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마더
에이미 몰로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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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기에 괴로운 책이었다. 곳곳에 전쟁같은 육아 현실이 도사리고 있다. 애가 계속 울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거나, 유축 시기를 놓쳐서 블라우스를 버리는 일, 신경이 예민해지고 우울증이 오고, 남편과 소원해지고 갈등이 생긴다. 아이 발달이 너무 느리거나 빠르진 않나, 남들보다 못하고 있는 건 없는지, 육아서에 나온 대로 해야하는데 왜 안되는지 게다가 일자별로 오는 '오늘의 조언' 레터는 읽기에도 고역이다. 누가 저런 말투로 하는 조언을 기쁘고 고맙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출산 한달만에 완벽한 몸매 관리를 해서 나타난 유명인의 관리 비법 메뉴얼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저게 가능해? 혹은 저게 필요해? 아니면 저게 정상이야? 같은.

 

 엄마란 대체 무엇일까. 여성이 엄마가 된다는 것이 뭘까. 아이를 낳으면서 여성들이 겪을 수 있는 다양한 문제를 프랜시, 콜레트, 넬, 위니, 스칼렛, 혹은 토큰을 통해 보여준다. 세상이 그들을 엄마가 되도록 쉽게 놓아두지 않는다는 것도 보여준다. 아이를 낳고 한 두 달쯤 지난 뒤에 엄마가 아이를 가족이나 혹은 육아도우미에게 맡기고 하루 저녁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외출-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다. 요즘은 엄마에게도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긴 하지만 바로 그 시간에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생긴다면? '그때 애 엄마는 어디서 뭘 했대?'하고 엄마의 쉬는 시간이 비난 대상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울 것이다.

 

 지인이 말했다. "애가 우는 바람에 밥 먹다가 그냥 나왔어/지하철에서 그냥 내렸어" 도시 여성 스릴러'라는 건 바로 그런 점 아닐까. 아이가 없어졌다는 것 말고 도시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이 스릴러인 것이다. 부른 배를 안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출퇴근 하는 것,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리는 일, 출산휴가와 복직을 보장받는 것, 공공장소에서 울음을 터트리는 아기를 달래야 하는 일. 임신이 벼슬이냐는 시선과 맘충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 안에서 마땅히 사회구성원이 될 아기를 낳아 키워야하는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무섭고 두려운 일이다. 

 

 하물며 뉴욕같은 곳에도 진짜 '맘모임'이 있다고? 세상 어디든 사람 사는 건 다 똑같구나 싶었다. 게다가 일명 '조리원 동기'같이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 위주로 만난다고 하니 '5월맘' 같은 좀 더 그럴싸한 명칭일 뿐 세상 돌아가는 건 다 비슷한가 보다. 입고 있는 옷, 아이를 태운 유모차같은 것을 비교하는 마음도 그랬다. 비교된다는 압박감에 벗어나고 싶지만 필요한 정보를 얻고 임신, 출산, 육아라는 과정을 터놓고 나눌만한 곳은 비슷한 시기에 같은 경험을 한 맘들뿐이라는 점도 공감됐다. 메신저 프로필에 아이 사진을 올려놓고 **맘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를 키우려다보니 그렇게 되더라며 어색하게 웃던 지인이 떠올랐다.

 

 마이더스가 유괴된 사건도 끔찍하지만, 책 표지에 써있는 "아기를 낳았다고? 축하해! 이제 모든 게 네 잘못이 될 거야." 라는 문구가 더 끔찍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은 아이를 낳고 첫 외출이라며 커피숍에서 대신 아이를 안아서 달래 재워주는 나에게 '간만에 너무 편하고 좋은데 이런 생각을 하는게 애한테 미안'하다고 했었다. 힘들었을텐데 잠깐 쉬면서 그새 죄책감을 느낀 것이다. 빗낱이 조금 떨어지던 그 날 유모차를 끌고 나오면서 누가 '비오는데 애 데리고 저렇게 밖에 나오고 싶을까' 하고 생각하면 어쩌나 염려했는데 비가 그쳐서 다행이라고 웃기도 했다.

