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밖으로 다시 배낭을 꾸려라 - 파나마에서 알래스카까지 세상 밖으로 배낭을 꾸려라 2
칸델라리아 & 허먼 잽 지음, 강필운 옮김 / 작은씨앗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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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나긴 여행을 함께하게 되었다. 이들 부부가 두사람으로 시작해서 세사람이 되어 돌아오는 여행의 마지막에 합류하게 되어 즐거운 마음이었다. 무엇보다도 여행지가 미대륙을 남쪽부터 북쪽까지 아우르는 곳들이어서 더욱 좋았다. 특히 남미의 여러 지역들이 반가웠다. 동양인 한정일지도 모르지만 남미는 어쩐지 떠나고 싶은, 환상적인 여행지 중의 하나이다. 멀어서 생소한 것일 수도 있고 남미가 주는 강렬한 이미지 때문일수도 있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부부 덕분에 남미 지역에 대한 여행기를 비교적 친근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새로운 관광지를 살펴본다는 느낌보다는 친숙한 이웃, 새로 사귀게 된 친구를 만나듯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이 뭐였어요?" 부인이 질문했다. "돈이 다 떨어진 것이 제일 좋았습니다." "진짜로요?" 대사가 놀라며 물었다. "네, 믿기시지 않겠지만 진짜로 그랬습니다. 전에 돈이 있을 때는 어떤 장소를 둘러보며 지나가는 관광객이었습니다. 이제는 그곳의 풍습과 함께 그 지역을 생생하게 경험합니다. 곤궁함 때문에 우리는 더욱더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게 되었고, 그들은 우리에게 문을 열어주면서 자기들의 전통과 문화와 음식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 나라뿐만 아니라 자기들 삶에 대해서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런 지속적인 배움을 통해 우리는 성장했고, 그리고 계속해서 알고 싶다는 생각이 더 생겼습니다. 세상과 다른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 놓는 사람은 절대로 성장을 멈추지 않습니다." "

 

 사람들이 여행을 갈망하면서도 쉽게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돈'. 돈이 있어야 여행을 떠나고 돈이 없어서 여행을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런데 이 부부는 돈이 없다는 것이 여행에서 가장 좋은 점이라고 말한다. 패기가 넘친다. 그런데 그들의 변을 듣고나면 과연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가진 것 만으로 여행을 할 때 여행지를 둘러보고, 음식과 기념품을 소비하는 관광객의 입장에서 여행을 끝마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행지 안의 생활에 직접 발을 담궈보지는 못한다. 그들은 돈이 부족하다는 난점을 여행지에서의 삶을 자신의 생활로 만드는 계기로 삼았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그들의 곁을 나누어주었다. 사람이 가진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새로운 가족의 사진을 찍으면서 우리는 그들의 일부분이 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아기를 안아보라고 주면서 말했다. "이제는 삼촌 내외랑 같이 사진 찍어야지." 떠날 때는 여섯 명이었는데 돌아갈 때는 일곱 명이었다. 친구들처럼 왔다가 가족처럼 돌아갔다."

 

 부부 역시 여행 중에 아들 팜파를 얻었는데 그 전에 푸에르토 비에호라는 곳에서 만난 가족들의 집에서 묵을 때 그 집의 새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을 함께 한 경험도 있다. 부부는 손님으로 가족의 집에 초대되었다가 새로운 아기의 탄생을 함께하며 삼촌 부부라는 호칭을 얻게 된다.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가족이 되는 놀라운 경험, 서로에게 잊지 못할 사람이 된다는 것,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사람에 대한 희망과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강렬하게 솟아오른다. 마치 함께 길을 가는 친구들이 늘어나듯 짧은 만남에도 마음과 삶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 여행이 가진 중독성있는 매력인 것 같다.

 

 " "우리는 길을 가다가 비를 맞으며 잠을 잤고, 추위에 떨었고, 먹을 것을 찾아 쓰레기 더미를 뒤졌어요. 그러나 우리를 도와주거나 따뜻하게 대헤 주는 사람들이 항상 있었어요. 우리가 도둑놈이거나 살인자일 수 있을 텐데도 문을 열어주고 잠잘 곳을 제공해 주고, 일자리와 도움을 주고...... 먹여 살릴 아이들이 여럿 있는 많은 어머니들은 자기들이 우리 어머니들이고 그리고 언젠가 자기 자식들도 도움이 필요할 때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그렇게 잘 대해 주셨어요." "

