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러브 소설Q
조우리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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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라스트 러브'의 출간 소식을 듣고 친구에게 먼저 알렸다. 1세대 아이돌 팬클럽 출신인 작가가 쓴 소설이 나왔대, 하면서. 부정확한 얘기긴 한데, 그렇게만 전했어도 친구는 이미 '라스트 러브'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보다도 훨씬 빨리 이 책을 읽었다. 얘기를 나누고 1주일, 2주일이었던가 한달이 채 되지 않아서 읽었다고 메세지를 보내왔었다. 그래서 그만 아차, 하고 다음에 만나기 전까지 나도 읽어봐야지 하고는 이제서야 읽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읽고나서 친구를 만나면 말 할 꺼리가 생기겠다고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솔직히 내가 잘 모르는 세계에 대한 내용이라 어정쩡해졌다. 응칠같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전체관람가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술영화제 출품작이었던 그런 느낌이다. 

 

 누군가의 팬이 되어본 적이 없다. 누구도 그렇게 열정적으로 좋아지지 않았다. 연예인을 좋아하는 건, 그냥 텔레비전에 나오면 잠시 채널을 고정해두는 정도, 인터넷을 하다 이름이 나오면 사진 한 번을 보는 정도, 얼마간 기억해두다 금새 잊어버리고 마는 작은 정보를 눈으로 훑어보는 정도였다. 팬클럽에 가입하고 방송국에 찾아가고 앨범이나 사진, 뭐 굳즈같은 것을 사고 댓글을 달고 n차를 찍고 그런 열성적인 일을 해본적이 없다. 연예인이라서만이 아니라 사실 내가 누구를 좋아하는 방식이 그렇지 못한 편에 가깝다. 주변에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스스로 느끼기에는 누굴 그렇게 많이 좋아해본 적이 있는가 싶다.

 

 그래서 책 곳곳에서 피어나는 연예인과 팬의 관계성 같은 걸 제대로 공감하지 못하고 읽었다. 누군가의 팬이었던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이 책이 더 각별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그럼 이 책이 훨씬 더 재밌거나 혹은 읽으면서 떠올릴 것이 너무나도 많아 풍부하게 즐길 수 있었을까 싶었다. 그럼 그건 참 부럽겠다. 누굴 좋아해서 인생이 어떻게 더 풍부해졌고, 힘든 시기를 이겨냈고, 현생을 갈아서 쏟아부을 목표가 있고, 어쩔 땐 눈물의 탈덕도 해보고 이런 것들도 사실 부럽다. 새우젓이고 모래알이고 연예인만 빛나고 팬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느낄때가 있겠지만, 경험해보지 못한 나에게는 그게 마치 환하게 빛나면서 타오르는 에너지로 보인다.

 

 재밌는 건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최애가 생긴다는 점이다. 다인이 분량이 가장 많은 것 같아서 다인이를 눈으로 쫓다가, 지유가 제일 예쁘대서 지유에게 관심이 갔다가 지유와 재키는 제로캐럿에서 탈퇴해버렸으니 도로 다인으로 정했다. 매번 가장 좋은 파트를 가져갔다고 했으니 무대에서도 제일 눈에 띄었겠지, 연기도 하고 재계약도 하니까 하나만 터지면 앞으로 더 잘되겠지 싶었다. 다른 사람들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을까, 그럼 다들 누구를 최애로 여기면서 책을 읽었을까 싶었다. 아이돌은 많이 나오니까 언젠가 누가 제로캐럿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하지 않을까, 그럼 작가가 성덕이 되는걸까, 제로캐럿이 성덕이 되는걸까.

