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 - 희망의 날개를 찾아서
소재원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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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이 소설의 바탕이 된 사건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글이라기 보다는, 사건 일지에 대한 재기록이었지만, 지금 문득 그 생각이 나서 다시 그 글을 찾아보았는데 아 역시나 그 참혹함과 감당하기 어려운 잔악함,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도록 만드는 끔찍함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하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상흔과도 같다. 비록 우리 살갗에 새겨지지 않아 우리가 쉽게 잊은 듯 살아가고 쉽게 우리의 관심을 거둔다해도 그날의 충격은 사실 고스란히 우리의 기억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도 깊은 혐오감에 비위마저 상했다. 범인을 무엇에 비할 수도 없을 정도로. 짐승을 두고도 비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날의 기록은 처참하고 슬프다.

 

 

작가가 이 글을 쓰면서 어떤 의도를 가졌을까 생각해봤다. 그의 시도는 환기가 될 수도 있고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아직 책 안에 남아있는 '거침'이다. 덜 정제된 덜 다듬어진 부분부분들이 눈에 걸려 오히려 몰입을 방해하고 아쉬움을 남긴다. 예민한 문제에 대해 쓴다는 것은 그만큼 더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관념이 내 안에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조금만 더 다듬으면 될 부분이 거친 그대로 남아있는 부분에서 예민해지는 시선은 어쩔 수가 없었다.

 

 

거친 부분이 거친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고 하고, 중요한 이 책의 내용은 솔직히 말하면 다소 평이한 흐름이라는 것이 사실이겠지만 이 소설의 내용이 실제 한 가족이 겪은 비극적인 사건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을 떠올릴 때마다 찾아오는 둔탁한 충격과 슬픔이- 그럼에도 그들이 꺾이거나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기대하는 마음이 얼마나 진정으로 찾아오는지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다. 만들어 낸 다른 이야기들에 눈물을 흘리는 것은 오히려 감정의 낭비로 여겨진다. 우리가 진정으로 슬퍼하고 공감해야 할 이야기는 이렇게 현실적이다. 누군가가 살갗으로 느낄 아픔에 대한 공감. 영화를 보길 주저하고 있었는데,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적인 공감 외에도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부족한 부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문제를 직시할 수 있는 요소들이 함께 놓여져 있는데, 확실히 개선해야 할 부분들을 잘 짚어내었고 이 책과 영화를 통해 바뀌어야 할 부분들은 바뀔 수 있도록 여론이 형성된다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위안을 얻고 죄를 지은 사람은 그 죄의 무게를 자신의 삶 속에서 깨달을 수 있도록.

 

 

** 고쳐졌으면 하는 부분들

 

 

21쪽 2째줄 ; 만취 상태라는 참작 이루어져 검사가 구형한 20년 형량보다 가벼운 죗값을 받았다.

-> 만취 상태라는 참작이 이루어져 검사가 구형한 20년 형량보다 가벼운 죗값을 받았다.

그저 '이' 하나만 더 붙여넣었어도 좀 더 읽기 매끄러운 문장이 되었을 것 같다.

 

 

48쪽 10째줄 ; 그 이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 그게 혹은 이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어떤 문장을 쓰려고 했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 '그 이게'라고 적혀 있는데 그게 혹은 이게라고 수정된다면 간단하겠지만 앞문장과의 연결로는 그것도 매끄럽지는 않다.

 

 

130쪽 19째줄~131쪽 2째줄 ; 지금 상태로는 감당하기 힘든 기억들이기 때문에 또다시 스스로 지능을 높이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 지금 상태로는 감당하기 힘든 기억들이기 때문에 또다시 스스로 지능을 낮추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내용상으로 지윤아빠는 자신의 지능을 지윤이 또래 수준으로 낮추었기 때문에 '높이는'이 아니라 '낮추는'이 맞지 않을까 싶다.

