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지 비밀과 한 가지 거짓말
방현희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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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었던 다른 책들과는 분위기가 좀 다른 책이었다. 마르셀, 장, 닥터 정, 마쓰코 네 사람이 연주하는 이야기는 단조가 많은, 음울하면서도 관능적인 곡이었다. 관능이 지나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성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고도 잦았는데, 결론적으로 보면 사실 아주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인물들은 생물학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불안한 면모를 보인다. 그런 네 사람이 우연인듯이 2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서로 얽히게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마치 가느다란 실타래가 서서히 얽혀들어가는 매듭의 중심으로 파고드는 것과 같이 느껴진다.

 

"택시를 타고 청담동으로 가는 길에 눈이 내렸다. 라디오에서 폭탄이 내린다고 했다. 폭탄. 그녀의 귓속으로 또 다른 레퀴엠이 쇳소리를 내며 찌르르 파고들었다. ...중략... 갑자기 웬 눈 폭탄이지! 그리고 그녀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폭설이 내려서 목적지까지 가는 데 시간이 좀 걸리겠어요. 눈에다 폭탄이라는 말을 연결시키는 나라. 그녀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고 마음을 놓았다."

 

한국에 온 마르셀이 말하는 한국에 대한 첫 감상,이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중간에 생략된 부분에는 분단 국가라는 이야기와 북한, 핵, 뭐 이런 얘기들이 있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리는 눈조차 폭탄이라는 말을 붙여서 표현하는 우리나라의 언어 문화에 대한 외국인의 시선이 곁들여진다. 우리나라에서 폭탄이라는 말을 들으면 금방이라도 전쟁이 날 것 같아 걱정하는게 외국인들이 가진 분단 국가의 이미지인가. 사실 그런 걸 평소에는 전혀 의식하지 않고 태평하게 지내고 있는데 이런 부분을 보니 새삼스럽다. 더불어, 다소 거친 편이 분명한 우리의 언어 습관도 함께 염려되고.

 

그녀가 한국으로 오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르셀이 한국으로 오고, 장을 만나고, 또 닥터 정에게 찾아가게 되고, 닥터 정이 마르셀을 만나게 되면서 마쓰코의 존재가 환기되고, 그들의 연결고리를 따라 장도 닥터 정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고, 그들은 다시 마르셀과 마쓰코의 흔적을 찾아 나가게 된다. 서로가 서로의 꼬리를 물고 서로 앞에 나타나는 형상을 하고 있다.

 

"미술품 중개업을 하던 한 프랑스인 부부가 갓 태어난 영아를 연달아 세 번이나 죽이고 앞마당에 묻고는 그것이 발각되자 프랑스로 달아난 일이 있었다. 아빠는 프랑스인이 그럴 일은 절대 없을거라 보증하고 슬픔에 빠진 그들을 돌아가게 해줬는데 그들은 그 뒤로 행적을 감춰버렸다. 갓 태어난 아기의 시체 세 구만 덩그러니 남아 그의 책임을 물었다."

 

이 책이 가진 특징 중 하나가 현실과 소설 속의 이야기가 맞닿아있는 부분이 눈에 띈다는 것이다. 읽다보면 과거의 사건들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마치 이 소설이 그 과거 속이 어느 부분으로 존재했었던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현실과 상상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독자는 자칫 어디가 어디인지 구분 못할 길에 빠지게 된다. 기억에 맞다면 위의 부분과 같은 사건이 실제로 있었을 것이다. 당시에 꽤 끔찍한 사건으로 다뤄지면서 충격을 줬던 사건이었다. 그런데 그 사건과 마르셀의 아버지 사이에 연관성을 두면서 현실을 끌어들여 묘한 구체성, 현실감을 준다. 진짜가 아닌가 의심하게 만들도록.

 

"일제 강점기에 한국에서 혹은 일본에서 한국 남자와 결혼한 일본인 처들이 광복이 되자 달라진 처지 때문에 거의 대부분 자녀도 빼앗기고 남편과 그 가족으로부터 완전히 버림받고 일본의 가족들로부터도 버림을 받아 그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주변의 한국인들로부터도 소외당한 채, 가해자이면서 졸지에 피해자가 되어 전라도 어디와 경상도 어디의 작은 마을 인근에 몇몇이 모여 새로 촌락을 이뤄 살고 있었고 지금은 어디의 작은 마을 인근에 몇몇이 모여 새로 촌락을 이뤄 살고 있었고 지금은 경주 어디의 요양시설에 최후의 몇 사람이 남아 있다고 했다."