 

 생각보다 덤덤히 읽혔는데, 파인캐럿의 내용이 가장 재밌었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비슷한 글을 가장 많이 봐서 익숙하기도 하고 해서, 그냥 그랬다. 이제 친구를 만나면 '라스트 러브' 얘기를 꺼낼 수 있게 됐다. 그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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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수업 - 나와 세상의 경계를 허무는 9가지 질문
김헌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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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하는 삶'이라는 말을 보고 떠올린 것은 오래된 기억이었다. 청소년기 정도였을까, 어떤 책에서 항상 의문을 갖고 질문하는 아이가 성공한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대체로 그런다하니 그런가보다, 하고 그렇구나 넘기는 편이어서 딱히 이건 왜 이런거냐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던터라 그 책을 읽고는 또, '아, 그럼 나는 성공하기는 어렵겠구나'하고 받아들였던 기억이 있다. 물론 상처도 좀 받고, 아직도 기억하는 걸 보면 앙심도 좀 품었다. 도무지 하늘이 왜 파란지 궁금하지도 않고,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냥 하늘은 예쁘고 닭도 계란도 맛있었다. 그래서 정말로 성공하지는 못한 평범한 삶을 살고 있으니 지금와서는 조금 분하기는 해도 저자 나름의 어떤 통찰이 있었나보구나 짐작해볼 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세월의 때를 타고 보니 예전에는 없던 의문이 조금씩 생겼다. 일을 하면서는 저 사람은 왜 일을 저렇게 하는가 싶기도 하고, 회사의 업무 체계는 누가 뭐 때문에 이렇게 만들어서 일개미를 고문하는가 분노에 가까운 의문도 품었다. 뉴스로 인면수심의 범죄 소식을 들을 때면 세상은 왜 이 모양일까, 귀신은 뭘하길래 바빠서 저런 사람은 안 잡아가나 궁금했다. 그러다 나이를 조금 더 먹고나니 지금껏 그저 남들 하는만큼은 한다고 살아왔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나는 어떤 사람인가도 궁금해졌다. 이런 질문들은 사실 딱히 답은 없고 생각할수록 마음만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리 생산적이지 않아 생각하다가도 금방 털어내고 만다. 좋은 질문은 뭘까. 나는 정말 질문을 못하는, 그래서 성공할 수 없는 사람이란 말인가. 그럼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 '천년의 수업'을 통해 어떤 질문이 성공하는 좋은 질문일까 접해보고 싶었다.

 

 책의 초반에 꿈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꿈을 가졌던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아주 오랫동안 꿈에 대해서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고, 또 나이들고서는 꿈이야 어릴 적 이야기지 싶은 마음에 나이듦을 이유로 꿈을 가질 필요조차 없다고 여겼다. 사실 지금도 꿈이 뭐냐고 물어오면 변변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예전에는 꿈을 직업으로 생각했다. 초등학교 어린이날 작문 주제로도, 중고등학교 진로조사용지의 빈칸을 채우면서도 그냥 그런 줄 알았다.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그 직업이 주는 이미지만 가져다가 심지어 제대로 된 방향성도 잡지 않고 그게 꿈이라고 말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꿈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책에 나오는 대기업에 취업한 여자분(50)의 이야기가 영 남일 같지 않은건 그 때문이다. 직업이 꿈이 되면, 여러 이유로 일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 꿈도 같이 잃게 되는걸까? 그게 꿈이 맞을까?

 

 이때 나온 이야기들이 나중에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나 결핍과 욕망까지도 연결되는데 어쩐지 생각해보니 씁쓸했다. 꿈꾸는 것은 결국 무언가를 욕망한다는 것이고, 욕망은 결핍을 느낄 때 생기는 것(250)이라 하니, '(꿈은) 결핍에서 온다(47)'는 양면성이 보였다. 저자는 이런 결핍, 고통, 열악함 같은 것들이 인생을 더 흥미진진하고 멋진 이야기로 만들어 줄 것이라 위로한다. 완벽한 주인공이 역경 하나 없이 성공하는 이야기를 보면 '하나도 재미가 없(146)'을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 우리는 먼치킨 주인공이 나와서 다 쎄고 다 이겨버리는 고구마없는 내용의 판타지물도 굉장히 좋아한다. 이게 대리만족이라는 걸까. (...) 나는 내 인생의 주연(142)이고 획일화 된 사회의 기준에 맞추지 못했다고 자존감을 깎아가며 이번 생을 포기하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내 인생을 가지고 세상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선 조연에 지나지 않음을 몇번이고 깨달으면서 살고 있는 것이란 생각을 했다. 

