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너머에 사람이 있다 - 16년차 부장검사가 쓴 법과 정의, 그 경계의 기록
안종오 지음 / 다산지식하우스(다산북스)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검사라고 하면 실생활에서 직접 마주하기는 어려운데 드라마나 영화 속에는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인물이라는 이미지 뿐이다. 보통은 정치, 경제권에 연결되어 있는 부패한 모습이나, 정의롭지만 폭력적이고 자신의 직업을 앞세워 다른 사람들에게 고압적이거나 하는 모습이 다반사다. 그런데 저자 안종오의 글을 읽다보면 그가 일상생활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의 직업을 모르고 있다가 알게 되거나 하는 등의 보통의 아저씨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면면을 느끼게 만든다. 어떤 부분에서는 다소 글 분위기가 올드한 감수성에 충만해지기도 한다. 자기 자신에게 남기는 짧은 위로의 말 같은 것을 남기다던지, 하는.

 

 글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다뤘던 사건들이 어땠는지 보다, 일을 하면서 지친 자신의 마음을 글을 씀으로써 달래고 위안을 받았다는 부분에서 놀랍고 또 대단하게 여겨졌다. 생활과 일을 바쁘게 오가는 와중에 이런식으로 글을 써서 기록을 남기는 일이 정말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앞서 '올드한 감수성'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저자가 투박하고 솔직한 자신의 감성을 가감없이 드러냈다는 부분도 좋았다. 벽이 느껴지지 않아 마치 서로 좀 아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무슨 일 있으면 안종오 검사 같은 검사에게 상담받고 도움을 청하고 싶다는 생각이들게.

 

 더불어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 역시 어떤 영향을 주고 또 받으며 지낼텐데, 그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도록 해야겠구나 싶어졌다. 저자만큼 인생의 기로에 서있는 위태롭고 절박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저자의 작은 배려나 관심이 한 사람의 태도를 바꾸고 인생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보고 나니 사람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의 중요성에 대해 재고해보게 된다. 적어도 남의 하루에 웃음 한 번 더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구나 싶어졌다. 따뜻한 글이었다.

 

 짧은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고 직업적인 전문적은 내용은 적어 읽기 편하고 재미있었다. 종합적인 감상은 다소 전형적인 분위기로 진행되었다는 것. 의사, 변호사, 수사관, 교사 또는 상담사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이 직업적으로 겪었던 일들에 대해 풀어내는 책을 썼을때 그 책들이 갖게되는 구성과 분위기가 있는 줄 의식하지 못했는데 문득 '기록 너머에 사람이 있다'를 읽다보니 느껴졌다. 처음엔 강력 범죄에 대한 내용이 나오지 않을까 뭔가 자극적인 소재가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봤는데, 사람 냄새나는 소재들을 주로 다룬 상당히 평이한 분위기다. 가볍게 읽어보기 좋은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한민국의 시험 - 대한민국을 바꾸는 교육 혁명의 시작
이혜정 지음 / 다산4.0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몇 해 전에 프랑스 고등학생들의 졸업 시험 문제가 인터넷에 돌아다녔다. 책 안에도 언급되었던 '바칼로레아'가 그것이다. 졸업 시험 문제를 본 사람들은 놀라움과 부러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고등학생들에게 요구되는 졸업 자격 요건이 이런 형식과 수준이 가능할지 반신반의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문제 항목들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졌다. 내가 풀 수 있을까, 하고. 결과는 뭐. 핑계대자면 이런 식의 서술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제대로 내 관점을 정리하여 풀어낼 수 있는 문항들이 없었다. 할 말도 없고, 쓸 말도 없어지는 부분이다. 궁금할 사람들을 위해 몇 문제만 -

 

1장 인간(Human) 질문1-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 
2장 인문학(Humanities) 질문10-인류가 한 가지 언어만을 말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3장 예술(Arts) 질문3-예술 작품의 복재는 그 작품에 해를 끼치는 일인가? 
4장 과학(Sciences) 질문9-기술이 인간조건을 바꿀 수 있는가? 
5장 정치와 권리(Politics&Rights) 질문4-여론이 정권을 이끌 수 있는가? 
6장 윤리(Ethics) 질문6-무엇이 내 안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를 말해 주는가? 