 

 사실 남미의 나라들은 치안이 불안정하고, 북미의 나라들은 타국에 대해 친절하지 않다는 이미지가 있다. 그런데 이들의 여행기를 보면, 우리가 듣고, 어렴풋이 알고 있는 다른 나라에 대한 소문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새삼 느낀다. 불안정한 치안, 불친절함은 물론 주의해야 할 사실 중 하나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내가 대접받길 원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는 사람들이 아직 존재하고 있다. 내가 대접받길 원하는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은 멋진 말이다. 실천하기는 어렵지만. 이 여행기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마음을 보여주고 있고 그 마음을 책을 통해 함께 느끼는 따뜻한 시간이었다.

 

 "첫 번째 질문은 국적이었다. 다시 말해 어떤 장소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가능성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옷을 입느냐도 중요했다. 깔끔하게 차려입고 서양인처럼 생길수록 더 유리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인종차별이었다. 잘사는 나라 국민은 어떻게 차려입어도 입국할 수 있다."

 

 911테러 이후에 특히 미국의 입국심사 과정이 까다롭게 바뀌어서 타국인의 경우 속수무책으로 그들의 심사를 당해야만 하는데, 솔직히 이 부분에는 불만이 많다. 심사를 거치는 것이 아니라 당하는 수준으로 까다롭다. 그들이 타국에 나가는 것은 매우 쉬우면서 타국인이 그들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은 배로 어렵게 만들어놓은건 자국의 안전을 위해서일수도 있겠지만 우월의식을 느끼려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들 부부도 미국과 캐나다를 입국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그들이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떤 만남을 통해, 어떤 목표를 향하는지, 서류나 그들의 겉모습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다. 그들을 바로 보지 않고 진정성을 오해한 채 입국을 거부하는 부분을 보면 꿈과 삶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물질적 지표를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직접 보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 "맛없는 아이스크림 5킬로그램하고 제일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 작은 컵에 들어 있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을 먹을 거예요?"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요."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사느냐보다는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영원히 살 생각을 하지 말고 살면서 영원히 가져갈 수 있는 것을 찾아보세요. 시간을 때우는 방법을 찾는 사람들도 있고 어떻게 하면 더 오래 살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당신이 사는 매일매일은 선물입니다. 그 시간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사세요. 인생은 당신한테 삶만 주었고, 다른 것은 전부 당신이 직접 꺼내야만 합니다." "

 

 사람은 삶에 대한 욕심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을 오래 지속하는 것에 그 욕심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가능하면 더 오래 살고 싶은 것은 당연한 얘기다. 그런데 삶을 오래 살고, 짧게 사는 것은 욕심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다. 우리가 삶에 욕심을 부릴 곳이 있다면 그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채우느냐에 그 욕심을 써야 한다.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갖기 위해 마음을 쓴다. 그런데 그 좋아하는 것을 갖는다는 것을 하기 위해 우리의 삶을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려는 마음까지는 쓰지 못한다. 삶을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채우고 좋아하는 것을 가지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때 이들 부부는 이렇게 말한다. 얼마나 사느냐보다는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그리고 그 말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기에 그들의 말에는 힘이 실려 전해진다. 

 

 "저는 차는 팔 줄 알지만 그 돈으로 무엇을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돈이 있을 때는 돈이 저를 가졌습니다. 이제 돈이 없으니 제가 저를 가지고 있습니다."

 

 살면서 자신의 삶을 마음먹은대로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삶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주인을 이끈다. 그 순간순간을 즐기는 것이야 말로 그 삶의 끝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여행도 그들이 원하는 방향대로만 이끌어지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들의 계획 이상의 것으로 그들을 인도했다. 그들은 그 순간을 즐기며 살아갔고 결국 여행의 끝은 애초에 그들이 계획한 것처럼 아름답게 마무리 되었다. 그들이 마음먹은 그 이상의 빛으로 그들의 삶이 물들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의 여행을 통해 일상에서 벗어난 여행의 즐거움을 느끼기 보다는 주인되게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느끼게 된다. 그들의 낡은 자동차와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톡톡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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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조
김희진 지음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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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진 작가는 처음이다. 책의 표지를 보고 있으면 깔끔한 디자인이 꽤 인상적이다. 욕조의 배수구와 어지러이 널린 실핀들이 도드라지게 되어 있어 진짜 실핀인 줄 알고 집으려 했던 적도 있다. 책을 읽는 동안 계속 이 인상적인 표지를 꽤 마음에 들어했다. 매우 하얗고, 또 매우 까만 색으로 이루어진 표지를 보고 있으면 단정한 것 같으면서 기괴한 느낌도 든다. 그리고 그 표지의 인상은 김희진 작가의 소설집의 전체적인 느낌과도 비슷하게 맞아 들어온다. 단정하면서도 기괴한, 이 친절하지 않은 소설과 만났다.