 

 '퍼펙트 마더'가 도시 여성 스릴러로 꼽힐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마음에 드는 내용은 아니었다. 읽기에 피곤한 내용이었고, **맘이나 모임같은 문화에 지쳐있는 까닭이었다.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아마 엄마로서의 압박보다는 유괴와 주변인물들의 비밀같은 요소에 더 중심을 잡아서 전개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쩌면 책도 그렇게 읽는게 더 맞았을지도 모른다. 책을 무겁게 읽은 탓에 다른 사람들이 이 책의 어떤 면에 매력을 느끼게 되는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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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
에느 리일 지음, 이승재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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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진'을 읽으면서 계속 떠올렸던 생각은 정신질환은 유전되는가'였다. 아버지에서 이어져 오는 어떤 '낌새'는 환경적인 측면에 의해서 키워지는 것인지 역시 당뇨같은 병력처럼 DNA같은 것에 붙어서 새겨져 내려오는 것인지 생각했다. 정신병력이 유전된다는 말은 얼마나 위험한가. 송진은 한 가족의 네 세대에 걸친 이야기다. 홀데트 섬에 외따로 사는 호더 가문의 옌스는 조용한 아이었다. 그의 아버지 실라스는 솜씨가 좋은 목수였고 약간의 저장강박도 있었다. 실라스와 옌스에게는 둘만의 비밀이 있었는데, 실라스가 관을 만들때면 그 안에 둘이 함께 들어가 누워 여러 얘기를 나누는 것이다. 딱히 나쁠 일 없는 어찌보면 부자간의 유대가 돈독해지는 시간으로 느껴지는 이야기지만 아버지의 깊은 내면을 더 파고들어간 듯한 옌스에게는 딱히 좋은 영향을 주는 시간이 아니었던 듯하다. 실라스가 개미가 들어간 호박을 간직했던 것처럼 옌스도 그만의 호박을 만들게 됐다.

 

 누군가를 잃어버린다는 경험은 어떤 영향을 끼칠까. 옌스가 점점 더 폐쇄적으로 변하게 된 것은 자신 주변 사람들을 전부 속수무책으로 떠나보냈다는 경험에서 비롯된다. 어떤 경우는 스스로의 선택이었지만, 딸 리우와 떨어지게 될 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이 엘세를 죽이게 만들었다. 옌스는 형제는 모웬스와 여러모로 다른 성향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는데 그럴 때마다 그의 운명이 불행하도록 정해져 있는 것 같아 불편했다. 옌스를 두고 '결국 미치게 될 거야' 라며 그런 운명으로 몰아가는 느낌이랄까. 책을 읽으면서 좋아하는 티비 시리즈에 나오는 인물이 떠올랐다.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FBI 수사관인데 그는 마음속 깊이 자신이 정신분열을 앓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에게 정신분열을 앓고 있는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그가 두려워했던 것처럼 이 불길한 '낌새'는 유전과 성장 환경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대를 이어 이어지는 것일까.  

 

