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함께 듣던 밤 - 너의 이야기에 기대어 잠들다
허윤희 지음 / 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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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는 넘치는 감정이 고통스러웠던 때가 있었다. 사소한 생채기에도 장미 가시에 찔려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괴로워하고, 얼어붙을 것만 같은 겨울밤 옥상에 올라 먼 곳에 켜진 조명등의 점멸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던 시간이 있었다. 그때는 모든 것이 안타까워서 여름의 더위도 뭉게구름이 피어나는 것만 못했고, 어느 날 달이 짙게 뜨면 달이 떴다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보곤 했다. 내 방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체 책을 펴놓고 아무것도 아닐 감정에 휩싸여 행복했다가 멍하니 울었다. 벌써 이십여년 전이다. 지금은 편하고 좋다. 어느 샌가 생각이 줄고 하루가 너무 짧아 감정안에 잠겨있을 시간도 없어졌다. 많은 것을 잃고 잊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사무쳤던 일이 가무룩하니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가 함께 듣던 밤'은 그랬던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책이다. 차마 보내지 못할 밤에 쓴 편지를 서슴없이 보내게 되는 곳이 라디오라는 매체인것 같다. 학생 때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는 항상 라디오가 흘러나왔다. 열두시쯤 되어 가는 시간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하고 사연들은 무엇하나 가볍거나 무례한 것이 없었다. 섬세하고 깊었다. 어떤 날은 내리기 아쉬울만큼 빠져 듣고 어떤 날은 흘려 들으며 창 밖을 바라봤다. 그런데도 그 즈음의 시간을 떠올리면 그때 들었던 디제이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히 떠오를만큼 깊게 남아있다. 늦은 시간의 라디오는 그만의 매력이 있었다.  

 

 집에 내려가려다 차표를 잘 못 사는 바람에 취소 수수료도 물고 집에 못가고 그저 접시에 코 박고 있다(p.25)"는 사연은 얼마 전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짧게 일본을 다녀오는 길에 공항 버스 대기 줄을 잘못 서서 눈 앞에서 버스를 놓친 일이 있다. 내 표를 몇번이나 검수했던 안내 기사분도 나를 제대로 된 줄로 보내주지 않았기에 접수처로 가서 다음 시간으로 표를 바꿔달라 요청해야 했다. 다행이 다음 차 표를 얻었지만 비는 시간동안 허망히 앉아 내 탓인가 자책했던 시간이었다. 내 경우엔 단 한시간 정도의 손해였지만, 엄마를 보러 가려했던 사연자의 심정은 얼마나 실망스러웠을까. 생각지도 못한 실수와 실망이 점철된 순간들이 공감되면서 사람 사는 일 다 똑같구나 싶었다.

 

 또 하나 공감되는 것은 '혼자'에 대한 부분이었다. (p.88) 대학 들어가면서부터 혼자 따로 떨어져 나가는 일이 눈에 띄었다. 전공 수업 시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청하지 않았더니 선배, 동기들이 돌아가며 말렸던 일, 혼자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었더니 마주치는 지인들마다 왜 혼자 먹냐며 같이 먹겠느냐 물어왔던 일, 보고픈 영화를 기다리다 식당에 들어갔더니 옆 테이블 커플이 혼자 밥을 먹는 것을 보며 수근거렸던 일이 종종 있었다. 지금은 혼자라는 것이 조금 더 유연하게 받아들여지지만 그때만 해도 혼자 떨어진다는건 낯설고 어색한 분위기였다. 남들과 다르면 '혼자'가 될 거라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조금 덜 번거롭고 조금 더 자신의 상황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음에도.

