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지도 - 우리의 습관과 의지를 결정하는 마음의 법칙
이인식 지음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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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심리테스트를 좋아하는가? 회의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자신이 어떤 성향인지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일 것이다. 근본도 알 수 없는 간단한 심리테스트들이 인터넷에도 상당히 많고, 심리테스트가 아니더라도 혈액형, 별자리, 띠, MBTI 테스트 같은 것들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혹은 타인이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한 도구로 쓰인다. 나열되어 있는 것들을 부정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살면서 한 번 이상은 지나치기 어려운 판단/증명 도구로 쓰였을 것이다. 사람의 성향을 단 4개의 혈액형으로 구분할 수 있냐는 불신론자의 입장도 이해가지만,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무엇이라도 붙잡아보고 싶었던 사람들의 심리도 이해가 된다. '마음의 지도'에도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수많은 노력들이 담겨있다.

 

 성향의 문제만은 아니지만, '마음의 지도' 안에는 다양한 행동 양식에 대한 심리적 요인을 분석한 내용이 들어있다. "마음"의 문제이지만 곳곳에서 뇌 연구 실험을 만날 수 있는데 문득 뇌와 마음은 같은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책에서 전두엽과 편도체의 기능에 대한 연구가 특히 많이 나오는데, 이기적 본능을 억제하는데 전두엽 자극이 도움을 준다(139)던가, 위협이나 공포 상황을 판단하는데 역할을 하는 편도체(35, 103) 등의 내용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해서 판단했다고 여기는 행동이나, 본능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했다고 느끼는 행동도 사실은 뇌를 거쳐서 나온다면 그 둘은 같은 것 아닐까. 그렇다면 '머리로는 아는데 가슴이 시킨다'는 유행가 가사들은 다 틀렸을지도 모른다. 가슴이 시킨줄 알았던 사랑도 머리가 시킨 것일테니.

 

 이 외에도, 재미있는 사회실험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는데 두사람이 100만원을 나눠갖는 최종제안게임이나 철도에 묶인 사람들의 목숨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에 대한 트롤리문제 같은 것들은 가볍게 접해본 적 있는 흥미로운 문제들일 것이다. 더 말초적 관심을 끄는 문제로는 키스할때 고개를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돌리는 이유, 섹스 후에 여자가 남자와 끌어안고 있고 싶어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나온다. 우리가 흔히 보는 키스신에서 배우들이 고개를 돌릴때 혹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봐서 어느 쪽으로 꺾어? 왔는지 떠올려보며 읽으면 흥미로울 것이다. 다만 섹스 후의 반응에 대해서는 옥시토신의 문제보다는 루이스ck의 스탠딩 코미디에서 본 내용이 더 공감가는 편이었다.

 