 

 읽으면서 재밌기도 하지만 복잡했던 것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대한 이야기와 서양 철학이 접목된 내용이 주를 이룬다는 점이었다. 개인적으로 '만화로 보는 고전' 시리즈 세대지 그리스로마 신화 세대가 아니라 아무래도 신화 흐름에 빠삭하지 않아서 더 그랬다. 단어 하나를 가지고도 접근하는 방식이 달라서 이해하는데 더 오래걸렸구나 싶었던게 '인간다움(93)'을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책을 읽기 전에 내가 가졌던 질문들이 '서양에서 말하는 '인간다움'과는 조금 다른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인간다움'에 가까웠고 그 차이가 와닿았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몇몇 실험을 통해 본 적 있는데, 어떻게 살 것인가, 사람답게 산다는 것에 대한 내 생각도 '남들하는만큼 하며 살아왔다'는 표현처럼 관계망 안에서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는 것(94)'로 여겨왔다는 점이 재밌었다. 익숙하지 않은 서양 철학에 대한 내용은 당연히 복잡할 수 밖에 없었고.  

 

 솔직히 어떻게하면 만족스럽게 살까, 무엇을 남길 수 있을 것인가 같은 질문들 안에서는 크게 바라는 것이 없어서인지 공감을 많이 하지 못했다. 작은 목표와 희망에 기대를 걸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길어져서 그런지 책에서 제시하는 질문들이 터무니없이 크게 느껴졌다. 도리어 꼭 그런 것들을 바라보며 살아야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의 명성이나 후대의 평가(119)'를 실감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평범을 살아내기도 벅찬 시대에 그 이상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일리아스'나 '오뒷세이아'의 예시들은 멀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 저는 후대에 뭘 남기지 않아도 그냥 소소하게 맛있는 것이나 먹고 좋은 경치나 좀 보고 그렇게 살면 족합니다,하고 움츠러든다. 순응하는 삶, 버티는 삶에 익숙해지다 못해 길들여진 것일까. 값싼 위로나 건네는 흔한 책들이 질린다고 해놓고 그 이상을 보라하면 자꾸만 '안될거야'하고 외면하게 된다.

 

 '천년의 수업'을 읽기 전까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글을 몇 개 읽고 있었는데, 여기서도 이에 대한 언급이 있어(210) 경제나 기술 전문가가 아닌 인문학자의 눈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할까 짧지만 관심있게 읽었다. '인문학은 들어설 틈이 없어 보(210)'인다는 표현에 조금 웃었다. 바로 그 전까지 나도 앞으로 내가 구할 수 있는 범위의 직업들은 제일 먼저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책을 읽으며 벌어졌던 저자와의 거리가 다들 이런 생각을 하긴 하는구나 싶은 마음에 좀 줄어들었다. 다만 우리가 어떤 말을 하건, 앞으로 무엇에 가치를 두고 어떤 교육을 통해 인간을 역할에 의미를 부여할지에 대해서는 기술을 손에 쥔 쪽의 일일 것이란 생각을 했다.

 

 가장 기대하면 읽은 부분은 여덟번째 주제였다. 제목도 무려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가능한가(243)'라니, 혐오가 넘쳐나는 시대에,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지만 내가 맞고 네가 틀린 세상에, 가끔은 나 자신도 이해가 안가는데 말이다. 혐오가 넘쳐 극혐이니 00충이니 하는 표현이 예사로 쓰이기 때문에 언젠가부터 스스로도 이건 과잉된 부정이 아닌가 싶어졌다. 쉽게 쓰이는 만큼 혐오에 길들여지는 느낌이라 의식적으로 덜 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집단에 대해 이해하기 힘들면 힘들수록 혐오가 더 쉽고 빨리 그 자리를 차지한다. 크게는 사이비 종교, 범죄자 인권, 일부 정치인들에서 작게는 층간소음, 길거리 흡연 같은 것들 마저도. 이들이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이고,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일때가 있겠지만 배려, 양보, 이해같은 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는 정말 모르겠다.    