 

장의 배경도 그렇고 마쓰코도 그렇고, 한국과 일본 사이의 미묘함에 대해서도 꽤 깊게 언급하고 있다. 특히 일본 안에서 자신의 절반쯤이 혹은 그 이상이나 이하의 부분에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것, 안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 -그 이유는 그게 더 살아가는 것을 쉽게 만들기 때문이고- 또 일제 강점기 이후로 가해자가 피해자로 전락하게 된 일례를 들어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는 것 들이 그것이다.

 

그런데,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을 그닥 편한 마음으로 보고 있기 어려운 면이 있다. 좀 껄끄럽다. 아마 내 안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한국인의 일본인에 대한 혐오와 경멸이 작용되었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그 반대적인 표현으로도 일본인의 한국인에 대한 경멸과 깔봄이 있다고 함께 언급했는데, 꽤 맞는 말인 것 같다.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이야기였다. 누구나 가슴 속에 상처 하나쯤은 있듯이, 이들도 상처를 가진 네명의 남녀들이고, 그들이 서로에게 강하게 끌리게 되는 것은 사랑이라기 보다는 다른 색을 띄는 감정으로 여겨진다. 보기와는 다른, 다른 것들과도 또 다른, 그런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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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 두 번째 아이는 사라진다 문학동네 청소년 13
방미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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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이 맞다면, 작가 방미진의 글은 처음 접해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방미진 작가에 대해 아주 조금 알아보았는데 작품에 자신만의 색을 분명하게 입히는, 존재감있는 작가인 듯 하다. 젊은 작가인 것 같아서 얼굴도 찾아보니 약간, 미묘. 꽤 쿨해보이는 인상이었다. 일본의 공포 만화를 대표하는 작가 이토 준지를 좋아한다고 해서 개인적으로 관심이 더 생겼다. 그래서 이번 책의 분위기도 괴괴하게 느껴지는 건가 싶기도 하고. 내용이 고등학생이면서 또 예체능을 하는 여학생들이 주인공으로 나오기 때문에 전설이 된 공포영화 여고괴담도 떠오른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여고괴담의 여우계단 편과 비슷하다. 서로에 대한 경쟁심, 질투를 못 이겨 여우계단을 오르며 소원을 빌던 여학생들. '괴담' 역시 같은 뿌리에서 가지를 쳐나간 다른 열매이다.

 

 을 읽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인상적이었던 점이 인물들에 대한 묘사이다.

 

 "그 무리들 사이를 유독 눈에 띄는 여자아이 하나가 걷고 있다. 소녀와 여인이 뒤섞인 묘한 분위기다. 얼굴은 조그맣고 이목구비는 서양 인형처럼 또렷하고 입체적이다. 큰 눈과 대조적으로 작은 입술 때문에 앳된 느낌이 든다. 그에 반해 시원하게 뻗은 팔다리와 발육이 좋은 몸은 여성스러움을 넘어 육감적이다. 옆 가르마를 타 얼굴 위로 드리운 긴 생머리는 도도하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이야기의 주요 인물 중 하나인 연두의 외모에 대한 묘사다. 자세한 것 같으면서도 꽤 흔한 묘사의 일부인 것도 같은 느낌이 든다. 청소년들이 좋아할만한 요소다. 인물에 대해 자세하고도 특별하게 느껴지게끔 묘사를 해두는 것, 그래서 마음껏 이상적인 인물을 그려내어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 이런 식으로 인물의 외모에 대한 묘사가 들어간 부분이 꽤 된다. 거기에 인물들의 외모가 범상치 않는 면이 많다. 지연이의 외모에 대한 묘사에서도 '얼음 공주'라 불릴 만한 이지적이면서도 클래식한 외모임을 부각했고, 치한 역시 혼혈로 오해받을 정도의 다갈색 곱슬머리를 자랑하는 아이돌과다. 거기에 인주는 같이 다니던 연두나 지연이의 외모에 비해 지나치게 못난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 사회에 팽배한 외모지상주의 때문인지, 아니면 외모가 우월한 쪽에 더 관심이 가게 마련인 것인지 이런 묘사를 거치고 나면 인주나 보영, 미래 등의 인물보다 확실히 화려함이 더 부각되는 연두나 지연에게로 관심이 더 옮아가게 된다. 붉은 장미와 하얀 장미 사이의 다툼을 즐기듯한 시점으로. 

