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인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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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이란 것이 무엇일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어쩌면 가장 확신하기 어려운 것이 믿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믿음이 수반되지 않은 관계는 사랑도 지옥으로 만들어버리고, 믿음의 뒤를 따라오는 의심이라는 것은 사람을 지옥 밑바닥까지 끌어내려 버린다. 행인을 처음 읽었을 때, 이치로의 어리석음에 동조한 다른 '의심하는 자'들을 떠올렸다. 그들이 갈구한 것은 믿음이었으나, 믿음을 갈구하기 위해서 치뤄야만 했던 '의심' 때문에 결국 자신도 관계도 파괴해버린 사람들. 나 역시 의심하는 자였고, 믿을 수 없는 자이기 때문에 "죽거나 미치거나 종교에 입문하"지 못한 채 스스로 만드는 지옥 그 밑바닥을 걸으며 힘겹게 책을 읽었다.

 

 소세키의 작품에는 언제나 가족들이 나온다. 그 중에서 특히 잦은 빈도로 눈에 띄는 것이 형과 형수라는 관계이다. 때로는 나의 결혼문제로, 때로는 빈한한 내가 형편이 나은 형에게 찾아가 손을 벌리려는 때의 중재자로 형수와 마주하여 대화하는 장면들이 종종 나오는데, 이번 책에서는 마치 지금까지 나왔던 관계들이 결국 이 종장에 이르러 터져나오기 위한 요소였던 것처럼 보여진다. '행인'에는 형 이치로와 동생 지로 그리고 형의 아내 나오 세 사람의 '불편한' 관계가 세밀하게 그려져있다. 동생인 지로에게 자신의 아내인 나오의 마음을 떠보길 종용하는 이치로의 모습은 그의 예민한 성격- 신경쇠약으로 이미 의심이 극에 달하였음을 보여준다. 이치로는 자신이 의심이 그저 헛된 의심었다는 확인을 원하기보다는 차라리 그 것이 사실이어서 인정해버리고 더이상 의심하지 않고 싶다는 소망에 가깝게 느껴졌다. 그런 형의 태도가 지로의 마음에도 불편한 걸림돌이 되어 늘 따라다닌다. 그리고 둘의 이해하기 어려운 관계를 바라보면서 독자의 입장 역시 조금 불편해진다.

 

 타인의 마음을 온전히 알거나 가질 수 있을리는 없다. 사랑을 하면서 타인의 모든 것을 손에 쥐어 확신하고 싶다는 마음은 누구나 느껴보았을 안타까움일지도 모르지만, 객관으로 바라본다면 확인할 수 없다하여 아내의 마음을 의심하고, 의심하다 못해 시험해보려는 남편의 태도는 불편을 넘어 경멸스럽기까지 하다. 의심이 시작되면 마음속에 귀신이 생긴다는 성어가 떠오른다. 이치로의 마음에 생긴 의심암귀는 와카야마로 떠났던 지로와 나오 두 사람이 의도치 않은 악천후로 하루를 지체하여 돌아오게 되자 점점 더 그 몸집을 부풀려 그 어떤 해명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단단한 확신으로 자리잡는다. 소통은 불가하고 어느 길로도 자신을 선택할 수 없어 결국 어디서부터 길을 잃었을지 갈피조차 잡을 수 없게 된 이치로의 편지가 안타까움을 대신한다.

