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싶은 말을 했더니 잘 풀리기 시작했다 - 일, 관계, 인생의 고민이 사라지는 말 공부
하라 구니오 지음, 장은주 옮김 / 유영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감사의 표현도 칭찬도 잘하고 있는 편이라 생각했는데, 책을 읽을수록 그렇지 않았었나 싶어졌다. 상대방에게 전달될만한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선에서 '이정도면 됐겠지'싶은 말을 건네는 것으로 마음을 표현해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던가 싶다. 아니면 길에서 실수로 부딪힌 사람에게 반사적으로 죄송합니다, 하고 말하듯이 튀어나오는 의미없는 말들이었거나. 나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기도 하고, 앞으로는 나도 이렇게 해야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말 한마디가 진짜 대단한 것이 아닌데 사람사이를 좌우할수도 있다는 걸 새삼 되새겨본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때로 아무것도 아닌 말을 실없이 내뱉고나서 후회하기도 하고, 억지로라도 해야할 말을 괜한 오기로 못하겠노라고 어깃장을 놓아 분위기를 망치기도 한다. 전에는 '말 한마디도 내 마음대로 못해?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살거야' 라고 생각하는 편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웬만하면 말을 줄이자고 스스로를 타이르며 지냈다. 젊을때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한 말이 무겁고 무섭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다. 말이 그 자체로 무기가 될 수도 있고, 의도와는 다르게 왜곡될 수도 있고, 한번 입 밖으로 떨어지고 나면 다시 돌이킬 수도 없는 것이 크게 다가왔다. 하지만 말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으니 어떻게하면 말을 잘할까 고민하게 되었다.

 

 하라 구니오의 '듣고 싶은 말을 했더니 잘 풀리기 시작했다'도 말의 중요성을 품고 있다. 말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더라면 책에 나온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도 없었을 것이고, 말을 통해 해결의 물꼬가 트여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같은 칭찬을 하더라도 결과보다는 과정에 대해서 칭찬하라는 말은 아주 기본적이지만 자주 잊는 것이라, 당장 내일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칭찬을 건넬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갑자기 칭찬을 하면 듣는 사람은 어색할지 모르지만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을 뜻밖의 칭찬으로 연다면 서로에게 의미가 되는 일일 것이라 생각한다. 또, 잘 어울리는 옷차림이나 사소한 변화에 대한 작은 칭찬과 관심의 말이 싫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책에는 여러 칭찬 팁들이 들어있는데 집중해서 읽다가도 살면서 이정도는 주변사람들에게 하고 살아야하는 기본적인 것들 아닌가, 근데 이 정도도 못하고 살았었나 이런 생각들이 들었다. 남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다가 자신을 부정할 뻔 했다. 샴페인 타워를 채우는 것처럼(141) 책에서 본 듣고 싶은 말, 좋은 말들을 나에게도 해주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타인과의 좋은 관계맺기는 자신의 안에서 시작된다는 생각도 깊이 공감됐다. 어찌보면 남에게 좋은 기운을 전달할 수 있을만큼 자신을 채운다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일지 모르겠다. 특히 요즘은 자신안의 스트레스나 화를 다스리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난 것 같아 중요성이 실감된다.

 

 가장 도움이 됐던 것은 황금비율(155)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특히 부모와 자식,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에 많이 쓰이는 '채찍과 당근'의 비율에 대한 내용이다. 이는 사람의 성향이나 상황에 따라 80%의 성과를 낸 사람에게 100%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쉽다고 말하거나, 80%나 해냈다니 곧 100%도 기대할 수 있겠다고 말하는 태도의 차이로,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표현을 들었을 때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 노력하는 편이다. 예전에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타인에게 '당근'만을 썼더니 아랫사람을 잘 관리하지 못하는 무골호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일이 생기기도 했었다. 책의 내용처럼 5:1같은 '채찍과 당근'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겠다.

