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부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6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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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몸이 좋지 않아, 읽은 것은 있어도 막상 적으려고 앉지 못했다. 다른 일들은 잠깐씩 했지만, 해야할 일은 조금씩 미루게 된 것이 씁쓸했다. 그 중의 하나가 갱부에 대해서 적는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그저 재미있게 읽었던 이 작품에 점점 동화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결국은 해야 할 말을 점점 더 줄여야 하게 될 만큼.

 

 한번도 무엇을 해본 적 없는 나는 길에서 만난 사람을 좇아 멀리 떨어진 곳의 갱부 일을 소개받게 된다. 큰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번지르르한 말에 혹한 것은 아니지만, 어디든 나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있고 싶던 차에 그만 별 생각없이 따라나서게 된 것이 갱부의 일이었던 것이다. '인생 되는대로'의 마음으로 아무렇게나 걸었더니 그 끝이 갱부의 길이었다니, 더이상 떨어질 나락이 없을 정도에 다다랐다는 뜻으로 주로 쓰는 말이 막장인 것과 미묘하게 닿아있는 것이 여전했다.

 

 소세키의 다른 글들도 그렇지만, 특히나 잇속과는 좀 동 떨어진 것 같고 어딘가 엉뚱해보이기 까지 한 인물들 중에서 '갱부'의 주인공이 가장 애착이 가도록 여겨졌는데 그가 무구해보이면서도 사실은 자신의 죄로부터 도피하고 있는 비겁한 인물이고 어떤 것도 책임질 자세도 없으면서 오기는 남아 있는 고집스런 인물이기도 해서 이다. 게다가 변덕스럽기도 해서 금새 힘들다고 마음을 바꾸었다가도 남을 의식해서 고쳐먹기도 하는 점이 보는 사람이 민망하게도 인간적인 점도 재미있었다.

 

 [ 나는 명령대로 기다리고 있었다. 이 사내를 만나고 나니 이제 혼자 나갈 생각이 가시고 말았다. 죽어도 혼자 나가 보이겠다고 큰소리쳤던 결심이 갑자기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나는 그 변화를 알고 있었다. 그래도 별로 창피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남에게 공언한 일이 아니라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 후 나에게 공언했기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되는 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번번이 했다. 남에게 공언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엄청나게 다른 법이다. ]

 

 이상하게도 가장 인상깊은 부분이, 그제 막 튀겨 신선하며 파리가 잔뜩 앉은 모래 묻은 아게만주를 도테라와 마주한 채 몇 개라도 먹어치우던 것이었다. 읽기만해도 기분이 나빠질 것만 같은 모양인데도 읽다보면 어쩐지 나도 몇 개 쯤은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먹어치우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상대방에게 권한다던지 먹은 갯수를 가늠한다던지 하는 방식으로 예를 차리거나 속으로 셈을 하고 있는 일본적인 느낌도 물씬 풍겨지는 부분이기도 했다.

 

 사회에 만연한 막장이라는 말을 거두어 들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 되는대로 길을 놓아버린 청년이 다다른 깊은 광 속 막장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흔히 붙이는 수식으로 전락해버린 막장이 오히려 안타까워진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싸구려 드라마에 제목처럼 붙어 나오는 막장이란 단어를 조용히 거둬오고 싶고, 되도 않는 일을 저지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막장이네, 하고 말하는 가벼운 한 마디도 거두어 오고 싶어진다. 주인공이 야쓰라는 인물을 긍정하는 방법과 같이, 막장이라는 말 자체에 떨어진 의미를 떠올리게 되고 마는 것이다.

 

 [ 사회가 야스 씨를 죽인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그런데도 지금 말한 대로 사회란 어떤 것인지는 요령부득이었다. 그저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인간이 왜 야스 씨처럼 좋은 사람을 죽였는가는 더더욱 알 수 없었다. 그러므로 사회가 나쁜거라고 단정해봤지만, 그렇다고 결코 사회가 미워지지는 않았다. 그저 야스 씨가 딱할 뿐이었다. 가능하다면 나와 바꿔주고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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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
양국일.양국명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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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흥미를 끌었던 부분은 '공저'라는 것이다. 애석하다.는 것은 차치하고, 어떻게 두 사람이 한 작품을 사이좋게 같이 쓸 수 있지 싶다. 만화야, 스토리와 그림 파트가 나뉘어져 있기도 하니까 흔한 일인데, 글을 쓴다는 것은... 한명이 아이디어를 내고 한명이 글을 쓸 수도 없고, - 그랬다간 누구의 안에서라도 내 것을 완벽하게 써내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길 것이 자연하니까 - 부분을 나눠서 하자니 문체가 확연히 달라지거나, 굳이 나눠서 쓰더라도 마지막엔 둘 중 한명의 손으로 전체적인 흐름을 다듬기 위한 정리가 필요할텐데 어떻게 공저가 되었을까 하는 점이 제일 흥미로웠다. 전에 여러명이 하나의 글을 썼던 적이 있는데, A4지로 6-7장 정도 되는 분량이었으면서도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어 더 그랬다.

