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아이의 마음을 읽는 연습 - 전2권 아이의 마음을 읽는 연습
인젠리 지음, 김락준 옮김 / 다산에듀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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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의 마음을 읽는 연습'을 읽으며 저자의 교육법에 대한 조언보다 부모로부터 보내진 사연들이 문득 더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을 직접적으로 교육하던 시기가 있었다. 담당했던 것은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들이었는데, 유난히 지쳐보이는 어머니들이 종종 찾아와 상담을 하곤 했다. 선생이란 자리에 있지만 딱 봐도 그들보다 나이도 어리고 경험이 적어보이는데도 고민 가득하고 절실한 얼굴로 한참을 상담하곤 했다. 선생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직면한 육아 문제에서 누군가에게라도 털어놓고 조언이든 위로든 한마디 듣고만 싶었으리라. 옆에서 힘써 상담도 하고 관련 도서도 찾아보며 보조도 해보았지만 그때 그 아이들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됐던 건 엄마의 지침과 절실함이었을 것이다. 누가 그 아이들을 위해 그토록 지칠 수 있겠는가. 잘 지켜보겠다는 말 한마디에 얼굴이 환해지고 고개숙여 감사를 표하겠는가. 부모뿐이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이의 마음을 읽는 연습' 학습과 관계편을 두루 읽으면서 어떤 부분은 공감이 되고, 어떤 부분은 구태의연하다 생각도 했다. 쨌든 이러한 찬반의 견해를 넘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하고 신호를 보내온 수많은 부모들의 편지가 다르지만 같은 고민을 갖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아이에게 잘해주고 싶고, 잘 키우고 싶고, 가급적이면 좋은 부모의 역할을 하고 싶다는 소망에서 비롯된다. 부모가 원해서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논조의 글을 가끔 볼 때가 있는데, 반대로 부모에 의해 태어나졌을 뿐이더라도, 아이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서 그만큼의 고민을 할까 싶었다.

 

 물론 부모를 사랑하고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겠지만, '제가 자식으로서의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나 '부모님께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데 괜찮을까요' 하는 질문을 전문가에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관계의 길을 모색했던가 싶었다. 성인이 되고 난 뒤라면 몰라도 그 전의 시기에는 개인적으로는 항상 나 자신으로 있기에 집중했을 뿐 부모의 역할을 잘하고 있을까 고민하는 것처럼 자식의 도리를 잘하고 있을까 의식하며 자문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래서 옛어른들이 '다 키워놓으면 저 혼자 큰 줄 알지' 하고 푸념하시던 걸까. 그랬던 자신을 문득 되돌아보니 큰 틀 안에서는 결국 인간관계인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 한쪽이 기울이는 노력이 얼마나 크고 희생적인지 새삼 어버이 은혜를 부르고 싶은 기분이 든다.

 

 전문가의 조언이지만 아이를 키우기 위해 읽고 참고할 수는 있겠지만 무조건 수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훈육 방법에서 자신이 정하고 싶은 기준이 있다면 그 기준을 확고히 따르는 것도 좋다. 자신은 이러한 조언들에 맞게 훈육되지는 않았으나 또 그 나름으로 성장하여 형성된 자신을 좋아하고 만족한다. 아이를 이렇게 키워야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알고 참고하는 것은 좋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이럴 땐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돼' '이런 부모가 되어야만 해' 하고 압박을 느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지나치게 폭력, 억압적이거나 방치되는 극단의 문제적 경우가 아니라면 각각의 가풍대로 성장한 개성적인 타인들이 사회를 구성하는 것이 전문가의 조언보다 더 이상적인 구조라 생각된다.

 

