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의 쇼핑몰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넘어
박노성.정윤환.조영준 지음 / 성안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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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핑몰을 열어 떼돈을 벌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책에 흥미를 조금 느낀 건 ㅎ회사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였다. 전에 일했던 쪽이 ㅎ회사와 어느 정도 연관이 되어 있었던터라 ㅎ회사의 이름이 가끔 눈에 띄고는 했는데 저자가 ㅎ회사의 마케팅 담당이 돼서 ㅎ회사를 업계 1위로 만들었다는 내용을 책의 초반에 읽었다. 정말 온전히 저자의 마케팅 능력 때문에 이루어진 성과는 아니겠지만, 생각해보니 ㅎ회사가 갑자기 광고도 늘고 꽤 유명하게 인지도를 쌓은 일이 떠올랐다. ㅎ회사 이야기를 읽고나니 그저 그런 얘기만 늘어놓는 책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 쇼핑을 많이 하다보니 책에 나오는 내용들이 영 어색하지는 않았다. 온전히 구매자의 위치에만 있지만 상품 검색 내용별로 노출 순위가 다르게 되어있는 점(59)이나 미끼상품 전략을 쓰는 것, 키워드 공략에 대한 부분에서는 최근에 내가 직접 검색해서 구매했던 핸디형선풍기나 규조토발매트가 (114-119) 예로 나와 놀랄만큼 현실성 있게 책을 봤다. 내가 사고 싶어서 검색해보고 구매한 것인데도 책을 읽다보면 쇼핑몰에서 구매를 유도한대로 내가 끌려가듯이 구매했던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게 자세했다. 문득 책표지에 "검색에서 쇼핑까지 매출로 이끄는 쇼핑몰 성공 전략서"라는 문구가 써있는게 보였다. 잘쓰고 있기는 하지만 정말 내가 사려고해서 산게 맞나 갑자기 더 의심된다.

 

 사업에 뜻이 없어서 아쉽게 되었지만 스마트 스토어 판매자 되는 법(75)을 한걸음 한걸음 아주 상세하게 안내하고 있기 때문에 관심있는 사람은 이 책이 꽤 유용할 것 같다. 창업을 글로 배웠어요"하고 이 책 한권만 의지해서 일을 벌려서는 안되겠지만 SNS같은데서 오늘 하루만 00만원을 벌었다며 다단계같은 부업을 유도하는 사람들에게 멘토링을 받는 것보다는 더 양심적이고 유용할 것 같다. 단순히 나의 성공기, 나는 이렇게 창업해서 성공했다, 같은 류의 내용이 아니라 하려면 이렇게 해야하고 뭐가 필요하다는 가이드북이라는 점이 좋았다. 다만 그래서 일부 내용은 쉽게 읽어 넘어가기 어려운 전문적인 부분이라 적당히 스킵하며 읽었다. 쇼핑몰 열고 싶은 생각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런 부분들이 핵심적으로 중요하겠다.

 