 

 악령의 내용은, 덮어놓고 좀 분위기를 강요하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책에선지 읽어봤던 내용인 것 같은 느낌도 들었는데, 한 세시간 딴짓하면서 아무리 떠올려보려고 해도 책 이름이 기억 안나서 답답하다. 결국 이렇게 늦은 시간이 되어 버렸네. 'KM문화예술고등학교' 라는 곳을 무대로 해놓고, 거긴 폐쇄적이어서 외부와 닿기도 어렵고 정말 이상하고 무서운 곳이라는 이미지를 너무 직접적으로 주입시키려는 흔적이 너무나 많아서 생생함이 부족했다. 글쎄, 아무리 진학률이 높은 곳이라도 아이들이 몇이나 '실종'이 되는 학교에 제대로 된 항의가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묘하다. 거기다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을 전도가 유망한 학생들이니, 더욱이.

 

 환상적인 것은 좋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렇게 되도록 '느껴져야' 좋은 것이지, 주입식으로 "여긴 환상적인 곳이야"라고 말하는 순간 너무나도 리얼한 눈으로 건조하게 환상이 덧붙여진 균열의 부분을 짚어내게 되는 것이다. 이니그마로 초대되는 태인의 모습들도 그런 균열로 가득찬 것처럼 보였다. 의외로 수지의 비중이 적었고, 유미의 외모 때문에 무조건 적으로 이니그마라는 서클의 방향으로 끌리게 되는 점도 너무 빨랐다. 게다가 전교 1등 석규라는 캐릭터도 1시간 2-30분 남짓의 러닝타임 공포영화에 주로 나올법한 급변하게 되는 광기 서린 인물의 전형처럼 느껴졌다. 신선함의 부재와 많은 인물들로 인한 잔가지로 전체 흐름이 부자연스럽게 빠른 진행으로 되었다는 점이 심히 아쉬웠다.

 

 게다가 엄마가 남겨준 만년필로 물리친 여우귀신이라니. 이런 흐름을 왜 두 사람이서 만들어냈을까. 애초에 대상 연령층이 어느 정도일까 궁금해졌다. 대상 연령층을 가늠해보기 위해 새삼 표지를 훑어보자니 내용 자체로 보면 제목에 매우 충실한 것이기도 한데...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것이다. 청소년 도서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속도감이나 인물의 감정선 등이 러프한 부분이 있다고 넘어가기엔 섬세하고 감명깊은 청소년 도서들이 버젓이 존재하기 때문에 찜찜하다. 아마 초등학생 정도면 읽으면서 진중한 무서움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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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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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들이 낳은 아이를 살해하고 유기하는 선택을 하게 된 어린 연인. 그리고 8살 난 여자아이가 온 몸이 묶인 채 살해당하는 사건. 귀가길 돈을 갈취하려는 목적의 강도에게 우발적인 살해를 당한 이혼녀.

 

 다른 두 직선이 마주하는 점을 어쩌면 인연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공허한 십자가' 안에서의 그 접점은 그다지 로맨틱한 면은 없었지만 그 악연도 결국은 인연이니. 바로 그 사람과 사람이 삶의 교차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읽으며 떠올랐다.

 

20여년 동안 일어난 세 번의 살인사건과 맞물리면서 사형제도에 대한 각 인물들의 입장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마치 독자에게 당신은 어디에 속하고 있느냐고 선택을 하라는 듯 종용하듯이. 사람의 생명을 다루고 있는 문제이니만큼 읽으면서 이 편에 휘둘렸다가 저편에 섰다가 자꾸만 생각을 바꾸게 되는데, 책을 덮을 때까지 끝내 뭐라 결정하기 힘든 문제였다. 게다가 한번 범죄를 저질렀던 사람은 재범을 저지를만한 상황이 오면 또 다시 그러한 짓을 저지르기 쉽다는 시각에 대해서도 나오는 점도 쉬운 내용을 쓴 것은 아니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얼마 전에 천명이라는 프리뷰 독자 모집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북 제공이라는 말에 단념해야 했는데, 기쁘게도 책 한 권이 내 손에 들려지게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이라니.

