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9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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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걸렸으나 짧았다. 독자 역시도 책 앞에서 그저 열어달라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두드려도 소용이 없는 일을, 그 안은 스스로 열어 들어가야 하는 것을.

 

 그간에 읽어왔던 전기 3부작의 마지막이었다. 앞의 '산시로'니 '그 후'를 읽으면서는 어떤 '재미'를 느낄 수 있었는데, 점점 비슷한 나이대로 옮겨옴에 따라 단순히 내용을 '재미'로 느낄 수 없게 되었던 걸까. 가장 심각하게 읽게 되었던 것 같다. 어쩌면 좀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는지도 모르겠다. 도덕과 사랑 중에 후자를 택한 소스케와 오요네를 심정적으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행복하기 위해 선택한 사랑인 것을, 도덕을 선택했더라도 그들의 음울한 생활이 계속 진행되었을까 의심하게 만든다. 어찌되었든 그들은 그렇게 살 '운명'이 되었겠지만.

 

 처음에 소스케와 오요네가 자신들의 몫으로 챙겼어야 할 유산을 얼렁뚱땅 가로채인 채 궁핍하게 지내게 되었으면서도 답답할 정도로 우유부단한 태도로 그저 어쩔 수 없는 일이지"하고 여기고 말아버리는 태도를 보이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배짱이 없는 사람'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답답했는데, 순응하는 듯한 모습때문에 더욱 그랬다. 절벽 아래에 볕이 들지 않는 곳에서의 생활처럼, 그들 역시 어딘지 모를 음울함이 묻어나는 생활을 부여잡고 안주하고 있는 이유를- 그런데도 묘하게 그 자체로도 충족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마치 범죄를 공모한 범인들 사이의 유대와 의리처럼, 그들은 그 낮게 움츠려들어 있는 삶에서 고여있는 듯이 보였다.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보기 힘든 주요인물들이었다.

 

 그들이 외부의 어떤 것도 연연하지 않고 그저 두사람만의 생활에 만족하게 되기까지, 두 사람에게 어떤 일이, 어떤 전환이 되었을까. 사람의 앞에 새로운 문이 열려 그 이전의 생활과 그 이후의 생활이 전혀 달라지게 될만한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대체 얼마만큼의 열량을 필요로하는 일인 것일까. 선택 이전의 그들이 그 후의 자신을 알 수 있었다면 과연 선택을 했을까 의문이 들었다. 도덕을 저버리고 선택한 사랑이 원래의 형태와 다른 모습으로 남아 그것을 그저 운명으로 여기고 남은 온기로 서로를 의지하여 생활하고 있는 듯한 두 사람의 모습에, '근래의 근'자를 어떻게 쓰는지 잊은 소스케처럼 자신을 자신답게 만드는 면모조차 희미하게 잊은 것은 아닐까 생각됐다.  

 

 자전적인 요소도 들어갔으며, 소세키 자신의 건강도 좋지 않았던 시기에 쓰여졌던 탓인지 전체적으로 밝은 부분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아쉬웠으나, 그래서 좀 더 묘한 느낌으로 상념에 꼬리를 물게 만드는 행간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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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재즈 일기 - 재즈 입문자를 위한 명반 컬렉션, 개정판
황덕호 지음 / 현암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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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을 시작하면서 서문에 저자에게 '장수풍뎅이'라는 음반 가게의 폐점 여부를 묻는 독자들이 종종 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개점한 적도 없는 가상의 가게가 이미 존재하고 있다고 단정하고 폐점했는지를 걱정한 독자들이 그렇게 많은 것일까. 이는, 저자의 글의 탄탄한 흐름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 입증한다. 실존하고 있을 법한 공간과 시간을 구현해놓고, 제대로 된 현실적인 가게의 이미지를 구축해놓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다 리얼리티를 갖고, 명반들은 하나의 에피소드를 받아 다시 플레이된다. '현실 세계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를 허구로 꾸민' 소설보다도 더 진짜같은 이 재즈 '입문서'. 입문자를 위한 글이라고 했지만 문외한에게는 너무나 허들이 높았다고 불평도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특유의 분위기를 구현해놓은 점이 독보적이었다.