 

  하나는 인물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묘사와 내면에 대한 냉정한 폭로이다. 책 속의 관계는 삼각형을 기본으로 한다. 연두-지연-인주 이 세 프리마돈나의 치열한 경쟁, 보영-치한-미래 세 사람의 트리플 연애, 연두-연지-엄마의 한 가족 안에서도 벗어날 수 없는 삼각관계 등이 주요 골자를 이룬다. 외모가 빼어난 연두, 집안이 좋은 지연, 재능이 뛰어난 인주 세 사람이 음악 선생 경민에 의해 서로 경쟁하게 되면서 괴담이 본격적인 유혹의 손길을 뻗기 시작한다. 가장 뛰어난 자리에 있고 싶다고 생각하는 욕망이 이 아이들을 경쟁하도록 만들고, 결국 인주가 그 첫번째 희생양이 되어 연못의 물 위로 떠오른다.

 보영과 치한, 미래는 커플이 아닌 트리플이란 관계로 그려지는데, 사실 삼각형은 꽤 안정적인 구조를 가진 모습이지만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는 매우 불균형적인 관계의 구조가 된다. 특히 남녀가 서로 얽혀있을 때는 더욱. 결국 이들도 괴담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세사람 만의 관계를 완벽하게 여겼던 보영과, 자신에 대해 생각할수록 보영을 향한 질투를 접을 수 없었던 미래는 연못 앞에서 사진을 찍기로 결심하게 되고 치한을 사이에 둔 두 여자아이는 반짝이는 플래시 불빛과 함께 괴담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자매인 연두와 연지 역시 형제자매간에 흔히 있을 수 있는 경쟁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예쁜 연두와 뚱한 태도에 빼어난 점이 없는 연지라는 설정만으로도 두 사람의 갈등이 느껴진다. 거기에 연두에게 집중된 엄마의 관심은, 자매 사이에 드러난 갈등을 더욱 부채질하는 촉매로 작용한다. 재미있는 점은 연두와 연지가 동기간에 있을 흔한 애증의 느낌도 잘 드러나지 않게 건조한 사이라는 것이다. 여러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쌓여있다기 보다는 귀찮음과 무관심, 미움이 더욱 많이 느껴진다. 연두를 보면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게 느껴지는데, 연두와 닮지 않은 인물로 그려지는 연지 역시 그런 성향이 느껴지는 점이 재미있다. 이런 점은 닮았다고 느껴지도록.

 

 지막으로, 인물에 대한 설정을 꽤 명확한 개성을 갖도록 한 점이 강점이기도 하지만, 그 명확함이 오히려 정형화 된 틀로 보이기도 해서 단점도 된다. 연두에 대한 묘사는 차갑고 이기적인 미소녀의 전형을 보인다.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비춰질지 의식하면서도 그 바탕은 타인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만 점철되어 있는 점이나, 자신의 장점을 철저히 이용할 줄 아는 영악함을 가졌다. 지연은 높은 프라이드 안에 가득한 열등감, 부족한 자존감이 돋보이는 아이다. 가진 것이 적지 않으나 부족한 것에 연연하는 태도, 그로인해 자신을 높이고 사랑하는 방법이 굴절된 형태로 나타나는 점이 인상적인 인물이다. 지연에게 공감하는 아이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인주처럼 천부적 재능을 타고났다기 보다 대부분 지연처럼 노력형 인재가 될 가능성이 더 많을 것이니. 인주는 외모도 집안도 별로이지만 숨겨진 재능을 가진 아이로 그 안에 나도 꿈을 펼치고 싶다는 평범한 욕망을 가진, 재능 외에는 보통의 아이로 그려진다.

 보영의 경우 외모보다는 약간 백치미가 느껴질 정도로 순진하게 보이지만 의외로 다른 사람들의 관계를 냉정하게 관찰하는 눈을 가진 관찰자로 그려진다. 경민은 선생이면서도 굴절된 자기 연민을 가진 모습을 보인다. 소설 속에서 선생님이란 존재도 남을 질투하는 마음에 앞서 시기하느라 여념없는 평범한 개인의 모습을 보인다. 이 캐릭터에 속시원해 할 청소년들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또 하나, 인기있을 것 같은 인물은 미래. 평범하기로는 이 중에서 제일일듯한데, 그 평범함을 거친 말과 행동으로 숨기려는 태도도 평범하고, 또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지나치게 자각하고 있는 점이 애처롭기도 하다. 미래가 보영을 질투할 수 밖에 없는 것은 평범하다는 것이 너무나 싫을, 사춘기 소녀의 마음이 잘 느껴지는 부분이다. 좀 더 어른이 된다면 평범함의 소중함도 알 수 있을텐데. 여기에 치한과 요한 형제도 독특한 인물로 더해진다. 인간미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요한, 오로지 쾌락만 추구하는 듯한 치한의 극단성이 독특하다.