 

 이런 것들은 그때는 정말 예민하고 중요한 것 같아도,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혼자해도 괜찮은 일들이 하나씩 늘어나게 되어 익숙해진다. 다만 그때 혼자가 되면 안된다는 남들의 만류에 수업 선택도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지 못하게 만든 주변의 만류가 날 분노하게 만들었다. 결국 그 수업에서 낙제했기 때문에. 그 일을 계기로 내가 하고 싶은 건 내 마음대로 해버리자고 확고히 결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뒤의 학교생활에서도 그 뒤에도 그 선택은 날 혼자로 만들지 않았다. 혼자는 나의 시간과 취향을 아주 합리적으로 조율할 수 있다. 다만 맛있고 재밌고 좋았고 화났던 부분을 누군가와 나눌 수는 없을테다. 그래 어쩌면 누군가들은 나와 그 시간을 나누고 싶어 나의 혼자를 만류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혼자를 말리는 거추장스러움도 조금은 사랑스럽다.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저절로 내 할말도 많아진다. 내게도 이런 일들이 있었고, 나는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고 죄 적어내고 싶다가도 금방 지워버리곤 했다. 떠들고 싶다가도 타인의 이야기를 하염없이 듣고 싶어졌다. 책장을 다 넘겼을 땐 남은 이야기가 없어 아쉬웠다. 마치 저녁 어스름에 여기저기 불이 켜지는 집들을 바라보는 기분이다. 불빛이 새나오는 창가를 보며 누군가의 삶이 그 안에 담겨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면 사람으로 가득찬 대중교통 안에서 괴롭다가도 문득 인류에 대한 온기가 잠시간 살아난다. 이 사람들이 다 저 따스한 불빛이 되려 어딘가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다. 그런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우리가 함께 듣던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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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사업부터 배웠는가 - 14억 빚에서 500억 CEO가 될 수 있었던 비결
송성근 지음 / 다산북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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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한 젊은 사업가의 이야기가 뭣에 흥미로울까 싶었지만, 그가 잡아챈 컨텐츠는 확실히 눈길을 끌었다. '태양광 조명'. 고향집 근방으로 가면 주택가 진입구마다 야트막한 폴대를 꼽은 조명등이 제법 설치율이 높다. 처음 펜션을 겸하고 있는 뒷쪽 옆집에서 설치하고, 앞에 앞집에서 설치했을때만 해도 내구성이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막상 설치한 집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꽤 좋았나보다. 전기세도 들지 않고 제법 밝아 고향집 마당에도 가로등 형과 원통형의 조명이 계단을 따로 꼽혔다. 몇해간 직접 이용하고 계신 고향집에선 썩 만족하고 계신다. 그 뒤로도 고향집을 방문할 때마다 고만고만한 주변 집들 문앞에, 진입로에 조금씩 태양광 조명이 번져나가는 걸 볼 수 있었다. 무심하게 느껴졌던 것이 누군가를 성공으로 이끈 컨텐츠가 되었다니 새삼스러웠다.

 

 이런 경제 에세이 책 들은 본인의 사업 성공담을 돈 받으며 펼쳐내는 재주가 있다. 사람의 심리가 남의 안된 사연은 곧잘 듣지만, 남 잘 된 자랑은 돈 안 받고는 들어주기 어렵다. 오죽하면 노인들 모이는 자리에 자식 손주 자랑하려면 자랑값을 내고 하란 농담이 나온단다. 그러니 좋은 일이 생긴 사람들은 으례 주변 사람들을 모아 밥이라도 한끼 사면서 축하를 받는 문화가 생겼나보다. 자기계발서 등의 내용을 담은 책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의 여러 이유 중에도 이런 심리가 조금은 있을지 모른다. 개인적으로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특이하게도 이 사업 아이템을 구매해봤다는 이유로 관심을 갖고 읽게 되었다. 마치 인터넷에서 광고하는 잡다한 상품들을 반신반의하면서 보다가 그 중에 내가 직접 써보고 효과도 봤던 제품의 광고를 마주한 기분이랄까. 아, 이건 알지. 이건 괜찮지. 하고 눈도장 한 번 찍게되는.

