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 - 중세에서 근대의 별을 본 사람들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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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 이상으로 재밌게 읽었다. 약간 시크하면서 무심한듯한 문체가 핵심이었다. 사실,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에서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알고 있는 얘기가 나온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세계사 시간에 한번쯤 키워드로 밑줄 쳐봤음직한 인물이나, 주관식 답으로 나올 법한 사건들이 담겨져 있다. 그걸 그 때 외워봤다고 해서 사실 알고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걸 잘 알 것이다. 학생들이 선택과목으로 세계사를 넣었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공부해야 할 내용인데 재밌게 읽히기 때문에 유용하다. 이미 공부와는 상관없어진 입장에서 흥미 위주로 읽어서 그렇게 느껴졌다면 미안.

 

 흥미로웠던 내용 중 하나는 합스부르크 턱. 근친결혼 때문에 나타난 유전병이라는 것도 흥미로운데 음식을 씹어 삼키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데다가 갈수록 병약한 자식을 얻게 되는데도 혈통-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계속 근친결혼을 했다니. 지금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어려운 일이다. 근친결혼까지는 아니어도 서로의 이권을 살펴 관계를 맺는 경우는 지금까지도 있긴 하지만. 또 하나는 '꽃 전쟁'의 인신희생에 관한 내용이었다. 실제로 치첸잇사를 다녀와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아름다운 유적지 같은 곳에서 인신희생 제물을 올렸다고 생각해보니...... 그 피라미드가 그 피라미드는 아니겠지......

 

 각 장의 첫머리에 앞으로 나오게 될 인물들 사이의 관계도가 항상 실려있는데, 그 관계도를 보면 앞으로 계속해서 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을지 망설이게 된다. 막상 읽으면 딱히 복잡하다거나 어렵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정신 건강을 위해 관계도는 매번 생략하고 읽었다. 내용을 다 읽고 관계도를 봐도 큰 위로가 되진 않는다. 뒷편에는 본격적인 계보도랑 연표도 있다. 참고적으로 알아두시길. 초반에 썼던 것처럼 유럽의 역사나 인물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는 교과서적 두뇌만을 가지고 있는 상태로 책을 읽었는데, 겉모습에 비해 폭력적으로 어렵거나 난감하게 읽기 힘들지 않다. 사건이 아니라 인물 위주로 풀어나간 점도 긍정적인 요건으로 작용한 것 같다. 재미있으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한번 읽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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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 앤 허니 - 여자가 살지 못하는 곳에선 아무도 살지 못한다
루피 카우르 지음, 황소연 옮김 / 천문장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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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의 페미니즘은 이제 막 발화했다고 생각한다. 아직 너무 초반의 서투르고 변질되거나 오인하기 쉬운 그런 상태인 것 같다.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내뱉는 것만으로도 때로는 경멸을 야기하게 될 정도로 이제 막 움이나 터 보려고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아직 너무나 어렵다. 여자이기 때문에 자신의 젠더에 대한 이해가 더욱 필요하고 또 그 중 한 갈래가 페미니즘이므로 눈에 띄는 대로 접해보고 이해해보려고 하고 있다. 최근에 관련 도서를 몇 권 읽어보긴 했지만, '밀크 앤 허니'는 상당히 특별했다.

 

 '밀크 앤 허니'에는 어떤 이론이나 설명이 들어가 있지 않다. 그저 끄적이듯 이란 표현이 어울리도록 쓰여지고 마치 불려지듯이 적혀졌다. 시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포리즘 같기도 하다. 아포리즘 식으로 쓰여진 글들의 시대가 막 지나간 뒤라 약간은 유치하다고 생각되는 내용도 있다. 흔히 인터넷 소설 감성이라고 하는 그런 면모가 보이는. 하지만 그 전에 읽어보았던 다른 페미니즘에 관한 글들보다 평이하고 짤막한 문장으로 되어 있지만, 굉장히 가감없이 적나라한 표현들이 많아서 꽤 강렬한 체험으로 다가온다.

 

 여성에 대해 썼다는 점 외에도 이 책이 의미를 갖는 다른 이유는 그녀가 '타자'의 삶을 반영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인도에서 태어난 여자. 여성의 인권이 취약한 나라의 출신이라는 점 뿐 아니라 성장한 곳이 캐나다였기 때문에 받았어야 할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까지. 그녀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에 대한 논란은 꽤 강렬한 체험이 되었다. 여성인 나조차도 드러낸 신체보다 생리혈이 묻어난 사진에 대해 설명만으로도 더욱 거부감을 느낀 것이다. 여성의 나체가 얼마나 많이 소비되어 왔는지, 혹은 본질이나 자연적인 아름다움으로 해석될 수 있었는지는 받아들이면서 그 일부인 생리에 대해서는 금기시하고 터부시하는 일을 일반화 한 것이다.