 우연히 도서를 제공받게 되어 이쪽은 어떤 세계일까 궁금한 마음에 읽어봤는데, 잘 모르던 분야를 조금 알게 된 것 같아 흥미로웠다. 쇼핑을 하는 건 아주 익숙한데 그 세계에 이렇게 치열한 계산과 전략이 있다는 걸 판매자의 입장에서 가감없이 보는 건 또 색다른 일이었다. 요즘은 텍스트로 정보를 얻지 않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지만, 인터넷으로 쇼핑몰을 열어 뭔가를 하고 싶다면 이 책 한권 정도 투자해서 읽어보는 품은 들여야하지 않겠나싶다. 전혀 준비가 안되어 있는 사람도 틀을 잡을 수 있게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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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 생리하는데요? - 어느 페미니스트의 생리 일기
오윤주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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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리란 무엇인가. 생리는 홍길동같은 것으로 생리를 생리라 부르지 못하고 그날, 마법, 멘스, 달거리같은 좀 덜 직접적으로 들리는 우회어로 불려왔다. 어디서 생겨난 문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첫생리가 시작되면 무려 '파티'를 해주기도 하지만 생리 중인 것이 티나지 않게 비밀스럽게 지나보내야 한다. 피가 새거나 묻는 수치스러운 불상사가 벌어지면 안되고, 아프거나 기분이 좋지 않거나 예민해지는 것을 티내서도 안된다. 그러면 조심성없어 칠칠맞지 못하다거나 '왜 이래? 오늘 그날이야?' 같은 질책섞인 넝담도 듣게 된다. 생리통은 사람마다 정도가 다르다지만 귀찮고 불편한 생리를 하는데 당연히 예민해지고 기분이 안좋은게 뭐 어쩌라고 싶지만 따라오는 오해와 참견은 피하고 싶어진다. 생리대에 대한 광고에서도 생리란 말은 기피되고 생리혈의 색은 파란색 실험용액으로 대체되어 보여진다. 이 밖에도 끄집어내자면 더 많지만, 생리를 경험한 사람들은 사실 생리에 대해 이정도는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생리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이 얼마나 특별할까 싶었다. 이미 다 아는 얘기를 반복해놓은게 아닐까? 10년쯤 일찍 나왔다면 특별했을려나? 싶은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솔직하고 적나라해서 순식간에 읽었다. '100명의 여성은 100가지의 생리를 한다'는 소제목처럼 나랑 다른 경험을 하고 있는 여성의 완전 솔직한 생리 이야기는 또 나름 흥미로웠다. PMS시기부터 시작해서 생리를 하는 기간동안을 담은 생리일기 부분도 재밌게 읽었고 사후피임약, 생리 중 섹스, 생리 공결 같은 주제들을 다루는 부분도 여자집단에서는 종종 올라오는 문제여서 익숙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보지 긍정'에 이르러서는 어쩐지 어색했다. 여성기를 이르는 말 역시 생리처럼 에둘러 표현되는 일이 많으니 직접적으로 보지라는 단어를 보자 어색함이 느껴졌다. 이럴때면 나도 아직 멀었구나 싶어진다. 

 

 한 이십여년전에도 생리를 숨기지말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생리하는게 티나면 창피한거니까 생리는 숨겨야만 되는 줄 알았던 어린시절 어떤 선생님이 '얘들아, 생리해서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쉬어' '생리하는 때에는 생리한다고 말하고 배려받아' 하고 공표한 적 있었다. 그때는 저 선생님이 유난스러우시네, 특이하네 하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자연스럽고 필요한 조언이었다. 창백해진 낯으로 배가 아파 엎드려 눈물을 흘리면서도 생리해서 아프다는 말을 참거나 몰래 속삭이던 때였다. 문득 떠올려보니 아득한 옛날이다. 시대도 달라지고 나도 달라졌으니 책을 읽을 준비는 다 되어있다고 생각했다. 생리도 이만큼했으면 프로?고 말 많은 페미니즘을 빼고서라도 여자들은 생리에 대해서만큼은 이견없이 할말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책을 읽다가 문득문득 그 오래전의 선생님보다 내 생각이 덜 트여있는가 싶었다.  

 

 대부분의 내용은 어색하더라도 긍정하며 읽었는데 생리 중에 수영장을 가는 것에 대한 내용은 거부감이 들었다. 생리대를 하고 수영장에 들어간다는 것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고, 생리중인 사람의 수영장 이용을 긍정적으로 보지도 않았다. 탐폰이나 생리컵을 쓰고 이용하는 사람들까지 굳이 막을 일은 아니지만 이미 수영장물이 얼마나 더러운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기에 생리 중인 내 몸에 안좋을 것 같아서가 더 크다. 맨날 싸움나는 주제라지만 생리기간동안 수영장 이용을 안한다면 한 달 이용 요금을 감면받는 쪽으로 불편을 줄이는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이것도 생리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배운대로 따라가듯 생각하는 것일까 의문을 갖게 되었다. 솔직히 생리가 싫다, 생리를 싫어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는데 이것도 단순히 불편에서 오는 싫음이 아니라 학습된 미움일까 궁금해졌다. 좀 더 깊이 생각해볼 문제겠다.

 

 여자라서 생리에 대해 이미 다 알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생각한다면 잘 읽히고 금방 읽으니까 가볍게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성과 관련된 지식에 약하다. 남자라면, 이 책이 읽고 싶을까 궁금하다. 생리휴가나 생리대 무상 지원 같은 문제를 두고는 할말이 많은 사람들을 봤지만 생리에 대한 책이 나왔다는 것에 관심을 가질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등가적이진 않지만 비슷한 시기에 경험하게 되는 몽정과 같은 정액 배출에 대해 책이 나왔다고 하면 내가 별 관심을 갖지 않을것처럼 말이다. 한달에 일정 기간동안 남자도 계속해서 정액이 흘러나오는 기간이 있다면 어떨까. 생리처럼 통증도 있고 패드를 해서 새고 묻는 것을 막아야하고 냄새가 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그렇게 생각하니 관련 책이 나오면 한번 읽어볼 정도로 궁금하긴 할 것 같다. 남성독자들도 그 정도의 호기심으로 읽어볼만 하겠다. 하지만 특히 자라나는 소녀들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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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오늘의 젊은 작가 17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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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즐거운 일들을 하나씩 잃어 가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말이다. p.8 "