 

이 작가는 정말 독특하다. 대단한 것은 당연하고, 작가로서 이 정도 수준의 작품들을 이렇게 빠른 속도로 발표해나가는 역량은. 이런 소설들을 떠올리고, 구성을 하고 인물을 만들어나가는 일이 그렇게 쉬운가 마치 그날 그날의 일기 몇 편을 모아 발표하듯이 빠른 속도라니. 오히려 독자가 되어 그의 글을 차례로 읽어나가는 일이 더 숨가쁘게 느껴지도록 만든다. 그러기엔 몰입도가 너무 높은 글을 쓰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번 작품도 수준급이었다. 잘 읽혀지면서도 그 안에 의식을 담아내고 주제를 생각해보도록 만들었다는 점이 좋았다. 그 때문에 다소 무겁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의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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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해줘, 레너드 피콕
매튜 퀵 지음, 박산호 옮김 / 박하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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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를 바라보며 어떤 내용일지 떠올려봤을때 사실, 음악과 마약이나, 총기 같은 것이 관련된 내용이 아닐까 생각했다. 읽고보니 온통 치열하고 복잡한 그야말로 자신과 싸우느라 지쳐 너무나 작아보이는 한 소년의 이야기였다.

 

 [ "내 삶이 나아질 거라고요? 정말 그렇게 믿으세요?" 나는 선생님이 뭐라고 말할지 알면서도 그렇게 물어봤다.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대부분의 어른들이 의무적으로 그렇게 해야 하다고 느끼는 그런 대답이 돌아온다. 물론 압도적인 증거들과 그동안 쌓아온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사람들의 삶이란 죽을 때까지 더 나빠지기만 하지만. 대부분의 어른들은 정말 행복하지 않다. 그게 진실이다. 하지만 실버맨 선생님의 입에서 나오면 덜 거짓말처럼 들릴 거라는 걸 난 알고 있었다. "그럴 수 있어. 네가 기꺼이 그 일을 하려고 들면." "무슨 일이요?"

"세상이 널 망가뜨리게 내버려두지 않는 거지. 그건 매일매일 싸워야 하는 전쟁이야." ]

 

 창밖으로 세 대의 소방차와 두 대의 응급차가 긴급한 경보를 울리며 도로를 헤쳐 달리는 경광등을 바라보았다. 어떤 이에게 벌어지고 있을 불운한 사고를 떠올린다. 방금 손에서 떼어낸 레너드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아있는 와중에. 누가 혹은 무엇이 다른 존재를 죽음으로 내모는가 생각해보았다. 증오, 총이나 칼, 분노나 미움 같은 것들도 분명하지만 기댈 길 없는 외로움이나 풀어낼 수 없는 괴로움, 막혀있는 듯한 절망도 안에서 스스로를 좀먹어가는 죽음의 일부같다 생각했다. 레너드의 괴로움들은 너무나 일반적이고 일상적이어서 안쓰러웠다. 상처를 - '그의 것'을 통칭으로 상처라 불러야 하는 것이 유감이지만, - 받은 자가 어디에도 그 아픔을 호소할 수 없는 외로움에 고립되어 있을 때, 치료되거나 한 번도 드러내어진 적 없는 아픔이 어떻게 곪아가는가를 우리에게 적나라히 보여줬다. 끔찍하고 괴로운 일 앞에서 사람을 다시 서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전화번호를 건네주는 일이나 어리석은 일이라 한대도 택시비로 이십만원 정도로 써서 함께 돌아갈 여지를 남겨두는 일이 충분히 위로가 될 수 있는 사소함이라니. 막막한 와중에 한켠으로는 안심되도록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레너드는 분명 복잡하고 또 까다로워서 다루기 힘든 소년이다. 그의 상담 선생이거나 학교의 교감이라면 때로 골치를 앓을 수 있을 만큼.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많은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또 기꺼이 그것을 웃음으로 만들 줄 아는 매력있는 학생이기도 하다. 그를 학생으로만 본다면. 애셔를 죽이고 자신도 죽을 생각을 하면서도 축하받지 못한 생일에 대한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장면들은 그것에 아직도 많은 의미를 두는 레너드의 어린아이다운 점이기도 했다.  