 

**카우르는 10대 때부터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발표해왔다. 때로는 시, 때로는 사진, 때로는 그림이었다. 꾸준한 발표 덕분에 그녀는 '인스타포엣'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인스타그램은 그녀가 올린 사진 하나를 삭제하고 '(자신들의)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를 댔다. 인스타그램이 삭제한 사진은 루피 카우르가 생리혈 자국이 분명한 회색 긴 바지와 하얀 상의를 입고, 침대에 옆으로 누워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었다. 카우르는 인스타그램에 항의했지만 그들은 그녀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카우르는 대중에게 이 사건을 밝히고 공론화했다. "너무나 많은 사진들이, 여성이 완전히 성적이고, 물건처럼 취급되고, 심지어 완전히 벌거벗은 사진들도 버젓이 게시되는데 왜 여성의 생리 사진은 삭제되어야만 하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결국 인스타그램은 1주일 후 그녀의 사진을 다시 게재했으며 사진 삭제가 자신들의 실수였다고 사과했다.

 

 어떤 부분들에 있어서는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구석이 많다. 조금만 더 문학적으로 원숙해진다면 좋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것들을 좀 더 유려하거나 완성도 높은 문장으로 표현해낸다면 더 많은 사람들을 관통하는 글을 접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읽으면서 다소 거칠고, 날것에 가까워 필요 이상의 불편을 자아내는 부분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강렬하고 의미있는 체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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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 - 어느 수집광의 집요한 자기 관찰기
윌리엄 데이비스 킹 지음, 김갑연 옮김 / 책세상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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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수집이라니. 이것은 지금의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 너무나 멀리 동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너무나도 긴밀하여 좀처럼 떨쳐낼 수 없는 기벽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흔히 집안 가득히 '언젠가 필요할지도 모를' 물건들을 미처 버리지 못한 채 기약할 수 없는 쓰임을 예상하며 보관해둔다. 그것 뿐이랴, 언제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과거의 그 순간'을 추억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특별하게 여겨지는 순간에 취득한 물건들을 서랍이나 작은 상자 등 어디에든 보관해둔다. 이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는 바로 그런 것들에 대한 책이다.

 

 나는 책을 읽으며 때로 갑갑함을 느꼈다. 넣어둔 그것들이 필요해진 언젠가의 순간에 그것을 넣어둔 곳을 잊어 오히려 더 많은 곳을 뒤져가며 찾느라 헤매일 뿐이고 때로는 그것을 보관해두었다는 사실조차 까먹을텐데도 기어코 얇은 식빵 봉투를 묶어놓은 철사끈을 주방 어딘가에 매어두거나, 하는 일들을 이제 그만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버릇처럼 쓸 일도 필요한 적도 없었던 그것을 버리지 않는 자신을 끊임없이 자각하며 책을 읽어야 했기 때문이다. 추억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기억은 물건에 남아있지 않는다. 때로 물건으로 인해 그 순간이 환기될 수는 있을 지언정 언제고 그것을 손에 쥐고 추억만 하고 앉아있지는 않으니. 그럼에도 모아놓은 영화표나 작은 엽서, 사진들이 서재 구석에서 꽤 많은 부피를 차지하고 있다.

 

 '나는 옛날부터 수집가였지만, 지금은 내가 다른 수집가들과 같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내 수집 행태는 시장에서 외쳐대는 대상물들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다른 수집가들과 다르다. 나는 말 없고 빈약하고 실용적 가치가 없는 물건들에 반응한다. 이를테면 안쪽에 돌멩이가 박힌 채로 바닷물에 부식된 물통 뚜껑 같은 것 말이다. 비록 도착적이고 모순적일지라도 내 수집이 여전히 수집인 이유는, 수집가들에게 흔히 관찰되는 보상의 패턴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 수집은 잃어버린 사랑을 채워 준다. 내 수집은 그 대상물 속에 깃든 다른 신에게 응답한다.'