 최근 미국 시카고대 연구진이 과학저널 '네이처 유전학'에 발표한 13만 가족과 그 구성원인 48만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질병간의 유전적 유사성이 환경적 상호관계보다 강하지만 신경정신 질환의 경우 비슷한 영향을 준다고 한다. 살아남은 아이, 리우를 떠올렸다. 테디베어를 소중히 끌어안은 소녀의 안에 분명 옌스의 그림자가 들어있다. 유년시절의 대부분을 홀데트 섬에서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은 채 어둠만을 달리다 자란 소녀, 리우에게 정상적인-평범한 삶이 가능할까? 의문을 품게 만든다. 그 부분은 꽤 교묘했다. 리우가 태어나 자라온 환경을 깊숙히 보여주면서도 가끔씩 그 애의 안에 뭔가 다른 것이 빛나고 있는 것처럼 여지를 주었다. 다른 아이들과 대화해본 적 없는 어린 소녀, 죽은 쌍둥이 남동생과 대화하며 자란 소녀는 한편으로 할머니의 팬케이크를 기쁘게 먹는 소녀이고, 의문을 갖고 생각하며 행동할 줄 아는 소녀였다. 리우도 어둠을 가졌을까, 그 애는 옌스가 모든 것을 담아 키워낸 또 다른 호더 중 하나가 아닐까. 리우를 어떻게 생각해야할지 계속해서 바뀐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부분이 다 불쌍한 영혼들이지만, 여기서 가장 나쁜 사람이 있다면 마리아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호더 가문의 가장 유일하고 가냘팠던 희망의 존재는 그녀였으리라. 그녀를 사랑하게 됐을때만 해도 옌스의 삶에도 희망이 보였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한다는 의무는 없지만, 옌스같은 사람을 사랑하기로 했다면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방식 말고 다른 길도 생각했어야 했다. 그저 어린 리우에게 몰래 편지를 좀 쓰는 것 같은 불확실하고 소극적인 방법말고.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어린 아이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마리아도 정도와 방향이 다른 병을 앓고 있었던 것일까 싶어진다. 침대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살이 쪘다는 것은, 거기에도 어떤 이유가 있을테니까. 혹은 옌스의 외모는 둘째치더라도 섬에 들어와 그와 사랑에 빠진 일도 그녀 안에 어떤 '낌새'가 있었을지 모른다는 짐작을 하게 한다.

 

 솔직히 말한다면 존속살인같은 심각한 문제들도 있지만, 옌스를 대표하는 가장 큰 특징인 '저장강박증'은 좀 흔한 문제다. '세상에 이런 일이'같은 프로그램에서도 종종 나오지않는가. 그 특유의 나레이션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간 집안엔 발 디딜 틈이 없다. 세상에 어르신, 지내시기는 괜찮으신 거예요?"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그리고 병적일 것 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특히나 노인층에) 정도만 다를 뿐 흔한 저장강박을 가졌다. 쇼핑백이나 포장종이를 버리지 않고 모아두는 것이나, 서랍안에 언젠가 쓸 일이 있을거라 기대하며 오래된 물건들을 넣어 두는 것처럼, 누구나 조금쯤은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호더 가문의 '낌새'로 저장강박을 묘사할 때마다 속으로 '덴마크에서는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프로그램이 없나봐' 생각했다. 아마 벌써부터 방송국에서 홀데트 섬으로 찾아갔을텐데 말이다.

 

 "어둡고 악마적인 동시에 사랑스럽고 생명력이 가득한, 뇌리에 깊이 박히는 아름다운 소설"이라는 평에 혹해서 사랑스러운, 아름다운 구석을 찾아봤는데 어휴, 너무 더러워서 찾을 수가 없었다. 로엘이 호기심과 또 묘령의 소년을 위해 호더 가문이 살고 있는 그 집에서 버틴 것이- 이층까지 올라갈 결심을 한 것이 대단할 정도로 더럽고 역겨운 환경이었다. 이런 비슷한 느낌으로 편해영 작가의 '사육장 쪽으로' 라는 책이 떠올랐다. '송진'이 흥미로웠다면 이 책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싶다. 방향성은 다르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좀 비슷한 것 같다. 로엘이 혹 아동성애자는 아닐까 의심하는 시간도 있었다. 예민함과 또 생각 이상의 호기심과 관용이 그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방향으로까지 전개되지 않아서 찝찝함을 좀 덜 수 있었다. '시간이 걸리는 일들'이 남아 있지만 때로 시간이 문제인 결말도 있다. 리우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계속해서 염려하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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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필요한 순간 - 삶의 의미를 되찾는 10가지 생각
스벤 브링크만 지음, 강경이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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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을 들여 책을 천천히 읽었다. 어느 부분에서는 음독도 불사하였는데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철학이 필요한 순간'이지만 어느 순간 '철학따윈 필요없어'하면서 도피해버리고 싶은 때도 있었다. 뭣보다 중간중간 내 생각이 끼어드는 때마다 좁은 생각으로 말도 안되는 시비나 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책은 책이지 경전이 아니야,라는 마음으로 꿋꿋하려고 애썼지만 잘 안됐다. 애초에 나는 목적을 위해 가치있는 것들을 도구화하는 셈에 익숙해있다. 책에서 말하는 10가지의 요건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만, 이를 통해 셈하는 것에 더 익숙하다. 그래선 안된다고 하지만 어떤 지점에서는 왜 안되야하는지 끝내 알 수 없을 때도 있었다. 불만스러우면서도 절망스러웠다.