 책은 편지 사연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남기는 식으로 되어 있는데, 현실감이 넘치고 '아이 선생님에게 선물을 해야 할까요' 나 '아이가 귀신을 보는 걸까요' 같은 재밌고 실제적인 고민들도 나오기 때문에 꽤 재밌다. 거기에 '교도소 수감 사실을 어떻게 알려야 할까요' 같은 예상 밖의 질문들도 있다. 때문에 권당 분량이 적지 않은데도 지루하지 않게 흐르듯 읽을 수 있다. 실제로 선물의 경우 공동으로 소소히 하는 것이 아니면 받는 입장에서도 신경쓰이고 부담이 되는 것이니 현실적으로는 하지 않기 어려워도 하지 않도록 모두가 합의, 노력하는 것이 맞다. 혹여 고리타분한 내용만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더라도 아이를 위해 밑져야 본전이란 마음으로 한번 읽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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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 하버드 법대, 젊은 법조인이 그린 법정 실화
알렉산드리아 마르자노 레즈네비치 지음, 권가비 옮김 / 책세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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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비밀을 붙들고 있는 모습이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다. 내 주위에는 온통 말 못할 비밀뿐이었다. 할 수 있는 말 밑으로 어둠에만 속하는 울림이 있었다. 내 여동생들과 나는 지난 5년간 밤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 함구했다. 그 세월은 마치 없었던 일처럼 사라져버렸다. 어느 날 밤 아버지가 침대에 몸을 던지며 울부짖던 때도 있었지만 내가 이해하기론 그건 낮에 부모님이 시내 사무실에서 보내는 삶과는 별개의 모습이었다. 어느 날 밤 내가 부엌에 내려가서 맞닥뜨린 아버지가 이제는 더 이상 다정하지 않고 외려 화가 나 있더라도, 내게 혹은 삶에 화가 나 있더라도, 그리고 내게 저주를 퍼부으며 차라리 죽고 싶다고 말하더라도, 그 모든 일이 진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p 165 "

 

 '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는 소재 자체만으로도 읽기 어려운 책이다. 거기에 분량도 적지 않다. 이는 1990년대 미국에서 실제 벌어졌던 아동 성범죄와 이를 다룬 법정 공방을 그려내면서 저자 자신의 어린시절을 교차해가며 보여준다. 독특하게도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을 꼽으라하면 모호함이 떠오른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소설보다 분명한 사실적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실과 허구의 경계인가가 매우 모호하게 다가온다. 게다가 이 소재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에는 꽤나 고약하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서는 허구가 섞여있겠지 하거나 섞였기를 기대하게 된다.

 

 " "나는 어린 남자애를 좋아해요." 그가 말했다. "안 그러려고 무척 애를 써도 그래요. 성적으로요." - p233 "

 읽는 도중에 계속해서 리키라는 인물이 왜 아동을 대상으로 욕망하는가에 의문이 들었다. 이런 의문을 가지는 것은 극악스러운 범죄 뉴스를 볼 때마다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왜?" 하고 매번 품는 의문이지만 어떤 사고와 계기로 행동과 결과가 나오게 되는 것인지 이해하려해도 이해가 되질 않는 것이다. 거기다 함께 다룬 어린 손녀들을 대상으로 한 할아버지의 친족성폭력 또한 그 이상의 거부감이었다. 마땅히 그들을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 한편으로는 리키의 불우했던 출생과 성장기 같은 것들을 읽으며 그게 어떤 이유가 되는지 반문했다. 할머니와 오빠 같은 다른 가족들이 알아선 안된다고 입막음을 당하는 지점에선 말할 것도 없었다.

 

  " 나는 화면 속 저 남자를 구제하는 일을 돕겠다고 이곳으로 왔다. 저런 남자를 돕겠다고 이곳으로 왔다. 내가 이곳으로 온 이유는 과거 내게 일어난 일로부터 내 이상과 내 실제가 별개로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그 둘은 별개여야만 했다. 아니라면 내가 어떻게 삶을 지탱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스크린 속 남자를 보자 나는 할아버지가 나를 만지던 손길을 다시 느꼈고, 그래서 알았다. 그동안 내가 받았던 훈련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기 일하러 온 명분에도 불구하고, 내 믿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리키가 죽기를 바랐다. p 311 "

 

 아동성폭력의 피해자가 왜 가해자인 리키의 사건에 파고들었을까. 비슷한 사건은 마주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끔찍한 기억일텐데 굳이 지난 사건을 집요히 파고든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하며 읽었다. 극복했기 때문일까 혹은 도저히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얽매여 있기 때문일까. 어쩌면 자신의 삶에 대한 극복과 긍정이 그 안에 자리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도구를 위해 마땅한 죄를 지은 범죄자의 삶을 동정하여 이해를 구할 수 있을까. 리키가 처음 교도소에 들어갔다 석방된 후로 2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제러미가 죽었다. 그애의 엄마인 로렐라이 마저 그를 편들어 증언했다 하더라도 그는 이미 생명을 죽였고, 또 기회만 주어진다면 능히 죽일 것이다.