 

 '행인'을 읽으면서 많이 떠올렸던 것이 '리어왕'이었다. 늙은 왕은 자신의 딸들에게 자신이 가진 권력과 재산을 나누어주려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기에 불안했던 왕은 자신을 끝까지 사랑하고 부양할 딸에게 더 큰 재산을 주려한다. 세 딸 중 두 딸은 아비에게 자신들의 애정을 맹세하였으나 막내 코델리아만은 침묵한다. 화가 난 왕은 그녀에게 아무것도 물려주지 않고 내쫓았으나, 오직 입으로만 애정을 맹세한 두 딸들에게 배신당하여 광야를 헤매이게 된다. 이 이야기는 결국에 모든 이가 목숨을 잃는 비극만이 남는다. 생각해보면 피를 이은 가족끼리도 사랑과 믿음을 확신하지 못하는데, 아내를 의심하게 되는 남자의 마음이야 어쩔 수 없는 것 같이 여겨져 이치로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의심'이란 것이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상대방과의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사람만의 공간을 이해하고 믿고 놓아주어야 한다. 애초에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거나 모든 일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타인과 나 사이의 겹쳐진 부분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고, 닿지 않은 여백이 항상 궁금한 것이 사랑이겠지만, 그 공간을 만족하고 놓아두는 것이 사랑을 대신할 오직 한 가지 믿음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며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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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선생님 5 세미콜론 코믹스
다케토미 겐지 지음, 이연주 옮김 / 세미콜론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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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즈키 선생님 2차분의 발간이 있었다.

1차분을 워낙 인상적으로 읽었기 때문에 2차분의 발간도 손을 꼽아 기다렸고 5권부터 8권까지의 총 4권의 내용을 거의 단숨에 읽어버렸다. 내용 자체도 전에 비해서 훨씬 히스테릭하고 살벌한 각을 달리고 있었고!

 

주된 내용은 5권의 중반 여름 축제 편부터 6 -7 권 스즈키 재판 8권 초판까지 이어지는 다루코 선생까지 연계되어 전반적인 흐름을 끌어가는 스즈키 선생의 결혼에 관련된 에피소드이다. 초점이 조금씩 다르게 전개되어 각각 다른 이야기가 담겨있지만 여자친구의 임신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퍼져나간 에피소드들이라 왜 이런 이야기가 생겼는지 누가 스트레스를 받고, 폭발하고, 이해하고, 정리하게 되는지 기승전결이 있는 느낌으로 읽혀진다.

 아주 보편적이고 어쩔 수 없는 이 시대의 교육현실을 반영한 내용이라고 생각되는 작품이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자세하고 섬세한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어서 일본스러움을 가득 풍기고 있구나 싶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도 저럴까 싶기도 하고, 교육현실을 떠올려봤을때 과연 이런 내용의 흐름이 가능할까 싶기도 하고. 이런 장시간의 학급회의 같은 것보다 인터넷 학교 게시판이 속칭 터지도록 글이 올라오거나, 소셜로 리트윗되면서 사건화가 되거나, 각자 개인 학습을 하기에 바빠서 교사의 혼전임신 같은것을 굳이 부도덕하다고 받아들여서 문제삼지도 않을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학교 축제에 선생님 여자친구가 방문객을 가장해 살짝 관람하러 온다거나 그녀의 임신사실을 목격한다고 해도 아마, 그냥 그런가보다 또는 와! 나 선생님 여자친구분 봤는데 외모가 이러저러하더라, 둘이 이러저러하더라. 이런 단순 가십 정도로 받아들였을 것 같은데 아무리 예민한 시기의 중학생 여자아이들이라 해도 저런 불같은 반응이라... 싶었다. 피임에 대한 성교육을 했던 부분도 있어서 모순된 발언과 행동에 문제가 있었다고 해도 둘이 결혼한다는데 뭐, 교사도 사람이구나' 싶었을거다. 어른이 된 지금 읽어서가 아니라 청소년 중 대부분은 아마도 저런 식으로 반응할 것이다. 민감한 나이의 청소년들이 저런식으로 반응할 것이다 라는 프레임을 도리어 씌워놓은 것은 아닐까 생각되는 내용이기도 했다.