 

 대부분의 내용은 평이하다. 고의 부도로 14억 빚을 떠안아 힘들었던 고난 이야기, 직원들 월급만큼은 반드시 제때 주겠다는 개인적 신념에 대한 이야기, 어려웠던 시절을 가슴깊이 새겨두고 이를 악물고 버텨냈던 이야기 등 부유한 부모를 만나 금수저로 살다 물려받은 사업으로 성공한 것이 아니라는 저자 자신에 대한 증명이 담겨 있다. 다소 건조하게 읽히지만, 내심 이런 사람들이 결국은 성공하는구나 하고 인정하게 만드는 오기와 독기가 엿보였다. 특히 한국에서 성공하려면 사업을 해야 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월급받으며 모아봤자 성공하기 어렵다는 얘기는 공감되면서도 씁쓸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게 아니기 떄문에 성공한 젊은 사업가의 수기가 조금 이른감이 느껴졌지만, 이조차도 마케팅이 될 것이다. 자기 사업을 해보고 싶은 청년들에게 흥미로운 책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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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아이의 마음을 읽는 연습 - 전2권 아이의 마음을 읽는 연습
인젠리 지음, 김락준 옮김 / 다산에듀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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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의 마음을 읽는 연습'을 읽으며 저자의 교육법에 대한 조언보다 부모로부터 보내진 사연들이 문득 더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을 직접적으로 교육하던 시기가 있었다. 담당했던 것은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들이었는데, 유난히 지쳐보이는 어머니들이 종종 찾아와 상담을 하곤 했다. 선생이란 자리에 있지만 딱 봐도 그들보다 나이도 어리고 경험이 적어보이는데도 고민 가득하고 절실한 얼굴로 한참을 상담하곤 했다. 선생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직면한 육아 문제에서 누군가에게라도 털어놓고 조언이든 위로든 한마디 듣고만 싶었으리라. 옆에서 힘써 상담도 하고 관련 도서도 찾아보며 보조도 해보았지만 그때 그 아이들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됐던 건 엄마의 지침과 절실함이었을 것이다. 누가 그 아이들을 위해 그토록 지칠 수 있겠는가. 잘 지켜보겠다는 말 한마디에 얼굴이 환해지고 고개숙여 감사를 표하겠는가. 부모뿐이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이의 마음을 읽는 연습' 학습과 관계편을 두루 읽으면서 어떤 부분은 공감이 되고, 어떤 부분은 구태의연하다 생각도 했다. 쨌든 이러한 찬반의 견해를 넘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하고 신호를 보내온 수많은 부모들의 편지가 다르지만 같은 고민을 갖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아이에게 잘해주고 싶고, 잘 키우고 싶고, 가급적이면 좋은 부모의 역할을 하고 싶다는 소망에서 비롯된다. 부모가 원해서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논조의 글을 가끔 볼 때가 있는데, 반대로 부모에 의해 태어나졌을 뿐이더라도, 아이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서 그만큼의 고민을 할까 싶었다.

 

 물론 부모를 사랑하고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겠지만, '제가 자식으로서의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나 '부모님께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데 괜찮을까요' 하는 질문을 전문가에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관계의 길을 모색했던가 싶었다. 성인이 되고 난 뒤라면 몰라도 그 전의 시기에는 개인적으로는 항상 나 자신으로 있기에 집중했을 뿐 부모의 역할을 잘하고 있을까 고민하는 것처럼 자식의 도리를 잘하고 있을까 의식하며 자문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래서 옛어른들이 '다 키워놓으면 저 혼자 큰 줄 알지' 하고 푸념하시던 걸까. 그랬던 자신을 문득 되돌아보니 큰 틀 안에서는 결국 인간관계인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 한쪽이 기울이는 노력이 얼마나 크고 희생적인지 새삼 어버이 은혜를 부르고 싶은 기분이 든다.