 

 '딸에 대하여'를 읽으려고 전부터 생각을 해왔지만 이제서야 읽었다. 책을 읽을 것이라는 계획이 늘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내용을 전혀 모르는 채로 있었다. 제목만 보고 엄마와 딸에 대한 내용이겠거니 했다. 무심결에 오래 전 영화 '마요네즈'나 전도연이 나온 '인어공주' 같은 영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때문에 사실 좀 더 보편적인 모녀관계에 대한 내용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뜻밖의 내용이 있었다. 동성애에 대한 내용인가, 하고 주춤하다가 보편적이라는게 뭐지' 그린과 엄마가 나누는 대화가 결국은 모녀 사이의 보편이나 다름없는 것들 아닌가 생각했다. 다툼이나 친근함의 정도만 좀 다를 뿐 엄마와 딸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존재이면서 자신의 인력 안에서 상대방을 끝내 밀어내지 못하는 연관성이다.

 

 한참을 읽지 못했던 책을 반드시 읽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문득 엄마에 대한 생각을 자주하게 되면서다. 딱히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부쩍 엄마가 가장 사랑하는 자식은 누구일까, 궁금해졌다. 내가 나이를 먹으면 엄마가 그만큼 늙는다. 철없이 엄마, 엄마하고 쓰지만 실제로는 불혹에 가깝게 생각할 때가 되니 이제는 도리어 부모가 물가에 내놓은 애마냥 염려스러울 일이 많아졌다. 늙어가는 부모를 대신해 이런저런 물건을 주문하고, 볼일을 접수하고, 정보를 알아보다보면 내 시간을 쪼개 마음을 들이다가도 무심히 부모의 애정과 보살핌을 받는 다른 친동기간들을 떠올리게 된다. 필요하다 하셨던 물건을 이제껏 없이 지내시게 말고 진작 사드리지 그랬어, 하는 불만이 불현듯 여직 시샘으로 번지는 탓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없지만, 금반지 끼우고 싶은 손가락은 따로있다'는 우스갯말이 한동안 자주 입에 오르내렸다. 이제 노년으로 들어서는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로 오를 일도 잦고, 부모가 된 사람들과 이야기 할 일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종종 농담처럼 입에 올린 말이고 머리로 이해하는 말이지만, 때때로 "엄마에게 나는 어떤 손가락이야" 묻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물을 수 없을 것 같은 말이라 생각되면서 물으면 안 될 것 같은 질문을 마음속에 뭉쳐 이리저리 쓸어보는 나날들이었다. 그래서 내가 딸이니까 '딸에 대하여'를 읽어보면 이 질문이 조금은 흐려지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다. 엄마에게 딸이 무엇인지, '너같은 딸 낳아보'라는 엄마의 말을 잘도 피해간 딸이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며.

 

 기대는 엄마와 딸이라기보단, 엄마와 자식에 대한 내용이었다. 내가 낳아 세상을 보이고 가르치고 기른 자식이 크면서 점점 하나의 완벽한 인간이 되어 엄마 앞에 섰을때. 엄마는 한때 자신이 가꾸고 정리하며 속속들이 알았던-혹은 그랬으리라 착각했던- 이 익숙하면서 낯선 우주를 해석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어떤 것은 못 본 척하고, 어떤 것은 물고늘어지고, 어떤 것은 포기하고, 어떤 것은 헤집는다. 하지만 자식은 마치 저혼자 커버린 것처럼 묵묵한 타인의 얼굴을 하고 이렇게 존재하는 나라는 우주를 그저 인정하고 받아들이라 말한다. 문득 내가 엄마에게 숨겼던 것들, 전부 설명하지 않고 넘어간 것들, 그리고 나의 결정만으로 선택한 것들을 떠올린다. 엄마에게도 때로 숨이 막힐 듯한 부서짐의 시간이 있었을까. 내 딸이 어째서 이렇게 갑자기 낯선 얼굴을 하고 있냐고 묻고싶을 때가 있었을까.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을 엄마에게 하지 않듯이 엄마도 나에게 내 딸의 얼굴을 한, 너무도 다른 생각과 말을 가진 이 여자가 누구인지 묻지 않았다. 어쩌면 갱년기와 함께 그런 시간들을 흘려보냈는지도 모를 일이다. 소설 안에서 엄마는 그린을 다그친다. 남들처럼 살고 나서지말라고. 너를 너무 많이 교육시켰는가보다 후회도 한다. 그린은 엄마를 향해 대꾸한다. 나를 가르치고 키운 것이 다름 아닌 엄마라고. 해고된 강사들을 위해 시위를 하는 그린을 속상해하면서도 권과장에게 속엣말을 다 쏟아낸 것도 자신이다. 남들은 다 보아넘기는 것을 끝내 마음쓰고, 억지를 부려서라도 젠을 시설에서 빼내어 집으로 들인 것도 자신이다. 그린이라는 우주 안에서 빛나고 있는 별들은 분명 그녀에게서부터 왔다.

