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백영옥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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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영옥 작가의 전작들 이름을 들어봤다. 들어보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트렌디한 느낌의 유명한 책들이었다. 그런데 읽어보지는 못했다. 백영옥 작가의 글을 처음 본 것이라 생각 외의 부분들을 많이 발견했다. 제목만으로는, 꽤 무거운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가볍고 또 재미있는 부분들이 많아서 신선하게 다가왔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이라는 제목과 소재가 매우 개성있어 인상적이다. 겉표지가 매우 화려해서 속도 그런 느낌일거라 생각했는데 속은 또 단정한 모습이라 의외였다. 책의 내적으로 외적으로 생각 외의 면을 발견하게 되는 책이다.

 

 제목이 곧 내용이 되는 책이다. 실연한 남녀들이 잔뜩 나오는 책이다. 마치 이 책의 등장인물로 이름이라도 한 번 나오기 위한 서류전형에 최근 실연했을 것. 이라는 목록이라도 한 줄 들어가 있는 듯이 말이다. 아마, 이 책을 선택하는 독자 자격에도 한번쯤은 실연해보았을 것 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을 것만 같은 책이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무려 일곱시의 조찬 모임에 굳이 실연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 끼어들고 싶은 마음은 생기지 않을 것 같다. 남의 불행을 보고 즐기려는 사디스틱한 마음이 아니고서야. 하지만, 우리의 독자들은 아마 모두 실연을 해봤을 것이다.

 

 "실연의 흔적이 남긴 것들은 어째서 이토록 반짝이는 걸까. 이미 죽어버린 후에도 이 빛들은 왜 시들지 않고 살아 있는 걸까. 죽어가는 역에 몰입한 발레리나의 눈빛에서 가장 큰 광채가 흘러나오는 것과 비슷한 걸까."

 

 연인과 반짝임에 대한 명구절이 있는 드라마는 '내 이름은 김삼순'일 것이다. 한 번 보면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 드라마. 거기서 려원이 마음이 변한 현빈에게 이런 말을 한다. 지금 그 사람이 반짝여보일거라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너와 나 사이의 반짝거림이 사라졌듯이 그 사람도 반짝임이 없어질거라고. 그래도 그 사람에게 갈거냐고. 이 책에서도 반짝임을 말한다. 그런데 사랑하고 있는 반짝임이 아니라, 사랑이 끝남의 반짝임을 말한다. 마치, 죽기 전에 한 번 낸다는 백조의 울음처럼, 스러지기 직전 그 마지막 반짝임이 어째서 그토록 반짝이며 상처입은 가슴을 비추고 있는 것인지 묻는다.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것 말고는 큰 공감은 하지 못했다. 실연의 흔적은 반짝이지 않고 시뻘건 생채기를 그냥 내보인 채 붉은 피를 흘리고 있는 상처같은 느낌이다. 너무 크고, 또 흉이 남을까봐 나로서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누군가 전문적인 사람에게 가서 보이고 수술이라도 받아야 나을 수 있는 상처처럼 느껴지는 실연을, 죽어버린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반짝임으로 표현한 것이 나와 다른 점이라 인상적이다. 모두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고 그 단면 중 하나를 서로 맞대어 본 기분이다.

 

 " "전 그냥 애인을 잃은 게 아니에요. 지훈이는 저랑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동창이었고, 우린 같은 학번 친구이기도 해요. 우리는 같이 밥을 먹고, MT를 갔고, 취업 준비를 했어요. 함께 실패와 성공을 경험했죠. 지훈이는 제가 가장 힘들 때 아빠나 엄마처럼 늘 제 곁에 있었어요. ...중략... 퇴근길에 버스 정류장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가판대 앞에 서서 잡지를 팔고 있는 나이 든 아저씨를 바라보다가, 문득 그걸 알게 됐어요. 지훈이를 통과하지 않고 제 청춘을 이해하는 게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전 정말 고아가 된 거예요. " "

 