 

 전문가의 조언이지만 아이를 키우기 위해 읽고 참고할 수는 있겠지만 무조건 수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훈육 방법에서 자신이 정하고 싶은 기준이 있다면 그 기준을 확고히 따르는 것도 좋다. 자신은 이러한 조언들에 맞게 훈육되지는 않았으나 또 그 나름으로 성장하여 형성된 자신을 좋아하고 만족한다. 아이를 이렇게 키워야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알고 참고하는 것은 좋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이럴 땐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돼' '이런 부모가 되어야만 해' 하고 압박을 느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지나치게 폭력, 억압적이거나 방치되는 극단의 문제적 경우가 아니라면 각각의 가풍대로 성장한 개성적인 타인들이 사회를 구성하는 것이 전문가의 조언보다 더 이상적인 구조라 생각된다.

 

 책은 편지 사연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남기는 식으로 되어 있는데, 현실감이 넘치고 '아이 선생님에게 선물을 해야 할까요' 나 '아이가 귀신을 보는 걸까요' 같은 재밌고 실제적인 고민들도 나오기 때문에 꽤 재밌다. 거기에 '교도소 수감 사실을 어떻게 알려야 할까요' 같은 예상 밖의 질문들도 있다. 때문에 권당 분량이 적지 않은데도 지루하지 않게 흐르듯 읽을 수 있다. 실제로 선물의 경우 공동으로 소소히 하는 것이 아니면 받는 입장에서도 신경쓰이고 부담이 되는 것이니 현실적으로는 하지 않기 어려워도 하지 않도록 모두가 합의, 노력하는 것이 맞다. 혹여 고리타분한 내용만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더라도 아이를 위해 밑져야 본전이란 마음으로 한번 읽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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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 하버드 법대, 젊은 법조인이 그린 법정 실화
알렉산드리아 마르자노 레즈네비치 지음, 권가비 옮김 / 책세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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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비밀을 붙들고 있는 모습이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다. 내 주위에는 온통 말 못할 비밀뿐이었다. 할 수 있는 말 밑으로 어둠에만 속하는 울림이 있었다. 내 여동생들과 나는 지난 5년간 밤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 함구했다. 그 세월은 마치 없었던 일처럼 사라져버렸다. 어느 날 밤 아버지가 침대에 몸을 던지며 울부짖던 때도 있었지만 내가 이해하기론 그건 낮에 부모님이 시내 사무실에서 보내는 삶과는 별개의 모습이었다. 어느 날 밤 내가 부엌에 내려가서 맞닥뜨린 아버지가 이제는 더 이상 다정하지 않고 외려 화가 나 있더라도, 내게 혹은 삶에 화가 나 있더라도, 그리고 내게 저주를 퍼부으며 차라리 죽고 싶다고 말하더라도, 그 모든 일이 진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p 165 "

 

 '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는 소재 자체만으로도 읽기 어려운 책이다. 거기에 분량도 적지 않다. 이는 1990년대 미국에서 실제 벌어졌던 아동 성범죄와 이를 다룬 법정 공방을 그려내면서 저자 자신의 어린시절을 교차해가며 보여준다. 독특하게도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을 꼽으라하면 모호함이 떠오른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소설보다 분명한 사실적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실과 허구의 경계인가가 매우 모호하게 다가온다. 게다가 이 소재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에는 꽤나 고약하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서는 허구가 섞여있겠지 하거나 섞였기를 기대하게 된다.

 

 " "나는 어린 남자애를 좋아해요." 그가 말했다. "안 그러려고 무척 애를 써도 그래요. 성적으로요." - p233 "

 읽는 도중에 계속해서 리키라는 인물이 왜 아동을 대상으로 욕망하는가에 의문이 들었다. 이런 의문을 가지는 것은 극악스러운 범죄 뉴스를 볼 때마다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왜?" 하고 매번 품는 의문이지만 어떤 사고와 계기로 행동과 결과가 나오게 되는 것인지 이해하려해도 이해가 되질 않는 것이다. 거기다 함께 다룬 어린 손녀들을 대상으로 한 할아버지의 친족성폭력 또한 그 이상의 거부감이었다. 마땅히 그들을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 한편으로는 리키의 불우했던 출생과 성장기 같은 것들을 읽으며 그게 어떤 이유가 되는지 반문했다. 할머니와 오빠 같은 다른 가족들이 알아선 안된다고 입막음을 당하는 지점에선 말할 것도 없었다.