 

 성인이 되고서도 내가 한번도 생각본 적 없는 문제들이 있었다는 것과 생각해보려고 해도 깊이 있는 답이 나오지 못했다는 것을 우리나라 교육에 문제가 있어서라고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젠 늦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청소년들은 대화하고 생각하면서 성인이 되어간다고 생각하면 부럽다. 우리 학생들이 저런 문제들에 대해 사유하고 토론하는 교실을 떠올려보면 진심으로 근사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바칼로레아 같은 시험 제대로 도입한다고 해서 교육 혁명이 시작되진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 논술 학원은 더 시장을 넓히게 되고 답이 없는 시험에서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인터스텔라)

 

 때문에 저자가 역설하는 교육 혁명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받아왔던 익숙한 기존의 교육 체계의 필요성 또한 놓지 못하며 책을 읽었다. 자신이 배우는 것들의 큰 흐름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생각을 정리하여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고, 우리 교육 현실에서 학생들에게 이런 힘을 길러주는 교육이 그동안 등한시되어 왔고 부족했다는 것을 느끼고 있지만, 연도나 공식을 외우는 디테일이 필요함을 무시할 수 없다. 그것 역시 중요한 배움의 한 부분이고 그러한 지식을 배울 수 있는 때는 초중고등학교 시기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다. 두분야의 균형이 필요한데, 그렇다면 안그래도 힘든데 학생들에게 지워지는 부담이 더 커지는 일만 될 것 같다.

 

 그래서 문득 저자가 이토록 간절하게 주장하는, 또 많은 사람들이 필요성에 대해서 공감하는 교육 혁명이 실제적으로 학생들에게는 달갑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이들은 갈수록 영민해지는데, '안정성'이라는 것을 따르면 오히려 덜 소모적일 것이란 계산이 안될까. 수능으로만 몰아가는 교육 현실에 분명 문제점이 있고 변화는 필요하지만 단계적으로 교육 방식을 바꾼다해도 우리나라 현실상 많은 시행착오와 부주의가 있을 것은 자명하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미래가 불확실성을 보이게 되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은 달라지는 제도를 또다시 수용해야 하는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조차 어른의 필요에 의해 학생의 길을 좌지우지하는 시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몇가지 깨달음이 책을 읽으면서 찾아왔다. 가장 큰 하나는 내가 이렇게나 교육 문제에서 멀어져있었던가 싶은 낯설음이었다. 이제껏 절반 이상의 해 동안은 교육을 받으면서 자라왔고, 직업을 구했을 때도 하나같이 교육 '산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일들을 했다. 그래서 나름 배우고 가르치는 일들과 가깝게 있었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떠올려보니 몇 해 동안은 수능시험일이 지나갔는지 어땠는지 체감조차 하지 못하고 지나보냈던 것도 같다. 교육을 산업으로 부르는 밥벌이를 해서일까, 실제적인 교육 [교육 ; 지식과 기술 따위를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 줌.] 과는 멀어져 상품 이름을 교육이라 부르는 판매 산업에 종사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거리가 생겼던 것일까. 저자가 말하는 대한민국 교육 체계와 그의 문제점이 생경했다. 덕분에 평소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계기가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 - 절망의 시대에 다시 쓰는 우석훈의 희망의 육아 경제학
우석훈 지음 / 다산4.0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표지에 '절망의 시대에 다시 쓰는 우석훈의 희망의 육아 경제학'이라는 문구가 있다.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방안이 있거나 이 책의 내용이 당신이 육아를 하는데 있어 어떤 희망적인 조언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저 지금 경제 흐름과 사회구조적으로 상황으로는 결혼과 육아를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으로 선택하기에 문제가 많다. 때문에 마찬가지로 육아는 누구에게나 어렵지만, 나는 이 문제를 나름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헤쳐나가고 있다는 고백과 그것이 주는 동질감이나 위로 정도의 내용이었다.

 

 글이 매끄러운 편은 아니다. 저자가 경제학자이기 때문이겠지만, 소주제로 짧게 나눈 의미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사변적인 내용들로 흐름이 빠지는 경우도 있다. 사실 기대한 점은 결혼하여 임신하고 출산하여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현시점에서 어떤 의미와 크기로 다가오는 일인지 좀 더 분석적인 시작으로 평한 내용을 볼 수 있길 바랐다. 하지만 내용은 에세이에 더 가깝다. 처음에는 기대와 실재의 간격이 넓다고 생각해서 좀 아쉬웠는데, 읽다보니 저자 개인의 체험을 담은 수기를 써놓은 것에 가깝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만큼 접근이 더 쉬웠던 것 같아 만족했다. 경제학을 버무려놓은 내용이었다면 어려운 면도 있었을테니까.