 한 사람과 오래도록 만나다보면 그런 일이 생긴다. 마치 한 사람 몫의 추억을 그 사람과 나눠가진 것처럼, 반쪽을 떼어내면 온전치 못하게 되는 물건을 서로 한쪽씩 맡아두고 있는 것처럼 되어버린다.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는 이별이 더 아프단 구절을 본 것 같다. 오랜 시간을 두고 만나면 여러 감정이 겹겹이 쌓인다. 겹겹이 쌓인 감정은 선명하지도 않고, 어느 한 가지 감정만이 도드라지지도 않는다. 대신 더 무겁고, 여러가지 빛과 형태를 가지고 의미를 달리하게 된다. 이 부분을 읽고나니, 오래도록 만난 사람과는 헤어지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잃었다는 것만으로 고아가 된 기분이 되어버린다니. 시간이 참 무섭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트렌드한 글을 쓰기도 하고, 가벼우면서도 재미있는 톡톡 튀는 문장들도 많았고, 사강에 대해 언급한 감성은 약간 8,90년대 분위기도 났는데, 사진으로 보니 꽤 미인이다. 작가의 신작을 읽고 오후 일곱시의 모임이 있다고 해서 가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안됐다.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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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김용원 지음 / 하다(HadA)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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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아'라고 시작하는 책의 제목이 어찌나 많은지 새삼 생각해보며 약간의 질투가 났다.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물론 딸에게 해주는 말들이 담긴 책들도 그에 못지 않게 많지만. 김용원의 신간 '아들아' 역시 부모의 입장에서 '남자의 구실, 남자다움'을 새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바람이 담겨 있는 책이라는 표지의 문구를 보면서 호기심 섞인 기대 반, 약간의 질투섞인 부러움 반의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비로소 나는 아버지는 썰매를 만들어 주는 사람이고, 또 썰매 타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하는 거구나. 그러나 나는 아버지가 없으니까 당연히 썰매가 없고, 또 탈 수도 없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참, 넌 아버지가 없지." 준식이는 혼잣말처럼 그 말을 내게 던지고는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하며 쌩 달아났다."

 

 주인공 귀동이는 여섯살 소년이라고 하기에도 너무나 어린 아이다. 할머니, 폐병을 앓는 어머니와 함께 사는데 그 아이가 처음으로 아버지의 부재를 실감하는 대목이다. 아이가 느끼는 아버지의 빈자리는 이런 곳에서 오는 구나, 싶게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아버지의 부재는 집안의 형편도 어렵고, 이런 부분까지 신경 써 줄 존재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도 영민한 주인공인 귀동이는 이를 두고 쓸데없는 떼를 쓰지 않는다. 귀동이네 할머니가 집안의 대들보라고 추어줄만한 마음의 깊을 가졌다는 점이 좋았다. 귀동이는 매우 어리지만, 형편 상 어린아이의 위치에서만 머물지 않는 아이라 더욱 안타깝고 매력있는 주인공이 되었다.

 

 "부엌으로부터의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할머니와 눈길이 마주쳤다. 할머니의 눈 주위는 불그스레했고, 얼굴은 부어 있었다. "할머니, 나 안 울었어요." "안다." "할머니도 안 울었지요?" "그럼." 그렇게 대답하던 할머니의 두 눈에서 끝내 눈물 두 줄기가 주루룩 흘러내렸다. 실은 내 눈에서 먼저 그랬다."

 

 어머니의 병이 악화되고 귀동이와 할머니는 조손가정이 되어 지낸다. 두 사람만의 생활은 따뜻하면서도 어렵다. 옛날엔 누구나 살기 어려웠다고 하지만, 특히나 이가 빠진 듯이 여기저기 비어있는 집안은 더욱 울 일이 많았을 것이다. 여섯 살에 울 일을 참아가며 가족을 지키려고 애쓰는 귀동이와 그런 귀동이를 재우치면서도 보듬는 할머니, 두 사람이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는 모습이 잘 나타나는 책이다. 특히 손자를 매우 아끼고 사랑하면서도 엄할 때는 타인처럼 냉정하게 꾸짖어주는 할머니의 교육법이 좋다. 무조건 응석을 받아주고 사랑만 해주는 것보다는 더 큰 마음이 느껴진다.

