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한 세계사 -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술이 빚어내는 매혹적인 이야기
마크 포사이스 지음, 서정아 옮김 / 미래의창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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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젊을적에는 술자리를 좋아했다. 어찌됐든 성인의 특권같아 보이는 술을 마시는 것도 좋았고, 그래서 얻어지는 방종도 좋았다. 약간 이성을 놓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즐기는 술자리는 퍽 재밌기도 하니까. 언제부턴가 술이 주는 매력보다 다음날의 숙취가 더 크게 고려되고, 술자리에서 느끼는 재미가 때로 실수로 이어지고 공허하게 생각되기 시작했다. 요즘의 솔직한 마음으로는, 술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인식이 더 크다. 술을 좋아해서 술에 대한 세계사를 읽어보려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다만 술이 궁금했다.

 

 술로 인해 들려오는 사건과 사고 소식들은 너무나 많고, 그에 대한 처벌은 약하다. '술 때문에'라는 핑계는 왜, 어떻게 이유가 될까? '술에 취해서 심신미약이었기 때문'이란 이유로 낮은 처벌을 받는데, 사회는 왜 술에 관대할까? 같은 의문들과 함께 사람은 왜 술을 취할때까지 마실까? 왜 술을 마시고 싶어할까? 같은 궁금증들이 꼬리를 물고 생겨났다. 이 궁금증들이 '술에 취한 세계사'를 읽도록 만들었다. 정말 '인간은 술꾼으로 진화했'을까? 자신은 만취에 대해 모른다고 운을 떼고선 바로 다음장에 '런던 캠던 타운의 집 창 밖으로 몸을 내밀고 십자가를 흔들어대면서 행인들에게 회개하라고 한 적'이 있다는 문장을 쓰는 자의 술에 대한 이야기를 어디까지 믿으며 읽을 수 있을까? 혹시 글을 쓰는 도중에도 술을 마신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워졌다. 저것이 만취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복잡한 마음을 안고 책을 읽었다.   

 

 책은 술의 기원부터 살핀다. 여기서는 누가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가를 주제로 동물과 술에 대해서도 나온다. 동물들도 술을 마신다는 얘기를 읽다보니 최근 술에 취한 라쿤의 동영상을 본 것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길에 버려둔 술을 마신 모양인데, 만취한 라쿤이 길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은 확실히 우습고 귀여웠다. 책에서는 동물이 술을 진탕 마시는 일은 드물다고 했는데, 이 라쿤은 어쩐 일인지 만취한 것이었다. 좀 더 찾아보니, 동영상의 술취한 라쿤은 경찰에 잡혀간 뒤 불행한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모처럼의 동심이 파괴되는 결말이 술꾼의 최후같아서 씁쓸했다.

 

 불행한 라쿤의 이야기에 이어지는 술과 여성의 역사에도 매춘, 난교, 구토 같은 말들이 따라붙는다. 처음 가졌던 흥미에 대해 달가운 내용들은 아니었다. 새끼돼지 값으로 치뤄지는 매춘이나 구토, 난교 함께 버무려진 이집트인들의 술문화, 수메르의 술집 여주인, 바이킹의 연회에서 여성 역할은 술을 따르는/제공하는 것이었다는 내용들은 음지의 술문화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보여준다.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는 진을 마시는 여성들을 비방하는 글을 쓰는 영국 신사들의 등장과 점잖은 여성은 살룬에 가지 않는다는 서부시대의 불문율과 함께 살룬 아가씨라는 직업의 등장이 소개된다. 오랜 시간동안 많은 문화권에서 술이 자연스럽게 여자와 성에 얽혀 있는 역사를 보여주는데 하나같이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아보였다.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역사 속의 술문화는 로마의 콘비비움이었다. 술자리의 좌석배치도도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는데, 손님의 중요도를 차갑게 평가해놓은 이 무례한 술자리는 심지어 바닥을 기어야 하는 노예들을 부리고, 노예의 가치를 무려 외모로 평가하기까지 한다. 손님을 어떻게 대우하는지는 앉은 자리와 그들을 접대한 노예의 외모, 제공받는 술의 품질에서까지 드러난다. 예의와 상식은 어디 먼 곳으로 보내버린 것만 같은 과거의 문화는 주인이 차별대우에 분노한 손님의 칼날을 맞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인지 의심하게 만든다.

