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주인자리 네오픽션 로맨스클럽 2
신아인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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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쁜 것들을 그러모은 보석상자같은 책이다. 여자들이 좋아할만한 건 다 찾아와서 모아보자는 취지하에 만들어진. 문제는 그것들을 모아놓은 보석상자를 한 십년쯤 뒤에 먼지쌓인 구석에서 찾아내 열어본 것 같다는 것이다. 하나하나는 다 매력적이고 빛나는 것들인데 모아놓으니 조잡하기도 하고, 이미 예전에 좋아했던 것들이던 지나간 느낌도 나고.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그래, 이런 거 좋아했었지. 하는 느낌은 있는데 푹 빠져서 열광하게 되는 건 아니다. 넣었을 당시 가장 빛났을, 지금 한번은 다시 꺼내 살펴보지만 또 다시 상자 안에 담아 있던 자리로 돌려놓을, 그 정도의 내용이었다.

 

 별자리 전설도 끌어오고, 늙지도 않고 강력한 힘을 가진 매력적인 주인공 뱀파이어도 끌어오고, 그들이 찾는 핵심 인물인 천사의 피를 가진 인간 여자도 등장한다. 게다가 주인공에겐 상처로 남은 슬픈 사랑의 추억도 있고. 누구나 가슴에 삼천원 쯤은 있는거니까. 게다가 주인공은 또 쌍둥이인데, 그들이 자꾸만 같은 상대를 좋아하게 되는 바람에 생긴 균열도 극에 달했고, 이번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천사의 피를 가진 존재 수안 역시 두 사람이 모두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이미 삼각관계가 시작된 데다가 남자 주인공은 가슴에 남은 상처때문에 그녀를 밀어내고, 먼저 그녀를 지켜봐왔던 남자 주인공의 쌍둥이 동생은 이번에도 눈 앞에서 그녀의 마음을 놓치는 설정이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의 마음을 자극하려는 의도를 듬뿍 품은 독기로 느껴진다. 색다른 점도 없이 정공법을 선택했다는 과감한 시도. 그리고 그 시도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조악함.

 

 인물들 사이의 갈등이 깊게 드러나는 편인데, 그 갈등의 기반이나 설명이 약했다. 부녀관계인 준수와 유민의 깊은 갈등은 두 사람의 세월에 비해 너무나 극적이고 극명한데 그래도 둘 사이에 남은 무언가가 있다고 독자들이 느끼게 할만한 에피소드도 없고, 뒷 마무리도 약했다. 여주인공 수안과 남주인공 신우, 그의 쌍둥이 동생 이엘의 관계에서도 서로 그저 치명적인 사랑이려고, 그렇게 보이기 위한 노력만 있었을 뿐, 왜 서로가 서로에게 절대적이고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지, 어떤 부분이 그렇게 어필되는지에 대한 근거도 미약했다. 다만 이야기 중 가장 매력적이었던 것은 서브 로맨스 라인을 담당했던 승윤과 민조였었다. 하지만 그 둘의 이야기는 메인 라인 흐름에 묻혀 흐지부지 끝내버렸고, 오히려 더 감정을 자극할 수 있었는데 타오르려다 맥 없이 꺼져버린 힘없는 시도였던 것 같아 아쉬웠다.  

 