 

 나는 수집에 대해 떠올리며 필요와 추억을 말했지만, 저자는 상실과 보상에 대한 의미를 드러내며 자신의 어린시절을 밝힌다. 일견 대수롭지 않은 수집물이라 여겨질지 모르지만, 저자와 내가 수집을 통해 떠올린 것들의 의미는 꽤나 감성적인 부분에의 충족과 맞닿아 있다. 저자는 자신의 수집이 다른 여타의 수집가들의 그것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물질적인 가치로 본다면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수집이 대단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의 그것과는 가장 유사한 모습으로 그러나 매우 집요한 관심으로 이어졌던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그의 수집이 더욱 눈길을 끄는 매혹이 되는 것이다.

 

 '소망컨대, 내가 물려주는 것들 가운데서 내 아이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는 뭔가 의미 있는 것을 발견하면 좋겠다. 희망컨대, 내 아이들이 어디선 나름의 기쁨을 찾아내면 좋겠다. 그 기쁨은 이 모든 것들 가운데 있을 수도 있고, 모든 것을 다시 포장하는 이 책 속에 있을 수도 있으며, 모든 것을 뛰어넘어 그애들 자신의 컬렉션과 회상 속으로 움직여가는 과정 속에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소망하는 것이다. 수집은 내가 내 삶을 붙들고 있는 더 큰 패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라고 하지만 문득이 김춘수 시인의 '꽃'이 떠올랐다. 불러주었을 때 의미가 되었던 것 처럼, 모았을 때 비로소 어떤 의미를 부여받는 것들도 있다. 그것들은 귀한 가치를 가진 유일무이한 것일 수도 있으나, 흔하디 흔한 공산품일 수도 있다. 그가 시리얼의 상자를 모았던 것 처럼. 중방 한 켠에 매달아 놓은 빵끈이 내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물려져내려온 '언젠가'를 위한 궁상같은 작은 수집벽인 것처럼. 텍스트를 읽어내는 눈길을 건조하였을지라도, 곧 나의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 떠올리자 여러 상념들이 떠돌게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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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방현석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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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 생각 이상으로 작고 얇아서 당황스러웠다. 이것이 얼마나 무거운 내용인데, 이렇게 얇고 가벼워도 되는 것일까 싶었다. 처음엔. 생각해보니 얼마나 크고 무겁던 이 사건이 가진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무엇이 되었든 무리였겠구나 싶어졌다. 아무렴 어떠랴, 그 무엇이로든.

 

 처음 책 소개글에 본문의 내용을 짧게 옮겨놓은 부분만 읽었는데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책장 하나라도 가벼이 넘길 수 있을지 모르겠을 느낌이 들었다. 쓰여져도 될까 읽혀져도 될까 아직 이른 것은 아닐까 염려가 먼저 될만큼. 잊혀지면 안된다고 하지만, 도저히 잊혀질 수 없는 그날의 사건이 이 책 안에 있었다. 특히나 사건을 모티브나 배경으로 한 것이 아니라, 실제 사연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니만큼 그 참혹함이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현실이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두운 상처, 부족한 면모를 재확인 시킨다. 참 고통스럽지만 현실이라면 직시해야할 내용이다.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3주기가 지났지만 아직도 당시 너무나 큰 충격에 정신적인 무력감이 짙게 배어나오던 것을 잊지 못한다. '세월'에도 그날들이 묘사되어 있다. 모두 구조되었다는 오보,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 구조되지 못한 수백의 생명들이 어떠한 손도 쓰지 못한 채 희생되었다는 것. 시간이 지나면 그저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수습되었다는 사실이 축하로 변해버린 현실까지 너무나 생생하다. 아픔도, 수습도, 원인에 대한 규명과 책임 마저도, 모든 것이 아직 진행중이라 안타깝고 조심스럽다. 하지만, 그만큼 더 이르지만 꺼내어야 할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라 생각되고 또 의미있었던 것 같다. 어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너무나 많은 학생들이 미안하게 희생되었고, 그로인해 추모와 애도가 한 곳에만 몰린 것은 아니냐는 말도 나왔지만 '세월'을 읽으면서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체감했다. 희생된 모든 이에 대한 죄의식에 가까운 슬픔이 또 한번 깊게 되새겨진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 여성들이 한국으로 결혼을 하러 오게 되는 과정과 현실까지도 낱낱이 담겨있다. 남겨진 가족들이 받을 부러움과 질시 혹은 해결되지 않은 갈등도 또렷했고, 그네들이 한국에서 겪는 결혼생활의 면모들이 좋건 나쁘건 간에 같이 있었다. 폭력이나 의심, 의존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기울어진 관계같은 것들. 세월호 뿐 아니라 자국민이 아닌 이들에게 우리가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도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다.