 개인적으로 관심있게 본 부분은 가난한 여자일수록 더 일찍 아이를 낳는다(214)는 내용이 담긴 부분이었는데, 기대수명이 더 적기 때문이라는 근거를 들었다. 하지만 요즘같은 때에는 자신의 삶이 여유롭지 못할수록 출산 뿐 아니라 결혼, 연애까지 삶의 선택에서 제외하는 일이 많이 생긴다. 소득이 높고 생활에 여유가 있을수록 특히 출산과 육아에 관대하게 가족계획을 하는 사람을 많이 본다. 전에 본 영화 '가버나움'에서처럼 가난한 집에서 피임없이, 아이를 노동력으로 쓰기 위해 많이 낳는 일이 분명 있지만, 우리사회에서만큼은 반드시 일치하는 결과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밖에 종교인의 도덕성(333)에 관한 내용도 최근에 방영한 '그것이 알고싶다'의 프랑스 교회에 대한 보도와 함께 관심있게 읽었다. 비종교인으로서 십일조에 대한 의미와 종교인 비과세에 관한 문제, 왜 종교인은 직접 노동하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을 함께 떠올렸다. 십일조를 세전 급여에서 계산해야 하거나, 군인들의 월급도 대상이 되는 것 등을 명시해놓은 가이드라인을 가끔 마주하면 물질에 특히 엄격한 집착을 하는 것 아닌가 싶은 판단이 드는 것이다. 더불어 신자들은 종교를 믿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생업에도 충실한데 종교인들은 왜 병행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단순한 의문도 들었다. 선교를 떠나는 등의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서라도 종교에 헌신한다면 자신의 생활비를 직접 해결할 고난의 각오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마음의 지도는 여러면에서 흥미로운 책이다. 우리 일상에서 마주친 적 있는 사회실험들도 책 곳곳에서 만날 수 있고, 평소에 지나쳤던 일도 뜻밖의 근거를 달고 나타난다. 거기에 이런 일들도 연구하고 실험을 했다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주제도 다양하다. 대부분 전문적인 내용도 약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읽을때 분량이 만만치 않은데 큰 줄기를 따라 5부, 그 안에서 17장으로 분류되어 있고 그 안에서도 평균 6-7개 정도의 소주제로 나뉜다. 전문적인 용어들이 포함되어 있더라도 주제에 대해 흥미를 느낄만큼만 익숙한 예시들로 짧게 정리되어 있어서 내용이 어렵지는 않다. '우리의 습관과 의지를 결정하는 마음의 법칙'에 대해서라기 보다는 사람의 마음에 대한 전체적인 정리같았다. 이런 책을 마주하면 진입장벽에 대해 늘 생각해보는데, 첫인상으로 상대방을 파악하면 안된다는 교훈처럼 다소 딱딱해보이는 외관을 극복하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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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
하유지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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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요즘 읽은 책 중에서 괜찮은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서른셋‘을 권할 것이다. 읽어보시라, 공감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알고보면 외롭고 좋은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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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감력 수업 - 신경 쓰지 않고 나답게 사는 법
우에니시 아키라 지음, 정세영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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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둔감력이란 무엇일까. 일본 사람들은 **력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듯 하다. 둔감력이라는 말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들었다. 둔감함에도 근육처럼 단련해서 키울 수 있는 힘과 지수가 있으려나? 무엇보다 둔감력이란 것이 어떤 의미와 필요가 있을까 생소했다. 가장 최근에 들었던 못마땅한 말은 여자력이란 말이었다. 여성스러움이라고 해얄지 하는 표현인데, 여기서 평가되는 여성스러움의 항목이 남자들이 좋아할만한 요소를 얼마나 갖추었나로 반영되는 개념인 것 같았다. 사람 구색 맞춰서 살기도 힘든 세상에 굳이 여자력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여자력 지수를 평가하다니. 둔감력이란 말도 사실은 나 자신을 몰아세우는 평가항목이 되는 것은 아닐까 조금 의심하며 읽었다. 둔감력을 신경써야 하는 성향의 사람이라면 둔감함을 의식하기 위해 더 신경이 예민해지는 역효과를 맞는것을 아닐까, 하고.

 