 거기다 교사이면서 성인인 다루코가 학생들을 상대로 파업을 선언하거나 또 교내에서 그런 식으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 모습은 일반의 범주에서 저럴 수 있을까 좀 애매하기도 했다. 저런식이라면 기왕 들어간 학교의 교사라는 직장을 내놓아야 할 정도로 위협적이고, 일련의 사건들이 다루코에게 그렇게까지 자신을 몰아갈만할까 하는 성인의 계산이 적용됐다. 그렇지 못한 인물이라 결국은 어쩔 수 없이 컨트롤을 놓치고 말았을 수도 있지만 현실적이라기 보다는 에피소드를 위해 과장되어 튀어나오게 된 인물이었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자극적이라 보는 내가 다 민망해서 웃긴 인물이었다.

 

 2차분의 주된 내용은 스즈키 본인에 대한 것이었다. 이는 어른이, 교사가 그들이 교육하고 교류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그리고 그 영향에 대해 어떤 판단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이 담겨있었다. 대체로 재미있다기 보다는 진지하고 심각한 내용이 위주였는데 일명 '스즈키 재판'이라 불리는 내용이 어떻게 끝이 날까 궁금해서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편이었다. 만화적인 부분이라고 하면 여자친구가 생령을 보낼 수 있다는 것 정도...? 다음 9권부터 11권 까지의 3차분 내용이 너무나도 궁금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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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 지나고까지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0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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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분 지나고까지'를 읽으면서 참 정교하다고 느꼈다. 그 정교함의 방식이란 참 달콤한데, 전에 여러 조각을 모아놓은 하나의 케익을 베이커리에서 파는 일을 본 적이 있다. 각자 다른 시트와 필링을 넣은 제각각의 조각들이 하나로 모여 있는데도 서로의 균형을 맞춰 각각을 조화롭게 즐길 수 있는 모양이었다. 마치 그런 조각들을 하나의 소설로 만들면 어떨까 생각해낸 작가가 마련해놓은 한 권의 작품이 바로 이 책이었다. 각각의 인물들의 큰 삶을 그려놓고 그 안에서 잘 벼려진 한 단면을 뽑아내어 옮겼다. 읽을수록 그들이 세밀하게 얽혀있는 삶을 살면서도 결국 각자의 시선을 가진 개인이라는 거리감도 느껴졌다.

 

 이야기는 크게 세가지 내용으로 흘러간다. 대학을 막 졸업한 게이타로는 하숙집에서 만난 모리모토라는 인물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어딘지 덜 된 느낌을 주는 미덥지 못한 인물인 그는, 게이타로가 꿈꾸고 있으나 미처 뛰어들 수 없는 이런저런 일들을 겪어본 것처럼 보인다. 게이타로는 그를 통해서 그가 지나온 세계를 관찰해보고 싶어한다. 그런 게이타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리모토는 몇 달치의 밀린 하숙비를 남긴 채 거짓 출장을 핑계로 하숙집에서 도망을 나가버리고, 게이타로는 그에 대한 호기심을 가졌던 이유로 하숙집 주인에게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받게 된다.

 

 첫번째 이야기를 읽으면서 게이타로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더 관찰하는 눈으로 보게 되었다. 무기력하고, 불필요한 호기심에 공상적인 취미를 가진 젊은이란 느낌이다. 그런데 소세키의 작품들 안에는 게이타로 뿐 아니라, 이런 식으로 안온하고 어딘지 모르게 태평해보이는 인물들이 종종 나오는 것 같아 '퇴영적'이라는 표현이 본문 안에서 크게 눈에 띄였다. 주인 앞에서 모리모토를 깎아내려가면서 까지 자신의 결백함을 알리려 애썼던 게이타로가 그에게서 온 편지를 받고 내색하지 않은 채, 내심 그를 감싸주고 넘어가려는 모습을 보여 단순하게도 바뀌는 그의 마음이 재미있다고 느껴졌다. 뱀이 새겨진 지팡이가 뭐라고.