 

 주로 반기를 들었던 부분 위주로 생각을 쓸 것이다. 시비걸기에 지나지 않겠지만, 시작하고 한동안 어려워서 정신을 못차리다 존엄에 대한 부분에서 불쑥 반발심이 일었다. 셰익스피어의 전집과 운동화(80)에 대한 비교였다. 나같은 사람은 가만히 있질 못하고 위대한 작가의 전집과 운동화가 같은 가치로 매겨지는 일이 비교조차 어처구니 없는 것으로 표현되어야 하는지 의문을 던진다. 운동화는 상품이기 때문에 그보다 못하다? 하지만 운동화-신발이 가지는 의미, 맨발로 거친 땅을 밟으며 살아야하는 이에게 있어 그 삶에 얼마나 중한 필요와 기쁨을 가져다주는지는, 그것도 존엄의 하나 아닌가 생각했다. 제 손으로 신 삼는 법을 몰라 오소리 영감의 종노릇을 해야 했던 원숭이가 원통해했던 것*(정휘찬 '원숭이꽃신')처럼. 어쨌거나 신발도 책만큼 중요하다.

 

 애초에 존엄에 대해 말하면서 침몰하는 타이타닉의 노부부(73)를 예로 들었을 때 나는 그들이 젊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그들이 헤라처럼 인간에게 내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257)로 그 순간을 삶의 완성으로 여겼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좀 더 젊었더라면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잡기 위해 애쓰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들은 존엄을 잃게 되는 것일까하고 의문을 갖게 된다. 오히려 갑판에서 음악을 연주한 연주자들이 보인 태도가 더 존엄에 가깝다고 여겨졌다. 그들은 자신의 품위만이 아니라 타인의 위안까지 도모했다. 그렇다고 해서 살기 위해 바다로 몸을 던지는 비명을 지르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덜 존엄한 반응을 보인 것이냐는 아니라고 본다. 자신을 삶을 구하고자 하는 절실하고 불굴한 자세도 삶과 인간이 의지에 대한 존엄을 보인다. 그 끝이 비명과 공포에 물들었다 하더라도.

 

 가치있는 10가지 주제에 대해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찜찜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는데, '진짜 사랑은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172)음을 이야기하며 오래된 흔들의자를 예로 들었을 때 그가 말하고자 하는게 현재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깨달았다. 우리는 비우는 삶을 강조하는 시대에 살고 있잖은가. 미니멀, 심플, 심지어 비움의 미학 같은 것들이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오래된 물건을 끌어안고 있지마라, 언젠가는 오지 않는다, 아까워하지마라' 같은 말들을 신조삼아 공간, 사람, 생각마저 비운다. 현재의 라이프 스타일에서는 '팔걸이가 계속 떨어지는 오래된 흔들의자'는 버려야 한다. 그리고 이케아로 달려가 가볍고 심플한 디자인의 철제의자를 하나 가져다 놓는다.

 

 이는 이상형의 조건에서 더 나은 사람이 나타났을때 얼마든지 새로운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나름 그럴듯한 변심의 변명이 되어준다. 사랑의 문제여서 더 비인간적으로 느껴지겠지만, 일자리에 대한 문자로 생각하면 합리적 선택에 더 가깝게 보일 것이다. 과거엔 평생직장이란 말이 있었지만 지금은 여러번의 이직이 당연하고 필수적이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좀 더 적성에 맞는 자리를 찾는 길이다. 이건 지켜져야할 것으로 믿는 약속같은게 아니다. 하물며 사랑, 특히나 아무리 검은 머리가 세다 못해 대머리가 된다해도 굳을거라 맹세하는 결혼이라도 함께하는 것보다 더 나은 혼자를 위한 선택도 현명하다 보는 것이 현재이다. 신경과학같은 것으로 본다면 사랑 역시 호르몬작용이고 중요한 가치이지만 영원해야 할 의무는 없어야 한다.  