 

 "할머니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한동안 가만히 계시더니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불끈 일어나 벽장 안으로 올라가셨다. 그러고는 벽장 안에서 무언가를 찾느라고 한동안 부시럭 툭툭 덜거덕거리더니 마침내 파랑색의 좁고 긴, 양초관만한 종이곽을 들고 내려오셨다. 내 앞에 바로 앉으시더니 곽을 열어 보이셨다. 은수저와 은젓가락이었다. "까치나라 대장이 쓰시던 건데, 이제부터는 대주님이 쓰시게." "내 숟갈하고 젓가락 있잖아요?" "까치나라 대장이 대주님 가슴 속에 있으니 대주님이 이것으로 식사를 하면 바로 까치나라 대장님이 먹는 거나 다름없는 것이야." "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그 사람이 없어졌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해줄 수 있는 게 더는 없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이렇게 마음 속에 잘 간직하고 있으면 언제나 함께 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을 많이 봤다. 멋지고 따뜻한 말이긴 한데, 사실 그동안은 그닥 마음에 와 닿는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새삼 그 말이 생생하게 다가온 대목이어서 따로 옮겨보았다. 까치나라 대장은 귀동이의 아버지를 일컫는 말인데,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귀동이에게 아버지가 까치나라에 계시다고 얘기해준 것을 계기로 까치나라 대장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나도, 앞으로는 식사 인사를 두 사람 몫, 해야 겠다는 생각을, 읽으면서 했다.

 

 큰 이야기 거리는 없는 책일지도 모른다. 각각의 편이 짧게 끊어져서 이어지는데 마치 만화책 여러 편을 글로 옮겨 묶어놓은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화려한 이야기는 아니어도 가슴은 따뜻해지는 소소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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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의 온도 - 조진국 산문집
조진국 지음 / 해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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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생애의 드라마 중 하나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소울메이트'의 작가 조진국의 에세이집이다. 소울메이트라는 드라마는 사실 인기있는 드라마는 아니었다. 하지만 매니아 층의 사랑을 받은 드라마임은 틀림없다. 어떤 매니아 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매니아 층의 사랑을 말이다. 처음부터 이 드라마를 사랑했던 것은 아니다. 이 드라마가 할 무렵 지인이 내게 말했다. 나는 별로인데, 니가 보면 분명 좋아할 드라마가 있다"고. 그래서 속으로 어떻게 니가 내 취향에 대해 확신하냐'고 생각하면서 반신반의 이 드라마를 봤다. 그리고 나는 그 지인의 말대로 분명 그 드라마를 좋아하게 되었다. 빈말로라도 별로였다"고 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게다가 그 드라마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음악들은,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 음악 마저도 작가 조진국의 선곡이었다고 한다. 세상에 대체, 이런, 남자가, 또!

 

 "당신은 약한 사람이 아닙니다. 얼굴에 싫고 좋은 티가 금방 나고, 하고 싶은 말도 잘하는 편입니다. 농담도 잘하고 입맛도 까다롭지 않습니다. 모르는 사람들과도 잘 어울립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릅니다. 당신이 실은 외로움에 자주 뒤척인다는 것을."

 

 마치 별자리나 혈액형 성격같은 두루뭉실한 얘기다. 누구나 공감할만한 얘기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문자로 마치 번역이라도 해놓은 듯한 이 감정의 색깔은 너무나 쉽게 사람의 마음에 파고든다.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이 부분을 읽을때, 그 첫 순간 내 코끝 어디선가 초콜렛 냄새가 느껴졌다. 매우 달큰하면서도 씁쓸한 뒷 기운이 빠지지 않은 것 같은 초콜렛 냄새가 느껴지다니. 과장하는 것 같겠지만 진짜여서 달리 할 말이 없다. 덧붙여 내가 그렇게 감성적인 독자도 아님을 밝혀둔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로 그랬다. 그의 글은 마치 딱 이런 분위기다. 당신 일상의 이런 사소함이 아플거야라고 알아주는 듯한, 사실은 나도 이래. 라고 꺼내놓는 듯한 조곤한 털어놓음. 그가 가진 외로움의 온도를 손을 통해 직접 느끼는 듯한 기분이다.

 

 "그녀는 남편이 간절하게 보고 싶을 때는 무엇보다 그 사람의 냄새가 생각난다고 했다. 평소에 이렇게 밥을 먹고 친구를 만나고 영화를 보고 똑같이 생활하다가도 그 사람이 문득, 보고 싶다고 했다. 갑자기 툭, 그립다고 했다. 그 사람의 냄새가 너무 그리워서 누군가 푹 하고 가슴을 찌르듯이 아프다고 했다."

