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정 - 20세기의 스무 가지 교훈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조행복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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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민주주의의 유산이 자동적으로 우리를 그러한 위험으로부터 지켜 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잘못된 생각이다. 오랜 전통에 따라, 우리는 역사를 연구하여 복정의 뿌리 깊은 근원을 이해한 다음 여기에 적절하게 대처할 방법을 심사숙고해야 한다. 우리는 20세기에 민주주의가 파시즘과 나치즘, 공산주의에 굴복하는 것을 보았던 유럽인들보다 결코 더 현명하지 않다. 우리에게 한 가지 이점이 있다면 그들의 경험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래야 할 때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정치 이야기로 뜨겁다. 그런데, 막상 정치에 대해 잘 아느냐고 물으면 대체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어떻게 알아야 하는지도 막막한 경우가 많다. 뉴스나 신문에서 본 것들로만 판단하기엔 언론의 신뢰성 자체가 의문이 가는 현 상황이 썩 미덥지 않다. 선거를 앞두고 하고픈 말도 많고 알고픈 것도 많은데 어디에 물어보기도 애매한 것들이 많다. 정치 얘기가 나오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거나 하고픈 말을 속으로 삭히고 넘어가는 사람들에게 권해줄 만한 책이다. 그리고 강해보이는 표지에 비해 내용은 재미가 느껴질 정도로 흥미롭게 되어 있다. 첫 장 '1 미리 복종하지 말라'에서 설명하는 예측 복종이라는 것도 단어는 생소했으나 잘 알려진 밀그램의 실험으로 예를 든다. 이점이 꽤 영리한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처음, 책의 도입부를 읽기 시작했을때 느껴지던 부담감이 다소 해소되는 것을 느꼈다. 생각보다 멀리 떨어진 이야기를 하고 있는게 아니구나 하고 여겨지면서 내용에 더욱 흥미를 갖게 된다.

 

 " '진실이 뭡니까?' 때때로 사람들은 행동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질문을 던진다. 냉소주의는 우리를 세상 물정에 밝고 유연한 사람처럼 느끼게 만든다. 동료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무관심의 늪으로 굴러떨어지는 순간에도 말이다. 사실을 분별하는 능력은 비로소 당신을 하나의 개인으로 우뚝 세운다. 그리고 공동의 지식에 대해 모두가 신뢰를 보낼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의 사회를 이루게 된다. 진실을 조사하는 개인은 사회를 건설하는 시민이며, 그러한 개인을 싫어하는 지도자는 잠재적 독재자다."

 

 각 장의 내용이 길지 않다. 그런데 하나같이 생각할 거리들을 제공한다. 지난 1년여간 우리나라를 뒤흔든 끔찍한 게이트 뿐 아니라 20대 총선, 그리고 곧 다가올 선거까지 국민들이 나서서 행동하여 이뤄낸 변화가 많다. 영국의 브렉시트와 미국의 45대 대선을 지켜보며 자신들이 행사하는 한표가 무엇을 하는지 조차 모르는 채 주위에 휩쓸려 표를 던진 결과가 어떤지 간접적으로 지켜보기도 했다. 과거 뿐 아니라 현재도 다른 나라의 정세는 긴밀한 연결이 되어 영향을 주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미러링도 되어 준다. "폭정"의 '8 앞장서라' '11 직접 조사하라' 등의 장에서 이런 상황에 대해 더욱 잘 일깨워주고 있다.

 

 장미대선을 앞두고 지지하는 후보를 응원하기 위한 피켓을 손수 만든 시민을 보았다. 피켓에는 '하고싶은거 해' 라고 적혀 있었다.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주겠다는 어찌보면 위트있는 내용의 응원 피켓이었다. 물론 그 열정적인 행동하는 시민은 앞으로도 그 후보의 노선을 주의깊게 지켜볼 것이고, 꾸준히 정치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그 피켓의 문구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어떤 후보가 대통령이 되든 완벽한 인간은 없다. 99가지의 일을 잘하더라도 1가지의 일이 부족할 수도 있다. 이때 국민의 피드백 또한 지치지 않고 열성적이라면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폭정'을 읽고 보니 문득 눈에 확 들어온 불편함이었다. 이제 다시 제대로 된 나라에게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지금 이 시대에 반드시 읽어볼 필수적 지식을 '폭정'을 통해 만나 볼 수 있었다.