 

 더구나 로렐라이가 니키의 재판에 굳이 찾아와 사형을 반대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대목에서 생명존중에 대한 감동을 느끼기보다는 어떤 인상적인 질문이 먼저 떠올랐다. 마이클 샌들 교수의 강의에서 나온 질문과 비슷하다. 간략히 옮기자면 '선로에 있는 다섯 사람이 곧 다가올 기차에 치일 위기에 쳐했다. 그 앞 길목에 한 뚱뚱한 사람을 밀어 희생시키면 그로 인해 다섯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내용이다. 그녀가 니키의 사형을 반대했던 이유도 용서보다는 사형 집행 영장에 남을 자신의 서명이 싫었기 때문이 아닐까 해석된다. 덧붙여 할아버지에게 성추행 당한 딸에게 그 사실을 함구시켰던 부모의 결정처럼 묻어두거나, 여동생처럼 자신에게 아예 없던 일로 하기 위해서 사실을 외면하려는 시도일지도 모른다.

 

 읽는 동안, 그 후에도 마음은 불편했다. 평소 범죄수사물 미드를 즐겨보는 편인데도 시각으로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범죄 장면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무거움이 있는 책이었다. 우리-보편적으로-가 원하는 결말은 없지만 지독한 현실이 있고, 군상들이 존재했다. 범죄물을 좋아한다면 색다른 느낌으로 읽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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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헤어지겠지,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
F 지음, 송아람 그림, 이홍이 옮김 / 놀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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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로울 때는 실컷 외로워하고, 누군가를 만나서 투정을 부렸어야 했다. 추억이란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으면 만들 수 없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그때 더 부끄러운 짓을 했었더라면 지금보다 덜 후회하고 살고 있을 것이다. p.201 "

 

 이 책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이 책을 모르겠다기 보다는 일본 사람들을 모르겠다고 하는 편이 더 낫겠다. 어떤 부분에서는 요즘말로 하는 인스타감성 가득한 내용을 써내리다가 어떤 부분에서는 '나이 든 남자를 공략하는 방법' 같은 걸 들이민다. 그런 방법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는걸까. 이미 여기서 더 나이 든 남자를 만났다가는 금새 병수발 들게 생긴 내 늙음 탓에 따라가지 못하는 걸까. 익명의 SNS 작가고 아직 머리카락이 까맣다길래 굉장히 트렌디한 문장들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아무리 그렇더래도 이건 좀 촌스러운데 싶은 내용들이 지뢰처럼 등장해서 깜짝깜짝 놀래키곤 한다.

 

 우리가 원래 인터넷에 쓰는 글들이 다 그렇듯 전에 했던 요지의 내용과 나중에 나오는 내용이 서로 다르게 부딪치기도 한다. 몇 개의 내용을 읽으면서 일본에서 넘어왔다는 '여자력'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는데 이 책에서도 여자력을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그것도 '여자력이란 말을 없애'자는 내용으로 등장해서 당황스러웠다. 남자 꼬시는 법이나, 남자 점수 매기기, 속마음 번역하기, 악녀되기 등을 줄줄이 늘어놓으며 잡지책같은 키치한 면모를 자랑하다 갑자기 여자력은 필요없어! 너는 그냥 너 자신이 되면 돼! 하고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제대로 된 말이 나오는가 싶어도 갑자기 왜 이러나 싶어 뜨악해지곤 한다.

 

 처음엔 감상적인 내용이 많길래 여자가 작가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읽다보니 남자였다. 뒤늦게 알아차린게 이상하다 싶을 정도였다. 특히 백엔짜리 반지 얘기같은 건 전형적인 감성이라 나도 모르게 김건모의 '미안해요'라는 노래를 싫어한다는 한 희극인의 일갈을 떠올렸다. 혹은 문방구 반지 커플링 같은 그런 인터넷 괴담들을. 앞서서 남자에 대해 분석하고 점수매긴 글들이 왜 이렇게 나왔나 했더니 남자어 번역 같은 느낌으로 나름 객관과 주관을 섞어낸 것이었다. 코스모폴리탄 같은 잡지를 한 5년 정도는 정기 구독한 여자인줄 알았더니 90년대에 태어난 우리들이란 표현을 쓰는 애늙은이였다.

 

 다행이도 공감대가 없어 뻘쭘한 이 어색함은 연애에 관한 부분에서 특히 강조되었을 뿐이었는지 인간관계에 대한 내용이 나오면서는 약간씩 흥미를 회복해갈 수 있었다. 친구와 만나 신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쏟아내놓고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생긴다던지, SNS로 애매한 저격글을 올리는 일 같은 사소함에 공감이 됐다. 어찌보면 본문의 내용보다 삽화에 더 눈길이 갔다. 송아람 작가가 그린 이 삽화가 내용까지 원작가의 확인을 통해서 담아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짧으면서도 직접적인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치사한 방법이고 남들 앞에서는 잘 하지 않는 행동이지만 만화나오는 부분만 먼저 골라가며 읽었다.