 

 

다음 판본에서 한번 고려해줬으면 하는 부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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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지우고 남은 것들 - 몽골에서 보낸 어제
김형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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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라고 해서 일련의 감성 여행기를 떠올렸다. 몇장의 멋진 사진들과 짧은 문구들, 아포리즘, 자신이 걸어간 여행지에서의 발자취에 대한 기록같은. 첫 프롤로그에서 '야생의 기억'이라는 시를 대면하고서 그제야 놀라움을 느꼈다. 저자의 다른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이 책은 소설가의 글을 담고 있었다. 여행작가나 혹은 일반인의 정보 전달과 여행기록형 글이 아닌, 소설가의 글을. '바람이 지우고 남은 것들'을 통해 걸음과 걸음 사이의 사유를 전달받을 수 있었다. 일상에서 멀어진 지극히 자유롭고 낯선 바람이 몰아온 소설가의 사유를.

 

한 단락씩 에세이를 읽어나갈 때마다 깊은 만족감에 마치 너른 초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자신을 내맡겨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는 듯한 흡족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은 각 장마다 대표되는 핵심어가 있고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하여 총 여덟개의 장으로 되어 있는데, 나는 절반의 기쁨과 절반의 아쉬움으로 책을 읽는 시간을 채워야 했다. 정말 딱 절반으로 프롤로그와 세 개의 장 '첫 발자국', '풍문', '영감'까지 정말 아름다운 표현들과 생각이 마음에 와 닿는 내용으로 가득 채워져 이런 것이 여행 에세이라면 출판시장에 넘쳐나는 수많은 여행서들도 그리 과한 것만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여행이야기가 시작되는 '순례'장과 그가 쓴 소설 [조드]의 창작노트와 그와 관련된 좌담에 이르러서는 약간 흥미가 떨어지게 되고, 여타의 여행서와 비슷한 느낌의 서술이라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물론 몽골을 다녀온 일을 바탕으로 쓰는 글이기 때문에 그가 몽골에서 어떤 길을 걸었고, 무엇을 보고, 누구를 만났는지에 대한 설명이 들어가는 것은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글이 이어지기엔 그가 처음에 보여주었던 세 개의 장 안에 채워진 내용들이 너무나 흥미롭고 또 좋았다. 평이한 여행기를 보편적인 서술로 옮기기엔 아까울 정도로. 그래서 초반에 읽었던 세 개의 장까지의 내용이 그간 읽었던 여행관련 책 중에서 가장 으뜸으로 좋았더라면 중후반에 이르러서는 고조되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아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그럼에도 또 하나 이 책이 인상적인 이유는 몽골에 다녀온 여행을 바탕으로 다양한 색깔로 이야기를 담아냈다는 것이다. 작가가 여행을 통해 느낀 자유로운 사유와 여행의 세부적인 기록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집필한 소설에 대한 대담 형식으로 까지 여러 방식으로 표현해냈다. 마치 하나의 컨텐츠를 각기 다른 색의 필름을 통해 선택적으로 골라 볼 수 있도록 장치-배려 해놓은 것 같이.

 

다른 독자들이 여행서 혹은 에세이에 대해 어떤 기대를 할지 모르겠다. 다양한 방식의 기록이 남겨져 있는 책이니만큼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내가 마음에 들어했던 프롤로그와 처음 세 부분의 장에 대해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읽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 부분이야 말로 진짜로, 바람이 모든 것을 지워도 남는 누군가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가장 멋진 부분의 기록인 것 같다. 여행에서 어디를 다녀왔고 무엇을 했고 누구를 만났는지 기록을 남겨 기억을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로인해 내 사유가 어디까지 확장되었는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만큼 멋지고 의미있는 무형의 가치는 없다고 생각한다. 몽골로의 여행을 꿈꾸는 혹은 저자 김형수의 기록에 궁금함을 품고 있는 독자들에게 기대 이상의 독서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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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류츠신 지음, 이현아 옮김, 고호관 감수 / 단숨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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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체를 읽는 동안은 정말 삼체만을 읽었다. 한 권을 읽을때 보통 다른 책과 함께 읽는 일을 많이 하진 않지만, 삼체를 읽는 동안은 그 내용에 많이 집중해서 읽었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아마 잠시라도 주의가 흐트러지면 다신 삼체 안에 접속하지 못할 것 같단 느낌을 받아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SF로 구분지어지는 장르의 소설을, 정말로 처음 읽은 것은 아니지만 기억하기로 이렇게 긴 분량의 소설은 처음 읽었다. 그 전까지는 짧은 단편들을 모아놓은 책을 한두권 정도 읽어본 것이 전부다. 많이 즐기는 장르가 아니라 약간의 염려가 있어고 그리고 그 분량이 적지 않기도 해서 읽기 전에 부담도 좀 있었다. 또 하나는 중국소설이라는 점도 그랬다. 낯선 나라는 아니지만 중국의 현대문학은 개인적으로 좀 낯선 편이다. 많이 읽어보지도 않았고.