 

 처음 책을 읽기 전에 차례를 훑어봤을때 조금 고루하지만 그래도 괜찮은 질문들의 목록을 만들어놓은 것 같아서 기대됐었다. 처음 지리하게 써놨던 나의 질문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같은 것도 결국은 '천년의 수업'의 9가지 질문들- 이를테면 '나는 누구인가'나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가능할까' 등의 주제 안에 녹아있는 면이 있기 때문에, 좀 더 고차원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받침이 되었다. 어떤 것들은 부드러운 어조 아래에서 다 채워지지 않는 의문을 남기기도 했지만, 나와는 다르게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은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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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할머니에게
윤성희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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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속이 복잡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할머니와 나 자신이 얽힌 이야기를 끌어오고 싶지 않다.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또 고통스러운 이야기기 때문에 굳이 풀어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책의 내용이 내용인지라, 그런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이야기인지 읽어보고 싶었고, 자연스럽게 비교도 하고 지난 시간을 떠올리게도 됐었다. 책을 읽으며 했던 생각들을 전부 꺼내어 둘수는 없을 것 같아 이리저리 잘라내다 보니 별로 할 수 있는 말이 남아있지 않았다. 풀어낼 수 없는 말들이 쌓여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차라리 밝고 희망찬 얘기로 채워져있는 소설들이라면 좋았을 것을. 얼마 전 읽은 '씨씨 허니컷 구하기'는 할머니와 소녀가 나오지만 '나의 할머니에게'와는 정반대의 분위기였다. '나의 할머니에게'를 읽고 기분이 좀 묵직해졌다면 '씨씨 허니컷 구하기'가 조금 위로가 되지 않을까,싶다.

 

 남아있는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유한함을 절감한 뒤로는 항상 남은 시간들이 간절해졌다. 그래서인지 손보미 작가의 '위대한 유산'에서 1918년에 태어나 1972년에 죽은 할아버지(108)에 대해 얘기하면서 그리 단명한 것은 아니라고 적혀있어 눈을 의심했다. 환갑에 미치지 못하게 50여년 남짓 살았다는 것인데, 짧지 않은가. 시대가 시대니만큼 평균수명이 지금과는 다르겠지만 그래도 짧다. 그래서 할아버지를 두고 얼마나 더 살았어야 할머니를 만족시킬 수 있었을까(108) 생각하는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정해진 기간이 없었으리라 생각도 되고, 어찌되었건 떠난 사람을 생각하면 계속해서 같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일 밖에는 없을텐데 왜 그리 차게 썼을까 싶었다.

 

 가장 좋았던 글은 백수린 작가의 ' 흑설탕 캔디'였다. 다른 부분들이 비터한 느낌을 갖고 있다면, '흑설탕 캔디'는 이름답게 스윗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한국인 박난실 할머니와 프랑스인 브뤼니에 할아버지의 연애담인데 열일곱 첫사랑의 마음을 간직한 노년의 조심스러운 풋사랑같은 느낌이라 좋았다. 확실히 다시 읽어봐도 나이만 다를 뿐이지 닿을 듯 말 듯한 감성을 그대로 가진 첫사랑 이야기와 다름없다. 때로 나이는 먹어가는데 철은 안드는 것 같아 더 나이를 먹고서도 언제까지나 마음은 이렇게 어른이 되질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할 때가 있었는데, 난실씨가 브뤼니에씨를 만나 떠올린 생각들이 마음에 박혔다. 지금의 나도 상상하지 못했었지만, 노년의 나는 어떨까, 늙지 않은 마음을 부여잡고 노인인척 살아가게 될까. 