 

 책의 유일한 단점은 중학생 딸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한 남자(128)의 사례인데, 재혼한 배우자의 중학생 딸이 마음을 열고 '아찌'란 호칭으로 문자를 보내주었다는 내용에서 아, 다른 말로 번역이 되었다면 좋았을텐데 싶었다. 아저씨나 새아빠라고 해도 충분했을 것 같은데 아찌란 말을 요즘 여중생들이 쓰는가 모르겠다. 90년대 영화제목같아서 아쉬웠다. 아.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는 법에 대한 책을 읽고 단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명료해서 읽기 편하게 되어 있어서 좋았고 지금껏 책의 좋은점을 말했으니 1개의 채찍은 괜찮겠지 싶다. 책을 읽고 당장 내일부터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건네볼까 생각하는 하루가 되면 좋겠다.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주며 살면 세상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의 끝과 시작은 아르테 미스터리 9
오리가미 교야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재밌었다. 처음에 책을 읽기 전에 '종족을 초월한 사랑이야기'라는 소개가 있어서 문득 우리집 강아지를 떠올렸었다. 남들이 보기엔 개겠지만 내 눈에는 언제나 강아지인 그애를 떠올린 것도 반쯤은 장난스러운 연결이지만 나름 의미는 있었다. 종족을 초월한 사랑이라고 하니 문득 집에 들어설 때마다 그애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가움으로 나를 맞아주는 것, 사랑스러운 보드라운 털이나 따뜻한 온기, 약간 흙이 묻은 냄새 같은 것들을 생각했다. 곁에 앉아 놀아주면서 정성껏 손이나 팔을 핥아주는 신뢰 가득한 보살핌을 받고 있자면, 그만큼의 애정으로 얠 보살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어쨌든 종족을 초월한 가족을 두었으니, '세계의 끝과 시작은'에 공감하며 읽게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확실히 묘한 접점이 되기는 했다.   

 

 처음 책을 봤을 때 요즘은 이런 표지 스타일을 잘 보지 못한 것 같은데 제목이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눈에 확 들어왔다. 밤하늘과 달, 소녀의 뒷모습이 감성적 코드를 점철해놓은 것처럼 보여도 도입부의 모든 주요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은 '장치'라 다 읽고 나서 보는 표지는 또 새롭다. 처음엔 표지와 제목만으로도 감성이 울렁울렁해지는 느낌이라 소년과 소녀가 만나서 이어지는 청춘물의 미묘한 느낌이 더 많을 거라 예상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내용적으로도 그렇고, 어린 소년이었던 도노가 9년이라는 기다림의 시간동안 성인으로 성장하여 대학생이 되버리는 바람에 풋풋말랑한 감성이 아니라 좀 음침능글한 기운이 많아졌다. 풋풋이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잔혹한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주인공을 둘러싼 인물들도 수상해진다. 흡혈종이라는 이종족을 설정해두고 조금씩 건네지는 정보를 모아 인물들에 대해 파악해보는 재미도 크다. 증거로 생각했던 장면이 단서가 되기도 하고, 막다른 길이라고 생각한 부분에 통로가 있기도 했다. 적당히 추측도 하고 헷갈렸다가 확신하기도 하면서 읽었다. 연쇄적인 살인 사건들이 일어나기는 해도 전체적인 분위기가 무겁지 않아 적당히 즐기면서 읽을 수 있었다. 어쩌면 '감성 미스터리'라는 말에 신파로 가려나 싶은 느낌도 있었는데, 어찌됐든 보편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가는 전개도 좋았다. 식스센스급 반전이라고 할만큼의 놀람은 아니어도 낯선 동네의 골목길을 이리저리 돌다 마주칠 수 있는 귀여운 고양이나 괜찮은 카페, 뜻밖의 풍경을 만나는 의외성이 있다.

 