 

  " 나는 화면 속 저 남자를 구제하는 일을 돕겠다고 이곳으로 왔다. 저런 남자를 돕겠다고 이곳으로 왔다. 내가 이곳으로 온 이유는 과거 내게 일어난 일로부터 내 이상과 내 실제가 별개로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그 둘은 별개여야만 했다. 아니라면 내가 어떻게 삶을 지탱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스크린 속 남자를 보자 나는 할아버지가 나를 만지던 손길을 다시 느꼈고, 그래서 알았다. 그동안 내가 받았던 훈련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기 일하러 온 명분에도 불구하고, 내 믿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리키가 죽기를 바랐다. p 311 "

 

 아동성폭력의 피해자가 왜 가해자인 리키의 사건에 파고들었을까. 비슷한 사건은 마주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끔찍한 기억일텐데 굳이 지난 사건을 집요히 파고든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하며 읽었다. 극복했기 때문일까 혹은 도저히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얽매여 있기 때문일까. 어쩌면 자신의 삶에 대한 극복과 긍정이 그 안에 자리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도구를 위해 마땅한 죄를 지은 범죄자의 삶을 동정하여 이해를 구할 수 있을까. 리키가 처음 교도소에 들어갔다 석방된 후로 2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제러미가 죽었다. 그애의 엄마인 로렐라이 마저 그를 편들어 증언했다 하더라도 그는 이미 생명을 죽였고, 또 기회만 주어진다면 능히 죽일 것이다.

 

 더구나 로렐라이가 니키의 재판에 굳이 찾아와 사형을 반대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대목에서 생명존중에 대한 감동을 느끼기보다는 어떤 인상적인 질문이 먼저 떠올랐다. 마이클 샌들 교수의 강의에서 나온 질문과 비슷하다. 간략히 옮기자면 '선로에 있는 다섯 사람이 곧 다가올 기차에 치일 위기에 쳐했다. 그 앞 길목에 한 뚱뚱한 사람을 밀어 희생시키면 그로 인해 다섯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내용이다. 그녀가 니키의 사형을 반대했던 이유도 용서보다는 사형 집행 영장에 남을 자신의 서명이 싫었기 때문이 아닐까 해석된다. 덧붙여 할아버지에게 성추행 당한 딸에게 그 사실을 함구시켰던 부모의 결정처럼 묻어두거나, 여동생처럼 자신에게 아예 없던 일로 하기 위해서 사실을 외면하려는 시도일지도 모른다.

 

 읽는 동안, 그 후에도 마음은 불편했다. 평소 범죄수사물 미드를 즐겨보는 편인데도 시각으로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범죄 장면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무거움이 있는 책이었다. 우리-보편적으로-가 원하는 결말은 없지만 지독한 현실이 있고, 군상들이 존재했다. 범죄물을 좋아한다면 색다른 느낌으로 읽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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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헤어지겠지,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
F 지음, 송아람 그림, 이홍이 옮김 / 놀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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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로울 때는 실컷 외로워하고, 누군가를 만나서 투정을 부렸어야 했다. 추억이란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으면 만들 수 없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그때 더 부끄러운 짓을 했었더라면 지금보다 덜 후회하고 살고 있을 것이다. p.201 "

 

 이 책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이 책을 모르겠다기 보다는 일본 사람들을 모르겠다고 하는 편이 더 낫겠다. 어떤 부분에서는 요즘말로 하는 인스타감성 가득한 내용을 써내리다가 어떤 부분에서는 '나이 든 남자를 공략하는 방법' 같은 걸 들이민다. 그런 방법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는걸까. 이미 여기서 더 나이 든 남자를 만났다가는 금새 병수발 들게 생긴 내 늙음 탓에 따라가지 못하는 걸까. 익명의 SNS 작가고 아직 머리카락이 까맣다길래 굉장히 트렌디한 문장들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아무리 그렇더래도 이건 좀 촌스러운데 싶은 내용들이 지뢰처럼 등장해서 깜짝깜짝 놀래키곤 한다.