 

 앞서 본 술의 역사들이 아름답지만은 않기 때문에 금주를 시도한 역사들도 나온다. 이슬람교에서 금주령을 내리니 사람들은 모자를 쓰고, 라키는 술이 아니니까, 원료가 다르니까 같은 핑계를 대고 술을 마시려고 한다. 아즈텍에서는 풀케를 마시고 취한 사람들을 교수형에 처하기도 했지만 술을 마시고자 하는 사람들의 시도를 막을 수는 없었다. 마시면 죽는다고 하더라도 술을 기어코 마시려는 사람들의 의지는 그것이 금지되었다는 이유로 더욱 강해진 것이 아닐까 싶었다. 미성년 시절에 술을 마셔보고 싶어하는 호기심처럼. 개인적으로 평소 술을 즐겨마시지는 않지만, 술을 아예 마시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술은 백해무익하니 금주령을 내리자는 급진적인 생각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금주와 관련된 내용을 읽다 이건 어렵겠구나 싶었다. 술이 가진 유구한 역사와 큰 팬층을 떠올리면,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역사는 결국 인간의 것이기 때문인지 술과 인간이 맺어온 관계는 과거와 지금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아보였다. 취하고 즐기고 토하고 욕망을 분출하고 잘못을 저지르고, 또 술을 마신다. 술에 취한 고대인들의 이야기를 읽으니 마치 맨정신으로 만취자들의 술자리에 참석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흥미롭지만, 왜 저러는건지 이해가 안되는 문화도 많았다. '술에 취한 세계사'를 통해 다양한 역사를 접할 수 있어 유익했지만 내용이 정돈된 결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점은 아쉬웠다. 역사 속에서 겹치는 내용들이 나오니 시간의 순서에 얽매이기 보다는 술에 취한 인간과 동물, 술 문화, 술과 여성, 금주령 같은 주제로 묶어 내용을 끌어갔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래서 결국 사람은 왜 술을 마시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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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본능 사전 - 고양이 행동 심리학자 잭슨 갤럭시가 말하는 고양이와 공존하는 법
잭슨 갤럭시.미켈 마리아 델가도 지음, 이현주 옮김 / 미래의창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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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적에는 고양이를 무서워했었다. 아주 어린시절 집에 지하실이 있었는데, 친척 언니가 어디서 주워온 새끼 고양이를 차마 집에서 키울 허락은 받지 못하고, 몰래 지하실에 두고 키웠었다. 어두컴컴한 지하실에서 가느다랗게 들려오는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어린시절에는 무서웠다. 호환, 마마, 전쟁과 불법 비디오가 가장 무서운 재앙이던 시절, 고양이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검은 고양이는 재수없다'는 말이나, 고양이 울음소리는 소름끼친다, 고양이는 자기에게 못되게 군 사람에게는 꼭 복수를 한다, 목숨이 여럿이다 같은 말이 흔했다. 그래서 동공이 커졌다 작아지는 눈동자가, 날카로워 보이는 이빨을 드러내는 하품도 무서웠다.

 

 이상한 일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고양이를 좋아하게 됐다. 어린시절에 왜 그런 이상한 말들과 함께 고양이를 무서워했던가 싶게 '세상 사람들 다 고양이 있는데 나만 고양이 없'다며 엉엉 울만큼 고양이가 좋아졌다. 길냥이 만나면 주려고 소세지 하나쯤은 가슴에 품고도 다녔다. 고양이가 언제부터 이렇게 좋아졌나 생각해보면 어쩌면 도둑고양이라는 말 대신, 길냥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닐까 싶다. 그쯤에서 고양이에 대한 친근한 시선도 많아지고, 고양이의 귀엽고 예쁜 사진들도 많이 본 것 같다. 내가 어른이 되고 동물보다 사람이 더 싫어지게 된 탓도 있지만, 말이 바뀌면서 인식도 달라지게 된 점도 큰 영향을 준게 아닐까 싶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고양이 본능 사전'을 읽었다. 책에서 고양이의 자신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모조'를 말하는데, 가장 첫번째에 사냥(H)이 있었다. 인터넷에서 보기론 고양이들은 사냥을 해서 먹이를 구해야 어른이 됐다고 생각하는데, 집고양이들은 사냥을 해서 먹이를 구한 적이 없어서 계속해서 자기가 아기라고 생각한다는 말이었다. 그때는 귀여워서 아파트도 부수고 지구도 부수고 싶었는데, 덜컥 걱정이 됐다. 집냥이들이 자신감 결여로 있는거면 어떡하지? 친구네 집 턱시도냥이가 문득 떠올랐다. 카톡을 보내니 친구는 냥님이 원래 스트릿 출신이셔서 사냥도 해보셨을거고 벌레도 곧잘 잡고 호통도 잘 치셔서 자신감 결여는 아니실 것 같다고 답했다. 아, 또 나만 고양이 없는거지...