 

 깊이 공감하는 내용이다. 냄새에 대한 얘기가 많은데 그 첫번째 부분이다. 누군가가 보고싶을때 사진도 분명 그 사람을 추억하는데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사람의 냄새가 주는 힘은 생각 이상으로 크다. 마치 그 사람이 곁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냄새를 맡으면서 그 사람이 내 뒤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 곁에 없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있는데 바로 눈 앞에 보이는 않는 곳에 있다고 생각하고 나면 좀 더 마음이 편해진다. 상실감이 조금은 상쇄된다. 슬픔까지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리움, 상실감, 상처처럼 남은 슬픔은 일상 곳곳에 숨겨놓은 보물쪽지처럼 의외의 곳에서 툭툭 터져나온다.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이 발견하지 않으려고 돌아갈수록 더 많은 곳에서 찾게 된다. 그 아픔을 견뎌내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그녀는 알뜨랑 비누 냄새가 좋다고 했다. 옛날에 자기 하나밖에 모르는 잘생기고 우직한 남자가 있었다는 회상으로 이야기는 시작됐다. 그 사람에게선 늘 알뜨랑 냄새가 났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게 알뜨랑이었어. 샴푸가 뭔지, 린스가 뭔지도 모르는 순박한 남자였지. 그래서 더 그 사람이 좋았어. 겨울에는 꼭 내 손을 깍지 끼고 외투에 넣고 다녔는데 그러면 집에 돌아와서도 내 손에 그 냄새가 배어 있었어."

 

 마치, '젊은 느티나무'를 떠오르게 만드는 부분이다.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하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그 풋풋하고 아름다운 소설. 사랑해마지 않는 그 소설. 사랑하는 대상의 냄새란 것은 이렇게도 각별한 것인가보다. 상대방의 냄새가 배어들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는 뜻이 될 수도 있고, 상대방의 냄새 면면을 맡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는 뜻이 될 수도 있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만의 냄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역시나, 아름답다. 차마 풀어내기 아까울 정도로. 누구에게나 자기만 살며시 음미할 생의 가장 달콤한 부분이 있다. 공유하기 조차 아까운.

 

 "지금껏 내가 맺어온 관계도 비슷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이 변한 거 같아, 라고 말하지만 대부분은 내 감정이 먼저 퇴색되고 식어버렸던 것이다. 다만 나쁜 인간이 되는 게 싫어서 빠져나갈 변명 거리를 상대에게 찾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친구 A와의 일과도 비슷한 것 같아 죄책감 비슷한 느낌이 든다. 그녀는 굉장히, 깨어질 듯한, 약하면서도 사랑스러운 감성을 가진 소녀였다. 그녀는 초저녁 하늘 끝에 뜬 달빛이 너무나 예쁘다며 나를 찾아오는 소녀였고, 약간 들뜬 허스킨한 목소리로 조잘거리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너무 좋고, 싫어하는 것은 너무 싫다고 표현하곤 하는 소녀였다. 그런 그녀가 가진 감성과 약간의 고집스러움, 그리고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에 내가 속해있다는 안정감을 나도 매우 좋아했다. 시간이 흐르고 그녀가 더이상 소녀가 아니게 되었을 때 그녀와 오랫만에 다시 만나게 된 일이 있었는데, 달빛에 대해 이야기하려던 내 말에 전처럼 달뜬 목소리로 화답하는 그녀가 예전의 그녀가 아니게 된 것만 같아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그녀가 아니라 내가 변한 것은 아닐까. 그녀를 다시 만나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진국의 에세이는 내밀하다면 내밀하고, 뭔가가 잔뜩 숨겨져 있는 것 같다면 또 그런 것 같은 느낌이다. 전부 다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중요한 것은 삼켜버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전해주는 감성의 색채나 온도만은 어째서인지 제대로 전해지는 것 같다. 그의 글도 좋지만, 그가 선보일 드라마도 기대된다. 소울메이트 시즌 2를 애타게 기다렸으나, 아직 소식이 없음이 안타깝고 안타까울 뿐이다. 앞으로 좋은 소식이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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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처럼 - 남극에 사는 황제펭귄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
송인혁.은유 지음 / 미래의창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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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을 좋아한다. 펭귄을 왜 좋아하는지 쉽게 설명하기 어려울정도로 좋아한다. 그냥 펭귄을 보고 있으면 귀엽다. 느긋한 분위기도 느껴지고, 움직임이 둔한데 생각 외로 섬세한 것처럼 느껴져서 좋다. 흑백의 대비도 마음에 들고 긴 몸뚱이에 짧은 팔다리의 미묘한 조화도 좋다. 아마 이 책을 보는 이들도 바로 그런 펭귄의 매력을 잘 알고 있고, 또 그 매력에 푹 빠질 것이다. 이 책은 내가 펭귄을 좋아하는 만큼 좋아할, 좋아하는 책일 것이다. 펭귄을 좋아한다면 꼭 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펭귄들이 책 가득히, 가득히 담겨있다. 한마리 한마리가 소중하리만큼 보기 좋다.