 생각해보니 여기서 가장 놀랍고 무서운 부분은 도노가 11살 때 딱 한 번 만난 여자에게 첫눈에 반해 9년동안 한 사람만을 맹목적으로 좋아해왔다는 것이다. 11살에 첫사랑이라니 조숙하기도 하고, 한번 본 상대의 예쁜 외모를 그림으로 복기해올만큼 집착적인데다가, 다시 만난 첫사랑이 당시의 모습 그대로였다면 미성년의 외모일텐데도 거리낌없이 접근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흡혈종이나 헌터나 다른 내용은 다 깔끔하게 받아들였는데도 아카리의 외모가, 외모만일 뿐이지만 미성년 상태일거라는 점이 내 마음 속 유일한 브레이크가 되었다. 도노는 한국이라면 군대갔을법한 시기의 성인인데, 그 모습으로 조심스럽게, 계획적으로 접근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음... 뱀파이어와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전개상 인물들의 외모가 다 준수하게 묘사되는 편이라 대학에 가도 이런 사람들이 모여있는 수상쩍은 동아리 활동 같은 건 없어, 다 거짓말이야, 같은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언젠가 영화같은 영상매체로 나온다면 기대되겠구나 싶었다. 늘 물감을 묻히고 있는 이젤 앞의 미녀, 훤칠하고 서글서글한 미남, 인기많고 엉뚱한 매력의 미녀와 함께 적당한 평범남이 아름다운 모습의 기억 속 첫사랑 소녀와 처참한 현장의 미스터리한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내용이라니. 주인공이 적당한 평범남으로 표현되는데다가 유일한 걸림돌이되는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끝까지 신경쓴듯한 마무리와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전개가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읽기 시작하니 끝까지 쭉 책장을 넘기게 된다. 언제고 도노, 아야메, 사쿠, 지나쓰가 얽힌 이야기를 한 편 더 읽어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음 시툰 : 너무 애쓰지 말고 마음 시툰
앵무 지음, 박성우 시 선정 / 창비교육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휴덕도 탈덕처럼 했다. 십대시절의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은 조금 너무 갔고, 절반정도는 만화였다. 만화가 성적에는 큰 도움이 안될지 몰라도 사는데는 도움이 좀 됐다. 만화 많이 본 사람을 알거다. 부모님은 질색하실지 몰라도, 어떤 것들은 솔직히 별로 좋지 않을지 몰라도, 만화도 나름 전문적인 지식도 담고 있고, 문학작품처럼 인물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게 돕는다. 그걸 전공지식과 문학작품으로 채운다면 더 좋겠지만, 만화는 재밌으면서도 도움이 될 수 있다니까...? 누가 오덕 아니랄까봐 만화 예찬을 하는가 싶겠지만, 사회에 만연한 만화 경시 풍조 때문에 만화를 보면서도 만화를 낮추어 생각했었나보다. '너무 애쓰지 말고'를 두고 시툰이라고 해서 좀 가벼운 내용이겠거니 지레 짐작했었다.

 

 표지에 '서툰 마음을 토닥이는 다정한 위로, 마음 시툰'이라고 써 있어서 시 몇편이 소개되어 있고, 짤막한 글귀랑 함께 내용에 맞춰서 그림이 조금 들어가 있으려나 싶었다. 그럼 소진된 세대들을 위한 '-해도 괜찮아' 하는 몇몇 에세이들과 비슷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쉽지만 거기에 시가 같이 소개되는 것만으로도 좀 더 낫겠지 싶어서 저녁에 문득 책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너무 애쓰지 말고'는 내 생각과 다른 구성으로 되어 있었고, 또 내 생각보다 괜찮은 내용이라 금새 빠져들어 읽었다. 만화라서 내용이 좀 가벼울거라고 짐작했던 것이 짧은 생각이었구나 싶었다.

 

 사장님과 보혜의 인물설정이 너무 차이가 커서 오히려 두사람의 합이 맞는 모습을 보는게 재밌었다. " 사업은 수익을 내는 게 절대 목표 (68)" 라고 생각하는 보혜가 너무 귀엽고, 답 없는 것 같이 있어도 자기 주관대로 살고 있는 영길 사장도 좋다. 다만 부모님이 강압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는 공통점이 아쉽다. 기성세대와 부모님에게 악역을 그것도 전형적인 갈등 형태로 전부 맡겨버리다니. 다른 편에서는 이 갈등이 해소되는 내용이 더 나오려나? 소개되는 시의 범위도 넓다. 시조도 나오고, 교과서에서 봤던 시인들의 시도 포함되어 있어 영 낯선 세계로 초대되지는 않는다. 덧붙여서 배경이 되는 공간이 재즈 카페니까 시와 함께 들으면 좋을 재즈도 소개해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읽다가 이런 책을 어디서 봤더라 싶었는데, 얼마 전에 읽었던 '안녕, 해태'라는 책이 떠올랐다. 청소년 마음 시툰이란 꼬리표를 달고 나온 책이었는데 만화 속 큰 이야기 틀 안에 시가 스며들어 있는 내용이 '너무 애쓰지 말고'와 닮아있었다. 그래서 책장으로 가서 살펴보니 싱고 작가의 '안녕, 해태'도 창비*에서 출간한 책이었다. 시가 청소년을 위한 책으로도 나오고, 또 어른이들을 위한 책으로도 나오니 어쩐지 다가가기 어렵다고 생각되는 시를 더 가깝에 끌어오도록 창비에서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 좋았다. 게다가 둘 다 만화 내용도 재밌고, 함께 읽을 수 있는 시들도 좋다. *창비교육 