 

 또한 도구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사람을 인적자원(87)으로 보면 안된다는 내용에서 저출생 문제도 같은 관점에서 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저출생이라 부르기 전 저출산이라는 명칭이 있었고, 이는 가임기여성의 출산율을 통계화하는 수치로도 계산되었다. 이는 여성과 출산을 인류의 원활한 생존 유지를 위한 도구로써 본 것 아닌가. 국가적 세계적으로 말이다. 이밖에도 개의 행동에 도덕적으로 분노할 수 없다(114)는 내용에서는 요즘 빈번히 보도되는 개물림사고를 떠올렸다. 개가 사람을 무는 사고가 생기면 개에게 목줄을 채우고 입마개를 하고 안락사를 시키라는 요구가 따라온다. 이와 같은 대처는 개에게 책임을 묻는 행위아닌가, 이보다는 개주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라면 개주인이 벌금을 내고 실형을 살아야함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개를 도구화한 생각 아래서는 개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에 개는 그대로 두고 개 때문에 사람만 처벌받는 일을 받아들이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다른 한 부분은 '오직 공격당하거나 피해를 입은 사람만이 용서할 자격을 갖습니다'(191)는 용서에 대한 내용이었다. 용서 부분을 읽으면서 줄곧 영화 '밀양'을 떠올렸다. 때로 사람들이 갖는 용서에 대한 시선이 어떠한지를. 영화에서 범죄자는 종교를 가졌고 그로인해 자신이 저지를 죄를 용서받았다고 한다. 그를 목적을 통한 용서를 하기 위해 찾아간 주인공은 범죄자의 말에 분노한다. 종교를 통해 받은 죄사함은 '오직 공격당하거나 피해를 입은 사람만이' 가진 '용서할 자격'을 빼앗은 것이다. 책은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함으로써 용서가 가능해진다는 어려운 내용을 강조하는데 이어서 '종교적 믿음은 쉽게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일'임을 말하며 종교도 비슷한 예시로 든다. 종교가 침범한 용서의 영역에 종교가 예로 들어가 있어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책은 입바른 소리만 늘어놓는 귀찮은 사람같다. 우리는 때로 그것을 양심이라고도 한다. '철학이 필요한 순간'은 순간이 아니라 시도때도 없다. 순박하고 전통적인 가치관을 시종일관 강조한다. 그 안에서 삶의 깊은 의미를 떠올리다가도 불현듯 부정하고 싶어지는 경험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 책이 어렵지만 큰 틀에서 보면 '어린왕자'에서 말하는 것을 심화하여 담아놓은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단순화했을지도 모르고, 오독했을지 모르지만 내가 느낀 것은 그랬다. 다른 무엇보다 다만 어떤 누군가는 이 책을 읽고 내가 왜 그렇게 느꼈는지 이해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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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2019-09-04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을 읽으면서 너무나도 공감도 가지 않고 이해도 가지 않는 부분이 많아
다른 분들은 대체 어떻게 읽으셨을까 궁금해서
리뷰들을 살펴보다가 너무 공감가는 리뷰라 좋아요 눌러봅니다.

점잖게 말씀하셔서 입바른 소리만 늘어놓는 귀찮은 사람이라고 표현하셨지만,
제가 보기엔 앞뒤 꽉 막힌 사람이 본인의 주장만 내내 늘어놓고 있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테일 2019-09-07 02:34   좋아요 0 | URL
공감하셨다니 반갑습니다.
읽으면서 저가 너무 꼬아보기만 한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현실감이 덜하달까요..
리뷰 마지막에 누군가가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썼는데, 그만큼 답을 남겨주셔서 감사하네요.
 