 

 '위대한 유산'은 스릴러 분위기가 났고, '선베드'는 할머니에 대해서라기 보다는 불안정한 진서에게 더 관심이 갔다. 어찌되었든, 친구가 없고 가끔은 선을 지키지 못하는 그래서 결국은 혼자 남겨지게 될까봐 염려하는 진서의 모습에서 나와 주변의 닮은 점들을 발견했다. 이쯤되니 사는게 바쁘다는 핑계로 멀어진 친구들도 많아지고, 간신히 붙잡고 있는 인연들을 어떤 사소한 실수로라도 잃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과잉되고 불안정해보이는 진서지만 이상하게 그녀에게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나의 할머니에게'에서 가장 솔직히, 마음에 들었던 글은 윤성희 작가의 작가 노트 (35) 내용이었다. 그냥 거기에는 진짜가 담겨있는 것 같았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은, 진짜. 그래서 나도 언젠가는 손녀를 앞에 두고 화투점을 치거나 민화투를 칠지도 모른다는 그런 꿈을 꾸게 만드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할머니'의 존재성을 전면에 내세운 첫 소설집'이라는 띄지 문구가 눈에 띈다. 뭘 그렇게까지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파과'에서도 할머니 킬러가 나오질 않는가. 어쨌든 '나의 할머니에게'는 기획이나 디자인이 신선했다. 여섯명의 작가들이 할머니를 주제로 각기 펼쳐낸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는 점도, 무엇보다 표지의 묘한 질감이, 중간중간 끼워진 갈피를 펼치면 만날 수 있는 조이스 진의 그림들마저 남달랐다. 다만 첫 소설집인지라 '할머니'라는 주제를 통해 작가들이 그려낸 내용이 다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는 게 아쉬웠다. 첫 소설집이니까 두번째나 세번째가 혹시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앞으로 책이 더 나오게 된다면 이보다는 좀 자유로운, 혹은 넓은 시선으로 '여자 어른'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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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대충 살고 가끔은 완벽하게 살아 - 읽고 쓰고 만나는 책방지기의 문장일기
구선아 지음, 임진아 그림 / 해의시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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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더 밝은 느낌의 내용일거라 생각했는데, 시작부터 느낌이 달랐다. 짧은 꼭지를 여러 개 늘어놓은 형식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첫 시작인 '어중간한 재능'의 내용부터 확실히 눈길을 끌었다. 읽기 바로 전에 가볍게 읽어볼 요량으로 창비에서 나온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라는 만화를 한 권 읽었기 때문에 고양된 감성과 맞물려 비슷한 내용을 담은 첫 내용이 더 깊이있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아마, '다들 그런 생각 한번쯤은 하고 살지'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일부의 재능있는 사람들이나, 자기객관화가 안되는 사람들을 빼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재능이 아주 빼어나거나 탁월하지 못함을 이유로 실망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글쓰는 것이 그랬다. 대단하게 글쓰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좋아하는 정도의 마음과 그래서 조금 더 쓰고, 가끔은 조금 더 잘 쓰는 일들이 생기는 것으로는 글써서 밥먹고 살기는 힘들다.를 넘어서 불가능하다. 아주 어렸을 때는 그럴 수도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읽는 것에서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에 생각이 옮겨가게 되면서는 안되겠구나 깨달은지 오래다. 이처럼 재능이랄 것도 없는 좋아함을 가진 사람도 그러한데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 언젠가 기회가 올 것 같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말하는 갈 수도 접을 수도 없는 마음은 또 어떠할까. 어쩐지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때로는 대충 살아도 된다고 해줄만한 부분이 나올 때까지는 읽으면서 계속 이런 기분일까 좀 걱정됐었다.

 

 "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건 내가 돈을 많이 벌어 두었거나 정력이 좋아서, 진짜 용기가 충만해서가 아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다. "아, 그때 해 볼걸......"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나서 "이게 아니었네" 혹은 실패했어도 "그래도 재밌었지"라고 돌아보거나 "운이 없었어"라고 핑계를 대 보는 게 나으니까. 그리고 어쩌면 생각보다 멋지게 해낼 수도 있으니까. (38) "

 