 

 시툰이라는게 어쩌면 어색할지도 모르지만, 또 처음에 내가 오해했던 것처럼 가볍다고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막상 접해보면 이 콜라보를 꽤 환영하게 될 것이다. 출간 전에 창비에서 운영하고 있는 SNS나 블로그 등을 통해 연재를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웹툰을 보고 웹툰이 출간되면 독자들이 책으로도 구매하는 것처럼. 읽는동안 즐겁고 어떤 부분에서는 내용과 시가 함께 어우려져 마음에 와닿는 순간도 있었다. 앞으로 이어질 내용이 궁금해진다. 만화 좋아하는 독자와 시 좋아하는 독자 모두를 만족시킬만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쨌든 사랑하기로 했다 - 지금 사랑이 힘든 사람을 위한 심리학 편지
권희경 지음 / 홍익 / 202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익숙한 느낌의 책이라 처음에는 가볍게, 재밌게 읽었다. 연애 부분은 십대 때나 이십대 초반쯤에 읽었던 잡지 상담 부분만 떼어온 모음집 같았다. 원래 잡지에서는 연애와 성 관련 고민글이 가장 재밌는 길티플레져 같은 법이다. 불량식품 같은 맛? 남몰래 즐기고픈 비급의 정서? 하지만 '에디터 K가 전하는 사랑의 충고'나 '연애상담소' 같은 수식을 단 잡지가 떠오른다는 건 장점이 아니다. 저자의 경력을 보면 나름의 빅데이터를 보유한 내공이 있지 않을까 짐작되지만 책 내용 초반에는 아쉽게도 그런 면모가 다 드러나지 않았다. 연애편에서는 짤막한 사연소개와 덧붙이는 조언글로 되어 있는 구성이 솔직히 깊은 내용은 아니라 내면 심리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있거나 깊이있는 위로가 되는 건 아니다. 아쉽기는 한데 한참 '사랑' 속에 빠져서 잠겨 죽을 것 같은 젊은 사람들에게는 적당한 선택지가 되어줄수도 있을 것 같다.

 

 읽다가 급정거하게 된 부분이 있었는데, '성욕 관리는 인품(67)', '가짜 사랑에 눈이 멀다(75)'가 연달아 나오면서 당황스러웠다. " 점점 그녀가 좋아졌는데, 그녀는 성관계를 하면 기분이 안 좋아진다면서 키스나 포옹하는 것 외에 어떤 성적 행동도 거부했다(73) "는 부분이 나오는데 그럼 사연자 뿐 아니라 상대방도 어딘가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내용은 전에는 사랑을 몰라서 육체적 성욕에 연연했는데 지금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사랑없는 섹스를 하면 기분이 찝찝할 것 같다고 마무리된다. 상황적으로 보면 너무나 둘다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한쪽이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되었다며 짝짝짝 마무리한 반쪽짜리 상담이 아닌가. 오히려 찝찝해하다가 다음 내용에서 더 당혹스러웠다.

 

 " 유부남과의 사랑을 무시하거나 폄하할 마음은 조금도 없다. 진정한 사랑에 유부남, 유부녀가 따로 있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그녀들이 유부남보다 더 고통을 받는다는 점에서 그녀들의 마음을 살펴보아야 한다.(78) "  " 유부남과 만났을 때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기보다 그 사랑의 피해가 누구에게 오는지 봐야 해요. 그 사랑의 끝에 상처받는 쪽은 아마도 당신일 거예요.(82) " 사랑에 몰입해 다른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사랑주의자의 말인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반박해야 좋을지 모를 말들이 연타로 이어져 답답했다. 불륜을 금지된 사랑으로 부르길 좋아하는 사람들이 듣기에 좋을 말이겠다. 피해는 엄한 배우자가 제일 많이 받는거고요? 사랑이란 말에 배우자 지우기가 기본값이 되어서 놀라 뒷걸음질쳤다.