 

 '고양이 본능 사전'에서 가장 재밌게 읽은 부분은 고양이 유형에 대한 내용(73)이었다. 모히토 고양이, 나폴레옹 고양이, 아웃사이더 고양이 같은 고양이의 성격별 구분을 해뒀는데, 모히토 고양이라고 해서 반사적으로 의수를 낀 채 '모히토 가서 몰디브 한잔'을 말하는 건달같은 모습이 떠올랐다. 외국책이라 그런지 표현이 찰떡같이 와닿지 않는 부분이 아쉬웠다. 근데 신기하게도 세가지 유형의 고양이를 다 만나본 적이 있어서 읽으면서 그 특성들은 많이 공감이 됐다. 이 밖에도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읽으면서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방식은 고양이를 애완용으로 키운다는 것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고정관념, 잘못된 인식 등을 깨달으면서 반려동물로 함께 사는 방식으로 공존해야함을, 좋아하는 것과 진짜 함께 살 수 있는 것은 다르다는 걸 느꼈다.

 

 또, 고양이와의 인사법 같이 아주 도움되는 정보들이 많이 있었다. 널리 알려진 눈인사도 있고, 다음에 길냥이를 만나면 꼭 써보리라 다짐한 3단계 악수법도 흥미로웠다. 처음 만난 고양이에게 예의바르게 행동하는 일은 좋은 첫인상을 만드는데 아주 중요하니까. 이 밖에도 유튜브같은데서 고양이 여러 마리가 함께 있는 집이나 개와 고양이가 함께 하는 집, 아이와 고양이가 함께 하는 집 영상을 많이 볼 수 있다. 동물들이 나오는 유튜브는 아주 인기가 많기 때문에 우스운 설정을 만들어 동물을 이용한 유튜브를 시작하려는 촌극도 나온다. 하지만 책에서는 이 모든 일이 주의깊은 준비와 확인 속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알려주고 있어, 유튜브로 보는 귀여움만을 떠올릴 사람들이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을 꼭 읽어보면 좋겠다.

 

 우리는 개든 고양이든, 반려동물은 너무 쉽게 들인다. 준비도, 사전지식도 없이 외롭거나 귀엽다는 이유로 함께 살기를 결정한다. 그러다 생각지 못한 문제가 생기면 여러 이유를 들어 버린다. 생명이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사회 전체의 기본적 인식이 더 교육되어야 하고, 높아져야 한다. 하지만 조금만 반려동물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면 쉽게 들을 수 있는 학대와 파양 같은 어두운 소식은 우리 사회가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관심을 갖고 알릴 수 밖에. 고양이와 함께 살고 싶은 미래의 집사들도, 이미 냥님의 간택을 받은 집사들도 좀 더 행복하게 고양이와 공존할 수 있도록 '고양이 본능 사전'을 읽어본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냥님은 집사하기 나름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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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부동산 시그널 - 영리하고 민첩하게 규제의 틈새를 노려라
배용환 외 지음 / 다산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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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한 권에 여섯명의 전문가라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뜻으로 부동산에 대해서 어떤 전략을 내놓을까 궁금했다. 여섯명의 전문가가 모인 조별발표를 떠올렸지만, 다행히 책의 여섯 파트를 하나씩 나눠서 담당하고 있었다. 담당 전문가가 분야별로 있으니 좀 더 전문적으로 내용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었다. 마치 1교시부터 6교시까지 수업듣는 느낌도 나고. 수업듣는 느낌이 나서 더 좋은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무조건 한 호흡에 다 읽지 않아도 되는 느낌이 들어 파트마다 약간의 텀을 두어서 너무 한꺼번에 머리가 복잡해지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시장 상황과 정책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보통 이런 유형이다. 부동산이 없거나 부동산을 소유할 여력이 없는 우리 보통의 사람들. 잠깐 다같이 울고 가자. 있는 사람들이 종부세같은 소리하며 내는 불평이야 그냥 하는 말이고, 이제 모든 욕망을 다 벗어던지고 무욕의 길로 접어든 나와 같은 젊은 세대들이 아무리 무욕하다 해도 부동산으로 돌아가는 경제 시장이 영 엉망이라는 불만은 내재되어 있다. 현생에 나와는 인연이 없을 것으로 여겨 그동안 부동산에 크게 관심은 없었지만, 그래도 세상 돌아가는게 궁금했다. 어쩌면 무욕 수련이 덜 되었는지도 모른다. '규제의 틈새'를 노리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만약 이사를 간다면 어떤 '시그널'을 받고 가는게 좋을지 정도만 알아보자는 마음으로 읽었다.