 

 이러저러한 몇가지 우려가 있었지만 읽으면서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이 책의 독특한 세계관과 책 안에서 설명되는 다양한 이론들을 성실하게 안내해줄 수 있는 리뷰가 되었으면 좋겠지만, 나로선 불가하고, 완벽한 이해와 체계적인 정립이 없이도 충분히 즐기면서 읽을 수 있다는 리뷰는 가능하다. 본 무대는 지구이고, 외계에 존재할 생명체를 향한 끊임없는 소통 시도 끝에 외계 문명인 삼체의 답신을 듣게 된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비밀 기지에서 어떤 일들을 하는지, 또 어떤 과정을 거쳐 우주로 신호를 보내고, 우주에서 온 신호를 받게 되는지에 대한 인물들의 설명은 애석하게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적당히 훑어보듯 넘어가며 읽었는데 이야기를 즐기는데 있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인과만을 분명히 인식하면 되니까.

 

 처음 시작부터 주인공 왕먀오가 어느 날 갑자기 낯선 사람들의 방문을 받으며 대체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왕먀오가 소설 안의 삼체라는 게임과 단체, 그리고 쓰창, 예원제라는 인물 등과 부딪히며 지구를 지키기 위한 국가 기밀 프로젝트의 진실에 점점 접근해간다는 설정으로 결국 어떤 진실을 목도하게 될까 독자의 흥미를 계속해서 유도하기 때문에 중후반부로 갈수록 몰입도가 높아진다. 꽤 재미있었기 때문에 과학이론설명 부분만 없었다면 더 빨리 책을 다 읽게 되었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아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생각보다 괜찮았던 부분이 중국의 역사적인 부분을 반영한 '문화대혁명'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배경지식이 적다보니 중국 문학 작품을 읽을 때 관련 내용이 나올 때마다 잘 이해가 안되는 점이 늘 아쉬웠는데, '삼체' 안에서도 이 사건이 아주 중요한 배경이 되기 때문에 좀 아쉬운 부분이었다. 우리가 분단문학 작품을 읽을 때 느끼는 것들을 다른 나라에서 어느 부분까지 공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으로써 느낄 수 있는 기본적인 배경지식과 감정까지 읽어내기 어렵듯이, '문화대혁명'에 대한 문학작품 속에서의 반영도 그러할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의 현대문학 작품들에서 당시를 반영한 정서나 사건들이 많이 다뤄지고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인데, 그에 대한 이해나 배경지식을 갖고 있기 쉽지 않기 때문에 지극히 일반적인 독자로서는 그 점이 좀 아쉽다.

 

 작품 자체로는 생각 이상의 재미를 준다. 장르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신간 소식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도 즐거운 독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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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치열한 무력을 - 본디 철학이란 무엇입니까?
사사키 아타루 지음, 안천 옮김 / 자음과모음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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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서라 반가웠다. 목마르고 가난한 분야에 도움의 손길이 내려온듯한, 느낌. 문제는 너무나 목마르고 가난하여 도움의 손길을 잡을 수 조차 없었던 자신에게 있었지만. 저자에 대해 처음 알게 된 탓에 책 안에서 언급되는 전작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릎을 꿇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었다고 이 책에 대한 기록을 남겨둘 수 있는 건가 싶기도 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전작부터 읽었어야 이 책에 대한 기록이 기록다워지는 그런 역할이 있다. 두 책 사이에. 그래서 약소하나마 작가 이력을 살펴보았는데, 사사키 아타루는 현재 일본 사상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비평가이자 젊은 지식인으로 꼽히는 요주의 인물이었다. 여러모로 알아보았는데, 작가의 전작보다는 그 외에 다른 두명의 작가가 더 공저한 '사상으로서의 3.11 (대지진과 원전 사태 이후의 일본과 세계를 사유한다)'라는 책이 더 궁금하긴 했다.