 

 자발적 유배라고 표현하는 그들의 남극행은 그들만의 이유있는 여정이다. 천적도, 바이러스도 없는 극지에서 단단한 얼음과 바람을 막아줄 빙벽이 있는 장소로의 번식을 위한 고된 여정. 그런 그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안타깝고 안쓰러운 애정이 솟아오른다.

 

 "황제펭귄 서식지에는 천적보다 더 무서운 무리들이 있으니, 바로 새끼를 잃어버린 수컷들 입니다. 그들은 무리를 지어 새끼를 품은 펭귄을 공격하고 부모들은 필사적으로 방어합니다. 남의 새끼를 빼앗는 게 쉬울 리 없습니다. 그도 안 되면 죽을 새끼를 뱃속에 넣고 며칠간 밤새워 품기도 합니다. 행여나 뚝 끊어진 인연의 끈이 도로 이어질까 하여 쉬이 내려놓지 못합니다."

 

 전에 펭귄의 행진이라는 프랑스의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한 때 PMP였나 하는 기계에 넣어두고 출퇴근을 할 때 계속 켜놓고 졸다 보다, 졸다 보다 반복적으로 그 평화로우면서도 사랑스러운 화면들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었던 적도 있었다. 화면에 가득한 희고 까만, 펭귄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그냥 그저 좋다는 생각에 스트레스가 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영화에서 좀 충격적이었던 부분이 바로 저 내용이었다. 알이나 새끼를 잃은 펭귄이 전에 없는 공격성을 보이던 그 장면. 다른 펭귄이 품고 있는 알을 빼앗으려 집요하게 따라붙거나, 다른 펭귄의 새끼를 억지로 제 품에 끌어당기려고 하는 통에 작은 새끼가 시달리다 죽을 것처럼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그 난폭한 몸짓을 보고 놀랐다. 그리고 한 편으로 죽은 제 새끼를 바라보던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이 느껴지는 펭귄의 모습에 종을 뛰어넘는 슬픔의 공유를 했던 기억도 난다. 그 내용을 이 책에서도 다시 만나니 또 여러 생각이 떠오른다.

 

 책의 말미에는 펭귄을 촬영하며 펭귄을 닮아버린 송인혁, 김진만 씨의 남극체험도 실려있다. 그리고 그들의 뒷모습을 담은 사진도 있다. 이 남극의 신사들과 직접 공감하고 돌아온 그들이 부러우면서 고맙다. 멋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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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력
이츠키 히로유키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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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마주하기에 앞서 과연 지금 시대에 어울리는 책일지부터 궁금해졌다. 자력을 강조하는 시대에 타력을 앞세우는 제목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어떤 내용을 말하고 싶어하는건가 생각했다. 일본에서 온 이 모르는 아저씨는 인생 선배가 되어 자신의 인생을 통틀어 전하고 싶은 말을 책에 담아냈을 것이다. 그가 말하는 타력밑에 숨겨진 의미를 읽으면 알 수 있겠지 싶은 마음으로 읽었다. 그를 통해서 알게 된 것도 있고, 생각하게 된 것도 있고, 불만을 느끼게 된 것도, 또 그로인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 것도 있다. 저자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좀 더 꼼꼼히 읽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책에도 그런 검열의 눈을 갖고 일일이 꼬리를 붙여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 눈을 끝내 버리지 못한 자신도 발견했다. 읽으면서 비슷한 맥락의 생각이 들었던 책이다.