 

 궁극적으로는 육아에 대한 내용이다. 대한민국에서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이 어떤 일인지 자신은 어떻게 해나가고 있는지, 평범한 수준의 삶을 사는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지만, 나름 솔직하게 드러내려고 노력한 면들이 보인다. 아내의 경력단절, 맞벌이에서 외벌이로 바뀌면서 찾아오는 경제적 변화, 아이를 돌보기 위해 부부의 개인 시간이 없어진 점 등등 보통의 문제들이 자신에게도 생겨났다는 솔직한 고백이 공감대를 샀다. 하지만 저 정도의 생활 수준에서 그나마도 결혼하고 9년 뒤로 시간을 갖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데도 이런 상황에 힘겨움을 느끼는데 그렇지 못한 부부/부모들의 상황은 얼마나 더 어려울까 싶은 생각이 든다. 

 

 좀 독특했던 점들이 있는데, 하나는 책의 편집이랄까 디자인 적인 부분이 좀 아쉬웠다는 것. 책장 끝부분에 내용이 가깝게 여백이 부족한듯이 나와있어서 보기에 어색했다. 전체적으로 여백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책등과 책장 위아래 부분은 여백이 많거나 평범한데 책장 끝부분 여백이 다른 쪽에 비하면 좁게 느껴졌다. 그리고 또 하나는 MB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정책에 대한 문제점 비판이 종종 드러나 있다는 점이다. 셋째 아이 출산에 중점적으로 맞춰진 보조와 출산 후의 상황에 대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출산 장려만을 하는 홍보 등도 문제점으로 삼고 비판해서 공감은 가지만 문화계에 블랙리스트란게 실제로 있다던데 이렇게 확연히 드러내도 괜찮을까 싶었다.

 

 몇군데의 다듬어지지 않은 문장과 오자를 수정하여 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지금 이 흐름에 맞춰 서둘러 낸 것은 아닐까 싶은 느낌이 드는 면이 없지 않았다. 반복적인 내용과 표현을 줄이고 페이지 수를 좀 줄이는 것도 좋았을 것 같고. 전체적으로는 아쉬운 면이 눈에 밟히는데, 읽다보면 그것조차 투박함으로 느껴지고 또 괜찮아진다. 육아는 힘들지만, 아이의 웃는 모습을 보면 그것이 다 상쇄되어 버린다는 상투적인 표현이 '감성팔이'처럼 느껴지다가도, 그것이 사실은 어쩔 수 없는 진실이라 사는게 다 그런거지 하며 공감하게 되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센서티브 -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을 위한 섬세한 심리학
일자 샌드 지음, 김유미 옮김 / 다산지식하우스(다산북스)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고 나니 다른 내용들을 다 접어두고서라도, 자신이 요즘 집중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 것 같아졌다. 눈에 밟히는 요소들이 자존감, 자신감, 자기애. 자기애와 함께 나오는 자기연민 부분이 좀 애매하긴 했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온 신경이 몰려있는구나 싶어졌다. 누구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면 좋을까 생각해봤는데 생각의 끝에 아이러니하게도 나 자신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책의 맨 뒷편에 있는 자가 테스트부터 해보고 내용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얼마 전 봤던 "거절당하기 연습"의 저자 지아 장의 테드 강연이 떠올랐다. 그의 강연이 인상적이었던 터라 그 대목을 읽자마자 떠올랐는데, 이는 내가 지금 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원치 않는 모임 거절하기'와 맞물린 의미가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는 거절을 당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나는 거절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셋의 연관이 약간은 애매한데, 그는 거절 당하는 것도 그가 제안을 하는 것처럼 제안을 받는 사람의 의사표현일뿐 그것이 그의 가치에 손상을 주거나,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짓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님을 알고자 했다. 그리하여 좀 더 자신있게 자신의 소신을 펼치는 삶을 살기 위한 밑거름으로 썼다. 일자 샌드의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관한 내용도 남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을 때 상대방으로부터 거부당하지 않을까, 그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어 관계가 망가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런 염려들에서 벗어나 자신을 표현하여 진정한 모습으로 삶을 살도록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요지다. 이쯤되면 단순히 인간관계에 더이상 치여 살고 싶지 않다는 핑계로 시작된 나의 '원치 않는 모임 거절하기'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시도되는지도 알 것 같아졌다. 그리고 여전히 내성적인 것과 민감한 것이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는 것일까 애매하게 여겨졌다.