 

 "20 최대한 용기를 내라 ; 아무도 자유를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는 모두 폭정 아래서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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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초 정치사회 수업 - 지금 꼭 알아야 할 필수 지식 원포인트 레슨
CBS 노컷뉴스 씨리얼 제작팀 지음 / 허밍버드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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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이해하기 쉽도록 전달이 잘 되도록 만들어진 책이라는 것을 알면서 봤지만 기대 이상으로 전달력도 좋고 재미있었다. 그만큼 쉽고 재밌게 전하기 위한 노력이 많이 들어간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용이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다루고 있는 주제도 다양하고 색이 확실한 편이다. QR코드를 사용해본 것은 이번이 두번째인데, 지난번에 일적으로 QR코드 사용법을 미리 알아뒀던 탓에 헤메지 않고 이용할 수 있었다. 다들 이런 방법을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켜고 네이버에 들어가서 검색창 오른쪽 끝에 있는 마이크 표시를 눌르면 아래에 선택할 수 있는 기능이 쭉 나열된다. 그중에 코드를 눌러 나오는 화면에 QR코드를 맞춰대면 영상이 보인다. QR코드를 사용할 때마다 생소하면서도 참 좋은 기능이라고 생각된다.

 

 주변 사람들이랑은 정치 얘기하는 거 아니다"라는게 왜 우리 사회의 정론처럼 되어 있는데, 요즘은 정치에 관심 없으면 작금의 사태에 불만조차 꺼낼 수 없는 분위기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참 착한게 잘못된 정치인도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투표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도 문제라고 스스로를 검열하는 분위기가 짙게 형성된 것이다. 만나서 감정 상하지 않을 얘기만 하고 끝나면 정작 중요한 우리 생활, 미래에 연결되어 있는 정치 얘기는 속에만 담아두고 지내다가 막상 활발히 정치 얘기를 하려니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막막할 때도 많다. 모르는 단어가 나왔는데 모른다고 하면 흐름이 끊길까봐 혹은 내 견해가 그로인해 무시당하게 될까봐 그냥 넘어갈때도 있다. 말을 안하고 표현을 줄이다보면 점점 더 무관심해지고 멀어지게 되고.

 

 이번 장미대선을 앞두고 워낙 극단적인 정치색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시기기 때문에 서로 견해가 다르다면 토론을 통한 의견 교류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정당은/그 후보는 이래서 마음에 안들어' '출신이 어디라서 안돼' 처럼 내가 맞고 니가 틀리네 니가 틀렸으니 내가 맞았네 분분한 다툼이 되기만 하고 제대로 된 토론이 어려운 점이 아쉽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지금도 정작 이번 대선에 지지하고 있는 후보에 대해서 왜 지지하느냐고 묻는다면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저 후보가 마음에 든다'고 밖에 할 수 없어 답답하다면 잠깐의 시간을 투자해서 '100초 정치사회 수업'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저 감정적인 대응만 하게 되는게 아니라 진짜 쉽게 개념부터 정리하여 보는 시각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정치 뿐 아니라 페미니즘, 위안부, 노동자인권 등 사회적 문제들까지 함께 다루고 있는데, 여러모로 투표권을 지닌 사회 구성원으로서 좋은 역할을 수행할 밑바탕이 되어줄 것이다. 지금 벌어진 우리 사회의 이 심각한 문제들이 제대로 수습되지 않은채 그냥 농담처럼 이게 다 잘못된 정치인 때문이다 라고 말하고 넘어가는게 쿨한게 아니라, 자신의 관점으로 의견을 말할 수 있는게 쿨한거니까. 다시없이 정치와 선거에 대한 온 국민의 관심이 큰 지금 시기에 딱 필요한 좋은 책이다. 더는 후회하지 않아야 할 선택을 앞두고 두루두루 많이 읽히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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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결정짓는 다섯 가지 선택
로버트 마이클 지음, 안기순 옮김 / 책세상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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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젊은이들이 이 책에서 다루는 중대한 선택을 현재 눈앞에 두고 있으며 앞으로 선택해야 한다. 노년기에 다다를 때까지 평생에 걸쳐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선택하게 만드는 희소성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혜와 합리성을 발휘해 능숙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다면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다."