 

 전에도 부동산 관련된 책을 한두권 읽어봤지만 영어책도 아닌데 용어나 좀 알아두는데에 그치고, 대부분은 발품을 많이 팔아라'는 말로 요약될만한 맨몸 정보들을 큰 팁으로 알려주는데 그쳐서 언제나 좀 아쉬웠다. '2020 부동산 시그널'에서 가장 관심있게 읽은 부분은 공실과 다섯번째 파트인 토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공실은 요즘 번화가에 나가면 오바 좀 해서 한 집 걸러 한집은 가게가 비어있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봐서였다. 저렇게 비워둬도 건물주는 괜찮은걸까'하고 크릴새우가 물고기 걱정해주는 마음을 가졌었는데, 종로거리의 1층 상가가 하루가 다르게 비워지는 것을 보면 왜 저렇게까지 비워두나 싶기도 하고, 거리가 휑했다.

 

 동네에 오래 비워둔 건물 상가에 코인빨래방, 무인커피숍, 인형뽑기게임기 같은 것들이 들어와 있는 경우가 있어서 왜 유행처럼 저런 가게만 들여놨나 했더니 인력부족을 줄이고 공실을 활용하기 위한 방안으로 책에 나와 있었다. 내가 별스럽지 않게 생각하고 지나쳤던 것들도 누군가의 전략이라 생각하니 있어도 저렇게 노력하는데, 너무 빨리 포기하고 무욕하여 청빈의 생활로 들어선 것은 아닐까 싶어졌다. 그래서 토지 파트가 나왔을 때는 욕망이 조금 생겨서 열심히 읽었다. 고속도로와 철도 사업, 국토종합계획같은 것을 읽다보니 서해안 지역이 정말 유망해보이고 투자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재밌었다. 그럴 자금이 없다는 걸 다시 떠올리기 전까지.

 

 얼마전 지인이 경기도 권에 집을 구하려다 결국은 못구하고 급히 전세를 얻어 이사한 일이 있어 경기권 모지역에 부동산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귀동냥으로 들은 얘기가 책에서도 나와 그 부분도 재밌게 읽었다. 하지만 나도 알만한 지하철 연장 지역 소식 같은 정보는 '아, 그래서 거기 아파트 들어간 사람들 지금 아주 좋다지' 싶은 생각만 들었다. 책에서 어디에 집사고 땅사십쇼 하는 정보를 주진 않지만, 책을 읽고 나 스스로가 그런 기회를 잡는 눈을 길러야 하겠지만, 막상 읽어봐도 한눈에 괜찮은 정보가 없으니 또 아쉬웠다.

 

 초등학생들의 꿈에 건물주라는 직업이 등장하는 시대. 물질만능주의 앞에서 조물주도 건물주에게 그 자리가 밀려난지 오래다. 규제의 강화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2020년을 앞두고 나온 1%대의 금리 소식은, 역시 답은 로또 아니면 부동산 뿐인가 싶은 심리를 부추긴다. 불합리한 구조 안에서 좀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 '규제의 틈새를 노'리는 일 뿐인지, 책을 읽으면서 궁금함 반, 아쉬움 반이었다. 지인 중에 셀프 리모델링까지 배우며 갭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는 사람이 있어 이 책을 권해줄 요량이다. 관심과 행동력이 있는 사람이 읽는다면 더 의미있어질 내용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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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의 냄새
박윤선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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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시절에 여름이면 수영장에 갔다. 가서 수영을 배운 것은 아니고 그저 물을 휘다니며 놀았을 뿐이라, 아직도 수영은 커녕 잠수도 못한다. 수영을 배우러 간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수영장엘 자주 갔냐하면, 그때는 그랬다. 동네 아이들끼리 서로 이름을 불러가며 '노올자'하고선 오늘은 앞산으로 오늘은 수영장엘 오늘은 골목에서 이리저리 어울려 놀았다. '수영장의 냄새'를 보고선 그때의 물의 일렁임, 수영장에서 놀고 나면 꼭 먹었던 컵라면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

 