 직장을 그만두고 하고싶은 일을 찾아 떠난 사람들의 분위기는 대체로 비슷하다. 물론 나도 회사를 그만 둔 경험이 몇 번 있지만, 대부분은 하고싶은 일을 하기 위해 떠났다기 보다는 '아, 더럽다 더럽다 이제는 진짜 더럽고 힘들어서 못해먹겠다' 싶어서 그만두고 그 다음엔 전보다는 낫겠지 싶은 곳으로 들어가 또 돈을 벌었다.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회사를 그만두지 말라고 충고하는 쪽의 마음과 더 가까웠다. 특히나 나도 모르게 '요즘같은 세상에'라는 말이 입에 붙은 것마냥 나왔다. 한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며 사는 것이 정말 좋을까. '그래도 재밌었지' 같은 말이 통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인지 그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궁금한 것이 책을 얼마나 좋아하길래 책방을 할 수 있을까,이다. 책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역시 구매는 인터넷, 그도 아니면 대형서점, 심지어 중고책 마저도 대형서점에서 운영하는 매장을 들리는데 대체 얼마나 사랑해야 '좋아하는 일'로서의 업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일까. 문득 초등학교 시절부터 꿈을 물어보는 일을 그만해야 되겠다 싶어진다. 그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현실적 직업 진로 탐색을 해야지, 항상 물어보는 것은 꿈뿐이고 나중에 되돌아보면 현실과 꿈 사이의 거리가 너무나 멀어서 쓸데없이 상처를 받는다. 어렸을 때 꿈이라고 꿀 수 있는 직업들은 몇몇의 인기 직종이 대부분을 차지하도록 한정적이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커서 이런 일을 하고 있을거라고 생각지 못했던 직업을 만나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읽다가 새삼스러웠던 부분이 있었는데, '기다리는 건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75)'의 내용이었다. 책방에 와 줄 것이라 믿었던 지인들이 오지 않은 일을 두고 "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마음이 없다(76) " 며 씁쓸함을 남겨둔 글이다. 지인이 개업한 가게를 인사,응원차 찾아가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은 하지만, 직장인으로만 살아봐서 그런지 내가 일하는 장소에 지인들이 찾아오는 일은 고맙지만 썩 편한 상황만은 아니어서 잘 몰랐던 생각이었다. 친구가 연 술집을 일년만에 가까스로 찾아갔던 적이 있어 그 애가 " 척 하지만 진짜 마음을 내어주기는 힘들다(76) "고 생각했을까봐 심란했다. 자신의 가게를 여는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걸까 궁금해졌다. " 저도 책방이나 하면서 글이나 쓸까 봐요.(69)" 나 " 손님이 왔는데 책 설명 안 해 주시나요?(53) " 같은 말들을 헤치며 나아가다보면, 이런 손님들은 잘만 찾아오는데 위로가 되줄 친구가 안왔다면 마음이 퍽퍽해질수도 있으리라.

 

 재밌는 건 '시도와 실패(102)'라는 핵심어를 두고 확률 0%의 일을 50%로 올리기 위해 박보검과 사귈 확률에 관한 유명인의 말을 옮겨온 것이다. 멋진 태도이긴 한데, 본능적이라 할 만큼 박보검은 무슨 죄로 나의 성공 확률을 올려주기 위해 고백을 받아야 하는가 생각이 들었고, 어찌되었든 확률은 처음부터 끝까지 0% 아니었던가 싶었다. 무슨 값을 넣든 0만 나오는 자판기에 백번 천번 시도한다고 해서 1이 나올 일은 없는 것 아닌가. 안되는 일은 안되는 일로 놔둘 줄도 알아야 한다. 아마 사람 상대하는 일을 오랜 기간 해왔기 때문에 특히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면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안되면 되게하라'나 '일단 부딪혀보라' 같은 열정적 시도가 멀쩡한 메뉴얼 대로 일을 하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을 말려죽이는 행동지침이 됩니다. 본인 인생의 도전은 얼마든지 해도 좋지만 타인과 엮이는 일에서는 받아들이고 수긍할 줄도 압시다.