 

 내용은 다소 딱딱하기도 한데 가독성은 꽤 좋은편이라 문장이 막힘없이 읽힌다. 주제 자체가 흥미로워서 관심을 잃지 않고 보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매순간 고민하고 선택하고 만족하거나 후회하니까. 너무나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주제를 들고 왔기 때문에 점점 핵심에 다가갈수록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과거에 내가 한 선택이 최선이었는지 확인받고 싶거나, 지금 이 순간에도 하고 있는 선택이라는 것에 참고를 하고 싶거나, 앞으로의 일에 도움을 좀 받고 싶은, 인생을 좀 더 잘 살아보고 싶은 열망을 잘 캐치해냈다고 생각한다.

 

 "이 장에서는 리스크가 무엇이고 어떻게 작용하는지, 어째서 직업에 따른 소득수준에 영향을 미치는지, 일부 승자와 패자에게 어떻게 전개됐는지 포괄적으로 살펴봤다. 하지만 직업을 선택할 때 리스크를 무릅쓰는 것이 어리석다는 뜻이 아니다.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이렇게 노래했다. "노랗게 물든 숲속의 두 갈래 길. 나는 사람이 적게 다닌 길을 택했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네." 하지만 프로스트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당신이 직업을 선택하며 손수 깨달아야 한다. 어쩌면 당신은 시인이 되겠다고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조금 애매한 부분이 느껴졌다. '인생을 결정짓는 다섯 가지 선택'에서 예상했다시피 교육에 관한 문제가 가장 먼저 나온 것은 이해가 됐는데, 이 책이 정말 도움이 되려면 이 교육 문제를 선택해야할 시기를 앞둔 대상들이 읽어야 한다. 물론 몇가지 선택을 이미 해치워버린 뒤에 읽었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하나라도 더 참고하여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읽는다면 더 좋을테니까. 그렇다면 청소년, 아무리 늦어도 고등학생 정도면 이 책을 읽어서 진로/진학 문제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가 직접 생각해본다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그 정도 나이의 학생이 읽기에는 다소 딱딱하기도 하고 쉽사리 손이 가기는 어려운 내용이었다. 요즘 학생들의 지적 수준이 매우 높기는 하지만 그만큼 취향도 확고한 편이니 좀 더 캐주얼한 느낌으로 만들어졌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누군가는 만학의 길을 다시 걸을 수도 있는 일이고 지나간 선택도 모두의 최선이었을테니 당신이 어느 시기에 있던지 남은 선택이 있다면 읽어볼 만 할 것이다.

 

 직업 선택에 관한 부분에서 아쉬웠던 점은 그래프 수치가 제공되는 내용이 많이 나왔는데 미국 상황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겠지만 구분이 백인 흑인 히스패닉 정도로 나와있거나 직업별 대학진학률 등이 국내 상황이랑은 맞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앞서 교육 부분에서 대학진학 등을 두고 기회비용을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이 나왔었는데 직업별 대학진학률을 국내에서 따진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고 그렇다면 기회비용에 대한 부분도 고쳐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된다. 앞선 두 선택이 필수적인 면이 있다면 뒤이어 제시되는 두 선택은 조금 다르다. 결혼과 출산은 말 그대로 그 과정을 자신의 인생에 받아들여 적용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문제가 된다. 현재로서 십여년의 기간동안 교육을 받고, 그 뒤에 직업을 갖는 일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거쳐가는 과정으로 어떤 선택을 하느냐를 고민하는 것이다. 교육을 받을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고민조차도 이르면 고등학교 보통은 대학진학 정도이다. 그 뒤로 오는 직업에 대한 고민도 직업을 가질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라기 보다는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의 선택 문제이다. 하지만 지금 결혼과 출산은 그 자체가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문제로 해당 부분에 대해 관심깊게 읽었다. 개인적으로는 하지 않는 쪽에 좀 더 무게가 실려 있는데 만약 한다면 따져봐야 할 조건들에 대해 이 책에서 솔직하고 다루고 있는 점들이 많아 참고할 문제들이 있었다.