 

책은 거의 대담과 작가의 기고를 새로 옮긴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화 흐름을 열심히 좇다보면 어느 순간 지식인이란 이런 사람들이로구나. 싶은 때가 확 온다. 사유의 확장이나 문제에 대한 접근법, 인용하는 사상의 범위가 벌써부터 범위를 넘어서 있다. 이런 것이 지식인의 사유이고, 역할이라면 나라는 사람은 정말로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상하게도, 바로 그 때 제목이 내 살갗에 와서 옮아지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목차를 살펴보거나, 약간의 힘을 뺀- 농담이 섞인 대담들을 보고 있을 때면, 현장의 생생함이 느껴지면서 그리고, 아 이런 얘기를 이런 식으로 풀어내고자 하는 거구나. 하고 따라갈 수 있게 된다. 아마 사사키 아타루가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이유는 일반 독자들을 떨쳐내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사람이 전하려고 하는 것이 나에게 전달되어 온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를 주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 여러분, 철학을 공부하십시오. 하지만 창작 활동에서는 자신이 쌓아온 지식을 한순간 불꽃 속에 태워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아까워하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고생은 뭐였지?’라는 생각조차 나지 않게, 완전히 잊을 정도로 그것을 제로로 해버려야 합니다. 지식은 은행의 예금 계좌가 아닙니다. 몇 백 포인트 쌓았으니까 더 뛰어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얼마나 성대하게 불태우느냐?’가 문제가 됩니다. ]

 

인상적이었던 부분이었다. 전체적인 내용이 철학과 문학에 대한 내용이었고, 많은 대담에선 소설에 대한 집중적인 탐색이 있었다. 소설가와 소설의 기원부터 소설을 쓴다는 것과 문체에 대한 부분까지 글쓰는 사람들이 실제적으로 고려하고 느끼는 바를 가깝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게다가 '철학을 공부하'라고 운을 뗀 저 부분은 실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지식은 고여 쌓이는 것으로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에 다독의 목표를 권수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수직이 아닌 수평적인 독서의 양을 늘려야 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독서를 그저 오락의 한 형태로만 너무 오랫동안 본 것을 아닌가하는 반성이 된다. 그 마지막까지 알게 되었다는 즐거움만으로 독서를 하는 게 아니라, 그 마지막까지 안 것을 얼마나 남김없이 쓰는가가 더 중요한 목표가 되어도 좋을 것 같다.

 

[후루이 : 이재민 중에는 지금 어느 누구보다 세상이 잘 보이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사사키 : 있겠죠. 아직은 말로 표현이 안 될 뿐이지만 말입니다.

후루이 : 저한테도 조금은 감염될까요? 세상이 보인다는 건 대단한 일입니다. 무서운 일이죠. 뒤돌아 쓰나미가 덮쳐오는 것을 본 인간이 있어요. 뒤돌아보다니. '인간이란 얼마나 가여운 동물인가'하고 느꼈을 겁니다. 못 걷게 되고 맙니다. 주저앉는 바람에. 동물한테는 그런 일이 없을 겁니다. 직립 동물은 직립이기 때문에 연약합니다.