 

 책을 읽으면서 인상깊은 문장과 마주하게 되면 그 부분을 반드시 꼽아놓는 편이다. 좋아할만한 구석을 찾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마주한 문장들은 현실감있는, 지극히 피부에 와 닿는 실재적인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공감할 수 있는 작고 세밀한 일상의 조각들이 소설에도 담겨 있었다. 비록 이 소설집 안의 작품들이 일상과 거리가 먼 것을 말하고 있더라도, 그 안에는 일상이 담겨있다. 이상한 조화다.

 

 "그들의 말은 계속 이어진다. 혀의 저주 같은 말, 말, 말들. 세상이 어지러운 건 저놈의 혀와 혀가 뱉어 내는 말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만의 조용한 식사는 오늘도 이렇게 끝이 난다."

 

 주인공은 말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말을 하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시거워한다. 사실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대부분은 좋지 않은 말이다. 남의 말을 하더라도 칭찬보다는 흉이 더 재미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굳이 시간과 수고를 들여 좋은 말을 하려고 하진 않는다. 그게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말이다. 소설 속에서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의 혀가 입 밖으로 빠져나와 공중을 돌아다닌다. 그리고 혀는 자신의 주인이 내뱉었던 말을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한다. 그 말들 때문에 온통 혼란이 온다. 설정이 참 독특하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문득 '언령'이란 것이 떠올랐다. 말에도 힘이 있어서 말을 하면 그대로 일이 이루어진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쉽게 속담으로도 '말이 씨가 된다'하는 등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말을 가볍게 하지만 가볍게 뱉어낸 말에 사실 무거운 힘이 있어서 그게 곧 짐이 된다. '언령'이란 말을 듣고 난 뒤로 불길한 말을 함부로 입에 담지 않게 됐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말을 하지 않으니 곧 그 일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입밖으로 내지 않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않은 일처럼 여겨지기도 하니, 말이 가져다 주는 힘은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크다.

 

 "누구도 빌려 간 적 없는 책이 분명했다. 책은 아주 깨끗했고, 새것처럼 아직 길들여지지 않아 표지를 여는 데도 좀 뻑뻑했다. 나는 새 책을 처음 열 때의 그 순간을 좋아한다. 특히 이처럼 하드커버로 된 경우가 그렇다. 미닫이문을 열 때처럼 양장본 표지를 열 때도 미약하지만 '쩍쩍' 소리가 난다. 표지 안쪽의 책등 부분이 벌어지면서 나는 소리였는데 새 책일수록 그 소리가 컸다."

 

 새 책, 새 물건을 처음으로 손에 넣었을 때 느끼는 감정을 옮겨놓았다. 특히 하드커버로 된 책을 처음 열어볼 때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난다는 점이나 약간의 뻣뻣한 느낌을 표현한 점이 좋았다. 생활 속에서 얻어진 생생함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부분이 좋다. 이런 곳에서 공감을 느끼면서 작가와의 일체감을 느끼게 된다. 타인과 연결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것일지도 모르겠는데, 소설 속에서 공감가는 부분을 보게 되면 그 느낌이 더 크게 느껴져서 좋다.

 

 "알랭 씨는 경보 수준에 약간 못 미치는 정도로 걷는다. 보도를 따라 걷다 보면 마주 오는 사람과 어깨를 부딪칠 때가 있다. 페이스가 끊기게 되는 주원인이었다. 그럴 때마다 알랭 씨는 얼굴을 잔뜩 응그리며 혀를 찬다. 당신들이 내 운동을 방해할 권리는 없어. 비켜. 저리 비키라고! 알랭 씨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마주 오는 사람들의 어깨를 일부러 치고 가기도 했다. 물론 죄송하다는 말을 건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주인공이 알랭씨라고 해서 외국인이 주인공인가 했는데 프랑스인의 이름을 딴 한국인의 이름이었다. 알랭씨는 괴팍한 주인공이다. 당최 정이 안가고 이름대로 차가운 사람인 것 처럼 보이는데, 그가 점점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가는 과정이 조금씩 보여 재미있다. 알랭씨의 이야기 중에서 저 부분을 꼽은 건, 역시 공감됐기 때문이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을 때, 또는 거리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치였을 때 저런 생각을 품어본 적이 있다. 알랭씨가 좀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긴 해도 사실 내 안에도 알랭씨같은 면이 존재한다. 