 

"1장에서는 개인이 선택할 때 자신의 가치, 선호, 능력, 기회가 개입한다고 설명했다. 그 후에 소개한 몇 가지 개념은 당신과 개인적으로 관계가 있고, 당신의 활동과 생산성, 타인과 주고받는 작용, 당신이 선택하고 살아가는 세상의 현실과 관계가 있다. 이때 중심은 당신이다. 자신의 주권을 강조하고, 외부로 반경을 넓혀 가족, 친구, 시장에서 함께 경쟁하는 타인과 지역사회를 에워싸고, 마지막으로 희소가치와 기회와 한계, 삶의 불확실성과 불평등을 아울러야 한다. 스스로 선택해 행동을 결정하고 나면 행동이 당신을 정의한다."

 

 나는 삶에는 방향이 있어서 어떤 선택을 하던 흘러갈 곳으로 도착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면이 있다. 어찌보면 이 책에서 말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느끼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가능하다. 개인의 삶을 두고 더 좋고, 더 나쁜 결과라는 것은 없다고 여겨질 정도로 모호하며 가치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정을 어떻게 꾸밀지는 선택할 수 있으니 이성적으로 더 좋은 선택을 하며 살고 싶다면 한번 읽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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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르라미 별이 뜨는 밤 반올림 38
김수빈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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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나는 아무래도 너를 한 번 더 만나야 할 것 같아."

 

 때이른 매미의 날개 무늬를 단 표지는 감각적이었다. 여름에 태어난 작가라서 그런지 전작도, 이번 '쓰르라미 별이 뜨는 밤'도 여름과 얽혀있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태어난 계절을 좋아하던데, 작가도 그런지 궁금해졌다. 처음에는 그냥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궁금함이 많았는데 읽고보니 어딘지 환상적이면서도 씁쓸한 분위기가 가시지 않는 그런 여운이 짙게 남았다. 가끔 이렇게 혹은 종종 '청소년'이나 '아동'이라는 수식을 달고 나오는 작품들이 더 깊게 마음을 때린다. 좀 더 날것의 감성으로 생생한 점도 있고 구태의연하고 불필요한 어른의 내면을 굳이 직시하지 않아도 되어 좋을 때도 있다.

 

 결이 앞에 등장한 진이라는 소년이 자신과 그녀는 우주인이라고 주장한다는 내용을 보고 단순한 현실 도피라고 먼저 떠올렸다. 결이나 진이를 보고 있자면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라도 믿어서 현실을 탈피하고픈 마음이 생길 수 있으니까 하며. 중학생과 고등학생, 한창 예민한 시기에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의지할데가 마땅치 않아 성치않은 마음을 안고 지내는 둘이기에 서로의 안에서 같은 결을 봤다고 생각했다. 우연한 만남이 계속되는데도, 결이 흔들리는 동안에도 '아닐거야'하고 생각했다. 어른은 어른이었나보다. 그래서 이 소설의 결말이 더 마음에 들었다. 사실 읽으면서는 혹 사실 비가 매미인이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봤다. 금방이라도 세상을 떠날 것 같이 위태로운 비가 차라리 매미인이라 떠날 때가 된 것이라면 덜 안타까울까 싶었다.

 

 결이나 진이 강한 아이들로 보여서 다행이지만 그들이 처한 소설 속 현실은 심각했다. 친구에게 대놓고 사생아라는 모욕을 당하거나, 성인도 하기 어렵다는 병자의 수발을 들어야하는 상황, 제대로 된 생활을 하고 있는지 관심도 없는 채 폭력을 휘두른 아버지, 외진 공원에서 집단 폭행을 당하고 담뱃불이 지져질 상황에 놓이면서도 가족, 학교 어디에도 말하지 못하는 등 마치 예민한 지구인들이 본능적으로 자신들과 다른 매미인의 냄새라도 맡은 양 그네들을 괴롭힌다. 마치 그들이 지구를 떠나는게 당연하도록 느껴지라고, 땅속에서 참고 견디며 지내는 매미처럼 힘든 시련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이 안타까운 한편 매미13과 매미17의 절박함도 공감됐다. 멸망을 앞두고서도 매미인들이 자신의 미래를 선택할 수 있게 해준다니, 매미인들은 너무나 관대했다.