사사키 : 하지만 그 연약함으로 손이 자유로워졌고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바퀴 정도 뒤쳐진 말馬이나 하는 말이지만, 또 골이 멀어졌으니까요. 훨씬 앞서 달리고 있는 준마의 갈기를, 뒷모습을 앞으로도 보여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책과 철학 뿐 아니라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함께 언급하며 대담을 이끌어나갔는데, 현재 일본 사회 뿐 아니라 넘어선 많은 사람들의 공통 관심사인 재난 이후의 삶에 대한 시선이나 자세를 볼 수 있는 부분이라 따로 옮겼다. 주저앉은 인간이 꺾이지 않고 써내려가는 글. 인간도 그렇지만, 글이란 바로 그런 것이겠단 공감을 많이 했다. 우리는 어떤 때이든, 무언가를 쓰려고 하니까. 정해진 몇 자 안에서든, 누군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오가는 인터넷의 단 몇 페이지 안에서든 나로 인해 만들어지는 어떤 신호를 보내려 끊임없이 손을 움직이고 있다. 무릎꿇을지언정, 무언가는 붙들려고. 대부분의 독자가 이 책을 통해서 얼만큼의 이해를 '챙길'지 모르겠다. 가장 필수적인 한마디는, 전작,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읽고 읽는다면 더 좋을 것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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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4
선자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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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도서를 좋아하고 즐겨읽는 탓에 신간으로 나온 책을 빨리 읽게 되어 좋았다. 선자은 작가의 책은 처음이었는데, 어떤 느낌이다 라고 얘기하기 어려웠다. 독특한 분위기였는데, 판타지 소설 같기도 했고 어떤 면에서는 특히 피규어나 십대 아이들의 아지트 등의 소재를 볼 때면 선입견인지 모르겠는데 왜색 문화가 좀 느껴지기도 했다. 책 안의 세계에 대해 그려내고자 하는 분위기가 분명히 있고, 잘 나타내기 위해 정말 성의껏 잘 꾸며냈다는 느낌은 확실히 들었다.

 

처음 시작은 좀 난데없단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남자애의 마음을 얻기 위해 폐가에 가서 주문을 외우겠단 생각을 하는 여고생이라니. 과연 그런 아이가 교실 안에 있을때 평범한 축에 속하기는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고, 이런 설정 자체가 왜색이 느껴지는 요인이 되어 거부감이 있었다. 거기에 당연한 수순처럼 계약을 원했던 소희가 아닌, 그 옆에 있었던 알음이 계약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예전 연예인들의 데뷔 수순처럼 오디션 보러 가는 친구 따라갔다 오히려 옆에 있던 본인이 연예계로 캐스팅 됐다는 그런 얘기들처럼 흔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부분들을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묘한 분위기를 설정하는 것만큼은 효과적으로 잘 나타내서 읽는 동안 몰입하여 즐기며 읽을 수 있었다.

 

인물들이 개성적으로 그려져 하나하나 잘 활용한다면 정말 매력적인 에피소드를 만들어 낼 것 같은데, 만들어진 인물을 그 안에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진 존재로 살려내는 부분이 좀 미비했던 것 같다. 비진과 신율의 가정사도 알음 못지 않게 복잡한데 그 아이들 안에 다 소화되지 못한 굴절된 부분들도 알음의 이야기와 함께 조금씩 드러나도록 했다면 애써 만든 비진이란 매력적인 나비같은 인물과 평범해보이면서도 건조한 면이 엿보이는 신율의 캐릭터도 더 효과적으로 움직였을 것 같다. 인물들이 알음을 중심으로 너무 적은 범위 안에서 수동적으로 움직였다 사라진 것 같아 아쉬웠다.

 

계약자와 만나 계약을 시작하게 된 알음이 복잡해진 집안과 더불어 친구관계도 엉망으로 꼬이게 되면서, 억눌러왔던 것들을 표출하고, 원해본 적 없는 것을 가지려고 노력하면서, 전체적인 분위기는 점점 더 음습하고 광기어리게 돌아간다. 마치 이야기 끝에서는 계약자의 손에 매달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알 수 없도록 휘청이게 된 알음이 다움을 죽이고 자신의 목숨도 계약자에게 다 내어놓게 되는 불길한 엔딩이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이어진다. 청소년 소설의 결말이 되기엔 지나친 파국이겠지만, 그런 끝을 예상하게 만들면서 독자의 불안한 시선을 책장으로 잡아끈다.

 

알음이 과연 계약자의 손을 잡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손에 넣게 될 것인지, 그렇게 된다면 알음은 만족스럽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될 것인지,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니까 계약을 한 사람은 계약자에게 대가로 무엇을 주게 될 것인지 끝까지 관심을 갖고 읽게 된다. 전체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여름이 지나간 계절에 읽으려니 좀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계약자와 손을 잡게된 알음이 부러운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주는 존재에게 그 주체인 자신의 마음을 뺏기게 된다면? 내 마음의 주인이, 내 행동의 주체가, 내 중심에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독특한 분위기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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