체리새우 : 비밀글입니다 - 제9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42
황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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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에 새로 생긴 도서관에 찾아갔다. 좀 멀고 위치가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찾아가보니 생각보다 금방 도착했고, 위치도 한적하니 좋았다. 낡고 오래된 동네를 지나서 긴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니 작은 축구장 옆으로 아직 새것 티를 벗지 않은 도서관이 나왔다. 출입문 옆으로 보이는 통창에 여유롭게 대충 앉아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사람들을 보니 책 한 권 읽지 않고 그냥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날 읽은 것이 '체리새우:비밀글입니다'였다.

 

 '체리새우:비밀글입니다'는 얼마 전에 서점 사이트에서 신간도서 소개로 몇번이나 제목을 본 적 있었다. 도서관 서가 신간 추천도서 코너에 새책으로 꼽혀있는 걸 보고 바로 집어들었다. 읽으려고 든 것은 아니고 전부터 궁금했던 '체리새우'가 대체 뭘까, 그것만 확인해보려고 들었는데 맙소사 그냥 다 읽어버렸다. 제목도 그렇고 주인공 인물 설정이 좀 유치하고 전형적이지 않나 싶었는데 이상하게 술술 읽히고 읽다보니 점점 재밌어서 다른책을 더 고르지 않고 그냥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다른애들이랑 생각이 조금 다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는 나. 나름의 가치관과 감성을 가지고 있는 나. 다른 친구의 잘못된 행동에 불편함을 느끼는 나. 와 같은 위치에 있는 주인공에 대한 묘사는 청소년 물에서 좀 흔한 설정이다. 이런 인물들이 주로 주인공이 된다는 건 대부분이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일반적 성향이기 때문이라는건데 꼭 특별함으로 묘사된단 점이 의문이다. 진짜 책 읽으면 별종으로 보는게 정말이란 말인가. 그래서 이렇게 묘사되는 주인공은 책 읽는 타입의 일반적 성향인가.

 

 시작부터 매력을 느낀 것은 아닌데, 인물간의 관계변화를 천천히 바라보는 과정이 매력적이어서 끝까지 다 읽게 되었다. 다현이보다 은유라는 인물이 조금씩 보여주는 성숙되고 열린 자세가 호감이었다. 친구 무리에 휩쓸리면서 자잘한 선물을 나눠주는 것으로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고 무려 심부름까지 해주는 다현이의 모습이 처음엔 별로였지만 한편으로는 다현이를 통해 십대 생활이라는 고단함을 다시 이해하게 됐다. 지금은 거의 잊었지만 십대때에는 친구 무리라는게 세상의 전부였었지.

 

 '체리새우'를 다 읽고는 청소년 특히 소녀들의 우정에 큰 매력을 느껴서 내친김에 그동안 보려고 생각만하고 미뤄뒀던 '우리들'이란 영화도 봐버렸다. 확실히 두 작품 사이에서 비슷한 느낌, 알 수 없는 미묘한 공감대와 애틋함을 느꼈다. '체리새우'도 괜찮지만 그보다 '우리들'이 좀 더 거칠고 투명한 세계와 감정을 보여주는데 내용도 내용이지만 배우들의 연기도 대단하기 때문에 아주 몰입하며 봤다. 책 '체리새우'도 추천, 영화 '우리들'도 강력추천한다. 궁금했던 두 작품을 한번에 보게 된 계기가 되어 도서관 방문이 뜻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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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방문자들 - 테마소설 페미니즘 다산책방 테마소설
장류진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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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 친구네 집에 놀러갔더니 친구는 없고 친구 누나가 자고 있었다. " 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글은 오히려 편안한 태도로 '그래 한 번 들어보자'할 수 있었다. 만성적 낚시글로 이미 면역력이 생기고도 남았음이다. 오히려 저정도의 이야기는 모르는 척 하지 않고 대놓고 웃으며 들을 정도의 가벼운 이야기아닌가. 그런데 '새벽의 방문자들'에서 읽은 내용들은 '수위가 괜찮은가'싶은 걱정이 들었다. 단순히 "옆집 문을 열었는데 옆집 총각이 자고 있었다" 뭐 이런 내용이 있어서가 아니다. 걱정되는 수위는 사회에 용인되는 정도의 허락된 페미니즘을 말하고 있는가였다. 자고로 페미니즘 발언이란 듣는 사람이 불편하지 않으실 수위에서 농담을 섞어가며 은근히 해야하는거 아닌가. 아니면 *페미, *충, 메** 되는거 아닌가. 저런 딱지 하나쯤 이 책 읽은 나한테도 가져다 붙이는 거 아닌가. 포스트잇처럼.