 

 게이타로의 독특한 행보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데, 직장을 구하기 위해 친구인 스나가를 찾은 게이타로는 다구치란 인물을 소개 받게 된다. 다구치는 게이타로에게 어떤 남자의 행적을 쫓는 미행을 부탁하였는데, 그는 호기심에 일을 받아들인다. 모리모토가 남겨준 지팡이를 가지고 전차에서 내린 중년의 남성을 미행한 게이타로는 자신이 그저 '바라본' 미행 대상에 대한 관찰 내용을 다구치에게 보고 하면서 "요령부득인 결과뿐이라 저도 심히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만, 물으시는 그런 세세한 일은 저처럼 어수룩한 사람이 그 정도의 시간에 알아낼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건방지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잔꾀를 부려 뒤를 밟는 것보다 직접 만나 물어보고 싶은 걸 솔직히 물어보는 편이 수고스럽지도 않고 또 확실한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라고 미행을 청한 상대방에게 답하는 특유의 순진한 솔직함을 드러내 보인다. 저런 태도에서 게이타로가 어떤 사람일 것이다 라는 느낌을 받게 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본인 역시 잔꾀를 부려 일자리를 청탁할 바에야 직접 알아보면 될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머지 이야기는 게이타로에게 다구치를 소개한 친구 스나가와 지요코의 관계에 대한 내용인데 사실 미묘한 남녀관계의 감정이라던가, 그렇다 해도 이 부분만은 어쩔 수 없다고 여기는 각자의 사정이 들어간 내용들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흥미로웠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가 모두 지나가고 난 뒤에 이들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었던 게이타로라는 존재가 이 중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외부의 타인으로 남겨져 버린다는 사실이,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빼앗는 사람이나 아름다운 사람이나 자상한 사람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는 문구가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사실 삶은 자기 자신으로 채우지 않는 한, 그저 누군가를 찾아내는 것으로는 충족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편이긴 하지만.

 

 통속적으로 하는 말 중에 "제목따라 간다"는 말이 있다. 가수가 부른 노래 제목이나, 영화의 제목 같은 것을 두고서 가수나 배우의 행보가 제목처럼 되어갈 때 종종 그런 말을 쓰는 경우를 봤다. '춘분 지나고까지'를 읽으며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할 뻔 했기 때문에 여간 당황스럽지 않다. 이제와서 책을 읽은 감상을 적으려니 시간이 많이 지나버린 감이 든다. 하마터면 나 역시도 이 작품에 대한 감상을 춘분 지날 무렵에나 쓸 뻔 하였으니, 반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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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라이징 레드 라이징
피어스 브라운 지음, 이원열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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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다는 것은 어째서 항상 권력이 되는 것일까. 세계의 진실로부터 눈이 가려져 있는 사람들이, 진실을 인지하고 있는 자들에게 착취 당하고 종속되어 있는 이야기들을 몇 개 알고 있다. 소위 '계급의 혁명'이 주인공으로부터 일어나는 이런 이야기들은, 낮은 계층을 부여받아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세계 안에서 살아가던 주인공이 그 당위에 의문을 갖고 틈을 발견하여 진실을 찾아 구조를 깨닫는 순간부터 흐름이 폭발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그리는 미래 세계가 계급으로 막혀있고, 정보와 진실을 틀어쥔 소수의 사람만이 특권을 가지게 되는 디스토피아적 모습이 지배적이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는 항상 긍정적인데, 결과적으로 그리는 미래는 왜 부정적인지 모르겠지만... 이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소설/영화로 최근에 '다이버전트'라는 작품이 있었다. 사람을 마치 혈액형처럼 특성, 특징으로 네가지 분류 구분을 해서 각 분파마다 자신의 영역에 있는 일을 전담하여 조화롭게 살아가는 미래 세계에 대한 내용이었다. 고전이 되어 버린 매트릭스나 아일랜드 같은 영화들도 있었다. 