 

 금방 책장을 덮었지만 나 역시 진을 한 번 더 만나야 할 것 같아졌다. 남겨진 여운이 강해 몇 번은 더 읽어도 좋을 것 같다. 결이가 어떤 선택을 했더라도 그랬을 것 같다. 아직은 좀 이르지만 금새라도 매미 소리라 찢어질 듯이 울리는 한낮의 여름과, 팔월의 마지막 날을 지나가는 어느 여름밤이 떠오를 것만 같다. 다소 판타지스러운 내용과 함께 상처를 감싸안은 한 소녀가 성장하는 모습이 담겨 있는만큼 깊이 이해하며 애정어린 눈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아직 봄을 다 보내기는 아쉽지만 여름의 입구에 누군가에게 선물해준다면 좋을 것 같은 책이다. 여름 내내, 매미 소리가 들릴 때마다 결과 진을 떠올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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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블로거 아름다운 청소년 14
아나 알론소.하비에르 펠레그린 지음, 김정하 옮김 / 별숲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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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이 금요일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나도 알고 있다. 일주일 중에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날이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삶을 가진 사람들 이야기다. 나 같은 사람은 아니다."

 

 책소개로 봤던 내용보다 실제로는 더 흥미롭다. 가공의 인물로 SNS 계정을 만들었는데, 공교롭게도 실존하는 유명 인물과 같은 이름이었다. 가짜 계정으로 찾아온 사람들의 오해를 해명하거나 없애지않고 그냥 놔두었다 생긴 사건이라는 단순한 줄거리로는 다 알 수 없는 기지가 안에 담겨 있었다. 처음엔 단순히 허영심으로 가짜 계정을 만들어서 다른 사람인척 하는 소녀를 떠올렸다. 예전에 처음 개인 SNS의 시초라고 할 수 있었던 플랫폼을 이용해서 실제 자신과 다른 삶을 사는 거짓된 모습을 꾸며내는 주인공을 다룬 영화를 본 적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관심, 부러움을 받고 싶어서 다른 사람이 올린 사진을 도용해서 본인인 척하거나, 값비싼 물건들의 사진을 올려 자신의 것인양 꾸며낸 여자의 이야기였다. 그 영화의 주인공도 에바와 비슷하게, 혹은 더 심하게 집안에 틀어박혀 지내는 히키고모리였다. 에바와 그녀는 차이점이라면 그 영화의 주인공은 일부러 다른 사람의 일상 사진을 훔쳐와 새로운 자신을 꾸며냈지만, 에바는 의도치 않게 이미 존재하는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어 가짜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점이다.

 

 읽으면서 에바에게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생각해봤는데 놀랍게도 에바는 아무 문제가 없는 소녀였다. 성적도 우수하고 글도 잘쓰고 머리도 영리하고 외모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다만 사교적이지 못한 면이 있었는데 그 점에 대해 본인은 크게 불편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에바를 문제적으로 만들고 괴롭히는 것은 에바의 엄마였다. 에바가 비사교적이라는 면을 지나치게 날카롭게 지적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엄마의 그런 태도 역시 학대나 가정폭력이 아닐까 싶어졌다. 금요일 저녁에 놀러나가지 않는 딸을 들볶는 엄마라니, 에바가 원치 않는 외출을 강요하면서 매번 약속이 있는지를 감시하듯 확인하는 모습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에바가 바라는대로 외출을 하고 돌아온 다음에는 또다른 문제점을 만들어내어 금새 소리를 지른다. 에바가 저지른 사건의 문제보다도 엄마와의 사이에서 겪는 갈등이 좀 더 심각하게 다가왔고, 그 해결점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면 좋았을거라 아쉬움이 남았다. 에바가 달라진다 하더라도 엄마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바뀌는 건 없을 것 같다는 생각드는 부분이 많았다.

 

 번역이 되어서 그런지, 어떤 부분들에서는 감정을 느끼거나 표현하는 방식에서 다소 어색함을 느꼈다. '가짜 블로거' 뿐 아니라 다른 책들에서도 가끔 느끼는 사소한 위화감인데, 더 매끄럽게 바꿀 수 있으나 가능한 원문의 내용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를 지키기 위해서 아닐까 생각한다. 작은 모험과 약간의 로맨스가 섞여서 한 소녀가 조금 성장하는 내용을 담아내었다. 시작은 아무 의도 없이 그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SNS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는데 지나친 주목을 끌고, 의문의 사나이가 나오고, 비밀에 싸인 인물의 정체가 손에 잡힐 듯이 가까워진다. 가짜 계정을 만들었다는 것만으로 처벌을 받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소녀가 어떻게 진실을 밝히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되는지 그 과정을 따라가는 여정이 꽤 두근두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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