 

 이 책이 18만부 넘게 팔리고 품귀현상이 일어날 정도로 흥했다는 문구에 문득 '언어의 온도'를 떠올렸다. 결이 좀 다르지만 가진 것 이상의 관심을 받았다는 점이 비슷하게 느껴진다. 혹 '언어의 온도'를 좋게 읽었다면 이 책도 마음에 들지 모르겠다. 글마다 호불호가 널을 뛰었기 때문에 무엇을 기대하는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지 가늠이 잘 오지 않는다. 불편을 감수하고 기꺼이 예민한 감각을 가졌다거나 말장난을 해놓은 것 같은 SNS 감성은 원치 않는다면 마음에 안들겠지만, 에세이를 좋아하고 킬링타임용 가벼운 책을 찾는다면 혹은 늦은밤 감성에 취해있을때 곁들이고 싶은 책이 있다면 읽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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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와 장미의 나날
모리 마리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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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인 모리 마리에 대한 짧은 소개글을 초입에 읽고 어쩐지 기가 질렸다. 짧은 문장들만 봤을 때는 '우리는 같은 과'라고 생각했는데, 조금이나마 알게 되니 그녀와 나는 너무나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홍차와 장미의 나날"로 표현되는 사람을 가성비와 포기의 세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담아낼 수 있겠느냔 말이다. 집안이 항상 어질러져 있는,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비워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이 서로 다른 사람들. 플라스틱 컵을 쓰지 않지만 유리컵으로 분위기를 내는, 스테인레스 컵으로 보온을 강조하는 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맞닿을 지점이 있을까.

 

 " 괜찮아, 먹고 싶은 건 매일 있으니까! " "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으면 소설이 안 써진다 "  "좀 곤란한 인생이지만 잘 먹겠습니다 " 와 같은 문구들은 어머, 당신은 나의 정신적 쌍둥이 아닌가요 붙들고 물어보고 싶을 만큼 호감이 갔다. 때때로 일기처럼 쓰던 블로그에 한 꼭지 정도는 뭘 먹었거나, 뭘 먹고 싶다는 얘기가 꼭꼭 들어갔던만큼 핸드폰 사진첩에 온통 먹을 것, 먹을 방법, 먹은 것 사진들이 폴더별로 정리되어 있는 만큼 나름 미식의 세계에 들어가고자 열심히 발돋움하고 있는 만큼 '홍차와 장미의 나날'이 궁금했고 읽어보고도 싶었다. 그런데 정말 안타깝게도 이 사람, 나와는 안 맞는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에세이니만큼 저자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게 작용했다. 세대도 차이지고, 나라도 다르고, 무엇보다도 실제로 만났어도 성향이 너무나 달랐을거라 생각되는 젠체하는 듯한 표현방식이 시선을 냉담하게 만들었다. 유복한 생활을 한 탓에 프랑스에서도 생활하고 했겠지만 '일본은 아시아의 유럽'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태도나 "파리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미각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p.38) " , " 나는 구두쇠에 욕심쟁이인 프랑스 정신을 가졌기 때문에(p.227) "같은 표현은 '일본은 아시아의 그냥 아시아! 아시아 섬나라 사람!' 이라고 어딘가를 향해 소리치고 싶게 만드는 면이 있다.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할 수도 있는 그녀의 솔직함. 그것도 어떤 부분에서는 오히려 독이었다. 주로 과거 호화로운 생활을 했던 것과 부모님, 특히 아버지에 대한 높은 자긍심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하지만 초면에 시종일관 천연덕스럽게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사람을 좋아해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 긴자의 가게에도 취향이 고급스러운 사람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한 멍청이 직원만 넘쳐나고 있는 모양이니 p.157 " 하는 부분이나 " 나는 엄청나게 애지중지 자란 아가씨라서 학교에서 돌아오면 부엌 쪽으로 가서 하녀에게 "얼굴 씻을 더운물"하고 말씀하신다. 그런 다음 세면대가 딸린 삼첩방에서 더운물로 얼굴을 씻으시고 간식을 드시는 순서였다. p.131 " 이런 내용을 읽으면 떨떠름해진다.