 

 레드 라이징 역시 그런 구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 대로우 역시 화성 식민지의 최하층 계급 분류인 레드로 태어나, 헬륨-3을 수확하는 일이 천직이고, 다른 크루와의 경쟁에서 보다 많은 헬륨-3를 캐내어 크루 간 경쟁의 승리를 상징하는 월계관을 따내길 바라는 어린 소년- 젊은 남자이다. 그에게는 체제에 반하길 꿈꾸는, 그리고 그들 크루의 남자들이 꿈꾸는 대상이 되는, 아름다운 아내 이오가 있다. 이오는 그저 그녀와 함께, 그녀를 위해 살아가기만 하면 만족하는 대로우에게 다른 선택을 보여주려 애쓴다. 하지만 어린 시절 체제에 반하는 소극적 저항을 하다 목숨을 잃은 아버지의 모습을 목격했던 상처를 갖고 있는 대로우는 이오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한다. 대로우와 이오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눈 날 밤, 그들은 체제를 넘어선 행동을 하게 되고 그로인해 아내인 이오는 사형을 당하게 된다. 이오의 죽음을 통해 남겨진 분노와 상실로 대로우는 자신이 순응했던 세계를 직시하고 이에 맞서게 된다.  

 

 기존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주인공의 각성과 성장, 그리고 지도자가 되기 위해 지지자들을 만드는 과정 같은 흐름은 비슷하게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공식화 되어 있는 그 흐름들이 보장해주는 재미라는 것이 있듯이, 레드 라이징 역시 변화, 성장해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느낄 수 있는 만족감과 즐거움이 충분했다. 책 안에서 반복되는 '나의', '내'라는 표현이나 짧고 거칠게 만들어진 문장들이 좀 낯설었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다. 대로우가 보여주는 '라이징'은 어느 정도 열린 결말로 끝이 났다고 생각된다. 사람은 달라지기 마련이라고 했던 대총독, 아우구스투스의 말도 의미심장하고, 대로우의 안에서 더욱 더 날카롭게 벼려질 분노 역시 뜨겁다. 아마도 후속작이 나오게 되지 않을까 기대된다. 책을 읽고 있는 동안 누군가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이 뭐냐며 물어왔다. 아마도 하얀 겉표지로 되어 있는 두툼한 책을 보고는 궁금했던 것 같다. 제목을 소리내어 불러주면서, 책 안의 내용이 더 가까이 와 닿았다. 레드 라이징.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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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선생님 1 세미콜론 코믹스
다케토미 겐지 지음, 홍성필 옮김 / 세미콜론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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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평범한 한 중학교의 교실이 있다. 남녀공학인 학교에는 자연스럽게 형성된 여러 무리의 아이들이 있고, 제각기 자신의 위치에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주인공인 스즈키는 그 교실의 담임 교사이다. 작화만으로 본다면 미남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전반적으로는 준수한 얼굴인 편이며 학생들이나 같은 교사들에게도 제법 신임을 얻고 있는 사람이다. 그가, 자신이 다루어야 할- 혹은 만들어나가야 할 이 교실 안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 감지하고, 발견하고, 결국은 터져나와 수습해나가는 에피소드들이 연결되어 있는 내용이다. 한 권 안에서도 몇 개의 에피소드로 내용이 연결되는데, 원래 이렇게 많은 드라마들이 벌어지는 곳이 중학교 교실이란 장소였나 싶을 정도로 극적이다.

 

 각 권에 있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들을 소개하며 정리해보는데,

 

 1권 1화 : 설사된장

제목만으로도 뭔가 싶을 정도로 비위 상하는 에피소드인데, 사실 따돌림에 대한 얘기가 아닐까 예상해봤지만 의외로 내용은 매너적인 부분에 대해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교육현장의 날 것 같은 현실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하지만 '일본'이라는 특성, 국가색이 아주 잘 드러나 에피소드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이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비위상하고 더러운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불만을 표출하는 아이가 어찌보면 상당히 직설적인 부분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자신이 소심하게 보일까봐 직접적인 이유를 말하지 않으려 남이 먼저 눈치채서 중재해주길 원한다는 설정은 좀 애매하긴 했다. 선생인 스즈키 역시도 같은 부분의 매너를 신경쓰고 있는 인물형이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고, 그 뒤로도 스즈키가 다른 사람과 식사를 할 때 눈에 띄게 잡히는 상대방의 모습에서 여전히 식사 예절을 중시하고 있으나 표를 내지 않으려 하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도 나와서 전체적인 디테일을 신경써서 이야기 흐름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1권 3화 & 4권 : 교육적 지도 1,2