 

 이건 마치 심야식당의 재즈 편 같다. 심야식당이 2007년 발행이니 이 책이 좀 더 먼저 아닐까. (정확하지 않은 정보이니 자신은 없지만.) 인사동. 모든 오래된 것들이 모여 있을 것 같은 서울, 종로의 한 복판에 있는 묘한 분위기의 거리. 그 한쪽 귀퉁이에 있는 오래된 삼층 건물집. 국악 악기 가게가 있을 법한 곳에 재즈 음반 전문 매장이 소소하지만 꾸준하게 영업을 한다. 아는 사람들만, 필요로 하는 사람들만 드문드문 찾는 발걸음. 그들이 찾는 재즈 음반과 함께 한 사람의 손님이 하나의 음반과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고 간다. 그리고 매일의 일기를 기록처럼 남겨두는 가게의 주인. 설정도 잘 되어 있고, 어떤 에피소드로든 무궁무진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굉장히 '소설적인' 덕분에 음반 이름이, 재즈 싱어가, 선곡된 음악의 리듬을, 몰라도 괜찮도록 읽었다. 막연한 궁금증과 그리움을 품은 채로.

 

 솔직히 다시 읽으라고 한다면 그건 처음 이 책을 손에 들었을 때 느꼈던 부담을 넘어서서 짐처럼 여겨질 시도일 것이다. 어디까지나 사실 반쯤은 재즈 매니아나, 타짜 정도는 내심 자부하는 정도로 애호하는 사람들이 읽어야 '재미'를 느낄 수 있을만한 내용이 담겨 있다. 입문자는 음반이나, 음원 구해서 들어가며, 배워가며 읽기에 급급할 정도로 많은 재즈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제목만 들어도 머리 속에서 자동적으로 음반이 플레이 될 정도라면 얼마나 풍부하게 이 책을 읽어낼 수 있을 것 인가. 진심으로 부러울 레벨이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이 책을 읽어 낸 이 문외한 독자의 경우는- 진짜 책의 초반에, 누가 리듬을 만드는가? 부분에 나오는 음악, 오직 그 하나만이 자동적 플레이가 되는 곡이다. 적어두고 보니 심하다. 읽어보겠다던 용기가 대단하고. 그 곡은, 처음 영화 수록곡으로 듣고 플레이 리스트에 추가해놓은 뒤로 항상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는 곡인데, 지금 보니 리스트 상에 있는 유일한 재즈곡이다. 그 곡은 바로, 칼 잡이 맥. 그 외에는 거의 유일하게 재즈 피아니스트 냇 킹 콜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정도고, 레이 찰스의 영화를 본적이 있다. (초라한 기록이다.) 이렇게 솔직하게 쓰는 이유는, 나도 읽었으니까 가볍게 읽거나, 관심을 가져볼 수 있는 계기로 삼는다면 한번쯤 읽어볼만 하다는 발판으로 삼으시라는 권유이다.

 

 솔직히 최근에 읽었던 다른 어떤 입문서보다 서정적인 느낌을 주는, 하지만 그 배로 '난감한' 내용이었다. 입문자를 위한 이라는 단서를 달아놓았지만 글을 오롯이 느끼기에는 배경 지식이 너무나 부족했다.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단 몇 곡 정도는 QR코드 같은 걸 활용해서 소개되어 있는 곡을 들으면서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시도를 해봤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많이도 바라지 않는다. 한 세곡에서 다섯곡 정도만이라도.) 이 음악이 듣고 싶어 갈증이 날 때 딱 플레이되어 해갈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더라면, 이 책 정말 엄청나게 매력적이지 않았을까! 독자의 욕심이야 끝이 없고, 그 만족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저자와 출판사의 몫이자 영역일테니.