 

 엄마와 그린이라는 두 우주가 만나 언성을 높였다가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했다가 결국 이해하지 못하고 시나브로 스며들기도 하는 과정을 보며 '컨택트(arrival:2016)'를 떠올렸다. 영화에서 주인공 루이스는 갑자기 지구에 등장한 외계 비행체-셸과 소통하기 위한 임무를 얻는다. 영화는 현재와 미래를 교묘히 교차하며 전개되는데, 셸에서 만난 외계 생명체들과 반목하지 않기 위해서 루이스는 반드시 그들의 언어를 해석하고 우리의 뜻을 전달해야만 한다. 영화에서 "그들의 언어를 배우면 그들의 방식으로 시간을 인식하게 됩니다. 미래를 보게 되요. 하지만 그들의 시간은 한쪽 방향으로 가지 않아요." 란 말이 나오는데 루이스가 셸과 소통하는 것이, 엄마와 그린이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과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그러고보니 주인공 루이스에게도 딸 한나가 있었다. 그 막을 수 없는 존재가.

 

 젠을 보며 품는 딸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을 아직 젊은 딸이 몰라주는 것이 답답했을 것이다. 딸이 여자 연인을 데려와서 같이 사는 일이 남들 눈에 뭐 어떻냐고, 대학 교수라는 타이틀이 사실 이리저리 보따리 옮겨 다니는 시간강사라는 것은 또 뭐 어떻냐고 생각하다 엄마가 하는 고민이 지극히 현실적임을 불쑥 깨닫는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날 그린에게 큰 문제가 생겼다면 그의 보호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엄마 뿐인 현실이나 젊을 적 아무리 대단한 일을 했던 사람이라도 연고없이 혼자 늙어버리고 난 후에는 자기 자신조차도 스스로 어찌하지 못하고 만다는 처참함이 있었다. 나이를 더 먹었다는 뜻일까, 자꾸만 그런 모퉁이들이 더 눈에 밟혔다. 어쩌면 나같은 사람도 이제 점점 굳어서 뭔가를 '막고 있'는지 모른다.

 

 가볍게 읽었는데 생각보다 이리저리 길어졌다. 책을 읽으면 내 안에 뭉쳐둔 것을 조금 풀어낼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읽는 동안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고, 이 나름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는 끝맛이 남아서 좋았다. 왜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졌는지 이해되었다. 그동안 읽어야지, 생각해왔던 책 중 하나를 읽었으니 책 한 권 만큼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른 책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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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 예찬 - 숨 가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품격 있는 휴식법
로버트 디세이 지음, 오숙은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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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여러 사정과 관계상 그리고 고질적인 게으름 탓으로 한동안 일을 하지 않는 시기를 거쳤다. 낯선 자리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어느새 필수가 되어버린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하는 항목이 거추장스러웠다. 자신보다는 상대방의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보면서 어쩐지 민망했다. 나올 수 있는 최대한의 반응이 '아, 그러시구나' 였다. 일을 해야 한다고 보여지는 나이에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사회적 문제가 될만큼 많다고 한다. 일하지 않는다기 보다는 못한다고 봐야 더 정확하겠지만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나보면 대부분 일을 하고 있다. 그 많은 일하지 않는 자는 어디에 있는걸까. 일하지 않는 자가 문제가 되는 사회와 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갑자기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게 되는 상황에 대한 불만을 조금 품고 '게으름 예찬'을 읽는다.