 

 을 읽으면서 반가웠던 것은 오페라 '마술 피리'의 등장이다. 책에서도 언급됐듯이 마술 피리하면 밤의 여왕의 아리아가 대표적인데, 사실 밤의 여왕은 이 오페라의 주인공이 아니라 주인공인 파미나 공주의 엄마로 악역이라는 설명이 들어간다. 하지만 나도 이 오페라를 볼 때 밤의 여왕이 부르는 아리아 부분만 몇 번이고 봤던 기억이 있다. 그, '아~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하는... 밤의 여왕과 파미나의 관계와 함께 연두와 지연의 관계가 묘사되는 부분이 많아 프리마돈나와 세콘다돈나의 자리를 두고 누구의 욕망-아리아-가 더욱 강렬하게 돋보이는지 경쟁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또 하나는 오페라 '라 보엠'의 '내 이름은 미미'의 가사가 많이 등장하는데, 모르는 작품이라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그냥 넘어간다. 지식은 얕더라도 넓게 분포하는 것이 좋다는 교훈을 이 부분에서 또다시 얻게 된다.

 

 

 지의 그림도 그렇고, 각 부 사이를 구분하는 장 마다 이렇게 기괴함이 느껴지는 무늬가 들어가있다. 디테일에 충실한 점이 느껴진다. 내용적인 면은 아니었지만, 아쉬운 점은 167쪽의 5번째 줄에 오자가 있었다는 것. 다음 판 본에서는 수정되어 나오길-

 괴담이라고 하지만 진짜 섬뜩한 것은 괴담이 아니라, 아이들 내면에 자리잡은 차갑고도 뜨거운, 끈적한 감정의 소용돌이이다. 다른 것이 무서운 게 아니라 사람이 무섭다고 하는 말처럼. 아마 이 책을 읽는 청소년들 역시 읽으면서 자기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다양한 색의 감정들을 자각하게 된다면 한결 더 읽기 두려운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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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편집자 2012-08-07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서평 감사합니다. <괴담>을 진행한 담당편집자로, 부끄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네요. 167페이지 부분은 2쇄 때 꼭 수정하겠습니다. 꼼꼼하게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테일 2012-08-09 09:59   좋아요 0 | URL
책 재미있는데 좋은 평도 많이 받고, 많은 청소년에게 사랑받았으면 좋겠네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수박 향기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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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쿠니 가오리를 다시 만났다.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하고 시작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상 가능한 바로 그, '냉정과 열정 사이'부터이다. 그 뒤로 그녀의 작품들은 차례로 발표되었고 이제는 너무나 유명한 작가 중 한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녀의 글은 약간 나른한 느낌이 감도는 감성적인 분위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책은 좀 다르다. 서늘하고 기괴한 느낌이 주를 이루는 것 같다. 첫 단편부터 알 수 없는 체험을 하게 된 소녀의 이야기로 시작되어서 그런지, 수박 향기라는 제목을 압도하는 강렬한 대비의 그림탓인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에쿠니 가오리를 만난 기분이다.

 

 첫번째, 수박 향기..

이 단편을 읽으면서 에도가와 란포의 '외딴섬 악마'라는 추리 소설이 떠올랐다. 그 책에서 주인공이 약혼자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하면서 종내 미스터리어스한 외딴 곳의 섬으로 향하게 되는데 그 섬에서, 서로 몸이 붙은 채 갖혀있는 남녀를 만나게 된다. 는 스포일러. 그런데 이 책에서도 쁘띠 가출을 하게 된 '나'는 어떤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데 미노루와 히로시라는, 샴 쌍둥이 소녀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들과의 만남이 사실인지 아닌지 불분명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끝나게 되는데 약간은 생소하고 섬뜩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세번째, 물의 고리..

