만들어내는지가 상당한 재미를 주는 부분으로, 자신도 모르게 응원하게 만드는 매력을 지닌 주인공이다.

 

일본 소설을 좋아하고, 독자로 하여금 소설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만큼, 생생한 현실감을 느끼게 해주는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볼만하다. 인물들이 읽게 되는 투서나 신문 기사, 보고서 등의 전문이 함께 실려 있어서 마치 현장에 동석하고 있는 듯한 기분을 들게 만드는 독특한 점이 있는 소설이다. 다만, 2부에 들어서 몇군데 오탈자가 눈에 띄었는데 이 역시 수정되면 좋을 것 같다. (98.7/44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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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스페셜 에디션 한정판)
하야마 아마리 지음, 장은주 옮김 / 예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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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이력이 독특하다. 2010년에 일본에 더 큰 감동을! 이란 취지로 만들어진 일본감동대상의 1회 대상을 수상한 실화 소설이라고 한다. 때문에 주인공은 바로 곧 작가가 되고, 그녀는 얼굴없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경쟁률이 무려 1046:1이었다고 하니 이 책은, 많은 일본인들의 가슴에 감동을 전해준 책 임에 분명하다. 그녀가 필명이자 호스티스의 가명으로 정한 아마리라는 이름은 일본어로 여분, 나머지를 뜻한다고 한다. 스물아홉 생일에 1년 후 죽기로 결심한 여자에게 남아있는 나머지 삶. 그 여분을 아마리가 전한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안 울려고 했다. 하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뜨거운 눈물이 볼 위로 주르륵 타고 내리기 시작했다. '안돼!'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 한 줄기를 시작으로 그동안 억누르고 있던 울음이 한꺼번에 터지기 시작했다. 눈물은 흐르고 또 흘러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텔레비전 속의 연예인들은 박수를 치며 웃고 있었다."

 

스물 아홉 생일을 맞은 아마리는 혼자다. 그녀는 초라한 조각 케익을 앞에 두고 텅 빈 방에서 텔레비전을 켜놓은 채 자신의 생일을 축하한다. 그녀는 케익 위에 놓인 딸기를 먹으려다 놓치고 만다. 떨어진 딸기가 아까워 더러워진 그것을 주워 씻어먹으려고 하는 순간 그녀는 자신이 몹시 초라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눈물을 흘린다. 그녀가 울고 있는 방 안에서 오로지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켜져있는 텔레비전 속의 연예인들은 박수를 치며 웃는다. 마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기쁘고 즐겁게 살고 있는 가운데, 고독하고 슬픈 사람은 그녀뿐이라는 듯이. 그리고 바로 이 날, 아마리는 이런 삶을 끝내기로 마음 먹는다. 딱 1년만 더 살고 서른이 되는 날 죽기로 결심한다. 광고에서 봤던 라스베가스로 떠나 호화로운 여행을 즐기고 인생을 건 도박을 하고 난 다음, 미련없이 죽기로.

 

아마리에 대한 묘사는 꽤 짧고 의기소침하다. 자신의 부정적인 면모에 대해서 손에 꼽듯이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녀가 케익을 먹으려고 할 때 말했듯, 그녀는 좋아하는 것을 먼저하는 타입의 여자였다. 그 부분을 보면서, 그녀가 매우 소심하고 소극적인 사람인 것처럼 살고 있지만 사실은 인생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고, 또 그것을 재빨리 즐길 줄 아는 성향을 가졌다는 의미로 느껴졌다. 아주 진취적이기도 하고. 최후까지 자신의 즐거움을 놔두는 계획적이고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과는 좀 다른 면이 있고, 그녀의 그런 면모는 그녀가 겪은 좌절로 인해 가려져 있을 뿐 어딘가에 분명히 자리잡고 있었다. 그녀가 가장 먼저 딸기를 먹으려고 했던 것처럼. 그리고 그 작은 부분은 그녀의 삶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 계기가 된다.

 

"어느 날, 단골손님이 쌍둥이 남자 손님 두 명을 데려온 적이 있었다. 우리는 입을 모아 "정말 똑같아, 똑같아!"를 연발했다. 하지만 치카만은 "전혀 닮지 않았는데요?"하고 말했다. 우리는 놀랐지만 쌍둥이 손님들은 기뻐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린 어딜 가나 똑같다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들었지. 그런데 닮지 않았다는 말을 들으니 새삼 개성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군 그래." 치카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마리는 라스베가스에 가기 위해 돈을 필사적으로 모으게 되는데 삶에 대한 미련이 없고 대신, 골이 분명한 목표가 생기다보니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내게 된다. 뚱뚱하고 못생겼다고 자신을 평가했으면서도 놀라운 추진력으로 긴자의 호스티스 자리를 구하게 되거나, 생면부지의 사람들 앞에서 자신감있게 포즈를 취해야 하는 누드모델을 하기도 한다. 그녀가 구한 직업들만이 아니라, 그녀가 삶을 마주하고 있는 자세 역시 달라진다. 일과 자기 관리에 철저해지게 된다. 목표가 생긴 사람들은 그렇게 달라지는 것이겠지.

 

위의 치카에 대한 언급도 긴자에서 호스티스를 하게 되며 알게 된 동료에 대한 이야기다. 치카는 매우 인기있는 호스티스인데, 그녀가 가진 매력적인 외모나 지적인 면모 외에도 저렇게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배려,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인정받고 싶어하는 면을 생각하고 바로 그 점을 짚어주는 마음 씀씀이가 느껴진다. 특히 남과 다름,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정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중요한지 생각해보면 저 일화가 더 크게 부각되어 인상에 남는다. 아마리가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변화라는 것은 정말 이렇게 자신의 한 걸음으로 시작되는 사소하지만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을 새삼 느꼈다.

 

"고향에 있을 때 나한테 요리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 '적의 행군을 막으려면 술과 고기를 베풀어라.' 그게 무슨 말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아. 평생의 꿈을 가로막는 건 시련이 아니라 안정인 것 같아. 현재의 안정적인 생활을 추구하다 보면 결국 그저 그런 삶으로 끝나겠지."

 

나 자신이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라서 이 부분이 가장 크게 기억에 남았다. 안정이라는 것이 가장 달콤한 열매라고 생각하는데, 그 열매가 사실은 나를 안정에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안주하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녀의 표현대로, 끓는 물에 들어간 개구리가 점점 뜨거워지는 물에 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결국은 죽게 되듯이. 힘든 일은 도리어 사람을 강하고 굳세게 만드는 것 같다. 반대에 부딛힌 연인들이, 평온한 상태의 연인들보다 더 굳세어지는 것처럼.

 

아마리는 결국 목표를 이루어냈다.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로 라스베가스에 갔고, 인생을 건 도박을 했다. 그것도 꽤 영리하고 멋지게. 그리고 그녀의 삶은, 그 후를 바라보게 된다. 원하는 것을 이루고 난 아마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그녀의 삶이 멈추지 않기를 기대하며 읽게 되는 책이다. 희망을 주는 책이기 이전에 희망을 갖고 보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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