특히 암묵적'이라는 표현이 쓰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나 만연하게 그려지는 중학생들의 성행위에 대한 내용은 읽기에 좀 꺼림칙했다. 만약 다른 순정만화였다면 이런 생각이 안들었을지도 모르겠는데, 작화가 다소 러프해보이긴 해도 사실적이고 배경이 평범해보이는 중학교여서 그런지 인물들도 다 미성숙한 2차 성징을 맞은 아이들 모습 그대로를 표현하고 있고, 나이도 중2, 심지어 초등학생이 되는 등 평범하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문제들이 우리 사회에서도 영 동떨어져있는가 냉정히 생각해본다면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런 불편한 느낌이 더 드는 것이겠지만. 어른들이 이 문제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또 어떻게 아이들은 대응하는지 생생하게 그려내었다. 그렇기에 현실보다는 더 오픈된 입장들을 보였고, 그 부분이 비현실적인 구조로 보이게 되는 약점이 있었다.

 

 2권 1화 : 인기투표

이 또한 일본스러운 에피소드 중 하나인 것 같다. 인기투표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도 할만한 일들 같지만 순위마다의 코멘터리를 단 용지를 보다보면 익명으로 노골적인 이야기를 달아놓은 적나라함이라고 해야할지, 잔인함이 여느 학원물에서 보던 따돌림 방식과 비슷하다. 저런 익명의 괴문서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내면이 무너지는 사람이 나온다는 것도 좀 정서에 맞지 않는단 부분이 있었다. 특히나 체육 선생님이 바로 그 대상이 된다는 점은...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날카로운 악의가 정제된 성인의 것보다 더욱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점이기도 하면서 교육자로서의 길을 걸어온 성인의 내면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일까 고민하게 만들기도 한다.

 

 3권 2화 : 사랑의 끝

보면서 계속 찜찜했던 코드 중 하나가 스즈키가 계속해서 학생인 오가와에게 성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스즈키도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이성적이면서 이상적인 교사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오가와에게만은 특히나 정도에서 벗어난 관심을 보인다. 그것을 여자친구의 부재에 대한 대체로 보려거나, 혹은 여신님이라고 대체해서 부르며 안전범위 안에 두려고 한다. 하지만 잠을 자기 전에 오가와에 대한 상상을 한다던지 지나치게 의식하는 모습은 '그런 교사가 존재하고 있다'는 현실을 지나치게 반영하여 불편한 점이었다. 이 편에서도 스즈키 뿐만 아니라 거의 전교생이 그녀의 첫사랑 혹은 지금 그녀가 좋아하고 있는 대상이 누군인지 궁금해하며 벌어지는 대 소동인데, 집착에 가까운 호기심을 보여주는 인물들의 행동이 비정상적으로 보여지기도 하는 에피소드였다.

 

 이 뒤로도 더 크고 더 고민스러운 사건들이 계속해서 발생할 예정이라 하니 스즈키 선생이 선생으로 사는 일이, 또 사춘기 시절 학교를 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전쟁같은 일이었는지 새삼 느껴볼 수 있을 것 같다. 졸업한지 오래되었다면 지금의 교육현장이란 어떤 상황인가 가늠해볼 수 있는 실제적인 작품이 될 수 있을 것 이다. 작화만 잘 극복해서 본다면 흥미로운 작품으로 올해 가장 인상적인 만화와 만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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