 

 3장으로 들어서면 점점 더 공감되는 내용들이 나온다.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나, 문득 사람들 사이에서 [그러다가 결국 너무 지쳐서 아무에게도 설명하지 않고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게 뒷문으로 빠져나올지도 모른다.] 는 행동을 하거나, 내 사적인 공간을 누구와도 나누고 싶지 않다는 소망하에 [손님이 너무 오래 머물러서 자신이 탈진하게 될까 봐 아예 손님을 초대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처럼 행동하던 자신의 이력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공감되는 내용들이 나오면서 점차로 나는 내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 것인가 헷갈렸는데, 앞선 2장에서 나왔던 자존감에 대한 내용이 자연스레 다시 떠올랐다. [자존감은 자신의 본질을 이해하고, 자신의 깊은 가치를 아는 것이다.] 나는 특별히 내가 민감한 사람이라고 의식하지 않았고, 않는다. 그래서 이런 몇 문장에 공감하게 되는 것이 그 사람의 성향을 단정지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게 되면서도 이게 혹시 보통의 범주에서는 대수롭게 여겨질만한 특이점이었던가 싶어졌다. 다만 나는 자신이 내성적인 면이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남들과 처음 만나는 일에 어려움을 겪거나 하지는 않지만, 함께 있는 시간보다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즐기고 집 밖으로 나서는 일이 벅차 두통이라는 피곤으로 돌아올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완전히 내성적인 것도 아닌 것이 무리와 어울리는 일을 적당히 해내거나, 내 직업은 언제나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과 나의 거리는 애매하게 멀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저자가 [인간은 두 가지 성으로 구분될 뿐 아니라 이러한 두 가지 유형으로도 구분된다.] 고 하는 문장을 첫장 두번째 문단에 두었을 때부터- 물론 뒷부분으로 가면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유형'이 있고, 이런 분류를 하는 것은 [사람들을 여러 가지 유형으로 설명하는 것은 실제로 엄청나게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사람의 성은 두 분류로 나뉘어질 수 없으며, 이제 그것을 알고 인정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민감함이 주는 특징인 사려깊음에서 벗어난 시작이 아니었는가 하고 반발심이 들었었다. 거기에 계속해서 반복되는 '높은 민감성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표현들이 기존의 '내향적인 사람들'에 대한 규정과 크게 다르지 않아 내향적이다라는 말이 가진 부정적인 느낌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안 용어에 머문 것 같단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이 책안에 인용된 상담자들의 말은, 민감한 사람들인데도 자신의 이야기가 책에 실리는 것이 괜찮았을까 싶을 정도로 내밀한 내용도 있었다. 개인의 트라우마가 되었음직한 어린시절의 일이나 쉽게 말하지 못했을 속마음 같이.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들' 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로 책을 읽었다. 책 날개에 달린 당신은 얼마나 민감한 사람입니까? 하는 질문들을 읽다보니, 민감하다는 것일까 소심하다는 것일까 싶게 애매했고, 얼마전에 읽었던 "고슴도치의 소원"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예민함, 민감함, 소심함같은 성향은 거시적이고 전체적인 것을 바라보던 흐름에서 미시적이고 개인적인 것에 집중하게 된 시기로 변화하면서 화두로 떠오른 우리의 일부가 아닐까. '혼밥'이라는 것도 어찌보면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나온 한 갈래같다. "센서티브"에서는 모두가 다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고 했지만 그래서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들'이 있다고 보고 있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누구나 민감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성향에 묻혀 덜 드러나는 사람이 있고, 그 특질이 가장 크게 표출되는 사람도 있는 것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미안하지만 민감한 것이 뭔가를 더 느낄 수 있고, 더 세심하게 앞일을 대비하는 성향이 되고, 남들보다 특별하게 되는 특질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었다. 그것은 섬세함이거나, 신중함, 개인의 신념이나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엇나가는 시선으로 읽어서 어쩌나 싶었는데, 한편으로는 여러 갈래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발 (일반판)
반디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고발'은 진짜 괜찮은 작품이다. 처음 책을 봤을때 사실 표지 선정 관련 글을 보고 딱 지금의 표지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구면인 사람을 만나듯이 반가웠다. 그래, 이 책을 읽고 싶었어!' 하고. 북한의 작가가 쓴 글이라 해서 어떤 느낌일지 잘 가늠되지 않았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근래 어디에서도 읽어본 적이 없이 신선하면서도 그러나 오래 전의 작품들에서 보았음직하게 익숙한 분위기가 썩 마음에 들었다. 만약 이 책을 도서관 같은 곳에서 찾아 읽었더라면 반납한 뒤에는 직접 구매했을 것 같다.