 '수영장의 냄새'에 그런 유년의 반짝임이 담겨있는걸까 생각했는데, 들여다 본 물속은 생각보다 깊고 어두웠다. 그때의 자신을 '국민학교 이학년'으로 소개한 것으로 보아 어린시절이 나와 그리 떨어지지 않은 때였던 것 같았는데 민선의 세계는 성숙했다. 초등학교 이학년 때 나는 어떤 집에서 사는지 신경이나 썼던가, 싶었다. 분식집 가서 밥도 혼자 잘 사먹고 학원엘 가는 모습이며, 꽤 조숙한 관계망을 보며 민선이는 혹시 서울에서 살았던걸까 싶어졌다. 서울 출신들에 대한 편견이 조금 있나보다.

 

 아홉살 무렵에 있던 일을 떠올려보면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 일학년 때까지는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눠서 학교를 가느라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 같은데, 이학년은 그런 기억도 없다. 다만 시험을 잘 보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그랬다. 일학년 때는 학교를 다닌다는 것에 적응하느라 시험같은 것을 봤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데, 그 무렵에 남들보다 잘 못한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실망감의 기억이 난다. 민선이 수영장엘 가기 싫어하는 이유가 공감됐다. 지금은 그럴수도 있지, 하지만 그때는 그런게 창피하고 싫었다.

 

 흔히 어린시절에 겪은 일들은 금방 잊거나, 잘 이해하지 못해 상처가 덜할거라 생각하는데 때로 어떤 상처들은 온 시간을 들여 깊게 자리잡는다. 민선이는 신발을 버린 일, 친구들과 병원 놀이를 한 일들도 상처로 남아있겠지만, 시간이 흘러 인경이가 전학 간 이유에 대해 이해하게 됐을 때 그때도 상처를 받게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어리다는 이유로 저질렀던 잘못들을 떠올려본다. 정말 잘못이 잘못인줄 모르고 행동했을까, 그때도 사실 아주 조금은 하면 안되는 행동에 대한 구분이 있었던 건 아닐까.

 

 뉴스에서 나오는 소식들을 볼 때 저렇게 어린애들이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할 생각을 했을까 싶은 사건들이 나온다. 아이라서 어른과 같은 생각을 기준으로 행동을 판단하면 안된다고 하지만, 타인에게 자신이 겪고 싶지 않을 행동을 하는 아이들은, 정말 잘잘못을 몰라서 장난으로 그런 행동을 한 것일까 생각이 미친다. 그 아이들이 모방하는 세계가 더욱 나빠지지 않기만을 소망하게 된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을까, 같은 비관적 생각을 하게 된다. 매일 들려오는 점점 더 나쁜 소식들에 지칠 때면.

 

 아직도 수영장에서는 소독약 냄새 같은 것이 날까? 얼마 전 수원을 갔다 길을 걷던 중 작은 수영장이 있는 센터를 들렀다. 센터 안에 수영장이 있는 줄은 몰랐지만 어디선가 물비린내 같은 것이 나서 인공폭포 같은 것이 있나, 목욕탕이 있나 싶어 둘러보니 레인이 몇 개 안되는 수영장이 있었다. 최근에는 호텔의 수영장 같은 곳 말고는 가본 적이 없어 관념 속의 수영장 다운 수영장을 본것이 오랫만이었었다. 여전히 그곳에는 수영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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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 국선변호사 세상과 사람을 보다
정혜진 지음 / 미래의창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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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으면서 나 스스로는 정리할 수 없는 생각들이 맴돌았다. 지금까지는 변호인이 필요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분명 내 입장이 되어 겪어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테지만, 변호의 역할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동안 내가 접할 수 있는 법정의 세계는 대체로 이렇다. 세상에 저런 일도 있단 말인가 싶을 4주간의 조정기간이 필요한 사랑과 전쟁 류, 주로 뉴스에 나올만한 사건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형편없는 죄값이 선고되는 부당해보이는 구조, 아주 드물게 부당한 죄를 벗어나도록 도움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 이중 변호와 관련해서 내가 접하게 되는 것이 보통 '왜 저런 사람을 변호해주나'싶은 일들이 많기 때문에 필요성과 그들의 입장이 의문스러웠다.  