 

 정말 느낌있다. 시도와 분위기가 굉장한 글이다. 이전 판본의 모습도 찾아봤는데, 나름 강렬한 느낌이 있지만, 이번에 한권으로 새로 나오게 되면서 확실히 세련되고 감각적인 분위기도 입었다. 준비된 책이니, 다가오는 가을에 한 권 정도 손에 들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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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가위바위보 문명론
이어령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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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으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상당히 미시적인 눈으로 가위바위보에 관한 문명론을 펼치고 있는 글이었다. 놀라게 한 점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정식 출간 된 이 글이, 처음에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을때 잘 모르는 채로 생각하기에 이어령씨의 신간이라고 여겨졌었는데 사실 2005년에 이미 출간된 작품을 현 시점에 맞게 일부 수정하여 발간한 것이란 점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굳이 '신작'을 읽어보고 싶다고 했던 부분이 민망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물고 물리는 한중일 관계, 새 아시아 문명의 답이 여기 있다.' 고 되어 있는 표지글을 보고 가위바위보에 관해서는 하나의 비유적 표현이고, 아시아 한중일 삼국의 정세에 대한 고찰이 담긴 시선과 앞으로의 비전에 대한 고견을 접해볼 것이라 기대했던 부분이 큰데, 실제적으로는 가위바위보에 관한 내용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말 그대로 가위바위보에 관한 문명론이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시적이란 표현을 굳이 처음부터 언급했던 것이다.

 

 때문에, 이름난 지성인인 이어령씨의 글을 하나 접해보았다는 의미가 좀 크게 다가올 뿐, 전체적인 내용은 사실 '왜, 가위바위보의 문화인가'에 대한 이유 나열이나, 의미 찾기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단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 한중일의 관계가 꽤나 미묘한데 스스로를 높이며 상대를 낮추는 태도가 기본이다. 삼국 중 어디도 자국이 한 수 아래이지'란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게 서로를 적대시하면서도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셋 중 둘의 의견이 일치하여 소리를 모으거나, 방금 전까지 같은 의견을 내다가도 다른 문제에 있어서는 금세 나머지 한 편 쪽으로 의견이 갈려 다시 형세가 나뉘어지는 일들이 빈번하다. 국민적 감정으로만 보더라도 역사적으로는 한국과 중국이 일본에게 책임을 묻고, 현대에 와서 국가적 호감도를 살필 때면 중국보다는 일본의 대중문화나 질서의식이 더 낫다고 평하는 편이 많다. 이 셋은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이 끊임없이 서로를 견제하는 묘한 균형을 맞추고 있는 관계인 것이다.

 

 그런 의식 하에서 가위바위보라는 컨텐츠를 가지고 어떤 식으로 삼국의 관계를 바라보고 풀어낼 것인가에 대한 통찰력 있는 시각을 보고 배우게 될 것이란 기대가 많았는데, 마지막 장에 있는 대륙의 보, 밀도높은 바위의 섬, 균형의 반도 구분 등이 나와서야 어느 정도 충족이 될 뿐 아쉬움이 없진 않았다. 아,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동양이 가위바위보의 문화라면 서양은 동전던지기의 문화라는 구분은, 순간 그동안 보았던 미드나 영화의 장면에서 과연 그런 차이점이 있었구나 싶은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작은 차이에서도 나와 다른 상대방과 소통을 하는 문화인지 아닌지에 대한 구분이 나타난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그리고 그 외에도 개인의 병으로 술을 마시는 서양의 문화와 상대방과의 자리에서 술을 마시는 동양의 문화 차이로 인해 병의 크기가 달라지는 상업적인 요소까지 엿볼 수 있는 부분들처럼 작은 부분이지만 예사로 생각됐던 부분을 환기할 수 있는 내용들이 있어서 좋았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는 사회문화 분야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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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메르세데스 빌 호지스 3부작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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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셔도 됩니다. 모든 추리 소설을 즐기는 독자들에게 스티븐 킹으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 '미스터 메르세데스'는 이 시대 최고의 스토리텔러라 불러도 아쉽지 않을 작가가 처음으로 시도한 추리 소설이자 뒤를 이어 우리를 찾아올 3부작의 구성 중 첫번째 이야기이도 하니까요. 우리는 '미스터 메르세데스'를 통해 영국의 셜록, 노르웨이의 해리, 일본의 가가형사 들의 뒤를 이을 새로운 주인공 호지스를 만나게 됩니다. 이야기에 목마른 독자들에게 스티븐 킹이 기꺼이 선사한 화제작이자, 에드거 상 수상작인 '미스터 메르세데스' 추리 소설의 충실한 독자들 뿐 아니라 그동안 스티븐 킹의 글을 믿고 읽어왔던 오랜 독자들 모두를 만족시킬만한 작품입니다. 