 

 특히 이 삼첩방 더운물이 나오는 '애지중지 자란 아가씨' 단락의 내용에서는 그 앞에 "조센아메 (조선엿)" 라는 음식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시기적으로 '우리나라가 일제의 수탈에 고통을 받고~' 하는 생각이 들면 내 안에 자리잡은 독립투사의 혼이 불쑥 솟구쳐오른다. 그럼 나도 모르게 "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 육첩방은 남의 나라 (쉽게 쓰여진 시_윤동주) " 하고 떠올리며 마음이 문득 고요해지는 것이다. 너무 나갔나 싶지만, 혹 누군가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모리 마리라는 사람이 밉살스럽기에 이러저러한 불평을 늘어놨지만, 다른 사람들이 평하는 그런데도 밉지 않다는 말이 어떤 느낌인지는 3 퍼센트 정도쯤은 알 것도 같다. 사랑만 받고 자라 물색없고 솔직하기만 한 사람이랄까. 의도없이 단지 느낀 그대로를 말하기 때문에 가깝고 싶진 않아도 나쁘게 평할 수는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대체적으로 나는 앞으로 글을 쓰거나 말할 때 저렇게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때로는 그 단호하고 확고한 취향을 에둘러말하지 않는 당당함이 부럽기도 했다. 굉장히 호감가는 첫인상이지만 의외로 호불호가 갈리는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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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귤
김혜나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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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귤'을 읽는 동안 두통이 일었다. 그 두통이 '청귤'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지, 날이 추워지면서 몸상태가 난조를 보이는 까닭인지, 아니면 책을 읽기 싫었던 내가 만들어 낸 두통인지 모를 일이다. '청귤'의 탓이 아니더라도 '청귤'에는 두통의 책임소재를 물을만한 요소가 있었음은 분명하다. 어쩌면 근래의 정신이 순두부처럼 무뎌져버린 탓인지도 모른다. '청귤'의 표지를 바라보면서 속으로 제발 미숙하고 일러 청량하고 싱그러운 이야기가 있으라 생각했는데, 그 안에서 시큼하고 씁쓰레한 것만 흘러나왔다. 머리도 아프고 뒷맛도 좋지 않아 책을 읽고 나서 공연히 개수대에 쌓여있던 설거지를 해보기도 하고, 잠깐 밖으로 나가 커피전문점에 다녀와볼까 생각해보다 냉장고 깊숙이 넣어둔 술을 한 캔 꺼내었다. 시원하고 짜릿한 것이 목을 따라 내려가자 그제야 좀 '청귤'에 대해 생각해볼 여유가 생겼다.

 

 사실 '로레나'라는 첫 시작부터 어딘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네일을 하는 로레나의 모습을 읽으며 얼마 전 휴가로 다녀온 베트남에서 받은 마사지가 떠올랐다. 나에게 처음 마사지를 해준 사람은 한눈에 봐도 어리고 체구가 작은 소녀였다. 베트남도 마사지도 처음이라 알아보며 '내가 마사지를 잘 받을 수 있을까'만 걱정했던 것과 달리 '마사지를 받아야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는 동남아 가면 1 일 3 마사지도 받는대더라며 불편함을 다독이며 마사지를 받았었다. 그런데 '청귤' 안에서 마사지를 받으며 외면했던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던 마음을 도망가지도 못하고 마주하고 만 것이다. 페디큐어를 하겠다며 로레나에게 발을 턱 들이민 큰 삼촌이 된 느낌이었다.  

 

 그 뒤로도 '청귤'은 내 안에 있던 불편함의 고리를 어떻게 찾아냈을까 싶게 하나씩 들이밀었다. 어릴 때 앓은 뇌수막염으로 사춘기시절까지 사시가 있던 혜정의 이야기는 어린시절 사시가 있었던 친구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 아이는 한쪽눈에 하얀 의료용 안대를 하고 다녔는데, 사시가 꽤 심해 초등학교 무렵 수술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애의 눈이 교정되는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한동안 조용한 따돌림을 당했다. 처음엔 그 아이의 눈이 상대방을 째려보는 것 같아서, 그 뒤로는 남들과는 달라서. 그 아이가 이사를 가기 전까지 나는 꽤 절친한 그애의 친구였는데, 수많은 추억이 생겼어도 가장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는 것은 어린시절 혼자 놀이터 모래밭에서 놀고 있던 그애의 모습이었다.

 

 '청귤'을 읽으며 이상하게도 안으로 안으로 침잠해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를 들어"준다기 보다는 내 안에 흩어져있던 조각들을 발견하는 것 같았다. 더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내볼까도 싶었지만 책을 읽고 너무 내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나 역시도 좋은 이야기꾼은 아니니까. 소설집 안의 모든 내용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고 기대보다 무거웠지만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런 계기없이는 좀처럼 떠올리지 않을 것들을 문득 꺼내보게 되기도 했고. 흐린 가을날에 읽어볼만한 책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더 궁금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내 이야기만 늘어놓은 감상평이 되었지만, 이쪽은 진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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