 

 " 일하지 않는 시간에 관한 불안감이 빠른 속도로 전 세계에 퍼지고 있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과거 그리스인과 로마인 모두 그런 시간에 대해 예민하게 구는 경향이 있었고, 게으른 사람을 죽음으로써 벌했다. p.11 "

 

 한 세줄 읽자마자 사망하게 되었다. 조금 게으를 뿐인데 왜 죽음으로써 벌을 받아야 하는가. '게으름 예찬' 이라더니 멕이고 시작하는가, 나의 게으름을 변명이라도 해줄 줄 알았는데 내가 당했구나 싶었다. 그러고보니 예로부터 게으른 자를 가혹하게 벌하는 계몽작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다. 게으름뱅이는 소가 된다는 동화나 중세 유럽의 동화를 보면 아이들에게 게으르면 안된다는 계몽적 내용을 잔인하다시피 담은 내용도 있다. 게으르다는 것이 왜 이렇게까지 금기시 되어 있을까. 근본적으로는 게으르지 않아야 제 먹고사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책에서도 게으를 수 있는 것은 귀족들 뿐이라 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진정으로 게으를 수 있는 것이다.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들은 게으르면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되고 게으르지 말 것을 요구받는다. 입성을 충족시킬 뭔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상태로 느끼고, 이를 게으르다고 여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지만 더욱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는 말이 유행했듯이 이 책이 제대로 게으를 수 있는 게으름의 기술을 보여줄 것이라 기대했는데, 오히려 부지런히 게으를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는 것을 보고 조금 실망했다. 진짜 게으르려면 한강에서 열리는 '멍때리기 대회'라도 나가는 편이 나으려나. '게으름 예찬'이 너무나도 치열하게 게으름에 대해 탐구하고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은 전혀, 절대 게으르지 않았구나 싶어진다. 세상에 어떤 게으름뱅이가 머리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산단 말인가. 저자가 게으름을 표방한 성실하고 치열하게 시간을 보내기가 아닌 진짜 게으름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다면 아마 이 책의 표지 안에는 '게으른게 제일 좋아 늘 새로워, 짜릿해' 같은 말 몇 줄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야 했을 것이다. 우리는 게으름에 대한 해석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문득 인류가 생존을 위한 노동에서 해방 되고 난 이후의 시간보내기는 어떤 형태일지 생각해본다. 생산적이라 여겨지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때의 게으름은 더이상 죄책감이나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개나 고양이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게으름을 비난하지 않는 것처럼? 그건 인간의 존엄이 사육하는 개나 고양이처럼 여겨지도록 만들까? 우리가 결코 알 수 없을 머리속에서 이어지는 생각을 냉소적으로 부정한 피터의 시선(p.50)처럼? 또 하나 눈길을 끌었던 부분은 흡연이 부정적 시선을 얻게 되면서 흡연을 통한 사유의 시간이 사라지게 됨을 강조하는 내용(p.81)이었다. 이에 대에서는 전혀 공감할 수가 없었는데, 흡연 금지 구역이 늘어나면서 설자리를 잃었다며 불평을 쏟아내는 흡연자들의 불만토로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갑자기 등장한 흡연에 대한 절절한 고백에 읽으며 모난 듯이 걸렸던 부분이다.

 

 책을 읽으며 게으름은 여러 모습으로 다가왔다. 나태한 상태,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 혹은 먹고 사는 생산적 활동에서 벗어난 것, 여러가지 방향으로 시간을 보내는 활동. 개인적으로는 게으름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 맞을까 싶은 것들도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생각보다 어려웠던 것 같다. 특히나 놀이와 스포츠마저 분석의 대상으로 흘러들어가는 식의 책의 내용이 다소 딱딱하게 읽혔다. 애초에 저자가 " 자유 시간을 보내기에 더 비옥하고 덜 타락한 방식이 분명 있지 않을까? p.292 " 를 모색하면서 게으름을 예찬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시간을 보내는 다양한 방식과 해석에 대해서는 흥미로웠다. 다만 우리 게으름뱅이들은 자신의 게으름에 대한 정당성을 찾기 위해서 이 책을 읽으려해선 안될 것 이다. 본투비 앞에서는 아쉽게도 좀 결이 다른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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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심플하게 말한다
이동우 지음 / 다산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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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을 정해놓고 방영하는 티비 프로그램을 잘 보지 않는다. 정해진 시간을 매번 챙기기가 귀찮아서 그런데 요즘 '유퀴즈'라는 프로그램은 비교적 챙겨보는 편이다. 프로그램은 진행자인 유재석과 조세호가 길을 가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짧은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나누다 100만원의 상금이 걸린 퀴즈를 푸는 형식이다. 나라면 상금이 욕심 나 퀴즈를 풀고 싶어도 인터뷰에 응하고 싶지 않을 것 같은데 매 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흔쾌히 인터뷰를 하고 퀴즈를 푼다. 그리고 뜻밖에 진솔하고 인상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센스있는 답변으로 웃음을 주기도 한다. 수많은 카메라가 자신을 향해 있는 순간을 잘 이겨낸 사람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만약에 나라면 어떨까' 생각해보게 된다. 말을 잘 못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잘 할 수 있을까.