 

 솔직히 몇몇 글들은 저절로 나오는 욕같은 추임새를, 추임새같은 욕을 삼키며 읽었다. 나도 나이먹은 사람이라 그런지 드라마보며 몰입해서 욕하는 것처럼 문장으로 그려진 여자들을 향해 꼰대같은 조언을 해주고 싶어서 달싹였다. 진짜 가짜 구분을 못해서 그런걸까, 과몰입을 해서 그런걸까. " 이거 다 소설이야 " 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소설인 척 하는 진짜여서 그런걸까. 절대 인정하지 못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알 사람은 안다. 이건 진짜라고. 저 유명한 재연 프로그램인 '사랑과 전쟁'에서 '이거 다 방송국 놈들이 시청률 올리려고 일부러 자극적으로 쓰는거야'라는 순진한 의심론자들을 향해 '실제 사연은 더한데 방송용으로 순화해서 내보낸거에요' 했더랬지. 이 방문자들이 '이거 순한맛이에요' 하고 말한대도 오버는 아닐 것이다. 여전히 ㅍ자만 봐도 질색하면서 피해의식이란 말과 피곤하다는 말을 애용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믿지 않겠지만. 

 

 전부터 궁금했었던 영화를 이용하고 있는 플랫폼에서 서비스해주는 걸 발견하고 드디어 본 것이 며칠 전이다. 덕분에 '새벽의 방문자들'은 조금 묵혔다 읽게 됐지만 어쩐지 영화를 보고 책을 읽은 것이 더 괜찮은 흐름같이 느껴졌다. 영화는 가출청소년들의 생활을 단편적으로 그리고 비교적 순화하여 사실대로 보여준다. 이 얼마나 이상한 문장인가. 그런데 그렇다. 현실은 뭐 영화로 보여줄 수 있는 것보다 어떤 방면에서든 더할 것이고, 영화는 극히 일부의 모습만을 담아 최대한 사실적으로 보여주려고 애썼다. 그런데도 화면을 통해 보이는 주인공 소녀의 흔들리는 눈동자에 시선을 맞추려는 시도는 고역이다. 영화 줄거리는 간단하다. 절반은 담배를 피고 욕을 하는 장면이고 나머지는 침뱉고 맞고 때리고 술마시고 성행위를 하는 장면으로 채워져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다음의 반응이 '새벽의 방문자들'을 읽고 난 반응과 비슷할거라 생각했다. '진짜 저래?'

 

 대부분은 재밌게 읽었다. 아마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ㅍ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라면 책 읽고 난 다음 친구를 만나 자기 인생에서 발견한 좀 '모잘랐던' 누군가를 떠올리며 썰을 풀고 한참을 웃거나 질색팔색 소름 돋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현관 모니터에 박제될만한 얼굴을 가진 사람들도 떠올릴지 모른다. 읽으면서 공감도 되고 재밌었는데, 다만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말이 괜찮은건지 생각이 들었다. 이젠 여류작가란 말도 안쓰는데. 너무나 이르지만 앞으로는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 방문자들이 새벽, 아침, 낮, 밤, 오후 언제든 또 찾아온다면 좋겠다. 아직도 남아있다던 그 이야기를 마저 해준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갖겠지. 앞으로 교보문고와 출판사에서 책에 참여한 작가들과 순차적으로 북토크를 갖는다고 하니 책을 재밌게 읽은 사람들이라면 이것도 신청해서 가볼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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