 

 "남자가 수줍게 웃으며 네, 하고 대답했다. 그때까지도 남자는 이마에 맺힌 땀을 손수건으로 찍어 대고 있었다. 여자는, 땀이 많은 사람치고 악한 사람은 없다는 엄마의 말이 생각났다."

 

 이 땀에 관한 얘기는 주변에서 실제로 체험한 적이 있는 신빙성있는 부분이다. 땀이란 것이, 단순히 더위를 느끼는 정도만 나타내는 게 아니라 감정의 동요를 꽤 정확하게 나타내기도 한다. 여자와 관련된 상황에서 여지없이 폭포수같은 땀을 보이는 남자는 대부분 순박하다. 는 두번째 케이스를 이 책에서 마주했다. 그 땀에 대한 꽤 정확한 이론을 이 책에서 또 마주한 것이 의외였다. 잘 몰랐지만 땀이 많은 사람치고 악한 사람은 없다'는 말이 엄마 말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는 말처럼 널리 알려진 말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에서는 이상한 상황들이 아무런 설명없이 막 던져져있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것처럼. 혀들이 공중에 떠다니고, 세상의 빨간색이 없어지고, 욕조에서 자는 여자가 있고, 해바라기로 사람을 고문하기도 한다. 이런 독특한 상상이 재미있으면서도 불친절하다. 문장이 좀 건조한듯한 느낌을 주는 탓도 있지만, 그 독특한 설정을 보고 있으면 난데없이 낯선 곳에 내쳐진 기분이 들게 만든다. 인상적인 소설들이 많다. 김희진 작가만의 개성을 느껴보기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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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님전 시공 청소년 문학 50
박상률 지음 / 시공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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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님전은 구수하다. 개님전의 황구, 누렁이, 노랑이 식의 표현을 따르면 노란 애기똥같은 매력이 있는 소설이다. 구수하다는 말이 색다르다는 말과 어울릴지는 모르겠는데, 확실히 이 책은 구수해서 색다르다. 청소년들을 위해 쓰여진 책 중에서 이렇게 구수한 맛을 내는 작품을 보기는 처음이다. 개인적으로는. 온통 사투리가 가득하고 구어체로 되어 있다. 판소리를 한마당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판소리치고는 좀 더 세련된 느낌이지만. 구식이라고 하기에는 세련됐고, 요즘 식이라고 하기에는 구수하다. 이 독특한 청소년 도서, 가볍게 읽히지만 그 안에 배움와 재미가 골고루 들어가 있다. 우리 토종인 진도개에 대해서 알 수 있고, 시골 문화, 사투리의 맛도 볼 수 있는 책이다.

 

 개님전은 말 그대로 개가 주인공이다. 진도에서 태어난 노란 털의 진도개, 황구와 황구가 낳은 마지막 새끼들 누렁이, 노랑이와 황구의 주인댁 노랭이 황씨 할아버지네 집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얘기도 있고, 어디선가 들어봤던 이야기도 나온다. 무엇보다 특별한 점은 개의 생활과 습성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나온다는 점이다. 집 안에서 키우는 사람같은 개가 아니라 개답게 자라는 개 본연의 모습으로. 소설은 액자식의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첫 장면이 황구네 집에 팔려갔던 누렁이가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황구는 추위에 지쳐있는 누렁이를 보듬어주고, 황구가 누렁이와 노랑이 자매를 낳던 때의 시간으로 넘어가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실 쥐들은 개 냄새와 개 소리가 났을 때 이미 절반은 넋이 빠져나간 상태였것다. 그런 상태에서 패대기까지 쳐지자 더는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렷다. 개 냄새와 개 소리는 고양이의 것과는 달리 치명적이었으니. 고양이 냄새는 별로 고약하지도 않고, 기분 나쁘기는 하지만 소리도 그다지 몸서리 쳐질 정도는 아니었것다. 그런데 개 냄새와 개 소리는 다르다. 개 냄새는 마치 연기에 질식되는 것처럼 괴롭고, 개 소리는 고막을 찢는 것처럼 아프고 공포스럽게 들렸으니."

