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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K
돈 드릴로 지음, 황가한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3월
평점 :
이전에 돈 드릴로의 책을 만나본 적은 없지만, 유해졌다는 평에도 불구하고 꽤 강렬한 힘이 있는 작가라는 인상이 남았다. 사실 '제로K'를 읽는 내내 잡히지 않는 이미지들 사이를 헤매는 기분이 들었는데, '제로K'가 보여주는 미래적이고 전위적인 이미지들 사이로 일상적이고 내면적인 현실의 단편이 섞여들어가 마지막에서야 하나의 단단하고 분명한 소실점을 이루는 형상이었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에 집중해서 한참을 정신없이 파고 들어가다 마지막에서야 이미 지나온 궤적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고, 뒤돌아봤을때에야 비로소 마음이 단단해지는 묘한 경험이었다.
이야기는 어느 날 제프리가 아버지 로스의 부름으로 '컨버전스 프로젝트' 센터를 찾아가며 시작된다. 그곳에서 신체 냉동 보존을 앞둔 로스와 그의 새 아내 아티스의 마지막을 함께하기 위해서다. 고고학자인 아티스는 불치병에 걸려있는데 죽음을 앞두고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미래까지 몸을 냉동 보존하는 실험에 참여하기로 결정한다. 수수께끼의 장소에서 삶의 쉼표를 선택하는 가까운 사람들의 결정을 마주한 제프리는 혼란과 상처로 뒤덮여 고민한다. 이런 선택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과학적 궁금증과 선택을 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윤리적 물음, 왜 이런 선택을 하려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당황과 분노, 조소와 체념으로 섞여 표출된다.
제프리는 낯선 사람을 볼 때마다 집착적으로 상대방을 살펴보며 출신지를 가늠해보고 그 사람에게 어울릴 이름을 짓는다. 처음엔 다인종을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미국인의 습관인가 했지만 타인의 근간, 뿌리를 찾는 집착적 버릇은 제프리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어졌다. 로스는 자신에게만 충실했던 과거, 아내-매들린-와 아들을 버리다시피 살았다. 아버지와 함께했던 시간을 언젠가 서가에서 책의 제목을 읊어주던 순간마저 기억하는 제프리와는 다르게, 로스는 아들이 함께했던 것조차 잊은 채 혼자만의 시간으로 갖고 있다. 두사람 사이의 거리가 그만큼 벌어진다. 아버지의 부재가 제프리를 뿌리없이 흔들리며 살아가게 만드는데 한 역할을 했음이 분명해보인다.
이 때문일까 제프리와 연인 에마의 관계에서도 확고한 위치를 갖지 못한다. 에마와 전남편 사이에 아이라는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적당한 거리 두기를 멈추지 않는다. 결국 제프리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잃는다. 어머니는 죽음으로, 아버지와 새어머니는 자발적 냉동 보존으로, 연인은 제대로 붙잡아 보지도 않고 끝맺음의 말도 없이 이별한다. 그리고 때로 연인이 살던 거리를 산책하며 "그녀의 거리에서 내가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안 했던 가능성을(p.273)" 떠올릴 뿐이다. 이런 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제프리가 의미없는 삶을 중지시키고 그 너머의 확신을 갖고 시도하려는 로스를 설득할 수 있을리가 없다.
아버지가 없는 시간 속에서 혼자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야 했던 제프리 앞에 다시 나타난 로스는 거의 다른 사람과 같다. 가족을 버리고 훌쩍 떠났던 그가 아티스를 만나 이제 그녀가 없는 세상을 견딜 수 없어 냉동보존기술에 집중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자신의 삶도 그녀의 시간과 함께 봉인하길 결정한다. 그리고 그런 자신들의 마지막을 제프리에게 맡긴다. 이 와중에 다시 남겨지는 제프리의 마음은 어떠할까. 아티스를 따라가려는 아버지를 말려보려 하지만 이 시간에 로스를 붙잡아 둘 수 있는 의미있는 것은 없어보인다. 자신이 아닌, 자신이 남겨둘 것들 중에서 바라는 것을 골라 가지라는 로스의 권유에 제프리는 아무것도 고를 수 없어진다. 제프리가 고르고 싶었던 것은 아버지뿐이리라.
제프리가 겪는 상실과 절망에 공감가는 한 편, 냉동된 사람들이 다시 깨어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과거의 냉동인간들은 기술 부족을 이유로 소생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이 있었다. 먼 미래에 기술이 발전했을때 보면 지금의 기술로 냉동된 사람들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얻게 되는 게 아닐까? 냉동된 사람들은 무의식의 상태로 정신까지 함께 냉동될까? 꿈꾸는 것과 같은 의식이 있다면 자신의 의식 안에서 존재할 수 있을까? 몸안에 갇힌 식물인간과 다른 점이 있을까? 의식이 있다면 깨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 어떻게 할까. 문득 냉동된 몸 안에서 살아가는 일이 끔찍하게 느껴진다. 실제로 냉동되어 있는 사람들이 아무 의식없이 평온하기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에 '완벽한 은둔자'라는 단편이 있다. 뇌만 용액에 담겨진 채 생명을 유지하는 귀스타브 루블레 박사라는 인물이 나온다. 육체적 활동을 버리고 정신만 남은 그는 하염없이 생각만 계속하는데, 그의 뇌는 오랜시간 동안 보존되고, 끝이 기약되지 않은 영원한 사고의 세계에서 그도 그의 뇌의 존재도 잊혀진다. 냉동된 사람들의 여정도 이와 다를 바 없지 않을까. 깨어나더라도 자신 외에 남은 것이 하나도 없는 낯선 세계에서 발굴된 과거인일 뿐이고 -이는 아티스의 직업인 고고학자를 연상시킨다-, 깨어나지 못한다면 먼지쌓인 채 보관된 루블레 박사의 뇌와 다름 없다. 혹 냉동인간이라는 실험에 도전했다는 것으로 역사적인 가치를 얻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삶의 과정에서 본다면, 과연 어떨까.
다만 누구보다 죽음을 중지하고 싶은 사람들이 가장 삶을 사랑해서 집착적으로 좇는 사람일수도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먼 후에 깨어나더라도 지금 자신이 사랑했던 삶의 시간들은 이미 지나가고 난 후일텐데. '제로K'를 읽으며 누구나 죽음이 달갑지 않겠지만 삶에서 죽음이 왜 필수적인 것인지 그 의미를 생각해보게 된다. 읽기 편하지는 않지만, 인상적인 주제와 이미지가 매력적인 책이다.
"아버지의 회사 경력이 가진 광범위한 힘이 있다. 컨버전스라는 최후의 땅이 있다. 나는 이에 대한 반발 혹은 보복인 삶 속에 숨어 있지 않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리고 또다시 나는 영원히 로스와 아티스의 그림자 속에 서 있고 나를 괴롭히는 것은 그들의 감명적인 삶이 아니라 그들이 죽은 방식이다. (p.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