 

 세상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미처 해내지 못한 단 하나의 미완성을 오래도록 마음에 두고 지내는, 날 위한 시간을 보내는 일에 익숙하지 않아 그의 삶에서 이타와 봉사를 빼고 나면 도리어 공허하도록 비어버리는. 호지스도 그렇다. 처음, 은퇴 후의 호지스의 생활을 목도했을때 그가 앞으로 벌어질 약 600여쪽의 이야기의 중심이 될만한 인물이라 생각되지 않았다. 어떤 큰 사건의 시작이 그러하듯, 휘말려들어가버려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주변의 인물, 잊혀지는 사람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호지스는 쓰레기같은 티비쇼 채널을 틀어놓고 리볼버의 총구를 입천장에 대어보는 연습을 하는 늙은 남자. 집은 있으나 그 안의 가정은 파괴된지 오래고, 성실히 일했던 직장은 은퇴한 그에게 유일하게 남은 과거의 영광으로 혹여 화제에 오르면 알고싶지도 듣고싶지도 않을 지루한 자랑거리일 법한 흔한 남자라고.

 

 하지만 호지스의 앞으로 찾아온 한통의 편지는 기괴한 스마일 마크와 함께- 남은 것이라고는 자기 손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일이 고작이거나, 남은 600여쪽의 페이지에서 무슨 일이 생길 것일까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던 대상을 향해 도발을 시작한다. '농담이야!' 란 말로 '뒈져라, 이 찐따야.' 라는 진심을 치장하기 위해 포장해놓은 역겹고 비열한 인물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호지스와 메르세데스  -브래디- 사이의 대결 구도가 시작되고 인물들은 대비되며 그리고 상호적으로 그 매력을 더해간다. 여기서 메르세데스 살인마가 저지른 일이 어둡고 지저분하게 보여질수록, 구식이고 늙어 지쳐보이던 호지스가 날카롭고 주의깊은 형사의 모습으로 새롭게 비쳐지는 것이다. 그 점이 확연히 느껴지는 시작이라 너무나 전형적이라 느껴졌던 호지스의 인물 설정도 클리셰가 아닌 클래식함으로 받아들여지게 되기도 했다.

 