 저자는 줄곧 둔감하다는 말은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되지만 이 책에서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내세우며 강조한다. " 보통 '둔감하다'는 말에는 좋은 의미가 별로 없습니다. p.23 " 로 시작해서 " 이렇듯 둔감하다는 말에는 긍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p.24 " 로 마무리되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둔감하다거나 예민하다는 말을 어느 한쪽의 의미로 사용한다기보단 자신의 성향을 표현하는데 보통으로 쓰는 말이라 굳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계속해서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보통 우리가 '난 좀 둔감한 편이라' 라고 말하거나 '난 예민한 부분이 있어' 라고 할 때는 그것들이 흠이라고 생각해서 밝힌다기 보다는 난 좀 그런 편/성향이야 라고 표현하는 정도이다. '둔감에 나쁜 의미가 있지만 그것은 이렇게 좋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고 말하고 싶은 저자로 인해 둔감함이 부정적 의미를 공연히 받아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는 표현이나 시선이 좀 불만스럽게 다가왔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고나니 이런 의심과 부정적인 생각은 자신이 둔감한 편이기 때문에 나오는 반발 반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둔감함이 왜 부정적으로 해석됐어야 하지? 앞으로 다가올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여러 불안요소들을 깊게 생각하는 일이 왜 불필요한 것처럼 표현되지? 하고 의문을 가질뿐 공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애초에 이 책은 나같은 둔감성향의 사람들이 아니라 예민해서 자신의 예민함으로부터 오는 괴로움을 상담받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 나온 듯 하다. 둔감한 상대방 때문에 속이 타봤을 사람이나, 앞일을 걱정하고 변수를 고민하다 기회를 놓쳐버린 적 있는 예민함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공감할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책을 읽었는데, 카운슬러 활동을 한 저자의 이력을 떠올리며 이해해보려 생각하니 분명 이런 문제들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 만났고, 그런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을 담은 책을 쓴 것이구나 싶어졌다. 예전에 결혼을 준비하는 친구가 살이 많이 빠졌길래 체중조절을 했나 싶었는데, 결혼을 준비하는 동안 고민되는 문제들을 결정하기 전에는 밤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신경이 쓰여서 살이 저절로 빠졌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자신도 너무 힘들어서 안그러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했었다. 친구에게 위로와 걱정을 해주었지만 성향상 자고 일어나서 생각해보면 되는 일을 왜 밤새 걱정했을까 잘 이해가 안됐었다. 218에서 221쪽의 내용이 그때 그 친구의 상황과 매우 흡사했는데 아마 그에게 필요한 위로와 조언이 이 책에 담겨있나보다.  

 

 나에게 덜 집중하고, 타인에게 덜 둔감하기 위해서 신경써야 한다고 생각하며 지내는 편이라 책에서 조언하는 내용이 잘 맞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보다 남을 이해하는데에 더 도움이 된 내용이었다. 앞으로 고민하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좀 더 이해하고, 공감이 담긴 위로와 조언을 건넬 수 있을 것 같다. 읽으면서 '센서티브'라는 책이 떠올랐는데, 그 책을 인상깊게 읽은 사람이라면 '둔감력 수업'을 읽으며 의미를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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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
하유지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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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출은 휘파람만 분다. "아파트 슈퍼 앞에 횡단보도 있죠? 거길 건너는데 기분이 좀 이상한 거예요. 옆을 봤죠. 비둘기가요, 저랑 같이 뒤뚱뒤뚱 걸어가다가 눈이 딱 마주친 거예요. 아니 무슨 비둘기가 횡단보도로 이족 보행을 해요. 완전 귀여웠던 거죠. 그런데요, 어쩐지 좀 슬프기도 했어요. 마음 한구석이 그랬어요. 할아버지, 신이 있다면요, 신도 우리를 볼 때마다 그런 마음 아닐까요?" -p.293 " 

 

 언제부터인가 나이먹는 일이 시시했다. 때때로 내 나이가 몇이더라 기억이 가물할 적도 있다. 서른 어쩌고 하는 의미부여가 서른이 되기 전에는 크게 다가왔는데, 서른이 되고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차라리 아이들에겐 스물이 가장 강렬하겠다. 적어도 스물이 되면 안됐던 것들을 할 수 있으니까. 운전하기 술마시기 담배피기 클럽가기 같은 것들을 해도 된다. 해도 될 때 하면 막상 재미도 없지만 스물이 되면 변하는 것들이 있었다. 그런데 서른은 없다. 김광석의 노래 말고는 주어지는 게 하나도 없는데 서른이 뭐가 대단한 것이라고 서른, 서른하나 싶었다. 이런 느낌이라면 마흔이고 쉰이고 환갑이 되어도 그러려니 하고 살 것 같았다. "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도 그래서 기대가 없었다.