 

 현실과 가깝다가도 현실과 멀기도 한 것 같고, 읽는동안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이 책을 좋아해야할까 나랑 안 맞는다고 결론 지어야할까 가늠해보다, 나와 다른 사람이니 내 마음에 차는 글만 이어질 수는 없겠지하고 말았다. 마음에 드는 건 아닌데, 어떤 내용들은 또 공감도 되고 그랬다. 보통 책이 좋았는지 별로였는지 완벽하게 정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대충 정해본다.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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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혼자가 아닌 시간
코너 프란타 지음, 황소연 옮김 / 오브제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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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드디어 만났다. 내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에세이를. 한동안 만난 몇 권의 에세이들은 꽤 괜찮았다. 나를 포함 책도 입맛대로 골라읽는 편인 사람들- 편독인들에게는 비선호 계열이 있기 마련인데, 나에게는 에세이가 그 중 하나였다. 그런데 최근에 읽은 에세이들은 이상하게도 읽는 족족 괜찮고, 재밌고, 공감도 되고 심지어 꽤 좋았었기 때문에 나의 '에세이 싫어'가 사실은 초장에 찍어서 먹는 브로콜리의 참 맛을 모르는 안타까운 편식같은 게 아니었나 의심했었다. 아니라고 하지만 사실 너는 에세이를 좋아하고 있었다, 같이. 하지만 '누구도 혼자가 아닌 시간'을 읽다보니 역시 그 마음에 들었던 몇 권이 우연히 찾은 나의 골든에세이가 아니었던가 싶어진다.  

 

 어쩌다보니 '누구도 혼자가 아닌 시간'을 진짜 혼자있는 시간에 읽었다. 들리는 소리는 가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말고는 없는, 옆집에서 간혹 들려오는 소음조차 없는 진짜 조용한 날에. 세련된 표지와 좋은 장정, 작가의 조금 남다른 이력말고는 그리 특별한 것이 없었다. 누군가는 이런 심심함을 사랑하고 공감할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평범하고 흔하게 느껴졌다. 누군가 일기를 모아놓은 것 같다는 표현을 했는데, 읽기 전에는 그렇게 내밀한 내용이려나 싶었던 그 말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유명한 일기는 일기장에라는 표현을 떠올리게 했다. 십여년 전 누군가의 싸이월드 다이어리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블로그 같은데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지나치게 차가운 감상만 늘어놓는 것 같아 어쩐지 미안해진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에 비해 얕고 통속적인 느낌이라 아쉬움을 감추기 어려웠다. 보편을 꿰뚫는 깊이를 만나게 되길 기대했었는데. 인터넷 소설과 싸이월드 감성글, 페북 좋아요 같은 것들을 험난하게 거쳐온 사람들이라면 마땅히 경계해야 할 새벽감성 같은 것이 점철된 느낌이었다. 특히 238쪽에 있는 시? 아포리즘? 같은 글은 재빨리 다음장으로 손길이 넘어가게 만들었다. 아마도,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코너 프란타의 새 책이 그리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약간의 우울, 멜랑콜리한 감성을 느껴보고 싶은 10대, 20대라면 어쩌면 공감되거나 감성적으로 다가가는 책이 아닐까싶다. 좋게 말하면 세밀하고 순수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글들이 많다.  

 

 '누구도 혼자가 아닌 시간'을 계기로 내가 어떤 에세이들에 반응하는지 감이 좀 잡히게 된 것 같다. 먹고 살기 힘들다를 넘어 더럽다는 것을 온몸으로 경험한 비슷한 또래의 여성이 약간의 유머나 아이러니를 섞어 낸 글들이 좋은가보다. 고 짐작한다. 악질적인 편독가의 취향이 반영된 감상이니, 에세이를 좋아하는 너그러운 독자들은 개의치 않고 '누구도 혼자가 아닌 시간'을 읽어보길 바란다. 확실히 국내에서는 느낄 수 없는 외국 배경 특유의 감성을 느껴볼 수 있긴 했다. 반도가 아닌 대륙인의 생활상이 묻어난달까, 중서부 지역에서 자란 (177) 배경이나 샌프란시스코 외곽에서 바라보는 금문교(21)에 대해서 같이.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책이지만, 잘 맞는 독자들에게는 사랑받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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