 

 안쓰럽게도 그 아이는 누구에게도 사과를 받지 못한 소년이었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이 소년의 이야기를 하려면 반드시 그에게 사과를 건네야만 하는 작은 장치를 마련해놓은 점이 재치있다고 느껴졌다. 마치 모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우리 모두가 시대적으로, 또한 범인류적인 애도를 가지고 사과해야하는 것처럼. 다행히도 그의 이야기는 너무나 애처로우면서도 눈길을 끄는 상처받은 연약한 존재 특유의 사랑스러움이 느껴지므로, 누군가와 레너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에 - 그 소년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느냐고 알려주고 싶을 때에도, 반드시 사과받지 못한 그 소년을 위해 기꺼이 말할 용의가 있다. '용서해줘, 레너드 피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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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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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은 너에게서 떨어져 어딘가 먼 곳의 진흙탕 속으로 갈거야. 너의 음울함 모두를 등에 짊어진 채로. 그리고 그 넓고 더러운 진흙탕 속에 묻혀버려. 다시 나올 수 없을 만큼 철저하게. 어디 이래도 버티나 보자, 라고 할 만큼 떡이 되게 두들겨 맞고, 참혹하게 쓰레기처럼 묻혀버려. 그리고 너는."

남자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서 내 얼굴을 보았다. 뭔가 미안하다는 듯이.

"그럭저럭 명랑해질 거야. 장래에는 뭔가 일을 하면서 여자도 사귀고 너 나름대로 이 따분한 세계 속에서 살아갈 거야. 다들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면서, 세계가 제시해주는 다양한 인생 모델, 그중 어느 것 하나를 자연스럽게 선택할 거야. 때로는 외국의 굶주린 아이들에게 동정심을 베풀어도 좋아. 때로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해봐도 좋아. 그럭저럭 재미있을 거야. ...... 아마도." ]

 

이런 시작점을 가지고 있는 책인데,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덕분에 읽는 동안은 꽤 재미있게 읽었다. 한시간 남짓하는 거리를 전철로 가면서 책 읽는 동안은 금방 내릴 역이 가까워 왔었다. 이 책을 들고 전철을 한 서너번 탔을까, 싶다. 매번 다 책을 읽은 것은 아니었고, 그 중 두번 정도 읽으면서 갔는데 그러고 나니까 스무장 정도가 남았었다. 몰입도도 좋고 읽는 속도도 빠르게 유지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인물도 간결한 편이라 텀을 두고 읽으면서도 앞 내용이 기억 안나 딱히 되짚어 읽었다 돌아오는 일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썩 마음에 흡족한 기분이 남질 않는 책이었다.

 

 내용 자체가 음울하다. 초반에는 사실 어떤 괴물이 탄생하겠거니 싶을 정도로 호기심을 자아내는 시작을 보여줬는데, R의 존재가 흐려지면서 주인공에 대한 관심도 조금 사그라드는 느낌이었다. R과 다시 이야기하게 되는 부분에서 마치 R 또한 주인공에게서 실망을 느낀 것이 아닌가 여겨질 만큼. 주인공은 그저 주변을 관찰하면서 '사실 내 안에도 무언가가 있는데'라고 과거의 자신을 반추하기만 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은 것 같다. 나 역시 사나에처럼 '히어로'와 같은 역할을 하는 인물이 소설의 전반에 걸쳐 드러나길 바랐고 그것이 R이라는 존재를 품고 있던 주인공이기를 바랬다. 너무나 흔한 공식이라고 하더라도 그랬었더라도 그 과정을 충분히 잘 그려낸 작품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소박한 기대마저 흩트려놓은채 어딘지 석연치 않은 전말을 풀어내며 이야기가 끝났다. 과거에 비해 지나치리만큼 평범한 현재를 살아가게 될 주인공들을 보면서 불만족을 느끼는 독자가 오히려 더 이상한 욕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되는 것 마냥.

 

 작가의 다른 작품 왕국도 읽은 적이 있다. 그 작품도 높은 몰입도로 속도감있게 읽을 수 있었는데, 나카무라 후미노리 작가 특유의 문체나 장점으로 꼽을만한 좋은 스타일이 아닐까 싶다. 다만 어딘지 모르게 느껴지는 밋밋함이나 아쉬움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결말이 평이하고 수수하게 맺어진다고 해도 그 안에 깊은 불유쾌함이나 처연함을 내재시킬 수 있는 작품을 써내려간다면 좋겠다. 심층심리를 드러내면서 한편으로는 다독여줄 수 있는 힘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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