 

 노동자의 삶. 아무리 아둥바둥 벗어나려 애써도 결국 찍혀나가 떨어져버린 운명 앞에 놓인 자들, 그리고 체념이 글 안에 녹아있다. 때문에 과거에 줄곧 읽어왔던 90년대 초반에서 중반까지의 한국 문학 작품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마침 첫 단편 '탈북기'에도 최서해의 '탈출기'니 하는 제목이 나오니 더욱 그러하다. 북이고 남이고 같은 문학작품을 공유하여 번역을 거쳐와 중간 전달자의 해석과 의도가 자칫 스며들 염려없이 해석되어 감상할 수 있었다는 것, 그리하여 같은 뿌리에서 자라나온 다른 열매를 보는 듯하다.

 

 분단은 우리가 가진 가장 큰 아픔과 상실이자 정체성이며 결코 맞닿지 않는 평행한 두 선과 같다. 그 자체로는 애석하고 안타까운 일인데 분단국가라는 것이 우리를 관통하고 있어 저절로 우리는 땅을 두고도 오갈 데 없는 난민이자 뿌리를 잃은 실향민이 되고, 건널 수 없는 금기와 합쳐질 수 없는 이념을 가지고 반목하게 된다. 분단은 내재된 핏줄이 되어 문학과 공연, 극 예술 전반에 주제와 소재가 되어 우리를 특정짓는 요소이자 밑받침되는 바탕이 되어준다. 우스갯소리로 분단되지 않았다면 나오지 못했을 작품들이 많았을 것이라는 조의 농담도 있으니.

 

 작품 안에 담긴 내용만큼 드라마틱한 출간 과정과 함께 이목을 모을만한 요소를 많이 가진 책이다. 책을 가지고 있는 동안 '북한'과 '고발'이라는 키워드만으로 내용을 묻는 사람들이 여럿되었다. 더욱이 '김정남 피살 사건'으로 한참 어지러운 시국에 '고발'의 출간이 맞물려, 작품을 향한 세간이 관심이 자연스럽게 한데 모아질 시점의 등장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 개인의 죽음이라는 불운이 또 이런 방향으로 기회를 만들어주는가 하고. 적고나니 인간성의 부재가 여실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 좀 저어되었지만 소식을 듣고 떠올린 생각 중 하나였으니 가감없이 덧붙인다.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책을 보고 어떤 작품인지 묻는데 설명할 방법이 없어 잠깐 짧은 단어라도 사전을 찾아봐두었다. 고발이니, 탈북이니 하는 표현이 이런 단어였구나 생소했다. 외부에서 걱정하는 것만큼 내부의 긴장감이 높지 않았던 탓일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말조차 이제는 흔히 불려지지 않는 시대에 남보다 더한 무관심 탓일까, 단순히 내가 공부를 덜해서 단어를 몰랐던 탓이 가장 크겠지만.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현 시점에 대해 더 관심이 많고 많이 알고 있다는 것에 면구했다.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 북한의 모습을 현장감이 느껴지도록 생생하게 전하고 있는 그의 작품은 몇몇의 낯선 표현들과 함께 읽는 동안 조금 더 윗쪽의 서늘한 공기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기묘하면서도 충실한 체험이다. 작품이 하나하나 매우 흥미로운데 단순한 르포, 실태고발적인 내용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다양한 각도로 담아내었다는 점이 좋다. 짧은 단편안에 흐트러짐 없이 짜여진 내용이 간결하면서도 인상적이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버러 스미스가 번역을 했다고 하니 주변인들에게도 추천해볼만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