 

 마침 낮에 만난 이의 가방에 여전히 매어져 있는 노란색의 리본에 눈길이 머물렀던 것이 떠오른다. 길지 않으니 긴 연휴를 앞두고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당신들의 시간은 거기서 멈췄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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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뿔소를 보여주마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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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뿔소는 태어나자마자 뿔이 자라기 시작한다. 코뿔소의 뿔은 죽기 전까지 자라는 걸 멈추지 않는다. 싸우다가 부러져도 다시 돋아나 평생을 자란다. 코뿔소 새끼는 어미의 뿔을 보고 가야 할 곳을 찾는다. 코뿔소는 새끼든 어미든 뿔이 가리키는 방향으로만 간다."

 

 사실 아직, 제목에 있는 코뿔소의 의미를 다 모를 것만 같다. 이제와서 다시 프롤로그를 보면 거의 모든 내용이 마치 주마등처럼 휙 훑고 지나가게 되는 것 같은데, 읽는 동안에는 프롤로그를 의식하지 못했다. 그만큼 빠져들어 읽었던 것 같다.

 

 사건과는 별개로 인물들이 하나같이 과거로부터 짊어진 짐이 하나씩은 있는 것 같아 그것이 왜 지금 여기에 모인 이들인가 싶이 과하다고 여겨지면서도, 당연하게도 끝으로 갈수록 사건을 계기로 그들이 자신의 짐을 풀어내던 터트려버리던 어떤 결과가 있어줄 것이라 기대도 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과거가 보여지기만 할 뿐 어느 방향으로든 명확하게 결론이 맺어지지 않는 면이 더 많아서 그 점이 예상 외였다. 두식이 아버지의 죽음을 트라우마로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대리만족같은 감정을 느끼기보다는 현실적인 분노를 범죄자들에게 쏟아붓는 모습도 의외였다. 오히려 더 냉정한 대처를 했어야 할 법했던 수연이 지나친 관여를 했다. 자신이 그어놓은 선에서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이 보였던 수연이 내면을 자각하고 침묵했던 것처럼 예상치 못한 반응들이 흥미로웠다. 그에 비하면 가장 인간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그려졌던 준혁이 생각 외로 전형적인 기승전결이 있는 형태의 인물이었다.

 

 오랜만에 읽은 추리소설이다. 긴호흡의 글을 읽어본 것도 오래된 것 같은데 추리소설로 읽은것은 더 오래된 듯한 기분이라 처음엔 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생각보다 문장이 잘 읽혀서 읽기 시작한 날 단숨에 다 읽어내렸다. 관계적 맥락은 간단한 편인데 읽다보면 방향성이 과연 맞는 것인가 싶은 지점도 생기도 꽤 흥미로웠다. 반전에 초점을 두고 그것만을 클라이막스로 끌고 가려는 내용이 아니라 결국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가를 계속해서 어필하고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다만 그 묘사가 생각보다 평이했다는 점은 아쉬웠다. 세상 워낙 잔인한 일들이 많아서 그런가 모든 일의 시작점이 된 엽기적인 사건이 생겨났다는 생각보다는 좀 전위적이고 지나치게 많은 의미가 부여된 사건이 생겼구나 하는 정도의 느낌이었다. 물론 사건의 배경이 어떤 실제적이고 잔인한 일들 이상으로 큰 상처로 남은 사회적-개인적 사건이었지만 현재로 돌아와 묘사되는 일련의 납치, 살해 사건들은 의외로 평이하게 다가왔다.

 

 제대로 된 청산이 되지 않은 과거를 두고 끊임없이 콘텐츠가 생성되고 있고, 청산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고착되고 유착되어 버린 현실을 또 한번 지목하는 소설이었다. 이래도 끊어내지 않을 건가, 싶은. 정 안되니까, 세상이 변한게 없으니까, 복수라고 나선 것이 결국은 이런 형태로밖에 나올 수 없는 것 아닌가. 복수조차 셀프인 현실도 그렇고, 과거에 시비를 가렸어야 했을 일이 아직도 정리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어쨌든, '청산'하자고 외치는 사람들에 의해서 새로운 선거를 앞두고 있는 와중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만한 내용이었다. 이상하지만 읽고나면 투표해야지 싶은 기분이 든다. 그점이 또 재밌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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