 무슨 일에선지 뱀파이어가 된 아름다운 존재들이 한 집에서 살고 있다. 아름다운 외모와 강력한 힘, 재능과 부를 지닌 쌍둥이 형제, 항상 밝고 가볍게 조명이 빛나는 거리를 걸으며 살려는 긍정적인 조연 캐릭터, 가련한 딸을 위해 잘못된 실험을 한 늙고 지친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증오하며 어린아이의 몸으로 수십년의 세월을 살아오게 된 딸. 그들 앞에 어느 날 나타난 천사의 피를 가진 수안. 이렇게 나열하면 로맨스 소설 독자들이 혹할만한 코드가 있을 것 같은데 그 모든 것을 세련되게 연결하진 못한 것 같다. '운명적 사랑'이라고 쓴다고 해서 그 내용이 그대로 운명적 사랑이 되는 것이 아니고, 한 인물을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장점을 가져다 수식한다고 해서 독자를 유혹하는 매력적인 인물로 탄생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이엘, 헤라, 아담, 이브, 은매화 향, 향수, 별자리 단어들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느낌이 있다. 많이 읽어본 독자가 이제 작가가 되어 쓴 글처럼 느껴졌다. 로맨스 소설에 빠져들지 못한 만큼 시간이 많이 지나버렸나 싶기도 하고, 최신간에서 이 이상의 코드를 내놓지 못했다는 점이 애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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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설렘으로 집을 나서라 - 서울대 교수 서승우의 불꽃 청춘 프로젝트
서승우 지음 / 이지북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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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자신의 삶을 풀어내는 글을 썼을 때, 독자는 무슨 경로를 통해 그 책을 선택하게 될까. 개인적으로는 생소한 분야에 대한 내용이기도 하고, 이 책을 읽기 위해 저자의 이름을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는 사전 작업이 필요했기도 해서 이 책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했다. 서울대 공대생들의 멘토가 되어주는 공학자이자 교수인 저자가 자신이 살아온 삶의 방향성과 그가 도전했던 무인태양광자동차경주대회에 대한 내용을 바탕으로 후학들을 위한 자기계발서를 써냈다.

 

 전부 생소한 내용들이라 몰입하여 읽기 쉽지 않았다. 자기계발서와 멘토북들은 시중에 범람하고 있고, 멘토북 끝판왕이라 할 수 있을 김난도 교수의 책을 최근에 읽은 뒤로 일종의 염증을 느껴 더 이상 읽지 않았던 공백의 시간도 있었다. 성공한 사람의 자기 이야기에 당연한듯이 따라붙는 정형화된 조언이, 성공하고픈 청춘을 향한 도움의 초석이 된다기 보단 시기, 질투를 유발하는 이미 다 아는 조언과 그러니까 너도 힘내서 열심히 해. 라는 판에 박힌 응원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이미 힘내고 있고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에게 그같은 응원은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얼마나 더? 하고.

 

 코드는 생소할지라도, 그 내용과 형식은 정형화되었다는 점에서 좀 냉랭한 시선으로 글을 바라본 점이 있다. 관심있는 분야이고, 저자의 이력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 독자라면 사실 이보다 흥미로운 내용도 없을 것이긴 하다. 예전에 무인 자동차 경주 대회가 외국의 사막지역 비슷한 곳에서 있었던 것을 티비로 본 적 있는데, 여러모로 놀랍고 흥미로웠던 기억이 있다. 다만 그 놀라움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것과 놀라움이 준비되는 과정을 고군분투의 글로 보는 것의 생생함이 좀 차이가 있었을 뿐.

 