 

 이 책에서 작가가 일본 사회에서 충격적으로 다가온 몇 가지 사건을 반복적으로 들고 있는데, 한신 이와지 지진이나 옴진리교 사건, 일본의 패전, 고베지진, 사카키바라 소년 사건 등이 있다. 자신이 직접 체험한 사건도 있고, 일본 사회에 커다란 흔적을 남은 상처가 된 사건들이 대부분이다. 사카키바라 소년 사건 역시 다른 사건들에 비해 생소하지만 들어본 적 있는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나머지 사건들은 대부분 설명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큰 사건들이다. 그런 일련의 사건들과 변해가는 문화 풍조를 두고 일본 사회에 대한 무한한 작가의 애정과 염려를 표현하고 있는 책이다. 다분히 일본적인 정서가 짙게 깔려나온다. 자신들의 문화, 풍류를 최상의 것으로 두고 약간 도취된 듯한 자부심을 즐기는 일본 사람들이 과연 좋아할만한 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실패만 하는 시기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스스로를 책망하지 말고 "흠, 아무래도 타력의 바람이 불지 않는 것 같군'하고 가만히 목을 움츠리고 있으면 됩니다. 반대로 생각 이상으로 만사가 잘 풀리는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고 자신감도 점점 더해갑니다. 그럴 때는 오히려 잠시 멈춰 서서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내 소관이 아니다." 그렇게 중얼거려보는 것입니다."

 

 이 책은 마치 이 대목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공감하는 내용과 거부감이 드는 내용이 교차되어 공존하고 있다. 전자의 경우는 꽤 공감하는 편이다. 일이 잘 되지 않을때 자신을 탓하거나 자괴감에 빠지지 말고, 그 일 자체가 시기적으로나 상황적으로 잘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좀 더 자신을 편하게 두는 편이 오히려 더 낫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탓해봤자 스트레스만 더 늘고 잘 안되는 일이 잘 풀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일이 잘 풀릴 때 그 기쁨과 자신감까지 굳이 물려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게 자신 덕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오만한 일이지만, 자신의 노력이 덧대어져 잘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까지 막을 필요는 없다.

 

 "타력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나 이외의 뭔가 커다란 힘이 내 삶의 방식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고방식입니다. 나 이외의 타자가 나라는 존재를 떠받치고 있다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꿔 말하면 타력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의 커다란 힘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커다란 에너지가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흐르고 있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읽었던 직업 관련 책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다. 사람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밥 한 끼 먹는 일도 사실 누군가의 도움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아마 이 타력이라는 것도 그런 의미로 생각할 수 있다고 느껴진다. 아니면 마치 연금술사에 나오는 것처럼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는 우주의 힘이나, 시크릿 같은 책에 나오는 긍정의 힘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이 책에서 이처럼 타력을 강조하지만 지극히 일본적인 종교의 관점에서도 삶을 바라보는 자세를 많이 이야기한다. 특히 15세기 중기에 있었던 종교인 '렌뇨'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생소한 인물이라 작가의 책에서 처음 접했다. 책의 말미쯤가면, 렌뇨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 "병이 있는 사람, 고민이 있는 사람의 심적 고통이나 괴로움은 '타인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이 고통은 자기만 느끼고 있다'라고 생각했을 때 두 배, 세 배 더 커지는 것이다." 작가 엔도 슈사쿠는 어딘가에서 그렇게 썼습니다. 갇힌 슬픔, 갇힌 고통이란 것은 그 강도가 보통의 것보다 두 배, 세 배 커지는 것입니다."

 

 공감하는 부분 중 하나다. 이 부분에서 대뜸,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옛 이야기가 떠오른다. 말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병을 얻는데, 자신의 고통을 남과 나눌 수 없어 혼자 끌어안고 있을 때 가슴속에서 느낄 고통은 얼마나 더 큰 것일까. 그것은 고통에 외로움이 더해진 무게일수도 있다. 괜히 기쁨을 나누면 두 배,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라는 말이 나오는 건 아닌가보다. 세월을 통해 전해지는 말들은 다 그만의 깊은 이유가 있는거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가장 흔한 것에서 찾는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깨달음이 떠오른다.