 

 집에서 개를 키워본 적도 없고 애초에 집에 쥐가 들끓은 적도 없어서 집에서 키우는 개가 쥐를 잡는다는 얘기는 개님전 읽다가 처음 알았다. 나만이 아니라 이 책을 읽는 아이들도 멘탈이 붕괴 되는 얘기일 것이다. 쥐잡는 건 고양이인줄만 알았는데 옛날에는 개도 쥐를 잡았나 모르겠다. 개 좋아, 짱 좋아 뭐 이런 표현이 나오는 것만 봐서는 그렇게도 옛날은 아닌 것 같은데, 배경이 언제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쥐가 고양이보다 개를 더 무서워한다니. '고양이 앞에 쥐'라는 말도 있는데 개님전에 나오는 쥐잡는 개에 대한 얘기는 진짜 새로웠다. 진도개가 주인공이라서 있을 수 있는 에피소드일지도 모르겠다.

 

 "노랑이가 다시 물었다. "부르기 전에 뛰어 들어가믄 안 되는 것이여?" "미리 뛰어가 있을 필요까정은 읎어. 너무 앞어가도 우릴 재빠른 진도개라 안 하고, 눈치 빠른 여시 취급허거든." "근께 여시 취급은 당허지 말고, 그냥 개 취급 받는 선에서 살어라, 그 말이제?" "뭣이든 지나치믄 모자란 것보다 못헌 벱이여." "

 

 애기 똥을 먹는 수업을 받는 한 대목이다. 똥을 싸서 밖으로 내어놓으면 그 똥을 집어먹겠거니 하고 생각했는데 애기가 똥을 싸면 방 안으로 들어가 직접 애기 엉덩이에 묻은 똥을 핥아 먹는다니 이건 또 새롭다. 이 전에는 황구가 새끼들에게 앞으로는 애기 똥을 먹으라고 하자 개들이 그건 좀 비위상한다고 꺼려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꽤 우습다. 개가 똥을 가리다니. 생각 이상의 것만 이 책에 담겨있나보다. 그 밖에도 황구는 쥐잡는 법, 노루잡는 법, 개가 지내여 할 개격에 대해 부지런히 새끼들에게 알려준다. 살뜰히 챙기는 모습이 사람과 다를 바가 없고 개들이 사람말을 다 알아듣고 사람처럼, 사람보다 낫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탓에 배우면서 읽는 책이다.

 

 "노랑이도 떠나고 누렁이도 떠난 헛간에 황구는 홀로 엎드려 있는 시간이 많아졌것다. 무슨 일을 해도 흥이 나지 않았것다. 나이가 들어 더 그런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헛간에 엎드려 노랑이와 누렁이의 냄새를 떠올리는 게 아주 중요한 일이 되고 말았으니."

 

 꽤 감상적인 부분이다. 누군가와 이별했을때 그를 떠올리는 수단으로 냄새를 기억하는 일이 있다. 개뿐만 아니라 사람도 그렇다. 냄새를 맡거나 떠올리고 있으면 더 많이 생각이 나고 그리움도 짙어진다. 이 책은 단순히 재미만 주고 끝나는 것은 아니고, 개에 대해서 모르던 것도 알고, 또 황구와 새끼들의 이별을 통해 동물에 대해서 헤아려줄 수 있는 생각의 여지도 준다. 아동도서 '순둥이'가 떠오르는 부분이다. 순둥이라는 순한 강아지가 새끼를 낳게 되면서 어미 개로 성장하고 새끼들과 이별하는 과정을 그려낸 동화다. 이 책의 흐름과도 비슷하다. 초등 저학년에게는 '순둥이'를 추천하고 초등 고학년, 중등까지는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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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에블린 민음사 모던 클래식 57
잉고 슐체 지음, 노선정 옮김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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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음사에서 나오는 시리즈들은 꽤 괜찮다. 그리고 아주 매력있다. 고전들, 가볍지 않게 읽을만한 양서들을 모아놓은 시리즈들을 보고있으면 책장을 온통 정갈한 민음사 시리즈들로 채우고 싶은 욕망을 갖게 한다. 그래서 실제로 한권 두권 모으고 있는 주변 사람들도 있다. 세계문학전집들도 그렇고, 모던클래식도 그렇고. 세계문학전집 275번과 모던클래식 57번을 같은 날 읽기 시작했는데 57번을 먼저 다 읽었다. 모던클래식 57번은 '아담과 에블린'이다. 그렇다면 세계문학전집 275번은 무엇일까!? 하는 건 장난이고. '아담과 에블린'을 떠올려보자.