 본격적인 전개가 시작되면서 전 동료들과 이 미제 사건을 공유하지 않으려던 호지스에게도 조력자가 생기게 되는데 잔디를 관리해주는 흑인 소년 '제롬'의 등장 역시 꽤 매력적이다. 그가 호지스에게 남긴 짧은 메모를 처음 봤을 때 수많은 잘못된 맞춤법들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개성적이고 유쾌한 느낌이 물씬 드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매 순간 제롬은 그런 존재로 이야기가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쳐지지 않게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점점 자신의 가능성을 각성해나가는 '홀리'와 함께 해주고 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인물들의 균형을 잘 잡아 서로를 더 돋보일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 스티븐 킹의 큰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서도 충분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활자를 읽어내야 하는 시간이 걸리는 탓에 이 한 권을 읽는데는 두서너 시간이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 내용에 몰입되는 대로의 시간만 필요하다면 2-3 센치 정도 되는 두께의 책을 읽어내는데는 훨씬 짧은 시간이 들 것이라 생각될만큼 확 안으로 끌어들이는 흡입력이 있는 소설이었다. 이미 내용의 상당 부분을 소개해놓은 것 같은데, 더 자세한 내용은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여름날의 지루함을 덜어내 줄 피서지가 될 법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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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힘 - 절망의 시대, 시는 어떻게 인간을 구원하는가
서경식 지음, 서은혜 옮김 / 현암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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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들어서 한달에 한 권 정도는 시집을 읽자고 생각한 뒤로 그 결심을 따라 시를 읽은 때도 있고, 사실 그저 지나보낸 달도 있었다. 시를 읽어야 겠다고 한 뒤로 읽기 전엔 어떻게 읽어야 할까에 대한 걱정이 있었는데 막상 책장을 마주하고 보니 읽는 것이야 어떻게든 될 것이지만,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에 대한 어려움이 컸다. 때문에 현암사로부터 저자 서경식의 신간 '시의 힘' 출간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에 이런 부분에 대한 도움을 얻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제목만 보고 오해하여 읽기를 결심하게 된 사정이 있다. 읽기를 희망하시는 다른 분들은 혹여나 이런 과정이 없길 바라며, 읽게 된 계기를 밝힌다. 다소 어려운 내용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의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책을 한 번 읽어보자고 낸 용기는

 

대표적 재일조선인 문필가 서경식의 첫 문학 에세이
디아스포라의 눈으로 본 ‘시’와 ‘문학’의 초월성

 

라는 문구에 주의를 크게 기울이지 않고 단순히 '시'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을 것이라 여겼던 단순함과 무지의 탓이 크다. '에세이'이고 '디아스포라' 문학에 속할 뿐더러 '시'와 '문학'의 어떤 초월성을 이야기 할 것인가를 읽기 전에는 주의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했던 '시'에 관한 이론적 접근이나 정리가 되어 있지는 않았어도 여러모로 흥미롭거나 공감되는 내용을 접할 수 있었다. 덧붙여, 예상했던 내용과는 달랐지만 읽다보면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확고한 시각으로 목소리를 내는 저자의 입장에 공감하게 되는 바도 많고 남다른 개인사의 조각들을 보며 재미있게 완독할 수 있었다.

 

 본문의 내용은 구분해놓은 단락에 따라 크게 개인적인 성장과정을 다룬 2장과 시를 소개하며 바라보는 강점기, 그리고 그 이후의 민주화운동 시절에 대한 내용이 있는 3장. 후쿠시마 사태를 바라보는 일본 사회의 태도를 비판적으로 접근하여 평한 6-7장 등이 있다.

 

 사실 저자의 개인사를 담은 2장의 내용은 그 굴곡이 인상적이긴 하지만 크게 흥미를 당기는 부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부분의 내용이 집중적이고도 필수적으로 읽혔어야 하는 까닭은 저자가 가지고 있는 특수한 입장이다. 재일교포로 자라온 저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정리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있었다. 그 갈등이 적확하게 드러난 부분이 고등학교 시절에 쓴 글이었는데, [그런데 아마도 이 책자는 나의 마지막 시집이 될 것이다. 나에겐 일본어로 '고향'을 쓴다는 것의 한계가 보이고, 모국어로 쓰기엔 난 너무 '일본인'이니.] 하는 부분이었다. 그 양측 어딘가를 오가면서 자신의 근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에 대한 입장조차도 정리하지 못했으나, 글에서처럼의 객관적인 태도를 취하기에는 지나치게 연연하고 있는 뉘앙스를 풍긴다. '시의 힘'은 그 자신의 거칠었던 부분까지도 담아놓고 고스란히 목도할 수 있도록 함에 따라 천천히 '디아스포라'를 바라보고 디아스포라 '문학'이 어떤 면모를 가지고 있는 지에 대해 이해하도록 해준다.