 그가 가진 이력이 평범치 않음을 무기로 다른 자기계발/멘토 글들과 차별화를 두려고 했다면 차별되는 점이 있기도 하겠지만, 이 책의 장르적 카데고리 안에서는 차별화되는 점이라 보기 어려운 면도 있었다. 평이하고 당연한 수순을 따라간 안전한 내용의 책이지 않았나 싶다. 또하나는 그가 묶어낸 카데고리 사이에 이런 내용은 왜 끼어들었을까 하는 것들이 있었다. 다른 유명인들의 일화를 넣어놓은 부분인데, 개인적으로는 읽으면서 좀 튀는 흐름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을 멘토북처럼 엮기보다는 그가 해낸 일의 중요성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추고 세련되게 만들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무인태양광자동차경주 대회를 성공시킨 주된 내용에 비해 책 표지는 지나치게 말랑말랑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독자가 흥미를 느낄만한 코드를 제대로 어필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삶에 있어 보여준 놀라운 도전 정신이 책에는 반영되지 않은 것 처럼 느껴진다. 더 넓은 폭으로 안전하게 독자를 끌어모으려는 것보다 강렬한 자기만의 색을 표출했다면 더 책에 몰입될 수 있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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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천재적인
베네딕트 웰스 지음, 염정용 옮김 / 단숨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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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천재적인'이란 말은 저자 베네딕트 웰스에게 더 잘 어울리는 수식어가 아닐까 생각한다. 작품의 전체적인 내용으로 봤을 때 비꼬는 말처럼 될 수도 있겠지만, 젊은 나이에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그래도 "내 인생에 이 길 밖에 없다"고 정한 그 순간 마법처럼 작품이 뽑혀 이름난 작가로 단숨에 삶이 바뀌어버린 거의 천재적인 작가 베네딕트 웰스. 그의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그의 성공기가 부럽기도 하여 이 수식어를 그에게 붙였는지도 모르겠다. 질투와 시기는 조금 접어두고 책 이야기를 하자면, 연상되는 작품들이 많은데 또 그만의 특색은 가지고 있는 볼만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불우한 생활을 하고 있는 젊은 청년이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이 비슷한 느낌의 동화가 있었던 것 같은데, '엄마 찾아 삼만리'였던가? '파랑새'라는 동화랑도 좀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니면 살짝 '은하철도 999'처럼 지나간 도시들마다의 구분이 되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이 여정에 함께 하는 인물들을 떠올리면 살짝 '오즈의 마법사'같단 생각도 든다. 어쨌든, 그는 길을 떠났고 꽤 우월한 유전자를 물려받았을 이 청년은 어리석게도 존재할지도 안할지도 모를 희망에 자신의 미래를 걸고 약간은 감상적이게도- 사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자신의 뿌리찾기에 도전한다.

 

여러 도시들이 나오는데, 그 중 '티후아나' 부분을 특히 관심있게 읽었다. 제대로 묘사 했는지 티후아나 부분에서는 도시에 대한 묘사를 집중적으로 보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이야기의 최종장에 이르러 절정에 치달은 부분이라 그런지 티후아나에 대한 짧은 스케치에 지나지 않아 좀 아쉬웠다. 여행기가 아니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티후아나의 주정뱅이 노동자로 전락하는 삶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충분히 묘사가 덜 됐던 것 같아 아쉽기도 했다. 덧붙이지만 티후아나는 그렇게까지 촌동네는 아니다. 부촌과 빈민촌이 적당히 어우러져 있긴 하지만.

 

비극이라면 비극일 수 있는 삶은 내가 물려받은 자에게서 내가 물려 내려주는 자에게로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이라는 구조도 약간은 형식적이지만, 그래도 썩 잘 어울리는 구성으로 만들어냈고 짧고 간결한 문장이 살짝 거칠게 느껴지는 듯한 문체로 서술되는 것도 주인공의 상태와 잘 어울렸다. 위태로움이 그대로 배어나는 듯한 느낌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독일 현대문학 작가들의 책을 많이 접해본 것이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독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의 글은 아니었다. 카프카나 니체 같은 사람들이 먼저 떠올라서 그런가 싶다. 약간은 가볍고, 그래서 이 소년의 무모한 여행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흥미로운 시선으로 따라붙는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그보다 어른인 사람의 입장에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법한 결말로 흘러가는 점이 개인적으로 안타까워 애도를 표할 수 있을 정도의 애정을 가지고.

 

다음 책이나 이전 책을 당장에 찾아 읽고 싶을 정도의 강렬함이 없던 것이 아쉽다. 하지만 한두권 정도 더 읽는다면 평가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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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의 연인들 - 소설로 읽는 거의 모든 사랑의 마음
박수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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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사랑이 대체 무엇이관대, 이토록 많은 이야기들이 오로지 사랑으로 집약될 수 있을까. 서가에 켜켜이 쌓인 연인들의 이야기를 둘러보기도 전에 사람과 삶과 사랑에 대해 생각해본다. 사람의 존재 그 자체보다도 삶에 대한 성찰 이전에 우리는 그 이상으로 사랑을 사랑한다. 사랑하길,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길, 사랑 그 자체에 관심을 쏟고 집중하길 좋아한다. 사랑 노래에 이제 질려버렸어, 라고 말할 정도로 주변에 만연한 사랑에 대한 수많은 넋두리들에 염증을 느낀다. 마치 초등학생들이 따라 부르는 진한 사랑 노래를 들을 때 느끼는 위화감이랄까. 우리가 타인을 사랑하는 감정의 깊이보다 사랑 그 자체에 쏟는 관심이 더욱 과잉되었다고 느끼게 되는 주객전도의 불편함이랄까. 서가의 연인들 자체에 불만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어색한 다정함으로 그러안은 연인들이 그려진 표지를 마주하고선 그런 생각을 먼저 떠올렸었다.