 

 " 사실, 그녀가 느끼는 불안과 분노에는 자식 기죽이는 친정엄마에 대한 분노가 숨어있었다. (105) "처럼 사랑이 힘든 이유가 대부분 어린시절에 경험한 결핍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내용이 많아서, 읽으면서 어린시절을 원만하게 보내고 성인이 돼서 큰 심리적 불안없이 인간관계 잘 조절하기가 하늘에 별따기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린시절이 영향력이 크고 중요하긴 한데, 그래서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든게 과거 때문이라고 귀결되는 관점도 좀 찝찝했다. 인생 어느정도 살고나면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지는 스스로의 판단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어차피 완벽하게 양육되어 성장한 사람은 없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과거에 발목잡혀서 사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아, 그럼 어차피 이 책을 안 읽으려나.

 

 하지만 부부편 내용이 나면 초반의 가벼움이 좀 상쇄된다. '00에게'라고 되어있는 조언 꼭지도 없어지고 좀 더 실전에 가까운 내용이 나온다. 아마 이쪽 연령대의 상담이 저자에게 더 특화되어 있는 건 아닐까 짐작해본다. 앞서나온 불륜 내용에 뒷걸음질쳤던 만큼 '외도 그 이후, 믿음을 찾다 (194)' 부분도 집중해서 읽었는데 진정한 사랑 운운하는 상간녀 감싸주기식 내용이 아니라 읽기 조금 나았다. 파트 1은 그냥 재미로 가볍게 보고 파트 2부터 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어쨌든' 사랑하기로 했다는 말이 복선이었을까.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 어떨때는 인류의 희망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사랑만 없으면 세상만사 걱정이 없겠네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어찌됐든 사람이 사는데 사랑이 어떤 식으로는 크게 영향을 끼치기는 하는 모양이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 결혼하기 싫은 사람, 결혼에 대해 생각이 많은 사람, 결혼한 사람 등등 연애보다는 결혼과 관련된 고민이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제야 언니에게 소설Q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나도 그렇게 되었다. 소문 속 그 여자애가 되었다. (132) "

 " 모두 연기 같았다. 2008년 7월 14일의 자기만 진짜 같았다.(184) "

 

 전부터 목록에 올려놓았던 책인데, 천천히 읽고 쓰는 것은 그보다 더 오래 걸렸다. 학교 다닐 적에 누군가 물건을 잃어버리면 선생님은 그 물건을 가져간 사람과 잃어버린 사람을 둘다 혼냈다. 가져간/훔쳐간 사람도 잘못이 있지만, 자기 물건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사람도 잘못이 있는거야.라는 말, 나와 비슷한 세대라면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그때는 그 말이 그렇게 맞는 줄 알았다.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도 내 물건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잘못이 있고 그래서 이렇게 교실의 분위기를 흐리게 만든 잘못이 있다고. 물건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누가 친구의 물건에 손을 댄 것인지 친구를 의심하게 만든 잘못이 있다고.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정말 잘못이었을까 싶어진다. 선생님에게 학급문제라는 골치거리를 안겨준 잘못을 다르게 표현한 것은 아니었나.

 

 피해자에게 책임묻기, 피해자의 무결함을 따지는 일은 그런 생각에서부터 시작된 건 아니었나 생각했다. 범죄의 피해자에게 '왜 조심하지 못하고'라는 말이 따라붙고, '어쩌다가'라는 말에는 늦은 시간이나 외진 길이나 어떤 옷차림었던가 같은 부연들이 뒤를 잇는다. '마치 네 물건을 잘 관리하지 못해서 다른 사람이 그걸 훔쳐가고 싶게 만든 너의 잘못도 있는거야' 라는 비논리처럼. 그 모든 꼬리표는 사실 무용한 것이고, 단지 가해자가 범죄를 저지르기로 마음먹고 실행한 행위가 잘못일 뿐이다. 오히려 평소 그런 사람이 아닌데 우발적으로, 혹은 술김에 실수로 라는 덧붙임이 가해자의 면책을 돕는다.