 

 읽으면서 꽤 여러 부분에 표시를 남겨두었는데,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문학평론가인 '에드워드 사이드'에 대한 언급이 나온 부분도 꽤 흥미로웠다. ('평행과 역설'을 아직까지도 다 읽지 못한 채 어렵게 이어가고 있는 터라) 저자가 읽어 낸 사이드의 '펜과 칼' 의 단락을 눈으로 따르며 이해에 도움을 받은 부분도 있었다. 거기에 4장에서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나온 나쓰메 소세키와 이시카와 다쿠보쿠에 관한 대조 부분도 그동안 출판사 현암사를 통한 소세키 전집 읽기를 하며 친숙해진 작가에 대한 언급이 된 부분이라 개인적으로는 흥미로웠다. 그동안 소세키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관통'하는 주제 의식과 인간에 대한 공감대가 발견되는 부분에 많이 집중했는데 그의 작품들이 일본 독자로 하여금 '국민 의식'을 형성하도록 하는데 기여 바가 크다는 내용에서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경중은 다르다 해도 '목격자'의 입장에서 살아가고 싶은 것에 대한 내용인데, 저자의 경우는 시대적 '증인'의 입장에서 방관하지 않고 그것을 '목격'하여 제 입과 존재로 '증거'가 될 수 있는 존재로서의 '목격자'를 말한다. 앞서 옮겨적었던 시인의 고등학교 시절의 글에서도 그 '목격자'에 대한 내용이 나와있기도 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어떤 강렬한 사건이 생겨서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고 문제가 발생할 때, 종종 그 사건의 순간을 살았던 '목격자'가 될 수 있음에 대한 의식을 할 때가 있어서 일부분 공감할 수 있었다. 마치 911 테러의 순간을 티비로 봤던 그 날의 생생한 충격이나, 세월호 사건의 무력감을 짊어지며 지나온 4월의 숨막힘, 안전에 대한 지속적인 염려를 낳은 후쿠시마 사고를 실제적으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는 현장성을, 아주 소소하여 어떤 증명도 될 수 없는 개인이지만 '사건'들을 목격할 수 있었던 시대의 일부가 되는 존재였다는 역할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 단순한 응시로 보여진 것 이상이 되지 못했을지라도.

 

 또한 7장의 패트리어티즘에서는 [이러한 포괄적 레토릭으로 국민적 단결을 고취하고 어려움을 이겨내려는 것이겠지만, 그 단결을 위해서는 '국민의 적'이 필요해지는 것도 지극히 당연하다. 앞으로 어려움이 장기화되고 지배층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이 쌓이면 반드시 '적'을 만들어내려 할 것이다.] 고 밝힌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국가에서도 이러한 '만들어 낸 적'을 필요로 하지만, 적은 구성원이 모인 작은 집단 안에서도 억압과 압박이 계속되면 이내 불만과 분노를 표출해 낼 '적'을 만들곤 하는데,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여직껏 이런 '적'의 존재가 집단 안에서 사라진 경우가 드물고, 일명 '따돌림'이라고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발생하는 것이라 생각이 미치게 되니 인상적이었다.  

 

 근현대사를 망라하여 작가가 가감없이 보여주는 비판적인 시각은 시원스러운 읽기를 재촉한다. 내용의 깊이에 비해 읽기 어려운 문장으로 되어 있지 않은 점이 좋았고, 덧붙이자면 시인 김지하에 대한 평에 공감하는 바도 있어 리뷰를 쓴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도 언급해야겠다 생각했는데 쓰고 보니 흐름상 빠졌기에 언급만 해둔다. 또 덧붙이자면 저자가 오는 9월에 인천에서 있을 디아스포라 영화제에 초청되어 특강과 대담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하니, 이 부분도 관심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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