매미의 울음소리를, 올 여름엔 아직 듣지 못했다. 이 소설은 매미 소리와 관련된 단편으로 매미의 울음소리를 독특하게 표현했다. 우리말로 바뀌면서 그런 식으로 표현이 된 것인지, 아니면 일본어로도 같은 뜻을 가진 음으로 표현이 되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어떤 큰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이야기의 흐름도 별다른 데가 없는데, 달팽이를 죽이면서 느낀 죄책감과 이상한 소문이 난 남자아이, 그리고 섬뜩하게 느껴지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묘한 조화를 이룬 단편이었다.

 

 열번째, 하루카..

이 단편은 여자아이의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어'라는 다소 소녀적이고 공상 가득한 바람이 얼마나 섬뜩하고 무심한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같다. 아픈 동생을 망가졌다"고 표현하거나, 지나가던 남자에게 끔찍한 일을 당하고서도 태연자약하게 사탕의 포장을 묘사하는 점이 그랬다. 어떤 의미로는 이 단편이 가장 '차갑고 애처로운 비밀 이야기'인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책과 함께 '함부로 애틋하게'의 일러스트가 담긴 책갈피가 왔다. '함부로 애틋하게'의 소개를 봤을 때도 느꼈는데 그림이 전체적으로 따뜻한 느낌이 드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문구들도 하나씩 적혀있었는데 중2스러운 문구도 있어서 조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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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꾸는 책 읽기 - 세상 모든 책을 삶의 재료로 쓰는 법
정혜윤 지음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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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저자인 정혜윤의 책은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이라는 제목의 책을 전에 읽었던 적이 있다. 그 때도 그랬지만, 이 번 책을 읽으면서도 그녀만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책이라 인상적이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특히 문체가 인상적이었다. 상당히 담담하면서 조근한 어투처럼 느껴지는 문체인데, 비슷한 투로는 영화평론계의 아이돌 이동진 기자가 있다고 생각된다. 어떤 한 분야에 조예가 있고, 그것을 일반 대중의 구미에 맞게 변환하여 소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공통점인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그냥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먹보는 먹보같이 사랑하고, 이기적인 사람은 이기적으로 사랑하고, 계산적인 사람은 계산적으로 사랑하고, 깨끗한 사람은 깨끗하게 사랑하겠구나.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람이 뭔가를 아주 좋아하면 세상만사를 그걸로 설명할 수도 있구나.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돈을 좋아하는 사람 눈에는 세상이 온통 돈으로 보인다고. 그때 이후로 줄곧 제게 남은 문제는 하나였던 것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을 사랑할 것인가? 무언가를 사랑하면 그 무언가를 사랑하는 모습 그대로 세상을 사랑하게 되겠구나."

 

 책은 인상적인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그 인상적인 부분들이 모여서 읽는 이를 감화시키기에 이른다. 우리가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강력한 힘을 가진 말로 바꿀 수 있는 것도 그녀가 가진 하나의 힘이다. 자신이 갖고 있는 사랑의 형태에 어떤 불만이 있는 사람이 이 문구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먼저 스스로를 반성하게 될 것이다. 사랑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결국 자신인 것이다.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닌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볼 것인지가 좌우하는 것이다.

 

 "우리가 타인과 연결되지 못하는 이유를 많은 소설이 서투름이라고 설명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연결되지 못하는 것은 서툴러서가 아니라 우리가 "너는 너, 나는 나."라고 주장하는 개인주의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너 혼자서만 잘해라, 네 힘으로 스스로를 돌봐라, 라는 말을 넘치도록 듣고 살아서입니다. 이제 연인들은 서로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헤어집니다. 어떻게 서로 힘이 될까 생각하기에 우린 개인적인, 너무나 개인적인 상태에 있습니다."

 

 너무나 솔직하고 날카로운 지적이다. 우리가 서투르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은 '나에게 너는 중요한 사람이야, 하지만 내가 더 소중해'라고 하는 개인주의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때로, 상대방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헤어지는 연인들의 이야기를 아름답고 슬픈 미담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정혜윤은 누가 누구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하는 자세조차도 개인적인 상태에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완고한 말인 것처럼 느껴지는 면도 있지만 어느 정도 공감이 되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린 고통을 어떻게 극복할 수가 있죠? 다른 방식의 위로란 것도 있을까요? 고통이 잊을 수 없는 거라면 우린 조금 욕심을 부려야만 합니다. 좋아, 너에게서 내가 의미를 끌어내 보겠다. 너를 승화시켜 보겠다, 너랑 싸워 보겠다, 이런 용기가 필요합니다. 적어도 고통은 없다는 듯이 굴지 말아야 합니다. 진짜 오만한 사람은 그 무엇에도, 자신의 고통에도, 타인의 고통에도 상처 받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입니다."