 

 "일본인은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자아가 작은 것 같습니다. 일본인은 스포츠에서도 골프나 테니스처럼 개인기를 겨루는 게임에서 좀처럼 이기지 못합니다. 일본인은 셋이 모이면 금세 파벌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몇 명이 모여야 겨우 한 사람 몫을 한다고 생각하는 면이 있습니다. 이는 사방이 국경으로 둘러싸여 있다든가 반복적으로 침략을 받은 경험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강렬한 자아를 가질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일본인은 기본적으로 부드러운 감성의 소유자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자국에 대한 애정어린 분석이 보인다. 일본인이 가진 기질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듯하면서도 일견 그 기질은 부드러운 감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안아주고 있다. 글쎄, 그들이 예의바른 사람일 수는 있어도 부드러운 감성을 가졌다고는 생각이 쉽게 미치지않는다. 그들은 침략을 받은 경험이 없는 대신, 침략을 하는 경험을 택하는 민족이 아닌가. 공격받지 않아 강렬한 자아를 가질 필요가 없었다는 해석은 좀, 지나치게 애정이 섞였다. 대신 공격하는 더욱더 강렬한 자아랄까, 욕망을 가지지 않았나. 우리나라에서 흔히 말하는 섬나라 근성이라고 하는 그런 성질을 갖고 있는데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그런 면이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또 슬퍼하는 사람에게 "계속 끙끙 앓아봤자 소용없어. 마음을 고쳐먹고 열심히 해봐. 자, 힘을 내자"라는 식으로 격려함으로써 슬픔에서 회복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대치적인 방식입니다. 이에 반해 잠자코 함께 눈물을 흘림으로써 그 사람의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나누려고 하는 태도를 동치라고 합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내 자신에 대해 좀 생각해봤다. 나는 어떤 입장을 취하는 편인가, 하고. 생각해보니 대치적인 방법을 쓴 경험들만 떠오른다. 위로해주는 것에 익숙치 않아서 그렇다는 변명을 해보지만, 그런데 누군가 나에게 동치적인 방법의 위로를 해주었을때 큰 위로가 되었던 것이 떠올랐다. 무슨 말이라도 해줘야 위로가 될 것 같아서 그런 말들을 주워읊었던 것인데, 공감이 격려보다 큰 위로가 되는 순간을 직접 체험해본 기억이 떠오르고 보니 나도 앞으로는 공감을 해주어야 겠구나 싶었다. 뭐, 사실적으로는 슬픔에 빠져있을때 곁에서 위로를 주려고 하는 사람들의 노력은 동치이든, 대치이든 어떤 방법이든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고마운 위로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은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 놓여진 불편함에 대한 것이다. 우리나라를 구 식민지라고 표현한 점도 그렇고 과거 아버지와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외지인 학교 교장이었던 아버지가 패전 이후에 가르치던 학생들이 무장하고 와서 한국을 떠나라는 말을 했다는 조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을 보면 왠지모를 거부감이 든다. 구 식민지라는 표현이 사실일수도 있는데, 일본인인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 생각하니 어쩐지 거부감이 느껴졌다. 그들이 그런 과거를 안고 우리나라를 부를때는 좀 더 죄의식이랄지, 부채의식이나 조심스러움을 담아서 불러야하지 않을까 싶은데. 게다가 외지니 내지니 이런 표현이 나오는 것도 껄끄러웠다. 과거의 말을 하면서 외지, 내지 표현이 나오는 것일수도 있지만 그건 강점기 시기에 일본이 자국와 우리나라를 부르던 표현이다. 우리를 속국으로 보면서. 일본을 싫어한다고 의식하고 지내는 것은 아닌데 이런 순간에 나오는 거부감이나 일종의 분노는 어쩔 수 없는 것인 것 같다. -쓸 수 밖에 없는 표현인걸까 하고 생각하면서도 짜증난다. 이 근본도 모르겠는 애국심-

 

 과연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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