 

 맨 처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이 책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호흡이다. 호흡이 들쑥날쑥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부담스럽거나 읽는 이의 호흡까지도 흐트러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강약조절이 잘되어 있다고 하나, 약 400쪽 가까이하는 분량을 지루하지 않게 읽도록 돕는다. 아담과 에블린의 감정 싸움에서 여행으로 카탸와의 만남까지 번져가며 촛점이 두사람에게서 벗어나며 흐름이 느리게 진행되는가 싶다가도 또 매우 빠르게 인물들이 주고 받는 대사만으로 처리된 부분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 부분을 보고 있을 때면 '거미여인의 키스'가 떠오른다.

 

 "난 나에 대한 배신이 그저 신발 문제로만 끝나기를 바랐어. 아니면 정원이나 그도 아니면 안락의자나. 그렇게 원한다면 그 여자 당신한테...... 당신이 그게 그렇게까지 필요하다면 말이야. 그렇게 원하는 일이라면 눈감아 줄 수도 있었다고! 하지만 난 알고 싶지 않았어. 보고 싶지도, 감 잡고 싶지도 않았다고. 알겠어? 내가 시청 지하식당에서 달려나갔을 때, 갑자기 내면의 목소리가 들렸어. 조심해, 조심하라고! 하지만 난 그 소릴 듣지도 않았어. 하지만 이젠 다 알아 버렸고. 봤어. 이걸로 끝이야. 전달 사항 끝이라고!"

 

 사건의 발단이다. 아담과 에블린의 아슬아슬한 일상이 어긋나는 순간이었다. 100% 신뢰하는 남녀관계가 있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신뢰. 아름다운 말이다. 남녀관계에서도 필요한 덕목 중 하나다. 신뢰가 없는 관계는 괴로울 뿐이니까. 그런데 신뢰라는 것이 어쩌면 상대방에 대한 오만이 될 수도 있다. 에블린은 아담을 신뢰하지 않았다. 다만 두 사람 사이의 문제를 회피했을 뿐이다. 아담은 에블린이 아담을 신뢰하지 않는 만큼, 에블린을 신뢰했다. 두 사람의 관계가 매우 위태로웠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부분이었다. 에블린 내면의 경고, 그리고 피하고 있던 문제와의 마주침. 에블린은 그 순간 아담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그를 두고 여행을 떠나버린다. 그리고 그런 에블린의 뒤를 아담이 쫓는다.

 

 "서로 싸울 때라도 아담은 그녀에게 친밀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이런 관계를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적어도 자신을 속이고 바람을 피우는 남자보다는 나은 사람을 만나야 마땅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얼굴을 남자보다는 나은 사람을 만나야 마땅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얼굴을 아담의 오른손에 묻었다. 그녀는 그의 팔을 쓰다듬으며 손을 그의 티셔츠 소매 안으로 넣었다. 그녀는 손바닥으로 어깨를 쓰다듬으며 목까지 올라가 손가락 끝으로 그의 목젖을 만졌다. 그의 목젖은 마치 동물처럼 이리저리 도망을 가다가도 이내 다음 순간에는 언제나 그녀에게로 돌아왔다."

 

 부정한 상대와 만나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생각이 반드시 실천으로 옮겨지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생각 뿐. 결국 감정적으로 또는 다른 여러가지 이유로 자신을 존중하지 못하는 길을 택하고 만다. 인생이 쉽지 않다는 것,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 여기 있다. 나쁜 상대에게 끌리거나, 나쁜 상대를 나만은 이해하고 고쳐줄 수 있다는 맹신이 여기에도 적용되는지 모르겠다. 아담과 에블린의 관계를 보면, 왜 서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됐는지 말도 안되는 거짓을 변명하고 있는 아담을 보면, 에블린의 괴로움이 전해져온다.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게 끈질기게 따라붙는 아담. 그리고 결국 아담의 곁으로 돌아가는 에블린. 서로에게 나쁜 상대는 누구일까.