 

 '나는 심플하게 말한다'는 갑작스러운 방송 출연이라는 뜻밖의 상황까지는 아니더라도 생활 속에서 마주칠 수 있는 회의, 발표 같은 상황을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웬만한 상황에서 할말은 하는 편이라 '입만 열면 개구리가 튀어나'온다는 것이 좀 어색한 표현이라 생각했는데 말하기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공감할만한 표현일까 짐작해보았다. 지금 이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직장인들이라면 어린시절 웅변학원.. 스피치학원이란 표현이 더 나으려나.. 좀 다녔을만한 삼십대도 있지 않을까. 그 세대들이 자라 또 '말하기'가 필요하다니 '사는 기술'이 참 품이 많이 드는구나 싶었다. 더불어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뜻밖에 가장 필요한 기술이 글쓰기라고 나왔다니 말하고 듣고 쓰기라는 기본이 간단한 것 같아도 삶 전체를 아울러 중요한 조건임을 새삼 깨닫는다.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까 궁금했는데 첫 시작에 나온 조언이 '최대한 말하지 말 것'이어서 재밌었다. 말 잘하고 싶어서 책을 읽으려는데, 말하지 말라니. 그런데 문득 얼마 전 읽은 오프라 윈프리의 책이 떠올랐다. 썩 마음에 드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오프라의 인터뷰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그녀의 책 안에서 그녀는 대부분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상대방이 자신이 경험했던 일이나 생각을 전하면 오프라는 내용이 더 풍부히 이어지게 될만한 질문을 짧게 던지거나, '맞아요' 하고 수긍하고 '당신도 나와 같은 걸 느끼는 사람이라니 기쁘네요' 하는 공감을 표시한다. 줄곧 우리는 공감을 하고 있다는 표현을 많이 써서 그때 책을 읽을 때는 어색했는데, 이동우의 '나는 심플하게 말한다'를 읽으면서 오프라의 태도가 상당히 전략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조언들이 나왔지만 가장 찔렸던 것이 '자존심을 버리'고 '언제든 틀릴 수 있다고'(p.174-175)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나 자신이 강해진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터라 더욱 그랬다. 내 생각이 맞는 것 같고 남이 나와 다르면 '나랑 잘 안맞는다'거나 '뭘 잘 모르는 것' 같이 생각될 때가 많았다. 인간관계가 좁아지는 것 같고, 이러면 안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고 나중에 후회될 때가 있었다. 독특하게도 잘 말하는 것보다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지를 더 많이 의식하며 읽은 것 같다. 그저 먹은 나이를 두고 '우열의 계단'(p.187) 올라서려는 꼰대짓을 하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개인적으로 말하는 스킬이나 연습도 중요하지만 요즘에는 좋은 태도에 더 마음이 쓰인다. 책 초반에 나왔듯이 달변에 마음이 움직이는 일은 별로 없다. 오히려 말을 잘하면 흘려듣거나 내 나름의 생각으로 말을 재보곤 한다. 그런데 말을 잘하지 않더라도 핵심을 분명하게 말하고 솔직한 모습을 보인다면 오히려 더 호감이 느껴진다. '워킹메모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쇼핑을 예로 든 부분(p.42)을 읽으며 왜 아무것도 사지 못할 것이라 단언하는가 쇼핑을 잘 안해본 것일까 의심하기도 했다. 뭔가를 사기 위해 두시간동안 매장 여덟군데를 돌아다녔다면 사려고 했던 물건과 함께 계획에 없었던 물건도 추가로 구매하고도 남을텐데. 그러니 내가 말을 잘 못해서 마음이 염려스러웠던 사람들은 책 내용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말 잘하는 저자도 쇼핑은 잘 못한다는 사실을 두고 조금 위안을 삼길 바란다. 당신도 당신이 잘하는 분야의 뭔가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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