 

 처음에는 자잘한 생계형 범죄나 불우했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해 재판에 이른 사람들의 사건을 보여주면서 저자가 어떻게 그들을 이해했는가 나도 공감해보려 했다. 하지만 읽을수록 혹시 변호사는 사람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매우 크게 필요한 직업이었던가 싶기만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실천하고 있는걸까. 죄도 결국 사람이 저지르는 일이기에 죄를 저지른 사람도 함께 싫어지는 마음을 다잡을 수 없었다. 돈이 필요해서 중고나라 사기를 저지르고, 불우한 어린시절 때문에 술에 의존하게 되어 무전취식을 하고, 술에 취해 자기도 모르게 불을 냈다는 사람들의 사연을 보면서 그들이 말하는 인과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가장 인상깊은 사건이 자고 있던 친구의 이불에 불을 붙인 사건이었다. 그는 탈북민이었는데, 같이 사는 친구와 불화로 다퉈 술에 취한 상태에서 불을 질렀으나 해를 입히려는 고의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의 입장에서는 친구에 대한 섭섭함, 오해가 쌓인 일일뿐이었으나 나는 친구의 입장이 더 공감됐다. 친구는 목숨을 걸고 어려운 탈북에 성공했으니, 힘들어도 자신을 다잡고 잘 살아서 탈북민들에 대한 인식도 좋게하고 싶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다. 피고인은 힘든 순간에 술에 의존했고, 친구가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원망섞인 섭섭함을 품었다. 같은 상황에서 각기 다른 태도를 보이는 두 사람을 보며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좋지 못한 선택을 한 사람들에 대해 어디까지 공감하고 이해해야 하는가 고민했다.

 

 지난 10월 생계곤란으로 열흘을 굶은 한 사람이 마트에서 음식물을 훔쳐 체포된 사건을 기사로 보았다. 그의 사정을 들은 피해자도 선처를 바랐고, 지자체에서 그의 재활을 돕기 위한 방향으로 마무리 된 내용이었다. 그의 곤란이 다른 방식으로 알려졌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런 딱한 사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사건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장치가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사진관에서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서 반복적으로 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변호가 어디까지 필요할까. 가족력, 불우한 과거와 술 때문에 우발적으로 지인을 찔렀다는 사람은? 삶이 힘들어 마약에 손댔다는 가장은?

 

 저자는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와 그릇이 나보다 넓은 사람이기 때문에 변호가 가능할지 모르겠다. 나는 그럴 수 없어서 읽으면서 어쩌면 국선변호사의 자격은 남을 잘 믿어주고 착할 것이라는 요건이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피의자들이 대는 핑계같은 말에도 귀기울이며 참고하는 자세가 감탄스러우면서 한편으로는 왜 그렇게까지, 싶었다. 그 사람들의 사정도 있지만 엄연히 피해를 본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그들의 억울함은 고려하지 않는걸까 생각하기도 했다. 게다가 술 때문이라는 이유가 너무나 많이 이용되는 사회에 의문과 불만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책에서 나오는 중독 혹은 술에 취해서 그랬다는 말들도 더욱 마음의 빗장이 단단해지게 만들었다.  

 

 더욱이 이 가련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잘못들은 너무도 쉽게 유죄를 판결받지만 정작 사회의 근간을 해치는 죄를 저지르는 사람들 중 돈과 권력이 많은 사람들은 그 죄값을 다 받지 않는 일이 너무나 많다. 이들이 변호를 통해 법망을 피해가는 것도 지겹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변호사를 선임할 경제적 능력이 충분한데도 돈을 아끼기 위해 국선 변호를 선택하여 세금을 낭비하는 일이 있다는 것도 불만스러웠다. " 삶의 효율을 요구하는 시대에 삶의 자세와 가치를 길어내다 "는 표지문구의 어떤 면모를 책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단 말인가, 읽으면서 마음이 답답했다. 차라리 우리는 더 효율적이어야 하는 것 아닐까.

 

 국선 변호인의 세계가 궁금하다면 관심을 갖고 읽어볼만 할 것이다. 도리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왜 사회의 구조는 이리도 허술한 것일까, 명백히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도 변호가 필요할까 이런 의문들을 가지게 되버렸지만. 사실 그 이유를 알고 있지만 일반적인 통념에 맞지 않는 판결에 대한 뉴스를 많이 접하다보니 좀 더 부정적이고 까질하게 읽게 된 것 같다는 생각도 이제야 든다. 혹시 지금 사람이 좀 싫다면 저자가 만난 우기기, 남의 말 듣지 않기, 화내기 등을 잘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례를 보고 더 속이 터질 수 있으니 조심하길 바란다. 사람와 얽힌 직업은 무엇이든 정말 쉽지 않구나 싶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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