 

 제야가 술을 마신 것은 그 행위 자체로 피해자를 흠집내고, 당숙이 술을 마신 것은 취해서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없었던 상황으로 참작된다. 하지만 피해자가 그날 입고 있었던 옷은, 머물렀던 장소는, 취할 수 밖에 없었던 행동은 범죄피해의 원인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가해자가 평소에 열심히 일한 것은, 이웃 사람과 인사를 잘 나눈 것은 저지른 죄의 면책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상황들은 시비를 가리는 상황에서 너무나 쉽게 자주 불공정하게 고려된다. 피해자의 순수성, 피해자다움을 두고 제야는 " 어째서 내가 의심받는가. 어째서 내가 증거를 대야 하는가. 어째서 내가 설명해야 하는가. 어째서 내가 사라져야 하나. (133) " 괴로워한다.

 

 책에서만이 아니라 실제로 오늘 200만명이 넘게 청원에 동의한 N번방 유료회원들의 신상공개 청원이 불발되었다. 신상을 공개하지 않기로 한 경위가 마뜩찮았다. 경찰이 내놓은 '범죄예방 효과 등 공개에 따른 실익이 높지 않다고 판단해 회부하지 않기로 했다' 는 말에 이 필수적인 절차에서 따져야 할 '실익'이 무엇이며, 이 파렴치한 범죄 행위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왜 전달되지 않는지, 가해자/가담자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상황이 뭔지 경찰이 정말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현실인가 의문스러웠다. "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진짜 알게 되는 것의 간극은 크고 깊었다. (48)" 는 말이 나오는데,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우리가 마땅히 옳게 가야한다고 믿는 길과 현실이 보여주는 굴절의 격차가 느껴지는 문장이었다.

 

 " 제야는 사람이 저마다 다른 이유를 알고 싶었다. 사람이 선해지고 나빠지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섭리가 있다면, 삶의 지도가 있다면 그것을 보고 싶었다. 다른 길이 있는지, 다른 삶이 가능했던 건지, 시간을 되돌릴 수 없더라도 알고 싶었다. 그럼 조금은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60) "

 

 " 제야는 울고 싶지 않았다. 울면 멈출 수 없고, 밤새 울어야 할지도 몰랐다. 그러면 약해지는 것 같았다. 제야는 벌떡 일어나 앉고 싶었다.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기지개를 켜고 크게 소리를 내고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다. 강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꼼짝할 수 없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굳은 채로, 무거운 채로 할 수 있는 건 우는 일 뿐이었다. 제야는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155) "

 

 책에서 제야의 괴로움이 드러나는 부분들이 사실적이라 어렵고 버거웠다. 그리고 실제로는 이보다 더 고통스럽고 아플 것이라 짐작하니 막막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야 하는데, 요즘은 사람이 제일 무섭고 험해서 어떻게 살아내야할지 염려스럽다. 우리가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악의를 품고 지나가는 사람들 중 만만해보이는 사람을 골라 일부러 밀치고 시비를 걸다 느닷없이 이유없는 폭행을 가하는 사람을 마주하게 될 것인지 아닌지 모른다. 일단 피해를 입고 난 뒤에는 피해자의 생존과 안전은 어디에도 보장받을 수 없었다는 씻을 수 없는 충격과 상처를 남기는데, 가해자의 인권이 집중적으로 보호를 받는 현실이 부조리하게 느껴진다. 법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피해자의 권리가 일방적으로 침해당했음에도 왜 충분히 해결되지 않는 피해와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 나는 그가 스스로를 혐오하고 증오하길 원한다. 내가 나를 혐오하게 된 만큼, 증오하고 자책하고 망가뜨린 만큼, 아니 나보다 훨씬 더 크고 깊게, 변명 없이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수치스러워하길. 그게 불가능하다면. 그렇다면 ...후략...(200)"

 

 우리 사회의 끔찍한 범죄자들이 마땅히 죄값을 받기를 바란다. 피해자가 고통스러운만큼, 피해를 입은 그 이상의 처벌을 받아야 옳은 게 아닐까. 그래야 누군가는 엄중한 규율의 무게를 의식할 것이고, 누군가는 자신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규칙이 언제고 필요할 때 구성원들을 지키고 보상해줄 것이라고 믿으며, 최소한 잘못에 맞는 댓가를 치를 수 있도록 단죄할 시스템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믿음을 갖고 살 수 있을 것이다. 혐오스럽고 역겨운 범죄들에 지쳤고, 가담자들에게 그만큼의 죄값이 지워지기를 바란다. 이 간단한 사회의 정의가 구현되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