 

 " "장벽이 무너졌어."라고 마레크가 말했다. "누가 그런 헛소리를 해?"라고 에블린이 물었다. "모두 다! 텔레비전은 베를린만 보여 주고 있어. 모두가 다 뛰어넘어 갔어. 지난밤부터 벌써. 너희들 말고 그걸 아직까지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야! 내가 맹세한다니까!" 마레크가 손을 번쩍 들었다. "기다려 봐!" "마레크, 그러지 마. 제발!" 마레크가 나이 지긋한 부부에게로 다가갔다. "실례합니다. 제 여자 친구가 제 말을 믿지 않네요. 베를린 장벽이 없어졌다는 걸요." "이 사람 말이 맞아요."하고 남자가 말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담은 동독의 재봉사다. 그는 동독에서 만족스러운 생활을 한다. 에블린은 동독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에블린은 서독으로 넘어가길 원하고 그런 에블린을 따라 아담도 서독으로 간다. 서독과 동독은 문화와 환경이 다르다. 동독에서 어려움없이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며 지내던 아담은 서독에서 좌절을 겪는다. 장벽이 무너진 뒤 동독으로 집으로 돌아가서 보게 되는 것은 엉망이 되어버린 자신의 소중한 것들 뿐. 아담과 에블린의 이야기를 보다 보면, 성경 속의 아담과 하와가 떠오른다. 하와로 인해 선악과를 먹게 된 아담이 만족스러운 에덴에서의 생활을 잃게 되는.

 

 읽고 난 뒤에 강렬한 느낌과 재미가 차오르는 책이다.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좋은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떤 울림이 있는, 어떤 울림을 주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울림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단순히 아담과 에블린의 사랑에 대해서가 아니라, 베를린 장벽으로 가로막힌 독일, 장벽이 무너진 독일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하고 느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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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를 위한 직업 콘서트 - 행복한 꿈을 찾는 직업 교과서 꿈결 진로 직업 시리즈 꿈의 나침반 1
이랑 지음, 김정진 그림 / 꿈결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직업에 관한 책이 우후죽순으로 나오던 시기가 있었다. 대부분 만화와 인터뷰가 어우러진 형식으로 다양한 직업을 소개하고 직업의 전문가의 인터뷰를 따고 그림으로 직업인의 모습이나 환경을 묘사해놓은 형식이었다. 아이들은 꽤 좋아했는데 이내 흥미를 잃었다. 만화만 몇번보고 아이들 사이의 유망직종만 살펴보더니 말았달까. 가벼운 책은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는 법인가 했었다. 그래도 그 책들을 살피면서, 요새는 직업에 대해 소개하는 책도 이렇게 나오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꿈결에서 나온 이 청소년 교양서 시리즈, '십대를 위한 직업 콘서트'는 어떨까 궁금했다. 다른 책들과 차별화가 됐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표지 디자인을 봤을때,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고학년 정도가 그 대상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왠걸 내용은 중고등학생용이었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가장 내용이 충실하달까, 중고교생들 수준에 좀 맞을만한 내용이 있는데 표지가 아쉽다. 지금 다시 봐도 겉과 속이 좀 따로 노는 느낌이라 아쉽다. 초등학생용으로 알록달록한 표지를 보고 산다면 내용이 맞지 않을 것 같고, 요새 성숙하고 세련된 중고등학생용으로는 선뜻 손이 가지 않을 것 같아 안타까웠다. 내용은 괜찮은데.

 

 "직업의 세계에서도 하나의 직업은 다른 직업의 도움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 세상에 있는 직업은 나름대로 존재하는 이유가 있고,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 나가는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누군가가 해 주기 때문에 나 역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는 어렵고 위험하고 더러운, 3D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누군가를 대신해 힘든 일을 하고 있는 걸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직업의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직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성숙한 사고를 하도록 요구하는 말들이 많다. 직업에 대한 설명을 해주면서 결국 직업을 갖는다는 건 우리 사회의 한 일원이 되는 것이고, 우리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그리고 우리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는지도 말해주고 있다. 직업에 귀천이 없고, 늘 다른 사람들의 수고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이런 식으로도 알려줄 수 있다. 내가 앞으로 뭘하고 싶은지에 집중하는 아이들에게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알려준다. 무엇을 하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떤 자세로 어떻게 하는가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직업에 대한 정보 뿐만 아니라 사회와 직업에 대한 에티튜드를 함께 가르친다는 것이 장점이다.