 

 우리가 원래 인터넷에 쓰는 글들이 다 그렇듯 전에 했던 요지의 내용과 나중에 나오는 내용이 서로 다르게 부딪치기도 한다. 몇 개의 내용을 읽으면서 일본에서 넘어왔다는 '여자력'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는데 이 책에서도 여자력을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그것도 '여자력이란 말을 없애'자는 내용으로 등장해서 당황스러웠다. 남자 꼬시는 법이나, 남자 점수 매기기, 속마음 번역하기, 악녀되기 등을 줄줄이 늘어놓으며 잡지책같은 키치한 면모를 자랑하다 갑자기 여자력은 필요없어! 너는 그냥 너 자신이 되면 돼! 하고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제대로 된 말이 나오는가 싶어도 갑자기 왜 이러나 싶어 뜨악해지곤 한다.

 

 처음엔 감상적인 내용이 많길래 여자가 작가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읽다보니 남자였다. 뒤늦게 알아차린게 이상하다 싶을 정도였다. 특히 백엔짜리 반지 얘기같은 건 전형적인 감성이라 나도 모르게 김건모의 '미안해요'라는 노래를 싫어한다는 한 희극인의 일갈을 떠올렸다. 혹은 문방구 반지 커플링 같은 그런 인터넷 괴담들을. 앞서서 남자에 대해 분석하고 점수매긴 글들이 왜 이렇게 나왔나 했더니 남자어 번역 같은 느낌으로 나름 객관과 주관을 섞어낸 것이었다. 코스모폴리탄 같은 잡지를 한 5년 정도는 정기 구독한 여자인줄 알았더니 90년대에 태어난 우리들이란 표현을 쓰는 애늙은이였다.

 

 다행이도 공감대가 없어 뻘쭘한 이 어색함은 연애에 관한 부분에서 특히 강조되었을 뿐이었는지 인간관계에 대한 내용이 나오면서는 약간씩 흥미를 회복해갈 수 있었다. 친구와 만나 신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쏟아내놓고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생긴다던지, SNS로 애매한 저격글을 올리는 일 같은 사소함에 공감이 됐다. 어찌보면 본문의 내용보다 삽화에 더 눈길이 갔다. 송아람 작가가 그린 이 삽화가 내용까지 원작가의 확인을 통해서 담아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짧으면서도 직접적인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치사한 방법이고 남들 앞에서는 잘 하지 않는 행동이지만 만화나오는 부분만 먼저 골라가며 읽었다.

 

 이 책이 18만부 넘게 팔리고 품귀현상이 일어날 정도로 흥했다는 문구에 문득 '언어의 온도'를 떠올렸다. 결이 좀 다르지만 가진 것 이상의 관심을 받았다는 점이 비슷하게 느껴진다. 혹 '언어의 온도'를 좋게 읽었다면 이 책도 마음에 들지 모르겠다. 글마다 호불호가 널을 뛰었기 때문에 무엇을 기대하는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지 가늠이 잘 오지 않는다. 불편을 감수하고 기꺼이 예민한 감각을 가졌다거나 말장난을 해놓은 것 같은 SNS 감성은 원치 않는다면 마음에 안들겠지만, 에세이를 좋아하고 킬링타임용 가벼운 책을 찾는다면 혹은 늦은밤 감성에 취해있을때 곁들이고 싶은 책이 있다면 읽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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