 

이런 류의 책들이 주로 이럴 것이다, 하고 예상하게 되는 문체는 아니었다. 이런 류라고 했던 것이 그 '류'에 대해서 뭐라 설명하긴 좀 어려운데 문학이든 소설이든 여러 작품에 대해 소개를 하거나 평을 하는 책들이 갖고 있는 특유의 분위기 같은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이전에 '내 인생의 화양연화'라는 책을 읽었었는데, 이 책과 그 책의 주제는 많이 비슷하긴 하지만 '내 인생의 화양연화'라는 책의 문체가 주로 '~했지요. -습니다.'하는 투로 끝을 맺으면서 특유의 분위기를 물씬 냈었는데, 이 책은 생각 외로 담백한 문체로 서술되고 있다. 주제가 농밀한 만큼 문체는 담백하게 끌어갔던 것이 오히려 더 좋았던 점이었다.

 

처음에 소개하는 작품들이 하나같이 읽기 어려운, 어려울 것 같은 책들이라 높은 레벨의 책들만 선정해놓았을까 했었는데, 뒤로 갈수록 읽었던 작품들이 나와서 초반의 긴장을 덜 수 있었다. [백년 동안의 고독]이라니. 읽다가 읽다가 결국은 다 읽지 못했던 그 작품이 딱, 나오는 순간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한편으론 읽지 못한 책을 대신 읽고 방향을 잡아주는 안내서 같단 생각도 했다. 딱 재미있는 부분들을 모아 정리해놓은. 밀란 쿤데라의 [히치하이킹 놀이] 같은 작품은 정말 몰랐던 보석을 발견해내는 재미로 관심있게 읽기도 했다. 원작을 봐야겠단 결심을 하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하였고. 다만, 책에서 소설 속 인물들과 동화되기 위해 준비해놓은 인물들이 있다는 설정은 다소 진부했다. 너무나 극적인 설정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지나치게 여성취향의 코드를 입혀놓으려 한 시도 같기도 했다. 옛 하이틴 잡지에서 볼 수 있었을만한 익명사연처럼. 그 당시엔 정말 두근거리며 공감하며 그런 설정에 빠져들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소설 속 인물들의 사랑에 공감하기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부담되는 설정처럼 느껴졌다.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사랑의 옛 우리말이 상다(想多)라는 말이 있다.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이 사랑이란다. 단지 그 사람을 그리워해서 생각을 많이 한다는 뜻만은 아닐 터이다. 어떤 식으로든, 의아함이든 미움이든 짜증이든 누군가에 대한 상념이 많아지면, 그것은 사랑으로 이어지기 쉽다. 그래서 가장 흔한 사랑의 고백은 이렇다. 너 때문에 신경이 쓰여 죽겠어! 근본적으로 사랑은 리비도의 집중 현상이다. 어떤 모양으로든 집중된 에너지는 사랑으로 흐르기 일보 직전이다." 라는 부분. 누군가를 사랑하는가 마는가, 그 감정이 언제부터 시작 되었던 것일까에 대한 고민을 할 때 내어줄 수 있는 답안인데, 신경쓰이기 시작하면 이미 시작된 것이라는 생각과 같은 맥락이어서 가장 읽으면서 공감도 많이 됐다. 세련된 화법으로 사랑을 말하는 흥미로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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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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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천천한 호흡으로 읽고 있던 이 달의 책은 "도련님"이었습니다.