 

 서른이 뭘 어쨌다고. ''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이란 말을 어르신들이 들으면 웃겠네.'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고작 서른 어쩌고로 나이타령하는 뻔한 내용이겠거니 악독한 마음을 품고 대충 책을 들었다. 학교 안다니겠다는 남다른 성격의 미지가 나올 때도 '따돌림 당하던 친구를 도와주지 못한 상처가 있겠지' 넘겨짚고, 영오를 보면서 '일하는데 전화하고 참견하는 꼬맹이랑 진짜로 대화가 하고 싶을까' 의심했다. 이처럼 내 마음이 악독했는데, 자꾸 읽으면서 마음이 가고, 마음이 가니까 감동을 받았다. 끝내는 우리가 이렇게 서로 얽혀있어서 다행이야, 하고 안심하며 책을 덮었다.

 

 호석이 죽고 난 뒤에 남긴 수첩으로 시작된 이 로드무비는 영오, 강주, 보라, 덕배 네 사람이 무덤 여행을 떠나며 절정을 이룬다. 거기에 미지가 두출을 찾아 범수와 강화도로 향하면서 화룡점정을 찍는다. 로드무비라고 했더니 진짜 차를 타고 길을 떠나는 진정한 로드무비를 구현해냈달까? 꽁하니 마음만 차가워져서 때로 사람 사이의 관계를 우습게 여겼었는데, 줄여서 '서른셋'을 읽으며 언제 어디서고 겹겹이 쌓이는 인물간의 관계성을 지켜보고 있자니 냉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렸다. 거기에 나도 알고싶은 김밥의 비밀은 미지가 챙기고, 보라이모는 네일보다 먹방 찍으면 대성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개인방송 크리에이터로 성공하길.

 

 소설을 많이 읽지도 않으면서 요즘 나오는 책들은 구정물 튄 자국만 남은 청춘에 몰입해서 싫어'라든가, 내면과 일상 범주에 갇혀있어서 별로'라는 생각만 갖고 있던 것 같다. 그런 것들 안에서도 이렇게 '좋다'는 감동을 느낄 수 있을만한 책을 만나게 된다. 영오가 수첩안에서 만난 사람 모두가 착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니, 너무나 동화같은 이야기지만 그래서 좋았다. 사는게 그렇지 못하다면 꿈이라도 꿀 수 있으니까. 언젠가부터 너무 어둡고 절망적이기만 한 이야기는 가슴이 답답해서 보기 어려워졌다. 그런 일들은 현실에 가득 쌓여있는데, 가끔은 뉴스조차도 보기 싫어진다. 그러니 부정적 소식에 지친 분들이여, 문학에서 오아시스를 찾으시라.

 

 간만에 좋은 느낌을 남기는 이야기를 만났더니 가슴 안에 쌓여있던 감정의 찌꺼기들을 털어내고 환기시킨 기분이 들었다. 목공소 앞 목련나무가 꽃을 피우듯이, 이 봄도 맞을만 하겠다. 내 마음도 따뜻해져서 봄을 맞을 준비가 된 것 같다. 누군가 요즘 읽은 책 중에서 괜찮은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서른셋'을 권할 것이다. 읽어보시라, 공감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알고보면 외롭고 좋은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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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 한국 현대미술
정하윤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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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운 책이 아니니 안심하고 읽으세요. 라고 띠지를 둘러 알리고 싶다. 현대미술이라는 말은 이상하게 그 자체로 사람을 뒷걸음치게 만드는 느낌이다. 나만 그런가. 미술작품은 시와 같아서 어떤 것들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압도되어 감탄이 나오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벽 앞에 놓여진 것같은 기분을 들게 하는 때가 많았다. 그런 경험들 앞에서 이 책 안에서 만나게 될 내용도 나같은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염려스러운 면이 있었는데, 강렬하고 세련된 외양안에 대하기 편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라 쉽게 읽었다. 조금 관심이 있을 뿐인데 미술에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모르겠는 사람들에게 아주 유용할 책이다. 알려는 주는데 독자를 향해 아는 척은 하지 않는 톤앤매너도 매력적이다.