 

 이 책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부분이다. 고통을 받았을 때, 괴로운 일, 슬픈 일이 있을 때 가장 쉬운 방법으로 그것을 외면하는 일을 선택했던 것 같다. 오만했다기 보다는 그것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직시할 수 없어서 모른척 덮어두었던 것이다. 누구에게 말하지도 표현하지도 못한 고통, 슬픔들을 그러안고 있다보니 이제는 어디더라도 익명의 상대에게 털어라도 놓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그 고통을 직시하고 맞서 싸울 용기는 없다. 하지만 외면하는 행동만은 그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은 이렇게, 사람의 생각과, 마음, 그리고 삶을 바꾸는 영향을 끼친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감상이니, 어느 정도는 믿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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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악보 - 이론의 교배와 창궐을 위한 불협화음의 비평들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1
최정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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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기에 앞서, -원래 대부분은 그런 일을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었을까, 찾아보았다. 많은 사람들의 글을 볼 수도 없었을 뿐더러, 대체적으로 어려웠다는 것이 -열심히 읽었으나 자신이 부족하여 텍스트의 온전한 이해가 어려워 아쉬웠다는 내용의- 이 책의 평이었다. 겁을 좀 집어먹었다. 철학과 음악에 대해선 무지몽매한 범인이고, 그런 사람의 입장으로 이 책을 읽는다고 집어드는 것은 독서로 체하는 지름길임을 알면서도 그 길로 들어서는 것과 다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독서도 체한다. 음식만 먹고 체하는 게 아니라 이해 범위 밖의 것을 지나치게 하면 제대로 소화가 안되고, 한동안 독서에 뜻을 잃고 방황하게 된다. 그리고 체했다.

 

 왜 굳이 이 책을 집어들었냐면, 저자 최정우의 강연회가 있었다. 참가하고 싶었다. 왜냐면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 책을 읽고 저자를 직접 만나면 나도 뭔가 더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와 그리고 그 밑에 잔뜩 깔린 욕심때문이었다. 저자 최정우의 강연회에는 기쁘게도, 참석하게 되었고, 책을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까만것은 글씨 하얀 것은 종이. 눈 앞에는 저자, 그리고 나는 어디 여긴 누구의 소위 멘탈이 붕괴될 것 같은 시간이었다. 라고 말하지만 약간 과장이고 그래도 직접 어떤 배경을 두고 어떤 글이 나왔는지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니 책만 읽고 혼자 끙끙 앓았던 때보다는 훨씬 나았었다.

 

 1악장, 폭력의 이데올로기 비판을 위하여"에서 영화 '그랜 토리노'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법치에 대한 뒤틀린 믿음"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그 부분이 반가웠던 이유는 영화 얘기가 나와서 이기도 하고 그 뒤틀린 믿음에 대해서 나는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를 보면서 느꼈다. 거기에서 주인공이 끝부분에 독백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일반인들이 법이라는 것에 대해 갖는 막연한 환상과 그 환상의 무너짐에 대해 이야기한다. 느끼기에는 비슷하게 여겨졌는데, 글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결론은 두 영화 모두 추천이라는 것.

 

 2악장, 페티시즘과 불가능성의 윤리"에서는 직립보행과 발:저속한 것, 냄새 나는 것의 페시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뭐라고 메모를 해놓았으나 시간이 좀 지난 관계로 해석불가능이다. 다시 읽어보면 알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엄두가 안난다. 슬픈일이다. 그 뒤로 4악장 쯤에 가면 강연회에서 직접 들었던 일화, 사이토 지로의 '아톰의 철학'이라는 책이 만화 코너에 꼽혀있었다는 것, 윤대녕의 소설 '은어낚시통신'이 레저 코너에 있었다는 얘기 등이 나온다.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13악장 쯤에 가면 글렌 굴드와 에드워드 사이드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글렌 굴드는 멋있어서 좋아하고 있고, 에드워드 사이드는 바렌보임과의 대담을 정리해 놓은 책을 아직까지 읽고 있는 중의 현재진행형으로 미뤄두고 있기 때문에 관심있는 사람 중 한 명이라 눈에 띄었다.

 

 그리고 이 책의 나머지 내용들은 설명이나 언급 불가입니다. 어려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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