 

첨부된 책 사진엔 푸른 빛이 강하게 도는데 실제 책을 대하고 있을 땐 회색이란 느낌이 더 많이 드는- 거기에 옅은 물빛이 감돌아 보는 위치에 따라 색이 언뜻 달리 보이는 표지의 책입니다. 묘한 색감이 수수하면서도 지그시 바라보게 만드는 끌림을 던집니다. 무게도 가볍고 가을을 맞아 독서하기 좋은 책이었습니다. 올해 9월에 출간된 송태욱 번역의 "도련님"은 현암사에서 나온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의 두번째 책입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진한 여운이 아직 가시기도 전에 '욕심이 없고 고운 심성을 가'진 도련님이 11월의 추위 앞에 나섰습니다. 그가 내뿜는 곧고 - 또 거센 치기가 더운 김을 내뿜고 책장을 넘기는 손에 즐거움이라는 온기를 전하는, 매력적인 책이었습니다.

 

세상 물정을 하나도 모르는, 산짐승이 사람의 탈을 쓰고 세상에 내려와 산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마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고양이같다.'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봇짱-도련님-에게서 순진함이랄까 단순함, 융통성없이 곧이 곧대로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 모습이 보일 때 종을 초월한 유사함이 느껴졌습니다. 엄연히 다른 구석이 존재하긴 하지만 말이지요. 도련님이란 인물을 생각하면 세상의 때가 탄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느낌이 들면서 한편으론 사람냄새난다는 평을 하게 됩니다. 여타의 사람들과 다른데 사람냄새가 나는 인물이라니 쓰면서도 이중적인데요, 묘하게도 도련님이 어떤 인물일까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레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그 존재에 대해 스스로 기대하는 바와 실제 가지고 있는 역량이 다르다는 것을 도련님을 읽으며 다시금 느끼게 되는 요소였습니다.

 

짧게나마 아이들을 가르쳐 본 경험이 있는 바로, 도련님이 시골학교에 부임하여 겪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에 어느 정도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살펴보듯 읽으려 했는데, 감정 이입하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의 생활 반경과 겹치는 부분이 교사의 생활에도 존재하고 그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경단, 메밀국수 사건- 그러했고, 아이들이 악의없이 행동했건 엇나감으로 그러하였건 여부를 떠나 교사에게 반발하는 행동을 보이면 짧은 순간이라 하더라도 화(이자 상처)가 나고야 마는 점이 그러했습니다. 마치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위협을 받고 있는 것 같이 느껴져 같이 화가 나 읽기를 멈추기도 하는 때도 있었습니다.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짧은 교사생활이 도련님과 마찬가지로 요령부득이었던 것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지요.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 중 가장 강렬했던 감상은 재미나 화,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는 호기심보다도 '부러움'이었습니다. 도련님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속까지도 알아주고, 감싸주려는 존재인 기요가 갈수록 넓은 그늘을 드리우는 중요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치열하게 벌어지는 선생님들 사이의 암투는 표면적인 내용을 이끌어가지만, 도련님의 마음 속에서 점점 더 크게 자리하고 있는 것은 기요라는 존재였지요. 기요와 같은 존재가 있었다면 하는 부러움과 함께요. 사람들 틈에서 옳고 그름이 혼돈될 때도 믿고 떠올릴 말이 있다면, 일이 아무리 불리하고 잘못되게 돌아가도 돌아가서 받아들여질 사람이 있다면 도련님처럼 배짱좋게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 같단 생각을 합니다.

 

기요가 왜 자신을 칭찬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도련님이 세상 밖으로 나와 더 많은 사람들과 이해관계 속에서 마찰을 겪으며 다시 기요를 떠올리게 됩니다. 처음엔 기요에게서 벗어나려 했던 그가 말미에 결국 기요의 곁으로 돌아가길 결정했다는 것은 그가 자신이 가진 장점- 우직하지만 올곧고 약간은 대책없이 순수한 성품을 잃지않고도 자신이 있을 곳을 스스로 정하는 성인으로 성장했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처음엔 그저 철없고 경망되게 생각이 짧았던 도련님이 살아가는데 있어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되고, 제자리를 잘 찾아간 것 같아 책장을 덮으며 대견함을 느끼기까지 했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해보니 한편의 성장소설도 되겠습니다. 웃으며 만날 수 있는 읽기 편한 고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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