 

 처음 대하기 어려웠던 마음이 사라지니 이 책의 판형이 우리가 머리속으로 책을 떠올렸을때 연상될 법한 표준의 형태를 띄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눈을 끈다. 이 한권의 책 안에 미술가 30인의 삶과 작품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지어 두께까지도 평범하다니. 30명이라니, 말이 30명이지 300쪽도 되지 않는 책안에 주목할만한 작품까지 실어서 그들을 소개하는 일이 가능할까. 이미 책을 떠올리는 머리속은 도떼기 시장처럼 번잡하다. 복잡한 마음과는 달리 커튼콜 뒤에서 호명되는 개성넘치는 예술가들은 저마다 순서를 기다리며 간결하다. 이들을 한권에 담아내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 선별하고 정리하려 애썼다는 티가 난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까지 이런 책을 기다려왔는지 모른다. 깊게 들어가기엔 너무 깊고, 살짝만 파기엔 뭐가 뭔지 감도 안오는 미술사와 미술가에 대한 명료한 정리.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책 안에 기본적이지만 이 정도의 내용이 담겨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압축되어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름이라도 들어보고,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는 인물과 만날 경우엔 이 책에서의 만남이 큰 매력이 없다는 것이다. 마치 버스 운전 기사님들이 맞은편에 오는 같은 회사 차량에 짧은 손인사만을 표하고 지나가는 것처럼 순간의 만남이다.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은 작가를 만나게 된다면 안타깝게도 다른책으로의 환승이 필수다.

 

 아마 대학 교양 강의를 듣기 전에 미리 읽어간다면 좋을듯한 느낌이다. 합격 발표를 듣고 나서 할일이 없다면 이 책을 사서 한번 읽어보길. 중고교 미술교과서에서 주관식 문제 정답 정도로 출제 될만큼 아주 유명한 미술가가 아닌 경우에는 여기서 재회한 낯익은 인물들은 다 대학 강의에서 처음 그 이름을 들어보게 되었다. 이들의 이름과 함께 실린 대표작 정도만 눈에 익히고 들어가도 '니들은 대체 000도 모르고 뭐하다 대학 들어왔냐'는 핀잔은 안듣게 될 것 같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다만 단점은 합격 발표 들을 때 쯤 너무 할 것도 놀 것도 많아서 할일 없어서 이 책을 사 읽는 젊은이가 없을 것이라는 것일까.

 

 30명이나 되는 미술가에 대해 훑어보려니 컨베이어 돌리는 것처럼 다소 피로감이 느껴지는 면이 있지만, 초심자를 위해 나온 접근하기 좋은 배리어 프리 한국 현대 미술사 책이니 감사하고 읽을만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컨베이어는 너무하니 회전초밥집의 레일 보듯이 다음 작가를 기대하며 기다리는 눈으로 읽도록 하자. 신기하게도 더 오래된 시대의 인물들은 한명이라도 아는 사람이 나오는데, 80년대 이후로 들어서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졌다. 때때로 미술관을 찾아간다 했는데도 참 무심했다 싶어 '자괴감이 들고 괴로워' "커튼콜 한국 현대미술"을 만나 이제라도 눈도장을 찍어 좋은 시간이었다 생각했다.

 

 추천하는 대상으로 예술 문외한의 대학생을 꼽았지만 굳이 대학생이 아니더라도, 젊은이가 아니더라도 우리 삶이 조금 더 다채로우려면 좋아하는 작가와 미술가 정도는 있어야겠다. 없는 것보다 본새나고 좋지 않은가. 백남준 작가도 싱거운 인생을 "짭짤하고 재미있게 만들려고(p.194)" 예술을 했단다. 개인적 추천으로는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 나혜석을 좋아하면 조금 더 간단해질 일이다. 나혜석 한 사람만 관심을 두면 좋아하는 작가도 미술가도 한번에 생긴다. 아니면 작가로서 우리가 잘 아는 이상의 친구 구본웅을 좋아해도 괜찮을 일. 한시라도 젊을때 미리미리 교양서로 읽어둡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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