 

 "사람들은 일을 하며 정당한 대가를 받고 싶어 한다. 일한 만큼 대가를 받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분노한다. "내가 이 돈을 벌려고 그 고생을 했단 말이야?" 돈의 액수보다도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제대로 된 대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 억울하기 때문이다. 결국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것은, 별 노력 없이 돈만 많이 주는 직업을 원한다는 뜻이 아닐 것이다. 그런 도둑놈 심보를 가진 사람들은 실제로 '도둑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전제하에, 그에 대한 만족스런 보상을 바란다. 일에 대한 보상은 사회적 지위, 명예, 자아실현, 보람, 칭찬, 행복 등 다양하지만, 돈은 일에 대한 가장 상징적인 대가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이 책을 읽는 아이들 중에도 커서 "내가 이 돈을 벌려고 그 고생을 했단 말이야?" 이 말을 그대로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10년이고 20년이고쯤 뒤에 이 말을 그대로 말하고 놀랄 일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웃기지만 사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한번쯤은 또는 몇번이고 하게 된다. 우리가 원하는 노동의 댓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노동의 댓가보다 거의 매번 더 크기 때문이다. 누군든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이 지닌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그 가치에 대한 보상을 '사회적 지위, 명예, 자아실현, 보람, 칭찬, 행복 등'으로 나눠 충당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돈으로만 받으려고 한다면 이런 말은 더 많이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돈만을 따져서 직업을 선택하면 스스로가 괴로워지는 것이다. 저런 다른 보상과 함께 돈이 딸려있어야 그래도 그 안에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돈을 더 많이 벌고 싶다는, 돈만 많이 주는 직업을 원하는 것은 무조건 도둑놈 심보만은 아니다. 다만 자신이 얻을 수 있는 다른 가치를 따로 찾지 못해서 돈에 더욱 집착하는 것일 수도 있다. 누구나 꿈꾸는 직업이 있을 것이고 진심으로 그 꿈에서 돈만 많이 벌기를 원하는 아이는 없을 것이다. 직업을 통해 다른 가치도 얻을 수 있는 꿈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자신의 주체성없이 무조건 공부만을 하던 아이들에게 꿈을 갖고 거기서 돈 외에 가치있는 보상을 기대한다는 그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결국 진짜 유망직업은 '내게 희망을 주는 직업'이어야 한다.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게 해 주고, 가족들과도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희망을 주는 직업 말이다. 제아무리 미래에 유망하다 해도, 일할 곳이 없어지거나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가족까지 불행하게 만드는 직업은 희망을 줄 수 없다."

 

 이건 정말 중요한 말이다.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나와 남까지 힘들게 하는 직업은 돈을 많이 준대도 좋은 직업이 아니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도 그것을 상쇄시킬만한 다른 가치가 그보다 더 크지 않은 직업이라면 절대 좋은 직업이 될 수 없다. 특히 현대인은 정신적인 부담에 취약하다. 자신을 스스로 잃게 될 수도 있다. 물론 스트레스 없는 직업은 없지만, 그것을 상쇄시킬만한 다른 요소가 전혀 없는데 오로지 돈 때문에 그 일에 매달리고 있다면, 금방 사라질 돈 때문에 자신을 망치게 될수도 있다. 더불어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내 주위 사람들, 특히 가족들까지 나로 인해 불행할 수도 있다. 돈을 좀 덜 벌더라도 스트레스가 적거나, 다른 가치를 얻을 수 있는 직업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 몇 단락에서는 문과와 이과를 선택하는 것, 대학교, 학과 선택 등에 대한 실질적인 조언이 많이 있다. 직업 적성 검사 테스트를 할 수 있는 사이트도 정리되어 있어서 유용하다. 책을 읽으면서 직업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는데, 항공사에서 승무원을 뽑을 때 키를 암리치라고 해서 까치발을 하고 손을 다 뻗은 키가 208cm이상이어야 한다거나, 직업군을 나눌때 색깔별로 나눠서 블루칼라/화이트칼라, 골드칼라/실버산업, 녹색직업/갈색직업, 노란색직업/보라색직업 (색채의 상징, 색채의 심리/박영수/살림 참고) 등으로 나눈다거나, 요새 한참 책으로 나오는 도시 건설에 관한 직업 '도시계획가'에 대한 얘기,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읽기 위해 개발된 소셜 엑스레이에 대한 소개, 티비에서 본 적 있는 국내 최초 시각장애인 아나운서 이창훈 아나운서에 대한 얘기까지 정보가 다양하게 실려 있어 보면서 참고하며 읽었다. 새로운 것을 접한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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